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돈의 시대, 스테이블코인 - 경제 현장에서 본 달러 이후의 돈, 디지털 화폐 이야기
김신영 지음 / 원앤원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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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신영씨는 경제 섹션을 담당하는 기자로 2011과 2012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글로벌 금융 위기의 후유증, 미국 국가 신용 등급 강등에 대해 취재했다. 현재 AI, 가상화폐라는 신기술을 대하는 미국 학계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경제부 기자로서의 지난한 경험은 ‘돈의 본질’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고 그렇다면 달러 이후의 미래를 그려봤을 때 대안 수단으로 유력해보이는 이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책을 쓰게 된다.

이 책은 총 8장으로 1,2장에서는 돈, 즉 그동안 사용해왔던 법정화폐와 2000년대 생겨난 가상화폐에 대해 서술한다. 그리고 오늘날 등장한 스테이블코인을 소개한다. 한 개의 스테이블코인이 1달러라는 가치를 지녔다는 이 코인은 은행계좌가 없는 외국인이 쉽게 살 수 있으며 온라인상에서 쉽게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녔다. 3장에서는 은행의 절차없이, 국경과 전혀 상관없이 송금가능한 스테이블 코인이 필요한 이유를, 4장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인으로서 위험성이 없지 않기에 그 부분에 대한 경고를 적었다. 5장에서는 코인투자자라면 잘 알고 있듯 트럼프의 인기와 함께 올랐다가 떨어지는 코인의 주가와 특히 대통령 임기를 맡자마자 밀어붙이는 ‘지니어스 법’에 대해 설명한다. 6장에서는 다양한 페이를 사용하는 우리나라환경에 굳이? 일 수는 있지만 원화에 기반한 스테이블 코인이 가시화된 상황과 우려를 함께 적었다. ‘나라 밖 원화’에 기반한 스테이블코인을 과연 한국은행이 컨트롤할 수 있을지. 7장에서는 중국, 유럽의 상황과, 금 코인을, 8장에서는 현재로서는 위험해보이기도 하지만 초반이라 기회가 될수 도 있는 이 양면적인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연준, 테더, 한은 등의 글로벌 전문가들은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그들과의 인터뷰를 담았다.

비트코인 시세는 알아도 가상화폐가 어떤 시스템으로 생겨난 것인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는 전혀 몰랐던 나였다. 이 책을 읽으며 소 뒷걸음질치다가 쥐잡는 격으로 가상화폐에 대해 잘 알게 되었다는 소감을 미리 밝힌다. 나라의 경제가 어려워지면 휴지조각이 되버리는 실물 화폐와 멀쩡하던 은행이 하루아침에 망할 수 있다는 것을 전세계인이 목격한 2007년도의 악몽이 만들어낸 불안감은 가상화폐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변동 폭이 크고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아 이를 대처하고자 만들어진 것이 스테이블코인이라는 것이 이 책의 큰 틀이다.

은행 시스템을 거치지 않아 탈중앙화된 디지털 경제의 기축통화 역할 대체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나 발행사(테더)가 얼마나 투명하게 공개하는지에 따라 뱅크런(대규모 인출)이라는 위험이 가능하다. 이에 대해 미국에서는 ‘지니어스법’으로 법제화 진행 중이지만 다른 나라의 경우, 국가별 규제 강도에 따라 위험도가 다를 수 있다. 또 담보 없이 알고리즘으로 가치를 유지하려는 모델에서 제 2의 테라/루나가 될 수도 있다는 위험이 스테이블코인의 장점과 단점으로 보인다.

하지만 저자는 스테이블 코인을, 단지 투기로 여기기보다 '디지털화된 달러'의 연장선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미국의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전 세계 화폐 질서를 어떻게 흔들고 있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한국은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어떻게 도입해야 하는지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한다. 새로운 돈의 흐름을 이해해야 하는 오늘날, 당장은 위험성은 내포하고 있으나 스테이블코인이 가진 편리성과 효율성이라는 장점은 기존의 금융 질서를 대체할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어 보인다. 미래의 금융 지형도가 어떻게 변할지 궁금한 독자들에게 이 책은 꼭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다.

