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에 시럽 뿌리기 - 셋셋 2026
이영주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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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부터 한국문학의 샛별이 될 작가들을 소개해온 ‘셋셋’시리즈의 세 번째 문학 앤솔러지 <상처에 시럽 뿌리기>를 소개한다. 작가, 독자, 출판사 이 셋의 만남을 ‘셋(set)’한다는 뜻으로 한겨레교육과 한겨레출판이 함께한다. 아직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신인들의 첫 작품이라 더 의미있다. 6명의 시와 소설들이 메인이지만, 맨 마지막의 ‘상처와 시럽-당신에게’라는 편지형식의 글들도 참 좋았다. 오랜만에 받아보는 스팸아닌 편지이기도 하거니와 이들의 작품을 하나씩 읽은 터라 그 감정들을 공유한 특별해진 사이로 느껴져서 일까, 이분들의 글들을 더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응원하게 된다.

<상처에 시럽 뿌리기>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엥?스럽(!)다. 상처에 시럽을 뿌려, 약이 아니고? 소금이 아니어서 다행인가? 아닌가? 설탕도 소금처럼 아프지 않나? 시럽이 코팅처럼 굳으면 그 속에 상처는 나을까? 체온이 36.5도라 코팅이 안되지 않을까? 점점 소설과 상관없을 것 같은 수많은 생각들이 꼬리를 문 채 책을 넘긴다.

살인당한 주인보다 초코라는 개를 더 안쓰럽게 여기는 나와 비슷한 또래의 아줌마,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살아가는 한 남자, 피에르를 무작정 기다리고 빌리를 위로하는 시적 화자, 10년만에 장미희에서 장은혜로 바뀐 이름의 엄마를 만나게 되는 재연, 눈이 안보일수록 동생과 사이는 더 멀어지지만 두정언니와는 더 가까워지는 지영이와 한국사회가 만들어낸, 상처 가득한 사람들을 자신의 아픔처럼 느끼는 시인도 만난다.

최근 나는 문학보다 비문학을 더 선호한다는 성향을 눈치챘다. 세상에는 더 알아야 할 일들이 많고, 내 자신의 내면보다 외부적인 세계에 관심이 많다고 해석해왔다. 이 책을 읽고 나는 내가 문학을 멀리한 이유를 새삼 깨달았다. ‘여름의 갈래에서’ 주인공이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어머니가 포터를 몰아 아버지를 찾아내는 해피엔딩의 순간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후, 부모님의 결말은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았다. 나 역시 그랬다. 어릴 적 읽던 책들과 달리 어른이 되어 접하는 책들은 더 이상 해피엔딩이 아니었다. 나는 새가 없는 공원과 현종이, 빌리같은 사람, 두정언니, 남는 의자와 거리를 두고 싶었다. 하지만 이 책이 익숙한 상처를 내 눈 앞에 들이민다. 내 삶 속 어떤 사람들과 닮아있는 이 이야기들이 익숙하니 아프고 미웠다. 문학은 보고 싶지 않은 일들을 바라보게 만든다.

“저는 이 소설이 누군가에게 대단한 위로나 해답이 되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만약 이 소설을 읽고 당신의 아버지를 더 미워하게 된다면, 그것도 괜찮습니다. 자녀를 안쓰럽게 여겨도 좋고, 어머니의 쓸쓸함을 오래 생각하거나 무심함을 탓해도 좋습니다. 저는 소설이 반드시 누군가를 용서하게 만든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한 사람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보게 만든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p.185)

상처에 시럽을 뿌린다는 의미가 뭔지 알 것 같다. 이 책을 읽는다고 상처들이 낫진 않는다. 하지만 내 상처에 나도 모르게 뿌려둔 나만의 시럽을 찾아보기도 한다. 그렇게 다른 이들의 상처를 보고 ‘너만 아픈거 아니야, 다들 그렇게 살아’ 대신, ‘아프겠다’, 라는 말을 할 줄 아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본다.
#셋셋#한겨레출판#하니포터13기#하니포터#이영주원영원강다운김나은신은솔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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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신 - 전래된 한국의 미의식
강병우 외 지음 / 히스테리안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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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 ‘과학이 판치는 오늘날, 숨어버린 우리나라의 전통 ’신‘’에 대한 이야기인가, 하는 부채를 흔들고 칼춤을 추는 무당을 떠올렸더랬다. 나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 이 책은 하나의 '신'을 설명하기 위한 책이 아니라 서로 다른 사유 속에서 나타나는 여러 숨은 '신'의 얼굴을 살펴보는 연구의 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p.12)

