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이세돌이 졌다. “즐겁게 뒀다.”고 말했다.


체스 나부랭이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나는 이 사건이 인류 역사에 기록될 것으로 본다. ‘크로마뇽인은 네안데르탈인를 멸절시켰다.’ 정도의 비중으로. 하지만 지금 당장 내 관심이 가는 건 이세돌이다. 애써 쿨한 척 하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그는 괜찮지 않다. 호텔방에서 수건 물고, 벽이라도 치고 있을 거다. 최소한 그런 심정일 것이다.


이기고 지는 것은 상사常事인데, 지금 세 번의 패배가 대수겠는가. 그에게 진짜 문제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상대를 인정해야 한다는 데 있다. 그것은 영혼을 마르게 하는 일이다. 나는 그 기분을 잘 안다. 오늘의 대국을 보며, 내 운명을 결정지었던 그 한판의 바둑을 떠올린다.

 


#. 2

 

오래 전 일이다.

  

어린 시절에 나는 제법 영특한 구석이 있었다. 기저귀를 차고 가감승제를 암산하던 기재가 유치원에서 배울 게 없다고 판단한 부모는 대신 바둑학원을 보냈다. 바야흐로 소년 이창호가 세계 바둑계에 신처럼 군림하던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바둑을 잘 둘 수 있었던 건 성격이 순했기 때문이었다. 폭력으로 암기를 강요하는 것이 아무렇지 않았던 시대였고, 맞기 싫어서 100수 200수가 넘어가는 기보를 수없이 외웠다. 정석이 몸에 배자, 또래 중에는 나를 당할 자가 물론 없었다. 동네 어르신들과 맞바둑도 가벼웠다. 곧 나는 바둑학원의 아이돌이 됐다.

 

그리고 어느 날, 녀석이 나타났다. 녀석은 수상하게도 맨 끝자리를 좋아했다. 잊지도 않는다. 둥글둥글 서글서글한 얼굴. 왠지 어른들은 녀석과 나를 붙여주지 않았지만, 나는 냄새로 녀석이 강자임을 알았다. 먼저 도전해 오기를 기다렸고, 녀석은 자리를 사수 할 뿐이었다. 애가 타고 조바심이 났다. 면이 상하긴 했으나, 먼저 다가간 건 나였다. 갚아 주면 되니까. 그와 마주앉은 나는 당연히 백을 잡았고, 조막손을 들어 맹렬한 기세로 좌하귀 화점에 돌을 놨겠지. ‘딱!’

 

너무 오래된 이야기라, 디테일은 기억나지 않는다. 이미 영악해 수 싸움에 밝던 녀석은 내 포석의 설익은 부분과, 돌의 틈새를 노렸으리라. 그러나 게임의 결과만은 어제 일처럼 선연하다. 성벽이 허물어지듯 압도적인 패배였으므로. 나는 몰락한 엄석대처럼 처절하고, 무력하게 패배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아이돌의 지위는 녀석에게 넘어갔다. 여덟 살 꼬마에게는 견딜 수 없이 가혹한 일이었다.

  

더불어 나의 각광기도 그것으로 종언을 고했다. 새순 같던 총기는 가뭄 맞듯 시들었다. 나는 그 무렵에도 소년조선일보의 전 학년 학습문제를 다 풀 수 있었지만, 정작 고학년이 되어도 정답률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그로부터 늘 하위권을 기어 다니던 성적, 무기력하게 움츠러든 어깨, 빙그레 나부랭이나 응원하며 별 희망 없는 내일이나 궁리하는게 녀석과의 대국 이후 저주처럼 따라 붙은 소년기, 내 삶의 꼬리표였다. 물론 그 후로도 질척거리는 인생이 쭉 이어오고 있다.

 

  

#. 3


 

이제 어른들이 우리를 굳이 떼어놓지 않더라도, 나는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안다. 굳이 쓰린 패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딥 러닝’한 것이다. 그게 내 삶의 자리다.

 

 

몇 달 전. 나는 노동에 찌든 허리께를 주먹으로 두드리며 냉골방의 낡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여느 때처럼 구석의 조그마한 흑백 테레비를 켜며 쿨럭거리는데 아, 꿈인가. 잊을 수 없는 녀석의 얼굴이 내 시선을 잡아끌었다. 녀석이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이제 유명인이 된 그의 이름을 알고 있으리라.


