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밸류 빅샷 20 - ESG 시대 세상의 가치를 담다
박용삼.우정헌.민세주 지음 / 원앤원북스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우리나라의 대기업인 포스코 경영연구소에서 쓴 책이다. ESG 시대, 포스코에서는 어떤 가치를 담은 경영을 하고자 하는지를 홍보하는 책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들은 리얼밸류 경영을 하겠다고 선언한다. 이에 대한 정의는 프롤로그에 잘 쓰여 있는데 “지금까지의 성장 지상주의Growth for Growth’s Sake와 주주 자본주의 Shareholder Capitalism에 대한 회의론이 쌓여가면서 기존의 기업 경영 방식을 어떻게 손질할 지에 대한 논의”(p.11)가 있어온 환경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에게는 1997년도의 IMF가, 세계적으로는 2000년도의 닷컴 버블 붕괴와 2008년도의 글로벌 금융위기가 문제의식을 던져주었다. 여기에 2015년의 “파리협정을 통해 기업의 환경 파괴 행위에 대해 제동을 걸기로 합의하기에 이른다”.(p.12) 호모 사피엔스인 인간의 생존이 위협받는 상태에서 이윤추구만을 목적으로 삼는 기업의 행위가 계속될 수 없다. “기업의 목적과 가치를 리셋할 시점인 것이다”(p.13)

“포스코는 창립50주년이 되는 2018년에 회사의 존재목적이자 새로운 경영이념으로 기업시민Corporate Citizenship 이념을 선포했습니다.(...) 2022년 3월에는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며 기업시민을 비즈니스에 구현하기 위한 구체적 경영모델로 ‘리얼밸류 경영’을 선언했습니다.(...) 리얼밸류 경영은 기업이 사회와 함께 발전하고 모든 이해관계자와 소통하고 공감하며 더 큰 가치를 창출해나간는 구체적인 메커니즘입니다.”(pp.7~8)
포스코경영연구원 원장님이 쓰신 추천의 글의 한 부분이다. ‘기업시민’과 ‘소통’, ‘공감’ ‘더 큰 가치를 창출해나가는’이라는 키워드가 눈에 띈다.

그렇다면 이런 가치를 어디에서 가져왔느냐, 바로 세상을 바꾼 빅샷(Big Shot, 중요한 사람 또는 거물) 스무 명에게서다. “비록 리얼밸류라는 구체적인 표현을 쓰지는 않았지만 한 시대를 이끌어온 전설적인 CEO들의 머릿속에는 이미 리얼밸류 정신이 탑재되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이 책을 집필하는 동기가 되었다”(p.34) 그래서 이 책에는 선지자형, 수도자형, 개척자형, 구원자형 빅샷을 소개한다. 우리가 이 책을 통해 배워야 하는 것은 “회사가 가진 유, 무형 자산의 활용도를 높이고, 경제, 환경, 사회적 측면의 가치를 창출하는 여정을 살펴보는 것”(p.37)이다. 나는 사실 이 책을 보며 포스코가 픽한 빅샷 스무명도 흥미로웠지만 포스코라는 기업도 새삼 다시 보게 된 면이 있었다. 포스코는 우리나라 경제의 밑바탕이 되어온 철강회사다. 중공업의 밑바탕이 될 수 있는 포스코가 있었기에 삼성도 LG도 생길 수 있었다 하지만 을 이룩할 수 있었다. 하지만 환경적으로는 최악이다. 배터리산업이 중국에서 선두로 나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유럽대륙에서는 기술이 없었던게 아니라, 바닷물 온도를 상승시키고, 공해를 내뿜는 산업에 대한 제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포스코는 어떤 빅샷을 날려줄 CEO를 찾고 있는 걸까? 내가 보기엔 욕심쟁이여서 선지자, 수도자, 개척자, 구원자 이 네가지 유형을 모두 갖춘, 육각형 CEO를 찾고 있는 것 같다. 이 책이 그런 빅샷을 만들어줄 수 있는 동아줄이기를. 그리고 이 문제는 포스코만의 문제가 아니라 중공업 위주의 대기업으로 나라 경제가 굴러가고 있는 우리나라 차원의 문제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준 책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개척자형 빅샷 중, 마이크로소프트의 사티아 나델라 편이 인상적이었다. “PC시대의 소프트웨어 절대강자였던 마이크로소프트는 모바일 시대로 접어들면서 예전의 지배력을 차츰 잃어갔다. 모바일 중심으로 IT가 급속히 재편되고 있는 와중에도 여전히 PC와 윈도우에 집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p.177) 이때 클라우드 사업 담당자였던 사티아 나델라가 MS의 세 번째 CEO로 임명된다. 그는 윈도우와 오피스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며 다른 기술 생태계와 교류하지 않았던 전임 CEO와 달리 “그동안 적대관계에 있던 오픈소스 개발자들과 협력을 강화했다.”(p179) 그러면서 점차 오픈소스 기여도가 높은 기업으로 탈바꿈하며 경쟁력을 높였다. 뿐만 아니라 클라우드와 결합한 Office 365를 론칭해 다변화된 사업구조를 갖추게 된다. 만약 우리나라 사람이 새로운 MS의 CEO가 되었다치자. 전임 CEO가 빌게이츠였고, 그가 리눅스와 같은 오픈소스를 암적인 존재로 이야기한 것을 들었다면 알아서 기느라 개방쪽으로 사업방향을 틀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정말 거대한 공룡으로서 멸종으로 가는 길이 유일했을 것이다. 나는 전임CEO들과의 정반대길을 걷는 사티아 나델라를 보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필요한 인재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과연 우리나라 기업 구조상으로 사티아 나델라가 탄생할 수 있으려나?

