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율리 체 외 지음, KATH(권민지) 그림, 배명자 옮김 / 다산어린이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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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학년 A반의 반장 마리에의 건강 샌드위치가 자꾸 도난당한다. 그녀의 어머니가 정성스레 싸준 겉포장지만 덩그러니 남은 채 말이다. 그러다 마리에의 가방에 손을 댄 콘라트의 사진이 찍히고 범인으로 몰리면서 A반 아이들은 ‘우리들의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라고 선언한다. 이런 줄거리를 가진 이 책은 독일인 율리 체와 엘리사 호벤 글을 쓰고, KATH라는 신기한 예명을 가진 권민지씨가 그렸다.(어쩐지 토르벤이 굉장히 힙하게 그려져있는데 홍대스타일(!!!) 이더니만. 일단 이 책은 질감이 무척 특이하다. 약간 벨벳 같은, 손에 잡으면 찰싹 붙는, 마치 ‘내 손 안의 샌드위치’ 요런 느낌의 책이다. 마리에의 어머니의 ‘슈퍼샌드위치, 슈퍼라이프’라고 써있는 겉 포장지 대신, 책 제목 <우리들의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가 새겨져있는 표지다.(식빵도 일반 식빵 아니고 건강한 호밀 디테일 진심 짱)

*인물
핫걸 마리에 반장과 그녀의 슈퍼걸-엘피, 클로에, 피나르, 아빠가 경찰관이어서일까 이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 (마리에를 짝사랑중인) 토르벤, 말은 없지만 항상 ‘압도적 1등’인 미카, 나이든 선생님이라 시청각자료를 틀어주는 현대식 문물에 익숙하지 않아 시간을 허비하는 쉰델바르트-분제만 선생님, 관리인이 키우는 하르트무트 등등 다양한 인물들이 나온다. 슈퍼걸 세명은 <동물농장>에서 양들이 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러면 미카 역시 ‘벤자민’(동물농장의 캐릭터)인가 싶은데 조지오웰의 당나귀보다 훨씬 중심을 잘 잡아주는, 그런 똑똑한 지성인으로 나온다. 사실 화려한 캐릭터는 마리에나 토르벤이 다 해먹었지만 이 소설은 미카 없이 재판까지 가지도 않았다에 한표! 또, 범인으로 몰려 절망스러워 보이는 콘라트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콘라트의 모습이 어쩐지 슬펐고, 거의 절망스러워 보였다. 그런 모습 때문에 미카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미카는 이런 상황을 표현할 적절한 단어를 알고 있었다. 부당함! 자신이 당하지 않은 일에 부당함을 느끼며 마음이 아플 수 있다니, 미카도 처음 느껴 보는 감정이었다.(pp.43-44)”그렇다. 미카는 ‘부당함’에 꿈틀거리는 인물이었다. 그는 이런 어록도 남긴다. “투표라니, 바보 같은 생각이야. 진실은 다수결로 결정되는 게 아니야.”(p.56), “우리에게 필요한 건 재판이야.”(p.60). 평소 잘난척 하는 ‘압도적 1등’이었다면 그의 말들이 이 반에 먹히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미카는 최근 2년보다 요새 이틀동안 말을 더 많이 했다는 문장처럼 이 책에는 써있지 않지만 그의 침묵과 겸손이 그의 말에 무게를 실어주었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작가선생님의 요런 표현이 참 재밌었다.
“콘라트를 향한 분노는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는 도베르만 같다. 다른 아이들과 함께 콘라트를 따돌렸을 때 든 죄책감은 귀가 처지고 꼬리를 내린 시추이다. 그리고 토르벤 때문에 때때로 생기는 짜증은 고개를 빳빳이 들고 늘 눈을 굴리는, 거만한 달마티안이다.(p.72)

이 이야기가 끝나고 부록에는 형사재판절차에 관한 Q&A나 법개념에 대해 써있다. 증인은 진실을 말해야 하지만 ”피고인은 거짓말 혹은 지어낸 이야기를 하거나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위증죄로 처벌되지 않는다“(p.121)라는 부분은 나도 처음 알았다!!

