럼두들 등반기
W. E. 보우먼 지음, 김훈 옮김 / 마운틴북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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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에서 보내는 메일 혹은 문자메시지는 내게 거의 소용이 없다. 알라딘에서는 꽤나 자주 이런저런 소식들을-아마도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내게 전해주는데, 대개의 경우 나는 제목만 보고 삭제를 해버린다. 심지어는 '스팸차단'과 '삭제' 사이에서 꽤 고민하는 편이다. 하지만 끝내 '스팸차단'을 하지 않는 이유는 드물게 혹하는 소식을 전해주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며, 얼마 전 '빌 브라이슨' 운운하며 전해진 소식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자세히 읽어보니 빌 브라이슨이 새로운 책을 낸 것이 아니라 그저 어떤 책을 추천하는 것뿐이었지만, 어쨌거나 웃기는 사람이 웃기는 책이라고 추천해주는데 웃기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곧 나는 그 책을 손에 쥐게 되었다. 그리고 그 책의 이름은ㅡ맹세하거니와 나는 빌 브라이슨이 아니었다면 이런 제목의 책을 사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나는 산을, 등산을, 하물며 등반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ㅡ<럼두들 등반기>였다.


<럼두들 등반기>를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건 빌 브라이슨의 서문을 읽는 것이었다. 오래된 기억을 끄집어내고 통계를 활용하고 과장되지만 재미있는 일화를 덧붙이고 심술맞게 구는 듯하다가 끝내 찬사를 보내는 건 빌 브라이슨이 가장 빈번히 그리고 훌륭히 해내는 것이고, 끝내 독자가 그 대상에 매료되지 않기란 어렵다. 예컨대, 빌 브라이슨이 유럽에 대해, 영국에 대해, 미국에 대해, 그리고 어린 시절에 대해 이야기할 때 독자는 필연적으로 그 대상에 대해 호의를 가지게 마련이고, 이 책의 서문에서는 이 책 자체가 바로 그런 대상에 해당한다. 무엇보다도 "이제 나는 특권을 누리는 듯한 즐거운 기분으로 여러분에게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책 가운데 하나를 읽어 보시라 권한다."라는 말에 혹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하지만 다시 말하건대, 이 책에서는 빌 브라이슨의 서문을 읽는 것이 가장 흥미로웠고, 이는 당연히 이 책에 대한 찬사는 아니다.


물론 빌 브라이슨의 서문 외에도 이 책에서 빛나는 순간이 있었다. 무려 12000.15미터에 이르는 럼두들 산을 등반하기 위해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여 팀을 이루었을 때, 다시 말해 이제 막 책장이 넘어가기 시작해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독특한 개성을 드러내었던 때는 기대감과 흥미로움이 최고조에 달했었다. 특히 등장인물의 이름과 전문분야 자체가 그들의 행태와 어우러져 재미있는 농담으로 기능했기에 각 대원들의 이름과 전문분야를 확인하기 위해 몇 번이나 책장을 앞으로 넘겨야 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다시 앞으로 책장을 넘길 일이 없었던 건 꼭 등장인물의 이름과 전문분야를 외웠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등장인물의 전문분야와 행태와의 괴리가 즐거움을 주었지만 뒤로 갈수록 그러한 전복적인 특성이 외려 공고해지는 듯했고, 그건 더이상 그러한 괴리로부터 즐거움을 찾기가 어려웠다는 뜻이다. 게다가 어떤 흥미로운 사건도 이 책에는 드물었다.


