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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재구성 - 글로벌 경제위기 제2막의 도래
김광수경제연구소 지음 / 더팩트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온 세상에서 못살겠다고 아우성이 터져나오고 있다. 3차 세계 대전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경제위기 안에서 마치 전쟁이 가져다 주는 공포와 불안만큼이나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자고 일어나면 자기가 사놓은 부동산 가치가 올라가 있고, 거리에는 경제 호황을 즐기는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언론에서는 연신 경기가 회복되고 경제성장이 잘 이루어지고 있다는 낙관론만 줄기차게 보도되던 그 시절은 결국 한 여름밤에 꾼 부질없는 꿈과도 같았던 것일까. 좋았던 시절이 분명히 있었기에 지금과 같은 엄청난 경제위기가 사람들에게는 더욱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 충격은 사람들이 그동안 지니고 있었던 기존 정치권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에 불을 지펴 지금까지 정권을 잡아온 기존 정치세력은 갈아치워야 한다는 인식을 확산시켰고, 그 결과로 각국 정치계에서 기존 정치인들이 선거에서 패배하고 시민들이 정치에 직접 참여하고자 더욱 많이 힘쓰고 있다. 게다가 국제금융위기를 불러일으킨 주범으로 지목된 월가 금융기관들에 미국 국민들이 시위로써 직접 항의하고 그 움직임이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앞으로 자본과 정치가 결탁한 20세기형 민주주의가 드러낸 한계에 정면으로 저항하는 움직임이 갈수록 거세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타나고 있다.
물론 전 세계에서 시민들이 직접 문제를 해결하고자 발벗고 나서고 있다는 점은 분명히 환영할 만한 일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들이 정치에 직접 참여하면서 대의 민주주의가 지닌 한계를 극복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사람들이 분노를 폭발시키고 행동에 나서는 동기에서 아직까지는 중요한 것이 빠졌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마이클 센델은 유명한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미국인들이 월가에서 어마어마한 연봉을 챙기고 있는 금융인들에게 분노하는 까닭은, 미국인이 공산주의 사상에 경도되었기 때문은 당연히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99%'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가져가는 '1%'이 지닌 '탐욕' 그 자체를 문제로 삼고 있기 때문도 아니라고 지적했다. 만약 탐욕 그 자체를 문제로 삼고 있었다면 이미 '월가를 점령하라'와 같은 시위가 이미 여러 차례 나타나서 많은 사람들에게서 호응을 얻었어야 했는데, 실제로는 지금까지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이클 센델은 미국인들은 '탐욕'보다는 '실패'에 더 강하게 분노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지금뿐만 아니라 오래 전부터 월가에서 그들 표현을 빌리자면 '금융 혁신'을 선도한 이들은 보통 사람들은 상상할 수조차 없는 연봉을 받으며 살았지만, 미국인들은 그들에게 아무런 문제 제기도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런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금융업이 발전하면 사회 전체에 더욱 큰 부가 찾아올 것이라는 믿음이 미국 사회 전체에 만연해 있었고, 보통 사람들도 금융 파생상품 발달이 실물 경제에 불러일으킨 거품에 취해 있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집을 산 가난한 사람들은 자기들도 집이 생겼다는 '성공' 신화에 젖어 행복했고, 사 놓은 부동산 가격이 치솟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열광하면서 거리에서 소비를 즐겼다. '자산 효과'는 거품에서 비롯된 것인만큼 언젠가는 갚아야 하는 빚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잊고, 경기가 회복되고 생활이 윤택해지는 '성공' 신화에 젖었던 것이다.
하지만 신화가 신기루로 판명되는 데는, 다른 말로 하자면 '성공'이 '실패'로 뒤바뀌는 데는 그다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한 번 꺼지기 시작한 거품은 사람들이 그동안 누렸던 모든 번영과 부를 순식간에 날려버렸고, 사람들은 그 허탈함과 분노를 이기지 못했고 거리로 나와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뭔가 바뀌어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 말고는 사실 뚜렷한 목표의식이 없어 보인다. 실제로 탐욕스러운 금융자본에 반대한다는 명목으로 시위가 계속 벌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분명한 생각이 담긴 구호가 아닌 그저 분노를 쏟아내는 수준에 그치다 보니까 온갖 단체들이 언론을 타고자 시위대에 합류해 정체성이 모호해지고 있고, 그에 따라 시위대 안에서도 자기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고민하며 회의감에 빠져드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마이클 센델이 지적한 대로라면, 만약 이 위기가 겉으로 보기에 어느 정도 극복되기만 한다면 그들은 이렇게 우왕좌왕하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갈 준비가 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기 힘들 가능성이 높다. 이번 위기는 절대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곧 지금까지 각국 정부에서 재정적자를 무릅쓰고 경기부양을 추진하는 방식으로는 절대 극복할 수 없다. 시장경제 체제 안에서 자연스럽게 거품이 빠지도록 유도하고 그동안 허리띠를 최대한 졸라매서 빚을 갚아나가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각국 정부에서는 만약 긴축 재정 정책을 펴서 허리띠를 졸라매면 그만큼 정치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실제로 지금까지 그랬듯이 어떻게든지 긴축 정책은 자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 악성 인플레가 만연하면서 사람들은 더욱 살기 힘들어질 것이고, 사람들은 계속 되는 어려움 속에서 분노를 쏟아낼 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마이클 센델이 지적한 것은 미국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 같지는 않다. 정도 차이만 있을 뿐 전 세계가 금융 & 부동산 거품에 휩싸여 있었으며, 그 속에서 사람들은 거품이 불러일으키는 성공이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점을 직시하지 못하는 착시 현상에 빠져 있었다. 경제를 공부한다면서 경제 기저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려고 하지 않고, 그저 돈을 벌 수 있는 정보만을 찾아다니는 것이 경제 공부라는 터무니없는 생각에 빠져서, 재테크 서적 광풍을 불러일으켰으며 기존 정치권에서 저지르는 온갖 정책 실패에 본의든 그렇지 않든 제대로 책임을 묻지 않았다. 그 결과는 사람들을 참혹할 정도로 조여드는 경제위기로 나타나고 있다.
