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스러운 돌봄 - 잘 키우려 할수록 나빠지는 불행에 대하여
신성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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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아 저자의 전작 <사랑에 따라온 의혹들>은 갑작스럽게 백혈병 진단을 받은 딸아이를 간병하며 쓴 책이다. 그 연장선으로 이번 책 <탐욕스러운 돌봄>은 저자가 아이를 돌보며 마주하게 된 사회의 어두운 골목들을 직접 아이의 손을 잡고 목도하듯 읽혔다. 책표지 왼편에는 더 위로 뻗어나가려는 나무들을, 오른편에는 다행히(!) 미운 오리 새끼가 되지 않았겠지만 물밑으로 쉴새없이 물갈퀴를 움직이고 있을 백조 무리를 담은 사진이 보인다. 잘못된 돌봄의 결과물을 직관적으로 표현하였다. 무한 경쟁과 능력주의 사회, 공교육의 현실, 다문화, 경기 신도시의 현실, ‘키즈’ 프리미엄이 붙은 ‘체험’학습, AI문제, 젠더와 학교 폭력까지. 아마도 내 아이보다 한 살 적은 아이의 엄마로 추정되는 저자의 이야기는 같은 엄마로서, 같은 여성으로서, 같은 딸아이 부모로서 많은 부분을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평소 침범할 수 없는 사적인 영역이 육아라고 생각해왔던 나였기에, 나름 친한 엄마들과도 나눌 수 없는 성역같은 이야기들이 담겨있어 불편한 주제들이지만 응원하면서 읽어내려갔다.

제목의 '탐욕스러운‘은 사회학자 루이스 코저가 '탐욕스러운 제도(Greedy Institutions)'라는 용어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나오미 거스텔과 나탈리아 사키시안이 ’탐욕스러운 결혼(Greedy Marriage)'이라는 용어로 심화시킨다. 결혼으로 너무 많은 감정적, 시간적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에, 외부인과의 연결이 더 적다고 하는 개념으로 저자는 한국 사회의 양육 방식이 바로 이 '탐욕스러운 결혼'의 심화 버전이라고 본다. 그 결과는 아이가 이루어낸 성과로 계산하게 되고 이런 상황은 7세고시를 만들어낸 우리 사회의 배경이 된다. 즉, 우리 가족만 잘 살면 된다고 하는 생각이 오히려 우리를 더 고립시키고 돌봄을 숨 막히는 노동으로 변질시킨다고 보았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챕터는 2부의 ‘감각하는 민주주의’였다.
“요새 초등학생들은 학교에서 민주주의를 공부할 때 4.19 혁명부터 시작한다.(...) 민주주의는 늘 무언가를 중단시키거나 생겨나게 하는데 효력을 발휘한다.(...) 선생의 부당한 지시에 대해 학생들이 나서 지적하고 철회를 요구하는 것이 민주주의에 더 가깝다.”(p.84)라고 한다.

그외에 ‘실패’라는 키워드도 인상적이다.

“그러므로 학교와 사회에서, 적어도 가정에서 우리가 아이들에게 꼭 알려줘야 하는 것은 실패의 가능성이다. 성공을 격려하는 응원도 좋지만 ”자꾸 도전했다. 자꾸 실패했다. 상관없다. 또 도전하라. 또 실패하라. 더 잘 실패하라“라는 메시지도 중요하다. 패배하더라도 기꺼이 부딪치는 것, 낙오하거나 패배한 이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기회를 주는 것, 누구나 때에 따라 패배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를 감각하는 훈련이다.”(p.93)

“AI 에게 실패는 일상이다. 그래서 증강한다. 이제는 자주 실패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영원한 초심자로 남을 것이다.“(p.149)

“실수하고 실패하더라도 시종일관 자유로서의 발전을 꾀할 때, 이를 위해 기술 독점과 불균형, 편향되고 불충분한 데이터를 바로잡으려 애쓸 때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주저 없이 챗지피티의 창을 열어줄 수 있을 것이다.”(p.150)

