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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아도 어려울 것 같은 책들을 몇 권 읽었는데, 의외로 재미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게임>과 <운명>은 사뭇 흥미진진한 구석이 있었고, <정의란 무엇인가>와 <가난하지만 행복하게>는 약간의 부담이 있었으되 활발히 생각하도록 만드는 데가 있었으며, <제5 도살장>은 넘치는 은유를 해석해내기가 난망한 가운데에서도 책 전반에 넘쳐 흐르는 냉소적 유머에 혹하는 매력이 있었으며, <동물농장>은 시종일관 유쾌했다. 물론 언제나 예외는 있게 마련이어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전혀 슬프지 않으면서 그저 짜증스러웠고, <희망의 인문학>은 아마도 좋은 책이겠지만 내게는 어렵고 어려웠으며 또한 어려웠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게임>은 남아공 월드컵이 개최되던 해에 발간된 책으로, 남아공과의 관련성 때문에 월드컵 당시 약간의 관심은 있었지만 몇 가지 이유로 읽을 생각이 없었다. 첫째, 이 책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로벤섬 수용소에서 이루어진 축구에 관한 이야기로, 원제가 시사하듯이 '단순한 경기 이상의 것(More Than Just a Game)'이라 결코 쉽지 않을 것이고, 둘째, 나는 그간의 경험으로 인해 어쨌거나 월드컵이 열리는 해에 발간되는 축구 관련 도서에 대해 관심만큼이나 경계심을 가지고 있으며, 셋째, 제프 블래터 FIFA 회장의 추천사로 이 책이 시작한다는 것이 굉장히 불만스러웠기 때문이다(부연하자면 나에게 제프 블래터는 나쁜 사람이다). 하지만 어느 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이 책을 반값에 팔고 있는 것을 발견했고, 망설임 없이 구매했다. 그리고 그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내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한, 가장 잘한 일이었다.

 

생각했던 대로 책이 쉽지는 않았다. 민방위 교육을 받으러 가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때때로 차라리 민방위 교육 내용이 더 흥미롭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낯선 이들의 낯선 행적이 여기저기서 이루어지는 터라 쉬 집중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러한 낯선 이들의 낯선 행적의 결과로 그들이 로벤섬 수용소에 모여들자 상황은 일변했다. 힘을 합쳐 축구협회를 조직하고 축구리그를 운영하는 과정은 대단히 흥미진진했고, 축구를 매개로 그들의 자존감을 되찾는 모습 또한 흥미로웠다. "축구가 로벤섬의 축구인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라는 제프 블래터의 말은 여전히 터무니 없는 과장 혹은 영혼없는 찬사로 들리긴 하지만, '단순한 경기 이상의 것'을 이루어낸 로벤섬의 축구인들과 축구의 상호작용은 확실히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다.

 

문재인의 <운명>은 대체로 재미있게 읽혔는데, 특히 '인사(人事)'에 관한 대목이 흥미로웠다. 조금이라도 해당 직위에 어울리는 사람을 공정하게 선정하기 위한 노력은 단지 그것만으로도 약간의 감동을 전해주는 구석이 있었다. 물론 '올바른' 인사에 대해서는 시각 차이가 존재하기 마련이며, 또한 올바른 인사가 모든 좋은 결과를 담보하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인사'는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한 필요조건이 된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원칙을 가지고 사람을 선정하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다만, 아무래도 본인이 직접 관여한 일에 대해 본인의 입으로 말하다 보니 비판에 대한 변호가 자칫 변명으로 들릴 수도 있는 듯한데, 나는 그다지 크게 불편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의외로 재미있어서 깜짝 놀랄 정도였다. 시작부터 던져지는 논쟁적인 질문, 일견 당연한 듯 보이는 정의(正義), 그에 대한 만만치 않은 반론. 마이클 샌델은 어느 한쪽의 견해를 지지하지 않은 채, 대립되는 견해 모두에 대해 다양한 논거를 제시하여 어느 한쪽이 확실히 옳다라는 말을 하기 어렵게 만든다. 어느 한쪽이 옳다고 쉽게 생각하는 순간, 샌델은 또 다른 사례를 제시함으로써 해답을 미궁으로 빠뜨린다. 풍부하게 제시되는 사례 속에서 정의는 고정된 무엇이 아닌, 마치 가면을 바꿔쓰고 나타나는 연기자처럼 느껴질 정도고, 그러한 과정에서 독자는 깊이 사고(思考)할 수밖에 없는 듯하다. 그리고 물론, 그러한 사고가 주는 기쁨이 작을 리 없다.