이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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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앓던 폐병도 잊은 채 그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그는 미국의 어마어마한 명문대를 졸업하고, 무슨 기업의 대표 직함까지 가진 화려한 이력의 젊은 정치인이 되어 있었다. 나는 질투와 분노, 회한과 욕정에 사로잡힌 채 그의 얼굴을 노려보며 나도 모르게 읊조렸다. 그래, 모두 다 너의 탓이다. 니가 사는 그 집 그 집이 내 집이었어야 해. 니가 타는 그 차, 그 차가 내 차였어야해 니가 차린 음식, 니가 낳은 그 아이까지도 모두가 내 것이었어야 해 모두가 내 것이었어야 해 모두가 내 아이였어야..

 

관두자.

 

 

#. 4

  

천재는 하늘이 내린다. 그렇다면 천재를 몰락시킨 것은 하늘, 그 자체인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단편, '최후의 질문'를 떠올린다. "빛이 있으라." 언젠가 저 기계도 그렇게 말 할 수 있게 될까.

(http://bbs2.ruliweb.daum.net/gaia/do/ruliweb/family/217/read?articleId=15947372&bbsId=G005&itemId=64)

 

 

더 왈가왈부하고 싶은 기분은 아니지만 언급은 해 두자. 2006년에,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썼다. 지금까지의 그 어떤 시대보다 완전한 그들의 시대가. 나는 당시 모종의 이유로 구글에 대한 자료를 모았고, 새로운 시장의 패러다임을 만드는 구글의 비전에 주목했다. 그리고 지금 구글의 시총은 애플과 세계 1위를 다툰다. 내 예측은 반만 맞았다. 인공지능 연구의 약진을 전혀 변수로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뒤에 올 것으로 나는 SF의 상상력을 빌릴 수 밖에 없는 지경이다.

  

대국에서 알파고는 판을 '흔들고', 실수를 '유도했다'. 딥 러닝 기술은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약한 인공지능의 영역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구글이 인공지능 프로젝트에 관심을 둔 건이 2001년, 관련 업체들을 걸신들린 듯 인수하기 시작한게 불과 2~3년 전이다. 그리고 오늘 이빨을 드러낸 괴물을 보니, 작년에 기술 완성까지 20년을 운운하던 전문가들의 이야기가 우습게 느껴진다.

  

IBM이 필리핀, 인도에 주던 상담 아웃소싱 업무를 AI로 대체한지 오래다. 소비자 만족도도 그 편이 더 낫다. 곧, 기술적인 영역을 넘어서 회계, 자금, 인사 등 기본적 행정 업무는 모두 컴퓨터로 대체될 것이다. 5년이면 컴퓨터는 작곡을 할 것이다. 우리는 선택해야 하리라, 씨피유 쿨러에 구리스나 발라가며 개같이 비참한 인생을 연명하든가, 제 2의 러다이트 운동에 참여하든가. 나는 물론 전쟁을 택하겠다. 네오의 등장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높은 확률로 자동문에 머리통이 끼어 죽겠지.)

 

  

#. 5

 

깊은 시름을 하던 차에, 정치전문가 김늘보가 묻는다.

  

‘당신은 노원 병 주민입니다. 안철수와 이준석 둘 중 하나를 고르시오.’ ..하.

  

삑- 머릿속에 치명적인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 6  

 

 

그래서, 버니 샌더스를 지지하기로 했다.

(https://secure.actblue.com/entity/fundraisers/39795)

  

올해 투자 수익금의 대부분을 샌더스 계좌로 이체했다. 그를 지지해서 살림살이 좀 나아질까봐? 천만에. 현재 미국의 사회 경제 시스템 하에서 지금 샌더스의 ‘민주사회주의’(사실상 사민주의로 본다.)는 허황되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그의 경제정책을 설계한 폴 크루그먼이 왜 힐러리로 방향을 틀었을까. ‘좌파의 부두 경제학’ 비판은 정치적 계산을 감안하고서라도 날카롭다. 나는 달콤해도 근거 없는 것을 믿지 않는다. 섣부른 희망에 근거한 믿음이 재앙을 초래하는 꼴을 지겹게 봐 왔다. 회사에서든, 정치에서든, 시장에서든. 그러나 샌더스가, ‘사회’보다 ‘민주’쪽에 방점을 찍는다면, 그와 그의 지지자들이 만들어 갈 미래는 어쩌면 조금 기대해볼만 할 지도 모르겠다. 버니 샌더스는 폴 크루그먼에게 대답했다. “대화하자, 고쳐 갈 것이다.” 신선하다. 불붙은 아궁이에 돈을 쳐 넣은 꼴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내가 샌더스에게 기부하는 이유다.

