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홀가분하게 살고 싶다 - 소란한 삶에 여백을 만드는 쉼의 철학
이영길 지음 / 다산초당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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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홀가분하게 살고 싶다> : 소란한 삶에 여백을 만드는 쉼의 철학

전쟁에서는 드론이 쓰이고 아마존 물류창고에서는 로봇이 일을 하여 무인으로 운영된다고 하는 요즘, 굳이 실물이 아니더라도, 힘들게 파워포인트 쓰다가 캔바나 미리캔버스를 써보면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싶다. 확연히 노동시간은 줄었다. 그러나 그 시간에 나는 좀 더 효율적이고 가성비있는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시간이 늘어난 것 같다. 육체적 노동시간이 줄어든 대신, 변화하는 삶에 대비하기 위한 긴장과 도태되지 않으려는 불안감에 시달리는 시간은 몇 배 늘어난 셈이다. 백세 시대를 넘어 백오십세를 바라보는 오늘날, 지금보다 더 나은 삶, 일컬어 ‘행복한 삶’을 위해 우리는 언제까지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하는 걸까? 은퇴 역시 제 2의 삶, 시작이라지만 <임계장 이야기>처럼 최저임금을 받는 3D 업종 은퇴자금으로 자영업을 시도하도록 내몰린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쉼이란, 여가란, 한국인에게 사치스러움으로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의 게으름으로 보이기도 한다. 보통의 사람들에게 쉼은 불가능한걸까?

저자의 이력이 특이하다. 여가를 가르치는 학문을 공부했다니. 이영길 저자는 1980년대에 도서관에서 ‘여가학’의 시초격인 학자의 책을 접하고 편지를 보냈다가(심지어 이때는 이메일이 아닌 진짜 편지를 보내던 시절 아닌가!) 미국에서 공부하면 도움을 주겠다는 답장을 받아 유학을 떠난다. 그렇게 40년 넘게 여가와 쉼에 대해 공부한 저자다. 여러 미국의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중 <안식>이라는 교양이 인기강좌가 되면서 그 강의를 바탕으로 이렇게 책으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몇 년 전 스웨덴 출신의 나티코가 쓴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라는 책을 떠올려보면 유럽에서는 사회적으로도 많은 논의가 진행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며 책을 펼쳐본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읽는 한 개인이 얻을 깨달음, 그러니까 안분지족같은 주제의 책이 아니었다는 점이 새로웠다. 한가로워 보이는 나무위로 날아가는 새가 담긴 초록초록한 표지와 ‘홀가분’한 제목에 속았다고 느끼기도 한 초반을 지나니 우리가 가야하는 사회의 모습은 이 표지가 담긴 풍경이 당연한 곳이어야 겠구나하는 생각을 하며 읽어내려갔다. 이런 자연스러운 삶은 일보다 쉼을 우선시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전제를 깔고 만들어지기에 바쁜 삶을 당연시하는 사회 시스템에 저항해야 한다는 저자의 목소리가 반갑다. 우리가 가지고 있던 쉼에 대한 기존 정의를 다 엎어버릴 수 있는 ‘호모 레지스탕스’가 되기 위한 입문 책이다. 우리 모두가 함께 읽고 숙론하며 사회적 논의를 만들어나가는데 꼭 필요한 책이다.