 

윤구병의 <가난하지만 행복하게>는 사실 한 번 읽다가 중도에 포기한 책이다. 나는 어지간해서는 읽던 책은 어쨌건 끝까지 보는 편인데,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어지간히도 재미가 없었다. 하지만 다시 마음 먹고 읽기 시작해서 뒤로 갈수록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다. 특히 교육에 관한 내용은 교육 관련 종사자나 혹은 아이를 기르는 사람이라면 거듭해서 읽고 생각하기를 반복해도 좋겠다고 생각할 만큼 좋았다. 물론 나는 교육 관련 종사자도 아니고 기르는 아이도 없기 때문에 이 책을 거듭 읽을 필요가 없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아주 없지는 않다(다시 말하거니와 재미있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언젠가 기르는 아이가 생겼을 때 다시 이 책을 들춰보게 된다면 정말 다행한 일이 될 것이라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앞서 얘기한대로 전혀 슬프지 않으면서 그저 짜증스러웠다. 일단 베르테르의 사랑을 비난할 생각은 전혀 없고, 그가 끝내 비극을 택한 것도 비난할 생각은 없다. 단지 도무지 베르테르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려웠고 그 상대인 로테도, 그녀의 남편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게 문제였다. 더욱이 인물들이 하게체와 시오체(?)를 주구장창 남발하는 것도 읽기 괴로웠고, 간혹 웬 서사시(?)를 주인공들이 함께 읊조리기라도 할 참이면 손발이 오글거려서 진짜 책을 던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시대가 다르고 배경이 다르니 어지간하면 그러려니 이해하려고 노력하겠는데, 이 책은 내 이해의 범주를 지나치게 넘어서는 책이다. 유감스럽게도,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이라는 게 내가 생각하는 유일한 장점이다.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은 굉장히 좋았다. 쉬운 내용에 직관적인 비유, 그리고 짐작할 만한 결말이 위트 넘치는 문장과 잘 짜여진 구조, 오웰의 깊이 있는 통찰력과 만나 하나의 완전체가 된 듯한 느낌이다. 쉽고 가볍게 읽을 만하지만 결코 가벼이 여길 수 없는 내용이고, 간단치 않은 주제를 다루고 있는 듯하나 술술 재밌게 잘 읽힌다. 시대와 국적을 뛰어넘는 '고전'이란 바로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다, 하고 완전히 납득을 하게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유일하게 아쉬운 점이 있다면ㅡ<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는 반대로ㅡ책 내용이 너무 짧다는 것인데, 이건 그저 훌륭한 책에 대한 일종의 찬사일 뿐, 사실을 말하면 나는 짧은 책을 좋아한다. 그러니 간단히 말해서 나에게 <동물 농장>은 최고였다.

 