옮긴이주가 꽤 들어간 이 책에서 옮긴이는 옮긴이주가 많은 이유를 이렇게 적고 있다. "이 소설은 바로 그 유려함과 익살 때문에 시와 비슷한 성격을 지녀 옮길 때 옮긴이주를 붙이지 않으면 도저히 그 뜻을 전할 길이 없을 때가 많았다." 이 책에서 즐거움을 느껴야 하는 부분은 대체로 언어유희가 이루어지는 부분일 때가 많았고 하기에 이 소설이 시와 비슷한 성격을 지녔다는 데는 동의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옮긴이주의 도움으로도 즐거움을 느끼기에는 어쩔 수 없이 한계가 있었다(웃기는 데 해설이 필요하다면 그건 더 이상 웃기지 않은 일이다). 더욱이 이 소설에는 옮긴이의 말대로 잘 안 풀리는 미스터리가 몇 가지 숨어 있고, 사실을 말하면 나는 옮긴이조차 답을 말하기 어렵다고 한 미스터리뿐만 아니라 옮긴이가 쉽게 풀린다고 말한 미스터리조차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게 이 책의 잘못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내 잘못만은 아닐 것이다(물론 내가 영어공부를 한 20년 했지만 여전히 영어를 못하는 건 내 잘못이다).

 

빌 브라이슨이 이 책을 그토록 추천한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빌 브라이슨도 언어유희에 꽤 집착하는 작가고, 그렇기에 그가 이 책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것도 납득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 내가 빌 브라이슨의 책에서 종종 난감했던 부분이 그가 언어유희에 집착하던 순간이고, 때문에 내가 이 책을 좋아하기 어려운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이 책은 어쩔 수 없이 언어의 벽을 실감하게 해주는 책이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실은 언어의 벽이 아니라도 과연 내가 그렇게 재미있다고 느낄 수 있을 만한 책인지도 회의적이다(물론 여전히 이 책을 재미있게 읽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좋아하는 작가가 좋아하는 책이라고 추천하기에 좋아했건만 읽고 나서는 도무지 좋아할 수 없어서 심히 유감스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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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 - 메이저리그 124승의 신화
민훈기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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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 124승의 신화 박찬호>를 읽은 건 박찬호 때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책의 저자인 민훈기 때문이었다. 한 포털 사이트에서 우연히 민훈기 기자의 메이저리그 관련 칼럼을 읽게 되었는데 사뭇 마음에 들었고, 이후 그의 글은 일부러라도 찾아서 읽곤 했다. 냉정히 말하면 아름다운 문장도 아니고 완전히 새로운 자료를 제시하지도 않지만, 평이한 문장과 새삼스러울 것 없는 자료를 가지고 그는 기어이 어떤 의미들을 찾아내곤 했다. 그 의미란 때로는 1회에 던져진 95마일의 강속구 하나이기도 했고, 타격 슬럼프 와중에 나온 꾸준한 출루이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한 타자에게 두 번의 홈런 허용 이후에 나온 한 번의 삼진이기도 했다. 공 하나 하나가 던져지는 순간의 중요함을 캐치하고, 똑같은 통계자료에서 특별한 의미를 찾아내고, 나빴던 순간에도 좋았던 점을 찾을 줄 아는 저자의 밝은 눈은 기어코 그를 다른 야구 전문가와 차별하게 만든다.

 

익히 알려져 있다면 알려져 있는 박찬호의 메이저리그 여정을 다루는 이 책에서 새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전적으로 저자의 특별함에 힘입은 바 크다. 박찬호의 전성기 시절, 내 다이어리에는 박찬호의 승리가 숫자로 기록되었던 때도 있었듯 누구나 박찬호의 승리 숫자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이 책은 그러한 단순한 숫자 혹은 결과로서의 승리가 아니라 새로운 무대를 개척해 나가는 박찬호의 집념을 좇으며 그 과정을 상세히 복기해놓고 있다. 책 속에는 승리의 환희만이 아니라 고통과 좌절의 패배, 행운과 불운의 교차, 인고와 재기의 순간이 숨김 없이 펼쳐지며, 때문에 이 책은 저자가 말하듯 "승리한 자의 기록이이지만 동시에 온전하게 패배할 줄 아는 자의 기록이기도 하다."

