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에게 - 김선미 장편소설
김선미 지음 / 연담L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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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가족 동반자살이 2009년 이후 현재까지 매달 한 두 가구씩 나오는 추세이다. 예전 한 신문기사에서 40대 한의사가 아파트 고층에서 투신한 사건이 떠올랐다. 당시 새로 개원한 한의원의 대출문제로 고심하던 가장이자 한의사인 그는 자신의 부인과 두 자녀를 목졸라 죽인뒤 자살을 한 것이었다. 대부분 한 가족 동반자살은 경제적인 문제나 가정적인 문제로 비롯되고, 이를 견디지 못한 부모가 배우자와 자녀를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가 많다.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린 부모가 자녀를 한 인격체가 아닌 책임을 져야할 소유물로 인식해서 발생한 것은 아닐까. 사회구조적 문제로 접근해 가족동반자살로 안타깝게 치부해야할지, 한 개인의 잘못된 사고 문제로 접근해 자녀살인사건으로 봐야할지, 현재에도 많은 논란이 되는 부분이다. 이번에 소개할 소설 김선미의 <살인자에게>는 이런 부모의 자녀 살해 후 자살이라는 일가족 동반 자살을 소재로 한다. 일가족 자살을 감행하려한 아버지가 10년만에 돌아온다면? <살인자에게>를 소개한다.

공공연한 비밀이지만, 내게는 일가족을 죽이려고 한 아버지가 있다.

사업 실패를 비관해서 가족을, 그러니까 나와 엄마와 형을 모두 죽이려고 했다.

세상엔 때론 그런 일도 일어나는 법이다.

피를 나눈 가족이 가족을 살해하는 일 같은 거 말이다.‘


한 한적한 시골 마을이 유일하게 북적이는 유등 축제 기간. 작은 고등학교 역시 축제준비가 한창이다. 물고기 유등을 만들어야하기 때문이다. 손재주가 없는 반장은 진웅에게 물고기 유등을 만들어 달라 부탁하고, 진웅은 내일 아침에 넘겨주겠다고 약속을 한 뒤 조퇴를 한다. 한번도 조퇴한 적이 없는 성적 일등의 진웅이지만, 오늘 만큼은 조퇴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바로 10년만에 온 가족이 한 집에 모이는 날이다. 10년전 진웅의 아버지는 사업에 실패한 뒤 일가족 동반자살을 하려했다. 아버지는 칼을 휘둘렀고 그 칼에 진웅의 엄마는 죽었다. 곧이어 진웅의 형에게도 칼을 휘둘렀지만 진웅의 형은 칼을 맨손으로 잡은 뒤 틈을 타 현관문 밖으로 도망쳤다. 뒤쫓아갔지만 형을 찾지 못한 아버지는 곧 집으로 돌아왔고, 진웅마저 죽이러하지만 어린 진웅은 침대밑에 숨어 살아남게 된다. 그리고 곧 엄마 옆에서 자신의 배에 칼로 찔러 넣는 아버지를 목격하게 된다.

 

진웅의 아버지는 응급실로 실려갔고 살아났다. 아버지의 자살기도이자 일가족동반자살계획은 실패한 것이다. 퇴원후 그는 아내를 계획적으로 살해한 죄와 아들에게 상해를 입힌 죄로 수감되었다. 그리고 얼마 뒤 마을 저수지에 한 여자애가 빠져 죽은 사고사가 일어났는데, 마을 사람들은 아버지가 살인범이니 그 자식도 누군가를 죽일 수 있을 거라는 의심 섞인 험담과 욕설을 했고, 결국 그 표적이 된 진웅의 형(진혁)은 진웅을 할머니댁에 남긴 뒤 서울로 떠나게 된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현재 가족의 십년만의 재회지만 아직 어색하고 껄끄러운 집안. 서로에게 적응하기도 전에 진웅의 가족은 또 다시 살인사건을 마주하게 된다. 가족이 함께 할아버지 성묘를 마치고 내려오던 길에 들른 양계장, 그 곳에 싸늘한 시신 한 구를 목격하게 된다. 흙속 시신은 다름 아닌 진웅과 같은 반의 반장!...진웅은 그 날을 떠올리며 가족을 의심하기 시작하는데... 

