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았더라면
티에리 코엔 지음, 김민정 옮김 / 밝은세상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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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레미는 빅토리아에게 사랑을 거부당하자 2001년 5월 8일 스무살생일에 약,위스키,마리화나로 자살을 범행한다.

 

그리고 제레미는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곳에서 눈을 떴는데 눈 앞에 빅토리아가 있었다.

그가 모르는 사이 빅토리아와 연인이 되어있었고, 시간은 1년 후 5월 8일이 된다.

그는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않자 빅토리아에게 사실대로 말하고 병원에 가지만,

의사들은 기억상실인 것 같다며 얼렁뚱땅 넘어간다.

어느덧 해가 지고 깜깜한 어둠이 내려앉았을 때 제레미는 갑자기 팔 다리가 말을 듣지 않고 숨도 쉬지 못할 상황까지 이르게 되고

그 순간 한 노인이 나타나 카디시(죽은 자들을 위한, 더불어 삶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기도문)를 읊기 시작했고,

제레미는 정신을 잃었다.

 

그 다음 제레미가 눈을 떴을 땐 옆에 왠 아기가 누워있었고 달력을 보니 2년이 흘러가 있었고 날짜는 역시 그의 생일인 5월 8일.

 

그렇게 그는 몇시간을 자고 일어난거같지만 몇년이 흘러 있는 이 경험을 44년동안 무려 9번이나 하게 된다.

 

그러는 동안 제 2의 제레미는 빅토리아와 아이들에게 손찌검을 하고 온갖 욕을 해댔으며 외박도 자주 하고 바람도 피는 둥

자신도 모르는 못된 제레미가 되어있었고 결국은 빅토리아와 아이들과 부모님에게 외면당하는 신세가 된다.

 

그걸 알고 난 제레미는 자신을 정신병원에 넣으라고 비디오카메라도 찍어놓고 하지만 정신을 잃었을 때 제 2의 제레미는

자신은 그런적이 없다며 발뺌을 하고 착한 척 원래 제레미인척 해서 정신병원을 나와서 다시 더 끔찍한 일들을 벌이게 된다.

 

그 만행을 모두 안 제레미는 자신의 가족을 자신으로부터 격리시키기 위해 자신이 감옥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제레미의 삶 마지막인 2055년 5월 8일로 치닫았을 땐 모두와 평화적인 모습을 보이게 된다.

빅토리아와 그리고 제 2의 제레미의 절친한 친구였던 피에르.

 

그는 고작 8일을 깨어있었는데 시간은 벌써 일흔살이 넘었다.



 
그리고 마지막 랍비의 말 한마디.

"형제님은 2001년 5월 8일에 죽었습니다. 또한 스스로 저지른 잘못을 깨닫는 그 하루가 끝날 때에도 죽었지요."

아마 모든 독자들이 가장 기다려왔던 말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보며 시간이라는 단어를 통해 기욤뮈소의 책이 떠올랐다.

그래서 내가 이 책을 놓지 못하는가보다.

 



이 책을 읽고 자살결심을 묻어둔 독자가 있었다고 한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자신도 이런 상황이 될까봐 얼마나 두려웠을까.

 

우리네 인간의 인생은 고작 7,80년밖에 되지않지만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삶의 모습이 바뀐다.

최선의 선택과 최악의 선택.

자신의 삶을 조금이라도 바꿔보려고 전진하려고 이것저것 재면서 최선의 선택을 한다는 것과

살려고 하지않는 것. 자신을 아예 내던져버리는 것. 그것을 제레미가 한 것이다.

 

이 책은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고 있고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자살에 대해

하나의 경종을 울리게 해줄 티에리 코엔식 메시지이다.

사람들이 마음을 조금만 바꿔먹으면 될텐데..

마음 하나만 바꾼다면 세상에 모든 빛이 보일텐데 왜 정작 그걸 보지 못하고

잠시만의 아픔을 내던지려는 것인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읽기 쉬운 문체.

그러나 내용은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사랑에 좌절해 죽을 결심이라면, 살아남아서 죽도록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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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어디 가?
장 루이 푸르니에 지음, 강미란 옮김 / 열림원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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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가 장애아라는 사실을 곧바로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일종의 서프라이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장애아는 하늘이 주신 선물이야"

웃으려고 하는 소리가 아니다. 그리고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장애아를 가진 부모가 아니다.

