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홍콩
마가파이 지음, 허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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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나라에서는 소설보다는 영화로 화제가 된 <색계>. 하지만 실상은 중국 현대문학 대표작가인 장아이링의 작품으로 더 유명하다. <색계>는 실재 있었던 국민당 간부 암살 미수 사건을 소재로, 애국대학단원의 스파이인 여자주인공이 자신의 미모를 무기로 정보국 대장을 암살하려하지만 사랑에 빠지고만 애달픈이야기. 이 소설(영화)은 당시의 30년대의 홍콩배경을 잘 보여주고, 살인 임무라는 소재, 유혈이 낭자한 누아르적 분위기와는 대비되는 섬세한 감정묘사로 사랑과 욕망, 이별과 단절이라는 로맨스를 잘 보여주었다. 이런 <색계>가 남남버전이 있다면? 좀 더 누와르적 색이 진하다면? 이번에 소개할 마가파이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홍콩>이 그렇다. 1930년대 법보다 주먹이 앞선 시대, 그 시대 속 남남의 금단 로맨스와 홍콩 암흑가의 애수와 비정함을 담은 소설을 소개한다.

 

 

좆대로 되라고 해!”

꼴리는 대로든 좆대로든 상관없다.

욕 한 마디 내뱉고 나면 아무리 나쁜 일도 별것 아닌 일이 된다.

받아들일 수 있거나, 받아들이든 말든 상관없게 되거나다.

어차피 받아들이든 말든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그 순간에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그만이다.

요즘 세상이 난세라고 하지 않던가?

난세란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하든 결과는 혼란스럽다는 뜻일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헛된 노력 들일 것 없이 혼란 속에 파묻혀 내 맘대로 사는 게 낫다.

p.26

 

1930년대 록박초이는 목공일을 하며 허스 진이란 작은 마을에서 산다. 그 곳에서 아귄을 만나 열일곱살이 되던 해에 결혼한다. 하지만 그녀와의 결혼은 순탄지 않는다. 어느날 그녀는 어릴적 아버지에게 겁탈당하고 어머니가 준 탕약을 먹고 유산을 한 사실을 고백한다. 남편인 록박초이는 아내인 아귄의 고백을 듣고, 자신 역시 어릴적 작은아버지에게 겁탈 당한 과거가 있음을 떠올리지만, 차마 자신의 과거는 털어놓지 못한다. 아내(아쥔)의 고백이후 결혼생활은 삐걱거리고, 아쥔은 록박초이에게 욕설과 폭력을 퍼 붙기 시작한다. 난폭해져가는 아쥔을 견디지 못한 록박초이는 그녀를 떠나 군에 입대하고 공병대에 배치된다. 하지만 그곳에서 배신과 폭력의 끝에 쫓겨나듯 도망치게 되고 홍콩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몸이 전 재산인 록박초이는 노동으로 생계를 꾸릴 수밖에 없어 인력거를 끌게 된다. 오후부터 저녘까지는 호스티스들과 노닥거리다가 밤이 되면 집에 와서 남자들과 왁자하게 떠들며 술을 마시는 일상. 그러던 중 영국인 경찰 모리스의 눈에 들어 그의 정보원이자 애인으로 살게 된다. 모리스로 인해 록박초이는 자신의 새로운 성정체성을 깨닫는 것은 물론, 홍콩의 어두운 뒷세계로 들어서는 위험한 삶이 시작 되는데...

 