마지막으로 <희망의 인문학>과 <제5 도살장>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두 책 모두 내가 감당하기에는 조금 버거운 책이었기 때문이다. <희망의 인문학> 같은 경우에는 워낙 여기저기서 좋은 평을 하는 것을 봤고 외삼촌이 구태여 안겨주신 책인데다가 직전에 읽은 <지식e - 시즌4>에서 클레멘트 코스가 다루어지기까지 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역자들이 먼저 읽으라고 친절히 일러준 부분이 나올 때까지(물론 나는 무조건 차례로 읽는 스타일이라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정말 힘들게 읽어야만 했다(다행히 이후 사정이 조금 나아졌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그리고 <제5 도살장>의 경우에는 커트 보네거트의 재기넘치는 '농담'과 '은유'를 제대로 알아듣기에는 내 배경지식과 이해력이 너무 부족한 듯했다. 그저 이런 책들 같은 경우에는 죽기 전에 다시 한 번 제대로 읽어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은데, 아니라면 뭐 그저 <제5 도살장>에 주구장창 나오는 대사 한 마디를 따라할 도리밖에 없겠다. "그렇게 가는 거지." 하지만 사실을 말하면, 특히 <희망의 인문학>은 내게 너무도 어려워서 '그렇게 가는 게' 차라리 나을 것 같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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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 맛있는 것과 덜 맛있는 것 중에서, 맛있는 것을 먼저 먹는 사람과 덜 맛있는 것을 먼저 먹는 사람.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나는 내가 기억하는 아주 어릴 때부터 한결같이 '맛있는 것을 아껴 먹으라.'는 교리를 충실히 신봉해 마지 않는 쪽이었다. 나는 어릴 때 핫도그를 먹을 때면 껍데기(?)를 먼저 다 먹고 나서 소시지만 나중에 먹었고, 아이스크림 누가바를 먹을 때도 역시 껍데기(?)를 먼저 먹고 안의 아이스크림만 나중에 먹곤 했다. 지금은 물론 그 정도로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가령 떡볶이의 떡과 오뎅이나 혹은 새우초밥과 알초밥의 경우처럼 기어코 양자택일의 순간이 오면 역시나 더 좋아하는 쪽을 나중에 먹는다.

 

책을 읽을 때에도 이런 습벽은 여전히 유지된다. 만약 이런저런 이유로 당장 읽어야겠다고 마음먹고 두 권의 책을 샀다면 웬만해서는 좀 더 재미있을 것 같은 책을 나중에 읽는 편이다. 이유는 덜 맛있는 것을 먼저 먹는 이유와 같다. 덜 당기는 것을 먹거나 읽고 나서 더 당기는 것을 먹거나 읽기는 쉽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그리 용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먹는 것과 읽는 것의 중대한 차이점은, 먹는 것의 경우에는 이미 그 맛을 알고 그렇게 행동하는 경우가 많은 데 비해, 읽는 것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재미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고, 재미없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의외로 재미있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은 굉장한 기대를 품고 아끼고 아끼다 읽은 책인데 약간 실망스러웠던 경우다. 초반엔 무척 좋았다. 애팔래치아 산맥을 종단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와중에 그가 보여주는 과장된 너스레는 유쾌했고 간간히 인용하는 통계는 흥미로웠으며 다시 등장한 빌의 친구 카츠도 반가웠다. 하지만 정작 애팔래치아 산맥을 종단하기 시작하자 조금씩 지루하게 느껴졌다. 여전한 너스레와 과도한 통계, 그리고 항상 희화화되는 카츠. 어느 부분이 별로였다고 딱 고집어 말하기엔 이제 이 책을 읽은 지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래도 이것 하나만은 말할 수 있겠다. 나는 예전에 빌 브라이슨을 두고 "실오라기 하나에 대해 이야기해도 재밌는 작가"라고 말하는 평가에 동의했지만 이제 그건 좀 지나친 듯하게 느껴진다는 것(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이건 당연하다). 뭐 물론, 설령 그렇다하더라도 빌 브라이슨이 여전히 기대감을 가지게 하는 작가임에는 분명하지만.

 

