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위험을 보지 못할까 - 인간의 마음과 조직의 생리를 꿰뚫는 안전 전략가로 거듭나기
진현진 지음 / 미디어스트리트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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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지금 내가 근무하는 현장은 여러 의미로 크지만 작은 현장이다. 법적으로 선임 대상의 현장은 아니지만 자격을 갖춘 안전담당자가 있어야 한다는 발주처의 요청이 있었다. 공사기간은 짧은 기간이지만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어 지원하여 근무하고 있다. 처음에는 마음을 느슨하게 풀어볼까 싶어서 선택한 것도 사실이다. 몇 년 간 선임 안전관리자로 있으면서 배운 것도 당연히 많지만 이곳에서는 그와 별개로 또 다른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이 서평을 쓰는 오늘은 상대적으로 고요한 날이었다. 고요하다는 것은 크게 바쁜 일 없고 새로운 일 없이 평소와 같은 작업을 하는 날을 말한다. 하지만 이런 날은 시야가 더 넓고 깊어져야 한다. 모순되게도 긴장감이 고조될 땐 모든 것에 촉각을 곤두세우기 때문에 위험으로부터 즉각적인 대처가 가능하다면, 긴장감이 완화될 땐 위험을 마주하고도 대응에 멈칫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드나듦이 있었다는 것이다. 발주처의 총장님이 왔다 가셨고, 뒤이어 재해예방기술지도 담당자가 방문했다. 대체로 현장은 정리정돈이 잘 되어있었지만 굴착기가 지나간 구간에 살수작업을 해두었다. 발주처에서 계약한 재해예방기술지도 담당자는 이 현장은 무결점이라는 말을 내뱉었다. 나는 어떠한 점검을 받을 때 내가 보지 못한 결점을, 위험을 찾아주기를 항상 바라왔다. 현장에서 완전히 없앤 것이 아니라 교묘하게 숨겨둔 위험을 누구도 아닌 내가 알고 있었고 타인의 눈을 통해 나의 취약점이 드러나기를 소망했다. 그 외에 내가 몰랐고 간과해서 놓쳐버린 위험을 마주하면서 나의 오만으로부터 벗어나 한계를 느끼면서 성장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타인에게서 듣는 무결점이라는 단어가 자랑은 아니었다. 나는 가늘게 숨을 고른다.


직업이 직업이다보니 안전과 위험에 대해 자주 생각하며 산다. 이번에 읽은 책은 <왜 위험을 보지 못할까>는 안전이라는 직무를 직접적으로 가진 내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안겨주었다. 저자의 취지대로 이해를 올바르게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취할 건 취하고 버릴 건 버리는 식의 책 읽기를 선택했다.




책에서는 사고를 일으키는 심리적 요인으로 다섯 가지를 말하고 있다.

착각 : 눈 앞의 위험을 지워버리는

군중 : 개인을 눈먼 추종자로 만드는

마음 :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결정하는

성과 : 실적 뒤에 숨은 위험

조직 : 개인을 지배하는 시스템의 힘



저자는 이 다섯 가지 요인을 쉽게 풀어내며 구체적인 실험 과정과 결과를 넣어 이해를 돕고 있다. 덕분에 안전을 잘 모르는 일반인도 흥미롭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다만 책을 읽으며 내가 근무했고 근무하고 있는 현장과 오버랩을 하다보니 접점이 없는 곳도 있어서 아쉬웠으나 현장이 다 똑같을 수는 없으니까 어쩔 수 없는 부분이고. 책을 읽으며 몰랐던 사실들, 알면서도 간과했던 사실들을 마주할 수 있어서 굉장히 유익한 시간이었다. 특히나 사고가 없어서 상을 주는 게 아니라 위험을 많이 찾아내서 상을 주는 구조로 바뀌어야한다.는 말은 나 역시도 무척 공감한다. ‘사고가 없다’는 말은 표면적으로는 감탄사를 내비칠 수 있는 말이겠으나, 그 속에 숨겨진 아차사고를 우리는 알아야만 한다. 위험을 발견하고 드러내어 시정조치하는 유결점의 안전이 우리를 살릴 수 있다.




