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내가 원한 것
서한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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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내가 원한 것>, 나는 이 책 제목을 몇 번을 읽었는지 모른다. 1부를 읽다가도 이 책 제목이 뭐였지, 다시 표지를 훑어보았다. 이상하게 한국어 제목은 ‘여름’이라는 단어를 제외하고는 잘 떠오르지 않았는데, 영어로는 “All I want for summer”겠네, 싶은 순간 내 머릿속에 머라이어 캐리의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가 재생되며 그제서야 이 책을 온전히 즐길 수 있게 되었다. 1부 연인들, 2부 감각들, 3부 장소들의 글들이 하나로 수렴하는 것은 겉으로는 여름이지만, 이 문장들이 찾아 헤맨 것은, ‘is you’, 바로 당신’이었다. 이런 부분이 ‘당신’을 향한 연애편지로 읽히는 지점이기도 했다. ‘우리’가 되기 전, 아니면 ‘우리’였던 지금의 ‘나’와 ‘당신’. ‘당신’을 생각하며 보내는 뜨거운 여름. 나 역시 간질간질한 마음이 되었을 때 이 책을 제대로 읽기 시작한 것 같다.

“(...)누구에게나 방어벽이 있으며 그것을 무너뜨리지도, 들여다보지도 않으며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게 자신에게 도움이 되든 되지 않든, 좀 불편하더라도 바뀔 필요를 느끼지 못한 채로 살다가 죽을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 방어벽이 있는 한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줄 수 없을 뿐 아니라 받을 수도 없다. 그래도 누군가는 사랑을 버리고 자신을 지키는 선택을 한다.”(p.67)

‘내 것이 아닌’이라는 제목의 산문 중 한 부분이다. 이 문장을 읽으며 처음에는 ‘나’와 ‘당신’의 방어벽에 대해 떠올렸다. 나중에는 ‘여름’이라는 계절과 너무 잘 어울리는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옷을 입고도 땀 흘리는 계절, 그러다가 입은 옷을 벗어 제끼고 시원한 물로 뛰어드는 그런 여름에 대한 글들이기에. 이 책은 이런 방어벽이 1도 없어보이는 저자가 쓴 글이다. 그러기에 그가 남긴 오차즈케를 아무렇지도 않게 먹을 수 있고, 음악하는 사람의 감각을 온전히 느낄 수 없는 ‘나’는 그를 질투하는 대신에 ‘사랑의 맛’(p.83)을 느낄 수 있는게 아닐까 .

“과잉 자체가 여름이다. 살아 있다는 것의 실감이 겨울에는 아득함으로 온다면, 여름에는 탄성으로 온다. 물에 뛰어들 듯한 인간에게 빠져들 때는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에.”(p.176)

물놀이를 즐기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여름은 저주에 가까운 계절이라는 생각을 가진 나에게 한나씨의 여름에 대한 이 산문들은 탄성으로 다가온다. 한나씨의 뮤즈로 보이는 ‘열무’씨 역시 여름에 먹을 수 있는 김치라는 디테일에 감탄하며.

“나는 지나간 여름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고, 돌아갈 수 없는 여름을 좋아하고, 그런 여름을 노래한 음악이나 영화를 좋아한다.”(p.193)
그러고보니 나에게도 그런 영화가 하나 있었다. 사막이 배경이라 계절을 알 순 없지만 여름처럼 뜨거운 <바그다그 카페>가 그랬다. 황량한 여름이라는 한 복판에서 만난 한나씨의 이 글들이 야스민처럼 느껴진다.

내가 걱정한다고 온도가 떨어지지 않을 테지만 내년은 또 얼마나 더 더워질 것인가, 예보받지 않은 폭우에 기상청에 들리지 않을 짜증을 내며 닫지 않고 나온 창문에 불안하던 여름이 지나간다. 음력 상 입추가 지났지만 여전히 습하고 더운 날, 한나씨의 여름 한철이 담긴 글들을 읽으며 내년 여름을 기대하는 마음이 생긴다.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어쩌면 내년 여름엔 나 혼자 떠난 치앙마이나 하와이의 어떤 펍에서 이 책을 떠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보며.