“이 책이 포스코그룹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이 당면한 불확실성과 위기를 헤쳐 나가는 좋은 실마리를 제공하리라 확신합니다”(p.9)
미중갈등 사이에 낀 새우가 되버린 우리나라, ESG 방식이 아니면 사지 않을 것이고 세금을 많이 내게하겠다는 EU(요새는 방산산업에 있어서도 EU의 것을 사라는 무언의 압박까지 가하고 있다). 빠른 경제발전을 위해 우리가 힘써왔던 철강과 중공업의 여파로 잃어버린 환경. 첩첩산중 속 우리에게 길을 보여줄 빅샷을 기대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넥스트 레벨 3 : 우주 탐사 - 야무진 10대를 위한 미래 가이드 넥스트 레벨 3
이정모.최향숙 지음, 젠틀멜로우 그림 / 한솔수북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야무진 10대를 위한 미래 가이드’ 넥스트 레벨의 세 번째 책, <우주탐사>다. 초등 고학년 학부모라면 보이저호가 지구의 곁을 떠나 점점 멀어지는 것처럼, 책이 우리 아이로부터 태양계를 넘어 저 안드로메다로 가는게 아닐까, 안타까워할 분들이 많을 것이다. 나 부터 그렇다. 특히 비문학 쪽은 정말 걱정이다. 우리집 애는 어렸을 때 동물원가서도 살아있는 사자 말고 안내그림판에 그려진 사자와 사진찍어 달라던 애다. 다큐보다는 애니를, 책보다는 만화를, 지구상의 동물들보다는 뽀로로, 루피로 시작해 카카오톡 이모티콘으로 그려진 동물들을 더 좋아하는 잼민이.(아.. 슬이가 이 게시글을 보면 안되는데... 하는 걱정이 1도 들지 않는다. 세 문장만 넘어가도 읽지 않는다. 니가 이 글을 보고 나에게 이야기한다면 게임시간 두 시간을 주겠다!)

하지만 초등 고학년의 부모로서 앞으로의 미래 먹거리인 ‘인공지능’(넥스트 레벨, 첫 번째 책 제목이다)에 대해, 지금은 챗GPT에 밀려 조금, 한물갔다고 느낄 법도 하지만 분명 미래세계 생활방식이 될 ‘메타버스’(두번째 책) 그리고 뻑하면 쏘아대는 일론 머스크의 인공위성만 봐도 알 수 있듯 중요해진 우주산업의 첫 걸음, ‘우주탐사’까지. 앞으로 평균수명 200세를 바라보는 잘파세대인 우리 아이들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주제들 아닌가. 어떻게 접하게 할 것인가 부모들의 숙제이다. 초등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유투브에는 물론 이런 영상들이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다른 집 아이는 봐도 우리집 애는 안본다. 그럴 때 쓰는 가장 간편하면서 효율적인 접근방식은 책이다. 그림책에서 글밥있는 책으로 넘어갈 줄 알았으나, 학습만화로 마무리될 뻔한 애들을 구제해줄 수 있는, 그림과 사진 2/3, 글 1/3 구성의 책이다. 게다가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이라는 책의 저자인 이정모 관장님이 쓰신 책이다. 나는 프롤로그 마지막 부분 중 “이 책의 독자들은 요즘 발생하는 무수한 발사 실패, 달 착륙 실패가 얼마나 귀한 경험인지 깨달을 수 있을 겁니다”(p.9)에도 반했다. 우주 탐사에서 배워야 하는 것은 실패다. 이 전의 실패가 이 다음의 트라이에서 어떤 반전을 선사해왔는지를 아이들이 읽고 느꼈으면 좋겠다. “변화는 도둑처럼 찾아옵니다. 그러니 항상 준비해야 합니다. 준비란 역사를 아는 것입니다. 이 책은 인류의 우주 진출이 언제, 누가, 왜,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졌는지 그리고 지금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깊게 살펴봅니다.”(p.9)라는 내용은 덤이고 말이다.