 

사실 박찬호가 LA에서 전성기를 구가한 것이나 텍사스에서 힘겨운 시기를 보낸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그가 샌디에이고, 뉴욕 메츠, 필라델피아, 토론토, 뉴욕 양키스, 피츠버그 등에서도 분투를 이어갔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설령 단편적인 뉴스를 통해 그의 이적 소식을 들었을지라도 그가 여러 팀에서 어떤 활약을 선보였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잊혔다고 사라진 것은 아니며, 선발에서 불펜으로 자리를 옮겼다고 그가 던지는 공 하나 하나의 중요성이 작아진 것도 아니었으며, 패배라고 해서 오로지 가치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사람이 숨을 쉬어야 살듯이 야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 박찬호는 묵묵히 공을 던졌고, 그것은 과장하자면 단지 살아가는 것의 경이로움만큼이나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인생의 축소판에 비견되는 야구의 진면목은 책 속에서 박찬호라는 한 야구선수의 도전을 매개로 하여 실로 매력적으로 드러난다.

 

저자의 안내대로 박찬호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무심코 넘겼던 많은 부분들이 큰 의미로 다가온다. 개인적으로는 특히 동양인 최다승인 124승을 달성하는 과정이 사뭇 감동적이었다. 책에 따르면 박찬호는 2010년 10월 2일, 소속팀 피츠버그가 플로리다에 3대 1로 앞서던 5회 말에 마운드에 올라 3이닝을 완벽하게 막으며 대망의 124승 째를 거뒀다고 한다. 당시 러셀 감독은 박찬호에게 신기록의 기회를 주기 위해 4회까지 호투하던 선발투수 다니엘 매커친의 양해를 얻어 박찬호를 넣었고, 모두가 알다시피 그 경기의 승리는 박찬호의 마지막 승리가 되었다. 한편 매커친 또한 대선배의 기록 달성을 위해 양보를 했고, 다음 날 박찬호는 매커친에게 아이패드를 선물했다고 한다. 쉽게 얘기되는, 혹은 단지 동양인들만의 무의미한 기록으로 폄하되는 박찬호의 기록달성에는 이와 같은 배려와 양보가 숨어 있었고, 이는 박찬호가 걸어온 발자취의 위대함을 아름답게 증명한다.

 

IMF시대에 박찬호의 야구가 국민에게 큰 희망과 기쁨을 주었음을 부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그가 국민에게 더 이상 희망과 기쁨을 주지 못한다고 여겨질 때에도, 그는 오직 야구를 했었다고 이 책은 항변하는 듯하다. 박찬호의 여정은 그 자체로 위대하지만 그 여정을 훨씬 깊이 있고 풍요롭게 만든 것은 저자의 넓고 깊은 식견과 순간순간의 성적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냉철함, 무엇보다도 취재 대상에 대한 한결같은 애정이었음에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 대단한 야구 여정에 우리를 초대해주어서 고맙다."는 저자의 마지막 말은, 그래서 저자에게도 또한 되돌려 주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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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보아도 어려울 것 같은 책들을 몇 권 읽었는데, 의외로 재미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게임>과 <운명>은 사뭇 흥미진진한 구석이 있었고, <정의란 무엇인가>와 <가난하지만 행복하게>는 약간의 부담이 있었으되 활발히 생각하도록 만드는 데가 있었으며, <제5 도살장>은 넘치는 은유를 해석해내기가 난망한 가운데에서도 책 전반에 넘쳐 흐르는 냉소적 유머에 혹하는 매력이 있었으며, <동물농장>은 시종일관 유쾌했다. 물론 언제나 예외는 있게 마련이어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전혀 슬프지 않으면서 그저 짜증스러웠고, <희망의 인문학>은 아마도 좋은 책이겠지만 내게는 어렵고 어려웠으며 또한 어려웠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게임>은 남아공 월드컵이 개최되던 해에 발간된 책으로, 남아공과의 관련성 때문에 월드컵 당시 약간의 관심은 있었지만 몇 가지 이유로 읽을 생각이 없었다. 첫째, 이 책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로벤섬 수용소에서 이루어진 축구에 관한 이야기로, 원제가 시사하듯이 '단순한 경기 이상의 것(More Than Just a Game)'이라 결코 쉽지 않을 것이고, 둘째, 나는 그간의 경험으로 인해 어쨌거나 월드컵이 열리는 해에 발간되는 축구 관련 도서에 대해 관심만큼이나 경계심을 가지고 있으며, 셋째, 제프 블래터 FIFA 회장의 추천사로 이 책이 시작한다는 것이 굉장히 불만스러웠기 때문이다(부연하자면 나에게 제프 블래터는 나쁜 사람이다). 하지만 어느 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이 책을 반값에 팔고 있는 것을 발견했고, 망설임 없이 구매했다. 그리고 그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내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한, 가장 잘한 일이었다.

