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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신 - 전래된 한국의 미의식
강병우 외 지음 / 히스테리안 / 2026년 7월
평점 :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 ‘과학이 판치는 오늘날, 숨어버린 우리나라의 전통 ’신‘’에 대한 이야기인가, 하는 부채를 흔들고 칼춤을 추는 무당을 떠올렸더랬다. 나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 이 책은 하나의 '신'을 설명하기 위한 책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유 속에서 나타나는 여러 숨은 '신'의 얼굴을 살펴보는 연구의 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p.12)
10인의 공저를 눈여겨 봤어야 했다. <숨은신—전래된 한국의 미의식>은 10명의 예술가와 독립 연구자들이 만들어낸 공동 연구 결과물이다. ‘신’이라는 동음이의어를 공유하면서 의미는 다른 다섯 개의 한자- ‘불탄 끝 신’, ‘걷는 모양 신’, ‘아이 밸 신’, ‘나아갈 신’, ‘믿을 신’-이 펼치는 변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불탄 끝 신’에서는 신이 사라진 자리를 찾는 저자들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유대인 수용소, 3.1운동이 일어났던 광화문과, 이름없는 민중들이 함께 했던 동학농민운동이 벌어졌던 공간의 비극을 주시한다. 이 공간 속 존재들은 나로 하여금 "세월을 맞으며 모서리가 둥글게 마모"(p.25)된 돌들이 쌓여 미세하게 흔들리는 돌탑을, "탁 트인 부여의 하늘과 뜨거운 태양이 그리는 아지랑이"(p.65)를 감각하게 만든다.
"저 먼 옛날에도 생이 시작되는 순간마다 있었을 어떤 힘이 나를 관통한다."(p.65)
2장 ‘걷는 모양 신’의 처음 글에서는 방싯이라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는 한 명창의 소리를 듣는다. 이 목소리는 평창, 홍천, 의성, 동두천, 목포, 서산, 부여로 독자를 끌고 다닌다. 그곳에서 들은 소리, 즉, 음악에는 이야기들이 실려있고 각각의 이야기들이 켜켜이 쌓여 "불현듯 허공에 고한 소리"(p.142)를 남긴다.
3장 ‘아이 밸 신’에서는 '한'에 대해 "애도를 통한 슬픔의 해소가 스스로 차연(differance)함을 받아들이는 태도"라 정의하며, "애도들이 지연"(p.207)되었기에 한이되었다고 설명한다. "들을 수 없을 것을 들으려는 이 고통스러운 태도들"(p.217)을 우리의 숙제로 남긴다.
4장 ‘나아갈 신’ 에서는 우리의 미래, 어린이에 대한 글이다. 저자는 ‘어린이 다시 쓰기'에서 신분에서 나이로 바뀐 오늘날의 불평등함을 찾아내며 자신의 학급 어린이들에게 '예의있는 반말'을 시도한다. 그 과정에서 실수하기도 하지만, 빠른 성찰과 사과를 통해 계속해서 나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마지막 5장 ‘믿을 신’에서는 일본의 야나기 무네요시가 조선의 미를 '비애'로 해석하며 굳어진 식민주의적, 제국주의적 미의식을 어떻게 다룰지 질문으로 던지며 시작한다. 김지하 시인이 '한'을 '흰 그늘'이라는 개념으로 제시한 것과 앞서 4장까지의 저자들이 찾아냈던 '숨은 0'들은 5장의 질문에 대한 실마리로 읽혔다.
" '흰'을 어둠을 품은 빛으로 은유" 하고, "삶의 결을 온몸으로 통과한 자의 감각으로 재해석"(p.282)하며 "우리는 어둠을 없애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둠 속에서도 함께 서 있기 위해 대화를 이어간다"(p.289).
또 각설이 품바의 말과 소리 사이에서 찾아낸 신명과 녹음이라는 매개를 통해 재현된 메아리의 변주는 이 과정에서 지연된 애도들이 해소되는 경험으로 읽혔다. 마지막 챕터에서는 기록을 통한 이야기가 남겨온 무수한 "시간의 무게와 두께"(p.334)가 ‘이어’짐을 느꼈다.
"예술가은 자신이 살아가는 시간과 장소, 그리고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경험을 연구의 재료로 삼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개인의 삶은 다시 사회와 역사, 문화의 맥락 속으로 확장됩니다."(p.11)
열 명의 저자들이 남긴 이 책이 내 삶의 맥락에서도 확장되기를, 돌탑을 쌓듯 이 책을 책장에 꽂아본다. 다른 책들과 함께 어둠을 밝히기를. 흰그늘을 만들어내기를. 또 다른 책으로 시간의 무게와 두께가 이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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