책에 쓰인 그대로 “나 말고도 본 사람이 저렇게 많은데 누군가 조치하겠지.” “다들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는걸 보니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닌가 보다.”식의 대응을 많이 보는데, 근로자들은 대체로 이건 내가 할 일이 아니라 관리자가 해야하는 일로 치부하기 때문이다. 근로자 스스로 조치를 해준다면 무척이나 감사한 부분이지만 개구부 위에 합판이나 라바콘을 놓는 아주 간단한 것들이 아니면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일도 있기 때문에 본연의 일에 충실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혹은 그걸 왜 니가 하냐 라는 등 작업팀장들한테 꾸지람을 듣는 일도 분명 있다. 그런 상황에서 근로자 스스로 안전을 책임지게 만드는 것 자체를 현실적으로 기대하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TBM 시 관리자가 현장을 돌아봐도 실질적으로 일하는 반장님들보다 시야가 좁을 수 있기 때문에 작업을 하시다가 불편하거나 위험한 부분이 있으면 관리자에게 전달하면 즉시 조치하겠다고 말한다.




22. 우리는 안전을 위해 안전모를 써야 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실제 작업 현장에서 습기와 더위가 몰려오면 슬그머니 안전모의 턱끈을 푼다. 이것은 근로자가 나태해서도, 안전의식이 부족해서도 아니다. 익숙한 작업에서는 위험신호를 배경 소음으로 처리해 버리는 ‘주의력 결핍’과 ‘습관’ 때문이다. 이러한 불완전함은 교정해야 할 ‘오류’가 아니라, 우리가 안고 가야 할 인간의 본질적인 특성이다.

그렇다고 불완전하다고, 인간의 본성 때문이라고 그냥 넘겨서는 안 된다. 그것은 안전을 관리하고 책임져야 하는 리더 또는 관리자로서 방임이자 직무유기이다. 우리가 이 불완전함을 집요하게 파고들어야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현장에서 직접 근로자를 관리하다보면 그들이 이전에 어디에서 일을 했었는지가 보인다. 실제로 대기업 현장 경험이 있는 근로자들은 안전모를 벗으면 쓰리아웃, 투아웃, 원아웃까지 당하는 제재를 경험했기에 근무 중에 안전모를 벗으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다. 이제까지의 현장 경험과 데이터에 비추어볼 때, 안전모 착용에 관한 건은 근로자가 처했던 환경과 그로 인해 축적된 안전의식 차이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나 역시 현장에서 안전모 턱끈 미착용 정도는 계도에서 끝내기는 하지만, 아예 안전모를 쓰고 다니지 않으면 근로자, 관리자, 발주처를 막론하고 즉시 퇴출을 강행하고 있다. 신규채용교육을 할 때에도 본인이 권리를 내세우려면 의무를 다해야한다고 못박으며, 현장 내의 규칙을 지키지 않을 시에는 팀 전체를 대상으로 특별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누군가에 의해 하던 일을 중단하고 교육장으로 와야하는 것은 불편하지만, 서로의 안전을 지켜주는 일에 해당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그룹에서 실시하는 TBM 활동이나 안전점검 시 안전리더가 직접 위험요소를 지적하고, 작업을 중지시킬 수 있는 실질적인 ‘작업중지권’을 부여하며, 그 권한을 그들이 주도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다.라고 제안하고 있다.

