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프리모 레비라는 작가의 책을 읽기 전에 그에 대한 소개를 방송에서 들은 적이 있다. 지금 기억나는 것은 작가가 아우슈비츠의 생존자였으며 홀로코스트의 생존자이자 증언자로서 대단히 훌륭한 글을 썼다는 것, 그리고 결국은 그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다.지금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그 결말이 당시의 내게는 충격이었다. 청취를 중단하고 어안이 벙벙해져 있던 자신의 모습이 떠오른다. 세상에... 나는 추상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채로 라거(당시에는 이 용어를 몰랐다) 자체가 지옥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그러니까 인간이 만들어낸 지상의 지옥으로써 그만한 곳은 없다고 생각했다(그리고 하고 있다). 그런데 지옥에서도 살아남았던 이가 연옥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다니. 세상에...도쿄케이자이 대학의 서경식 교수는 부록으로 실린 해설에서, 자신은 이 책을 읽고난 뒤 작가가 자살할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썼다(이는 예언적 성격의 발언은 아니다. 당시 프리모 레비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살아주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고 했다. 죽을 수밖에 없다. 그것을 이해했다고 썼다. 프리모 레비는 라거 내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고 했다. 자살은 인간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동물적 삶을 강요받고 동물이나 다를 바 없는 대부분의 수감자들은 자살을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이 책의 8장인 <독일인들의 편지>를 읽다가 나 자신이 프리모 레비의 미약한 희망과 심대한 고통과 명철한 이성으로 엮인 이 분석적 증언을 역사적 당사자들의 입장과 얼마나 큰 시차를 두고 받아들이고 있는지 깨달았다. 그것은 비단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작가가 내내 그것을 경고하고 있다는 점에서, 세대가 지날 수록 역사의 무지와 망각으로 인한 간극의 확장에서 어떤 절망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 내 마음에 닿은 그 뒤부터 마음이 편치 않다. 나는 한 사람의 자살에 관해 말할 때면 언제나 자신이 없지만, 적어도 일본의 전체주의화가 도드라지게 확산되고 있는 현상에 일갈을 아끼지 않는 서경식 교수가 십분 이해했다는 작가의 자살에, 앞서 말한 종류의 절망이 손길을 내밀었다고 짐작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