10인의 공저를 눈여겨 봤어야 했다. <숨은신—전래된 한국의 미의식>은 10명의 예술가와 독립 연구자들이 만들어낸 공동 연구 결과물이다. ‘신’이라는 동음이의어를 공유하면서 의미는 다른 다섯 개의 한자- ‘불탄 끝 신’, ‘걷는 모양 신’, ‘아이 밸 신’, ‘나아갈 신’, ‘믿을 신’-이 펼치는 변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불탄 끝 신’에서는 신이 사라진 자리를 찾는 저자들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다. 유대인 수용소, 3.1운동이 일어났던 광화문과, 이름없는 민중들이 함께 했던 동학농민운동이 벌어졌던 공간의 비극을 주시한다. 이 공간 속 존재들은 나로 하여금 "세월을 맞으며 모서리가 둥글게 마모"(p.25)된 돌들이 쌓여 미세하게 흔들리는 돌탑을, "탁 트인 부여의 하늘과 뜨거운 태양이 그리는 아지랑이"(p.65)를 감각하게 만든다.

"저 먼 옛날에도 생이 시작되는 순간마다 있었을 어떤 힘이 나를 관통한다."(p.65)

2장 ‘걷는 모양 신’의 처음 글에서는 방싯이라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는 한 명창의 소리를 듣는다. 이 목소리는 평창, 홍천, 의성, 동두천, 목포, 서산, 부여로 독자를 끌고 다닌다. 그곳에서 들은 소리, 즉, 음악에는 이야기들이 실려있고 각각의 이야기들이 켜켜이 쌓여 "불현듯 허공에 고한 소리"(p.142)를 남긴다.

3장 ‘아이 밸 신’에서는 '한'에 대해 "애도를 통한 슬픔의 해소가 스스로 차연(differance)함을 받아들이는 태도"라 정의하며, "애도들이 지연"(p.207)되었기에 한이되었다고 설명한다. "들을 수 없을 것을 들으려는 이 고통스러운 태도들"(p.217)을 우리의 숙제로 남긴다.

4장 ‘나아갈 신’ 에서는 우리의 미래, 어린이에 대한 글이다. 저자는 ‘어린이 다시 쓰기'에서 신분에서 나이로 바뀐 오늘날의 불평등함을 찾아내며 자신의 학급 어린이들에게 '예의있는 반말'을 시도한다. 그 과정에서 실수하기도 하지만, 빠른 성찰과 사과를 통해 계속해서 나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마지막 5장 ‘믿을 신’에서는 일본의 야나기 무네요시가 조선의 미를 '비애'로 해석하며 굳어진 식민주의적, 제국주의적 미의식을 어떻게 다룰지 질문으로 던지며 시작한다. 김지하 시인이 '한'을 '흰 그늘'이라는 개념으로 제시한 것과 앞서 4장까지의 저자들이 찾아냈던 '숨은 0'들은 5장의 질문에 대한 실마리로 읽혔다.

" '흰'을 어둠을 품은 빛으로 은유" 하고, "삶의 결을 온몸으로 통과한 자의 감각으로 재해석"(p.282)하며 "우리는 어둠을 없애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둠 속에서도 함께 서 있기 위해 대화를 이어간다"(p.289).

또 각설이 품바의 말과 소리 사이에서 찾아낸 신명과 녹음이라는 매개를 통해 재현된 메아리의 변주는 이 과정에서 지연된 애도들이 해소되는 경험으로 읽혔다. 마지막 챕터에서는 기록을 통한 이야기가 남겨온 무수한 "시간의 무게와 두께"(p.334)가 ‘이어’짐을 느꼈다.