우주탐사의 시작이 사실은 전쟁이었다는 배경을 슬이에게 한번 설명한 적이 있었다. 이 심각한 이야기를 초등학생에게 알려주는게 맞는건지 고민하기도 했다. 정작 아이는 어찌나 재미없어 하던지. 내가 설명을 재미없게 하는 건가, 얘가 관심이 없는건가, 하브루타를 배워봐야 되나, 별 생각을 다 했었는데! 이 책에서는 그런 내용도 만화로 코믹하게 담고있다. 12쪽부터 시작하는 ‘우주 시대의 서막’ 장에서는 1957년 10월, 러시아가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하는 뉴스를 보는, 그 당시의 우리나라 상황이 그려져있다. 그때는 1가정에 1TV가 있을 수 없는 전쟁후 였기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전파사 앞에 모여있다. 특히 두 아주머니의 대화가 인상적이다. “저 쇳덩이를 시방.. 우주로 쏘아 보냈다는겨?”, “뭣 허러 그런 걸 쏘아 올렸댜?” 사실 우주에 관심없는 아이들도 이 아주머니들과 다르지 않다. 요런 아이들의 수준에서 우주 시대의 서막을 설명한다. 이후 냉전시대의 미국과 구 소련의 이야기, 공조를 해야 했던 우주 정거장이야기(레고처럼 조립형으로 설명을 해주니 아이들이 이해하기도 쉬워보인다) 태양계를 넘어 기록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허블과 제임스웹, 보이저 호와 칼 세이건의 이야기(이 부분을 읽으며 코스모스가 두 페이지에 요약이 되네, 생각했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써내려갈 우주 탐사의 미래, 거기에 ‘아주 오래된 질문들’의 해결을 우주탐사에서 찾아보려는 인류의 고민을 최대한 간결하고 이해하기 쉽게 써놓았다. 비문학을 읽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면 이 책, 추천하고 싶다.

우주 탐사의 진행 성적이 곧 국력과도 같으니 그동안 K 웨이브에 휩쓸려 자화자찬 뉴스만 보던 아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궁금하기도 하다. 사실 우리나라는 현재 미래 먹거리가 될 배터리나 로봇, ESG 관련 산업이나 특히 우주탐사에 대해서는 암울한 중간성적표를 쥐고 있다. 애들이 이 책을 읽고 충격받을 수도 있겠지만 이 책에서 우주에 대한 지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프롤로그에 써 있던 실패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이 실패를 배웠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실패가 좌절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회복탄력성의 동력이 되어 우주로 뻥뻥 날아올랐으면 좋겠다. (근데 우주는 진짜 부모가 쏘아올리는 활로는 안 될 것...읍읍)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쩌면, 사회주택 - 당신의 주거권은 안녕하십니까?
최경호 지음 / 자음과모음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역대 대통령 후보들은 항상 집값을 잡아내겠다는 공약을 내세웠으나 성공한 사례가 없어 모두 거짓말쟁이가 되었다. 왜 이토록 부동산은 오르기만 하는 걸까? 저자는 한국에만 존재하는 전세에 대해 1장에서 자세히 이야기하며 집값이 오르는 것까지 임차인이 부담했던 상황을 도마 위에 올린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집값이 떨어졌을때는 임대인이 그 만큼의 책임을 지거나, 공급자들이 조금 더 책임을 전가받는 해결방안을 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공으로 ‘사회주택’ 어떠냐고 살포시 묻는다. ‘사회’라는 단어에, 그럼 북한과 중국의 사회주의인가 싶기도 할테지만 그렇지 않다. 저자 역시 ‘Social Housing’ 이라고도 하지만 ‘Public Housing’이라고 덧붙인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것들이 진보스럽게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네덜란드, 오스트리아의 나라를 이야기하며 “도시화 과정에서 부담 가능한 임대료의 주택을 공급하려는 것에 좌우의 구별이 없었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흐름은 이들 나라의 이념적 대립이 적어서 가능했던 것이 아니라 거꾸로, 함께 문제를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이념적 대립이 적어진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사회가 주택을 만들지만, 주택이 사회를 만들 수도 있으니까.”(p.120)이라며 좌우 수렴의 역사에 대해 설명한다.