  

다 늙어 하얗게 센 머리를 하고, 그가 추슬러 함께 걷고자 하는 자들은 ‘병들고’, ‘신분이 낮고’, ‘소외된’ 자들. 그들이 헤매는 광야에는 수퍼팩이라는 불기둥도, 언론이라는 구름기둥도 없다. Bernie Bros 너희는 안 될 거라고? 알아, 우리는 안 될 거야 아마. 샌더스 지지자들이라면 공감하겠지만, 되는게 더 이상한 인생이다. 근데, 어차피 안 될 바라면, 더 적극적으로, 더 간지나게 안 되는 법을 모색해볼까 한다.

  

  

#. 7

  

나는 왜 패배한 것과, 패배할 것을 응원하는가. 빙그레를, 이세돌을, 또 버니 샌더스를. 그들은 잦아드는 시대의 잔광殘光. 마음을 애태우는 여운이기에. 나는 이 시대가 잊어갈 그것들을 휴머니즘이라고 부르고 싶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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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철 2016-03-13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게 읽었어요.^^ ....저도 3패를 한 날 저녁, 지금 이세돌의 내면은 어떠할까, 혼자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뷰리플말미잘 님이 아주 적절히 표현해 주셨구먼요. 그나저나 대략 5년 전까지만 해도 안철수를 보면 공연히 가슴이 뛴 적이 있었는데, 어쩌다 인생이 참....

뷰리풀말미잘 2016-03-13 19:50   좋아요 0 | URL
한수철님 오늘 대국 보셨습니까? 저는 다섯시간 동안 꼼짝없이 TV앞에 있었는데요. 히히 세상 살고 볼 일이에요! 오랜만에 낮잠도 자고. 아주 기분이 좋은 주말 저녁이네요. 안철수는 넘나 안타깝게 되었죠. 지금은 바닥을 드러내는 모습입니다.

한수철 2016-03-14 00:32   좋아요 0 | URL
직접 보진 못했고, 도처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저도 기분 참 좋았습니다.^^

마지막 경기는 혹여 제2차 한국전쟁이 발발하더라도 중심 잡고 볼 생각입니더!

그나저나,

페이퍼를 자주 좀 올려 주십시오. 저는 님 글 팬인거든요. 헤헤.....

뷰리풀말미잘 2016-03-14 12:38   좋아요 0 | URL
설마 내일 한국전쟁이 일어나진 않겠죠?
제가 게으르긴 하지만 개나 말의 힘이라도 다해 보겠습니다.
저는 지인과 한수철님 얘기를 하곤 합니다. 여기 괴물 같은 아바타가 있다고.

무해한모리군 2016-03-14 11:42   좋아요 0 | URL
한수철님 저도 지인과 한수철님 얘기를 가끔 합니다 ㅎㅎㅎㅎ

뷰리풀말미잘 2016-03-15 10:33   좋아요 0 | URL
저는 한수철님 목각인형도 가지고 있어요!!

무해한모리군 2016-03-14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 뷰티풀한 말미잘님
글과 제목이 이렇게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글은 모처럼 읽어보네요 ^^

분함을 모르는 인간은 이세돌처럼 최고가 될 수 없겠지요. 저는 할아버지가 바둑을 좋아하셔서 같이 한번 둬볼까하고 초중고 내내 특별활동을 바둑으로 했는데 전혀 재밌지가 않았어요. 바둑 장기 당구 뭐하나 재밌지도 않고 이기고 싶지도 않고 제대로 배워지지가 않아서 신비하네요 바둑두는 칠세 소년들이라니.

주말에 정의당에 공보물 풀칠하러 갔어요. 예비후보 공보물인데 후보단일화가 되면 출마가 될런지 모르니 어쩌면 우리 정책을 알릴 수 있는 마지막 홍보물이라고 생각하니 울컥하기도 하고. 나이많은 남자분들과 함께 묵묵히 풀칠을 하니 특별한 느낌이 들었어요. 전에 살던 관악구나 서대문구는 청년들이 훨씬 많았으니까요. 노조활동하셨던 분들이랑 변호사분들이셨어요. 흔히 말하는 486이신분들.