연담L 출간작들은 <일곱번째 배심원>을 제외하고 전부 만나보았는데, 이 출판사에서 카카오페이지 연재작품, 추미스 공모전 수상작 작품을 출간하는 만큼, 재미 면에서는 늘 만족감이 있다. 이번에는 만족감과 더불어 한국 사회에 문제가 되는 일가족 동반자살이라는 소재와 함께 생각할 거리를 주어 사회파적인 면모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한 가족의 참혹하고 처참한 비극사로 시작한다. 실패한 가장의 극단적인 선택인 일가족 동반자살계획 그리고 그 사건 뒤에 일어난 또 다른 살인사건의 발생. 이 소설은 10년전 사건을 회상함과 동시에 10년후 재회한 가족의 불편한 관계와 미묘한 감정, 그리고 현재의 살인사건의 범인을 의심하며 추적하게 된다. 독자는 현재 살인사건인 반장을 살해한 범인은 누구인가?’라는 표적을 따라가지만, 소설 속 주어진 5일의 기간 동안, 진웅과 진혁(진웅의 형) 아버지 세 사람의 시선으로 뒤엉키며 진행되기 때문에 중간 중간 의문점을 남기며 끈질긴 궁금증을 유발한다. 추리소설로써 꽤 흥미진진하게 진행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인상 깊은 것은 각자 인물들만의 처지와 감정, 그 고통과 분노 슬픔이 한 사건을 두고 녹아들어 있기 때문에 일가족 동반 자살이 동의가 아닌 강제에 의한 가족간의 폭력이자, 자살이 아닌 타살임을 섬세하면서 또렷하게 메시지를 담아 보여준다는 점이다. ‘일가족 동반 자살을 세간의 동정해야할 비극이 아닌 경계해야 할 범죄로 봐야한다는 문제의식을 품은 추리소설 <살인자에게>, 사회파추리소설을 좋아한다면 읽어봐도 좋을 것이다. 엄청난 반전소설로 인상을 남기기 보다는 사회의 어두운 일면이자 문제를 각자의 입장에서 섬세한 생각과 대사로 전하는 날카롭고 명확한 소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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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차의 애프터 파이브 - 막차의 신, 두 번째 이야기
아가와 다이주 지음, 이영미 옮김 / 소소의책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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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와 다이주의 <막차의 신>은 퇴근 막차의 한 풍경을 배경으로 그 안에 실린 승객의 7가지 이야기를 담아낸다. 사람들로 빽빽한 막차,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떠나는 개별의 이야기인듯하지만 연결고리가 있는 이야기들. 치한을 만난 여자, 납기 마감일을 앞둔 상황에 갑작스럽게 휴가 명령을 받은 엔지니어, 이미 남자친구에게 이별 통보 편지를 보낸 뒤 마지막 밤을 보내기로 결심한 여자, 임종 직전의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발걸음이 다급한 회사원, 사람들을 웃기고 싶어서 여장 콩트 작가가 된 남자, 선로로 뛰어들려는 남학생을 발견한 인간 혐오증을 가진 여고생 등 주인공과 그들의 상황과 사연은 제각각이고 낯설게도 느껴지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우리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복잡한 도시에 서로 부대끼고 갈등하고 보듬고 위로하는 이야기들. 퇴근길 막차에 지친 몸을 기대고 각자의 돌아갈 곳을 향해 가는 일상적이지만 좌절과 희망 섞인 삶을 보여준다. 이번에는 그 두 번째 이야기인 <첫차의 애프터 파이브>이다. 이번에는 정반대의 생활패턴과 삶을 가진 주인공들이 보여진다. 고단한 일상을 마치고 첫차시간까지의 고민과 비밀에 관한 사연은? 신주쿠 밤거리, 비주류의 삶이 적나라게 훤히 드러나 퍽퍽하지만 춥지 않은 이야기를 소개한다.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은 모두 막차로 돌아갈 시간이야.”

... 조금 전까지 만원이었던 가게 안에 우리 둘만 남았다.

와타나베 씨가 불쑥 입을 열었다.

막차를 타러 서둘러 가는 사람들을 볼 때가 제일 외로워.”

막차는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을 위한 교통수단인 것이다.

돌아갈 곳이 없는 와타나베 씨, 돌아갈 곳을 버리고 떠나온 나.