취지는 동의한다. 그러나 현재 법 체계와 건설 현장의 권한 구조를 고려하면 현실적인 실행이 쉽지만은 않다. 현재 시공사 소속인 안전관리자는 사업주를 보좌하고 관리감독자에게 지도·조언하는 참모 역할로 실질적인 작업중지권이 없다. 위험을 발견하고 작업을 중지하도록 지도, 조언, 권고하는 역할일 뿐이다. 하지만 나는 현장에서 작업을 중지시키고 있다. 사규와 안전보건관리규정을 통해 안전관리자의 작업중지명령권을 부여받았기 때문이다. 회사 대표나 현장소장인 안전보건관리책임자의 권한을 위임받아 실무자로서 작업을 제지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중소규모의 현장에서는 여전히 안전관리자가 작업중지를 시켰을 때 관리감독자나 현장소장과의 충돌을 여전히 피할 수 없는 경우를 많이 봤다. 나 또한 많이 겪었다. 그렇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안전관리자에게도 부여되지 않는 작업중지권을 작업팀장에게 줄 수 있는 현장이 얼마나 될까 생각해보면 실질적인 해결방안으로 검토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오히려 다른 대안으로 제시된 RTBM은 Reverse Tool Box Meeting의 줄임말로 관리자가 일방적으로 실시하는 TBM에서 벗어나 매일 한 명의 작업자를 ‘오늘의 안전관찰자’로 지정하고 그가 현장에서 발견한 ‘평소와 다른 한 가지’를 발표하게 하는 것이 좀 더 현실성 있다. 하지만 TBM 역시 현장마다 다른데 공종마다 별도로 하는 곳, 소규모로 하는 곳, TBM을 아예 시행하지 않고 시늉만 하는 곳도 여전히 많다. 다행히 내가 있는 현장은 오전/오후 TBM을 진행하고 있어서 접근하기가 수월해서 오후 TBM 시 현장에서 가장 불안해보이는 부분에 대해 넌지시 얘기를 꺼내보았다. 하지만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위험에 대해 본인이 직접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3일차 물어보았을 때에야 대답하는 사람이 한둘 생겼다. 관리자가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TBM과 근로자가 참여하여 답변을 이끌어내어 진행하는 TBM은 확연히 달랐다.



109.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산업현장에서 가장 무서운 경고의 메시지이다. 익숙함에 속아 위험을 ‘편안함’으로 오해하는 순간, 사고는 이미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마지막으로 책에도 쓰인 ‘안전불감증’에 대해 짚고 넘어가고 싶다. 최초에 누가 안전불감증이라는 국적불명의 단어를 사용해서 사회적 유행어로 고착시켰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모순된 말이다. 안전불감증은 뜻을 그대로 풀이하면 안전한 상태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인데 우리가 꼬집어야하는 현상은 위험한 상태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안전을 말하는 사람이라면 단어 하나, 용어 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해야한다. 안전불감증에 대해 여러 해석을 보었는데 왜 굳이 ‘해석해야하는 단어’를 사용해야하는지 의아하다. 위험에 둔감한 상태를 꼬집는 단어는 위험불감증이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근무하는 건설현장에서는 안전불감증이 아닌 ‘위험불감증’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내게 <왜 위험을 보지 못할까>는 안전관리자로서 현장의 한계를 마주하고 근로자의 심리를 이해하기 좋은 책이었다. 특히나 기업의 대표나 관리자들이 이 책을 많이 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오늘도안전’이라는 말이 앵무새처럼 떠들고 흩어지는 말이 아니라 마음속에 깊이 아로새겨져 하루를 지탱해줄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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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의학이 쉬워지는 근육 구조 대백과 - 만화로 재미있게 배우는 해부학
사카이 타쓰오 지음, 도쿠나가 아키코 외 그림, 박현아 옮김 / 현익출판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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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건 처음엔 순전히 아빠 때문이었다. 아빠가 한 발자국씩 걸을 때마다 여전히 체간의 균형이 제대로 잡히지 않는 걸 보면서 이제는 재활치료사만 믿을 게 아니라 보호자로서 해야하는 역할의 반경을 넓히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어느 근육을 좀 더 강화시켜야 아빠의 체간이 흔들리지 않는지에 대해 집중을 하고 책을 훑었다. 처음엔 아빠의 체간 부분에 집중하면서 읽었지만 아빠는 현재 한 부분만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봐야겠다 싶어서 천천히 책장을 넘기다가 팔 부분에서 또 멈추게 되었다. 아빠의 오른손가락의 마디가 조금씩 굳어서 굽히는 게 잘 되지 않아서 내가 갈 때마다 핸드크림을 발라주며 풀어주고 있었는데, 책을 읽으며 아차 싶었다. 원회내근, 방형회내근, 회외근, 장장근, 요측수근굴근, 천지굴근, 심지굴근 등 손가락마다 근육이 유기적으로 이어진다는 사실 자체를 완전히 잊고 있던 것! 그걸 다시 일깨워준 이 책이 얼마나 고맙던지-