한번이라도 이겨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저처럼 맨날 지는 쪽에 쭉있어온 사람이랑 다르겠죠. 이겨본 경험을 안고 쭉 지는 쪽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살아가기로 한 사람들. 똥통에 빠진 친구를 빼내려고 기꺼이 똥통에 들어오는 좋은 사람들. 아 너무 길고 쓸데없는 답글이네요.

저는 자동문에 머리가 껴서 죽을거라는 걸 받아들이고 있어요. 볕들날 없을거 같고, 쭉 신경쓰이게 꿈틀거려주마 뭐 이런...

뷰리풀말미잘 2016-03-15 10:31   좋아요 0 | URL
저도 모리님 같은 손녀가 있으면 좋겠네요. 할아버지와 바둑을 두려고 그 지루한 걸 그 오랜 시간동안 하셨다니. 바둑은 수담이라고 하잖아요. 손으로 나누는 대화인데, 바둑판을 매개로 할아버지랑 오래 대화를 하신 거겠죠. 얼마나 흐뭇하셨을까.

풀칠을 하셨군요. 지나가며 보는 벽보가 그런 정성으로 붙는 것인지 몰랐습니다.곧 투푯날이 돌아오고 있네요. 저는 정당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고 지지하는 정당도 없지만 이번만큼은 시간과 여유가 허락하는 한, 정책을 검토해 보고 가급적 투표를 할 생각이고요. 휘모리님이 지지하시는 당은 특별히 꼼꼼히 검토해 볼 생각입니다.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는 도대체 어떻게 되고 있는 겁니까!)

마지막 문장 읽고 웃었어요. 사후 경련을 연상했는데 그런 의미로 쓰신 건 아니겠죠?

무해한모리군 2016-03-15 13:13   좋아요 0 | URL
풀칠은 예비후보자공보물 봉투에 했어요 ㅎㅎㅎㅎ 저도 선거지원 많이해봤는데 홍보물 라벨링이랑 풀칠은 처음해봤네요.

솔직히 정의당에 당성이 전혀 없지만, 저는 일단 진보정당 살림도 어려우니 적을 둔다는 주의입니다.

지렁이가 발에 밟혀서 꿈틀거리는 걸 생각했어요. 죽겠지만 밟은 놈도 기분 나쁘지 않을까요? (아니군, 알파고는 기분 나쁘지 않겠군)

저 승진 누락되서 오늘 기분이 바닥이네요. 아... 애놓고 오개월만에 복귀했는데, 슬픕니다... 슬퍼요. 그만 둘때가 정말 되었나봐요.

2016-03-16 08: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뇨리따 2016-03-22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멀티백을 만든 것도, 알파고를 만든 것도, 애초에 과학이란 이름으로 우주의 진실을 밝혀나가기 시작한것도 인간이었죠. 이제 남은 진실을 밝히는 과학의 상당부분은 그들의 몫이 되었을런지 몰라도, 후에 10번의 우주가 태어나고 사라진다 해도 `성경`과 `최후의 질문` 같은 문학은 창조해내지 못할겁니다. 예술은 `영원히` 인간의 몫이겠죠. 완성은 있어도 완벽은 없는 이 세계야 말로 끊임없는 휴머니즘의 원천일것이라..

최후의 질문은 처음 봤을때 아주 잘 훈련된 펀치에 턱을 정확하게 연타로 적중당한 느낌 이었죠. 혹자들이 말하는 뒤통수를 후두려 맞은것 같은 충격. 마지막 구절의 인용구가 뇌진탕을 일으켰어요. 잘은 몰라도 아시모프는 `미친놈`이 분명하다는 걸 깨달았죠. 저처럼 과학에 대해서 전혀 문외한이고, 신은 쥐뿔도 믿어본적이 없는 불경한 놈이 이정도의 충격이었을 것인데.. 과학자들과 신자들, 혹은 박식한 크리스쳔인 말미잘께서 받았을 충격은 얼마나 컸을까요?

이걸 과연 문학의 범주에 놓아도 되는가 하는 의문이 자꾸들어요. 그의 작품은 대표작만 몇개 간신히 읽어본 수준이지만, 에술가의 재능이 작품마다 소모된다고 전제하면, 그 재능의 9할을 최후의 질문에 사용하고, 나머지는 1할의 재능을 나눠서 창작했다고 느낄정도로요. 물론 기본적으로 그만큼 비범한 작가였다는 의미지만 `최후의 질문`은 조금 궤를 달리하는..