남남판 <색계>라는 별칭으로 홍보를 한 소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홍콩>. 읽다보면 왜 그런지 수긍이 가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30년대 홍콩의 어두운 뒷골목의 모습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릇된 욕망과 왜곡된 사랑, 그것으로 인한 파국과 비극을 섬세하게 보여주는 면이 <색계>를 떠오르게 만든다. 작은 마을의 목공수에 불과했던 록박초이(록남초이)가 시대와 개인에게 당한 폭력으로 인해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면서, 결국 암흑가인 삼합회의 논리를 익히고 전쟁을 기회 삼아 두목으로 거듭나는 과정. 파국과 파멸로 치닫는 한 인간의 굴곡진 인생사와 홍콩 30년 격랑의 시대에 도박과 섹스 마약으로 환락과 쾌락으로 화려하게 피어나지만 실은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한 남성의 비극적 생존과 성적 정체성을 찾지만 시대가 허락하지 않은 금단의 사랑을 그린 소설이다. <색계>를 좋아했다면 즐겁게 읽을 만한 소설이다. 색계보다는 좀 더 외설적으로 폭력적으로 읽힐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그 시대자체가 그랬을지도 모르고, 그런 시대였다면 그런 상황이라면 그 수단도 허락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에, 읽다보면 이 과격한 소설 또한 어느 로맨스처럼 섬세하게 읽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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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관 살인사건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 8
오구리 무시타로 지음, 강원주 옮김 / 이상미디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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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에서 출간하는 일본 추리소설 시리즈의 여덟 번째 소설이 출간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책, 오구리 무시타로의 <흑사관 살인 사건>이다. 이 책은 국내에 벌써 3번째 출간된 책이다. 동서문화사와 북로드에서 출간되었고, 이제 이상에서 출간된 것이다. 헌데, 이상한 건 계약과 출간이 반복될 만큼 재밌다는 게 아니라, ‘재미없다라는 평이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수사의뢰와 명탐정 등장, 용의자 심문으로 전형적인 고전추리소설의 형태를 띠며, 흑사관(흑사병으로 죽은 사람들이 시체를 넣어둔 성관과 닮음)이라는 괴기스럽고 음울한 소재를 배경으로 하기에 개성도 있다. 때문에 대부분 일본추리소설의 오락성을 인정한 한국독자들은 환영할 만 한데도 그 환영을 받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 추리소설 3대 기서중 하나이자, 지루함과 장광설로 가득해 악명 높은 소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마니아들의 끊없는 도전과 출판사들이 출간 의의를 동기로 출간하는 미스터리한 소설. 소문부터가 무성한 <흑사관 살인 사건>을 소개한다.

 

 

인간의 마음속에 악마가 살고 있다면,

그 균열 속에 남은 사람들은 범죄의 밑바닥으로 끌고 가기라도 할 것 같았다.

세상 사람들은 생각지도 못한 자괴감이 일으키는 두려움을 차츰 강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통칭 흑사관이라고 불리는 후리야기관. 그 흑사관을 두고 사람들은 언젠가 기이한 공포가 생겨날 것이라 예상했다. 예전에는 켈트 르네상스 양식의 성관의 첨탑과 망루의 수와 선이 주는 기이한 감각과 더불어 용궁 아기씨를 그려 넣어 눈부시게 아름다운 볼거리였지만, 현재는 변색되고 좀먹어가듯 거칠고 황폐해진 상태이다. 언제부터인가 이 저택에 안개 같은 것이 둘러싸기 시작해 성관이 비밀 덩어리로 보이게 만들었고, 요사스러운 기운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사람들의 불길한 예감은 이런 외관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 성관이 지어진 이래 기괴한 죽음을 연상시키는 변사 사건이 연달아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 성관의 주인 산테쓰 박사는 유럽에서 의학과 마술을 연구한 신비주의 성향을 가진 사람인데 1년 전쯤 기괴한 방법으로 자살을 했다. 산테쓰는 체크 무늬 옷을 입은 사람 실물 크기의 인형을 안고 방에 들어가 10분도 안되서 죽음을 맞이했는데, 집안사람들은 아무소리도 듣지 못했고, 외상도 흐트러진 물건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는 네명의 가족이 있는데, 현악 4중주단을 이루는 이 외국인들은 어려서부터 40년이란 긴 세월동안 성관밖에 한 번도 나가본 적이 없다고 한다. 이상한 가족구성으로 더욱 호기심 어린 소문만 무성할 뿐이다. 그리고 박사의 자살사건 후 다시 의문의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4중주단원 중 한명인 바이올린 연주자가 독살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인데...