"예술가은 자신이 살아가는 시간과 장소, 그리고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경험을 연구의 재료로 삼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개인의 삶은 다시 사회와 역사, 문화의 맥락 속으로 확장됩니다."(p.11)

열 명의 저자들이 남긴 이 책이 내 삶의 맥락에서도 확장되기를, 돌탑을 쌓듯 이 책을 책장에 꽂아본다. 다른 책들과 함께 어둠을 밝히기를. 흰그늘을 만들어내기를. 또 다른 책으로 시간의 무게와 두께가 이어지길.

#숨은신#전래된한국의미의식#강병우강정아김민주김수환남궁예은손혜림오윤주유은이연화이인현 #히스테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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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들판 - 침묵은 어떻게 역사를 드러내는가
마거릿 주혜 리 지음, 장상미 옮김 / 한겨레출판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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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적 성향을 가진 ‘더 네이션’ 잡지의 편집자로 일했던 저자 마거릿 주혜 리는 한국계 미국인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이다. 하버드대학교 래드클리프연구소와 한국국제교류재단의 펠로십을 받아 봉인되어 있던 가족의 역사를 추적했다. 언론학을 전공한 저자는 할아버지 이철하 선생의 독립운동적 공적을 밝혀냈고, 사후 60여 년 만에 할아버지가 독립유공자로 인정받는 데 기여했다.

이 책은 할머니와의 세 차례에 걸친 깊은 인터뷰를 축으로 프롤로그에서 에필로그로 이어지는 3부 구조를 취한다. 저자의 아버지가 두 살 때 돌아가신, 중년은 커녕 할아버지가 된 적이 없었던 스물 일곱의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항일 동맹휴학과 비밀결사 활동을 이끌었으나 공산주의 이력으로 인한 수감생활로 집안이 숨겨야 했던 인물이었다. 이 책은 저자의 조부라는 한 명의 개인 일대기를 넘어, 두 자녀를 홀로 키워내기 위해 남편의 책을 불태워야 했던 할머니의 침묵, 그리고 한국전쟁과 도미를 거치며 후손들이 짊어져야 했던 소외의 역사를 저자는 담담하게 기록했다.

“아무도 일제강점기 기록에 담긴 정보를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이제는 그 시절에 공산주의자였다는 사실이 죄가 되지는 않지만, 자기 가족이 식민 지배 세력, 즉 일제에 협력한 인물로 지목될지 모를 기록을 누가 밝히고 싶어 하겠는가? 그것은 아무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오점이다.”(pp.290-291)

이 책 한 권으로 그동안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았던 한국 역사의 한 부분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렸다. 저자는 단순히 과거의 역사를 복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았던 역사가, 개인에게는 애도되지 못한 과거가 되고 어떻게 현재의 후손에게 미치는 파장을 기록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대물림된 침묵을 깨뜨림으로써 개인의 치유가 어떻게 사회적 역사의 복원과 연결되는지를 증명하며,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아는 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가장 강력한 힘이 됨을 일깨운다.

개인적으로는 <비밀의 들판>이라는 제목을 처음 보고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망각의 아스포델 들판이나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명계의 들판이 떠올랐다. 억울한 사연의 영혼들이 숨겨진 공간으로서의 ‘들판’.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원제 ‘Starry Field’와 한국어 제목인 <비밀의 들판> 사이를 오갔다. 아버지가 되찾고자 했던 할아버지의 서사를 저자가 이어갈 때, 그리고 할아버지와 자신의 공통점을 찾아내던 부분을 읽으며 제목을 다시 한번 읽어보았다. 가려진 들판의 풀숲을 헤쳐나가며 비로소 드러나는 뿌리는 정체성의 근원과 연결되어 비밀이 해소되고 수많은 별들이 가득한 들판을 비춘다. 이 책을 읽어내는 것은 ‘비밀의’와 ‘별이 빛나는’ 이 두 단어가 하나로 합쳐지는 과정이었다. 또, 맥클린의 ‘Stary Night’의 멜로디가 배경음악이 되어주었다. 이 싱어송라이터가 반 고흐의 삶과 예술을 기리기 위해 이 노래를 지었듯, 이 책이 저자의 가족의 삶과 정체성을 기리기 위한 책임을 밝히는 상징이었음을 깨닫는다.