비트코인의 몇 년간의 등락을 지켜보며 정말 많은 나라가 서로 전쟁 진행중이며, 생각보다 더 많은 독재자들과 빼돌린 기업가들의 검은 돈들이 많구나, 라는 단순한 생각만 해왔다. 요즘 상황을 보면 꼭 그런 물리적인 위험이 아니더라도 경제위기는 국가가 보증할 수 있는 가치일 때만 사용할 수 있는 법정화폐의 붕괴로 이어지고 결국 달러패권을 지닌 미국이 화폐 주권을 지키지 못한 다른 국가들을 흡수할 수 있는, 정말 트럼프다운, 미국다운 코인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우리나라의 앞날이 베네수엘라와 이란보다는 아니겠지만 무수한 가시밭길이겠구나. 씁쓸하지만 그럴수록 새로운 돈의 시대에 잘 적응하는 대한민국이 되어야 할것이며 그러기 위해서 이 책의 필독을 당신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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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마지막 수업
주루이 지음, 하진이 옮김 / 니들북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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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선생님의 <마지막 수업>이 먼저 떠오르기도 했지만 중국 런민대학교 철학과 교수라는 점이 눈에 띄었다. 공산주의는 국가와 집단의 이데올로기를 우선시하며 경제적 토대를 더 중요시하는 체제로서 철학과 같은 형이상학을 다룬 학문이 저자에게 어떤 의미였을지 궁금하기도 하여 책을 펴들었다. 막상 읽고보니 공산주의 국가의 중국인이든, 자본주의 체제의 미국인이든, 고대 그리스 시대의 소크라테스든 빈부격차 상관없이 죽음 앞에 인간은 모두 평등했다. 이 책이 특별했던 이유는 오로지 철학자가 바라보는 죽음에 대한 시선뿐이었다. 그는 철학과교수로서 지내다가 쉰 여섯이 된 2024년 7월 12일, 의사로부터 치료 중단 선고를 받는다.
”한 철학자의 정신적인 힘이 그의 생명을 얼마나 자유롭고 또 두려움 없는 경지로 끌어올렸을까? (...) 그의 철학은 어떻게 그의 정신적인 자아가 아무런 손상없이 생명의 마지막 순간까지 보존될 수 있도록 해주었을까?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한 기록이자 증명이다“(p.41) 서문의 한 구절이다. 그렇게 자신의 죽음을 거울삼아 소박한 일상의 소중함과 삶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마지막 수업을 시작한다.

주루이는 처음부분에서 독배를 받아든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로지 자신의 의무를 다했는지에만 관심이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p.48)라고 전한다. 주루이 본인은 철학을 공부하면서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를 점차 이해하게 되었다.“(p.48)고 한다. 사람들은 모두 ‘죽어가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그 두려움은 우리의 손발을 묶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한다. 하지만 ‘죽음’은 생명이 있는 존재가 느낄 수 없는 것이다라며 두려워해야 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선을 확실히 그어준다. 그래서 그는 산에서 길을 잃어 도랑에 굴러떨어졌을 때도 그것을 기뻐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물줄기를 따라 내려가면 산을 무사히 내려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래서 그는
”과학자나 철학자, 그리고 진리를 추구하는 이들 대부분은 끊임없이 이 미지의 것들을 개척한다네.“(p.67)라고 말하며 삶에서 철학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한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이 책에서 한 학생이 대학원 진학을 해야할지에 대해 주루이에게 묻는 장면이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오로지 자네만 찾을 수 있네.(...) 무슨 일을 하든 ‘진실’에서 벗어나서는 안 되네. 만일 자기기만에 빠져 산다면 그건 자기의 생명을 낭비하고 또 자기 생명을 존중하지 않는 것이라네. ‘진실’은 심오한 자기 경험에서 비롯된다네. 자네 자신에게 질문을 하게.“(pp.190-191)
김연수 작가는 청춘에 대해,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만이 오래도록 영혼에 그늘을 드리운다고 말했다. 청춘의 그림자가 영혼에 그늘을 드리울 때, 찾아오는 너무도 많은 자기기만의 함정은 우리의 생명을 낭비하는 것이라는 저자의 말이 나에게 가장 깊은 여운을 남긴다.
나는 이 책을 새로운 인생 단계의 진입을 앞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그 중 고3을 콕찝고 싶다. 이제 기나긴 미성년의 터널을 지나 청춘의 봄날을 맞이할 아이들에게 죽음을 들이미는 것에 대해 누군가 부적절하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메멘토 모리를 가장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죽음을 인식한 삶은 더욱 소중하고 그만큼 찬란하기에.

