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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의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를 읽다보니 흥미로운 인식이 생긴다. 

내가 기존에 갖고 있던 인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정도인데, 아직 내겐 생경하다. 정리해보자. 

 

 

  파시즘이 좌파의 실패에서 비롯한다는 통찰은 역사적인 맥락에서 수긍할 수 있다. 이와 관련, 벤야민의 사유가 자주 언급되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파시즘의 국가사회주의에서 보이는 반자본주의 테제와 반유대주의를 이슬람 근본주의와 관련지어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젝은 이데올로기와 관련하여 네 가지 정치적 입장을 그레마스의 기호학적 사각형에 위치시키고 있다. 그레마스의 기호학적 사각형은 잘 몰라서 지젝의 설명을 명확히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현재 이스라엘과 이슬람 근본주의 사이에 나타나는 갈틍은 급진 좌파가 지지해서는 안 되는 정치적 노선이라는 주장은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 이슬람 근본주의에 내재하는 반유대주의가 반자본주의적 수사와 결합하고 있다고 해서 좌파가 헷갈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베르나르 앙리 레비의 '이슬람 파시즘'테제를 언급하고 있는데 여전히 파시즘을 위기상황에서 실패한 혁명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으로 이해하는 듯하다. 

  이런 대략적인 정리도 허접하기 이를 데 없지만, 이슬람 근본주의와 반유대주의의 결합, 그리고 포퓰리즘 우파와 중도 자유주의 사이의 구분도 중요해보인다. 포퓰리즘 우파의 정치적 기반은 '불안'이라는 심리적 기제라는 사실 등등... 

  흥미로운데 아직 완전히 이해하기는 버거운 내용들이다. 지젝답게 헤겔과 라캉의 용어가 곳곳에서 출몰하고 푸코는 물론이거니와 이데올로기와 관련된 기호학적 용어들이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는 까닭으로, 아직 분명한 이해는 어려워 보인다.(냉소적-물신주의와 근본주의적-물신주의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직관적 차이만을 인지하는 것으로 그치자.) 

  지젝 입문서 수준으로 적당한 분량과 내용으로 로쟈의 추천을 받은 책인데, 여전히 내 수준에서는 버겁구나...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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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지난 3학기가 자꾸 머릿속을 맴돈다. 

지난 3학기... 그 3학기가 도대체 무엇이었기에? 

 

 

 

오랜만에 부모님과 함께 외식을 했다. 

아마, 2~3년 전쯤에 갔던 고깃집인 듯하다.  

그가 일산밖에 모르고 살아가던 시절. 

그런데 새삼 이 모든게 낯설다. 

맛난 고기가 있고, 화목한 가정이 있다. 

그리고, 어색한 그의 모습이 덧붙여졌다. 

 

 

고3때부터 줄곧 책을 부여잡고 살아왔다. 

공부를 해야겠다는 내적인 의지와 필요, 그리고 강박. 

책을 읽어야겠다는 강박은 공부와는 또다른 형식으로 그에게 다가왔다. 

여전히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날이면, 아무 것에도 몰입할 수 없는 날이면 

시간을 삼키기 위해 스타크래프트를 했지만 

그렇다고 그 넉넉한 일상의 시간들을 놀기 위한 계획에 할당해오지는 않았다. 

계획하지 않아도 그는 곧잘 놀곤 했다. 쓸쓸하게.

 

책은 다만 생활이 되었을 뿐이고, 가슴의 헛헛함은 

무조건 누군가와 어울려 논다고 해서 달래지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책은 일상이고 놀이는 예외였다. 

모두, 삶의 일부였지만 그런 시스템으로 그는 스스로를 조직하고 있었다. 

하나의 매트릭스로부터 또다른 매트릭스로의 전환. 

자기혁신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다면, 이 시기를 그렇게 부를 수 있으리라.

처절하리만치 힘들었지만. 

 

삶 전반에 어떤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일이 쉽지는 않다. 

고3 재수 기간동안 그는 '내면의 혁명'을 추구했다. 

그 이전과의 생활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아니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한 번도 그래 본 적이 없으니, 엄격해져 보는 것도 좋다고. 