김혜리의 <영화야 미안해>는 내가 이 책을 좀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때를 기다리며 아껴왔었던 책이다. 책에서 소개된 영화를 한 편이라도 더 보고 나서 책을 집어들 요량이었던 것. 하지만 그때를 기다리다간 평생 이 책을 못 읽을 것 같아서 결국 책을 읽었다. 영화를 특별히 즐기지 않는 탓에 책에서 말하는 영화와 배우들은 그리 익숙하지 않았지만, 무엇보다도 저자의 글솜씨가 훌륭해서 책을 읽어나가는 일은 사뭇 흥미로웠다. 그러다가 혹 본 영화라도 나오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고, 저자의 글의 적확함과 아름다움은 더욱 빛을 발하는 듯했다. 마음 같아서는 책에 나오는 영화를 하나 하나 감상한 뒤에 다시 이 책을 읽어보고 싶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건 내게 거의 불가능한 일일 듯하다. 그보다는 그냥 다른 재미있는 책 한 권을 집어드는 편이 훨씬 간편할 테니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는 기대 반 우려 반이었다. 조르지오와 카를로가 나왔을 때는 약간 불안했다. 그도 그럴 것이 꽤나 좋아했던 작가인 하루키의 작품을 멀리하게 된 건 그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비이성적인 일들 때문이었는데, 조르지오와 카를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머릿속에 사는 벌들이고 나는 그 존재를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등장은 잠깐일 뿐 곧 유럽 이곳저곳에서의 생활이 펼쳐졌고, 글은 술술 읽혔다. 소설이 아닌 탓에 어떤 정교한 무대는 필요치 않았고, 그저 소소하고 세밀한, 동시에 이국적이면서도 특별한 일상이 하루키의 활달하면서도 세속적인 느낌의 글과 만나 맞춤한 듯 어울렸다. 생각해 보면 하루키의 소설은 재미있게 읽고 나서도 대관절 소설을 통해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비해, 에세이는 그와 같은 어떤 '의미에의 집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어서 훨씬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거나 간단히 말해 내게 하루키란, 맥주를 왜 마시는지 의미를 부여하지는 못하지만 그저 맥주를 마시고 싶게 만드는 탁월한 작가이고, 때로는 그거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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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이라는 건 다른 나라의 말과 비교해서 하는 말이 아닌 그저 우리말만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말하는 것일 뿐일 테지만, 나로서는 설령 그것이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하는 말이라고 해도 전혀 불만이 없다. 어차피 우리말은 내가 아는 유일한 말이니 이왕이면 우리말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누가 딱, 정해주면 아 네, 하고 냉큼 받아들일 생각도 없지 않다. 혹은 누군가 우리말이 아름답지 않다고 하면 우리말이 아름다운 이유를 한 100가지쯤 대면서 항변할 재간 따위는 물론 없지만, 니가 아름다운 우리말을 개뿔이나 아냐, 라는 식의 마뜩찮은 표정을 지어줄 용의 정도는 얼마든지 가지고 있다. 요컨대 내가 강조하고 싶은 건 우리말이 아름답다는 데 대해 나는 전혀 반감이 없다는 거다.

 

그렇지만 '아름다운 우리말'을 기꺼이 인정한다고 해도 도무지 아름답지 않게 생각되는 우리말도 있다. 당연히 아름답지 않은 험한 말들을 제외하면, 나는 유독 '올케'라는 말이 마음에 안 든다. 일단 '올케'에 쓰인 '케'는 우리말에서 찾아보기 쉬운 글자는 아니다. 실제로 국어사전에서 '케'로 시작하는 단어를 찾아보면 '케이스', '케이크', '케첩' 등 외래어들이 눈에 띌 뿐 우리말 중에는 '케케묵다'가 유일하다. '케'로 끝나는 말 중에도 '부리나케' 정도가 생각날 뿐 딱히 떠오르는 다른 말이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올케'는 어쩌다가 생긴 말일까.

 

어느 유래에 따르면 '올케'는 '오라비'에 '겨집'이 합쳐져서 '오랍겨집'이 되었고 그것이 축약되어 '올케(올겨집)'가 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나로서는 그저 고개를 끄덕거리기는 어렵다. 대관절 오랍겨집을 어떻게 축약해야 올케가 된단 말인지. 이리저리 발음해 보고 특히 술이 취했을 때라든지 혹은 무언가를 먹으면서 말할 때를 가정해 보아도 납득하기가 어렵다. '계집'이라는 단어가 번연히 살아남은 판에 하필 '오랍겨집'의 '겨집'을 '케'로 만들 건 뭐란 말인지. 그것도 잘 쓰이지도 않는 글자를 가져다가.