 

생각했던 대로 책이 쉽지는 않았다. 민방위 교육을 받으러 가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때때로 차라리 민방위 교육 내용이 더 흥미롭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낯선 이들의 낯선 행적이 여기저기서 이루어지는 터라 쉬 집중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러한 낯선 이들의 낯선 행적의 결과로 그들이 로벤섬 수용소에 모여들자 상황은 일변했다. 힘을 합쳐 축구협회를 조직하고 축구리그를 운영하는 과정은 대단히 흥미진진했고, 축구를 매개로 그들의 자존감을 되찾는 모습 또한 흥미로웠다. "축구가 로벤섬의 축구인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라는 제프 블래터의 말은 여전히 터무니 없는 과장 혹은 영혼없는 찬사로 들리긴 하지만, '단순한 경기 이상의 것'을 이루어낸 로벤섬의 축구인들과 축구의 상호작용은 확실히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다.

 

문재인의 <운명>은 대체로 재미있게 읽혔는데, 특히 '인사(人事)'에 관한 대목이 흥미로웠다. 조금이라도 해당 직위에 어울리는 사람을 공정하게 선정하기 위한 노력은 단지 그것만으로도 약간의 감동을 전해주는 구석이 있었다. 물론 '올바른' 인사에 대해서는 시각 차이가 존재하기 마련이며, 또한 올바른 인사가 모든 좋은 결과를 담보하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인사'는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한 필요조건이 된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원칙을 가지고 사람을 선정하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다만, 아무래도 본인이 직접 관여한 일에 대해 본인의 입으로 말하다 보니 비판에 대한 변호가 자칫 변명으로 들릴 수도 있는 듯한데, 나는 그다지 크게 불편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정의란 무엇인가>는 의외로 재미있어서 깜짝 놀랄 정도였다. 시작부터 던져지는 논쟁적인 질문, 일견 당연한 듯 보이는 정의(正義), 그에 대한 만만치 않은 반론. 마이클 샌델은 어느 한쪽의 견해를 지지하지 않은 채, 대립되는 견해 모두에 대해 다양한 논거를 제시하여 어느 한쪽이 확실히 옳다라는 말을 하기 어렵게 만든다. 어느 한쪽이 옳다고 쉽게 생각하는 순간, 샌델은 또 다른 사례를 제시함으로써 해답을 미궁으로 빠뜨린다. 풍부하게 제시되는 사례 속에서 정의는 고정된 무엇이 아닌, 마치 가면을 바꿔쓰고 나타나는 연기자처럼 느껴질 정도고, 그러한 과정에서 독자는 깊이 사고(思考)할 수밖에 없는 듯하다. 그리고 물론, 그러한 사고가 주는 기쁨이 작을 리 없다.

 

