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 아직 너무 늦지 않았을 우리에게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백영옥 지음 / arte(아르테)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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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하지만 백영옥 작가의 진솔한 자기 이야기와 그녀가 본 책, 영화, 사람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책을 더 풍부하게 만든 것 같다. <빨간머리 앤>을 다시 한번 정주행하고픈 마음이 생기기도 했고. 


 백영옥 작가가 '만약'이라고 가정한 것중에, 만약 회사에서 10만원 정도 여가를 즐길만큼의 실연수당이 횟수 제한으로 나온다면, 친구들과 "아, 그 사람은 실연수당을 받을 만큼의 사람은 아니었어!"라는 식으로 말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상상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실연수당도 좋고, 구남친에 대한 미련을 훌훌 털어버릴 핑계를 갖는 것도 좋고. 정말 그렇게 된다면, 나도 딱 그런 식으로 말하고 있겠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위해 일하고 노력할 자유.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다짐한 한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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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민 코믹 스트립 완전판 1 : 1954~1956
토베 얀손 지음, 김민소 옮김 / 작가정신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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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스누피와 찰리 브라운으로 유명한 <피너츠> 시리즈를 도장 깨기 하고 있는 중인데, 출판사 작가정신에서 무민 코믹 스트립 완전판도 출간됐단 소식을 접했다. 무민 캐릭터를 모르는 사람은 대한민국에서도 드물 것이다. 나도 굿즈나 영화로 무민 캐릭터를 이미 많이 접한 바 있었다. 하마인지 강아지인지 정확히 어떤 동물인지 생김새를 알 수 없는 동글동글한 귀여움으로 무장한 무민의 이야기를 자세히 알아보고 싶어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사실, 책을 읽고 나니 다음 완전판 2편을 바로 읽을 것 같지는 않다. 무민의 세계는 내 생각보다 더 중구난방 정신없는 세계였기 때문이다! 기가 빨릴 정도로! 그리고 무민과 스노크메이든을 그려내는 보수적인 성관념이 살짝 거슬렸다. 물론, 크게 거슬릴 수준은 아니다. 이 책은 총 7개의 챕터로 나뉘는데 챕터3 '리비에라에 간 무민 가족 MOOMIN ON THE RIVIERA'을 읽기 전까지는 내가 도통 무민가족의 난장판을 견뎌낼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프랑스라는 낯선 나라에서 호텔의 개념도 정확히 모르는 채로 자꾸 일을 벌이는 무민가족의 소동을 보며 서서히 무민의 세계에 적응해갔다.


 무민에게 돈 버는 일을 알려주는 스니프부터 무민의 애인 스노크메이든, 따뜻한 마음씨의 무민마마와 쾌락주의자 무민파파, 난파선에서 건져낸 밈블, 밈블의 막내여동생이자 조그만 몸집으로 짓궂은 장난을 일삼는 미이, 피해망상이 심한 가사도우미 미자벨, 미자벨의 강아지이자 고양이를 좋아하는 콤플렉스를 가진 핌플 등 무민의 세계에는 다양한 캐릭터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내가 이 만화를 읽기 전부터 궁금했던 '무민은 어떤 동물일까'라는 질문이 무색할 정도로, 무민의 캐릭터들은 특정 동물로 정의내릴 수 없는 생김새를 가지고 있다. 굳이 정의내리자면 '트롤'에 가깝달까.


 가장 재밌었던 챕터는 챕터6 '무민마마의 가사 도우미 MOOMIN MAMMA'S MAID'였다. 미자벨과 핌플의 첫 등장이 인상적이고, 무민마마가 미자벨과 핌플의 콤플렉스를 덜어주려 노력하는 고군분투가 귀엽다. 미자벨의 피해망상이 심해진 원인이었던 '잘난 언니'가 알고보니 거짓편지 쓰는 것이 취미인 '필리용크네 가사도우미 마벨'이었다는 반전까지 쉴틈없이 독특하다.


 무민 코믹 스트립 완전판은 출판사 작가정신 포스트에서도 맛볼 수 있다.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8941837&memberNo=2603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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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님, 어디 계세요?
햄햄 지음 / 이야기나무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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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집어들었다가 순식간에 본 책. 나도 강아지를 키우고 있는 반려인으로서, 이런 아이들의 이야기를 보면 저절로 마음이 사로잡힌다. 시바견을 두고 멀리 떠나버리는 자동차의 뒤꽁무니를 보자마자 가슴이 아팠다.


 강아지는 마지막에 주인을 만난다. 시무룩하게 봄과 여름의 계절을 걷다가 주인의 뒷모습을 보고는 빗방울을 뚫고 신나게 달려가는 강아지의 모습이 또 한 번 내 마음을 찌르르하게 만들었다. 아이가 주인을 만나 다행이지만, 또 다시 버려질까 두렵다. 애초에 강아지를 왜 버리고 갔을까. 세상에 유기된 모든 것들, 정말 안쓰럽고 사랑스럽고 슬프다.