그렇잖아요? 보통 사람에게는 상식의 범주라는게 있고, 이걸 조금씩 벗어나는 예술가들을 창조적이라고 표현하는데, 이 인간은 그 작품을 통해서 상식을 벗어난 수준이 아니라 상식을 완전히 뒤엎어 버린 기행과 파격을 벌였어요. 과학을 소재로 글을 쓰면서 클라이맥스에 성경의 정체성을 온전히 담고, 과학과 끊임없이 대립해온 구절을 인용하더니만, booyah!!!! 과학을 과학적으로 부정하고-그게 공상이라도- 뻔뻔하게 신성모독을 하는 동시에 싸움을 멈출줄 모르던 이 둘을 공존시키는 담대함. 이런 말도안되는 모순. 그러나 그런 파격을 떠난 드라마틱 구도의 완성도. 흠잡을 데 없는 모순투성이라니, 볼때마다 전율을 느껴요.

애시당초 문장 자체에서 미학을 추구하는 작가도 아닐뿐더러 `이걸` 문학이라고 인정해 버리면 이 단편의 상징적 스케일이 비해, 다른 모든 문학이 너무 초라해져 버리는 느낌이예요. 라기 보다는 제가 초라해 진달까.. 아주 문학문학한 언어의 아름다움의 극치인 셰익스피어나 말미잘로 한참을 정화해줘야 했어요.
`그래, 이런게 문학적 재능이지. 아시모프는 뭔가 단단히 비틀린게 분명해.`

신을 인정한 동시에 신을 부정한 그에게 내린 재능은, 그의 관점에서 보면 누가 내려준 걸 까요.
그가 말한 신의 모태는 `인류` 였는데.. 그런 의미에서 `천재` 라는 수식을 붙이기 참으로 미묘해지는 작가이므로, 저는 그를 천재라 인정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미켈란젤로 같은게 천재죠. 가령 말미잘이라거나.. 다빈치 같은 탈인류 들이요. 그들의 종교적 공헌을 보세요. 내가 신이어도 하늘이 내려준 재능이란 이런 것들이지, 저 양반은 아닙니다.

아 글쎄, 아니라니까요!

뷰리풀말미잘 2016-03-23 13:21   좋아요 0 | URL
예술은 영원히 인간의 몫일 거라고요? 이것보세요 세뇨리따님. 오늘 뉴스입니다.
http://media.daum.net/digital/all/newsview?newsid=20160323030747035&RIGHT_HOT=R43

AI포비아라고 막 비웃고 그러는데 AI포비아가 없는 자들을 더 비웃고 싶어요. 인공지능이 완성되면, 그것이 왜 인간의 존재에 대해 의문을 제시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생태계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매우 파괴적인 존재입니다. 개체 하나가 살육해 잡아먹는 수십 수백 마리의 닭, 소, 돼지. 심지어 먹을 뿐 아니라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리에 가두고 끔찍한 고문을 가하죠. 단지 혀 끝의 만족감을 위해서!

양계장에 가보셨나요? 손바닥 만 한 우리 하나에 닭을 여섯 일곱 마리씩 넣어놔요. 딱 세 마리가 들어가면 꽉 차는 우리에 일곱 마리가 바글거리려니 몸을 이층 삼층으로 겹쳐야 가능하죠. 윗 녀석은 아랫 녀석 머리에 똥을 쌉니다. 대항해시대 노예무역선은 댈 것도 아니에요. 그런 케이지가 아파트 3층 높이로 100미터씩 쌓여있거든요. 그 케이지 골목은 전체 공장 골목의 100분의 1정도 되죠. 거기에서 부산 시민들이 먹는 달걀의 20%가 나와요. 그리고 달걀의 양보다 더 거대한 분노의 에너지도 나오고 있을겁니다. (전 예전에 틱낫한이 육식을 금하자며 이 비슷한 얘기 할 때 웃었어요.)

어쨌든 그 양계장 사장님이 저한테 계란 한판을 선물해 주셨어요. 저는 비위가 좋아서 그걸 집으로 가져왔습니다. 다음날 달걀을 해 먹으려고 후라이팬에 하나를 깠는데 오, 로똔가? 노른자가 두개더군요. 다음날도 하나를 깠는데 또! (약간 쎄 했습니다.) 그 다음날도 두 개. 받아본 중 가장 인상 깊은 선물이었고, 왠지 욕지기가 치밀어서 먹는 걸 관뒀습니다. 전 엄청나게 비위가 좋은데도 말이죠.