#여름에내가원한것#하니포터11기#한겨레출판#하니포터#서한나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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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당하는 인간 - 삶을 무너뜨리는 반복에는 이유가 있다
김석재 지음 / 스노우폭스북스P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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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당하는 인간은 ‘뇌와의 협상법’을 찾아가는 여정의 기록.

오늘날의 뇌과학 책들을 읽고 있자면 그동안 이성으로 밝혀온 철학의 영역에 반전카드를 내민 것 같이 읽혀 흥미로웠다. 철학이 답한 질문들에 뇌과학이 MBTI 중 T의 느낌으로 대답했달까? 신경과 전문의인 저자가 쓴 이 책 중 1장, ‘알고도 왜, 똑같은 후회를 반복하게 될까?’ 챕터를 읽으면서는 역사서처럼 읽혔다. 과거의 인류가 충동과 욕망을 어떻게 대해왔는지 일목요연하게 설명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다양한 철학가들 뿐 아니라 불교, 그리고 공자, 노자, 힌두교의 ‘바가바드 기타’까지, 욕망을 어떻게 다루어왔는지에 대해 써놓았다. 현대의 뇌과학에 이르러서는 편도체, 전전두엽, 도파민, 세로토닌, 옥시토신 등이 뇌 속에서 맡은 역할을 해내는, 즉 ‘조종당하는’ 일들이 쉬웠던 이유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뇌과학자들이 제시하는 감정 뇌 이론, 듀얼 프로세스, 자아 고갈 이론 등을 지나 도파민을 통해 뇌의 보상을 받는 시스템까지 읽다보면 지난한 옛날부터 오늘날까지 인간이 얼마나 충동과 욕망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투쟁해왔는가, 알수 있다. 이후 2장부터 6장까지 작심삼일, 충동 구매, 중독에 이어 사랑과 자녀에 대한 챕터까지 읽다보면 이것들은 뇌의 자동반응으로 인한 것이기에 컨트롤의 한계가 분명히 존재할 수 밖에 없음을 인정하게 된다. 이후 “작고 구체적인 변화”(p.106)와 같은 소소한 루틴처럼 내가 유독 약한 충동적인 행동에 대해 뇌와 협상을 하는 방법이 각 챕터마다 기록되어 있어 실용적이다.

“체중 감량을 위해 ‘위고비’라는 주사를 맞은 후, 놀랍게도 그렇게 끊기 힘들었던 술 생각이 자연스럽게 사라졌습니다. 전에는 ‘오늘까지만 마시고 다음 주부터는 진짜 술 끊는다’고 수백 번 다짐했지만, 막상 그날이 와도 여전히 술잔을 들고 있었어요. 신경과 전문의로서 수많은 환자들의 뇌를 치료해온 저 역시, 뇌가 만들어낸 충동 앞에선 무력하기만 했습니다.”(p.6)
저자 역시 이렇게 고백하며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뇌가 보내는 신호의 문제였음을 깨달았다고 하니 평범한 독자들의 마음과 같은 편이라는 생각이 이 책에 마음을 더 빨리 열어주는 편이기도 하다. 실제로 “GLP-1 수용체 작용제는 원래 제2형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된 약물”(p.59)이었고 “식욕을 억제하고 포만감을 증대시킨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위고비, 마운자로 등으로 재탄생해 다이어트 약물의 대표주자”가 되었다는 것과 “지금 이 약은 ”식욕 억제제’를 넘어 ‘욕망 억제제’로 재정의“되고 있다는 저자의 설명은 이 책의 제목이 왜 ”조종당하는 인간“인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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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1천만 원 수익 내는 주식 투자 기술
인디플랜(안형준) 지음 / 원앤원북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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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플랜’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안형준 저자는 초보 투자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전자책 <퇴근 후 30분, 주식투자 1000만 원 수익 노하우>를 집필하고 ‘클래스101’에서는 이달의 추천작가로, ‘크몽’에서는 상반기 베스트셀러로 선정된 바 있다. 요즘 한참 아이 중학교 수학 선행 자료찾아보는 중이라 그랬을까, 주식에 대한 개념- 차트별 유형- 테마주로 활용하는 심화과정의 단계학습으로 진행되는 이 챕터들이, 뭐 이리 익숙하지, 싶었는데, 역시 수학과였다. 학창시절에는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치고, 지금은 ‘작고 소중한 월급’을 받는 또는 청년층, 또는 나이는 많아도 주린이를 해보고자 하는 이들에게 주식을 가르치는 저자가 되었구나 싶다. 수학이 아무리 잘 가르쳐도 본인 스스로 풀어보고 내면화시켜야 실력이 되듯이 주식 역시 그랬나보다. 저자도 사회초년생에는 보조지표에만 의존한 채 수차례 실패를 경험하다가 “개별 종목의 거래량부터 테마, 시장 전반의 지수 흐름까지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야 비로소 ‘돈의 흐름’을 읽는 눈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수학적 방법을 적용한 주식의 개념-유형-심화서인 셈이다.

