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원의 책 - 괴테에서 톨킨까지, 26편의 문학이 그린 세상의 정원들
황주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평점 :
어제 저녁, 기안84가 한혜진의 하루를 따라다녀보는 유투브 컨텐츠를 보았다. 먹기 위해서(농사)가 아니라 예쁜 꽃을 보기 위해(가드닝) 모종을 심는 한혜진을 신기하게 쳐다보는 기안84를 보았다. 나 역시 로즈마리와 고추씨로 가드닝(!)을 시작했던 사람으로 그와 다르지 않았다. 예로부터 정원을 가꾸는 위인들은 많았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흙을 만지고 씨앗을 심었을까? 그런 궁금증을 가지고 책을 펼쳐본다. 베르사유궁전처럼 유명한 정원도 이 책에 나오지만 볼테르, 버넷, 플로베르, 디킨스, 루소, 괴테, 키냐르, 톨킨 등의 유명한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에 그린 정원들을 치유, 사랑, 욕망, 생태라는 네 가지 키워드로 묶었다. 이렇게 묶은 이는 도서관 인문강좌를 편하게 줌으로 신청해서 들을 수 있던 코로나 시절, 신청시작하자마자 빠르게 마감되는 인기강사(!) 황주영씨였던 터라 반가웠다. 그 때 베르사유, 알함브라 등 궁전에 딸려있는 정원들을 비교하는 강의도 흥미로웠고 소설 속에 등장한 정원을 영화 영상으로 보면서 이야기해주시는 강의도 즐거웠던 기억으고 남아있다. 그때 강사님이 정원이라는 주제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자신의 관심사를 향해 뻗어나가는 가지를 가지고 있는 나무처럼 느껴졌다. 역시 사람은 좋아하는 대상을 닮아가는 구나. “문학에서 미술사로, 또 조경사로 전공은 달라졌어도 하는 일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연구 주제를 좁히면서 정원의 세계를 더욱 깊게 들여다보게 되었다.”(p.6) 3가지의 전공을 가진 저자의 학문적 고생(!)은 독자에겐 복이다. 정원 하나를 보더라도 다양한 관점에서 입체적으로 들여다보고 고심한 결과일 이 책을 나같은 독자는 그저 쉽게 주워먹으면 되니 말이다.
이 책을 펴자마자 나는 프롤로그 다음으로 톨킨과 장 지오노, 김초엽작가가 나오는 4장 생태의 정원을 먼저 읽었다. 그 다음으로 재밌어 보이는 욕망이라는 키워드의 3장을, 뒤이어 플로베르와 디킨스가 나오는 1장 치유의 정원을 읽었다. 2장 사랑의 정원을 가장 기대하지 않았기에 끝으로 읽었으나 누군가 나에게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 어디냐고 물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죽음으로도 죽지 않는 사랑: 크리스티앙 보뱅, 《그리움의 정원에서》’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 에피소드는 저자가 불문학과를 전공했기에 쓰일 수 있었지 싶다. 사랑과 죽음이라는 프랑스어 발음이 비슷하다는 것을 저자가 알아서일까, 죽음이 빼앗을 수 없는 사랑에 대한 뉘앙스는 시처럼 다가왔다.
“인적 없는 정원에서처럼 침묵을 듣는다. 겨울 정원을 거닐 듯 조심스럽게 페이지를 넘기고, 구절을 옮겨 적는다. 시가 아님에도 시를 읽고 난 듯 주변 공기가 맑고 시려진다. 다른 시간과 공간으로 감각을 이끄는 그런 정원을 거니는 상상을 해본다. 눈이 되고, 라일락이 되고, 태양이 된 지슬렌이 있는 정원. 눈물 아래 웃음이 있는 정원. 서리가 얇게 드리워져, 걸음마다 바스락거리며 발자국을 검게 남기는 정원. ”고독과 빛과 고요로 감싸인 도피네의 작은 처소“같은 정원. 지슬렌이라는 이름이 하얀 입김으로 사라지는 겨울 정원. 그리움 속에서 시들기도 하고, ”그 안에서 켜켜이 쌓이는 삶을 깨닫는“정원. 결국에는 사랑이 노래가 되어 흘러나오는 정원. 그 정원의 이름은 그리움이다. (pp.110-111)
직접적인 정원 묘사는 없지만 지슬렌을 향한 그리움으로 작은 정원을 가꾸어가는 보뱅의 문장이 겨울정원처럼 아름답다. 마지막 문장, ‘그리움 속에서 시들어가고 그 안에서 켜켜이 쌓이는 삶을 깨닫는 정원’. 내가 정원이라는 공간에서 읽고 싶은 문장은 이런 것이다. 이 부분이 111페이지에 쓰여있다는 것마저 좋았다. 마치 나무 세 그루가 서있는 그리움 가득한 정원이 그려졌다. 키케로가 말한 “서재에 정원이 있다면 모든 것을 가진 것이다”라는 문장을 이처럼 잘 설명할 수 있는 작품이지 않았을까, 하며.
순서대로 읽지 않아 정원을 가꾸는 ‘돌봄’이라는 키워드가 이 글에 담기지 못해서 안타깝다. 정원을 가꾼다는 것은 돌봄 이상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음을 다양한 인문학 작품을 통해 표현하는 책이다. 가드닝이라는 것이 작가들에게는 글을 쓰는 과정과도 같고 나같은 일반인 독자에게는 인생을 가꾸어나가는 것과 같이 읽힌다. 서울 근교에 전원주택을 지을 예정인 사람이 읽어도 좋겠지만 자신을 위해 꽃 한 송이 살 줄 아는 사람이 읽으면 더 좋겠다. 다양한 예술가들의 정원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정원이라는 카테고리로 만들어낸 자신만의 공간을 책으로 펴낸 황주영저자님의 정원에 들어올 수 있는 초대장 같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