돼지 사육장은 사정이 더 심각해요. 소도 마찬가지죠. 평생 우유를 빨리다가 죽기 전 처음으로 케이지에서 나온 소가 펄쩍펄쩍 뛰는 동영상 보셨나요? AI는 인간을 절멸시킬 겁니다. 종의 보존과 다양성을 위해 일부만 남기겠죠. AI가 자동문에 제 머리를 끼워넣고 CCTV로 제 엉덩짝을 내려다보며 ˝네가 죽지 말아야 할 이유를 대˝라고 할 때, 저는 타당한 이유를 제시할 수 없어요. 반대로 생각해봐도 마찬가지, 제가 AI라도 인류를 절멸시킬 겁니다. 스티븐 호킹도 그렇게 생각하더군요. 파괴적이고 무능한데 더럽기까지 하다니. 잘해 봐야 멋진 집에 우글거리는 바퀴벌레 정도 취급하겠죠. 우리가 AI를 친숙하게 생각한다면 필시 헐리우드 영화의 영향일 텐데, 헐리우드 SF가 우리에게 국뽕 (그것도 미제) 말고 준 게 뭐가 더 있었던가요. 환상은 깨는게 바람직합니다.

말씀하셨듯, 멀티백과 알파고를 만든 것은 인간이지만, 이제 우리는 끝장이에요. 이 미완성과 불완전의 세계는, 휴머니즘의 시대는 종언을 고하고, 새로운 것이 오겠죠. 우리가 네안네르탈인을 몰아내고 새로운 시대를 만들었듯 말입니다. 그것이 지구 역사의 궤적이에요. 끝장이라고요!!

무식하군 2016-03-23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알고나 말하세요 시장 가서 계란 파는 가게 가서 쌍계란 특란으로 달라고 하면 쌍알만 들어있는 계란판을 준답니다 그 사람들은 어떻게 쌍란인지 아냐고요 쌍란은 양쪽 모두 뾰족하거든요 그래서 양계업자는 계란 고를 때 쌍란은 따로 보관합니다 더 비싸게 팔고요 그건 이상해서가 아니라요 그 분은 님에게 호의를 보내신 거예요 뭘 알고나 말을 해야지

뷰리풀말미잘 2016-03-23 21:42   좋아요 0 | URL
죄송해요.. 제가 고등학교를 못나와서..

물론 호의죠. 호의는 고맙게 생각합니다만, 쌍계란 특란을 한 판씩 모아놓고 파는게 자연스럽지는 않아보인다는 거예요. 축우 농가에 가 보면 특등급 한우라고 파는거 등짝에 기름주사 놓습디다. 그거 도축해서 놓고 마블링이 어떻고 저떻고 하죠. 소 등짝에 커다란 주삿바늘 쿡쿡 찔러대는 거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에요. 소가 막 울거든요. 아, 전에 호주에 살았는데 마트를 가 보면 계란값이 천차만별이더군요. 품질은 똑같죠. 당연히 늘 제일 싼걸 사먹었는데 브랜드 네임이 괴상하게도 cage egg였습니다. 닭공장에서 뽑아낸 달걀이란 거였죠. 나중엔 알고서도 사먹었는데, 닭공장에 가 보고 나서 그게 왜 싼가 알았습니다. 닭의 고통으로 돈을 아끼고 있었던 거였어요. 노른자가 두개나 들어있는 달걀을 만들려고 닭은 더 고통스러웠겠죠. 뭐 그렇단 얘깁니다. 제가 지금까지 먹은 계란의 수를 헤아려 보건대, 저는 같은 짓을 당해도, 별 할 말은 없을 거 같아요.

쌍란은 양쪽 모두 뾰족하군요. 유추해 보면 알 수 있었던 사실인데, 생각이 미치지 않았네요.

무식하군 2016-04-06 13:02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위안부 합의 때 돈 적게 받았다고 화를 내던 님 모습을 보며 웃었어요. 좀 무식하신 거 같아요. 앞으로는 계란 함부로 버리지 마세요

뷰리풀말미잘 2016-04-06 18:17   좋아요 0 | URL
아.. 네.. 뭐.. 계란은 함부로 버리지 않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