 

읽는 내내 대체 이게 무슨 소리인가?’ 라는 생각을 연달아하면서 읽어보는 추리소설은 처음이랄까? 솔직히 본인이 일본추리소설을 사랑하는 마니아이고, 이 시리즈가 일본추리소설의 역사를 더듬는 의미가 있는 시리즈물이기 때문에 호평을 하고 싶지만,‘재미있다라고는 말하진 못하겠다. 왜냐하면 현학이 난무하는 미스터리물이기 때문이다. 사건이 벌어지고 탐문을 하고 추적하거나 트릭을 파헤치는 과정,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아슬아슬한 긴장감과 인물들의 범죄동기와 상관된 감정들이 뒤엉켜 흥미진진하게 진행되는 추리물이 아니라, 이 모든 과정을 백과사전 급으로 신학,의학,문학,과학,심리,역사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걸쳐서, 독자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하듯 나열하는 식의 내용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작품의 대부분이 저자의 지식방출이랄까?

솔직히 모든 사람들에게 읽어보라고 권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추리소설마니아라면 이 책이 왜 유메노 규사쿠의 <고구라 마구라>, 나카이 히데오의 <허무에의 공물>과 함께 일본 추리소설 3대 기서인지 한번쯤 호기심에 읽어볼만하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 같다. 결코 재미있지는 않지만, 마니아들의 완독 도전의욕을 끓어 올릴지도 모를 소설. <흑사관 살인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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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이 없다
조영주 지음 / 연담L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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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추리소설과 서양 스릴러소설을 꽤나 읽어본 독자지만, 한국추리소설은 아직 많이 읽어보진 못했지만, 최근 초연작가의 <암흑검사>와 정해연의 <내가 죽였다>를 인상깊게 읽었다. 이 두권의 공통점은 연담L이라는 출판사라는 점과 카카오 페이지 연재라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래서 인지 예전 인터넷 소설처럼 직독직해 스타일의 쭉쭉 쉽게 읽히는 문체와 빠른 전개와 환기로 긴장감을 쫀쫀하게 조여주면서 지루할 틈 없는 구성으로 오락성을 잘 보여줬다. 또한 한국작가가 썼다는 점에서 한국인의 정서와 맞닿는 부분도 있고, 등장인물들의 어투도 부자연 스러운 번역체가 아니라 더 쫙쫙 독자의 입맛에 맞아 떨어지는 부분도 있었다. 이번에 소개할 책은 이런 연담L에서 출간하는 <반전이 없다>이다. 안면인식장애의 형사와 책에 압사한 의문의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이야기. 카카오페이지에서 주최하는 추미스공모전 금상만큼의 재미를 보여줄까?

 

 

이 책들 말이죠, 반전이 없는 거 아셨어요?”

친전은 그 말에 책장을 넘기던 손을 멈칫했다.

누가 반전만 싹 찢어갔어요.”

나영의 말에 친전의 고개가 완벽하게 돌아갔다.

저도 모르게 책에 시선을 고정했다.

나영의 태도가 영 거슬려서 모른 척하고 싶으면서도 근질거리는 손은 막을 수 없었다.

바들바들 떨다가 나영이 테이블 위에 올려둔 책을 펴들었다.

한 권, 두 권, 뒤표지부터 거꾸로 책장을 넘겼다.

 

친전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안면인식장애를 앓고 있다. 때문에, 지명수배범조차 알아볼 수 없는 지경이다. 정년퇴직을 앞둔 시점, 휴직에 들어간 이유도 그것 때문이다. 수상해 보이는 사람을 쫓다가 포기하기를 반복해서이다. 좋아하는 추리소설을 읽는 것, 손자의 하교시키는 일로 무료함을 달래던 중 손자에게 우비할배에 대한이야기를 듣고, 우비할배를 잡아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만다. 손자가 무서워하는 우비할배는 한달 전부터 어린이 집을 찾아오는 우비를 입은 정체모를 할아버지라 한다. 진천은 어린이집 앞에서 잠복하지만 우비할배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진천은 추리소설을 읽는 것은 진전이 있지만, 우비 할배 찾기는 전혀 진전이 없는 중. 한통의 연락을 받는다. 김씨는 잠깐 왔다 가라는 짧은 말과 함께 주소를 남기고, 그가 간 곳에는 붉은 기와를 얹은 단층집에 죽은 독거노인 있다. 피해자인 독거노인의 집에는 저장강박증을 예상하게 하는 추리소설들로 가득했고, 얼핏 보기에는 천장이 뚫려 무너지면서 책더미에 깔려 압사 당한 듯 보인다. 김씨는 피해자가 우비를 입고 죽어서, 요며칠 진천이 찾는 우비할배가 이 피해자일 수도 있지 않겠냐는 의문과 함께 유가족을 찾아달라는 말을 부탁한다. 진천은 사람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지만, 이 피해자는 사고로 얼굴이 완전히 뭉겨져서 안면인식장애를 앓고 있어도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이 김씨의 생각인 것이다. 결국 진천은 이 사건을 조사하게 되고, 시체 옆에 피가 묻어 있는 책뭉치와 찢겨 나간 추리소설의 반전 페이지들을 발견하면서, 단순 사고사가 아닌 살인 사건임을 직감하게 되는데...