그다음에 내가 눈여겨본 것은 당연히 승모근. 나는 승모근이 없는 연체동물로 태어나고 싶다는 말을 정말 일 년에 몇 번이나 달고 살 정도로 여전히 목과 어깨의 통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데 항상 목과 어깨 그 사이가 아픈데 정확히 어느 지점인지 모르고 항상 유튜브에 목 어깨 폼롤러, 목 풀기, 어깨 운동 등의 검색만 하고 있으니 내가 정확히 불편한 곳을 해소하지는 못해서 못내 아쉬운 마음이 들었었는데, 책을 펼쳐서 근육의 이름을 찾아다가 견갑거근 폼롤러, 소능형근 풀기 등 검색을 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조금만 불편해도 어? 여기? 하며 책을 먼저 찾아보는 내가 웃기기도 한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이 책을 다시 펼쳤다. 덮은 지 3일 만이었다. 최근에 발날 통증이 생겼는데, 도대체 이 통증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통풍인가?부터 시작해서 아니면 족저근막염인가?... 별의별 걱정을 다 했는데, 병원을 가서 정확한 진단은 받아봐야겠지만 비골근건염인 것 같다는 게 결론이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책을 펼쳐서 그 부분을 보니 내 통증의 부위와 꼭 맞았네. 세상에, 이런 곳에도 근육이 이어져있다니.


책의 첫 부분은 근육과 뼈, 신경, 관절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기본적인 지식을 풀어내었다. 사실 근육의 원리를 한눈에 쉽고 재미있게 풀어놨다고 해서 그래도 인체해부학인데 얼마나 쉽게 그렸겠어-하고 생각했는데, 일단 만화로 구성되어 있어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고, 근육을 표현한 부분은 세밀하게 그려놔서 내가 어디가 불편한지에 대해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조만간 봐야하는 시험인 인간공학기사를 공부하는 데 있어서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벌써부터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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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를 전하며 - 헤르만 헤세 x 빈센트 반 고흐 세계문화전집 1
헤르만 헤세.빈센트 반 고흐 지음, 홍선기 옮김 / 모티브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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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7년 헤르만 헤세 탄생 150주년 기념으로 출간된 <안부를 전하며>는 헤르만 헤세와 빈센트 반 고흐, 문학가와 예술가를 평행선에 두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 방식의 책이었다. 헤르만 헤세와 빈센트 반 고흐는 부분적으로 같은 시대를 살았던 인물이기에 참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이는 내가 두 거장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었다. 신학자인 아버지, 외면하는 이웃, 정신질환, 자살 시도, 내면에 대한 탐구, 예술을 통한 자기 구원은 데칼코마니처럼 닮았다. 하지만 그 둘의 다른 점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안부를 묻는 방식.



409. 반 고흐가 ‘악수를 보내며’라고 쓸 때, 그 직전 문장은 거의 대부분 돈 이야기였습니다. ‘물감을 보내줘’, ‘한 푼도 없어’, ‘빨리 편지 써줘.’ 그리고 마지막 줄에서 갑자기 악수를 내밉니다. 이것은 인사가 아닙니다. 줄(rope)이었습니다. 끊어지면 떨어지는 생명줄. 테오가 답장을 멈추면 반 고흐는 그림도, 생활도, 존재도 유지할 수 없었습니다. ‘악수를 보내며’는 ‘나를 놓지 마’라는 신호이자 언젠가 이 빚을 꼭 갚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헤세의 4만 4천 통도 다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독자의 편지에 일일이 답장하고, 엽서에 수채화를 그려 보내고, 떨리는 손으로 서명하는 것. 다정함만이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세상이 헤세를 매국노라 부르고, 아내가 병들고, 아이들이 떠났을 때, 그가 세상과 연결될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편지였습니다. 4만 4천 통의 답장은 4만 4천 번의 ‘생존 확인’이었습니다. 내가 아직 여기 있다는.