분명히 사람들은 이런 위기를 불러일으킨 권력과 자본을 가진 자들에게 분노하고 있다. 하지만 그 분노가 단순한 분노만으로 끝난다면 항상 지금까지 그랬듯이 역시 어쩔 수 없다는 냉소와 조롱거리만이 될 뿐이다. 사람들이 권력과 자본이 결탁해서 잘못된 정책을 양산한 20세기형 민주주의가 지닌 한계를 극복해야, 21세기 초부터 세계를 대혼란에 빠뜨리고 있는 이번 위기를 극복하고 지금까지 누적된 많은 모순을 해소할 단초를 마련할 수 있다. 그러려면 이번 금융위기가 도대체 왜 발생했는지를 명확하게 인식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 문제를 올바르게 이해해야 한다는 것은 기초 상식이다.
이번에 김광수경제연구소에서 새롭게 발간한 '위기의 재구성'이 지금과 같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현실을 명확하게 인식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김광수경제연구소는 이미 국제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이 오기 전부터 경제보고서에서 금융위기 조짐을 계속 경고했는데, 2008년부터 그 경고가 현실이 되면서 탁월한 경제 분석 능력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그 탁월함이 이번에 발간한 '위기의 재구성'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전 세계를 충격과 공포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경제위기 본질은 결국 전 세계에서 넘쳐난 탐욕과 무지 때문이라는 사실을 다양한 사례를 들어서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그 탐욕과 무지가 극도로 활개를 쳤던 곳이 각국 부동산 시장이었으며, 실제로 지금 끊임없이 언론 보도를 타고 있는 유럽재정위기도 결국 유럽 부동산 시장 거품이 꺼지면서 거품을 기반으로 삼은 경제가 근본에서부터 무너지고, 기존 정치권에서 올바른 정책 능력을 함양하지 못해 끊임없는 정책 실패를 일삼았기 때문이라는 점을 유럽 각국 경제를 소개하면서 강조하고 있다. 이 말고도 금융위기가 벌어지는 메커니즘, 유럽재정위기에 불을 지핀 미국발 국제금융위기가 지닌 본질과 같이 세계경제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핵심 지식도 풍성하게 곁들였다.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다는 점을 여러 가지 사례를 들어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적극으로 추천하면서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점은, 경제 서적을 읽을 때는 제발 그 책에서 돈을 버는데 필요한 정보를 찾기보다 경제 전반 흐름과 그 본질을 이해하는데 훨씬 더 많은 공을 들이라는 것이다. 탐욕에 사로잡혀 돈을 좇으면 그때부터 이성이 흐릿해지기 시작하고 가치 판단에 혼란이 오면서 진실을 바라볼 수 없게 된다. 사실 재테크 열풍이 불 때 사람들은 경제 공부를 한다고 했지만, 실제로 그들은 경제 공부를 한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도움이 되는 경제 정보를 좇아다녔을 뿐이다. 그렇기에 스스로 경제 흐름을 읽고 판단하는 능력을 기르지 못했으며, 기존 정치권에서 일삼는 거짓말에도 쉽게 속아넘어가 실패한 경제 정책이 낳은 희생자로 전락한 것이다.
2006년에 다음에 개설한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도 2008년부터 회원 수가 급증하기 시작했는데, 앞에서 지적했듯이 사람들이 경제 지식을 습득하려고 한다면서 실제로는 포럼이나 공부방에 찾아와서 재테크에 필요한 정보를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았다.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 공부방은 재테크 상담을 하는 곳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경제와 사회 전반 문제를 분석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곳이라고 설명하면, 실망한 채 돌아간 뒤 다시는 나타나지 않는 사람들도 지금까지 많이 봤다. 이것이 엄연한 현실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 현실을 바꿔나가고자 지금까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에서는 꾸준히 힘써 왔으며, 이에 공감하고 동참하는 사람들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정말로 돈을 벌고 싶다면 탐욕에 찌들어 돈 되는 정보만 죽어라 좇아다니는 천민 자본주의에 찌든 작태를 그만두고, 올바른 경제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할 수 있도록 기존 정치권을 압박하거나 아니면 아예 새로운 인물들이 제대로 정치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제대로 된 경제 정책이 집행되어 국가 경제가 탄탄해지면 그만큼 국민들은 윤택한 삶을 누릴 수 있으며, 경제가 어려워도 국민 개개인이 버틸 수 있는 힘이 강해진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재테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만약 앞으로도 탐욕과 무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무능력한 기존 정치권이 우리 삶을 좌지우지하도록 방치한다면, '위기의 재구성'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