살수 - 전2권 세트 - 다가오는 전쟁
김진명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를 너무 많이 되풀이해서, 이제는 그 말을 들어도 아무 느낌도 없다. 그저 정해놓은 목표를 이루고자 새로 글을 쓰려고 하면서 이번에는 어떻게 그럴 듯하게 글을 시작할지 고민할 뿐이다. 병장을 달고 머리가 맑아지는 가을이 찾아왔는데도 업무 능력이 예전보다 오히려 줄어든 것 같아서, 그 고민은 더욱 깊었다. 게다가 이 책 '살수'는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나도 쉽게 술술 읽었기 때문에, 독후감을 쓰려고 오래 고민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라는 생각에 시달렸다. 그냥 떠오르는 대로만 적어도 글 한 편쯤은 뚝딱 써 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 고민하다가 마침내 그 까닭이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었다. 애당초 내가 이 책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품었던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재미있게 읽었던 때가 2002년이었고, 황우석 교수 논문 조작 사건과 그 책을 연관 지어 독후감을 쓰면서 김진명을 비판했던 때가 2005년이었고, 이 책 '살수'를 읽고 이 독후감을 쓰는 때가 2007년이다. 그 세 시기와 그 때 일어난 일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생각하고 글로 조리있게 정리하면, 매우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결국 나는 그 생각에 완전히 사로잡히고 말았다.

 

2002년에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에 정신없이 빠져들면서 나는 김진명이라는 작가를 처음으로 알았다. 그가 만들어 놓은 가상 세계는 현실과 견주는 것이 모욕일 정도로 현실에는 없는 너무나도 짜릿한 쾌감을 안겨다 주었다. 사람을 무서울 정도로 강하게 빨아들이는 그 흡인력을 소설 속에 불어넣는 창작력만큼은 정말 인정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배겨낼 수 없다.

 

그 가상 세계 속에서도 현실과 마찬가지로 힘없는 한국은 강대국들에 둘러싸인채 항상 손해를 보고 국민들은 그런 나라를 저주한다. 하지만 그런 국민들 사이에서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영민한 영웅이 나타난다. 그 영웅이 한국을 둘러싼 엄청난 계략과 음모를 파헤치고 때로는 그에 정면으로 맞서다가 절체절명과도 같은 위기에 수없이 처하지만, 그는 어떻게든지 위기를 넘기고 자랑스러운 조국에 막대한 공을 세운다.

 

NPT(Nuclear Non-Proliferation Treaty : 핵확산방지조약) 탈퇴라는 초강수를 두며 핵무기 개발을 박차한 북한과, 그에 발끈해 한국판 바벨론 작적을 세워 영변을 폭격하려고 했던 미국 때문에 최악으로 치달은 북핵 위기가 1993년과 1994년에 우리나라를 휩쓸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는 그 때 세상에 나왔다. 남한과 북한이 힘을 합쳐 나라 안에 있는 매국노를 주살하며 핵무기를 개발하고 그 핵무기로 철천지원수인 일본을 꼼짝 못하게 한다는 내용은, 강한 힘을 원하는 국민들을 강하게 자극하고 달아오르는 무좀과도 같은 간지러움을 기가 막히게 잘 긁어 주었다.

 

그 엄청난 마력은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고, 그 마력에 고등학교 2학년 철부지였던 나는 홀라당 넘어가 버렸다. 그 가상 세계가 주는 짜릿함에 취해 있던 나는 2002년에 벌어진 한일 월드컵에도 빠져 있었다. 사실 나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사람 모두가 그랬다. 모든 언론은 온통 대한민국 축구 대표 선수들과 붉은 악마들이 이룬 붉은 물결을 찍은 사진과 영상과, 열광과 감동으로 가득한 도가니를 온갖 미사여구로 표현한 기사만, 1면부터 끝까지 실었고 온종일 틀어댔다. 사람들은 좋은 말로야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회복하고 우리 안에 숨겨져 있는 엄청난 힘을 발견했다고 하지, 한없이 나쁘게 말하자면 이성을 잃어버려 아무 것도 제대로 판단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가장 뚜렷한 사례가 서해 교전이라는 엄청난 비극이 쥐도 새도 모르게 묻히고 말았다는 것이다. 월드컵만 아니었다면 서해 교전 같은 엄청난 피해를 입은 전투는 1999년에 일어난 연평 해전보다도 훨씬 더 격렬한 반응을 일으켜, 마침 2002년 12월에 예정되어 있던 제 16대 대통령 선거뿐만 아니라 한국 전반에 엄청난 파국을 몰고 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일이 그렇게 간단하게 묻혀버렸다는 것은, 우리 안에 숨어 있는 이 힘이 제대로 드러나면 상식이고 뭐고 다 무시해 버리는 엄청난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증명한다고 볼 수 있겠다.