두 거장의 안부를 묻는 방식은 서신으로 이루어졌다는 점만 같을 뿐, 안부를 묻는 대상은 너무도 달랐다. 헤세는 독자를 향해, 반 고흐는 테오를 향해 안부를 물었다. 헤세는 내가 아직 여기에 있다는 ‘생존 확인’이었다면, 반 고흐는 ‘나를 놓지 마’라는 신호였던 것이다. 따라서 안부가 주는 행위 역시 명확하게 다르다. 헤세에게 안부는 들이쉬고 내쉬는 ‘숨’으로, 반 고흐에게 안부는 갚을 수 없는 ‘빚’으로.



책에는 헤세의 글과 그림, 반 고흐의 글과 그림이 교차되면서 실려있다. 이건 정말 특별하고도 신선한 만남에 손님으로 초대된 기분이었다. 특히나 헤세가 막내아들 마르틴(브뤼디)에게 쓴 편지를 읽으며 아들에게 얼마나 다정하고 애틋해서 그곳에 마음을 뉘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헤세가 동봉한 그림 역시 동글동글하면서도 귀여워서 자주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헤세가 노환으로 세상을 뜬 지 6년 만에 아들 마르틴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문장을 보고 마음이 철렁였다. 헤세는 여러 사람들과 안부를 묻고 답하며 자신을 구원했는데, 헤세가 없는 마르틴은 구원받지 못했구나 싶어서 마음이 쓸쓸해졌다.


반 고흐의 작품은 볼 때마다 친근감이 있으면서도 웅장하다고 느낀다. 이렇듯 서로 다른 감각이 어울릴 수 있다니 경이롭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내가 반 고흐의 그림을 더 이상 아름답지만은 않게 보게 된 건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 때문이었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는 돈이 필요했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희생을 강요하는 고흐의 이기성은 여전히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310. 지금 그림이 팔리지 않는 건, 네가 그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게 해. 하지만 네가 내가 아무 수익도 내지 못한다는 사실에 너무 곤란해하지만 않는다면, 사실 나에게는 상관없는 일이기도 하단다. 그래서 나는 반 고흐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 작품보다 그 뒤에 서있던 테오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여전히.



나는 헤르만 헤세의 작품으로는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싯다르타>를 읽었다. 가장 큰 축이라는 건 몰랐지만 이 세 권의 책을 읽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책에 실린 <헤르만 라우셔>에 그 세 권의 책이 아주 진득하게 녹아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직 읽지 못한 <황야의 이리>, <유리알 유희>, <밤의 사색>도 장바구니에 꾹꾹 눌러 담았다. 또 만나기를 기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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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방 시간과공간사 클래식 2
버지니아 울프 지음, 손현주 옮김 / 시간과공간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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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 어떻게 완성될 수 있을까.




난 항상 ‘내 방’을 그리워했다. 내가 어릴 때는 거실을 제외한 방이 두 개뿐이어서 방에 2층 침대를 두고 동생과 함께 써야 했고, 그 이후에는 우리 집에서 함께 살게 된 스무 살의 친척 언니와 함께 써야만 했다. 그리고 비로소 고등학생 때 내 방이 생겼다. 어쩌면 중학생 때일지도 모르겠고. 그때의 나이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때 느꼈던 감정은 너무나도 확실했다. 아늑하다는 느낌. 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 내 방은 생겼지만, 좀 더 근사한 내 방이었으면. 하고 바라게 된 것이다. 나는 그 방에서 결혼 전까지 기거했다.




기혼이 된 지금에도 내 방이 따로 있진 않다. 방은 총 3개. 부부 침실, TV방, 옷방. TV를 거실로 빼내는 대신 방으로 들였고 대신 책장을 거실로 내놓았다. 그러다보니 거실은 온통 내 공간이 되었다. 그러니까 내게 필요한 것은, 내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온전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책을 읽고 영상을 보고 일기를 쓰는 공간. 딱 내가 바라던 공간이었다. 프라이빗하게 방을 가지게 되었다면 더 좋았을까? 그런 방을 가져본 적이 없어서 어떤 느낌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언젠가 내 방을 가질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148. 그녀에게 자기만의 방과 매년 500파운드의 소득을 주고, 그녀가 마음껏 생각한 바를 말하게 하며, 지금 써넣은 것들의 절반쯤은 덜어내게 한다면, 머지 않아 그녀는 더 훌륭한 책을 써낼 거예요.


