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옥탑방에서 보내는 세 번째 겨울’, 홀로 ‘살갗을 에는 듯한 한파’에 시달리는 30대의 남성이 있다. “이번 겨울은 춥지않다”는 공장 소장의 말을 되뇌이는 그의 이름은 정인수. 그는 우연히 동네 운전자에게 자해공갈을 하는 한 소년을 목격한다. 그 역시 가출팸을 경험한 시절이 있었기에 두 번째 자해공갈을 하려던 이호를 만류할 수 있었다. 이호 나이 즈음, 아버지의 폭력에 집을 뛰쳐 나온 인수는 성연이와 경우를 만난다. 인수가 가출해서 처음 만난 성연이는 거리의 생활에 본능적으로 적응을 잘 하는 아이였다. 훔칠 수 있었으면 훔쳤고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되는대로 행동했다. 경우역시 거리의 아이었지만 꾸준히 알바를 하며 가출팸이 함께 살게 된 집을 치우고 인수가 이가 아팠을 때 큰 돈을 내 주는 아이였다. 이 두 아이 사이에서 인수는 가출팸 생활을 하다가 이호처럼 자해공갈을 하던 A를 만난다. 그리고 학교도 다니지 않고 집에도 연락이 되지 않아 보호증명을 받을 수 있는 이 아이들을 돌봐주는 척 하면서 시급을 반도 주지 않는 호프집 사장님이 등장한다. 책에 나오진 않지만 아마도 이 사람 역시 가출팸 출신으로 짐작된다. 아마 성연이가 어른이 되면 이런 사람이 될 거 같다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이 아이들은 사람들을 쉽게 믿었고 쉽게 당했다. 그렇게 배운만큼 남을 쉽게 속였고 쉽게 역이용하기도 했지만 이 아이들의 인생은 쉽지 않아보인다. 이 소설 내내 등장하는 고양이들은 이 아이들의 운명과 길을 같이 한다. 특히 A가 그렇다. 인수가 집을 나온 후 몰래 집에 들어가보았을 때 자신의 자리를 대신하는 하얀 고양이를 본다. 그리고 가출팸 아이들이 지내는 반지하에서도 본다. “길고양이가 창가를 어슬렁거렸다.(...) 같이 누워 고양이를 보고 있던 A가 말했다. “어차피 쟤네 금방 죽어.” ”(p.143) 고양이를 키워보고 싶어했던 A는 한 마리를 데려왔다가 사료값이 비싸 다시 내보냈다고 한다. 아마도 그 고양이는 죽었을 거라고 인수에게 얘기한다. “난 돈 많이 생기면 고양이 키울거야. 봐둔 애가 있어. 청류역 구두 수선집 근처에서 맴도는 고양이인데(...) 걔는 오른쪽 뒷발을 절어. 그런 애는 오래 못 살아.”(p.145) 라고 이야기 하는 A. 아무도 자기 같은 아이를 믿어주지 않기에 팔 다리에 시커먼 멍이 들도록 자해공갈을 해야만, 그래서 자신이 다쳐야만 살아갈 수 있었던 A. 가출팸 무리에 끼지도 못하고 혼자 떨어져 지내는 이 아이가 가장 일찍 죽을 수 밖에 없는 이 세계. 경우없는 세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와 같이 살게 되면 밤 산책을 나갈 것이라는 소박한 희망을 가지고 구김살없이 알바하며 도울 수 있는 아이는 돕던 경우. 그런 경우 역시 바리스타학원 앞에서 만난 엄마가 자신을 보고 크게 놀라자 상처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우와 함께 있는 순간만큼은 따뜻함을 느끼는 인수였다. 경우는 인수에게 성냥팔이 소녀의 성냥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이 삭막한 거리에서 나를 아껴주는 사람이 있다는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존재. 그런데 성냥불이 태울 것이 없으면 금방 꺼져버리듯이 경우 역시 그랬다. 그렇게 경우없는 세계에서 한기를 느끼며 살아왔던 인수였던 것이었다. 사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었다. 이 책에는 어른다운 어른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그 정도로 단 한명의 어른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 가장 쓰렸고 저자 역시 어떻게 보면 이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건 어른의 도움이 아니다 라는 것을 얘기하는게 아닐까라고 까지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 있었다. 인수가 이호를 만날 때까지도 전혀 자라지 못한 모습이 그랬다. 이호가 뭘 물어도 같이 몰랐다 ㅋㅋ 어떻게 보면 자신의 부모와 같은 어른이 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을 지도 모른다. 이호를 만나면서 그제서야 듬직한 어른으로 읽혔다. A가 죽는 것을 지켜봤고 경우를 미성숙함으로 잃은 인수는 더 이상 이호를 잃지 않을 것이다. 삶의 방향을 잃은 이호와 진혁이에게 경우처럼 기대고 싶은 어른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남기며 이 소설은 끝난다. 난 그동안 이런 아이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지? 나는 이 책을 읽기 까지 아예 관심이 없었다. 공원에서 알콜중독으로 보이는 노숙자들은 몇 번 생각해본 적은 있었다. 그 노숙자들을 바라보는 시각에 더해 조만간 미래에 큰 범죄를 저지를 아이들처럼 바라보는 내 눈이 읽혔고 부끄러웠다. 부모없이 떠도는 길고양이같은 저 어린 영혼들을, 어른으로서 도와주기는커녕 계속 그렇게 볼 것이냐는 작가의 질문이 내 마음에 가시가 되어 박힌다. p.s 1. A는 이름도 없다... A를 종이에 그려보았다. 팔이 없고 가진 것은 떠도는 두 다리뿐인 A. 이름이 없는데 진짜 이름 너무 잘 지었다 A ㅜ ㅜ2. 지민이의 이름이 원래는 혜연이었고 나이도 실제로 한 살 더 많았던 것처럼, 이호의 이름은 원래 일호였을지도 모를일이다. 인수와 이호가 이제 밤을 보낼 공간만을 공유하는 게 아니라 서로의 진짜 이름을 나누고 진짜 가족이 되기를. 3. 지난 주 목요일에 이 책을 단숨에 다 읽고 TV를 틀었는데 엠넷에서 보이즈플래닛을 하고 있었다. 저 프로그램에 나오는 소년들을 바라보는 나의 눈과 경우없는 세계 아이들처럼 가출팸 아이들을 바라보는 내 눈의 이질감이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에 놀래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다 빛 난다는 나의 늙어버린 마음에 더 놀래자빠져버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