이 실패라는 키워드를 아이에게도, 독자에게도, 이 사회에게도 권하는 저자는, 제목의 ‘탐욕’이 실패를 통한 역동적인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도록, 그래서 이 ‘탐욕이 향하는 활끝의 방향은 안이 아닌 밖을 향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아이를 돌보는 일이 ‘나만의 예술이자 모두의 책임인 양육’이 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그이의 의견에 찬성한다. 우리사회가 그런 안전한 시스템이 되어야 아이가 나선형 계단을 차례 차례 스스로 올라갈 수 있을 것이며, 우리는 그저 “너라는 계단을 좇아”(p.167), “오래도록 조용히 아이를 바라볼”(p.156)수 있게 되기를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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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바이벌 리포트 - 인생 제2막을 위한 융 심리상담
대릴 샤프 지음, 정여울 옮김 / CRETA(크레타)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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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바이벌 리포트>는 1988년, 대릴 샤프가 쓴 <The Survival Papers: Anatomy of a Midlife Crisis>가 원제이다. ‘북북서’에서 <생의 절반에서 융을 만나다>로 먼저 출간된적이 있다. ‘크레타’로 이름을 바꾼 출판사는 정여울 저자의 번역을 더해 원제 'Survival Papers'에 가까운 <서바이벌 리포트>로 새로 출간하였다.

저자 대릴 샤프는 1980년 '이너 시티 북스(Inner City Books)'를 설립한다. 이 출판사는 융 분석가들이 쓴 책만을 출판한다는 원칙으로 운영했다. 다소 어려운 융의 저술을 일반인들에게 쉽게 설명하는 시리즈를 140권 이상 출간했다.

대릴 샤프가 수많은 내담자들을 만나며 겪은 실제 사례들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노먼이 주인공이다. 그가 융 심리분석가를 찾아오며 시작되는 심리상담 소설 형식인 셈이다. 노먼이 실존하는 인물로 느껴지기에 그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중년인 그의 고통과 방황에 공감하게 된다. 겉보기에는 정상적인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는 중년 남성 노먼을 상담하며 성실한 가장, 유능한 직장인이라는 가면(페르소나)를 벗고, 억눌린 욕망(그림자)을 마주(투사)하여 진짜 자기 자신(개성화)을 찾을 것을 강조하는 융의 분석심리학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노먼은 마냥 해피엔딩의 주인공만은 아니다. 이 책의 후반부에서

“노먼은 여전히 자신의 그림자에 대해 거의 이해하지 못하며, 그림자와 하나 되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그에게 ‘타자’는 그의 아내이며, 그녀의 실재에 대해서는 여전히 잘 파악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를 이 모든 최악의 상황으로 몰고 간 것은, 그의 심리적 비자아, 즉 무의식이다.”(p.197)

그의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계속해서 그림자, 타자, 무의식과 대면해나가야만 한다.

“노먼이 자신 안에서 얻은 성장을 공고히 하려면, ‘외로움’과 화해해야 했다.”(p.242),
“노먼은 차분히 자기 자신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만 했다.”(p.243) 이런 부분을 읽으면서는 정말 보고 싶지 않고 별로인 내 모습과의 화해를, 그리고 생각보다 더 낯선 나 자신과 친해질 시간을 주는 책이다,라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한편으로는 여성독자로서 남성 중심적 서사의 한계가 보이기도 한다. 노먼은 아내가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에 대한 공감이 절대적으로 부족해보인다. 동시에 왜 하필 융 심리상담인가 하는 궁금증의 해답을 얻기도 했다. 이 남성 중심 서사의 붕괴지점이 바로 중년 남성이 직면해야 할 그림자이며 개성화의 단초가 된다. 주인공이 남성이라 해서 여성 독자가 얻어갈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성별을 떠나 한 인간으로서 중년에 생기는 허무함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여성적 에너지인 아니마를 찾아야 하는 노먼과 반대로, 내 안의 남성적 에너지인 아니무스를 탐색해보아야 함을, 그리고 내가 싫어한 나의 모습을 대면하는 그림자를 발견할 것. 이런 부분이 우리 모두의 숙제로 남는다.