 

사실 나는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대부분 사람들과 똑같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와 한일 월드컵에 아무 생각 없이 열광했다. 하지만 대학교에 들어와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눈과는 또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배우면서, 내가 그 때 왜 그랬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여러 글에서 차곡차곡 쌓이다가, 황우석 교수 논문 조작 사건에서 영감을 얻어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독후감을 쓰면서 모습이 뚜렷해졌다.

 

황우석 교수 논문 조작 사건 때문에 우리나라 과학계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논문에 이상이 없다는 것을 밝히려면 자체 검증으로써 쏟아지는 의혹을 풀어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과학도들이 그토록 집요하게 논문이 띠는 진실을 파고들며 의심을 풀지 않은 것이다. 그들은 과학과 사회 사이 관계와 과학이 국익에 진정으로 보탬이 되는 방법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언론이 너무나도 띄워 놓아 국민 영웅 반열에 들어선 황우석은,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월드컵 대표 선수들이 그랬듯이 성역에 자리를 잡았다. '줄기세포교'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사람들은 과학이 기본으로 지켜야 할 원칙을 껌 씹고 버리듯 내팽개치고, 황우석에게 쏟아지는 모든 비판을 감정에 치우친 대응과 논리로 가로막았다. 과학자로서 당연히 받아야 할 의심과 검증을 차단한다는 건 상식 밖이었고, 그만큼 뭔가 구린 것이 있다는 의혹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황우석이 발표한 논문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최소한 기초 생물학 지식도 없는 애꿎은 국민들이 그토록 심하게 발악했기에 외국에서도 그 희한한 현상에 주목했고, 결국 대한민국 과학계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안에 숨어 있는 광기까지 온 세상에 알려지면서 망신살이 찬란한 일곱 빛깔 쌍무지개로 뻗친 것이다.

 

오랫동안 외세에 시달려 온 한반도에서는 영웅이 필요했다. 그것은 수 천 년 동안 이어져 온 소망이었다. 특히 그런 경향이 두드러지기 시작한 계기는 일제 강점기였다. 36년이라는 기나긴 시간 동안 식민사학으로 한국사를 비틀고 한민족을 영원히 지배하려는 음모에 맞서고자 민족주의가 극도로 발달하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한국사 속에서 나타난 민족 영웅을 조명하는 사업 또한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사람들은 일본에 맞서 싸우는 투사들을 칭송했고, 민족주의 사학이 조명하는 옛 영웅들에게 열광했다.

 

그 집단 심리는 근현대사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일본과 중국은 여전히 한국보다 강한 국력을 자랑하면서 입맛을 다시고 있고, 사람들은 그런 두 나라 앞에서 떳떳하게 자기 할 말 다 하지도 못하고 눈치를 보는 대한민국이라는 자기 나라 때문에 열이 받쳐 견딜 수가 없다. 그렇기에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국위를 선양하는 것이라면 사람이든 집단이든 현상이든 무엇이든 간에 환장을 한다.

 

환장을 한다면 이성이 똑바로 작동할 리가 없다. 박정희 대통령 증후군, 2002 한일 월드컵, 황우석 교수 논문 조작 사건. 이 세 가지 현상은 우리 안에 숨어 있는 일그러진 광기를 추악하게 드러냈다. 그 광기는 치켜 올릴 대상을 한없이 떠받들어 신과 같은 격까지 올려놓은 다음, 그에 도전하는 모든 것을 오로지 잔인한 폭력으로 짓밟고 무너뜨린다. 그게 안 되면 아예 무시해 버린다.