총 4장으로 1장 ‘이것’부터 시작하라!‘에서는 주식투자를 시작하는 가장 첫 걸음마를 다룬다. 난 초보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주식 계좌가 마이너스이고, 아직 수익을 낸 경험이 없다면 주식 초보라고 생각합니다.”(p.21)라는 저자의 문장을 읽고는 나는 초보였구나, 인정해본다. 이후 저자가 주로 이용하는 키움증권에서 제공하는 앱에서 어떤 항목을 활용하는지 자세하게 써있어 주린이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따라하기 안성마춤이다.

2장에서는 ’투자의 본질: 돈의 흐름‘을 다룬다. 저자도 이 흐름을 알고자 아침마다 투자를 위한 루틴이 있었음을 이야기한다. 투자에 앞서 가장 중요한 지표가 되는 개념 설명이다. 테마와 지수, 증시, 금리와 환율에 대해 쉬운 언어로 썼다.

3장이야말로 저자만의 노하우가 시작된다고 생각한. 주식방송에서도 자주 들어본 용어들이다. 차트를 분석하기 위한 기본 요소와 이동평균선, 볼린저밴드, 지지와 저항 등이다. 이것들을 분석할 줄 아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투기인가, 투자인가를 가름한다고 말하는 저자의 이야기에 동의한다.

4장은 앞서 이론을 적용해 ’실전으로 배우는 매매의 기술‘ 곧 심화서다. 테마주의 사례를 통해 차트가 어떻게 이동했는지 끝내 어떻게 수익으로 이루어지는지를 다뤘다. 몇 년 전부터 핫했던 원전, 친환경, 2차전지 테마부터 최근 초전도체 해프닝까지 다뤘다. 뿐만 아니라 헤지 테마인 금리, 금, 품절주, 스팩주를 다뤄준다.

저자는 주식뿐아니라 코인, 파티룸도 운영한다고 한다. 마음같아선 수학을 왜 공부해야 하나요? 하고 묻는 학생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지만 수능 시험이 끝난 학생에게 쥐어주고 싶은 책이다. 부모님께 펑펑 얻어쓰던 용돈이, 사실은 ’작고 소중한‘ 월급을 쪼개서 수혈하던 돈이었음을, 이제는 성인이 된 아이들에게 물고기가 아닌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고자 하는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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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홀가분하게 살고 싶다 - 소란한 삶에 여백을 만드는 쉼의 철학
이영길 지음 / 다산초당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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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홀가분하게 살고 싶다> : 소란한 삶에 여백을 만드는 쉼의 철학

전쟁에서는 드론이 쓰이고 아마존 물류창고에서는 로봇이 일을 하여 무인으로 운영된다고 하는 요즘, 굳이 실물이 아니더라도, 힘들게 파워포인트 쓰다가 캔바나 미리캔버스를 써보면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싶다. 확연히 노동시간은 줄었다. 그러나 그 시간에 나는 좀 더 효율적이고 가성비있는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시간이 늘어난 것 같다. 육체적 노동시간이 줄어든 대신, 변화하는 삶에 대비하기 위한 긴장과 도태되지 않으려는 불안감에 시달리는 시간은 몇 배 늘어난 셈이다. 백세 시대를 넘어 백오십세를 바라보는 오늘날, 지금보다 더 나은 삶, 일컬어 ‘행복한 삶’을 위해 우리는 언제까지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하는 걸까? 은퇴 역시 제 2의 삶, 시작이라지만 <임계장 이야기>처럼 최저임금을 받는 3D 업종 은퇴자금으로 자영업을 시도하도록 내몰린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쉼이란, 여가란, 한국인에게 사치스러움으로 가진 것이 많은 사람들의 게으름으로 보이기도 한다. 보통의 사람들에게 쉼은 불가능한걸까?