우리나라에서는 노먼처럼 개인적인 존재론적 허무함 보다 자가살고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처럼 사회적 생존과 체면이 더 중요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개인적인 가면이나 사회적인 가면뒤의 진정한 자신을 찾아야만 한다고 이 책에서 강조한다. 그래야 중년의 위기를 전환점으로 삼을 수 있다. 그래야 타의에 의해 나의 페르소나가 깨지거나 벗겨지더라도 진짜 내 자신만큼은 무너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이 책을 통해 배운다.

융의 심리학에 대해 쉽게 읽어보고자 하는 사람에게 추천한다. 이왕이면 중년의 나이이면 더 좋다. 갱년기로 힘든 사람이 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서바이벌리포트#책리뷰 #컬쳐365 #융심리학#심리학 #심리학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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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도티의 마인드 매직 - 스탠퍼드대 뇌과학자가 전하는 잠재의식 사용법
제임스 도티 지음, 박세연 옮김 / 다산북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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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도티의 삶을 바꾸는 마술가게>에 이어 <닥터 도티의 마인드 매직>이 출간되었다. 전작에서 헌신적인 부모 복은 없을지언정 주변에 ‘성숙한 어른’이 단 한명이라도 존재하고 그의 연민이 한 인간에게 가닿을수만 있다면, 그 아이의 불행한 삶은 변화할 수 있다는 책이었다. 이 책은 BTS의 ‘Magic Shop’에 영향을 준 책으로 국내에서 알려져 인기를 끌었다. 이번 책은 어린시절 루스 할머니에게 받았던 그 ‘연민’을 ‘끌어당김의 법칙’에서 뇌과학적으로 설명한다.

이 ‘끌어당김의 법칙’은 신경가소성의 관점에서 볼 때 뇌과학적으로 밝혀진 사실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현실화’라는 개념을 통해 마음훈련 6단계를 제안한다. 그 6단계에 대해서는 이 책의 2장에서 7장까지의 목차에 따라 전개된다.

2장 첫 번째 단계: 내면의 힘을 마주하기
3장 두 번째 단계: 진정한 소망을 확인하기
4장 세 번째 단계: 마음속 장애물을 제거하기
5장 네 번째 단계: 의도를 잠재의식에 새기기
6장 다섯 번째 단계: 목표를 세상과 연결 짓기
7장 여섯 번째 단계: 새로운 기회를 받아들이기

전문가의 상담이 부담스럽거나 명상, 동기부여 책을 가까이 하는 사람들이라면 저자의 이 책을 통해 ‘현실화’를 실제화하는 훈련이 가능해보인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즐거움 중 하나는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도 큰 인기를 받아온 여러 책이 언급된다는 점이다. 그 중에는 ‘끌어당김 법칙’이 수많은 억까를 받아온 것에 대해 언급하며 론다 번이 쓴 <시크릿>에 대해 ‘악명 높은’이라는 수식어구를 붙여놓았다. 노란 색 표지에 ‘세계의 단 1%만이 공유하는 성공의 법칙’과 같은 맥락의 홍보 문구가 써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저자는 이 1%만의 법칙이 아닌, “우리 모두가 접근할 수 있는 평등하고 혁신적인 개념이다.”(p.28)라고 말하기도 한다. 또 ‘B=MAP’라는 공식을 제시한, <습관의 디테일>과 미하이 칙센트미하이의 <몰입>에 대해서도 ‘현실화’하는 과정 중에 도움을 주는 개념으로 등장한다. 그외에 짐 캐리가 2009년에 인터뷰했다는 에크하르트 톨레,라는 영성 분야의 작가도 작년에 그의 책을 읽었던 터라 내심 반가웠다.