윤구병의 <가난하지만 행복하게>는 사실 한 번 읽다가 중도에 포기한 책이다. 나는 어지간해서는 읽던 책은 어쨌건 끝까지 보는 편인데,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어지간히도 재미가 없었다. 하지만 다시 마음 먹고 읽기 시작해서 뒤로 갈수록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다. 특히 교육에 관한 내용은 교육 관련 종사자나 혹은 아이를 기르는 사람이라면 거듭해서 읽고 생각하기를 반복해도 좋겠다고 생각할 만큼 좋았다. 물론 나는 교육 관련 종사자도 아니고 기르는 아이도 없기 때문에 이 책을 거듭 읽을 필요가 없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아주 없지는 않다(다시 말하거니와 재미있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언젠가 기르는 아이가 생겼을 때 다시 이 책을 들춰보게 된다면 정말 다행한 일이 될 것이라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앞서 얘기한대로 전혀 슬프지 않으면서 그저 짜증스러웠다. 일단 베르테르의 사랑을 비난할 생각은 전혀 없고, 그가 끝내 비극을 택한 것도 비난할 생각은 없다. 단지 도무지 베르테르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려웠고 그 상대인 로테도, 그녀의 남편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게 문제였다. 더욱이 인물들이 하게체와 시오체(?)를 주구장창 남발하는 것도 읽기 괴로웠고, 간혹 웬 서사시(?)를 주인공들이 함께 읊조리기라도 할 참이면 손발이 오글거려서 진짜 책을 던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시대가 다르고 배경이 다르니 어지간하면 그러려니 이해하려고 노력하겠는데, 이 책은 내 이해의 범주를 지나치게 넘어서는 책이다. 유감스럽게도,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이라는 게 내가 생각하는 유일한 장점이다.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은 굉장히 좋았다. 쉬운 내용에 직관적인 비유, 그리고 짐작할 만한 결말이 위트 넘치는 문장과 잘 짜여진 구조, 오웰의 깊이 있는 통찰력과 만나 하나의 완전체가 된 듯한 느낌이다. 쉽고 가볍게 읽을 만하지만 결코 가벼이 여길 수 없는 내용이고, 간단치 않은 주제를 다루고 있는 듯하나 술술 재밌게 잘 읽힌다. 시대와 국적을 뛰어넘는 '고전'이란 바로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다, 하고 완전히 납득을 하게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유일하게 아쉬운 점이 있다면ㅡ<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는 반대로ㅡ책 내용이 너무 짧다는 것인데, 이건 그저 훌륭한 책에 대한 일종의 찬사일 뿐, 사실을 말하면 나는 짧은 책을 좋아한다. 그러니 간단히 말해서 나에게 <동물 농장>은 최고였다.

 

마지막으로 <희망의 인문학>과 <제5 도살장>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는 편이 나을 것 같다. 두 책 모두 내가 감당하기에는 조금 버거운 책이었기 때문이다. <희망의 인문학> 같은 경우에는 워낙 여기저기서 좋은 평을 하는 것을 봤고 외삼촌이 구태여 안겨주신 책인데다가 직전에 읽은 <지식e - 시즌4>에서 클레멘트 코스가 다루어지기까지 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역자들이 먼저 읽으라고 친절히 일러준 부분이 나올 때까지(물론 나는 무조건 차례로 읽는 스타일이라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정말 힘들게 읽어야만 했다(다행히 이후 사정이 조금 나아졌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그리고 <제5 도살장>의 경우에는 커트 보네거트의 재기넘치는 '농담'과 '은유'를 제대로 알아듣기에는 내 배경지식과 이해력이 너무 부족한 듯했다. 그저 이런 책들 같은 경우에는 죽기 전에 다시 한 번 제대로 읽어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은데, 아니라면 뭐 그저 <제5 도살장>에 주구장창 나오는 대사 한 마디를 따라할 도리밖에 없겠다. "그렇게 가는 거지." 하지만 사실을 말하면, 특히 <희망의 인문학>은 내게 너무도 어려워서 '그렇게 가는 게' 차라리 나을 것 같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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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다. 맛있는 것과 덜 맛있는 것 중에서, 맛있는 것을 먼저 먹는 사람과 덜 맛있는 것을 먼저 먹는 사람.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나는 내가 기억하는 아주 어릴 때부터 한결같이 '맛있는 것을 아껴 먹으라.'는 교리를 충실히 신봉해 마지 않는 쪽이었다. 나는 어릴 때 핫도그를 먹을 때면 껍데기(?)를 먼저 다 먹고 나서 소시지만 나중에 먹었고, 아이스크림 누가바를 먹을 때도 역시 껍데기(?)를 먼저 먹고 안의 아이스크림만 나중에 먹곤 했다. 지금은 물론 그 정도로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가령 떡볶이의 떡과 오뎅이나 혹은 새우초밥과 알초밥의 경우처럼 기어코 양자택일의 순간이 오면 역시나 더 좋아하는 쪽을 나중에 먹는다.