울프는 ‘여성과 소설’을 주제로 한 강연을 준비하며 적은 글을 책으로 펴냈다. 과거의 여성들은 자유가 제한되었다. 경제적인 독립은 꿈도 꾸지 못했고 글을 쓴다고 하더라도 그 사실조차 숨겨야만 했던 시절이었다. 그렇다면 역으로 지금은 자유로운가에 대해 물어야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조금 다르다. 스스로 제한된 자유의 빗장을 풀어내었는가를 물어야한다. 자기만의 방은 말 그대로 혼자서 사유할 수 있는 방 혹은 공간을 얘기하겠지만 다른 말로는 시간을 말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그러니까, 누구에게나 공평한 그 시간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물어야한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과거에 비해서 현재는 여성의 삶의 질이 향상되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결혼과 출산, 육아로 인한 단절을 제외할 수는 없지만 그것 또한 모든 여성이 그런 것은 아니니까.




이번에 읽은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단순하게 페미니즘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만일 그렇게 치부된다면 너무 억울할 것만 같다. 책에서는 자기만의 방을 가질 수 없고 경제적 독립이 어려운 여성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결국은 여성뿐만 아니라 글을 쓰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순되는 것은 1928년에 연 500파운드라면 당시 7000만 원 전후라고 하는데, 그건 내가 한 달 꼬박 일을 해서 받는 급여와 맞먹는다. 그런데 이 금액을 일하지 않고도 꼬박 들어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한다는걸까. 이 부분은 실제로 버지니아 울프가 어린 나이에 고모인 캐럴라인 에밀리아 스티븐으로부터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았기에 본인과 다를 수 있는 타인의 처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본인은 어쩌다보니 출발선 앞에 서있게 되었지만, 누군가에게는 영영 주어지지 않는 출발선일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서.






177. 우리가 한 세기쯤 더 살아간다면ㅡ개별적인 존재로서 영위하는 작은 삶이 아니라, 진정한 삶인 ‘공통의 삶’을 말하는 거예요ㅡ그리고 우리 각자가 일 년에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을 갖게 된다면, 우리가 자유를 습관화하고 생각하는 그대로를 써 내려갈 용기를 갖게 된다면, 우리가 공동 거실에서 조금은 탈출하여 인간의 서로의 관계 속에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실재’와의 관계 속에서 바라보게 된다면, 그리하여 하늘과 나무 혹은 그 무엇이든 사물 자체를 대면하게 된다면, 그 누구도 우리 시야를 가로막아서는 안 되기에 밀턴의 도깨비 너머를 바라게 된다면, 의지할 팔 따위는 없으며 우리가 홀로 걷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 관계는 오직 남성과 여성의 세계만이 아니라 ‘실재의 세계’와 맺어져 있다는 사실을 직시한다면, 그때 비로소 기회는 찾아올 테고, 셰익스피어의 누이였던 그 죽은 시인은 자신이 수없이 내려놓았던 그 육신을 다시 입게 될 것입니다.


어쨌든 우리가 이 책에서 얻어내야하는 것은, 나를 위한 시간을 어떤 공간에서 소비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스스로를 좀 더 알기 위해서는 관찰해야하고 사유해야하고 써야한다. 마지막으로 경제적인 자유에 대해 덧붙이자면 울프는 기회를 부여받았지만, 나는 기회를 일궈내고 있다. 이게 울프가 그토록 궁금해하던 100년 후의 한 여성의 모습인데, 날 보고 그녀는 뭐라고 말하고 싶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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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 식물학 - 이름은 알지만 사연은 몰랐던 105가지 꽃과 풀의 속사정
이나가키 히데히로 지음, 김수경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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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제가 날 시기가 되면 어김없이 피고 지는 꽃들이 영특하고 또 기특하다. 분명히 식물보호기사 실기 공부를 할 때에 다 알았던 것 같은 들꽃들인데, 뒤돌아서니 또 까먹고 까먹고 까먹고. 그래서 곁에 두고 이름을 잊지 않고 싶어 <방구석 식물학>을 읽어보게 되었다. 이름도 사연도 제각각인 105개의 식물들은 저자의 손을 거쳐 학명, 과, 개화기, 꽃말, 사연까지 간단하게 쓰여있고 식물의 생김새도 예쁘게 그려져있어서 아, 이 꽃! 하며 반가움을 나타낼 수 있다.