총 8장인 이 책은 1장에서는 ‘쉼이 결핍된 삶이 보내는 신호들’, 우리가 잘 알고 주변에서도 쉽게 관찰할 수 있는 스트레스와 번아웃부터, 조금은 생소한 ‘보어아웃’, 그리고 두려움이나 외로움처럼 쉼과 연결되는 감정인지도 몰랐던 것들에 대해 설명한다. 2장은 ‘삶을 변화시키는 쉼에 대하여’ 다루는데 ‘혁신’이라는 한자어 풀이부터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사회가 만들고 있는 거짓 서사인 바쁜 삶에 순응하지 말고 저항하라는 메시지가 강렬하다. 이후 3장부터 8장까지는 출판사에서 6가지 처방전이라는 수식어를 달아놓은 6가지 쉼 - ‘멈춤의 쉼’, ‘일하지 않는 쉼’, ‘욕망을 재조정하는 쉼’, ‘기쁨의 쉼’, ‘느긋한 쉼’, 그리고 ‘사랑의 쉼’을 다룬다. 이 중 좋아하는 <반지의 제왕>을 예로 들어서이기도 하고, 나 역시 그 많은 종족들 중 키는 땅딸만하지만 담뱃대와 맥주 한잔에 삶을 담은 호빗족의 삶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느껴서일까, 절제를 욕망으로 푼 5장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불안하니 더 달려야 한다고 믿는 학부모에게 추천한다. 우리는 제대로 된 여가를 몰랐던 마지막 세대이길 희망한다. 우리의 아이들은 잘 쉬고 또 잘 쉰 만큼 잘 달릴 수 있는 그런 멋진 어른들이 될 수 있기를.
#나는홀가분하게살고싶다#다산초당#이영길#휴식#자기계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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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의 나라
손원평 지음 / 다즐링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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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를 쓴 손원평 작가님의 쓴 <젊음의 나라>가 새로 출간되었다. 주인공은 29세 청년 유나라. 시카모어 섬 정착을 목표로 하기에 메타버스에서 종종 유료로 접속한다. 이 섬과 MOU를 체결한 유카시엘 재단은 “수십 년 전 한 호텔 체인이 노인복지를 전담하는 자회사를 설립”(p.34)하여 “최고 등급은 유닛 A부터 돈이 거의 없는 노인들이 머무는 유닛 F에 이르기까지 노인 수용시설을 세분화했다.”(p.35) 유카시엘에서 운영하는 유닛에 다양하게 근무를 한 경험이 시카모어섬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주인공은 유닛 A에서부터 F까지 상담사로 일하게 된다.

등급에 따른 노인수용시설을 체험하는 주인공을 따라 서사가 이동하기에 현시대의 사회적 이슈인 고령화와 저출산 문제가 만들어낼 근미래 세계가 어떨지 독자는 <젊음의 나라>에서 간접체험하게 된다. 이 문제 외에도 다문화가정에서 자란 아이가 노인을 혐오하는 성인으로 자라고 있음을 보여주는 엘리야, 존엄을 자본주의적 가치로 환산하여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가 아닌 죽음을 관장하는 의사가 된 재희같은 소설 속 인물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의 결과를 품고 태어난 캐릭터들로 보인다. 혐오가 혐오를 낳을 것이라는 점, 돈이 많아야 편하게 죽을 수 있는 세상이 될 것이라는 작가의 상상력은 읽으면서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AI가 대체하는 직업이 주로 중간관리자라는 것도 그렇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아무리 인건비가 오른다고 해도 결국 세상에서 가장 싼 건 사람이야.”(pp.204-205)“

사람이 돈을 벌 수 있는 일들은 대부분 노인케어와 관련한 일자리들이거나 로봇이 깔끔하게 하지 못한 일들의 뒤처리 그러니까 몸을 쓰는 노동이 남았다.

개인적으로 나는 며칠전에 미셸 들라크루아 전시회를 보고 왔는데 말미에 영상에서 본 그의 소감과 완전 반대였기 때문이었을까, 유닛 C에서 거주하는 김지훈 할아버지 캐리터가 인상적이었다. 화가였던 이 할아버지는 자신의 삶에 대해

”난 단순하게 살았어요. 그림 말고 다른 가능성은 떠올려 본 적도 없었지. 오로지 그림을 그리는 내 손을 믿으며, 화폭에 완성될 작품을 머리와 가슴에 꽉 채웠지요. 하루하루 희망속에 살았고 모든 게 영원할 거라 여겼어요. 사람이 그림을 직접 그린다는 게 어떤 의미가 될지, 내가 걸어온 한 가지 길이 어떻게 끝날지에 대한 상상력은 부족했던 거예요.“(p.130)
라고 말한다. 돈이 되는 일보다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한 X세대일 김지훈 할아버지의 인생 성적표는 최현우할아버지처럼 극단적 이기주의에 빠진 사람과 같은 등급이었다는 점이 충격적이었다. 과정이 아닌 결과를 중시하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으로 보인다.