한 여배우가 ‘4대째 의사집안’이라고 말했다가 알고보니 조상이 친일파였던 안상호였던 점을 네티즌들이 파묘해내 연예계 뉴스로 시끄러운 요즘이다. 침묵의 세월동안 부를 축적했다면 그에 상응하는 댓가를 치를 수 있는 법적 장치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다. 이 배우가 잘한 점도 없지만 몰랐었다면, 사죄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건강한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저자의 조부처럼 비밀의 들판에 묻힌, 항일을 했던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많이 밝혀져야 한다. 이대로 묻혀있는 억울한 사람들이 많은 상황에서 우리는 아직 용서할 마음이 없다.

#비밀의들판#하니포터#하니포터12기#한겨레출판#마거릿주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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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한 마음에 이름 붙이기 - 현대인을 위한 정신분석사전
노은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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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한 마음에 이름 붙이기
현대인을 위한 정신분석사전
저자는 심리상담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과거 드라마 총괄 마케터와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했던 그녀는 보이지 않는 마음을 마주하는 정신분석과 심리학의 길로 들어섰다. 해피엔딩이 대부분일 드라마 세계의 잔인한 낙관주의는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까? 현실회피가 아닐까 궁금하던 차였는데 저자는 정신분석적 역량을 통해 고통의 감정을 마주하고 소화하며 ‘견딜 수 없는 마음을 견디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 책은 제목에서도 느껴지겠지만, 일상에서 평범하게 느끼는 정체불명의 불안과 모순된 감정의 정체를 명확한 정신분석의 언어로 이름을 붙이는 책이다. 아이를 키울 때, 왜 우는 걸까, 궁금하던 때가 더러 있었다. 아이는 한국어가 미숙했고 감정을 표현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는 거라고 심적으로 재어 생각했다. 이에 대해 여러 책을 읽어봤는데 대부분 전문가들은 감정이 담긴 단어를 많이 알려주는 것이 아이의 눈물을 줄여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어른이 된 나 역시 아직도 내 마음이 어떻다라고 표현하기에 어휘력이 모자람이 느낀다. 그저 짜증난다, 신경질난다 정도로만 표현하지만 아직 해소하기 부족한 어떤 감정들이 존재한다. 이 책은 그런 마음에 대해 28가지 심리학 개념을 바탕으로 섬세하게 들여다본다. 챕터마다 한 개인의 구체적인 장면들을 보여주며 그들의 심리를 풀어내준다. 막연했던 내면의 혼란에 이름을 붙여주며 내 자신도 돌아볼 수 있는 거울의 역할을 해준다.

총 4부로 1부에서는 남들의 기대에 맞추느라 정작 자신을 돌보지 못한 무의식을 다룬다. 2부에서는 사랑하면서도 자해적인 관계 패턴을 반복하는 모순에 대해, 3부는 과거의 억압된 기억이 긁고 지나간 자리를, 4부는 불안과 고통을 견디기 위해 마음이 구축한 여러 심리적 생존 기제를 소개한다. 각 장마다 수록된 체크리스트와 질문은 독자가 자신의 마음 구조를 다각도로 점검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피플 플리저’ 챕터를 읽을 때는 개그맨 이수지씨가 패러디한 유치원 선생님, 피부과 직원등이 떠올랐다. ‘남 기쁘게 해주기라는 병’(p.57)에 대해 상대방의 감정은 내 책임이 아니며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될 필요가 없다는 조언이 와 닿았다. ‘혼자일 수 있는 능력’을 읽으면서는 상상의 친구가 등장하는 그림책들이 몇 개 떠올랐다. 전에는 그저 아이일 때만 가능한, 그림책 속 상상의 친구일 것이라고만 치부햇으나, 아이가 혼자 그 그림책에 온전히 몰입했을 때 만날 수 있는 친구였음을, 부모와 친구들의 관계가 아닌, 자기 자신과 세상을 연결하는 시간이어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외에도 나를 비판하는 혹독한 목소리 ‘내면화’, ‘역의존’, ‘조적방어’등 모호한 감정들에 하나씩 이름이 생길 때마다 “무섭고 두려웠던 마음에서, 내 안에 담긴 감정이 조금씩 소화되고 있음”(p.307)을 느끼며 위로받는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기억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지나갔기도 하지만, 잊고 있었던 과거의 못난 내 모습들도 마구 떠올랐다. 그때의 내가 몰랐던 당시의 모호한 마음의 이름들을 이 책을 읽으면서야 ‘이런 이름이었구나’, ‘내가 당시에 그랬었구나’를 깨닫는다. 그렇게 객관화된 나를 돌아보니 그저 이불킥을 해댔던 부끄러운 내 자신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타인의 반응에 과도하게 민감한 피플 플리저, 거절과 의존에 두려움을 느끼는 역의존 성향을 가진 이들에게 이 책은 필요하다. 관계 속에서 매번 같은 이유로 상처받거나 이유 없는 우울과 불안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에게도 권한다.
#모호한마음에이름붙이기#노은정#한겨레출판#하니포터#하니포터1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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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국방의 가성비 - 대한민국, 누가 어디까지 지킬 것인가
정욱식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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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저자는 1999년 평화네트워크 설립자이자 2021년부터는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임하고 있다. 20여 년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체제를 천착해 온 대표적인 평화 연구자이자 활동가이다.