 

책을 읽을 때에도 이런 습벽은 여전히 유지된다. 만약 이런저런 이유로 당장 읽어야겠다고 마음먹고 두 권의 책을 샀다면 웬만해서는 좀 더 재미있을 것 같은 책을 나중에 읽는 편이다. 이유는 덜 맛있는 것을 먼저 먹는 이유와 같다. 덜 당기는 것을 먹거나 읽고 나서 더 당기는 것을 먹거나 읽기는 쉽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그리 용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먹는 것과 읽는 것의 중대한 차이점은, 먹는 것의 경우에는 이미 그 맛을 알고 그렇게 행동하는 경우가 많은 데 비해, 읽는 것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재미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고, 재미없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의외로 재미있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은 굉장한 기대를 품고 아끼고 아끼다 읽은 책인데 약간 실망스러웠던 경우다. 초반엔 무척 좋았다. 애팔래치아 산맥을 종단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와중에 그가 보여주는 과장된 너스레는 유쾌했고 간간히 인용하는 통계는 흥미로웠으며 다시 등장한 빌의 친구 카츠도 반가웠다. 하지만 정작 애팔래치아 산맥을 종단하기 시작하자 조금씩 지루하게 느껴졌다. 여전한 너스레와 과도한 통계, 그리고 항상 희화화되는 카츠. 어느 부분이 별로였다고 딱 고집어 말하기엔 이제 이 책을 읽은 지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래도 이것 하나만은 말할 수 있겠다. 나는 예전에 빌 브라이슨을 두고 "실오라기 하나에 대해 이야기해도 재밌는 작가"라고 말하는 평가에 동의했지만 이제 그건 좀 지나친 듯하게 느껴진다는 것(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이건 당연하다). 뭐 물론, 설령 그렇다하더라도 빌 브라이슨이 여전히 기대감을 가지게 하는 작가임에는 분명하지만.

 

김혜리의 <영화야 미안해>는 내가 이 책을 좀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때를 기다리며 아껴왔었던 책이다. 책에서 소개된 영화를 한 편이라도 더 보고 나서 책을 집어들 요량이었던 것. 하지만 그때를 기다리다간 평생 이 책을 못 읽을 것 같아서 결국 책을 읽었다. 영화를 특별히 즐기지 않는 탓에 책에서 말하는 영화와 배우들은 그리 익숙하지 않았지만, 무엇보다도 저자의 글솜씨가 훌륭해서 책을 읽어나가는 일은 사뭇 흥미로웠다. 그러다가 혹 본 영화라도 나오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고, 저자의 글의 적확함과 아름다움은 더욱 빛을 발하는 듯했다. 마음 같아서는 책에 나오는 영화를 하나 하나 감상한 뒤에 다시 이 책을 읽어보고 싶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건 내게 거의 불가능한 일일 듯하다. 그보다는 그냥 다른 재미있는 책 한 권을 집어드는 편이 훨씬 간편할 테니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는 기대 반 우려 반이었다. 조르지오와 카를로가 나왔을 때는 약간 불안했다. 그도 그럴 것이 꽤나 좋아했던 작가인 하루키의 작품을 멀리하게 된 건 그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비이성적인 일들 때문이었는데, 조르지오와 카를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머릿속에 사는 벌들이고 나는 그 존재를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등장은 잠깐일 뿐 곧 유럽 이곳저곳에서의 생활이 펼쳐졌고, 글은 술술 읽혔다. 소설이 아닌 탓에 어떤 정교한 무대는 필요치 않았고, 그저 소소하고 세밀한, 동시에 이국적이면서도 특별한 일상이 하루키의 활달하면서도 세속적인 느낌의 글과 만나 맞춤한 듯 어울렸다. 생각해 보면 하루키의 소설은 재미있게 읽고 나서도 대관절 소설을 통해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비해, 에세이는 그와 같은 어떤 '의미에의 집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어서 훨씬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어쨌거나 간단히 말해 내게 하루키란, 맥주를 왜 마시는지 의미를 부여하지는 못하지만 그저 맥주를 마시고 싶게 만드는 탁월한 작가이고, 때로는 그거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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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버리다 - 더 큰 나를 위해
박지성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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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의 '두 번째' 자서전이 나왔을 때 나는 기대하기보다는 자못 실망스러웠다. 그의 '첫 번째' 자서전 <멈추지 않는 도전>이 나온 지 4년 여. 4년이면 강산이 변할 만큼은 아니어도 대략 냇가와 언덕 정도는 변할 시간이 된다고 항변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 4년은 이미 '첫 번째' 자서전을 낸 사람이 또 다른 이야기를 꺼내들기에는 너무도 짧은 시간이다. 그 사람이 아직 한창 때의 젊은이이고, 여전히 앞으로의 의미 있는 행보가 기대되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물론 한편으로는 2008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출전명단에서 완전히 제외되었던 사건에서 시작되는 그의 이야기들이 흥미를 끌고, 4년간의 새로운 이야기에 목말라하던 팬들에게 그의 이야기가 반가운 건 분명하다. 앞에서 두 번째 '자서전'이라고 했지만, 어쩐지 다소 책임감을 지녀야 할 것처럼 보이는 '자서전'이라는 분류 대신 상대적으로 가벼운 느낌의 '에세이'로 이 책을 분류하자면 받아들이기가 한결 수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책을 읽고 난 후의 느낌을 말하자면, 이건 '자서전'은커녕 '에세이'로도 민망한 수준이다.

