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백>으로 제16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장강명 작가님이 2012년에 쓴 연작소설로 이번에 표지가 바뀌어 재출간되었다. 이전의 표지가 푸르스름한 건물들이 뒤집어져 있었고 그 사이에 한 인물이 가운데 서있었다. 제목은 가로로 두줄로 쓰여있다. 이번 표지는 이전 표지에 비해 핑크로 ‘표백’되었고 커다란 눈이 해처럼 떠있다. 제목은 세로로 쓰여있다. 13년사이의 변화가 표지에서 느껴진다. 이번 책, 2025년 가을의 ‘작가의 말’이다. “오랜만에 만난 박쥐 인간, 반인반서 소년, 고양이 마티, 그리고 이현수 씨는 다들 신촌이 너무 변했다며 어리둥절해 했습니다. 그들은 ”신촌이 왜 이렇게 깨끗해요? 왜 이렇게 조용해요?“하고 물었습니다. 저도 머리를 긁적였습니다. 13년 전에 저는 ‘작가의 말’에서 신촌을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다니게 된 여인“에 빗댔군요. 그 여인은 이제 신촌을 아예 떠난 것 같고, 신촌은 표백된 듯하네요. 저는 시끄럽고 더러웠던 2000년대 초반의 신촌에 이야깃거리가 더 많다고 여기기에 소설 속 시공간을 굳이 고치지 않았습니다.”(p.390)이 개정판은 2000년대 초반의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다니게 된 여인이 존재하지 않는 오늘날의 신촌이 그려진 표지구나,를 깨닫는다. 도시가 표백되어가면서 동물과 곤충들은 함께 멸종위기종이 되었다. 도시의 지하에 스며든 쥐, 고양이, 비둘기들은 개체수는 많아 보이지만 수명이 훨씬 짧아졌다. 그러니 오늘날 반인반수들의 이야깃거리가 더 없을 거라는 작가님의 말이 이해가 된다. 이 뤼미에르 빌딩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래도 현영빌라파의 두목 고양이는 이 골목에서 현영빌라 같은 폐가가 오래가지 않는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 전에도 인간들이 멀쩡한 3, 4층짜리 건물을 잠시 폐가로 만들었다가 무너뜨리고 그 자리에 전보다 높고 깨끗한 새 빌딩을 세우는 모습을 몇 번 본적이 있었기 때문이다.”(p.240) 807호 ‘피 흘리는 고양이 눈’에서 버림받은 마티가 나오는 부분이며 고양이에게도 느껴지는 도시의 변화를 쓴 대목이다. 뤼미에르 빌딩은 거주공간이 8층임을 감안할 때 꽤 고층건물일 테고 재건축은 더 오랜 인내심을 필요로 하니 아직도 존재하고 있을 것같다. 오늘날의 뤼미에르 피플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미래가 없다. 오히려 불확실성과 불안함이 추가되었다. 그들은 여전히 도시의 불야성 빛에서 떠나지 못하고 뤼미에르-빛이라는 이름을 가진 공간에 살지만 삶은 그림자에 기대어 근근히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비슷한 맛집을 웨이팅하고 비슷한 대기업표 밀키트를 먹으며 비슷한 편의점 과자와 맥주를 즐기며 거의 다 비슷한 얼굴을 하고 하루를 살아간다. 삶이 표백되어감을 이 책을 다시 읽어보며 느낀다. 그때의 우리가 좀 더 찾아 헤맸어야 할 정체성과 그로인해 빼앗긴 서사와 오늘날의 과업에 대해 생각해본다. 장강명 작가님의 아내 김새섬 대표님이 아프시다고 ‘작가의 말’ 말미에 적었다. “건강하게 오래 살게 해주십시오. 몸도 마음도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작가님이 쓸 앞으로의 이야기에 기적이 추가될 수 있도록 해주세요.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