나 역시도 그렇게 도파민을 많이 가진 사람이 못되는데(도파민 많은 쪽은 진보성향) 집 문제에 관해서는 이런 대안이 반갑기도 하다. 지금이야말로 제대로된 해결책을 제시해야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영끌하는 청년층이 안쓰럽다. 일본의 자산 중 80%를 손에 쥔 60대 이상의 노년층이 새로운 것에 투자보다는 손에 쥐고 있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그래서 일본의 젊은 세대들은 우리나라 청년들처럼 영끌 할 의욕조차 잃었고, 지금의 잃어버린 30년을 지냈다고 말이다. 한국사회는 깡통전세의 도미노가 지나가고 있는 중이다. 갭투자로 인한 집장사는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를 피폐하게 만들었다. 반전세더라도 월세를 내야하는 젊은이들은 좁은 방 구석에서 숨만 쉬어도 돈이나갈 수 밖에 없는 형편이다. 특히 지방에서 자란 청년층은 더하다. 이러한 숨막히는 구조는 결국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 방향으로 흐른다. 가장 큰 원인은 집값이라고 생각한다. “안정된 주거 공간, 그곳에서 미래를 준비하고 돌봄을 주고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보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회주택의 역할이 필요한 이유입니다.”(p.12) 저자의 이 말에 200% 공감한다.

이 책은 총 4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1장에서는 주거 이야기로 난 이 부분에서 전세에 대해 새로운 지식을 얻었다. 2장은 사회주택에 대한 글이다. 스웨덴 학자의 복지 삼각형 그림에 따라 “호혜성을 바탕으로 공공의 지원을 활용하여 주거 선택권을 확장하는 주택”(p.66)이라는 사회주택의 정의가 쓰여있다. 3장은 우리 한국사회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사회주택의 예시다. 홍시주택, 쉐어어스, 자몽하우스 등등 훈훈한 미담이 쓰여져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며 이런 사회주택에 입주한 이들이 부럽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공동체성을 가진 이들만이 적응할 수 있겠다, 싶다.(I성향이 97%인 나는, 3장을 읽는 동안만 혹했다..)4장에서는 사회주택과 함께하는 미래인데 다보스회담에서 볼 법한 문장들과 함께 ESG, 지속가능성, 회복탄력성이 다 같이 존재하는 그런 유토피아가 그려져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말은 에필로그에 있었다.
“우리가 내 집 마련을 원하는 이유는 벽돌과 콘크리트 자체를 소유하고 싶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안정적으로 양호한 주거 환경에 거주하면서 노후에 대비할 수 있다는, 자가소유를 통해 얻는 더 큰 근원적인 가치 때문이었습니다.(...) 노후 대비에 대한 걱정이나 자녀 독립 시에 전세금이라도 마련해주어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나고, 아이를 키울 엄두도 낼 수 있으며, 에너지를 생산해서 생활비를 줄이고 기후 위기에도 대응하는 주택에서 살 수 있게 된다면 어떨까요?”(p.293)

그러게 이건 정말 현실에선 이루어질 수 없는 유토피아일까? 나도 저자와 함께 마구마구 공을 쏘아올리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평범하여 찬란한 삶을 향한 찬사 - 완벽하지 않아 완전한 삶에 대하여
마리나 반 주일렌 지음, 박효은 옮김 / FIKA(피카)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평범하여 찬란한 삶을 향한 찬사>는 벨기에 조형 예술가 자크 리젠의 부고로 시작한다. 이 예술가는 “실패의 예술이 엄연히 존재한다고 주장”(p.5)했던 사람으로 실패 전문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저자는 이 예술가의 미학이 ‘중요하지 않은 것의 중요성’을 환기하는 것이었다면, 자신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보고 싶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우리는 ‘대단한’ 무언가가 되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해버리지 않는가.”(p.8)라며 책 제목의 평범과 찬란이 동등한 의미로 쓰이는, 이 책을 써냈다. 왜 작가는 평범한 것이 찬란하다고 했을까? 보통의 작가라면 평범함이라는 소재에 대해 글을 쓰지 않았을텐데. 이 궁금증에 평범하기 그지 없는 나는 저자인 마리나가 향하는 그곳을 향해 한 걸음씩 따라가며 완독했다. 총 12장의 목차를 따라 읽다보니 평범함의 다양한 프리즘이 보인다. 이걸 작가는 찬란하다고 표현했구나, 싶다.