 

범인을 알아볼 수 없는 안면인식장애와 책에 깔려 얼굴이 완전히 뭉게진 피해자, 그리고 집안 가득한 추리소설들과 그 추리소설의 반전페이지부분이 찢겨나간 정황 등 <반전이 없다>는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눈길을 끌만한 요소로 시작부터 흥미롭게 진행된다. 책으로 구타해 살인을 했음으로 흉기로 쓰인 것이 추리소설책이고, 이 추리소설책이 증거가 되어 한 출판사로 추적하는 계기가 되고, 한 남성이 쓰고 있던 추리소설책과 그 밖에 반전페이지가 뜯겨진 실존하는 유명 추리소설의 책들로 독자에게 복선과 암시를 전하는 것 역시 추리소설책이다. 때문에 추리소설 매니아 독자들을 위한 맞춤 추리소설이다. 읽는내내 쓰는 저자나 읽는 독자나 (등장하는 인물마저) 추리소설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 반갑다고나 할까? 초이세 작가의 <짐승의 문>, <점과 선>이나 애거사 크리스티의 <ABC 살인사건>, <오리엔트 특급살인> 등장에 의외의 친근함은 물론, 추리소설이 흉기와 증거 그리고 트릭의 해결책으로 쓰일지도 모르는 알쏭달쏭함을 품어 추리매니아들의 도전의욕을 불태울 수 있는 소설을 찾는다면, 이 책을 읽어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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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비틀 킬러 시리즈 2
이사카 고타로 지음, 이영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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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하고 독특한 이야기로 독자들을 매혹하는 소설가이자, 재치와 유머를 겸비하지만 사회적 문제에 주목하는 작가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 그의 작품은 많이 읽진 못했지만, 왜 그의 팬들이 이사카 월드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그의 작품이 인기리에 영상화 되는지 이해가 간다. 추리소설이 가져야할 치밀한 구성과 놀라운 반전은 물론이고, 다양한 소재와 독특한 세계관은 물론, 단순 오락 소설이라고 보기에는 숨겨진 의미가 있는 대사 한줄 한줄이 곱씹으면서 읽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그가 이번에는 선과 악에 주목한다. 이번에 소개할 <마리아비틀>은 이사카 고타로의 <킬러 시리즈>의 두 번째 이야기로, 인간의 폭력과 악의 근원을 탐구하는 미스터리 소설이자, 질주하는 기차 속 폐쇄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킬러들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그린 작품이다. 과연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전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착하지도 악하지도 않다고 생각해요.”

그건 어느 쪽이든 될 수 있다는 뜻인가?”

아뇨, 선이나 악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왕년에는 킬러, 현재는 알콜 의존증에 경비원일까지 그만둔 실업자인 기무라. 그는 술을 끊고 비장한 각오로 도쿄에서 모리오카로 향하는 신칸센에 오른다. 안주머니에는 권총 한 자루를 품은 채. 그는 여섯 살 난 아들 와타루의 복수를 하기 위해 이를 갈고 있다. 여섯 살된 자신의 아들을 백화점 옥상에서 떠밀어 중태에 빠트린 소년 왕자. 기무라는 예전 동료에게 입수한 정보로 왕자를 찾는 중이고, 그 아이가 지금 이 열차안에 있다는 것이다. 기무라는 다섯 번째 차량에서 하얀 옷깃이 달린 셔츠를 입은 착실한 우등생처럼 보이는 중학생 소년을 발견한다. 저렇게 천진난만해 보이는 아이(왕자)가 정말로 악의가 있었을까? 하는 의혹이 솟구치는 순간, 기무라의 눈앞에서 커다란 불꽃이 튀었다.