”평범함이야말로 진짜이고, 행복이고, 또 기쁨이네. 이것은 나의 가장 큰 깨달음이라고 할 수 있어.“(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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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미희답게 잘 살았습니다 1 - 냉장고 너머의 왕국 그리고 미희답게 잘 살았습니다 1
태 켈러 지음, 제랄딘 로드리게스 그림, 송섬별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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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미희답게 잘 살았습니다
1. 냉장고 너머의 왕국

아이를 키우면서 전래동화의 권선징악, 인과응보라는 전형적인 틀에 갇힌 이야기를, 내 아이에게 권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다. 이후 어떤 독서교육 강의 중, 취학 전 아이들에게 전래동화를 읽혀야 아이가 선한 행동과 그렇지 않은 행동을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고 학교에 입학하는 것이 좋다는 말씀을 듣고 나서야, 그 이후에 읽혔다. 하지만 주인공은 착한 사람이고 그와 척을 지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는 이 이분법적인 도식화의 결과가 마음에 남아있었다. 그러던 중 1/4는 한국인이라고 자신을 설명하는 태 켈러 작가의 <호랑이를 덫에 가두면>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오래된 이야기의 전형적인 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고민을 이 분은 이렇게 풀어냈구나 하면서 읽은 기억이 있다. 그 책으로 2021년 뉴베리 상을 받았다. 그리고 다음 해에 바로 이 책을 내셨다.

메사추세츠주 에서 ‘박동물보호소’를 운영하는 박씨 부부의 딸, 미희 완 박이 주인공으로 넓적한 얼굴과 120센티미터라는 작은 키의 한국계 소녀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공주는 뮬란 뿐이라는 것이 별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희는 공주를 추앙한다. 그래서 어릴 적 친구 제네비브와 함께 공주 놀이를 해왔으나, 요즘 들어 공주 같은 외모를 가진 이 친구조차 더이상 함께 하고 싶어하지 않음을 느낀다. 백설공주 놀이를 하기 위해 가져와야 할 사과를 깜빡한 미희에게 “어차피 넌 공주 같은 아이도 아니잖아.”(p.14)라며 친구는 떠나간다. 미희에게 공주란, 엘사와 라푼젤처럼 “어딘가에 나만을 위한 ‘오래오래 행복한 결말’이 있을 거야. 그걸 찾아내야 해”(p.18)같은 의미였기에 계속해서 “모험을 추구했고, 꿈을 이루고 행복한 결말에 이를 때까지 멈추지 않고 나아”(p.18)가기 위해 교정 안에 있던 사과나무의 사과를 따기 위해 오른다. 백설공주에게는 사과가 필요하니까. 하지만 그러다가 걸려 점심시간에 외부활동을 금지당하고 대신 도서관으로 가게 되는 벌칙을 받는다. 그곳에서 교실 등이 나가 고쳐보려고 의자에 올랐다가 훔치는 것으로 오인받고 벌을 받게 된 흑인 리즈와 노래를 부르다가 트라우마를 갖게 되어 스스로를 꽁꽁 묶은 사바나를 만나게 된다. 그렇게 셋이 ‘냉장고 너머의 왕국’, 공주들이 사는 무지개 왕국으로 발을 내딛는다.