 

노무현 대통령을 그토록 격렬하게 싸잡아 비판하는 이들이 왜 대통령 욕 한 마디 잘못했다가 온 가족이 남한산성으로 끌려가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그 시절을 비판하는 모든 논리에 격렬하게 반발하는가? 2002 한일 월드컵이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앞으로 만들 문제점을 진지하게 고찰해 보자는 주장이, 2002년에 주목을 받았던 적이 있는가? 황우석 교수가 발표한 논문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을 과학 기법과 논증으로써 성실하게 지적한 이들에게 어떤 이들이 벌어졌는가?

 

중국이 내놓은 동북공정에 대응하는 태도를 봐도 그렇다. 평소에 그토록 서로 물어뜯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난 조선일보와 한겨레가 한 목소리로 중국을 규탄하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 그지없다. 신문을 읽으며 동북공정에 관한 자세한 정보를 얻은 국민들은 분노하고 중국을 응징하자고 목이 터져라 외친다. 이런 언론과 국민을 보면서 무엇이 떠오르는가? 2002 한일 월드컵 때 언론과 국민을 하나가 되게 했던 그 붉은 광기(!)가 떠오르지 않는가? 그 넓은 중국뿐만 아니라 온 세상이라도 금방 휩쓸어버릴 것 같은 그 붉은 악마 말이다.

 

이 책 '살수'를 읽으면서 나는 앞에서 말한 그 '붉은 악마'가 내 안에서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그 악마는 오로지 뜨거운 가슴만 지니고 있을 뿐 차가운 머리는 흔적도 없다. 그 때문에 이 책을 읽는 그 시간 동안만큼은 한국 사학계에서 동북공정에 대응하는 방법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이 무엇인지 냉철하게 생각해 볼 수도 없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읽고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축구 대표들이 거두는 눈부신 승리를 지켜보면서 권순범과 이미현과 홍명보와 박지성에게 열광했듯이, 중국 대륙에서 일어난 거대한 제국 가운데 하나인 수가 일으킨 113만이라는 엄청난 대군을 휩쓸어버린 을지문덕에게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빛처럼 빠져들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는 것이 있어야지 김진명이 그려낸 을지문덕이 과연 고증학이 밝혀낸 을지문덕과 과연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짧게나마 생각해 볼 수 있는데, 내가 을지문덕이라는 장수에 관하여 알고 있는 것은 공교육 과정에서 한국사 교육을 받은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듯이 살수대첩으로써 수나라 113만 대군을 패퇴시킨 고구려 명장이라는 사실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김진명이 서문에서 지적한 대로 중국이 동북공정을 일으켜 고구려사를 중국사 안으로 통째로 집어넣으려고 하는데, 고구려를 살린 명장에 관하여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건 대단히 부끄러운 일이다.

 

그런 무지를 질타하듯이 김진명은 을지문덕이 얼마나 위대한 인물이었는지 낱낱이 밝히고 있다. 중원을 통일하는 나라가 고구려를 멸망시킬 것이라는 예측에 따라 여러모로 대비한다. 숨어 있는 무사들을 발굴하여 고구려군을 이끌어갈 장수로서 실력을 기르도록 장려하고, 각 요충지뿐만 아니라 전시에 적이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경로에 요새를 증강하여 그 안에 식량과 병장기를 비축하고, 고구려 영역을 늘리고자 백산말갈이나 돌궐 같은 소수 민족을 포용하도록 영양왕에게 건의하고……고구려에서 '천 년의 영웅'이라고 칭송받을 만하다.

