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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황석영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0년 8월
평점 :
품절
2009년 5월에 중앙아시아를 순방하고 있던 이명박 대통령을 따라간 황석영이 이명박 대통령과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는 사실 잘 모른다. 그렇기에 진보진영을 이끄는 대표 문인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이명박 정부가 그토록 선전하는 중도실용정부를 긍정하면서 중앙아시아, 몽골, 만주와 관련된 원대한 구상을 늘어놓다가 변절 논란에 휩싸이는 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보고자 수많은 사람들이 쏟아내는 비판을 접했지만, 알면 알수록 더욱 헷갈렸다. 이명박 정부가 구상하는 동북아 정책과 자기가 세운 구상이 일치하다면서 거침없이 이명박 정부 예찬론을 펴는 황석영을 보면서 도대체 중앙아시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만 더욱 궁금해졌다. 이문열이 촛불 장난 너무 심하게 하면 손을 데인다는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대한민국 문학계에서 존경받는 문인 대열에서 아주 간단하게 탈락하더니, 이번에는 남북 화해와 평화 통일에 문학이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지금까지 활발하게 논의해 온 작가 황석영이 지금까지 잘한 것이라고는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이명박 정부를 옹호하면서 끝없는 나락으로 굴러떨어졌다.
더욱 놀라운 것은 거기에 덧붙여서 '작가는 좌우를 넘나들 권리가 있다', '기억력이 나쁠수록 좋은 작가'와 같은 발언으로 지극한 후배 사랑을 보여준 김지하 시인까지 사람들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서거하면서 정국이 휘몰아치는 소용돌이에 휩싸여 온통 혼란스러운 마당에, 이제는 민주주의 정신을 문학으로서 뒷받침하는 문인들마저 이 모양 이 꼴이라니! 아무리 많은 글을 읽어보더라도 이명박 정부 편을 든 황석영을 이해할 만한 단초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도대체 이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미 황석영은 1993년에 발표한 '사람이 살고 있었네'에서 지난 세월 동안 반공 논리에 물들어 모든 이념 지평 자체가 일그러져 버린 대한민국에서 인식하던 '괴물'이 사는 북한이 아닌, '사람'이 사는 북한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한 적이 있다. 이 책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에서는 그보다 더 나가서 북한이 어떻게 자력갱생 체제를 꾸려나가고 있는지뿐만 아니라, 남북 통일에 문학이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를 다루는 통일문학론과 그와 관련된 여러 깊은 논의를 보여준다. 북한 문학과 사상을 이해하려면 주체 사상과 유물론을 반드시 이해해야 하기에, 그와 관련된 논의 또한 빠뜨리지 않는다.
플라톤이 이데아를 강조하면서 문학 같은 예술은 저급한 것이라고 치부하며 시인들을 추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사실 그 진정한 까닭은 그 또한 문학이 지닌 크나큰 힘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걸 돌이켜 볼 때,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지배한 독재 권력이 황석영을 좋지 않게 바라본 까닭 또한 그와 유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러 사람들이 지적했듯이 60년이 넘는 오랜 기간 동안 분단 체제를 겪으면서, 통일에 관한 인식 지평 또한 상당히 격렬하게 요동치고 있다. 북한이야 철저한 세뇌 교육으로써 인민들을 친미 제국주의를 숭상하는 남한 괴뢰 정권을 몰아내는 선봉에 설 혁명전사로서 필요한 정신 무장을 시킬 것이다. 하지만 남한은 북한과 견주었을 때 민주주의가 상당히 진척된 만큼, 이미 그런 세뇌 교육 따위는 절대 통하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가 반공 독재 시대로 돌아가고자 온갖 만행을 저지르고 있지만, 만만치 않은 저항에 부딪치고 있는 사실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지닌 그런 힘을 분명히 믿기에 황석영 또한 독재 정권에 맞서 한평생을 살아온 것이며, '펜은 칼보다 더 무섭다'라는 속담을 몸소 실천해 온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도대체 중앙아시아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대한민국을 다시 철권으로 통치하려고 하는 이명박 대통령이 늘어놓는 말뿐인 구상에 황석영이 그토록 깊이 공감했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명박은 황석영에게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에 나오는 것처럼 북한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게 '비핵개방 3000' 정책을 펼치면 된다고 하고, 황석영은 이명박에게 '신화는 없다' 마지막 장에 나오는 동북아 관련 정책 구상을 실현하는데 협력하겠다고 한 걸까? 두 사람이 쓴 두 책에 나오는 내용을 이번 일과 연관 지어 생각할 때 그런 결론을 얻을 수 있기는 하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결론을 내리면서도 황석영을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 황석영이 지금까지 여러 저서에서 밝힌 북한론과는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비핵개방 3000' 정책 자체가 모순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과연 몰랐을까? 황석영이 그토록 비판한 독재 정권과 이명박 정부는 정말 다르다고 느꼈을까? 순진한 민주주의 운동가들이 생각하듯이 1987년 6월 항쟁이 이끌어 낸 6.29 선언이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에 중요한 획을 그었고 지금까지도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기에, 이제는 다시 민주주의보다 더 큰 문제인 경제 성장에 치중해야 한다는 논리에 굴복하고 만 걸까?
정신 없이 쏟아지는 비판을 바라보면서 이건 아니다 싶었는지 아니면 뒤늦게 정말 반성한 건지는 황석영 본인 말고는 아무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어쨌든 그는 이명박 정부가 북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핑계로 PSI 전면 참여를 선언하자, '중도실용'에 걸었던 실낱 같은 희망마저 사라졌다고 이명박 정부를 다시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이미 때는 늦은 것 같다. 윤성이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진보와 보수가 같이 일할 수 없는 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이것저것 따져볼 때 이명박 정부가 보수 세력이라는데 절대 동의할 수 없는 터라 그다지 와닿지 않는다. 대한민국에서 진정한 보수 또는 우파는 찾아볼 수 없었다.
뜬금없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쓸 구상을 처음으로 한 건 2006년 8월이다. 그 때 나는 2006년 해병대 정훈퀴즈대회에서 1등을 차지해 해병대 대표로 해군본부 정훈퀴즈대회에 참가할 정도로 정훈 교육을 착실하게 받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자유민주주의라는 기준을 잡고 남한과 북한을 견준 뒤, 이 책에서 북한을 서술하는 논조를 비판하려고 했다. 그런데 막상 구상만 해 놓고 까맣게 잊고 있다가, 무려 3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 황석영이 언론에 떠들썩하게 보도되면서 이 책이 다시 떠올렸다. 그 바람에 처음에 한 구상과는 전혀 다른 내용을 이 글에 집어넣게 되었다. '여러모로' 씁쓸하기 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