 

박지성의 첫 번째 자서전에서는 세련되지는 않을지라도 박지성이 스스로 그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조곤조곤, 남들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는 그의 성품이 그대로 드러나듯 그저 자신의 지난 이야기를 차분히 꺼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고, 그런 꾸미지 않는 솔직함에서 조금 감동도 받았다. 하지만 이번 책에서는 꾸며내는 듯한 느낌이 너무 많다. 새로 겪었던 에피소드들과 거기에서 느꼈던 감정을 담백하게 복기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어떻게든 교훈이나 유명선수들의 명언을 엮어내려는 모습은 가히 안쓰러울 지경이다. 지난 자서전과 겹치는 부분이 있는 것이나, 또는 어디서 이미 들어본 이야기들을 종종 접하게 되는 것도 그리 달갑지만은 않은 일이다.

 

만약이지만, 이 책을 좀 더 담백하게, 그저 박지성 그 자신만의 이야기로만 채우고 그로부터 받는 느낌을 오로지 독자의 몫으로만 남겨두었다면 이 책은 훨씬 괜찮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270여 페이지에 불과한 이 책의 부피는 현저히 줄어들었을 것이며, 결국 그게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이 책에는 박지성이 자신의 안에서 쌓이고 쌓인 이야기를 '풀어낸다'기보다는 월드컵에 즈음하여 기획으로 '만들어낸다'는 느낌이 강하고, 결국 아직 쌓이지 않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박지성이 아닌, 출판사의 과제일 테니까. 물론 남의 '자서전'을 자신의 '과제'로 바꾸는 출판사의 의도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고.

 

끝으로 이 책의 띠지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비교하지마, 흔들리지마. 나를 위해, 동료를 위해, 꿈을 위해 네가 가진 모든 것을 던지면 세상은 너를 향해 웃어줄거야!" 좋은 말인 것도, 그리고 내가 꽤 냉소적이라는 것도 부인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역시나 이걸 박지성이 그대로 말한다고 생각하면 손발이 다 오그라드는 것을 어쩔 수 없다. 그러니 아무쪼록, 이제는 리그 1위 팀에서 꼴찌 팀으로 옮겨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는 박지성이 그 자신 안에 이야기가 쌓이고 쌓여 흘러넘칠 때, 비로소 그의 이야기를 꾸미지 않고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의 이야기에서 기대하는 건 현란한 수사나 넘치는 은유가 아니라, 그저 그의 삶 자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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