후반부에 나라는 서른이 된다. 서른은 청춘은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노인 수용시설에 들어갈 정도로 나이든 나이는 아니지만 왜 제목이 ‘젊음의 나라’일까, 궁금했다. 하지만 주인공 나라와 엄마와 이모사이의 꼬인 매듭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자주 묘사되는 닫힌 문이나 겨울과 여름이라는 상징에서 제목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 꽝 닫혀버린 문이 아니라 비밀을 알고자 하는 이라면 열어제낄 수 있는 문이라는 것을, 그러니까 젊음은 사회적 기준이 정한 나이나 남의 시선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하는 삶의 태도에 있다는 작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 책의 첫문장에서 “한겨울에도 한여름처럼 지내기로 결심했다”(p.10)라고 마음먹은 나라처럼, 창문을 열자 흰 눈이 온 세상을 덮어 도화지 앞에 선 것 같은, 새해 아침의 나라처럼, 현실은 지저분하게 밟힌 회색 눈밭일지라도 내 마음만큼은 언제든 새로 시작할 수 있도록 리셋할 준비가 되어 있는 회복탄력성을 이 책을 통해 얻어간다.
p.s 엄마인 유진의 무늬는 나라였지만 이제 민아이모와 함께 그려나갈 도화지에서는 또 다른 무늬가 만들어지길 기도하는 마음에서 이 책은 시즌 2가 나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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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나 쉽게 성공하는 인스타그램 마케팅
황규진 지음 / 원앤원북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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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나 쉽게 성공하는 인스타그램 마케팅

우리나라에서 인스타그램이라는 플랫폼이 왜 이리 인기인가, 생각해본다. 네이버 블로그가 다져놓은 기반을 인스타그램이 나타나 삼키기 일보직전 같은 느낌이 드는 건 나만 그럴까? 물론 네이버 블로그도 살아남기 위해 분투중이지만 젊은 세대를 잡지 못하면 쉽지 않아 보인다. 개인적으로 나는 인스타그램이 아이들의 카카오톡을 훔쳐 보는 엄마들 덕분에 MZ들에게 퍼졌다고 알고 있었다. 물론 페이스북 DM이 먼저긴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인스타그램은 10대에 의해 견인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듯하다.

이 책의 황규진 저자는 2010년 인스타그램의 론칭과 함께 시작한 15년차 인스타그래머로 서울을 대표하는 인스타그램 계정이 없다는 것을 알아채고 @seoul_korea 계정을 만들었다. 지금은 18만 팔로워 인스타그램 운영자이자 MKYU·배민아카데미 강사로 활동 중이다. 인스타그램 마케팅 분야의 베스트셀러 <아무나 쉽게 따라하는 인스타그램 마케팅>을 쓴지 5년만에 ‘성공하는’이라는 수식어를 더해 <아무나 쉽게 성공하는 인스타그램 마케팅>을 이번에 출간했다. 그 사이 인스타그램은 수많은 업데이트를 거쳐 다양한 플랫폼들 위에 올라섰다. 그렇게 끊임없는 업데이트 덕분에 이 책도 거의 새로 쓰였다시피 했다. 이번 신간에서 눈여겨 볼 만한 것은 ChatGPT를 활용한 콘텐츠 제작이다. 아무래도 사진이나 동영상 위주의 플랫폼이다 보니 눈길을 끌어야 살아남는데 쉽게 따라하기 위해선 AI와의 협업이 필수다. 그래서 ‘혼자서 해내는 인스타그램 마케팅’이라는 홍보글에 시선이 간다.