이 왕국은 미희가 꿈꾸던, 공주들이 사는 세계였다. 하지만 공주가 되기 위해서는 이 세계의 인물인 버사가 시키는 대로 공주 훈련을 받아야 했다. 훈련의 결과는 점수로 환산되어 친구들과 경쟁해야 했다. 또 진짜 공주를 만난 다음에는 “공주가 되는 건 미희의 가장 큰 꿈이었지만 정작 잠자는 숲속의 공주는 어떤 선택도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아름답지만 새장 속에 갇혀 있다는 점이 꼭 동물보호소에 있는 새들 같았다.”(p.111)와 같이 느낀다. 절대 이야기를 바꾸어서는 안된단 불문율, 그러니까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라는 클리셰에 질문을 갖게 된다. 그렇게 아이들은 정해진 틀을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한다.

‘공주답다는 건 누가 정하는 거지?’ 다른 사람 눈에 공주처럼 보일지 아닐지를 걱정하느라 지금까지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이었다.(pp.208-209)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다양성을 표현하기 위한 색과 맛이다. 냉장고 너머의 왕국에 들어가게 해준 도서관 사서선생님의 사탕 맛은, 먹는 아이들 각자의 고유한 맛이다.

“엄마가 만든 팥떡 맛이야.” 미희가 말했다. “버터크림 케이크 맛이 나.” 리즈가 말했다. “난 엄청 맛있는 소고기 육포 맛이 나는데.” 사바나가 말했다.(p.31)

오두막집에서 만난 검은 곰이 끓여주는 죽, 역시 종류는 하나지만 아이들은 각자의 고유한 그 맛을 다시 느낀다. 각자가 집을 떠올렸을 때 그리움을 맛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미희라는 이름의 ‘미’는 아마도 아름다울 ‘미’로, 공주가 되기 위한 필수 요건이기도 하지만 맛 ‘미’자를 쓰는 미각의 ‘미’일 수도 있으니 여러가지 맛에서 아이들 각자의 고유한 그리움의 맛이 다양성이라는 주제를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정말 위험 천만한 모험 끝에 다시 돌아온다. 미희가 품었던 질문은 여전히 많이 남아있다. 주머니 속 묵직한 나침반도 여전히 미스터리이다. 미희가 ‘미희답게 잘 살았습니다’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 책 속 주인공 미희처럼, 공주가 되고 싶은 아이들이나, 이제는 공주놀이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무엇이 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은 아이들이 읽으면 좋겠다.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맛처럼 우리가 사는 이 곳이 얼마나 무지개빛으로 빛날 수 있는지를 이 책에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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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
바바라 몰리나르 지음, 백수린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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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엮고 백수린 작가가 번역한, 이라고 쓰지만 그 두 작가가 선택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한, 프랑스 여성작가, 바바라 몰리나르의 책이다. 1921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198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바바라 몰리나르는 글을 쓰고 찢어버렸다고 한다. 마르그리트 뒤라스와 남편이 그녀를 설득해 이 책에 수록된 단편만을 남길 수 있었고 1969년에 발간된 이 책이 그녀가 남긴 단 한 권의 책이다. 열세 개의 단편과 뒤라스와 몰리나르의 대담 한 개를 모아 총 열 네 가지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 책의 인물들은 혼자라면 누군가를 기다리거나(산타로사에서 오는 비행기),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하기도 한다.(머리 없는 남자, 와줘). 약사와 함께 등장하는 엑토르의 경우(잘린 손) 둥근 손을 실용적으로 만들기 위해 잘라내기도 하고, 침대에 묶여 주인이라는 사람의 지시로 입에 바늘을 꽂아두는 고통을 당하기도 한다(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 타인과 함께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직접적인 육체적인 고통을 겪기도 하고 사다리 만드는 것을 포기하고 싶지만 설득, 강요를 당하며 정신적으로 괴롭힘을 당하고 결국에는 비극이 기다리기도 한다.(아버지의 집) 이런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렁주렁 단 채 피투성이로 이 도시를 헤매는 인물들이다. 또 어딘가에 올라가기 보다는 주로 축축하고 음침한 지하로 내려간다(잘린 손, 와줘). 자신이 왜 이 곳에 있는지 기억하지 못하기도 하고(택시, 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 종종 등장하는 구멍들 뒤에는 누군가 숨어서 주인공 또는 무엇인가를 엿본다(침대, 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