 이 책의 그림을 그린 작가 햄햄의 작품은 브런치(https://brunch.co.kr/@taji8749)에서 더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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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섹스 - 그놈들의 섹스는 잘못됐다
은하선 지음 / 동녘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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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미니즘을 기반으로 한 성교육(?) 책으로 말발 화려한 언니가 다양하고 직설적으로 썰을 풀어주는 느낌이다. 학교에서는 들은 적 없었던, 친구들에게도 속 시원히 털어놓을 수 없었던 섹스 담론은 유쾌하고 당당하고 그간 내게 해왔던 자기검열을 자유롭게 한다. 우선, 이 책은 기본적으로 재미있다! 부록으로 곁들여진 장난감 안내와 후기까지 처음 보는 것들 투성이라 즐겁게 순식간에 읽었다.


 교복 야동 규제를 논의할 때, 규제를 해야 한다 혹은 할 필요는 없다 이렇게 양반의 입장을 갖는 것이 일반적인데 저자는 성폭력 등의 성범죄는 권력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런 논의 자체가 생산성이 없다고 말한다. 생소한 입장이라 신선했던 기억이 난다.


 읽으면서 낄낄 웃음이 터질만큼 재밌었던 문장 하나와, 저자의 사이다 문장 하나 기록해둔다.

심지어 나를 붙잡고 "남자들 섹스 이야기도 좀 들어 달라"라고 하소연하는 남자들도 있다. (...) 시간의 업보를 조금이라도 덜어 내려면 옛 선조들과 아직도 바퀴벌레처럼 살아남아 여자들을 씹고 있는 저 남성들을 향해 욕을 한바가지 퍼부어 주는 편이 좋을 거다. 그런데 그 답답함을 이제 겨우 섹스라는 단어를 옹알이하듯 입에서 내뱉기 시작한 여자들한테 털어놓다니 정말 어이가 없다. 남자로 살기 힘든 거 알겠지만 여자들이 그 말들을 들어 줘야 할 의무는 없다. 아무리 힘들어도 아직까진 여자로 사는 것보다는 남자로 사는 게 편하거든. 대체 누구더러 누굴 걱정하라는 거냐.

무슨 글을 쓰고 싶은지도 모른 채로 글을 쓰는 작가가 있고, 심지어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채로 정치를 하고 있는 정치인이 있는 세상이다. 왜 굳이 ‘여자들의 섹스‘를 두고만 ‘왜?‘라는 질문을 하고 대답을 강요하나. (...) 그들은 왜 그랬는지가 궁금한 게 아니다. 그 질문은 책임을 오로지 여자에게만 떠넘기기 위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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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의 소원
톤 텔레헨 지음, 김소라 그림, 유동익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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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집으로 초대를 할까 말까, 편지를 쓸까 말까, 끝나지 않는 고민을 하는 고슴도치는 집에 올 동물들을 상상하기 시작한다. 자꾸 화를 내는 두꺼비, 어딘가에 머리를 들이밀고 있어야 하는 타조, 커튼을 내려 암실을 만들어주어야 하는 두더지와 지렁이, 대화목록이 있어야 하는 오소리, 초대를 받고도 한참 걸리는 거북이와 달팽이, 둥둥 뜬 채로 놀러온 고래, 파도를 타고 온 잉어와 메기, 욕조를 선물하고 간 하마 등등. '나는 왜 가시가 박힌 고슴도치인 걸까'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고, 문득 자신의 가시가 자랑스러워 마음이 부풀기도 하면서 고슴도치는 불안하게 집 안을 서성거린다. 심지어 이때 꿈에서 읽는 책의 제목도 <방문의 장단점>이다! 이렇게 치열하게 불안해하고 고민하는 캐릭터라니!


 고슴도치에게 내가 겹쳐 보였다. 우유부단할 만큼 고민하는 고슴도치의 모습 안에, 남의 기준에 미치지 못할까봐 타인의 눈치를 보게 되고, 그럴 수밖에 없는 자신이 괴롭고, 또 한편으로는 타인과 어울려야만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나'라는 인간이 있었다. 동물 친구들이 좋아하는 케이크를 종류 별로 다 만들어보려다 케이크로 가득 넘치는 집에서 우두커니 서 있게 될까 망설이는 고슴도치의 고민은 이렇듯 보편적인 고민을 상징하고 있다.


 고슴도치의 고민은 허탈할 정도로 어이없게, 뜬금없이 찾아온 다람쥐에 의해 끝이 난다. 다람쥐가 고슴도치와 이야기를 나눈 후 조만간 또 만나자고 편지를 남기자 고슴도치는 편안한 마음으로 잠이 든다. 역시 거대한 고민은 의외로 간단한 성취로 매듭지어지는 법이다.


 일러스트가 정말 귀엽다. 꼬물꼬물 움직이는 듯한 고슴도치의 손을 한참 쓰다듬어주고 싶어질 만큼. 책의 내용을 한껏 번지르르하게 살려주고, 귀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일러스트의 힘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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