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 - 폭력과 추방의 시대, 촛불의 민주주의를 다시 묻는다 당비의생각 2
당대비평 기획위원회 엮음 / 산책자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2008년 8월을 기점으로 그토록 뜨겁게 여름밤을 달궜던 촛불은 저물어 갔다. 그렇게 쇠잔한 촛불을 바라보면서 안타까움을 금하지 못하고 있던 어느 날, 부산대학교 총학생회실에 근저당 형님이 찾아오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제 2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나는 전공 원서를 덮고 한달음에 총학생회실로 뛰어 내려갔다. 8월까지 이어졌던 촛불 예비군 활동이 거의 중단되었는지라 예전에 같이 활동하던 형님 또한 한동안 뵙지 못했기 때문이다.

 

총학생회실에 들어갔더니, 정림이 누나, 진성이 형, 혜원이 누나, 수성이 형과 같은 주요 간부들이 근저당 형님이 준비한 슬라이드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 때 근저당 형님은 일단 부산에 있는 대학교 총학생회를 결집시켜서 한계에 처한 촛불에 새로운 동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연대 활동을 전개하려는 소망을 품으신 터라, 매우 열성 있게 슬라이드에 담긴 촛불 투쟁 발전 이론을 설명하고 계셨다. 촛불 시위를 대하는 이명박 정부와 수구 세력을 바라보면서 매우 분개하며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하겠다고 결심한 분만이 보여주실 수 있는 열정 넘치는 모습에 저절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 때 근저당 형님이 설명하셨던 촛불 투쟁 발전 이론은 매우 논리정연했기에, 지금까지 100여 차례 벌어진 촛불 시위가 띠는 양상을 체계를 갖춰서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이 책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를 읽으면서 그 안에 담긴 온갖 분석이 지니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는데도 유용했다. 그렇기에 일단 여기에 그 이론을 간략하게 설명한 뒤에, 그에 비추어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생각한 바를 제시하고자 한다.

 

* 이 이론에서 제시하는 시제(과거, 현재, 미래)는 내가 이 강의를 들었던 2008년 10월을 현재로 잡은 것이다.

 

 

1. '촛불 - 그 첫 번째 이야기(과거)' = 'Candlelight - Season 1(The Past)'

 

2009년 4월 15일에 교육과학기술부에서 학교 자율화 정책을 발표한 뒤, 놀랍게도 10대 여고생들이 처음으로 거리로 뛰쳐나와 목소리를 높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들이 누구보다도 더 당당하게 자기 의견을 거리에서 밝히는 모습을 본 시민들은 부끄러움을 느꼈다. 얼마 지나지 않아 2009년 4월 18일에 발표된 한미 쇠고기 졸속 협상 결과는 시민들을 경악 속으로 몰아넣었고, 이 정부가 지닌 문제점이 얼마나 심각한지 깨달은 시민들은 더는 10대들에게 부끄럽지 않고자 이명박 정부를 규탄하기 시작했다.

 

시민들이 벌이는 집회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광우병 괴담론'만을 설파하던 이명박 정부를 보면서, 시민들은 단순히 한미 쇠고기 협상 그 자체만 문제로 삼지 않고, 이명박 정부가 지니고 있는 근본 문제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촛불 집회는 갈수록 규모가 커졌고, 그 안에서 다뤄지는 주제 또한 매우 다양해졌다. 결국 청와대를 태울 기세로 타오르는 촛불 수 십 만 개 앞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형식으로라도 고개를 숙여야 했다.

 

하지만 다양한 주제를 포괄해서 이명박 정부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연대 조직을 구성하지 못하는 바람에, 온갖 논란만 촛불 안에서 거세져 촛불이 타오르는 동력을 떨어뜨렸다. 이뤄야 할 것은 많았지만 촛불만 들고 청와대로 계속 돌격한다고 해서, 아예 귀가 없는 듯한 이명박 정부가 달라질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는 회의론이 우세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엠네스티 인권침해 감시단이 한국을 떠난 뒤 다시 반정부 세력을 격렬하게 탄압하기 시작하면서, 촛불 집회만으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는 의견이 더욱 강하게 제기되었다. 그렇게 촛불은 차츰 사그라들었다.