인상적인 것은, 저자의 6주간의 마음훈련에는 항상 ‘글쓰기’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자신을 멀리 떨어져서 관찰할 때, ‘글쓰기’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미래의 자신에 대한 일기를 꾸준히 쓰는 것만으로도 저자가 강조하는 ‘현실화’에 꽤많이 도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개인적으로 자기계발서를 많이 읽으며 늘 자신을 동기부여하려고 노력하는 분들중에 번아웃이 온 사람들이 읽었을 때 더 효과가 좋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그보다

“나는 오랫동안 주변 환경이 내 삶을 지배하도록 내버려두었다. 어떤 의미있는 변화가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p.15)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슬픔의 늪에 가둔 사람들에게 더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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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홍콩배우 양조위 - 말보다 깊은 눈빛, 양조위의 삶·사랑·작품
주성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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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TV를 틀면 주윤발이 서툰 한국말로 “사랑해요, 밀키스”라는 광고가 흘러나왔고, 아저씨들은 이쑤시개를 입에 물고 트렌치코트를 입고 거리를 활보했다. 언니는 장국영 내한 콘서트에 다녀오며 화보집을 사왔다. 나는 친구들과 홍콩강시영화를 보곤했다. 강시영화가 지겨워질 때쯤, 아저씨들만 빌려보는 무협시리즈 책장에 다가가 똑같은 제목이 40개에 달려있던 , <의천도룡기1986> 1편을 빌려왔다. 아버지가 보던 ‘판관 포청천’과 비슷한 옷을 입은 배우들이 화면에 나왔고 그렇게 나는 양조위를 처음 보았다.

고등학교 때 방송반이었던 나는 매주 금요일 점심시간마다 철 지난 디즈니나 고전영화의 OST를 틀었다. 그러다 극장에서 <중경삼림>을 봤다. ‘California Dreaming’과 ‘몽중인’이 흘러나오는 씬에서 OST의 역할을 이 영화로 처음 경험했다. 그렇게 나는, 그 당시 수많았던 왕가위감독의 팬 중 한 명이 되었다.

이 책, <마지막 홍콩배우 양조위>를 읽으며 왜 항상 그는 죽거나 남겨지거나 주변 인물들이 그를 떠날까, 궁금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있었다. 1997년은 홍콩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되는 해였기에 그당시 홍콩영화에는 이에 대한 불안과 불확실성이 녹아있었다. 마치 내일은 없다는 듯이 식칼이나 권총을 들고 싸우는 느와르의 주인공들 역시 비슷한 의미로 다가온다. 왕가위의 페르소나라고 불리기도하고, 이 책에선 다른 여러 감독들에게 “양조위는 모네의 수련이기도 하고, 세잔의 사과이기도 하며, 고흐의 해바라기”(p.11)라는 양조위 배우는 홍콩, 그 자체였다. “영화는 다른 예술과 달리 침묵을 미학으로 만들고, 아무 행위도 하지 않는 것마저 이야기로 만든다.”(p.101) 라는 문장에서 ‘영화’를 ‘양조위’로 바꾸면 그의 연기양식을 설명하는 문장이 된다. 과장된 액션이나 폭발적인 감정 분출 대신, 절제된 몸짓과 수만 가지 감정을 담은 눈빛을 통해 인물의 내면을 전달하는 그의 연기는 홍콩이라는 도시가 처한 운명과 닮아있다. 그의 40년 연기 인생, 즉, <화양연화>의 1960년대부터 일국양제가 끝날 20년 후의 <2046>년까지, 왕가위 감독이 영화에서 다루었던 모든 시간대를 온몸으로 관통해낸, 홍콩을 한번도 떠나지 않은, 유일한 배우라는 리스펙트를 담은, 주성철 저자의 ‘양조위 평전’인 셈이다.