저자의 이력이 특이하다. 여가를 가르치는 학문을 공부했다니. 이영길 저자는 1980년대에 도서관에서 ‘여가학’의 시초격인 학자의 책을 접하고 편지를 보냈다가(심지어 이때는 이메일이 아닌 진짜 편지를 보내던 시절 아닌가!) 미국에서 공부하면 도움을 주겠다는 답장을 받아 유학을 떠난다. 그렇게 40년 넘게 여가와 쉼에 대해 공부한 저자다. 여러 미국의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중 <안식>이라는 교양이 인기강좌가 되면서 그 강의를 바탕으로 이렇게 책으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몇 년 전 스웨덴 출신의 나티코가 쓴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라는 책을 떠올려보면 유럽에서는 사회적으로도 많은 논의가 진행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며 책을 펼쳐본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읽는 한 개인이 얻을 깨달음, 그러니까 안분지족같은 주제의 책이 아니었다는 점이 새로웠다. 한가로워 보이는 나무위로 날아가는 새가 담긴 초록초록한 표지와 ‘홀가분’한 제목에 속았다고 느끼기도 한 초반을 지나니 우리가 가야하는 사회의 모습은 이 표지가 담긴 풍경이 당연한 곳이어야 겠구나하는 생각을 하며 읽어내려갔다. 이런 자연스러운 삶은 일보다 쉼을 우선시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전제를 깔고 만들어지기에 바쁜 삶을 당연시하는 사회 시스템에 저항해야 한다는 저자의 목소리가 반갑다. 우리가 가지고 있던 쉼에 대한 기존 정의를 다 엎어버릴 수 있는 ‘호모 레지스탕스’가 되기 위한 입문 책이다. 우리 모두가 함께 읽고 숙론하며 사회적 논의를 만들어나가는데 꼭 필요한 책이다.

총 8장인 이 책은 1장에서는 ‘쉼이 결핍된 삶이 보내는 신호들’, 우리가 잘 알고 주변에서도 쉽게 관찰할 수 있는 스트레스와 번아웃부터, 조금은 생소한 ‘보어아웃’, 그리고 두려움이나 외로움처럼 쉼과 연결되는 감정인지도 몰랐던 것들에 대해 설명한다. 2장은 ‘삶을 변화시키는 쉼에 대하여’ 다루는데 ‘혁신’이라는 한자어 풀이부터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사회가 만들고 있는 거짓 서사인 바쁜 삶에 순응하지 말고 저항하라는 메시지가 강렬하다. 이후 3장부터 8장까지는 출판사에서 6가지 처방전이라는 수식어를 달아놓은 6가지 쉼 - ‘멈춤의 쉼’, ‘일하지 않는 쉼’, ‘욕망을 재조정하는 쉼’, ‘기쁨의 쉼’, ‘느긋한 쉼’, 그리고 ‘사랑의 쉼’을 다룬다. 이 중 좋아하는 <반지의 제왕>을 예로 들어서이기도 하고, 나 역시 그 많은 종족들 중 키는 땅딸만하지만 담뱃대와 맥주 한잔에 삶을 담은 호빗족의 삶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느껴서일까, 절제를 욕망으로 푼 5장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불안하니 더 달려야 한다고 믿는 학부모에게 추천한다. 우리는 제대로 된 여가를 몰랐던 마지막 세대이길 희망한다. 우리의 아이들은 잘 쉬고 또 잘 쉰 만큼 잘 달릴 수 있는 그런 멋진 어른들이 될 수 있기를.
#나는홀가분하게살고싶다#다산초당#이영길#휴식#자기계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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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의 나라
손원평 지음 / 다즐링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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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를 쓴 손원평 작가님의 쓴 <젊음의 나라>가 새로 출간되었다. 주인공은 29세 청년 유나라. 시카모어 섬 정착을 목표로 하기에 메타버스에서 종종 유료로 접속한다. 이 섬과 MOU를 체결한 유카시엘 재단은 “수십 년 전 한 호텔 체인이 노인복지를 전담하는 자회사를 설립”(p.34)하여 “최고 등급은 유닛 A부터 돈이 거의 없는 노인들이 머무는 유닛 F에 이르기까지 노인 수용시설을 세분화했다.”(p.35) 유카시엘에서 운영하는 유닛에 다양하게 근무를 한 경험이 시카모어섬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주인공은 유닛 A에서부터 F까지 상담사로 일하게 된다.