“평범함을 뜻하는 프랑스어 ‘메디오크리테’는 ‘메디어스medius’,(중간)와 ‘오크리스ocris,(산)’라는 라틴어에 어원을 두고 있다. 이는 글자 그대로 가파른 산 중턱 외딴 구석에 갇혀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우리가 이런 적막한 산골에 틀어박혀 있다고 상상해보자.(p.43)” 여기서 알수 있듯이 평범함은 산 중턱의 외딴 구석이라는 어원에서 온 것이다. 사람들은 산의 정상만을 정복하려 한다. 중턱에서 멈추고 되돌아오는 것은 실패자의 행동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동안 산 중간에서 보지 못했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존재를 이야기한다. 책 표지에도 세로에 “인류는 평범한 중간의 이들 덕분에 살아남았다!”라고 쓰여있다. 영웅이 아닌 우리가 그동안 주목하지 않은 이들의 평범함을 바라보아야 함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5장이 좋았다. 5장의 제목은 ‘눈에 띄지 않는 사람들을 바라보기’다 여기에서는 능력주의라는 폭군에 휘둘린 저자의 모습이 서술되어 있다.
“나는 위대한 예술, 즉 극도로 난해한 철학에 헌신하고 싶었다. 이 특별한 영역에 들어가면 불안과 우울이라는 악마로부터 나를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돌이켜보면 효과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별 효과가 없었던 것 같다. 위대한 예술, 즉 추상적 관념이 인간을 구원해줄 것이라 믿었던 나는 너무나 경직되어 있었다. 성취보다 사유를 중요하는 삶을 선택한 것을 정당화하고 싶었다. 스스로 저급 예술에 맞서 용맹하게 싸우고 있는 돈키호테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나는 나 자신의 위선과 싸우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나는 내 주변에 존재하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경이로움을 보지 못한 것이 아니라 보지 않기 위해 눈을 가리고 있었다. 다른 이들과 구별되기 위해, 평범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상업적이거나 싸구려 쾌락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의 미학을 추구했다. (...) 순수한 영혼에 대한 열망과 모든 현실적 감정을 거부한 나의 태도는 일상의 만족으로 가는 길을 막는 걸림돌처럼 나를 평범하여 찬란한 삶으로부터 멀어지게 했다. (pp.162~163)”
나 역시 이 부분을 읽으며 그동안 내가 주었던 유난히 짠 별점이 떠올랐다. 지금 역시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무언가, 더 위의 것, 더 찾기 힘든 것을 찾아 헤매며 독서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범한 것들을 평가절하한 나의 시선의 위치가 보였다. 소설에는 수많은 영웅이 아니라 소시민들이, 찌질이들이, 실패자들이 주인공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 자신을 투영해볼 수 있다. 이것이 소설이라는 장르의 유의미한점일 것이다. 나는 이 평범한 주인공들의 서사가 위기에서 절정으로 치닫는 고군분투기를 읽으며 마치 남 이야기 구경하듯, 강건너 불보듯 본 것은 아닌가, 생각해본다. 그렇다면 이 평범한 주인공들이 내포한 메시지를 보지 못한 눈먼 독자에 불과했을테니 말이다.