 

'올케'가 마음에 안 드는 이유는 단 하나, 그 어감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올케'의 어감에서 '수캐'의 어감과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이 '수캐'는 특히 어느 시에서 그러했듯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에서의 바로 그 '수캐'다. 또는 '발정난 수캐'의 그 '수캐'라고 해도 좋다. 수캐한테는 조금 미안한 말이지만, 도무지 '건강한 수캐'라든지 '정숙한 수캐' 따위의 말들은 어딘가 모르게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다.

 

'올케'의 경우에는ㅡ어디까지나 내 느낌일 뿐이지만ㅡ영락없이 '얄미운 올케'가 어울린다. '다정한 올케'랄지 '사랑스러운 올케'와 같은 말들은 역시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하다. 물론 이런 인식 한편에는 실제 혹은 드라마 속 '올케'에 대한 이미지와 관련이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거꾸로, 그러한 이미지를 공고히 하는 데 '올케'라는 좋지 않은 어감이 한몫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한다면 그저 과장일 뿐일까. '오랍겨집'에서 왔음에도 정작 오빠의 아내에게는 호칭어로 '(새)언니'라 하고 남동생의 아내에게는 호칭어로 '올케'를 쓰는 이유를, '올케'의 어감 때문에 손윗사람에게 쓰기 꺼려진 데서 찾는다면 그 또한 억측에 지나지 않을 뿐일까.

 

어쨌거나 우리나라에서 우리말을 하면서 남자로 살아가는 데에는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지만, 평생 누군가를 직접적으로 올케라 부를 일도, 누군가에게 직접적으로 올케라 불릴 일도 없는 건 분명 좋은 점 중의 하나다. 세상에 좋은 올케는 얼마든지 있고 우리말은 아름다운 말이지만, 그래도 나는 '올케'라는 말만큼은 사양하고 싶다.

 

덧. 비슷한 이유로 '개구리 중사 케로로'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케로로'와 '뽀로로'는 단 한 글자 차이지만, 내 생각에 그 차이는 결코 간단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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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전혀 상관 없을 것 같은 3권의 책을 읽었는데, 공교롭게도 세 권의 책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비슷하다고 느껴지는 게 재미있다. 먼저 김찬호의 저서인 <사회를 보는 논리>에서는 우리 사회의 여러 현상들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그 나아갈 바를 독자와 함께 모색해 나가고자 한다. 쉬운 설명과 간결한 논지를 통해 이끌어 내는 이 책의 문제의식이 그 자체로 패러다임의 변화를 지향하고 있는 건 당연한 노릇이다. <광고천재 이제석>에서 저자 이제석이 말하는 핵심도 결국 패러다임의 변화다. 그는 책 속에서 "판을 바꾸라."라고 말하며 자신의 삶 속에서 증명해 낸 그 실례를 천재적인 자신의 광고를 곁들여 털어 놓는다. 마지막으로 황규영의 무협소설 <개천>은 제목부터 '開天(하늘을 열다)'이다. 이 '개천'은 저자가 '후기'에서 말하듯 '파천(破天)' 이후에 시작되는 것으로, 주인공 강대수의 여정은ㅡ약간 과장되게 말해서ㅡ패러다임의 변화를 위한 투쟁에 다름없다.

 

그런데 더욱 재미있는 것은 이렇듯 비슷한 핵심을 가진 듯한, 그러나 당연히 각기 다른 방식으로 내용을 펼쳐내는 이 세 권의 책의 차이가, 저마다 각기 속한 장르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이건 한편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가장 온순하고 부드러운 세기를 가진 것은 물론 인문학 서적에 해당하는 <사회를 보는 논리>이다(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저자는 책에서 우리 사회의 제반현상들에 대해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분석하고 비판하지만, 대안의 모색은 모두의 과제로 남겨둔다. 예컨대 결혼식 문화에 대해 저자는 '체면유지'와 '차이에 대한 집착'과 '악순환' 등의 표현으로 거침없이 날을 세우지만, 그렇다고 "그딴 결혼식 따위는 당장 치워버려라."라고 일갈하지는 못한다. 또한, 일찍이 '애정남'에서 정한 것처럼 "결혼식 축의금은 성수기에 3만원이다."라는 식으로 무엇 하나 정해주지도 못한다. 다만, 책에서는 스스로 생각하는 결혼식에 대해 토론할 거리를 남겨줄 뿐이다. 그래서 당연히 약간 미적지근한 느낌이지만, 진짜 '애정남'처럼 정해주었다면 그건 그거대로 좀 웃기겠다는 생각이 아주 없지는 않다. 어쨌거나 인문학이란 게 코미디는 아닐 테니까.