대화가 잠시 끊긴 사이, 어쩌면 우리 두 사람은 같은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첫차의 애프터 파이브][스탠 바이 미][초보자 환영, 경력 불문][막차의 여왕][밤의 가족] 5편의 단편에는 자신의 꿈이 어그러지거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긋나버린 삶을 사는 사람들의 삶이 소개되어 있다. 일반사람들이 보면 생각지도 못할 그들만의 풍경들이 곳곳에 자리한다. 대기업 상사맨으로 오랜 해외생활을 할 정도로 잘나갔었는데, 새 업무 실패로 인한 손실로 책임을 진 채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 중년의 나이지만 결혼도 하지 않았기에 돌아갈 집조차 없는 그는 러브호텔에서 배관청소 따위를 하며 허드렛일을 하며 살아가게 된다. 그밖에도 노래를 하고 싶어 고향땅을 떠나 신주쿠에 왔지만 용기가 없어 망설이던 끝에 한 노숙자를 만나 버스킹을 하게 된 사연, 동일본 지진 재해로 사무소가 폐업하는 바람에 바텐더로 일하게 되면서 밤의 무대에 서게 된 사연, 오래전 헤어진 연인이 막차를 탄다는 말을 전하고 연락두절 되고 사라져버려 그 행방을 쫓는 사연, 유흥업소 여자들을 호텔까지 픽업해 주는 운전기사와 아버지의 빚으로 유흥업소에서 일하게 된 여성의 사연이 담겨있다. 제각각의 사연이 다 씁쓸하고 때론 기구하기도 하다.

 

이 소설은 <막차의 신>으로 에키나카 서점대상을 수상한 아가와 다이주의 작품이다. 5편의 이야기로 단편처럼 수록되어 있으며, <막차의 신>이 일상적이게 느껴질 만큼 더 비일상적이고 비주류의 삶을 소재로 한다. 대도시의 번화가, 밤의 휘황찬란한 거리, 신주쿠의 밤거리와 그 주변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지며, 주인공들은 주류가 아닌 비주류로 밤에 일하는 사람들이자, 돌아갈 곳이 없거나, 떠나왔거나, 정처 없이 떠도는 어떻게 보면 하류인생들이다. 평범한 사람들인 주류들처럼 막차를 타지 못해 외롭고 서글프지만, 곧 그들만의 막차인 첫차가 올 것이라는 희망이 숨겨져 있다. 팍팍하지만 슬프지 않고, 불운하지만 불행하지 않은 이야기랄까.


답답하고 씁쓸한 구석진 이야기들을 담담하고 태연하게 머금듯이 풀어내는 알수없는 여운을 지닌 소설을 찾는다면 추천한다. 커다란 사건이나 반전 결말이나 독자가 희망한 해피엔딩이 없이 이게 끝이야?’ 같은 허무한 스토리일지도 모르지만, 하류인생 불운의 끝 그 삭막함을 때론 용기있게 때론 편안하게 살아내는 주인공들을 보면, 우리들의 외롭고 눈물 맺힐 일들도 그저 일상의 한 부분처럼 지나치듯 살아가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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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없는 세계
미우라 시온 지음, 서혜영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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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라는 표현은 일본의 오타쿠를 한국식 발음으로 줄인마이다. 어떤 한 분야에 몰두에 전문가 이상의 열정과 흥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뜻하는 말. 때론 전문가도 이 덕후에 속하기도 한다. 예전에 곤충 덕후 여성의 로맨스를 그린 일본 드라마가 있었는데 다케우치 유코 주연의 <기분 나쁜 유전자>이다. 곤충학을 전공하는 여주인공과 유명 학자인 남자주인공이 유전학과 생물학 관련이야기를 펼치며, 논쟁을 펼치는 이 드라마는 곤충과 인간을 비교하며, 사랑이 존재하는가? 에 관한 이야기 혹은 바람은 본능이다?에 관한 이야기 등을 나누며 연애를 하는 로맨스이다. 이번에 소개할 책인 <사랑 없는 세계>는 식물 덕후인 주인공의 로맨스물이다. 식물에 매료된 대학원생과 그녀를 좋아하는 요리사의 식물학 로맨스! 이름 모를 풀 때문에 구애에 난항을 겪는 주인공의 특별하고도 따뜻한 사랑이야기를 소개한다.

가끔 생각해요. 식물은 광합성을 하며 살고,

동물은 그 식물을 먹고 살고, 그 동물을 먹고 사는 동물도 있고...

결국, 지구상의 생물은 모두 빛을 먹고 살고 있구나 하고요.”

빛을 먹고...”

. 후지마루 씨도, 저도, 식물도, 다 똑같이.”

웃음 짓는 모토무라의 눈에는 희망을 닮은 빛이 비쳤다.

고맙습니다, 후지마루 씨.” 

