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식도, 간식도, 짜게도, 맵게도 먹지 않는 내 식사습관은 한국인 치고 제법 건전한 편이다. 나는 대체로 하루에 세끼 밥을 먹는데 혼자 살던 시절에도 휴일이면 아침 점심 저녁을 직접 해 먹었다. 밥솥이 좋았으면 하루에 한번만 밥을 했으련만 금방 밥알이 딱딱해지는 싸구려 밥솥이어서 끼니마다 밥을 해야 했다. 좀 귀찮긴 했지만 그 편이 밥 맛이 좋았기 때문에 별 불만은 없었다. 그렇다고 반드시 하루 세끼를 먹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밥만을 선호하는 것도 아니다. 영양 밸런스에 문제만 없다면 빵이나 면도 잘 먹는다. 

그러고 보면 난 참 입이 착한 편이다. 못 먹는게 없으니까. 먹으면 입 안이 붓는 알러지가 있는 사과랑 체리도 먹고 싶으면 참고 먹는다. 남들 혐오하는 개구리 뒷다리도, 멍멍이 탕도, 바삭한 메뚜기 튀김도, 심지어 살아서 팔딱거리는 은어회도 내겐 단지 음식의 종류로 보인다. 하지만 나도 명함을 못 내밀 만큼 입이 착한 사람이 또 있다.

이 분야의 진정한 본좌, 디스커버리체널, Man VS Wild의 베어 그릴스씨.  




베어 그릴스는 전직 영국 특수부대 SAS 출신으로 제법 멀쩡하게 생긴 아내와 번듯한 자식까지 딸린 양반이다. 직업은 무려 탐험가. 이 양반의 나와바리는 아프리카의 사바나부터 덴마크의 극지며 브라질의 정글까지 카바하는데 남들 안 가는 곳이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근데 이 양반은 도대체 뭘 먹으면서 저 오지를 돌아다닐까? 물론, 열대 사막에 아이스크림이 주렁주렁 열리는 나무가 있을 리도 없고, 북극 황야에 뜨끈한 냄비우동 따위가 있을 리가 없다. 그래서 베어씨의 식사 개념은 우리가 생각하는 통상적인 식사 개념보다 조금 리버럴한 편이다. 예를 들면 사막 모래 틈에서 전갈 한 마리를 잡는다. 그리고 아주 친절하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잡은 전갈의 종류와 위험요소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을 해 준 다음에 독이 든 꼬리 부분을 잘라내고 까끌까끌한 다리 부분을 적당히 손질한 다음 모래를 툭툭 털고 우적우적 씹어 먹는거다. 그리고 반드시 품평을 잊지 않는다. 이런 식이다. “음. 쌉싸름한게 약간 시큼하고 끈적하군요.” 

사실 전갈 정도라면 곱게 패배를 인정하겠지만 물고기 정도라면 약간의 호승심이 생긴다.




처음보는 이상한 모양의 선인장이라면, 나도 그럭저럭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바닷물에서 바로 건져낸 해삼이라면, 눈 한번 꽉 감고 먹을 것 같다.



하이에나가 먹다 남긴 얼룩말 허벅지라면, 조금 고민이 될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죽은 낙타 신장에 들어있는 오줌 직전의 물이라면?  

공포에 질린 통통한 호랑거미라면? 


 
베어씨의 식사태도가 극한 상황에서 인간 생존에 대한 실마리를 던져 주었다면, 타워펠리스 J의 모험담은 인간 이성의 한계에 대해 시사점을 던져준다. 

노블하기가 미잘과 쌍벽을 이루는 J는 중국 쯤은 동네 짜장면집 드나들듯 하는 보기 드문 포부를 지녔다. 그가 중국을 여행할때 일이다. 따라다니던 가이드 녀석이 최고의 요리가 있다며 설레발을 치더란다. 속는 셈 치고 가 보니까 베이징 구석에 있는 식당의 후미진 룸. 뜬금없이 커다란 테이블이 있고 테이블 한 가운데에는 고기 먹을 때 숯불 넣는 구멍처럼 구멍이 뻥 뚫려 있었더랬다. 뭘 구워 먹는덴가 했는데 조금 있으니까 요리사가 웬 바둥거리는 원숭이 한 마리를 가져오더란다. 그리고 뜬금없이 그 구멍에 원숭이 머리를 끼우더니 장치를 이용해 꽉 고정 시키더란다. 그리고는 경악할 틈도 없이 무슨 병 뚜껑 따듯이 커다란 칼로 바둥거리는 원숭이 머리를 절개하더란다. 슥슥. 정신을 수습하고 보니 테이블엔 양념 가루와 숟가락만 덜렁 있더란다.

이건, 해삼이 귀여울 지경이다.   

얼마 전에 식용 원숭이를 어떻게 사육하는가에 대해서 들을 기회가 있었다. 도대체 어쩌다 어떤 경로로 그런 얘기를 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 이의 전문성과 오지랖으로 볼 때 없는 얘기를 하는 것 같지는 않다. 참고로 그는 황우석 사태 때 결정적인 의문을 제기한 과학자중 하나다.

양쪽으로 철창이 가득한 방이 있단다. 그 우리에 원숭이들은 무리로 사육된단다. 필요할 때마다 한 마리씩 꺼내는데 절대로 강제로 끄집어 낼 수는 없단다. 죽기 살기로 저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모든 원숭이 우리의 문을 개방해 놓고 기다린다. 그럼 모든 원숭이가 벽으로 가서 찰싹 붙는데, 딱 한 마리가 제 발로 우리 밖으로 걸어 나온단다. 뭔가 체념한 기색으로. 도대체 왜?

그 얘기를 해 준 그가 그랬다.  

원숭이는 사회적 동물이죠. 사회적 합의가 개인적 의사에 선행하기도 합니다. 

역시 해삼이 최고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다락방 2009-09-30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윽.

역시 해삼이 최고군요. 윽!

뷰리풀말미잘 2009-09-30 22:48   좋아요 0 | URL
해삼 한 마리 하실래요. 통통한 놈으로.

하날리 2009-10-01 0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아저씨 몸매가 좋아요.
근육이 비대하지 않고 늘씬하고 아기자기해요.
언젠가 디스코베리에서 누드로 나온적 있었는데 엉덩이도 예뽀요.

다락방 2009-10-01 10:17   좋아요 0 | URL
앗! 정말 엉덩이도 예뽀요? 급호감 ㅎㅎ

뷰리풀말미잘 2009-10-01 11:47   좋아요 0 | URL
암벽을 기어 올라가는 장면이었는데 언뜻언뜻 보이는 등과 팔의 근육들이 예술이더군요. 하지만 엉덩이라면 저도 어디가서 빠진다는 소리는 안 듣죠. ㅎㅎ

무해한모리군 2009-10-01 0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회적 동물.....
오늘부터 표범종류가 되도록 해보렵니다 --;;

뷰리풀말미잘 2009-10-01 12:01   좋아요 0 | URL
쉽지 않은 길을 걷기로 하셨군요. 하지만 뭐가 되든 전 휘모리님을 응원하겠습니다.

토토랑 2009-10-01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숭이 ㅜ.ㅜ 그렇군여..

뷰리풀말미잘 2009-10-01 12:04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ㅠ_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