 

<광고천재 이제석>은 무엇보다도 책 표지에 한눈에 반해서 관심을 가졌고 결국 읽게 되었다. 초반에는 조금 불편한 느낌도 있었다. 가히 천재적이라는 수식어가 부끄럽지 않은, 책에 소개된 저자의 광고들은 감탄을 주기에 충분했지만 치열한 노력과 그에 따른 성공으로 얻은 자신감이 종종 지나치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천재란 기실 노력의 산물이라는, 그 평범한 클리셰를 되풀이하는 듯하던 이 책은 결정적으로 조금 다른 행보를 보인다. 진취적인 태도와 끊임없는 노력으로 성공을 얻은 저자가 그저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사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저자는 '이제석 광고 연구소'를 차려 공익 광고를 제작해 시민단체에 기부하기 시작한다. 자신을 둘러싼 불리한 환경 속에서 좌절하지 않고 "판을 바꾸어" 성공을 이뤄냈던 저자가 이제 세상이라는 거대한 "판을 바꾸려"는 의미 있는 일보를 내딛은 셈이고, 에세이라는 장르 안에서 자신의 삶을 유일한 증거로 하여 펼쳐낸 이렇듯 치열한 '진실성'은 자못 감동적인 데가 있다. 세상을 바꾸는 일은 거창한 무엇이 아닌, 결국 자신과 자신의 주변부터 바꿔나가는 것이라는 진부한 교훈이 한 개인의 실제 삶과 만날 때면 그것이 무엇이든 언제나 찬란하게 빛나게 마련이니까. 조금만 겸손했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은 여전히 떨치기 어렵다.

 

당연한 말이지만, 역시 무협소설이라는 장르는 어떤 한계를 깨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알맞은 장르다. <개천>은 다분히 저자의 어떤 의도가 느껴지는 설정 하에서(조선시대를 모델로 한 가상의 세계) 말 그대로 세상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다. 무능한 위정자와 부정부패한 관료와 탐욕스러운 거대상인 등이 판치는 세상에서 주인공 강대수는 기득권 세력을 완전히 타파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세상을 뒤집는 것(파천)' 외엔 없다고 굳게 믿는다. 그리하여 펼쳐지는 주인공의 활극 속에는 묘하게 현실 비판적인 메시지가 곳곳에서 느껴져서 나름의 재미와 시원함을 느끼게 된다. 다만 굳이 덧붙이자면, 그러한 현실 비판적 메시지를 제외하고 순수하게 무협소설 자체의 재미를 따진다면 솔직히 좀 약한 것 같기는 하다. '현실 비판적 메시지'란 게 진짜 이 작품 속에 있는지 어떤지 장담하기 어렵지만, 독자보다도 오히려 저자 쪽에서 그것을 좀 더 어필해야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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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늦은 오후. 한적한 공원 벤치에는 양복을 잘 차려입은 중년의 신사가 한 명 앉아 있다. 신사는 품에 아기를 안고 있고, 품에 안긴 아기는 시끄럽게 울고 있다. 벤치 한쪽에는 신사의 것으로 보이는 책 한 권이 놓여 있다. 표지에는 '모두 다 예쁜 말들'이라고 적혀 있다. 잠시 후 한 젊은이가 나타나자 신사가 반가운 기색으로 인사한다.)

 

신   사: 안녕하신가, 젊은이!

젊은이: 안녕하세요.