등급에 따른 노인수용시설을 체험하는 주인공을 따라 서사가 이동하기에 현시대의 사회적 이슈인 고령화와 저출산 문제가 만들어낼 근미래 세계가 어떨지 독자는 <젊음의 나라>에서 간접체험하게 된다. 이 문제 외에도 다문화가정에서 자란 아이가 노인을 혐오하는 성인으로 자라고 있음을 보여주는 엘리야, 존엄을 자본주의적 가치로 환산하여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가 아닌 죽음을 관장하는 의사가 된 재희같은 소설 속 인물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의 결과를 품고 태어난 캐릭터들로 보인다. 혐오가 혐오를 낳을 것이라는 점, 돈이 많아야 편하게 죽을 수 있는 세상이 될 것이라는 작가의 상상력은 읽으면서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AI가 대체하는 직업이 주로 중간관리자라는 것도 그렇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도, 아무리 인건비가 오른다고 해도 결국 세상에서 가장 싼 건 사람이야.”(pp.204-205)“

사람이 돈을 벌 수 있는 일들은 대부분 노인케어와 관련한 일자리들이거나 로봇이 깔끔하게 하지 못한 일들의 뒤처리 그러니까 몸을 쓰는 노동이 남았다.

개인적으로 나는 며칠전에 미셸 들라크루아 전시회를 보고 왔는데 말미에 영상에서 본 그의 소감과 완전 반대였기 때문이었을까, 유닛 C에서 거주하는 김지훈 할아버지 캐리터가 인상적이었다. 화가였던 이 할아버지는 자신의 삶에 대해

”난 단순하게 살았어요. 그림 말고 다른 가능성은 떠올려 본 적도 없었지. 오로지 그림을 그리는 내 손을 믿으며, 화폭에 완성될 작품을 머리와 가슴에 꽉 채웠지요. 하루하루 희망속에 살았고 모든 게 영원할 거라 여겼어요. 사람이 그림을 직접 그린다는 게 어떤 의미가 될지, 내가 걸어온 한 가지 길이 어떻게 끝날지에 대한 상상력은 부족했던 거예요.“(p.130)
라고 말한다. 돈이 되는 일보다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한 X세대일 김지훈 할아버지의 인생 성적표는 최현우할아버지처럼 극단적 이기주의에 빠진 사람과 같은 등급이었다는 점이 충격적이었다. 과정이 아닌 결과를 중시하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으로 보인다.

후반부에 나라는 서른이 된다. 서른은 청춘은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노인 수용시설에 들어갈 정도로 나이든 나이는 아니지만 왜 제목이 ‘젊음의 나라’일까, 궁금했다. 하지만 주인공 나라와 엄마와 이모사이의 꼬인 매듭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자주 묘사되는 닫힌 문이나 겨울과 여름이라는 상징에서 제목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 꽝 닫혀버린 문이 아니라 비밀을 알고자 하는 이라면 열어제낄 수 있는 문이라는 것을, 그러니까 젊음은 사회적 기준이 정한 나이나 남의 시선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하는 삶의 태도에 있다는 작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 책의 첫문장에서 “한겨울에도 한여름처럼 지내기로 결심했다”(p.10)라고 마음먹은 나라처럼, 창문을 열자 흰 눈이 온 세상을 덮어 도화지 앞에 선 것 같은, 새해 아침의 나라처럼, 현실은 지저분하게 밟힌 회색 눈밭일지라도 내 마음만큼은 언제든 새로 시작할 수 있도록 리셋할 준비가 되어 있는 회복탄력성을 이 책을 통해 얻어간다.
p.s 엄마인 유진의 무늬는 나라였지만 이제 민아이모와 함께 그려나갈 도화지에서는 또 다른 무늬가 만들어지길 기도하는 마음에서 이 책은 시즌 2가 나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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