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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체험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22
오에 겐자부로 지음, 서은혜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년 7월
평점 :
오에 겐자부로의 소설은 처음이다. 내게는 언제나 그렇듯 책도 사람도 첫인상이라는 것은 결코 무시할 수가 없다. 사람의 경우라면 오히려 첫인상이 별로라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일이 잦다. 그만큼 아직 사람을 겪는 데에 익숙하지 못하고, 실제로 사람이란 시간의 외피를 더해갈 수록 복잡다단한 면모를 드러내 보이기 때문이다.
반면 책이란 녀석은 사람보다 첫인상에 있어서 냉엄한 평가를 받게 마련이다. 어떤 면에선 어쩔 수 없이라도 동행해야 하는 것이 개개 인간의 사회적 관계라면 낱 권의 책이란 꼭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읽지 않아도 전혀 상관이 없고, 책으로서는(실제로는 작가)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모욕과 치욕을 받는다고 해도 역시나 이쪽은 너무나 단조로운 일상이 이어지게 마련이다. 읽어야 할 책이라면 개인의 생으로는 감당 할 수 없이 많다.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의 소설은 따분하다는 설 같은 것이 은연 중에 떠돈다. 물론 그것은 노벨 문학상이라는 권위를 입은 몇몇 작가들의 작품들을 광고에 넘어가 읽게 된 독자들의 푸념으로부터 나온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의 작품들이 꼭 따분하지만은 않다. 개인적으로는 카뮈, 스타인백,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같은 작가들의 작품은 재미면에서도 상당히 만족하며 읽었다. 그리고 단 한 작품을 읽었을 뿐이지만 나는 이 목록에 오에 겐자부로를 포함시켰다.
젊은 예비 아빠인 '버드'는 일상의 무기력으로부터 포박 당한 소시민이다. 그의 유일한 생의 에너지는 아프리카를 향한 열망에서만 발생한다. 그런 그는 '뇌헤르니아'라는 치명적 결함을 가진 자신의 아이의 출생으로 인해 악몽 같은 괴로움에 시달린다. 수술을 해도 정상적인 생활의 가능 여부가 불투명한 아이를 두고 아프리카행 적금을 위해 모아둔 돈을 사용해야 하는가, 그보다 자신이 저 '뇌헤르니아'에게 자신의 삶을 잠식 당하는 건 아닌가 하는 절망과, 보통의 도덕적인 양심의 목소리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위선적이면서 위악적인 소시민의 심리 상태를 철저히 추궁한다. 대단히 차갑고 관념적인 문체와 히스테릭한 분위기는 한층 강한 설득력과 흡인력을 주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기이함이 카프카를 연상시키는 면이 있었다.
독자에 따라서는 다소 낙관적이고 급작스러운 도덕적 선회로 보이는 소설의 결말이 맥을 빠지게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어떻게든 절망의 진창에서 버드가 빠져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지만 막상 결말은 탐탁하지 못했다. 실제로 뇌에 장애를 갖고 있는 아들을 둔 작가의 실상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이미 문학 외적인 휴머니즘이라고 밖에 말 할 수 없다. 그러나 내가 그 이전까지의 버드라는 인물에 흠뻑 빠져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아마도 오에 겐자부로의 이 소설 속 결말이 나에게는 조금 앞당겨진 채 끝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