가장 첫 번째 페이지에 소개하고 있는 식물은 이름도 남사스러운 ‘개불알풀’이다. 비슷한 이름으로는 며느리밑씻개도 있다. 나는 이런 이름들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나만 그런 것이 아닐 것이다. 일제강점기 시대에 일본인 식물학자가 지어놓은 이름인데 한국어로 직역하면서 이렇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처음부터 이름을 너무 멋대로 지어두었다는 생각이 든다. 책에서는 소개되지 않았지만 개불알풀/개불알꽃은 최근에 봄까치꽃으로 불리고 있다. 이런 부분까지 세심하게 신경 쓰면 좋았을 텐데, 일본 작가가 쓴 책이라 반영되지 않은 것일까 아쉽기도 했다.


개불알풀을 얘기하다보니 개여뀌를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꽃이나 열매에 ‘개’가 붙으면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에 걸맞게 아무런 맛이 없는 개여뀌와 별개로 참여뀌는 톡 쏘는 매운맛으로 생선회의 곁들임이나 생선구이 고명으로 귀하게 쓰이니 개여뀌 입장에선 얼마나 속상할까 싶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여뀌는 쓸모없다는 이름을 달고도 당신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꽃말을 가지고 있다니 괜스레 마음이 아리다.



그리고 하루밖에 피지 않는다는 달개비라고도 불리는 닭의장풀. 정확히는 오전 중에 피었다가 오후가 되면 시들어버려 아침 이슬처럼 덧없는 것의 상징이 되었다고 한다. 하루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자신의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게 전부인 하루치 분량의 꽃을 이어가며 피워내는 식물이라니, 어떻게 이런 꽃이 있을까 싶었다.



여러 꽃이 있었지만 그중에 하나, 내가 볼 때마다 말하는, “넌 어떻게 이름도 코스모스니-”라고 말하는 코스모스. 꽃잎이 질서 있게 고르게 배열된 아름다운 모습에서 우주 또는 조화라는 뜻의 코스모스라고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늘 궁금했으면서도 굳이 찾아보지는 못했는데 이렇게 알게 될 줄은  몰라서 더 반가운 마음이 든다.

그 외에도 책에서 짤막하게 알게 된 식물들에 대해 애틋한 마음이 드는 것을 감출 수 없었다. 남성의 꽃점이라는 수레국화, 소중한 것을 잊지 말라는 물망초, 여러 이름을 자랑하는 라일락, 승리를 알리는 은방울꽃, 사랑에 상처받은 청년의 넋이 깃든 라넌큘러스, 꽃과 사람이 같은 이름을 나눠갖는 마거릿, 난전과 발음이 같아서 액막이 식물로 사랑받은 남천, 나르키소스의 이름을 딴 식물인 수선화, 멸종한 초식공룡의 입맛에 맞춰 발달했다는 주장이 있는 은행, 배신당한 여성이 남성을 저주하는 나무로 여겼던 벚나무 등 여러 사연들을 보고 난 뒤에는 길을 걷다가도 “그래, 너는 그런 식물이지.” 하고 알은척을 하고 싶어진다. 내가 널 알아보았다고-


이따금 설명이 좀 더 있었으면 하는 식물들도 있어서 아쉽기는 했지만, 더 궁금한 것들은 하나씩 찾아보기로 하고 기분좋게 책을 덮었다. 햇빛이 잘 드는 나른한 오후에, 아무 페이지나 펼쳐도 부담없이 읽을 수 있던 책이라 가볍게 읽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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