그리고 “확신의 주인공상”(p.75) 유덕화나, “한국광고 최초의 외국 연예인 TV CF 모델”(p.59) 이었던 주윤발, 장국영, 주성치와 같은 그 때의 홍콩배우들의 이야기는 덤으로 읽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것은 그가 나온 영화의 제목이 나올 때마다, 마치 어제의 일인 것처럼, 누구와 어디서 보았는지가 떠올랐다는 점이다. 오늘날의 넷플릭스가 줄 수 없는 추억이다. 나 역시 홍콩영화와 함께 나이를 먹었구나, 싶은 마음에 서걱거린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OST는 아직도 소장중인 <Happy Together>다. 가사 중, 후렴부분인 “I can't see me lovin' nobody but you for all my life. When you're with me, baby, the skies will be blue for all my life” 즉, “난 다른 누구도 필요없어 너만 있으면 돼. 네가 내 옆에 있다면, 하늘은 항상 파랄거야”

표지의 양조위는 이구아수 폭포가 쏟아지는 배경을 뒤로 하고 파랗게 서 있는 아휘의 모습이다. 아휘는 양조위가 가장 좋아하는 역할이었다고 한다. 은퇴논란이 있기도 하지만 2046년까지 아직 홍콩에게는 남아있는 시간이 있다. 나는 양조위의 연기를 더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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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 시대의 귀환 - 팍스 아메리카나의 몰락과 무한 각축의 시작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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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한국 이름은 ‘노자’로 러시아를 가리키는 ‘노’에 아들 ‘자’, 즉 ‘러시아의 아들’로 지었다. 이 책 중 ‘소독전쟁’(p.106)이라고 쓰여 있는 부분을 읽으며 ‘독소불가침조약’으로 세계사를 배운 나는, 새삼 그가 ‘블라디미르 티호노프’라는 러시아의 노동자계층의 영혼이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떠올렸다. 그는 유태계 러시아인이라는 소수자 위치에서 구소련의 차별을 경험했고, 2001년에는 한국으로 귀화하였으나 교수자리가 없어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대학(개인적 여담으로 ‘노어’를 ‘노르웨이어학과냐’라고 묻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래서일까!)에서 한국학과 동아시아학을 26년째 가르치고 있다. ‘경계인’, ’이중의 타자‘라 불리는 별명, 그 자체의 삶을 살아온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인생 여정을 바탕으로 그는 한국사회의 인종주의, 군사주의, 국가주의를 보수, 진보 상관없이 비판하여 ’모두까기 인형‘이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그의 이런 비판은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하는 한국인들에게 쓴소리를 해줄 수 있는 투명한 거울이 되어줬다. 그래서 그의 솔직한 책의 출간이 반갑다.

이번 책 표지에 그려진 자유의 여신상 앞 철조망이 인상적이다. 프랑스인 조각가 바르톨디가 만든 이 여신상 받침대에는 “자유롭게 숨쉬기를 갈망하는 지치고 가난하고 고단한 이들이여 내게로 오라”라고 적혀있다. 이민자와 난민을 받아들여 “인력과 인재의 유입으로 결국 번영을 이루는 ‘인간 수입형’ 경제 모델‘”(p.9)의 성장을 이뤄온, 이전 미국의 모습을 상징하는 자유의 여신상 앞에 철조망이 놓인 셈이다.