범인은 누구인가라는 소설적인 재미도 재미지만 아이들이 직접 재판을 하려는 이 자기주도적인 아이들이 가장 부러운 책이었다. 슬이 역시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하여 ”넌 이 책 읽고 뭐를 느꼈니?“ 물으니 ”나는 읽는 내내 건강 샌드위치 말고 맛있는 샌드위치를 먹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라는 먹는 것으로 끝났다는... 그래도 희망은 있다. 얘네는 6학년이고 슬이는 아직 5학년이다 ㅜㅜ. 일 년 내에 많이 성장하겠지 아멘.

p.s 어제 도서관가다가 비가 와서인지 회양목 밑에 버섯이 자랐길래 콘라트를 따라했더랬다. 그런데 그 옆에 뭐가 버글거려 자세히 보니 개미가 매미머리를 들구 흥분해서 들구가는데 마치 인간들이 투쁠 소고기 보고 신난 발걸음이랄까, 그런 걸 느꼈다!!!!! 매미머리에 눈이 그대로였다... 과연 자연을 사랑하는 거미를 살려주는 마리에를 보고 반한 콘라트는 이런 자연의 무시무시함에는 어떻게 대처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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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라닌 - 제29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하승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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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파랗게 보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하게 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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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위의 아줌마 - 사노 요코 10주기 기념 작품집
사노 요코 지음, 엄혜숙 옮김 / 페이퍼스토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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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위의 아줌마, 사노 요코

내가 사노 요코의 작품을 처음 접한 건, 그림책을 통해서였다. 그닥 예쁘지도 않게 생긴 고양이가 사람처럼 두 발로 서서는, 녹색 눈으로 나를 응시하는 표지의 <백만 번 산 고양이>와 사자맞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호구(!)로 보였던 <하늘을 나는 사자> 이 두 권의 그림책은 꽤 강렬했다. 이후 <요코씨의 “말”> 시리즈를 보며 1938년생인 이 일본 할머니처럼, 나도 저렇게 쿨하게 늙고 싶다는 팬심을 갖게 했다. 그리고 사후 10주년으로 발간된 <언덕 위의 아줌마 사노 요코>가 내 책상 위에 놓여있다. 그동안 책으로 발간되지 않은 동화, 짧은 글, 직접 그린 그림과 에세이, 희곡 그리고 국민시인이라는 다니카와 슌타로와의 편지가 이 한 권에 묶여있어 뭐야, 없는 장르가 없네, 백화점이야? 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 한 권에 자그마한 여자아이였던, 아가씨였던, 한 아이의 엄마였던, 아줌마였던, 할머니의 나이에도 당찬 소녀의 마음을 가졌던 사노 요코가 오롯이 녹아있었다. 우리나라 기준의 1938년생으로는 있을 수 없는 할머니 스타일이다. 우리나라의 X세대가 할머니 나이 된 느낌이랄까, 우리나라보다 근대를 빨리 받아들여 가능했던 게 아닐까 싶다가도, 일반적인 일본인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이 분이 참 별난 분이시긴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 실려있는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읽는 동화’인 <제멋대로 곰>에 나오는 곰은 착하거나 못된, 이분법적인 이야기 속의 우리가 알던 곰이 아니다. 제목 그대로 ‘제 멋대로’ 하루하루를 즐기며 행복해하는 곰이다. 왜인지 사노 요코의 모습이 보인다. 그녀가 쓴 다른 동화에 나오는 어린 여자아이 주인공이나, 육아에 익숙하지 않은 어머니 역할의 인물 역시 그런 제멋대로인 사노 요코의 모습이 들어있다. ‘초현실적이고 좀 이상한 짧은 이야기’의 <불쌍해>에서는 같은 여성에 대한 풍자도 서슴치 않는다. 그런 여성 스타일을 싫어했나? 싶기도 하다. 희곡 <언덕 위의 아줌마>에는 날씨보다도 더 변덕스러운 감정을 가진 아줌마가 나온다. 그 아줌마의 절반은 사노요코가 살던 시대의 일본 아줌마이고 절반은 유쾌하고 쿨하며 별나게 사는 사노 요코를 닮았다. 여성으로서 ‘아줌마’라는 단어에 대한 애정을 무지개로 그려냈다고 생각한다. 다나카와 슌타로와의 편지를 읽으면서는(사실 가장 기대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솔직한 성격과 어디로 튈지 모르는 통통한 성격이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나이가 들었어도 아줌마가 아닌 여자로 살고자 했던 사노 요코의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사노 요코는 본인 말처럼 못생겼을진 모르지만, 참 멋진 여성이다.