 

그런 시간 끝에 대학에 입학했고, 2년의 수련 기간동안의 내공은 

고스란히 대학생활에 반영되었다.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그를 향한 여러 시선의 층위. 

달리고 달렸다. 

대학 입학을 앞둔 2년의 준비기간을 통해 

그 자신의 시간은 탄력을 받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3학기가 흘렀다. 

 

그는 어느 순간 먹먹해지기 시작했다. 

왜 살아야 하는가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왜 공부해야 하는가 

왜 먹어야 하는가 

왜 이야기해야 하는가 

더이상 그는 묻지 않는다. 

그는 묵묵히 사르트르를 바라볼 뿐이다. 

삶에 이유 따위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그것들은 모두 작위니까. 

 

다만 그에게 연료가 떨어진 것만은 분명해보였다. 

 

더이상 책을 잡을 수 없었고 

책을 잡을 수 없게 되자 

하루가 너무도 길게 느껴졌다. 

고등학교 시절을 생각한다. 

축구를 하고, 사물놀이를 하고, 게임을 했다. 

 

새삼스럽게 뭘 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있다. 

학창시절엔 어쩜 그렇게 재미있게 놀았는지. 

돌이켜보니 그땐 삶의 영역이 좁았고, 마땅히 새로울 것도 없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생각이 없었으므로, 그런 반복도 좋았다. 

 

긴긴 하루 

낯선 사람들과 친해지고 어울리고 놀지만 

더이상 허전한 놀이는 즐기지 않는다. 

껍데기의 유희를 그만둔 지는 오래되었다. 

놀이는 여전히 즐겁게 흘러가지만. 

그것은 존재의 축이 굳건할 때의 이야기다. 

 

그는 다음 주에 있을 사촌동생들과의 만남을 생각한다. 

그가 어렸을 때, 사촌동생들과는 무엇이든 재미있게 놀았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새삼스러운 고민을 한다. 

도대체 무엇을 하고 놀 것인가. 

 

그만 나이를 먹은 것이 아니다. 

시간은 흘렀고, 사촌동생들도 세상의 이치에 부대끼며 여기까지 왔다. 

이제, 달라진 상황에서 그들과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해야 할까. 

아니, 이야기는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것이다. 

그렇게 친했는데 아무런 이야기도 없었다. 

 

아이들의 매력이란 이런 것이다. 

이야기, 즉 정체성 없이도 모든 관계를 이어나간다. 

  

이전에 해보지 않았던 걱정과 고민들을 하기 시작했고, 

이전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느끼고 있다. 

 

이 모든 변화를, 어떤 식으로든 긍정할 수 있다. 

하지만 불안의 꼭대기에는 중심이 해체되었다는 사실이 있다. 

구심점. 구심점 없는 삶은 아무것도 주장할 수 없다. 

당위는 없으며, 응시하는 시선만이 배경음악이다. 

 

다시 음식점으로 돌아온다. 

부모님과 함께하는 저녁 식사는 3년 전과 같다. 

그의 부모는 여전히 3년 전과 같은 이야기들을 하며, 

그는 지겨워하는 것조차 지겨워졌고, 지겨움에도 지쳐버렸다.  

 

그는 변한 것이다. 

그러나 더이상 구르지 않는 바퀴에는 멈춤과 동시에 불안이 엄습한다. 

더이상 움직이고 싶지 않으므로, 

어디로 움직여야 할 지 모르겠으므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 하고 싶을 뿐이다. 

잠시 멈추어도 좋다고, 하나같이 말한다. 

그것은 지난 몇 년의 달려온 거리에 대한 보상이다. 

 

무엇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무엇인가 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먹고 자고 싸고 있다. 

원하든 않든 아무것도 안할 수는 없다. 

爲는 선택의 문제가 아닌 존재의 문제다.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외치는 비명은 고통 그 자체다. 

이것은 건강의 문제다. 