 

국립 T대학의 아카몬 앞을 지나는 혼고 대로 바로 건너편 쪽 길가의 좁은 길, 그곳에 자리한 양식당 엔푸쿠테이‘. 그 곳의 입주 종업원이인 후지마루는 양식당 주인인 쓰부라야를 스승같은 대장으로 모시며 요리사의 길을 꿈꾸고 있다. 열심히 조리번문학교를 다니고, 영양학 수업을 들으며 일식집 접시닦이를 하면서 국물 내는 법을 배우거나, 이탈리아 식당에서 홀서빙을 하며 토마토의 맛을 익히기도 했다. 이렇게 아르바이트를 하며 부엌칼 하나를 쥐고 곳곳을 떠돌며 배우던 그가 이 허름한 양식당에 머물게 된 것은 무엇보다 맛이 훌륭했기 때문이다. 신기한 기예를 뽐내지는 않았지만, 정성껏 만든 마음이 전달되는 음식이 있는 곳. 그 역시 마음이 담신 음식으로 남을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꿈을 꾸게 된다. 이런 그가 마음이 담긴 사랑으로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꿈을 꾸게 된다.

 

요리에만 열정을 쏟는 후지마루의 인생에 갑자기 찾아온 사랑. 양식당의 음식을 배달하러 간 T대의 자연과학부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 곳에 식물학에 매진하고 있는 모토무라를 만난 후지마루는 그 후 몇마디 이야기를 통해 식물학의 세계에 빠져든 그녀의 모습에 반하게 되었고, 그녀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해 버리지만, 며칠 후 그녀는 그 고백을 거절해 버리는데... 그 거절이유가 사람이 아닌 식물 때문이라면? ‘사랑 없는 세계를 사는 식물 연구에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라는 그녀. 식물 덕후 그녀를 사랑 가득한 세계로 이끌 수 있을까?

 

누군가 이 책에 대해 묻는다면, 이 책을 읽고 이 작가의 다른책들을 찾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라면 답이 되었을까? 이 책은 한 요리사가 식물 덕후를 향한 러브 스토리임과 동시에 사람과 사람간의 인연과 연대 그리고 개인의 꿈과 열정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실상 이런 소재들은 일본 특유의 따뜻한 정서가 담긴 힐링 소설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이 소설이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이런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의 소재거리들을 식물에 비유하면서 섬세하고 인상깊에 짚어 낸다는 점이다. 빛을 먹고 살아가는 식물처럼 사랑을 먹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 무의미에서 의미로 나아가는 여정의 일환들을 과학적 상상력과 정확한 묘사를 통해 식물학이라는 독특한 분야로 표현해 내는 소설. 미우라 시온의 <사랑 없는 세계>, 제목과는 다르게 사랑 가득한 세계와 식물학의 세계를 탐험해 보고 싶다면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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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낭자 뎐
이재인 지음 / 연담L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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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담 L의 출판사 작품은 조영주의 <반전이 없다>와 초연의 <암흑 검사>, 전해연의 <내가 죽였다>를 읽어보았다. 이 작품들의 특징들은 카카오 페이지 연재작품이라는 점인데, 그래서 인지 장면, 에피소드의 전환이 빠르고, 스토리의 전개 또한 빠르며 문체 또한 쉽고 간결해 읽기편한 작품들인데 비해, 놀랍도록 탄탄한 스토리에 대중적인 재미가 듬뿍담긴 매력적인 소설들이었다. 이번에는 이재인의 <호랑낭자뎐>이다. 다만 전작과 다른 점들이 있다면 연담L에서 처음으로 출간하는 사극 판타지라는 점이다. 반은 인간이고 반은 동물인 존재들이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신비로운 세계에 조선시대 사극을 입힌 독특한 배경, 거기에다 미스터리한 살인사건과 궁중 권력암투 까지 섞인 조선판 CSI, 과연 이 많은 것들을 어떻게 조화롭게 담아낼까?

저를 향해 한 발 한 발 다가오는 이의 낯을 보며 해랑은 제 기억을 헤집어댔다.

그러다가 눈을 크게 치떴다.

지난가을, 무영과 함께 숨어 들어간 임금의 연회에서 본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그 이름을 떠올리려 애를 쓰고 있다니

어느새 해랑과 마주선 이가 위에서 아래로 해랑을 훑어보았다.

너로구나? 살아남은 새끼 호랑이가.”

그믐밤. 자미재 뜰 안으로 민도식의 목소리가 차게 내려앉았다.