*이 책은 연필을 들고 읽을 것을 추천한다. 평범하여 소소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문단이 끝나고 다음의 새로운 단락마다, 내가 보지 못한 부분에 대해 짚어주는 저자의 ‘소듕’한 문장들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들의 집
현이랑 지음 / 황금가지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나라에서 아파트는 부를 의미한다. 젊은이들에게는 일자리가 있고 아이들에게는 학군지가 있고, 노인들에게는 근처에 병원이 있는, 이 좁은 도시에서 둥지로 삼기에는 닭장같은 아파트 구조가 최선이다. 아파트는 구축이냐, 신축이냐, 어느 건설사가 지었느냐, 역세권인가, 숲세권인가, 이왕이면 강뷰가 있는 곳인가, 다 내려다볼 수 있는 로얄층인가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전청조의 사기가 먹혔던 이유는 그가 시그니엘에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시그니엘을 알고 있는 한국인이라면 99.999999...%가 입주하고 싶어하는 그 아파트, 시그니엘이니까. 명주시의 2층 단독주택에서 깨볶던 은주는 몰랐지만, 어미새가 된 은주는 지안이의 둥지로 마땅한 곳을 찾아야만 했고 그것이 부동산 스릴러극의 시작이 된다.

<새들의 집>에는 새의 이름을 딴 아파트들이 나온다.
은주가 이번에 이사하는 아파트의 이름은 공작성운이다. 표지에 그려진 공작이 바로 이 그림일 것이다. 공작의 깃털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은주의 모습을 보고 이 책을 읽으면 생각할 거리가 많아진다. 은주의 친구, 혜경이 가진 오피스텔의 이름은 푸른숲버드힐시티이고, 이들의 대모와도 같은 존재, 민정언니의 주소는 덕원피닉스메트로아트파크이다. 심지어 이 언니는 결혼도 안했다. 그래서인지 이미 홀로 유아독존 불사조인 피닉스를 담은 아파트에서 산다. 이 소설 시작 전, 주어진 지도위의 아파트 이름들은 죄다 새들 이름이다.

뿐만 아니라 이 소설에는 새들을 닮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관리사무소 처마 밑 할머니들은 참새들 같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 끝 부분에 동대표 아저씨가 기다란 벤치형 나무의자를 놓아주시는데 이것도 재미있다. 참새와 나무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악역을 맡고 있는 삐죽사장의 부동산 이름도 펠리컨이다. 커다란 비둘기를 꿀꺽 삼키는 펠리컨은 유툽 동영상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 소설을 읽다보면 새에서 비롯된 표현들도 많아 제목과의 연관성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디테일을 읽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우편함마다 흰 비둘기 같은 봉투들이 하나씩 꽂혀 있었다.(p.37)”
“사람들은 마치 불길한 소식을 찾아 헤매는 까마귀처럼 몰려들어 주위를 둘러 싸고 무슨 말들인가를 수군대고 있었다.”(p.67)
“일찍 일어난 새가 피곤하다더니 그 말이 딱이구먼.”(p.162)
“누굴 닭대가리로 아나······.”(p.243)

이토록 많은 새들의 표현을 담은 작가. 그가 생각하는 새와 아파트는 어떤 관계일까? 여기에 대해서는 참새할머니들이 알려주신다.

“여기가 원래 새 무덤이었잖아.”
“새 무덤?”
“그래. 7동에 민아 할머니 알지, 이번 봄에 요양원 들어간. 그 사람이 여기 토박이였잖아.”(...)
“글쎄들어보니까 여기가 늪이었다는구먼그래. 보통 늪이 아니라 연고도 없는 사람들 시체 걷어다가 아무렇게나 던져 놓는 곳이었대잖아. 그래서 새들이 그거 뜯어 먹으려고 달려들었다가 늪이 어찌나 깊은지 내려앉는 족족 가라앉아버렸대.”(pp.242~243)

이 부분을 읽으면 이 책의 전체적인 스릴러의 내용이 한번에 이해된다. 뜯어먹겠다고 내려앉는 순간, 나락을 가는 곳. 이걸 아파트화한 이름이 “공작성운”이었군.

이 새들이라는 상징외에도 나는 개인적으로 자주 등장하는 여름꽃 비비추가 주는 의미가 있었다. 처음에 푸릇푸릇한 새싹처럼 돋아나기 시작해서 기다란 꽃대를 새우고 거기에 보라색 꽃들이 세로로 피어난다. 난 이 꽃이 아파트처럼 보이지 않았는데 확실히 작가님들은 남다르다. 이제 앞으로 나는 우리 아파트 한쪽에서 피어나는 비비추를 보면 이 책이 떠오를 것 같다.

최근에 읽은 한국형 스릴러 소설 중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지안이가 하는 말들이 제일 무서웠다. “저 아저씨도 새가 되려고 해?” 지안이가 코난도 아니고 이 어린 애 주변에서는 사람 새를 몇 번을 보여주는 것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