저자는 <야만 시대의 귀환>, 부제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몰락과 무한 각축의 시작”이라는 책을 통해 1920년대의 패권국가였던 영국과 2020년의 패권국가인 미국을 비교, 대조하며 몰락의 메커니즘에 대해 짚어낸다. 당시 영국의 철강 제조업이 독일에 추월당하고 오늘날 미국의 제조업을 중국에게 내준 상황부터 시작한다. 제조업이 중요한 이유는 노동자계급의 힘이 건장해야 상위 3%에 불과한 인구지만 전체 30%이상의 부를 거머쥔 자본계층에 맞설 수 있는 세력을 견제할 수 있다 라고 나는 읽었다. 당시 영국은 클레멘트 애틀리라는 수상이 그런 노동자계층의 세력에 힘입어 ’노동당‘을 만들어 소련을 모방한 무상 의료체계나 핵심기업 국유화, 복지 국가의 골격을 만들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패권국가의 지위는 잃었지만 금융업에서의 선진국 위엄은 오늘날에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미국은 이전 트럼프집권과 바이든의 시대를 거치며 제조업이 2% 정도 늘긴 했지만 중국을 넘어서지 못한다. 이 10%에 불과한 미국의 “다수의 노동자들은 이미 노조와 인연이 없고 그저 ’개인‘으로서만 사회적으로 존재”(p.11)한다. 이 힘없는 노동자들은 자신들을 보호해줄거라고 생각하는 관세와 같은 보호주의 의제를 내세운 정치를 하고자 하는 트럼프라는 괴물을 탄생시켰다고 설명한다.

또한 미국만 쳐다보고 있는 우리나라의 극우에 대해 미국이라는 백일몽이 이제 종결했음을 알리며 우리의 경제이익은 미국보다 중국이 더 큰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취해야 할 입장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보수, 진보와 상관없지만, 자신에 대해 “노르웨이에서 저처럼 뚱뚱한 몸은 하루에 1~2시간 운동도 하지 못하고 값싼 음식을 먹는 동유럽 출신 이민 노동자의 전형적인 몸입니다.”(p.70)라고 셀프디스(!), 아니 자신에 대해서 조차 객관화되어 있는 이 푸른 눈의 한국인의 시선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는 홀로코스트, 유대인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한국사람들이 답답했는지 ’이스라엘 너는 누구냐‘라는 제목으로 챕터 하나를 할애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저자는 구소련에서 탄생하긴 했지만 친척들은 주로 이스라엘에 있다고 한다. 사회주의의 태동기, 책으로 배운 사회주의에 홀릭한 영특한 유태인들이 많았기에 (우리나라의 근대 지식인들이 주로 사회주의자였듯이) 러시아, 특히 우크라이나로 건너간 유태인들의 수가 생각보다 굉장히 많았다. 주로 고리대금업자(셰익스피어 때문이겠지)였던 유태인들이 미국으로 건너가 금융업에 종사하며 미국의 정치에 보이지 않는 권력을 휘두른다는 음모론에 대해 음모라고 이야기하는 부분을 읽으며, 한 달 전인가 일론 머스크가 보이지 않는 권력층이 존재한다고 인터뷰하던 영상을 떠올리며 저자와 일론 머스크 둘 중에 누가 거짓말쟁이일까를 살포시 생각해보았다. 그 외에도 우리가 미국을 위해 베트남 파병을 보낸 창피한 역사가 있는 것처럼, 북한 역시 러시아를 위해(푸틴이 2012년 북한의 외상빚 110억원 정도를 손실처리해줬다고 한다) 우크라이나 파병을 그런 관점에서 본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이 책은 패권국가로서의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미국의 과거와 현재를 들여다보며 우리나라가 갈 길에 대해 크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책이다. 트럼프가 X에 한마디 올릴 때마다 거기에 대해 해석하고자 하는 수많은 전문가 유투버들이 있지만(나 역시 열심히 보는 편이지만) 그런 채널이 현미경이라면 이 책은 망원경처럼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그런 시각을 제공해준다. 미국에 대해, 유대인에 대해 트럼프에 대해 관심이 많다면, 적극 추천한다. (박노자교수님이 최근 연구중인 1920년대와 30년대를 이렇게도 이을 수가 있구나,라는 점은 덤이다)

#야만시대의귀환#박노자#한겨레출판#하니포터#하니포터1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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