 

 

2. '촛불 - 그 두 번째 이야기(현재)' = 'Candlelight - Season 2(The Present)'

 

촛불 집회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들은, 촛불 집회가 사실상 실패로 돌아가자 그 까닭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도 전망했다. 100만 명이나 모였는데도 그냥 고개 한 번 숙이고 권좌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는 이명박 대통령을 보면서, 사람들은 이명박 대통령을 끌어내리기보다는 이명박 대통령을 비호하는 한나라당과 친일 수구 세력이 권력을 잡지 못하도록 하는 좀 더 근본에 가까운 처방을 내려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게다가 이명박 정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촛불 집회에 관해 내놓는 의견을 분석한 뒤, 무작정 촛불만 들고 정권 퇴진을 외치지 말고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 지지율을 떨어뜨리고자 다양한 사업을 실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그러면서 촛불 집회가 한창일 때 각자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던 이들이 지역별, 단체별, 분야별로 나누어져 온갖 강연회, 폼보드 전시회, 영상 상영, 바른언론운동, 자원 봉사, 교양/학습모임 운영, 전단지 배포, 1인 시위 따위 온갖 사업을 진행했다. 대한민국이 지니고 있는 온갖 모순에 관해 사람들이 깨달아야지, 자기 또한 수구 세력들이 벗겨먹고 부려먹을 현대판 노예 수준에 지나지 않으면서 자기를 봉으로 아는 수구 세력을 죽어라 지지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면서도, 틈틈이 열리는 온갖 집회에는 웬만하면 빠지지 않고 참석해 힘을 보탰다. 아무리 집회로는 한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명박 정부에게 시민들이 여전히 저항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으로서 집회는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한 단체에서 주최하는 집회에 다양한 단체들이 모여서 한 목소리로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몇 번이고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연대의식을 강조하는 좋은 효과를 냈다.

 

 

3. '촛불 - 그 세 번째 이야기(미래)' = 'Candlelight - Season 3(The Future)'

 

수많은 사람들이 각 지역과 분야에서 다양한 사업과 투쟁을 벌인 끝에, 이명박 정부가 지니고 있는 근본 문제와 그 심각성을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이 깨닫게 된다. 그 뒤 초기 촛불 집회 때 드러난 문제점을 보완하는 작업이 대부분 끝나고, 사업과 집회가 조화를 이룬 새로운 촛불 동력으로서 아고라에서 그토록 꿈꾸던 거대한 집단 지성이 나타난다. 그 집단 지성은 대한민국에서 수구 세력이 더는 발을 붙이지 못하게 이명박 정권뿐만 아니라 그 존립 기반 자체까지 초토화시킨다.

 

 

지금까지 제시한 이 세 단계를 하나로 묶어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이명박 정부가 저지르는 실정 규탄하며 촛불 집회 시작 -> 이명박 정부와 수구 세력이 온갖 희한한 논리 들이대며 촛불 집회 탄압 -> 촛불 규모 확대 -> 촛불 집회 탄압이 더욱 거세짐 -> 촛불 규모 축소 -> 촛불 집회 한계와 좀 더 근본에 가까운 운동 방향 인식 -> 이명박 정부와 수구 세력 실체를 폭로하는 갖가지 사업 전개 -> 민주주의 의식 고양과 이명박 정부와 수구 세력 퇴진 분위기 조성 -> 예전과 다른 훨씬 더 이론으로든 결속력으로든 강하게 무장된 촛불 민주주의 운동 시작 -> 이명박 정부 퇴진 -> 한나라당과 뉴라이트로 대표되는 수구 세력 소멸 -> 정권 세대 교체와 진정한 민주주의 정부 수립

 

 

그러나 역시 현실은 이론과는 다르게 전개되었다. 위에서 설명한 틀을 갖다대자면 이미 '촛불 - 그 두 번째 이야기(현재)' = 'Candlelight - Season 2(The Past)'에서부터 문제가 생겼다고 봐야 한다.

 

예전에는 촛불 집회에 모인 그 자체만으로 아무리 지금까지 이념이 달랐다고 하더라도 어떻게든지 유기체처럼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국민들에게 민주주의 의식을 일깨우고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어떤 실체를 띠는지 깨닫게 하려는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각 단체마다 자꾸만 문제가 생겼다. 사람들이 그토록 강조하던 새로운 민주주의 생명체로서 촛불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보여주던 그 유기성과 역동성, 그리고 그 덕분에 빛났던 개념들이 알게 모르게 사라지고 힘을 잃어버린 것이다.