 

무영 이휘. 선왕과 그의 귀비 김 씨 사이에서 태어난 조선의 제이 왕자이면서 동시에 천것인 사내이다. 왕자군을 칭호를 얻어야 했지만, 어미가 귀비였던 탓에 왕자군으로 봉군되지는 못한 것이다. 당시 선왕의 죽음이 있었고 새로운 왕이 즉위할 때, 새로운 왕인 무영의 이복형제 이광은 자신의 어미를 죽게 만든 후궁들을 죽이고 그 자식들을 유배 보낸다. 이 사건으로 인해 무영 역시 궁 밖에서 살게 된다. 이런 무영이 다시 궁궐 땅을 밟게 된다. 임금의 부름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영은 귀비의 자식이 대개 그렇듯 사령을 볼 줄 아는 사내였는데, 임금은 광증탓인지 부엉이 소리가 들린다며 궁안에 사령을 잡으라 명하기 위해 그를 불러들인 것이다. 무영은 삼년 전 어미와 정인을 모두 잃었지만 임금의 명을 받고 도성을 둘러보기로 한다.

 

무영과 마찬가지로 불운한 과거를 가진 해랑. 호족이 멸문하던 날 태어난 아이인 해랑은 어릴적 무영에게 거둬져 그를 스승으로 모시게 된다. 그렇게 스승인 무영과 제자인 해랑은 전국을 다니며 해괴한 사건들을 해결한다. 아니다 다를까 이번에도 그들곁에 해괴한 사건이 벌어진다. 장마철 광통교에 시신이 발견된 것이다. 좌포청 종사관 최주혁은 시신에 별다른 사인이 보이지 않으나, 딱히 실족사로 보기도 어렵고, 일대를 탐문하였으나 여인의 얼굴을 알아보는 이가 없어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어려워하고, 그 무렵 마을에서는 밤마다 광통교에서 여인의 혼이 흐느낀다는 해괴한 소문이 떠돌기 시작한다. 결국 최주혁은 무영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는데... 과연 무영과 해랑은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연담L이라는 출판사라는 점에서 기대가 많이됬고, 판타지와 미스터리 사극에 과학 수사까지 결합할 수 있을까?라는 우려가 많이 되었던 작품이다. 하지만 역시 조선판 CSI'라는 카카오페이지의 독자들 평가답게, 어울리지 않은 것을 잘 매치시키면서 색다른 스토리와 쫄깃한 전개를 잘 뽑아낸다. 이 소설은 인간의 탐욕과 귀신의 원한이 서린 기묘한 사건들을 펼쳐지는데 그것들을 해결하는 것들이 과학적인 시신검안 같은 조선판 CSI적인 면과 사령을 보고 듣는 다는 특별한 능력과 부적을 쓸 줄아는 타고난 능력이 있는 주인공의 판타지적인 면이 결합되기에, 과학과 비과학, 현실과 판타지, 정극과 퓨전사극을 넘나드는 미묘하고 복잡한 세계와 분위기를 보여준다. 또한 무영과 해랑이 미스터리한 사건을 해결하면서 그들의 과거사들도 밝혀지는데, 그와 더불어 벌어지는 간간한 로맨스 또한 있으니 한 때 열풍이었던 남장여자사극로맨스물을 좋아하는 독자에게도 환영받을만한 소설이다. 다소 많은 것이 믹스되었으나, 그러기에 폭넓게 읽히기에 좋은 소설! <호랑낭자뎐>! 가독성 좋은 퓨전사극물을 맛보고 싶다면 적극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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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사랑법 스토리콜렉터 81
마이크 오머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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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로드는 독일 스릴러의 여왕 넬레 노이하우스의 타우누스 시리즈로 인기를 얻은 출판사이다. 냉철한 카리스마 수사반장 보덴슈타인과 직관과 감성의 소유자인 피아가 콤비를 이루며 미스터리한 살인 사건을 풀어나가는데, 국내 독자에게는 다소 낯선 어려운 독일 인물들과 지명들이 나옴에도 불구하고, 치밀한 사건 구성과 인물들 간의 관계 설정, 섬세한 문체와 재미를 넘어선 작가만의 메시지가 있어 많은 독자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그밖에도 데이비드 발다치나 마이클 로보텀 작가 같이 과잉기억증후군을 가진 형사나 파킨슨병을 앓는 천재심리학자라는 불운을 가진 매혹적인 캐릭터를 창조해내 독자가 주인공에게 남다른 애정을 가지게 만들 정도의 작품들도 있다. 이런 북로드에서 새로운 작가의 작품이 출간된다. 아마존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마이크 오버의 <살인자의 사랑법>. 신예작가답게 이제껏 볼 수 없는 신선하고 독창적인 살인자의 모습과 유머와 위트를 녹여낸 분위기가 내내 암울하고 공포스러운 스릴러 소설의 분위기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킬 모양이다. 과연, 북로드의 신작은?

