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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미술사 - ‘정설’을 깨뜨리고 다시 읽는 그림 이야기
박재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9월
평점 :
<두 번째 미술사>는 그동안 내가 알고 있었던 최초, 원조, 천재의 신화적인 이야기로 ‘그랬다더라~’라는 ‘첫 번째’ 미술사 이야기들의 리터러시로 읽혔다. 섬세하고 입체적인 <두 번째 미술사>의 이야기들을 통해 저자가 독자에게 건져 올리는 질문들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 무게는 시간을 거슬러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예술의 힘으로 느껴진다.
총 7장으로 개인적으로는 1장, ‘거장의 신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서 달리가 개미핥기를 데리고 파리를 산책하는 퍼포먼스에서 6장 ’작품 제목은 왜 문제가 되는가‘의 ‘파이프가 아니다’, 르네 마그리트로 이어지는 초현실주의 작가들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초현실주의 운동의 창시자였던 앙드레 브르통은 생전에 “거대한 개미핥기”라는 별명으로 불렸다.“(p.43)고 한다. 브르통은 달리를 ”달리비(달리+비즈니스)라고 부르며 조롱하기도 했다.“(p.44). 개미핥기를 데리고 파리를 산책하는 퍼포먼스는 브르통이 세상을 떠난 후, 달리 나름의 방식으로 그를 추도한 것이었다. 이 추도는 ”한 예술가가 세계를 향해 던진 일종의 철학적 농담이자, 예술이 반드시 캔버스 위에만 존재할 필요는 없다는 선언이었다. 초현실주의자 답게 그는 ’현실을 비틀어‘ 새로운 감각을 선사했고, ’비논리의 논리‘를 실현해 보였다.(pp.46-47)
이런 캔버스 밖으로 나온 예술은 이후 6장 ’작품 제목은 왜 문제가 되는가‘의 르네 마그리트의 <이미지의 배반>, ’파이프가 아니다‘에서도 계속된다. 정작 이 작품은 1929년에 완성되었지만 1954년 뉴욕 시드니 재니스 갤러리에 전시되었을 때 주목받기 시작한다. 이때 재스퍼 존스와 로버트 라우션 버그와 같은 오늘날의 대작가들이 방문하여 “마그리트의 언어와 이미지 병치 개념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p.208)고 한다.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매김을 한 마그리트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문구는 이미지와의 역설로 만들어지는 혼란을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사람들은 “그림과 제목의 관계를 곱씹어보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작품에 대한 이해도도 깊어졌다.”(p.209) 달리의 퍼포먼스처럼 캔버스 밖을 나온 예술은 ’눈으로 보는 그림과 말로 된 설명 사이‘의 ’간극‘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창조”(p.210)해낸다. 이런 예술의 힘은 당시의 시대정신을 이끈다. 2장 ’예술가는 어떻게 브랜드가 되는가‘에 밀레의 <만종>도 그렇다. “시대의 흐름 속에서 점차 의미를 덧입고 다양한 층위에서 해석되며 브랜드가 된 그림”(p.79)이다. 이런 부분이 오늘날까지도 이어지는 예술의 살아있는 힘을 보여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외에 루벤스, 렘브란트 등, 수많은 조수들과 그린 작품은 그가 그렸다고 할 수 있는가, 라는 원조의 문제라던가 살인자 카라바조의 작품을 보며 “예술가란 도덕적 완전함과는 별개로 평가받아야 하는가?”(p.182)와 같은 질문은 그들의 작품을 또 다른 창문을 통해 보는 경험이 되어준다.
세잔이 그린 사과는 그의 그림속에서 영원히 썩지 않는 사과라는 예술성을 부여받은 모습이라는 점도, 쿠르베가 그린 30인의 등장인물이 있는 대규모 집단 초상 <화가의 아틀리에>가 “31번째 인물로 우리를 끌어들이는 회화적 실험”(p.143)이라는 이야기도 이 회화를 그린 예술가들은 모두 죽었지만, 그들의 예술은 생생하게 살아 숨쉬고 있다는 점이 새삼 경이롭다. <두 번째 미술사>가 가져다 주는 예술의 향유를 전시회 가기 좋은 날씨인 요즘, 다른 분들도 느껴보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