*번역가 엄혜숙님도 참 반갑다. 아이와 함께 즐겁게 그림책을 읽었던 시절이 있었더랬다. 한 다섯 살 겨울부터 일곱 살 봄까지.(그 이후는 애가 만화책으로 넘어가면서 같이 읽으려고 하질 않았...) 그때 엄혜숙 번역가님이 번역한 책들을 많이 읽었더랬는데 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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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예감 - AI 비즈니스와 투자를 위한 격이 다른 현장 분석
권기대 지음 / 베가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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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예감 : AI 비즈니스와 투자를 위한 격이 다른 현장 분석

*이 책의 목차
Part one, 생성 AI 혁명 2년째 무엇이 달라지고 있는가
Part two, AI 예감 : 주요 산업과 각 분야 경쟁자들

첫 번째 파트에서는 “챗GPT와 생성 AI 이후 AI 모델이라는 이름으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는 인공지능 기술의 몇 가지 특징”을 “기술적 측면이 아니라 주로 경제와 산업, 비즈니스 그리고 투자의 측면에서 AI의 발전을 고찰”(p.5)하고 있다.
이 장을 읽으며 나 역시 오픈 AI라는 선두에 뒤쳐져 있는 자존심 상한 구글의 제미나이는 어떻게 반전을 마련할지 궁금하다. 또 과연 삼성전자의 세계 최고 제조능력이 온디바이스에서 발휘해 우리나라의 미래먹거리를 삼성이 계속 차지할 수 있을지, 앞으로의 경제 뉴스에 나올 이야기들을 미리보기 하는 것 같아 흥미로운 장이었다. 결국 모든 AI의 산업이 AGI 개발을 향한 발걸음을 걷고 있다는 통찰은 덤. 문제는, “AI에 관한 한 미국이 누리는 장점은 압도적이다. 유럽, 일본, 한국 등의 열세는 언급이 필요없을 정도다. AI 개발에 필요한 언어 데이터의 규모, AI 인재의 집중도, 기술 투자 생태계의 규모 등 모든 면에서 그렇다. 정책의 도움과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AI 기술 개발, 투자를 시장과 기업에만 맡겨 놓아선 그 격차를 따라잡기가 힘들다. 머지 않아 미국이 막대한 AI기술 이용료를 세금처럼 걷어갈지도 모른다.(pp.113~114)” 라는 저자의 지적에 대한 부분이다. 가뜩이나 뒤늦은 AI산업으로의 진입인데 “AI는 빠르고 정치는 느리다”(p.114)라는 전문가들의 말처럼 국가차원의 정책 도움은커녕 발목을 잡는 사안들에 대한 빠른 논의가 필요해보인다.
두 번째 파트는 AI기술의 발전과 함께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국내외 주요 기업들의 면면을 둘러보는 내용”(p.6)에 대한 저자의 종목(!) 예감(제목과 이어진다는 점에서 이 2장이 중요 포인트)이 적혀있다. 전 산업에 걸쳐 혁명적 변화중이지만 그 중 특히 로봇과 바이오쪽이 두드러진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따지고 보면 지금 일어나는 의사들의 난 역시, 영상판독에 있어 의사보다도 정확하다는 AI의 발전이 의사라는 직업군에게 가져다준 위기감 때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학쪽에서는 암 치료나 동물의료, 뿐만 아니라 심리치료까지도 범위를 넓혀가는 형국인데 이 부분을 읽으며 쌩뚱맞지만 디벗이 떠올랐다. 요새 서울시교육청에서 ‘디벗’이라는 디지털교과서 배부 중인데 향후 삼년 이내로 서울의 모든 학생들이 이 디벗을 사용하게 된다고 한다. 이에 대해 많은 학부모들이 반대하고 있어서인지(잡스도 자기 자식들은 스무살까지 아이폰을 못쓰게 했다는.. 그런 이야기들이 있지 않은가?) 서울시교육청에서는 디벗 홍보에 적극적이다. 그 중 대표적인 홍보내용이 이거였다. 아이들이 등교해서, 의례히 체크하게 될 그 날의 바이오리듬은 한달, 석달의 데이터로 쌓여 아이가 현재 정서적으로 좋지 않은 상태일 때 교사와 학부모가 이를 동시에 알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식으로 쌓은 데이터는 다른 유형의 샘플 데이터가 될 것이고, 이 막대한 데이터들은 AI를 추론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다. 뭔가 디지털 네이티브로 태어난 학생들의 미래는 아직도 잘 보이지 않았는데, AI의 미래만큼은 또렷이 보이는 그런 아이러니한 부분이었다.
이 두 파트 이후의 뒷부분에서는 “AI 기술의 발전이 초래하고 있는 몇 가지 경제적, 사회적 폐단과 문제점, 그리고 AI 기술을 악용하고 심하게는 인류를 위협할 수도 있는 위험성”(p.6)에 관해서도 나열했다. 또 AI개발의 선두주자들의 생각과 어떤 미래를 꿈꾸는지도 요약해놓았는데 나는 이 부분이 특히 좋았다.
2023년에 쓰인 <챗GPT 혁명>의 뒷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 이 책 <AI 예감>은, 권기대 저자님의 책이다. 책을 읽고, 몇 달 전 포스코 연구소에서 펴낸 책을 읽었는데 그것과도 비슷한 결이길래 저자는 공대생도 아닌데 대기업 연구소에서 펼쳐낼 만한 책을 혼자 쓰셨네? 식견이 왜 이리 넓으신겨? 하며 책 날개에 붙은 약력을 보았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시기도 했고, 전 세계에서를 다니며 쌓은 커리어도 커리어지만, <2024년 비즈니스 트렌드>라는 책과 같은 경제 서적 저자이면서, , <덩샤오핑 평전>, <부와 빈곤의 역사>, <우주 전쟁>, <아이는 어떻게 성공하는가>등 영미, 독어, 프랑스어권 책 50여 종을 번역하셨다. 번역가라면 그 글을 쓴 저자보다도, 그들의 문장을 더 많이 읽었을 사람 아닌가? 그제서야 이 책의 광범위한 시각이 이해가 되며 부러웠다.

