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방학이다. 

참 지난한 학기였는데, 이렇게 끝나주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학기 끝나기 4주 전쯤부터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무언가 한계점에 다다르고 있다는 느낌, 지쳐가고 있고 회복되지 않고 있다는 느낌. 

그런 씁쓸한 뒷맛으로 기말고사를 마무리했고, 시험에 대한 욕심은 버린 상태다. 

잘 보고 싶다는 욕심조차 들지 않았던 시험이었다. 

입학 후 3학기동안 치렀던 6번의 시험 중 가장 무의미해보이는 시험이었다. 

중간고사까지도 이렇지 않았다. 

이번 학기부터 철학과 복수전공을 처음 시작했고, 

경제학도 이제 본격적인 전공수업이 시작되었다. 

학기가 시작하면서 의욕이 넘쳤고, 공부도 학회활동도 나름대로는 열심히 했다. 

철학 전공과, 경제학 전공은 그 스타일상 많이 달랐지만 

괜찮았다. 일이 많다고 다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이고 

나로 말미암은 선택이었기에, 힘들어도 즐겁게 해낼 수 있었다. 

그게 중간고사까지였다. 

아니다. 중간고사 이후에도 한동안은 괜찮았다. 

학기가 끝나기 한 달 전, 그 때부터 뭐랄까, 슬럼프같은 게 찾아오기 시작했다. 

원래 슬럼프따위는 믿지 않는 나였는데, 

내가 스스로에게, 그리고 타인에게 예민해지면서부터는 

슬럼프의 존재를 믿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재작년 이래로 이런 경험을 잊은 지 오래 되어서, 

아직도 이런 내 모습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 

어쩌면 고3 재수 2년동안은 참 익숙했던 내 모습인데 

작년 1년은 이런 자신과는 너무 달랐다. 

원래 어떠하다고 할 만한 '나'의 존재는 없다. 

어쩌면 지난 몇 년의 시간은 그 모든 것들이, 내 열정과 의지의 산물이었으니까. 

하자면 할 수도 있는 내 모습들이었고, 그렇게 나는 스스로를 구성해왔다. 

 

그 시간들은 지금 이 순간, 개인사적인 과거가 되어 있다. 

현재는 그것들의 연장선상에 놓여있으나, 어딘가 모를 전환점에 가까워있다. 

아니, 

달라지지 않고서는 

계기를 마련하지 않고서는 

흐르기를 멈춰버린 내 개인사적 시간인지도. 

 

나는 더 성장할 수 있을까? 

퇴행은 불가능한 나이다. 언젠가는 이것조차도 조심해야 할 때가 오겠지만. 

그러나 정체는 찾아올 수 있다. 단 한발짝도 나아갈 수 없는 삶의 궤적. 

나는 그것을 죽음이라 불러왔고 그런 사람들을 살아있다고 보지 않는다. 

아니, 살아 있으되 무의미한 반복을 거듭하는 그런 삶. 

하이젠베르크는 불확정성의 원리로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명제를 '증명'했지만 

삶은 무의미한 반복이 가능하다. 

그런 삶은, 도처에 '좀비'라는 형태로 존재한다. 

역사는 흐르지만 어떤 시간의 한가운데에 멈춰있는 삶. 

얼마를 살든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삶이기도 하다. 

 

폭발적인 열정으로 살아왔던 2009년. 

돌이켜보면 슈퍼맨이 따로 없다. 

공부하고 사랑하고 어울리고 

그땐 내가 하고 있는 모든 행위의 어설픔마저 잊혀질 정도로 

매 순간의 모든 것들이 의욕적으로 충만했다. 

2009년의 나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지금의 내가 생경할 것이다.

 

2009년 하반기부터 2010년 상반기까지는 일기를 별로 쓰지 않았다. 

일기장으로 삶을 지탱했던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중요한 변화였다. 

어느덧 시간 가는줄 모르고 자백하듯 써내려갔던 나에 대한 기록이 

귀찮다고까지 생각되었다. 

물론, 이제 다시 일기장을 부여잡은 채 다시 나를 토해내는 시기가 오고 있지만. 

 

2009. 

그 어느때보다 많은 책을 읽었다. 

경제학, 철학, 역사, 문학 

그게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정신없이 읽었다. 

책을 읽기 위해 지하철로 등하교했고 

약속시간에 사람이 늦어도 책을 붙잡고 있으면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 

 

많은 영화를 보았다. 

이 시기 파스빈더와 맞대면하였고, 

영화 관련 교양을 두 개나 들었으며 

고다르, 트뤼포, 리펜슈탈, 스탠리 큐브릭, 폴커 슐렌도르프 등 많은 감독들과 가까워졌고 

시네큐브와 아트하우스 모모를 쉬이 드나들었다. 

물론 주변 사람들은 그런 영화들을 좋아하지 않는다고도 하였고, 

이런 나를 신기하게도 보았으나 전혀 괘념치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며, 삶은 행복을 향해 존재한다는 신념은 깊어져갔다. 

 

많은 공연을 보았다. 

이모 덕분에 대학로에서 무수한 연극들을 접할 수 있었고 

연극열전을 비롯, 많은 지인들에게도 문화생활 전도사가 되었다. 

 

여행도 많이 다녔다. 

홀로 떠나는 정처없는 방황에서부터 누군가와 함께하는 여행에 이르기까지 

7월의 뉴욕은 매력적이었고, 마이애미는 생애 최고의 휴가였다. 

그렇게 달콤한 휴가는 분명, 열심히 살아왔던 일상, 학기에 대한 보상이었으리라. 

 

식사는 거침없었고, 많은 것들이 왕성한 식욕만큼 활발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술도 겁나게 퍼먹었고, 늦게까지, 심지어 밤도 새어 가며 놀았다. 

그러고도 수업은 다 들었고, 피곤한 하루도 보람있게 느껴졌다. 

 

물론, 돌이켜보면 화려했던 그 때에도 삶의 미시적인 방황과 굴곡은 있었지만. 

 

모든 것들이 그냥 기억속에 내멋대로 조각되어 있는 것이라고 해도,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 하나. 

지치지 않고 달려왔던 1년. 

 

이제 어디로 가야하나... 

잠깐 멈춰 선 것 같은데, 발을 떼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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