 

아직은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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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죽음이 뭔지 알아요. 그것은 시간을 입금해놓은 자신의 통장에 잔고가 하나도 안 남아 있는 상태죠. 이미 다 써 버렸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차압당했거나. 별다른 건 없어요. 그저 파산한 삶을 복구할 잔고가 없는 거죠. 

- 캐비닛. 

  우린 이 순간을 절망, 고독, 회한, 후회, 회의와 같이 다양한 말들로 표현하죠. 

  그러니까, 그 순간에 시간을 빌려올 수 있으면 우리는 살 수 있어요. 말 그대로죠. 시간을 빌린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냐구요? 당연하죠. 살면서 사람은 누구나 시간을 빌리며 살죠. 항상 그러진 않지만. 평소에는 넉넉하다가도 갑자기 숨이 턱 막히는 순간이 있죠. 우울증이 대표적이죠. 그 순간에 누가 말만 들어줘도 죽게 되진 않을 수 있어요. 친구는 그런 거에요. 내 통장에 시간을 보증해주죠. 사람은 살면서, 서로의 시간을 보증해주고 살아가는 거니까. 물론 언제나 예외는 있죠. 하지만 우리는 시간을 빌릴 수 있고, 그건 다른 사람으로부터만 가능해요. 경제학적인 맥락에서는 시간을 입금하지 않고 돈을 입금하니까, 이런 시스템을 두고 '금융'이라고 하죠. 하지만 삶의 순간에서, 우린 이런 것들을 '인연'이라고 한답니다. 불교적으로 이해하면 가장 그 뜻이 가까울 거에요. 인연이 이어지면, 우리에겐 아직 삶을 복구할 잔고가 남아있는 거죠. 

  어른들로부터, '다 빚지고 사는거다'라는 말 들어봤죠? 오래 살면 깨닫는 거에요. 돈 빌리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도 통장에 시간이 없으면 끝이에요. 시간,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조금씩 빌려 쓸 수 있는 시간이 있으면 우리는 죽음을 피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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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방학이다. 

참 지난한 학기였는데, 이렇게 끝나주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학기 끝나기 4주 전쯤부터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무언가 한계점에 다다르고 있다는 느낌, 지쳐가고 있고 회복되지 않고 있다는 느낌. 

그런 씁쓸한 뒷맛으로 기말고사를 마무리했고, 시험에 대한 욕심은 버린 상태다. 

잘 보고 싶다는 욕심조차 들지 않았던 시험이었다. 

입학 후 3학기동안 치렀던 6번의 시험 중 가장 무의미해보이는 시험이었다. 

중간고사까지도 이렇지 않았다. 

이번 학기부터 철학과 복수전공을 처음 시작했고, 

경제학도 이제 본격적인 전공수업이 시작되었다. 

학기가 시작하면서 의욕이 넘쳤고, 공부도 학회활동도 나름대로는 열심히 했다. 

철학 전공과, 경제학 전공은 그 스타일상 많이 달랐지만 

괜찮았다. 일이 많다고 다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이고 

나로 말미암은 선택이었기에, 힘들어도 즐겁게 해낼 수 있었다. 

그게 중간고사까지였다. 

아니다. 중간고사 이후에도 한동안은 괜찮았다. 

학기가 끝나기 한 달 전, 그 때부터 뭐랄까, 슬럼프같은 게 찾아오기 시작했다. 

원래 슬럼프따위는 믿지 않는 나였는데, 

내가 스스로에게, 그리고 타인에게 예민해지면서부터는 

슬럼프의 존재를 믿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재작년 이래로 이런 경험을 잊은 지 오래 되어서, 

아직도 이런 내 모습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어쩌면 고3 재수 2년동안은 참 익숙했던 내 모습인데 

작년 1년은 이런 자신과는 너무 달랐다. 

원래 어떠하다고 할 만한 '나'의 존재는 없다. 

어쩌면 지난 몇 년의 시간은 그 모든 것들이, 내 열정과 의지의 산물이었으니까. 

하자면 할 수도 있는 내 모습들이었고, 그렇게 나는 스스로를 구성해왔다. 

 

그 시간들은 지금 이 순간, 개인사적인 과거가 되어 있다. 