아직도 AI가 뭔지 잘 모르겠는 사람, 대충만 아는 사람, AI 관련 주식투자에 있어 머뭇거려지는 사람, AI가 어떤 과정에서 등장했는지, 우리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 호기심이 생긴 사람, 지금 현재 AI의 상황을 글로벌한 시각에서 보고 싶은 사람,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미래를 보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진짜 여기 나온 종목들은 지금도 상승세에 오르고 있는 애들인데 내가 이 책을 한 달만 빨리 봤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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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와 빵칼
청예 지음 / 허블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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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강렬한 책을 만났다.

‘자유가 우릴 추하게 만든다.’

이 책을 다 읽은 후 에피그라프를 다시 보니, 저 앞에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는 문장이 숨어있었지, 싶은 생각이 든다. 영아가 찾은 진리는 그녀를 자유롭게 했다. 하지만 그 자유는 또한 추하게도 만들었다. 마치 에덴동산의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후 부끄러워했던 것처럼 이 책 역시 “부끄러워졌다.”(p.176)로 끝난다. 이 책을 내 맘대로 제목짓기 하자면, 나는 <선악과>로 짓겠다. 에덴동산의 선악과가 마치 오렌지인양, 무딘 빵칼로 잘려 지저분하게 과즙을 뚝뚝 흘리며 독자에게 한입 권유하는 <오렌지와 빵칼>을 소개한다.