“가장 우울한 것은 단 한 순간도 혼자 있을 수 없다는 점이다.”(p.205) 이 점이 이 책 속의 비극을 만들어낸다. 도시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지나가지만 타인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고통이 있다. 그래서 주인공들은 피투성이로 이 도시를 헤맨다. 친어머니 조차(잘린 손) 주인공을 박대한다. 주인공 역시 다섯명의 경찰에게 둘러싸야 고통받는 동생의 모습을 보지만 모른 척한다. 끊임없이 누군가를 기다리지만 (산타로사에서 오는 비행기, 와줘) 나타나지 않거나 손가락 만이 열쇠를 빼내고 사라진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와줘>라는 단편도 그렇지만 <만날 약속>에서는 “와야 해요”, “만나기로 약속했잖아요 ······ 와줘요.”(p.97)라며 계속해서 기다린다. 이런 기다림은 마지막 편, 뒤라스와 바바라 몰리나르의 대담으로 기록된 <지하납골당>에서야 “받아들여진 느낌”(p.217)을 받는다. 죽어야만 갈 수 있는 납골당에서 “삶 속에서는 붙잡을 수 없는 무언가를 우리는 죽음 속에서 붙잡을지도 모르니까요.”(p.223)라며 그 곳에서 “저는 그저 나 자신이 되고 싶을 뿐이에요.”(p.224)라고 말한다. 그렇게 이야기는 끝이 나고 이 페이지는 단 두 줄을 빼고는 텅 비어있는데 그 만큼 시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옆에 그녀가 직접 그렸다는 그림이 실려있다. 하얀 종이 위에 피를 흘렸는지 그 피를 흘린 누군가가 고통스러워 한 자국이 보인다. 바바라 몰리나르의 이야기에는 모두 고통이 담겨있다. 그 고통이 그녀에게 삶이란 흔적이었고 그것은 글쓰기로, 그리고 그것을 찢어버리는 행위를 통해 고통에 저항한 것으로 보인다. 스스로 나 자신이 되어 그 고통과 정면으로 맞닥뜨린 그의 ‘혼자’라는 고통에 저항할 수 있는 독립과 길겠지만 끝이 있는 ‘밤’을 응원한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나의 차례임이 느껴진다. 나는 내 자신의 고통을 응시할 용기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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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와 인간, 그 오래된 동행
김서형 지음 / 믹스커피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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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와 인간, 그 오래된 동행 : 기원과 종말을 잇는 138억 년의 비밀 코드

우주 탄생부터 현재 인류까지를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방식을 ‘빅히스토리’라고 한다. 데이비드 크리스천 교수가 1989년, ‘빅히스토리’라고 명명한 강좌에서 비롯되었다. 이에 감명받은 빌 게이츠가 미래 세대에게 큰 그림을 이해하도록 돕기 위한 교육의 일환으로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를 ‘빅히스토리 프로젝트’라고 하며 국내 도입 후 이 분야의 교과목, 강연 등을 도맡아온, 현재 인하대, 이화여대 연구원을 지나 국제빅히스토리학회의 임원을 거쳐 현재 러시아 빅히스토리 유라시아 센터 연구교수로 활동중인 김서형 저자의 책이다.