 

기무라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양쪽 손목과 발목이 묶인 채로 창가 자리에 앉혀 있는 상태이다. 영악한 두뇌를 가진 왕자가 기무라의 예전 동료에게 일부러 정보를 흘리게 만든 것이다. 이미 기무라가 올 것을 대비한 왕자는 전기 충격기로 기무라를 기절시킨 것. 왕자는 기무라를 무서워하긴 커녕 흥미로운 게임을 하듯 그와 대화를 시작하고, 기무라는 고작 중학생인 왕자가 열명을 죽인 사이코패스이며, 아들이 입원한 병원에 심부름꾼을 심어두어 언제든 아들의 호홉기를 조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한편, 킬러 콤비인 밀감과 레몬은 인질로 잡혀있던 보스의 아들을 구하고, 몸값이 든 검은 트렁크를 들고 신칸센에 오른다. 하지만 한눈을 판 사이 트렁크는 사라지고, 보스의 아들은 누군가에게 독살당하고 만다. 같은 시각, 마리아의 지시로 검은 트렁크를 찾아내 다음 역에서 내리라는 지시를 받은 나나오는 예상치 못하게 청부업자 늑대를 만나게 되고, 평소 원한이 있던 늑대가 나나오에게 빚을 갚겠다고 하자, 나나오는 위협만 주려다 불운한 실수로 늑대를 죽이고 마는데... 과연 두 시간 반 동안 밀폐된 기차 안에서 이들은 각자의 목적을 이루고 무사탈출 할 수 있을 것인가?

 

초고속 열차에서 펼쳐지는 킬러들의 기묘한 추격전을 그린 <마리아비틀>. 이 소설은 기무라, 밀감과 레몬, 나나오의 시점으로 바꿔가면서 진행되지만, 이들은 모두 달리는 열차 안에서 종착역까지 남은 단 2시간 30분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그들의 배경과 각자 처한 사정, 즉 이 열차에 탄 임무와 그 목적과는 다르게 벌어지는 긴박한 사건과 사투가 질주하는 신칸센만큼이나 속도감 있게 보여주는데, 열차 배경만큼이나 매력적인 캐릭터가 어느 한 부분의 지루함없이 설정되어 있다. 어린 아들을 의식불명으로 만든 사이코 패스(왕자)에게 복수하려는 알콜 중독의 전직 살인청부업자인 기무라, 조직폭력배 거물에게 도련님의 무사귀환 임무를 맞게 된 조직원 밀감과 레몬, 죽일 의도는 없었지만 불운의 사고로 성가신 시체를 떠안게 된 청부업자인 나나오까지

 

주행하는 열차지만, 종착역이 아니면 탈출할 수 없는 상자와 같은 열자칸이라는 배경만큼이나 매력적인 청부살인업자들의 캐릭터와 윤리관과 도덕 및 감정이 결여된 '악의 근원' 캐릭터인 왕자라는 캐릭터의 결투와 추격을 통해 박진감과 속도감있는 스릴를 맛보여주는 미스터리 엔터테인먼트 소설 <마리아비틀>. 달리는 열차 속, 살인청부업자지만 너무나'사람'같은 이들의 행운과 불행, 우연과 필연 등의 엇갈림과 얽힘을 통해, 짜릿한 재미와 촘촘한 복선, 유머처럼 쉽게 읽히지만 답하기 어려운 철학적 질문이 담긴 추리소설을 찾는다면,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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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경찰의 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하빌리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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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예전 출간작들이 연달아 출간되는 추세이다. 세련된 디자인, 감각적인 색채로 표지를 바꾼 그의 작품들은 표지만큼이나 그 내용도 예전작품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독자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매번 신간을 쏟아내는 속도만큼이나, 예전 작품들이 다른 출판사에 계약되어 표지만 바꿔 선보이는 것인데, 현재도 다작중이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지만, 아쉽게도 그의 최근작들은 예전만 못하다는 평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물론, 히가시노 게이고이기 때문에 그 기대치가 높은 것이고, 모든 작품은 대작처럼 써내기에는 다른 작가에 비해 빠른 속도로 작품을 집필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번에 소개할 책은 단편보다는 장편에서 대작을 뽑아낸(백야행, 용의자x의헌신, 유성의 인연 등) 히가시노 게이고의 단편이다. 헌데, 초기작이다. 과연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초기작이라는 기대감을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인가?