다음번엔 더 나으리라. 여자가 좀 더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 방법을

찾아내고야 말리라. 하지만 우선 여자와 헤어져야 했다.

남자는 바닥에서 여자를 들어 올려 도로 의자에 앉혔다.

여자는 둘 사이의 긴장을 감지한 듯, 탁자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남자는 여자의 팔에 손을 얹고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리고 웃음 지으며 물었다.

우리 좋은 시간을 함께 보냈지, 안 그래?”

...남자는 자기가 아는 것을 죄다 떠올리려 애썼다. 그동안 본 영화와 읽었던 책들.

여자는 울 것이다. 여자는 아름다웠다. 순간, 남자는 하마터면 마음을 바꿀 뻔했다.

다시 잘해보자고, 다시 기회를 달라고 말할 뻔했다.

하지만 그래 봤자 결국 두 사람에게 상처만 남으리란 사실을 알았다.‘

 

1970년대 메사추세츠, 당시 10대 소녀인 조이 벤틀리는 한 사건에 집중하게 된다. 평범한 소녀들처럼 일생생활에서의 사건이 아닌, 그 당시 마을을 떠들썩하게 만든 여성연쇄살인사건에 말이다. 남다른 직관을 가진 소녀는 신문 기사를 스크랩하고 어른들 몰래 직접 자신만의 수사를 해내 이웃에 범인 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어린 나이탓에 조이의 말에 신빙성이 없다 생각했고, 결국 이 사실은 안 범인은 조이를 노리고 부모가 없는 틈에 조이를 노리지만 실패하고 만다. 그 뒤 조이는 범죄자의 심리에 대한 남다른 촉을 발휘해 범죄 프로파일링을 공부하고, 결국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는 발군의 사냥꾼 프로파일러로 성장하게 된다.

 

그 뒤 2016. 특이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해변에서 한 여자가 실연이라도 당했는지 두손에 얼굴을 파묻은 채 울고 있는 시신의 모습. 마치 연인에게 실연당해 슬퍼하는 듯 한 모습이다. 이런 희생자들이 차례로 발생하고, 이 시신들은 하나같이 살인자의 의해 교살당한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마치 살인자와 피해자가 연인관계인 듯 한 성관계의 흔적, 마치 시신마저도 사랑하는 듯한 죽음을 뛰어넘는 사랑을 보여주려는 의도인냥 범인은 피해여성을 정성스럽게 방부처리해 박제한 사건들이다. 담당수사관인 FBI요원 테이텀 그레이는 실력있는 프로파일러가 필요하다고 생각되 신청하게되고, 범죄심리학자인 조이 벤틀리가 파트너가 되지만 성향이 다른 두 사람은 늘 부딪치기만 하고, 더군다나 조이에게 유년시절 고향에서 벌어졌던 연쇄살인사건의 범행도구가 배달되기까지 하는 알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데...

 

일단 북도드답게 대중성있는 스릴러 소설이다. 사랑과 살인이라는 양립할 수 없는 독특한 소재를 가지고 변태적이고 자극적인 시체를 방부하는 살인자 캐릭터의 탄생, 그리고 그 살인자를 뒤쫓는 제멋대로 FBI 요원과 돌직구 범죄심리학자의 콤비아닌 듯 한 삐극덕 캐미스트리’, 그리고 조이의 과거사건과 함께 트라우마를 가진 캐릭터가 기억의 회상과 현실의 사건 사이를 오가며 성장하고 발전해 나아가는 모습이 인상 깊다. 문체나 진행 또한 군더더기 없어 지루할 틈이 없고, 또한 앞서 말한 유머와 위트부분은 읽다보면 영원한 불멸의 사랑을 꿈꾸는 엽기적인 살인마의 섬뜩한 로맨스에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고치는 소시오패스 고양이 프레클과 고집부통 할아버지 마빈, 두 주인공인 들이박기식의 요원과 뱉어내고 보는 범죄심리학자캐릭터들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언행이 있으니 간간히 숨쉴 구간 또한 마련되어 있다. 어마어마하게 창의적이란 작품이기 보다는 대중적이지만 약간은 신선한 캐릭터로 양념을 조금친 듯한 가독성있는 스릴러작품을 읽고 싶다면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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