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리말'이라는 건 다른 나라의 말과 비교해서 하는 말이 아닌 그저 우리말만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말하는 것일 뿐일 테지만, 나로서는 설령 그것이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하는 말이라고 해도 전혀 불만이 없다. 어차피 우리말은 내가 아는 유일한 말이니 이왕이면 우리말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누가 딱, 정해주면 아 네, 하고 냉큼 받아들일 생각도 없지 않다. 혹은 누군가 우리말이 아름답지 않다고 하면 우리말이 아름다운 이유를 한 100가지쯤 대면서 항변할 재간 따위는 물론 없지만, 니가 아름다운 우리말을 개뿔이나 아냐, 라는 식의 마뜩찮은 표정을 지어줄 용의 정도는 얼마든지 가지고 있다. 요컨대 내가 강조하고 싶은 건 우리말이 아름답다는 데 대해 나는 전혀 반감이 없다는 거다.
그렇지만 '아름다운 우리말'을 기꺼이 인정한다고 해도 도무지 아름답지 않게 생각되는 우리말도 있다. 당연히 아름답지 않은 험한 말들을 제외하면, 나는 유독 '올케'라는 말이 마음에 안 든다. 일단 '올케'에 쓰인 '케'는 우리말에서 찾아보기 쉬운 글자는 아니다. 실제로 국어사전에서 '케'로 시작하는 단어를 찾아보면 '케이스', '케이크', '케첩' 등 외래어들이 눈에 띌 뿐 우리말 중에는 '케케묵다'가 유일하다. '케'로 끝나는 말 중에도 '부리나케' 정도가 생각날 뿐 딱히 떠오르는 다른 말이 없다. 그렇다면 도대체 '올케'는 어쩌다가 생긴 말일까.
어느 유래에 따르면 '올케'는 '오라비'에 '겨집'이 합쳐져서 '오랍겨집'이 되었고 그것이 축약되어 '올케(올겨집)'가 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하지만 나로서는 그저 고개를 끄덕거리기는 어렵다. 대관절 오랍겨집을 어떻게 축약해야 올케가 된단 말인지. 이리저리 발음해 보고 특히 술이 취했을 때라든지 혹은 무언가를 먹으면서 말할 때를 가정해 보아도 납득하기가 어렵다. '계집'이라는 단어가 번연히 살아남은 판에 하필 '오랍겨집'의 '겨집'을 '케'로 만들 건 뭐란 말인지. 그것도 잘 쓰이지도 않는 글자를 가져다가.
'올케'가 마음에 안 드는 이유는 단 하나, 그 어감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올케'의 어감에서 '수캐'의 어감과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이 '수캐'는 특히 어느 시에서 그러했듯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에서의 바로 그 '수캐'다. 또는 '발정난 수캐'의 그 '수캐'라고 해도 좋다. 수캐한테는 조금 미안한 말이지만, 도무지 '건강한 수캐'라든지 '정숙한 수캐' 따위의 말들은 어딘가 모르게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다.
'올케'의 경우에는ㅡ어디까지나 내 느낌일 뿐이지만ㅡ영락없이 '얄미운 올케'가 어울린다. '다정한 올케'랄지 '사랑스러운 올케'와 같은 말들은 역시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하다. 물론 이런 인식 한편에는 실제 혹은 드라마 속 '올케'에 대한 이미지와 관련이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거꾸로, 그러한 이미지를 공고히 하는 데 '올케'라는 좋지 않은 어감이 한몫을 했을지도 모른다고 한다면 그저 과장일 뿐일까. '오랍겨집'에서 왔음에도 정작 오빠의 아내에게는 호칭어로 '(새)언니'라 하고 남동생의 아내에게는 호칭어로 '올케'를 쓰는 이유를, '올케'의 어감 때문에 손윗사람에게 쓰기 꺼려진 데서 찾는다면 그 또한 억측에 지나지 않을 뿐일까.
어쨌거나 우리나라에서 우리말을 하면서 남자로 살아가는 데에는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지만, 평생 누군가를 직접적으로 올케라 부를 일도, 누군가에게 직접적으로 올케라 불릴 일도 없는 건 분명 좋은 점 중의 하나다. 세상에 좋은 올케는 얼마든지 있고 우리말은 아름다운 말이지만, 그래도 나는 '올케'라는 말만큼은 사양하고 싶다.
덧. 비슷한 이유로 '개구리 중사 케로로'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케로로'와 '뽀로로'는 단 한 글자 차이지만, 내 생각에 그 차이는 결코 간단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