 

을지문덕과 정면으로 대결하는 양광에 관해서도 많은 내용을 썼다. 수양제로 잘 알려진 양광이 얼마나 영민하고 대단한 인물이었는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야사까지 곁들여 실감나게 보여준다. 거기에 덧붙여 수나라가 서고 수양제가 즉위하여 고구려를 정벌하고자 113만 대군을 동원하는 과정을 환상소설과 실화소설을 넘나드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문체로 보여준다. 이는 이 무지막지한 수양제를 꼼짝없이 패퇴하게 한 을지문덕이라는 인물이 지닌 신비로움과 영웅 자질을 한 층 더 끌어올리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전체 내용을 돌이켜 볼 대 그 의도는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제목을 '살수'로 붙여놓고도 정작 살수 대첩 장면은 책 전체 내용과 견주었을 때 너무 적어서 아쉽다는 평이 많다. 하지만 김진명은 그런 평이 나올 것을 각오하고, 작정하고 을지문덕을 부각시켰다고 본다. 그가 서문에서 밝혔듯이 동북공정에 맞서야 하는 대한민국에서는, 중국 대륙을 무대로 삼은 '삼국지'를 모르면 저능아 취급을 받기 십상이지만 한반도에서 벌어진 '삼국지'를 모르는 데는 너무나도 관대한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 한심한 현실 속에서는 웬만큼 큰 자극이 아니고서는 사람들이 감동하기 어렵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가 지니고 있는 주특기를 이 책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내며, 얼개와 내용도 그렇게 균형이 맞지 않게 짰다고 생각한다.

 

일단 소설로서 충분히 재미있고 감동도 있어서, 역시 김진명이라는 평을 수없이 이끌어냈다. 하지만 역시 김진명이라서 그런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와 같은 효과를 '살수'에서도 이끌어낸다는 건 비판해야 한다. 앞에서 말한 우리 안에 숨어 있는 광기에 관한 이야기를 다시 해 보자.

 

영양왕이 내린 모든 부귀영화를 정중히 거절하고 낭림산으로 들어가 세상과 인연을 끊은 을지문덕이, 자기를 따라온 건중에게 마지막으로 남겨 세상에 알려진 말은 다음과 같다.

 

 

"저들은 반드시 돌아온다. 역사의 허울에 사로잡힌 이들, 저들은 머리 위에 고구려를 놓아둔 채 살아가지 못한다. 언제든 그 허울을 벗어버리고자 다시 돌아올 것이다.

 

건중, 다음은 네가 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그 다음은 다른 후손이, 또 다른 후손이……영원히 지고 나가야만 할 업이다.

 

남을 침하지도, 그렇다고 당하지도 말아야 한다. 이것이 고구려의 업인 터, 그러기에 살수에서 내가 지어야만 했던 업이야."

 

 

그에 따르면 우리는 여전히 그 업을 짊어지고 있으며, 지금은 동북공정이라는 역사전쟁 도발 공작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다. 그런데 이 책에 나오는 을지문덕이라는 영웅을 보며 그저 통쾌함만을 느끼고 말 것인가? 그 을지문덕이 고구려인이로 그런 고구려사는 당연히 한국사라는 그런 당위론에 만족해, 고구려사가 왜 한국사인지 도발하는 동북공정에는 아예 귀를 닫거나 감정에 치우친 반응만을 내놓을 것인가?

 

절대 그러면 안 된다. 정신 바짝 차리고 동북공정을 분쇄할 온갖 논리를 고안해 내도 시원찮을 정도로, 현실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우리 안에 숨어 있는 광기는 여전히 개인이 역사를 만들어가는 이성을 가진 주체라는 사실을 잊게 하고, 온갖 다양한 견해를 편견 없이 진지하게 검토할 여건을 허락하지 않는다. 고구려사는 한국사라는 대명제는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성역에 들어가 있으며, 그 성역에 도전하는 견해는 무시당하거나 심지어 몰매를 맞는다. 이 책이 그 성역을 더욱 견고히 하고 사람들이 다양한 견해를 검토할 능력을 잃어버리게 한다는 지적을 되새겨야 한다.