현재는 그것들의 연장선상에 놓여있으나, 어딘가 모를 전환점에 가까워있다. 

아니, 

달라지지 않고서는 

계기를 마련하지 않고서는 

흐르기를 멈춰버린 내 개인사적 시간인지도. 

 

나는 더 성장할 수 있을까? 

퇴행은 불가능한 나이다. 언젠가는 이것조차도 조심해야 할 때가 오겠지만. 

그러나 정체는 찾아올 수 있다. 단 한발짝도 나아갈 수 없는 삶의 궤적. 

나는 그것을 죽음이라 불러왔고 그런 사람들을 살아있다고 보지 않는다. 

아니, 살아 있으되 무의미한 반복을 거듭하는 그런 삶. 

하이젠베르크는 불확정성의 원리로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명제를 '증명'했지만 

삶은 무의미한 반복이 가능하다. 

그런 삶은, 도처에 '좀비'라는 형태로 존재한다. 

역사는 흐르지만 어떤 시간의 한가운데에 멈춰있는 삶. 

얼마를 살든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삶이기도 하다. 

 

폭발적인 열정으로 살아왔던 2009년. 

돌이켜보면 슈퍼맨이 따로 없다. 

공부하고 사랑하고 어울리고 

그땐 내가 하고 있는 모든 행위의 어설픔마저 잊혀질 정도로 

매 순간의 모든 것들이 의욕적으로 충만했다. 

2009년의 나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지금의 내가 생경할 것이다.

 

2009년 하반기부터 2010년 상반기까지는 일기를 별로 쓰지 않았다. 

일기장으로 삶을 지탱했던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중요한 변화였다. 

어느덧 시간 가는줄 모르고 자백하듯 써내려갔던 나에 대한 기록이 

귀찮다고까지 생각되었다. 

물론, 이제 다시 일기장을 부여잡은 채 다시 나를 토해내는 시기가 오고 있지만. 

 

2009. 

그 어느때보다 많은 책을 읽었다. 

경제학, 철학, 역사, 문학 

그게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정신없이 읽었다. 

책을 읽기 위해 지하철로 등하교했고 

약속시간에 사람이 늦어도 책을 붙잡고 있으면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 

 

많은 영화를 보았다. 

이 시기 파스빈더와 맞대면하였고, 

영화 관련 교양을 두 개나 들었으며 

고다르, 트뤼포, 리펜슈탈, 스탠리 큐브릭, 폴커 슐렌도르프 등 많은 감독들과 가까워졌고 

시네큐브와 아트하우스 모모를 쉬이 드나들었다. 

물론 주변 사람들은 그런 영화들을 좋아하지 않는다고도 하였고, 

이런 나를 신기하게도 보았으나 전혀 괘념치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며, 삶은 행복을 향해 존재한다는 신념은 깊어져갔다. 

 

많은 공연을 보았다. 

이모 덕분에 대학로에서 무수한 연극들을 접할 수 있었고 

연극열전을 비롯, 많은 지인들에게도 문화생활 전도사가 되었다. 

 

여행도 많이 다녔다. 

홀로 떠나는 정처없는 방황에서부터 누군가와 함께하는 여행에 이르기까지 

7월의 뉴욕은 매력적이었고, 마이애미는 생애 최고의 휴가였다. 

그렇게 달콤한 휴가는 분명, 열심히 살아왔던 일상, 학기에 대한 보상이었으리라. 

 

식사는 거침없었고, 많은 것들이 왕성한 식욕만큼 활발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술도 겁나게 퍼먹었고, 늦게까지, 심지어 밤도 새어 가며 놀았다. 

그러고도 수업은 다 들었고, 피곤한 하루도 보람있게 느껴졌다. 

 

물론, 돌이켜보면 화려했던 그 때에도 삶의 미시적인 방황과 굴곡은 있었지만. 

 

모든 것들이 그냥 기억속에 내멋대로 조각되어 있는 것이라고 해도,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 하나. 

지치지 않고 달려왔던 1년. 

 

이제 어디로 가야하나... 

잠깐 멈춰 선 것 같은데, 발을 떼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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