이 책은 총 7장으로 3장까지는 빅히스토리에서 접근하는 방식인 빅뱅 이후, 우주에서 별이 폭발하며 만들어지는 탄소의 시작부터 생명체가 만들어지는 골디락스(이상적인 균형상태를 말한다)의 조건에 대해 이야기한다. 4장에서는 탄소연대기로 보는 문명의 시작을, 5장은 중세시대의 소빙기와 제국주의 시절, 탄소가 어떻게 생산되었고 소비되었는지 서술한다. 6장은 기후 위기와 탄소중립을, 마지막 7장에서는 우주로 향해야 할 인류의 미래에서의 탄소에 대해 “ 탄소는 우주의 언어, 생명의 언어, 존재의 언어”(p.234)임을 밝힌다.

이 책에서는 역사적으로 아메리카가 탄소를 만들어내고 유럽이 탄소를 소비하고, 아프리카 노동자들이 탄소 노동력을 공급해왔다고 전한다. 오늘날에도 별로 달라진 점은 없다. 기업은 탄소를 인위적으로 끝없이 연결하여 만든 폴리에틸렌으로 만든 플라스틱 제품을 탄소와 수소의 화합물인 석탄, 석유를 에너지 삼아 생산하고, 우리는 그것을 일회용으로 쉽게 사용하며 탄소 쓰레기를 만든다. 정부는 쓰레기를 없애기 위해 태우고 이산화탄소가 되어 대기로 날아간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사용한 탄소는 기후위기가 되어 지구의 온도를 높이고 있다. 인류의 문명의 근간이자 동시에 기후 위기의 근본 원인인 ‘탄소 경제’ 시스템이었다는 것, 그리고 대기 중으로 배출된 이산화탄소는 단기간에 사라지지 않아 “지금 배출 되는 탄소는 미래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 “인간의 활동은 자연의 탄소 순환 자체를 교란한다”(p.207)는 것. 며칠 전 본 아바타 ‘불과 재’에서 새롭게 등장한 망콴족은 화산의 폭발로 살 곳을 잃고 유랑과 약탈로 버텨온 파괴적인 불의 힘을 가진 나비족이다. 같은 나비족이지만 불을 내뿜는 인간의 무기에 혹해 그들을 동맹 삼는다. 하지만 그 외의 나비족은 물의 정화하는 힘을 믿는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며 인간종족과 불이라는 것은 탄소경제를 지향해온 악의 축이고 자연과 균형을 맞추며 조화롭게 살아가고자 하는 나비족이 우리가 지켜야 할 탄소중립의 삶으로 보여졌다. 나비족이 믿는 물의 힘은 지구의 바다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인간이 만들어낸 이산화탄소를 홀로 흡수해온 바다는 이제 한계치에 도달했다. 산성화된 해양은 지구 전체 탄소 순환의 균형을 지키기 버겁다. 따라서 기후위기를 지속으로 바꾸기 위한 골든타임이 바로 지금이며 오늘날 우리가 선택하는 방향이 미래의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환경에 바로 반영된다는 것은, 이 책에는 이렇게 쓰여있지 않지만 이 책을 읽으며 과학자가 아닌 일반인인 나조차 유추할 수 있었다. 자연은 충분히 우리를 도와주었다. 이제는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국가전략과 제도가 필요한 시점이며 이를 따르는 “시민의 자발적 참여와 일상에서의 실천”(p.218)이 중요하다.

“기술혁신이 초래하는 미래의 변화를 예측하기는 어렵다”는 김상욱 교수님의 강의를 들었다. 과학의 힘으로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인간으로서는 최고의 방법이겠지만 그 기술혁신이 이루어지기까지 우리의 지구가 버텨줄지는 아무도 모른다. 거시적 관점으로 인류를 바라보아야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빌게이츠의 의도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자신의 부를 자녀들에게 증여하기보다 기부하려고 한다는 빌 게이츠가 우리 세대에게 남기는 선물로서 왜 빅히스토리를 선택했는지 이 책을 읽으며 짐작해본다.

#빅히스토리#탄소와인간그오래된동행#김서형#믹스커피#원앤원북스#빌게이츠#탄소중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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