 

그리고 분명히 알아둬야 할 사실이 있다. 앞에서 말한 그런 추악한 광기가 통하는 범위는 대한민국이라는 작은 나라 안으로 한정되어 있다. 엄혹한 실리주의만이 진리인 국제 사회에서 그 따위 광기가 통할 확률은 0이며, 대한민국은 그 광기를 물리력으로 변환할 국력을 전혀 갖추고 있지 않다.

 

위에서 들은 몇 가지 예 가운데 한 가지를 다시 들자면, '줄기세포교' 광신도들이 그토록 광분하면서 사정없이 짓밟을 수 있었던 세력은 대한민국 사람들뿐이었다. 그 광기는 힘이 통하는 약한 자에게는 한없이 강하고 힘이 통하지 않는 강한 자에게는 한없이 약하다. 비겁하고 역겹기 짝이 없는 것이다.

 

만약 그 때 등장한 온갖 음모론 가운데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김선종 연구원과 미즈메디 이사장 노성일과 섀튼 박사가 미국 지원을 받아 한통속으로 음모를 꾸며 황우석 교수를 몰락시켰다는 미국 음모론이 사실이라면, 사람들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그때도 우리나라 반대파들을 철저하게 짓밟듯이, 미국에 그렇게 무작정 맞서자고 그랬을까? 실제로 그렇게 떠들기는 했지만, 그들이 정말 그렇게 했는가? 힘이 없는 정부를 욕하기만 했을 뿐이다. 아직도 인터넷에 남아 있는 황우석 교수 지지 모임이 현실을 체념했으면서도, 여전히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발악하는 추태밖에 남을 것이 없다. 미국이라는 남에게는 그 광기가 통할 까닭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동북공정 주체인 중국도 우리가 광기를 내뿜어봤자 어떻게 할 수 없는 거대하고 강한 상대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좀 더 냉정하게 현실에서 통하는 방법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광분한 집단에서 나오는 화는 집단 구성원들 머리를 뜨겁게 해서, 동북공정에 대응하는 일반론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에 관한 반성과 일반론을 뛰어넘는 다양한 대안을 분석하고 받아들일 수 없게 한다.

 

가장 뚜렷한 예를 들자면 고구려사는 당연히 한국사라는 일반론을 뛰어넘는 변경사라는 개념을 민족사학에 익숙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다. '당연히'라는 단어 하나 때문에 사람들이 문제를 좀 더 깊이 생각해 볼 여지조차 남기지 않고, 일반론이 지니고 있는 한계가 고스란히 드러나 일이 전혀 진척되지 않는다. 임지현 교수는 '적대적 공범자들'에서 이런 현실을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가 지니고 있는 문제라고 개탄했는데, 매우 일리가 있다.

 

굳이 동북공정 때문에 벌어지는 모습만 그런가? 어떤 큰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해야 한다고 시민운동과 개인 차원에서 정말 현실성이 있는 주장을 내놓고 그에 따라 차분하게 행동하는 모습은 대한민국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나라만큼 인터넷과 시민 단체가 발달한 나라가 도대체 왜 이럴까? 이는 우리 안에 숨어 있는 일그러진 광기 때문에 벌어지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 광기를 생각하면 대한민국에는 희망이 없다고 비관하는 사람들에게 나도 동참하고 싶어진다.

 

단순한 정서 환기 효과가 주는 짜릿한 집단 자위행위는 그만둬야 한다. 정서 환기 효과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덕분에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확 날려버리는 건 무시할 수 없는 긍정할 만한 효과이다. 나도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와 이 책 '살수'를 읽으면서 그것 하나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책을 읽으면서 사람들이 이성을 잃어버린다는 건 심각한 문제다. 그 때문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앞에서 지겹도록 이야기했다. 영웅이 활약하는 모습을 보면서 심리 자위행위를 하지 말고, 우리 모두가 역사를 만들어가는 주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 주체답게 행동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그래야 동북공정 같은 거대한 역사전쟁에서 승리할 진정한 힘이 나올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소설에서 다음 내용은 반드시 기억할 만하다고 생각해서 여기에 쓰며 이 글을 마무리 짓고자 한다. 민족사학이 지니고 있는 문제점을 비판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지니고 있는 가능성에도 나는 여전히 희망을 걸고 있으며 민족사학 비판이 그 가능성마저 꺾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첫째, 고조선이 중국과 대등한 위치에 있었고 심지어 중국을 압도하기도 했다는 주장이다. 이는 중국에서 수 천 년 동안 절대 영향력을 행사한 유학 경전에서 그 증거를 들고 있어 사람들 눈을 번쩍 뜨게 한다.