신   사: 참 좋은 날씨지 않은가? 이런 날에는 '강 같은 평화'라는 말의 의미를 실감하곤 한다네. (신사는 시끄럽게 울고 있는 아이를 한 번 쳐다본다.) 정말 축복 같은 날이야.

젊은이: 네, 그렇군요. 저, 그런데 아기가 울고 있는데요. 혹시 선생님 댁 아기인가요?

신   사: 아기가 우는 데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 자네는 그걸 분간하기 위해 필요한 게 뭔지 아는가?

젊은이: 글쎄요... 그건...

신   사: 그건 사랑이라네. 나는 이 아기를 무엇보다도 사랑하네. 나는 아기의 울음소리에서 36가지의 다른 의미를 분간해 낼 수 있지. 사랑이 없다면 그런 건 불가능하지. 암, 그렇고 말고.

젊은이: 네, 그렇군요. 저, 그런데 아기가 울고 있는데요. 혹시 아기가 배가 고픈 건 아닐까요?

신   사: 자네는 유독 어머니들만이 아기에게 젖을 먹일 수 있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젊은이: 글쎄요... 그건 혹시...

신   사: 그건 사랑이라네. 아버지의 사랑은 어머니의 사랑에 비할 것도 없지. 넘치는 모성애가 아니라면 유독 어머니에게서만 젖이 나오겠는가. 아버지들은 어머니들의 사랑을 본받아야 해. 암, 그렇고 말고.

젊은이: 네, 그렇군요. 저, 그런데 아기가 울고 있는데요. 혹시 기저귀를 갈 때가 된 건 아닐까요?

신   사: 내가 어렸을 때에는 천 기저귀 뿐이었지. 하지만 천 기저귀에는 1회용 기저귀가 감히 흉내낼 수 없는 따스함과 정성이 가득했지. 자네는 그 이유가 뭔지 짐작하겠는가?

젊은이: 글세요... 그건 아마도...

신   사: 그건 사랑이라네. 매번 기저귀를 빨아서 뽀송뽀송하게 말리는 건 보통 사랑가지곤 안 되는 법이지. 암, 그렇고 말고.

젊은이: 네, 그렇군요. (불편한 듯한 얼굴로)저, 그런데 저는 이만 볼일이 있어서...

신   사: 오, 그렇게 하게. 정말 사랑이 넘치는 대화였다네, 젊은이!

젊은이: 네, 저도 즐거웠습니다. 그럼...

 

(젊은이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뒤 머뭇거리며 걸어간다. 아기는 여전히 울고 있다. 몇걸음을 뗀 젊은이가 이내 결심한 듯한 표정으로 다시 신사에게로 돌아온다.)

 

젊은이: 저, 그런데 아기가 울고 있는데요. 혹시 어디가 아픈 건 아닐까요?

신   사: 옛날에는 아이들이 다쳤을 때 어머니가 발라 준 된장만으로 거뜬히 낫곤 했다네. 어지간한 약 따위는 댈 것도 없지. 자네는 그 이유가 뭔지 알 수 있겠는가?

젊은이: 글쎄요... 그건 역시...

신   사: 그건 사랑이라네. 한낱 된장으로 사람의 몸을 치유한다는 건 거짓말 같은 일이지. 사랑이 아니라면 그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암, 그렇고 말고.

젊은이: 네, 그렇군요...(젊은이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고는 다시 고개를 꾸벅 숙인다) 이제 정말로 가보겠습니다.

 

(젊은이는 아까보다 좀 더 단호한 걸음으로 총총히 퇴장한다. 그리고 잠시 후 어디선가 찬송가 소리가 들린다. 신사는 찬송가에 맞추어 흥얼거리다가 "사랑 없는 까닭에, 사랑 없는 까닭에"라는 대목을 유독 크게 따라 부른다. 신사의 노랫소리에 놀란 듯 아기의 울음소리가 더 커진다. 신사의 노랫소리와 아기의 울음소리가 경쟁하듯 울려 퍼진다. 아기는 계속해서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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