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의 집
현이랑 지음 / 황금가지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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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아파트는 부를 의미한다. 젊은이들에게는 일자리가 있고 아이들에게는 학군지가 있고, 노인들에게는 근처에 병원이 있는, 이 좁은 도시에서 둥지로 삼기에는 닭장같은 아파트 구조가 최선이다. 아파트는 구축이냐, 신축이냐, 어느 건설사가 지었느냐, 역세권인가, 숲세권인가, 이왕이면 강뷰가 있는 곳인가, 다 내려다볼 수 있는 로얄층인가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전청조의 사기가 먹혔던 이유는 그가 시그니엘에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시그니엘을 알고 있는 한국인이라면 99.999999...%가 입주하고 싶어하는 그 아파트, 시그니엘이니까. 명주시의 2층 단독주택에서 깨볶던 은주는 몰랐지만, 어미새가 된 은주는 지안이의 둥지로 마땅한 곳을 찾아야만 했고 그것이 부동산 스릴러극의 시작이 된다.

<새들의 집>에는 새의 이름을 딴 아파트들이 나온다.
은주가 이번에 이사하는 아파트의 이름은 공작성운이다. 표지에 그려진 공작이 바로 이 그림일 것이다. 공작의 깃털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은주의 모습을 보고 이 책을 읽으면 생각할 거리가 많아진다. 은주의 친구, 혜경이 가진 오피스텔의 이름은 푸른숲버드힐시티이고, 이들의 대모와도 같은 존재, 민정언니의 주소는 덕원피닉스메트로아트파크이다. 심지어 이 언니는 결혼도 안했다. 그래서인지 이미 홀로 유아독존 불사조인 피닉스를 담은 아파트에서 산다. 이 소설 시작 전, 주어진 지도위의 아파트 이름들은 죄다 새들 이름이다.

뿐만 아니라 이 소설에는 새들을 닮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관리사무소 처마 밑 할머니들은 참새들 같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 끝 부분에 동대표 아저씨가 기다란 벤치형 나무의자를 놓아주시는데 이것도 재미있다. 참새와 나무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악역을 맡고 있는 삐죽사장의 부동산 이름도 펠리컨이다. 커다란 비둘기를 꿀꺽 삼키는 펠리컨은 유툽 동영상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 소설을 읽다보면 새에서 비롯된 표현들도 많아 제목과의 연관성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디테일을 읽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우편함마다 흰 비둘기 같은 봉투들이 하나씩 꽂혀 있었다.(p.37)”
“사람들은 마치 불길한 소식을 찾아 헤매는 까마귀처럼 몰려들어 주위를 둘러 싸고 무슨 말들인가를 수군대고 있었다.”(p.67)
“일찍 일어난 새가 피곤하다더니 그 말이 딱이구먼.”(p.162)
“누굴 닭대가리로 아나······.”(p.243)

이토록 많은 새들의 표현을 담은 작가. 그가 생각하는 새와 아파트는 어떤 관계일까? 여기에 대해서는 참새할머니들이 알려주신다.

“여기가 원래 새 무덤이었잖아.”
“새 무덤?”
“그래. 7동에 민아 할머니 알지, 이번 봄에 요양원 들어간. 그 사람이 여기 토박이였잖아.”(...)
“글쎄들어보니까 여기가 늪이었다는구먼그래. 보통 늪이 아니라 연고도 없는 사람들 시체 걷어다가 아무렇게나 던져 놓는 곳이었대잖아. 그래서 새들이 그거 뜯어 먹으려고 달려들었다가 늪이 어찌나 깊은지 내려앉는 족족 가라앉아버렸대.”(pp.242~243)

이 부분을 읽으면 이 책의 전체적인 스릴러의 내용이 한번에 이해된다. 뜯어먹겠다고 내려앉는 순간, 나락을 가는 곳. 이걸 아파트화한 이름이 “공작성운”이었군.

이 새들이라는 상징외에도 나는 개인적으로 자주 등장하는 여름꽃 비비추가 주는 의미가 있었다. 처음에 푸릇푸릇한 새싹처럼 돋아나기 시작해서 기다란 꽃대를 새우고 거기에 보라색 꽃들이 세로로 피어난다. 난 이 꽃이 아파트처럼 보이지 않았는데 확실히 작가님들은 남다르다. 이제 앞으로 나는 우리 아파트 한쪽에서 피어나는 비비추를 보면 이 책이 떠오를 것 같다.

최근에 읽은 한국형 스릴러 소설 중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지안이가 하는 말들이 제일 무서웠다. “저 아저씨도 새가 되려고 해?” 지안이가 코난도 아니고 이 어린 애 주변에서는 사람 새를 몇 번을 보여주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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