주인공 영아는 스물 일곱살의 유치원선생님이다. 유치원생인 은우는 영아에게 모욕감을 주고, 남자친구 수원의 모든 것이 그냥 싫고, 은주의 모아니면 도로 강요하는 가스라이팅에 숨이 막힌다.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 은우의 엄마와 수원은 심리치료 비슷한 센터를 권한다. 이곳에서 전두엽의 중격핵인 NAc자극체를 레이저로 3분 시술을 받는다. 사회성을 통제하는 영역의 글루타메이트가 사라진 영아는 이후 에피그라프에서 말하는 자유를 얻게 된다. (앗, 최대한 스포안하는 선에서 줄거리요약을 하고 싶었는데 잘 된건가 모르겠다)

제목과 따져보면 영아를 둘러싼 오렌지의 이야기다. 그녀의 남자친구 수원은 오년 전인가 대학 다닐 때,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나 오렌지 농장에서 일한 적이 있다. 영아가 다니는 유치원 애들 중 은우는 오렌지를 가장 좋아한다. 은우의 어머니는 친환경빵집 나루터를 운영하며 은우가 좋아하는 오렌지파운드 케이크를 만든다. 빵칼은 이 소설의 후반부, 클라이막스에 등장한다. 왜 하필 빵칼일까? 싶은데 영아는 서향의학연구센터에서 “ “제 주변의 모든 게 다 싫어진 느낌이 들어서요.” 이제껏 나는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니는 글자들이 정확히 어떤 획을 갖고 있는지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저 ‘싫다’라고 두루뭉술하게 뭉갰을 뿐이다.(p.93)” 라고 생각한다. 나는 ‘두루뭉술 뭉개기’만 해왔던 영아의 성격을 빵칼에 녹여냈다고 생각한다.


사실 처음 <오렌지와 빵칼>이라는 제목을 보고 일본인의 양면성에 대해 서술한 책, <국화와 칼>이 떠올랐다. 다 읽고 나니 제목도 참 잘 지었다. 그렇다. 결국에는 현대인의 양면성에 대한 이야기다. “25마트는 내 본성, 나루터는 내 껍데기.”(p.159)라고 대놓고 묘사되는 은우 엄마의 양면성이 대표적이다. 주인공 영아 옆, 은주와 수원 역시 마찬가지다. “은주는 세상을 보다 명쾌한 시야로 인식하기에 오직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만 존재하기를 바랐다. 그녀는 좋아할 수도 있고 싫어할 수도 있는, 혹은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어떠한 분류가 자기 세상에 머물 권리를 박탈시켰다.(pp.55~56)” 이분법적인 양면성을 가진 캐릭터로 나오는 은주다.
하지만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만의 양면성에 대해 말하는 소설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환경을 생각한다면서, 동물복지를 생각한다면서 조금 더 비싼 것을 사면서 능동적 소비를 했다고 뿌듯해하면서도 인터넷 최저가를 찾아 헤매는 디지털노마드의 나 역시 영아와 은주, 수원, 은우엄마와 다를바 없다.

이 책을 덮으며, 나는 영아의 빵칼이 앞으로 무뎌질지, 날이 설지 궁금하다. 그녀의 칼날이 글루타메이트의 통제에 의해 무뎌지기를 바래야 하는 걸까, 아니면 이 자유를 얻기 위해 다른 사람을 이 서향의학연구센터로 끌어들이며 날카로워지기를 바래야 하는 걸까? 내 안에 있는 칼날을 한번 꺼내보게 되는 책, <오렌지와 빵칼>이었다.

<나홀로 추리극장>
1. 수원, 은주의 초성만 따면 ㅅ o 과 o ㅈ 이다. 이 착한 애를 이렇게 만든 원흉들이라고 생각한다. 살인-인자 : 합쳐서 ‘살인자’의 초성을 따서 이름 지어준게 아닐까?
2. 오영아라는 이름의 ooo 초성도 주목할만하다. 바로 독자 네님의 이름을 쓰시오 아녀?
3. 서향의학연구센터에서 만난 상담자의 이름이 스칼렛으로 나올 때부터 나는 이 여인의 목소리가 X-file의 스칼렛을 맡은 성우 목소리로 들리기 시작했음을 고백한다. ㅋㅋ
4. 시술받은 후 수원이 보내준 링크에서 호주에서 한 손으로 운전을 하다 죽은 사람, 넘 소름이다. 은우엄마의 전남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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