<자주국방의 가성비>는 매년 천문학적인 국방 예산이 투입되는 한국 안보 현실에 비용 대비 효과라는 가성비를 따져보자는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박정희, 노태우 정부의 자주국방 추진에서 출발해 노무현 정부의 전작권 환수 시도, 그리고 현 이재명 정부에 이르기까지 한국 자주국방에 대한 보수와 진보당의 정치적 방향을 추적한다. 또 K-방산의 글로벌 순위가 손에 꼽음에도 작전통제권은 미국이 가지고 있는 딜레마, 미국의 확장억제에 대한 착시, 그리고 천문학적 국방비 증액이 가져온 안보 비용을 차례로 해부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미국에 의존하길 바라는 한국 안보 정책의 이중사고를 지적하며, 힘에 의한 평화만으로는 안보의 가성비를 확보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이에 따라 헌법의 영토조항 개정 공론화, 흡수통일 구상의 철회, 반격 능력 중심의 전력 재편, 그리고 가성비 전략으로서 자원입대제(모병제) 전환을 제시한다. 인구가 줄고 있는 상황에서 남녀를 가리지 않는 병역으로 젠더 갈등 완화, 직업군인이라는 중산층을 키워 민생과의 균형을 맞출 수 있다는 점, 또한 전문적인 군인을 양성할 수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본다.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의 전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에 군함을 보내라고 계속해서 압박하고, 유럽과 우크라이나는 계속해서 살상무기를 지원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이 상황과 “방위 산업을 국가 경제의 주력으로 육성하고 지속가능한 방위 산업 성장 동력을 확보하겠다”(p.128)라고 말하며 K-방산을 미래 먹거리로 생각하고 있는 이재명 대통령의 말이 양날의 칼날로 느껴지는 지점이 있었다. 우리가 국방을 강화할수록 북한은 이에 대비해 핵을 완성시켰다. 현재는 러시아군을 도와 2022년부터 러시아에 대규모 포탄과 16,000명에서 22,000명 규모의 병력을 제공해 최대 220억달러(약 31조 이상)의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다고 한다. 이는 북한이 3년 연속 3%이상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하도록 도왔고 이 돈은 다시 더 많은 핵 프로그램과 해군력에 재투자될 것이다. 남한 뿐 아니라 조선(북한)의 우리 동포들 역시 자주국방이라는 미명하에 더 나은 민생의 기회를 빼앗기고 있는 것이다. 또한 다른 나라의 전쟁을 자산 삼아 이루는 자주국방이 과연 정당한가라는 윤리적 한계를 짚는다.

또, 통일을 원하지 않는 국민의 비율이 50.1%를 넘었고 20대는 가장 높은 50.7%라고 한다. 나는 통일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 책을 꼭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겉으로는 강한 국방을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대미 의존성을 높이는 정책의 모순을 알게 될수록 실용안보 전략이 왜 필요한지 이해하게 된다. 결국 남한과 조선(북한)에 전쟁이 일어날 불안요소가 제거될 때, 무리한 군비 경쟁을 줄여 국가적 비용을 절감하는 길임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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