총 5부로 1부에서는 일관된 컨셉을 유지하고 재미와 신선한 콘텐츠, DM 소통 등 각의 성공한 인스타그램의 사례를 분석한다. 2부에서는 인스타그램이 어떤 플랫폼인지 가볍게 알려주며 알고리즘에 대해 설명한다. 또 첫 게시물이 중요한 만큼 어떤 컨셉의 페르소나를 설정할지 무게를 둔다. 3부에서는 특별한 마케팅을 시도하도록 돕는데 아이디와 태그를 선점할 것과 프로필, 꾸준하면서도 같은 컨셉을 가진 콘텐츠 제작을 팁으로 이야기한다. 그리고 인플루언서에 대한 설명도 있다. 4부에서는 비즈니스가 아닌 개인도 따라해봄직한 콘텐츠가 될 사진 찍는 법, 글쓰기는 스레드와 ChatGPT를 활용한 스토리, 릴스, 스레드를 만드는 방법을 다룬다. 그리고 5부에서는 인스타그램의 실험실에서 다루는 팔로워 늘리기 프로그램이나 상위노출 실험, 해시태그와 포스팅을 올리는 시간에 대해 실험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대한 비즈니스를 계획 중이라면 인스타그램 마케팅이 탁월함을 보여주는 책이다. 인스타그램은 새로운 기능이 계속 업데이트 되기에 기존의 관성대로 게시물을 올리기보다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인스타그램의 트렌디함을 좋아하는 젊은 층의 타겟을 잡을 수 있음은 분명해보인다. 브랜딩에 관심을 둔 개인이나 마케터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책이기에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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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도의 가격 - 기후변화는 어떻게 경제를 바꾸는가
박지성 지음, 강유리 옮김 / 윌북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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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영어 원제는 <SLOW BURN>,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보이지 않는 비용”(p.11)이라는 뜻으로, 직역하면 ‘느린 연소’다. 우리나라에서는 <1도의 가격>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경제학에서 유명한 단어인 ‘보이지 않는 손’처럼 ‘보이지 않는 비용’을 표현하고자 한 표지가 강렬하다. 100달러 지폐가 작은 불에 의해 느리게 연소 중이다. 벤자민 프랭클린 -펜실베니아 주 대표로 토머스 제퍼슨과 함께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정치가이자 피뢰침 발명가, 외교관, 그리고 금융가로서 미국의 경제와 제도를 형성한, 그야말로 미국의 정체성 그 자체-의 얼굴이 타들어간다. 그렇게 SLOW BURN이라는 글자조각만이 남은 상태를 표현했다. 이 책은 태풍처럼 빠르게 재앙처럼 다가올 기후위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할 말이 많아 보인다. 한편 올해 1월, 트럼프가 파리기후협약을 두 번째로 탈퇴했다는 뉴스가 떠오른다. 아무리 작은 불이라지만 지금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남은 조각들 마저 다 재로 변할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을 함축적으로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든다.

빌 게이츠가 환경에 대해 자문을 구했다는, 와튼스쿨의 한국계 미국인, 환경경제학자 박지성 교수님이 집필했다. 한국의 이정모 관장님부터 미국의 유명한 경제학자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이 책에 추천사를 달았는데 그 중 커커스 리뷰가 인상적이다. “뜨거워진 세상을 이처럼 다각도로 조명한 글이 있을까?” 그렇다. 이 책은 1도 상승의 경제적 영향에 대해 특히 우리가 간과하는, 보이지 않는 피해에 대해 최근 10년간의 연구를 바탕으로 우리 눈에 보이도록 정량적인 데이터를 가지고 그것을 분석한 내용이다. 개인적인 노후자금도 불확실한 가운데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정책에서 파생할 비용을 치르고자 하는 한국인은 몇이나 될까 궁금해하며 책을 펼쳐본다.

총 4부로 1부 ‘1장 빠르게 생각하기와 느리게 생각하기’에서는 기후변화를 직관적으로 바라볼 지, 이성적으로 따져보며 생각할지에 대한 질문을 독자에게 던진다. 이후 더운 날씨 때문에 학생들은 학습에 대해, 노동자들은 노동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있는 보이지 않는 피해나, LA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 이후 피해로 생각하지 않았던 연기로 인한 영향에 대해 논한다. 2부에서는 더위가 미치는 건강과 범죄율 등에 대해 다루며 3부는 영국, 특히 30도가 넘는 날이 일년에 하루 밖에 되지 않는 런던사람 제임스가 에어컨 보급률이 가장 높은 나라인 싱가포르에 출장 가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어 엘베가 없는 건물 4층에 사는 태국 할머니가 30도가 훌쩍 넘는 아침부터 노점상 가판대에 앉아있는 이야기, 그리고 인도 농부인 라즈가 가뭄으로 2년째 가족을 먹여살리기도 힘든 현재 상황에 대해 묘사하며 이 넷을 대비한다. 기후변화가 가져다주는 심각한 부의 불평등이다. 4부에서는 분명 느린 연소로 기후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기후재앙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지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현재 가고 있는 온난화의 길이 딱히 재앙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이 분명해지는 순간, 기후변화는 한정된 정신적 관심과 정치적 자본을 굳이 할애할 이유가 없는 문제로 전락한다.“(p.288) 당장 집에 불이 난 것처럼 행동하라는, 지금은 성인일 그레타 툰베리를 이해해야 할 이유를 설명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저자의 의견에 동의한다. 당장 내일 집이 무너질 것이다라는 것과 10년 후에 무너질 것이다라는 내용은 같은 문제지만 우리에게 정반대의 행동을 초래할 것이다.