 

사실 여기서부터 글을 쓰기가 극도로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초기 촛불 집회에 수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논리로 그 뜻을 부여했다. '집단 또는 대중 지성', '웹 2.0에 기반한 민주주의', '지금까지 찾아보지 못한 새로운 지성체'……그렇게 찬양받던 촛불 집회가 사실상 막을 내린 뒤 이제는 냉철하게 비판받아야 할 처지에 이르면서, 예전에 우리가 자랑스럽게 여기던 그런 개념들 또한 그저 한 때만 유효했던 것이었다고만 단정하고 넘어갈 것이 아니라, 새롭게 비판받아야 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대개 이런 논리를 제시하면 분명히 거부 반응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있다. 예전에 잘못했던 것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설파하면, 옛날과 지금은 다르다든가 어떻다든가 온갖 희한한 논리를 들이대면서 그들이 믿었던 빛바랜 가치들을 떼어놓기 힘들어한다. 물론 나 또한 그런 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그런 면이 단순히 개인에게만 해를 끼치는 것과 다른 사람, 조직, 단체, 심지어 국가에도 해를 끼치는 건 분명히 차원이 다른 일이다. 그렇기에 내가 관련되어 있든 그렇지 않든 따질 것은 철저하게 따지고 넘어가야 한다. 특히 나와 연관되어 있는 것은 더욱 냉철하게 따져야 한다.

 

나는 지난 한 해 동안 민주주의를 살리고자 여러 단체에서 활동했다. 처음에는 혼자서 촛불 집회에 참가하다가 7월에 촛불 예비군에 들어갔고, 촛불 예비군이 활약할 공간을 잃어버린 뒤에는 부경 아고라에 몸을 담았다. 그 가운데 내가 가장 많은 신경을 쏟았던 곳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부경 아고라이다. 그 안에서 나는 전 촛불 예비군이었다는 까닭으로 처음부터 호응을 얻었고, 본격으로 부경 아고라 사업에 참여하면서부터는 그 안에서 활동하던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그 관계는 오래 가지 못했다.

 

인정하기 싫은 현실이지만, 분명히 촛불은 꺼졌다. 2008년과는 너무나도 다르게 지금 상황에서는 집회다운 집회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물론 집회가 아닌 사업으로 이명박 정부에 대항하는 추세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 사업 규모가 너무나도 초라해 보인다. 이명박 정부와 수구 세력을 몰아내고자 어떻게든지 힘을 합치고 연대하자는 목소리는 공허하기 짝이 없다. 여기저기에서 찢어진 단체들은 그저 민주주의 사업과는 전혀 상관없는 내부 문제 때문에 싸움만 일삼는다.

 

나 또한 그 싸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격렬한 논쟁을 벌였고, 그 결과는 항상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러다가 결국 부경 아고라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올해 7월에 우연히 다시 들어간 그 곳에서 나는 예전에 내가 주장했던 바를 다시 역설했지만, 예전과 마찬가지로 공허하기 짝이 없는 논쟁만 일삼아야 했다. 일은 제대로 해 보지도 못한 채 제풀에 지쳐서 부경 아고라에서 다시는 활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 선언하고 말았다.

 

부산에서 시민들이 주체가 되어 민주주의를 살리는 과업을 하는 곳이 부경 아고라와 부산희망촛불 말고는 찾아보기 힘든 데다가, 둘 다 나에게는 껄끄러운 곳이 되어버렸다. 곧 다시는 부산에서 촛불을 드는 사람들과는 사회 운동을 함께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 누구도 나를 비난하지 않는다고 사람들은 이야기했지만, 나는 그 말을 절대 믿지 않았다. 그토록 목소리를 높여도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는 교묘한 견제와 껄끄러움을 누구보다도 더 절실하게 부경 아고라에서 체험했다. 그 안에서 나는 더욱 옹졸해지고 초라해졌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촛불을 끄고 말았다. 그 뒤 이 책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를 읽으면서 지금까지 나와 이 사회에 엄청나게 큰 영향을 끼쳤던 촛불 집회에 관한 온갖 단상을 접했다. 촛불 집회가 다룬 주제는 매우 많았기에, 그 주제마다 한 사람씩 나서서 많은 비판을 가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조금씩 지쳤다.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는 힘이 다 빠져버려서 멍하니 침대에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토록 활기차고 모든 더러운 것을 쓸어버릴 것 같았던 촛불 집회 안에 그토록 많은 한계가 도사리고 있었다고 하니, 솔직히 그 안에서 그렇게 열심히 뛰어다녔던 사람으로서 믿을 수 없었다. 결국 대한민국은 그들 위에 있는 이명박 정부와 그 권력층이 계획하는 술책에 굴복하고 이리저리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걸까.