 

이 소설에 따르면 양견은 진숙보가 통치하던 진(晋)을 멸망시키고 중국 대륙을 통일한 뒤, 그 위세에 걸맞은 제례를 지내려고 했다. 그런데 제례에는 선례가 중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제례에 관한 옛 기록들을 검토하다가, 한 사관이 발견한 '상서'라는 문서에 있는 한 문구를 보고 양견은 화가 폭발하고 만다.

 

'요임금을 이은 순임금은 즉위에 즈음에 먼저 예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 동방의 군자국에 사신을 보내 인사를 올렸다.'

 

'상서'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있는데 그 동방에 있는 군자국이 고조선이며 그 후계자가 바로 고구려라는 것이다. 곧 수나라가 중국 대륙을 통일했다고 한들 고구려는 수나라에게 무릎을 꿇기는커녕 수나라와 대등하거나 심지어 먼저 예를 갖추어야 할 상국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안 그래도 중국 대륙을 통일한 뒤 천하를 얻었다고 기고만장해 있었으며 누구보다도 권위를 중요하게 여기는 양견에게, 이는 황제로서 보여야 할 위엄마저 내팽개칠 정도로 미치고 팔짝 뛸 일이었다.

 

양견은 광분하여 사관을 능지처참하려고 하지만, 사관은 아무리 많은 사람을 죽여도 역사 속 진실은 묻을 수 없다고 말한다. 양견이 사관이 그토록 당당한 까닭을 묻자, 사관은 놀랍게도 그 당시 중국에서 절대 권위를 과시하는 유학 경전인 '시경(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사사오경에서 오경이 '서경', '주역', '춘추', '예기', 그리고 바로 이 '시경'이다)에 그 진실을 드러내는 구절이 있다고 말해 양견을 경악하게 한다.

 

'시경' 한혁편(韓奕篇)에 나오는 한후(韓侯)라는 인물은 고조선을 이끄는 지도자인 단군을 뜻한다. 동한시대 왕부(王符)거 지은 '잠부론(潛夫論)'에서는 한후가 기자조선과 위만조선 동쪽에 있던 나라를 통치해다고 한다. 한후가 하 • 은 • 주를 이은 중국 정통 왕조인 서주 왕실을 방문하자 서주 왕이 그를 환대하고 자기 질녀를 주었으며 조선이 추와 맥 지방을 다스리는데 협의했다고 '시경' 한혁편에 나온다. 그렇다면 추와 맥 지역이 서주와 고조선을 나누는 국경이라는 이야기가 되는데, 추와 맥 지역은 당시 중원을 차지하고 있던 수나라에 속하는 지역이었다.

 

양견은 자존심이 구져질 대로 구겨져 두 눈을 부릅뜨고 외친다.

 

"고구려! 이 괘씸한 놈들. 너희가 감히 요순과 대(代)를 같이하는 놈들이라고? 내 이놈들을 가만두고는 절대 천자라 일컫지 않으리."

 

둘째, 순임금이 자신을 낮추어 서제라 하였고, 단군을 일컬어 동제라 하였다는 것이다. 전례에 따라 양광이 서제와 동제에게 둘 다 제사를 지냈다는 건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소설 속에서 양광이 유사룡이 조언한 바에 따라 평양에 있는 동제 능인 단군릉에 대선사를 보내 제사를 지내게 하는데, 지순한 몸인 대선사가 백 년에 한 번씩 나타난다는 신녀수를 만나는 바람에 하늘을 노하게 하여 양광은 하늘을 거스른 죄인으로서 동제를 절대 이기지 못한다는 천명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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