 

<교통경찰의 밤>은 도로위에서는 누구나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마주할 수 있고, 피해자와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현실감 있는 교통사고를 소재로 한다. 때문에 92년도의 작품이지만 이질감없이 흥미롭게 몰입해서 읽을 수 있다. 이야기는 총 6가지 단편이 수록되어있다. [천사의 귀][중앙분리대][위험한 초보운전][건너가세요][버리지 말아 줘][거울 속에서]이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은 [건너가세오]를 소개한다.

 

유지는 퇴근 후 한통의 전화를 받는다. 익은 목소리가 아닌 낯선 남자, 그는 자신을 마에무라라고 소개하며 경찰서 교통과에서 알려준 연락처로 연락한 것이라 한다. ‘혹시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다행이도 그는 흠집이 난 자신의 차의 가해자였던 것이다. 얼마 전, 여자친구 나오미와 새해 첫 참배를 가려고 집을 나섰을 때, 주차된 자신의 차 뒷부분이 미등은 깨졌고, 차체에는 길게 긁힌 흠집이 나버린 일이 있었는데 그 가해자가 마에무라였던 것이다. 유지는 마에무라를 만난뒤 그의 만만한 인상을 보고 수리비 견적인 5~6만엔 정도지만, 10만엔을 청구한다. 마에무라의 연락을 받은 뒤 정비 업체에 연락해 전부터 미심쩍었던 부분까지 모두 수리 한 것이다. 불법주차한 자신보다 남의 차를 치고 달아난 그(마에무라)가 더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주일뒤 유지는 마에무라를 다시 만다게 된다. 최근길 지하철 안에서 그가 불쑥 말을 건넨 것이다. 그 뒤 몇 번의 만남으로 대화를 몇 번하고 난뒤, 그는 이상한 제안을 한다. 마에무라는 일가친척 모임이 있는데, 몇 달째 자신이 별장에 가보지 못해 어떤 상태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임전에 누구든 별장에서 지내 주면서 환기도 해주고 하면 한다고. 유지는 여자친구인 나오미와 상의를 하고, 결국 나오미가 좋아하는 스키를 탈 겸 마에무라의 별장에서 연휴를 보내기로 한다. 헌데 별장에서 뜻밖에 재회를 하게 된 마에무라. 마에무라는 유지와 나오미와 식사를 하며, 친구의 불행한 사고를 이야기 한는데...‘친구 부부가 욕조를 굴러 떨어진 아이를 병원으로 데려가려다, 하필 병원으로 가는 지름길에 불법주차 된 차가 있었고, 결국 제 때 치료를 받지 못한 아이는 사망에 이르렀거든요...’

 

예전작품이지만, 여전히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고, 그 가해자도 피해자도 우리 중 누군가가 될 수 있다는 현실은 여전하기 때문에 몰입감 있게 읽을 수 있다. 지금도 노상주차(불법주차), 보복운전(난폭운전), 운전 중 쓰레기 무단 투기, 과속 및 음주운전 등 여전히 교통법규를 위반하는 현실이 팽배하다. 가해자에게는 사소한 부주의나 작은 실수였을지는 몰라도, 그로인해 벌어지는 피해자들의 고통과 아픔을 그려내며, 그에 대한 공감, 경고, 책임감을 보여주는 미스터리극. 누구든지 이 교통 미스터리의 등장인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현실감으로 90년대 초반작품임에도 여전히 몰입되고 초기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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