보이지 않는 피해를 정량화한 비용을 데이터로 설명하는 저자다. 이런 면은 우리가 그렇게 알고 있던 것과 데이터가 보여주는 것은 달랐던 <팩트풀니스>와 닿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왜 기후위기라는 단어가 아니고 기후변화라고 썼을까?' 궁금했는데 재앙수준의 기후위기보다 느린연소 중인 기후변화라는 용어를 고집하는 저자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또 이 책에는 유럽과 미국이 탄소를 그동안 꽤 감축해왔다는 데이터가 있었다. 탄소 배출량이 많은 철강, 중공업 중심의 경제구조와 탄소깡패는 우리라는 뉴스가 스쳐지나간다. 국민들을 설득시키고 탄소를 감축시킬 수 있는 방안을 기업과 적극적으로 펼쳐나감과 동시에 국가적 차원에서 세워야 할 정책들의 필요성을 느낀다. 이런 생각들로 불안해진 나에게 저자는 “엄격히 인간 중심적인 관점을 취하고 가상의 세계 시민을 상정해 즉시 정량화할 수 있는 느린 연소에 초점을 맞추더라도, 데이터는 이미 우리가 현재와 미래 세대의 집단적 행복에 심각한 경제적 손실을 끼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경제적 고려만으로도 공격적인 배출량 감축이 정당해진다는 뜻이다.”(p.308)라고 말한다. 그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데올로기에 의존하지 말고 가능한 한 데이터를 통해 객관적 판단을 내릴 수 있기를.”(p.13)이라고 한국어판 서문에서 밝히는 저자의 속내가 현실화되는 것이다. 한마음으로 경제적 고려를 시작하는 단계만으로도 우리는 희망의 동아줄을 잡는 것이라는 저자의 말을 믿어보고 싶다.

p.s 라면을 먹으면 숲이 사라진다는 책 제목에 충격받는 슬이에게 읽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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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책 - 괴테에서 톨킨까지, 26편의 문학이 그린 세상의 정원들
황주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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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 기안84가 한혜진의 하루를 따라다녀보는 유투브 컨텐츠를 보았다. 먹기 위해서(농사)가 아니라 예쁜 꽃을 보기 위해(가드닝) 모종을 심는 한혜진을 신기하게 쳐다보는 기안84를 보았다. 나 역시 로즈마리와 고추씨로 가드닝(!)을 시작했던 사람으로 그와 다르지 않았다. 예로부터 정원을 가꾸는 위인들은 많았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흙을 만지고 씨앗을 심었을까? 그런 궁금증을 가지고 책을 펼쳐본다. 베르사유궁전처럼 유명한 정원도 이 책에 나오지만 볼테르, 버넷, 플로베르, 디킨스, 루소, 괴테, 키냐르, 톨킨 등의 유명한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에 그린 정원들을 치유, 사랑, 욕망, 생태라는 네 가지 키워드로 묶었다. 이렇게 묶은 이는 도서관 인문강좌를 편하게 줌으로 신청해서 들을 수 있던 코로나 시절, 신청시작하자마자 빠르게 마감되는 인기강사(!) 황주영씨였던 터라 반가웠다. 그 때 베르사유, 알함브라 등 궁전에 딸려있는 정원들을 비교하는 강의도 흥미로웠고 소설 속에 등장한 정원을 영화 영상으로 보면서 이야기해주시는 강의도 즐거웠던 기억으고 남아있다. 그때 강사님이 정원이라는 주제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자신의 관심사를 향해 뻗어나가는 가지를 가지고 있는 나무처럼 느껴졌다. 역시 사람은 좋아하는 대상을 닮아가는 구나. “문학에서 미술사로, 또 조경사로 전공은 달라졌어도 하는 일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연구 주제를 좁히면서 정원의 세계를 더욱 깊게 들여다보게 되었다.”(p.6) 3가지의 전공을 가진 저자의 학문적 고생(!)은 독자에겐 복이다. 정원 하나를 보더라도 다양한 관점에서 입체적으로 들여다보고 고심한 결과일 이 책을 나같은 독자는 그저 쉽게 주워먹으면 되니 말이다.