 

흔히 글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한 가지가 일관성이라고 한다. 하지만 자크 데리다는 모순과 불완전함이 글 자체에 반드시 나타나는 고유한 특성이라고 했다. 과연 자크 데리다가 한 말이 이 사회에도 적용되는 것일까. 우리가 상식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따지고 보니 결국 상식과는 거리가 먼 우리들만이 상식이라고 생각했을 뿐인 것들이었던가. 이 책에서 비판하는 촛불 집회가 지닌 문제점을 하나씩 이해하다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대한민국에서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이 그랬다면, 부경 아고라에서 나는 어땠는가. 내가 상식 문제까지 거론하고 싶었을 정도로 이상한 쪽으로 이야기가 흘렀던 논쟁 사례를 여기에 일일이 들면서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고 이야기하는 내가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 잘못을 알고 있기에 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다고 단정하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지르지는 않았을까.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김대중 전 대통령도 서거하면서, 고인들이 한평생 구현하고자 힘썼던 민주주의를 살리고자 다시 뭉쳐야 한다는 논리가 힘을 얻고 있다. 민주당에서는 이번에 서거한 두 전 대통령 영정을 같이 걸어놓으면서, 그동안 내부에서 벌어졌던 분란을 참회하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 지금 상황에서는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대항할 수 있는 단 하나뿐인 정치 세력이 민주당인지라 응원해 줄 수밖에 없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갈등을 빚을 때 지금 민주당에서 지도부로 있는 의원들이 보여준 작태를 생각하면 결코 마음이 편하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들만이 권력 암투 현장에서 수구 세력을 막을 수 있는 단 하나뿐인 세력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렇게 따지면 부경 아고라 또한 마찬가지 아닐까. 나 또한 내가 가지고 있는, 결국 따지고 보면 옹졸하기 짝이 없기만 한 이 적개심을 버리고 부경 아고라에서 다시 활동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근근히 사업을 이어가고 있는 단체들 또한 예전에 어떤 일이 있었든 간에 연대해서 이명박 정부와 수구 세력과 맞서 싸워야 하지 않을까. 대운하 착공과 양산 재보선 선거가 40여 일밖에 남지 않은 지금 상황에서 연대가 지니는 중요성은 더욱 크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고민을 한다 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 상황에서는 결국 아무 것도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결국 나는 부경 아고라를 비판할 자격은 없었던 것 같다. 그랬기에 부경 아고라에서 나갈 것이면 부경 아고라에 관해서 왈가왈부하지 말라는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렸던 것이리라.

 

그래서 나는 결국 입을 닫았다. 그리고 정말로 촛불을 놓았다. 4기 카페지기를 뽑으려고 하는 부경 아고라는 예전에도 그랬듯이 '어떻게든지' 굴러갈 것이다. 그렇게 '어떻게든지' 유지될 부경 아고라에서 내가 지금까지 저지른 과오는 여전히 남아 있으며, 그런 과오를 인정하지 못하고 여전히 옹졸하게 버티고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더는 없다. 그 자괴감은 아마도 영원히 이어질 것이다. 아. 이런 내가 미친 듯이 싫다. 지금 이런 내가 밉다.

 

 

"그대는 왜 촛불을 끄셨나요."

 
"내가 촛불을 들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셨나요."


"내 생각을 관철시키려는 불 같은 성격과 독단만 있을 뿐, 어떤 일을 차근차근 해 나가는 의지 따위는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어느 조직에 들어가든지 해만 끼칠 뿐입니다."

 
"정말 촛불을 놓으실 건가요."


"언젠가는 다시 들 겁니다.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촛불을 떠나서는 절대 살 수 없습니다. 어디에선가 분명히 일은 하고 있겠습니다. 꺼진 촛불은 어떻게든지 다시 살려야 합니다. 그럼 나중에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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