이 책을 펴자마자 나는 프롤로그 다음으로 톨킨과 장 지오노, 김초엽작가가 나오는 4장 생태의 정원을 먼저 읽었다. 그 다음으로 재밌어 보이는 욕망이라는 키워드의 3장을, 뒤이어 플로베르와 디킨스가 나오는 1장 치유의 정원을 읽었다. 2장 사랑의 정원을 가장 기대하지 않았기에 끝으로 읽었으나 누군가 나에게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 어디냐고 물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죽음으로도 죽지 않는 사랑: 크리스티앙 보뱅, 《그리움의 정원에서》’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 에피소드는 저자가 불문학과를 전공했기에 쓰일 수 있었지 싶다. 사랑과 죽음이라는 프랑스어 발음이 비슷하다는 것을 저자가 알아서일까, 죽음이 빼앗을 수 없는 사랑에 대한 뉘앙스는 시처럼 다가왔다.

“인적 없는 정원에서처럼 침묵을 듣는다. 겨울 정원을 거닐 듯 조심스럽게 페이지를 넘기고, 구절을 옮겨 적는다. 시가 아님에도 시를 읽고 난 듯 주변 공기가 맑고 시려진다. 다른 시간과 공간으로 감각을 이끄는 그런 정원을 거니는 상상을 해본다. 눈이 되고, 라일락이 되고, 태양이 된 지슬렌이 있는 정원. 눈물 아래 웃음이 있는 정원. 서리가 얇게 드리워져, 걸음마다 바스락거리며 발자국을 검게 남기는 정원. ”고독과 빛과 고요로 감싸인 도피네의 작은 처소“같은 정원. 지슬렌이라는 이름이 하얀 입김으로 사라지는 겨울 정원. 그리움 속에서 시들기도 하고, ”그 안에서 켜켜이 쌓이는 삶을 깨닫는“정원. 결국에는 사랑이 노래가 되어 흘러나오는 정원. 그 정원의 이름은 그리움이다. (pp.110-111)
직접적인 정원 묘사는 없지만 지슬렌을 향한 그리움으로 작은 정원을 가꾸어가는 보뱅의 문장이 겨울정원처럼 아름답다. 마지막 문장, ‘그리움 속에서 시들어가고 그 안에서 켜켜이 쌓이는 삶을 깨닫는 정원’. 내가 정원이라는 공간에서 읽고 싶은 문장은 이런 것이다. 이 부분이 111페이지에 쓰여있다는 것마저 좋았다. 마치 나무 세 그루가 서있는 그리움 가득한 정원이 그려졌다. 키케로가 말한 “서재에 정원이 있다면 모든 것을 가진 것이다”라는 문장을 이처럼 잘 설명할 수 있는 작품이지 않았을까, 하며.

순서대로 읽지 않아 정원을 가꾸는 ‘돌봄’이라는 키워드가 이 글에 담기지 못해서 안타깝다. 정원을 가꾼다는 것은 돌봄 이상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음을 다양한 인문학 작품을 통해 표현하는 책이다. 가드닝이라는 것이 작가들에게는 글을 쓰는 과정과도 같고 나같은 일반인 독자에게는 인생을 가꾸어나가는 것과 같이 읽힌다. 서울 근교에 전원주택을 지을 예정인 사람이 읽어도 좋겠지만 자신을 위해 꽃 한 송이 살 줄 아는 사람이 읽으면 더 좋겠다. 다양한 예술가들의 정원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정원이라는 카테고리로 만들어낸 자신만의 공간을 책으로 펴낸 황주영저자님의 정원에 들어올 수 있는 초대장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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