이런 하늘의 선물을 받으면 이렇게 말하고 싶어진다.

"아이구! 이러실 필요까지 없었는데..."
 

 

 

 

 

 

 

그는 책에선 웃고 있지만 슬픔을 두 눈에 가득 담고 웃는 사람. 그게 장 루이 푸르니에다

그의 책을 읽으며 그의 신랄하고도 직설적인 문체가 귀에 들리는 듯 하다.

그는 아이들을 머리속에 지푸라기만 들었다고 표현했다.

그래서 아이들에 대한 애정까지 없을거라고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시 읽은 책의 첫 페이지에는

사랑하는 아들 마튜, 사랑하는 아들 토마에게

내가 왜 이걸 이제야 봤지 라는 생각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자기아들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세상에 어디있단 말인가... 그래서 단순히 지나쳐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작가는 멀리 공을 찾으러 간 큰 아들 마튜와 정신병원에 있을 작은 아들 토마에게 읽을 수도 없는 편지를 쓴 셈이다.

작가는 아들들에 대한 애정을 똥강아지라던가 나의 작은 새 두마리라던가 요정이라던가 ET라고 표현했다.

장애아인 아들들을 놀리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에겐 작가가 아들들을 애틋하게 사랑하고 있구나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 단어들이다.

 

 

 

 

 

 

 

아빠 어디 가?

고속도로를 타러 간단다. 역방향으로 말이야.

알라스카로 가지. 가서 백곰을 쓰다듬어주자꾸나. 그리고 백곰한테 잡아먹히는 거야.

버섯을 따러 간단다. 독버섯을 따서, 그것으로 맛있는 오믈렛을 해먹자꾸나.

수영장에 가자. 가서 제일 높은 다이빙대에서 뛰어내리자. 물 한방울 없는 풀장으로 말이야.

몽셍미셸에 가지. 가서 움직이는 모래 위를 걸어다니자꾸나. 그러다 그 모래속에 둘 다 빠져 지옥으로 떨어지는 거야.

 

 

 

 

 

큰 아들 마튜는 밤마다 자동차소리를 내고, 작은 아들 토마는 아빠 어디가? 라고 계속 묻는다.

대답을 해주면 다시 묻고 해주면 또 다시 묻고···

아마 나같으면 짜증을 냈을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다르다. 정상적인 아이가 아니라 장애아다.

나같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책을 읽는데 장 루이 푸르니에는 웃지못할 유머로 승화시켰다.

마치 장애아인 아들을 놀리기라도 하듯이..

난 위 글을 읽을때 이 글에서 작가의 현실도피가 보였다.

안타까움에 치가 떨리고 피가 끓었다.

 

 

 

 

 

 

 

 

만일 너희들이 남들과 같았다면-

 

만일 너희들이 남들과 같았다면, 나는 아마 너희들과 함께 미술관에 갔을거야.

우리는 함께 램브란트, 모네, 터너의 작품을 감상하겠지. 그리고 또 다시 램브란트.....

 

만일 너희들이 남들과 같았다면, 나는 아마 너희들에게 클래식 음반을 선사했겠지.

우리는 우선 모차르트의 음악을 감상할거야. 그리고 베토벤, 그리고 바흐, 그리고 도 다시 모차르트.....

 

만일 너희들이 남들과 같았다면, 나는 아마 너희들에게 수 많은 책을 선사했겠지.

프레베르, 마르 셀 에메, 크노, 이오네스코, 그리고 또다시 프레베르.....

 

만일 너희들이 남들과 같았다면, 나는 너희를 데리고 영화관에 갔을거야.

그리고 함께 오래된 영화를 보는 거야. 채플린, 아인슈타인, 히치콕, 브뉴엘, 그리고 또 다시 채플린.....

 

만일 너희들이 남들과 같았다면, 나는 너희와 함께 고급 레스토랑에 갔을거야.
우리는 함께 샹볼-뮈지니를 마셨겠지. 그리고 또 다시 샹볼-뮈지니......
 
만일 너희들이 남들과 같았다면, 나는 너희와 함께 테니스를 치고, 농구를 하고 또 배구 경기를 했을 거야.
 
만일 너희들이 남들과 같았다면, 나는 너희와 함께 고딕 성당의 종탑에 올라갔을거야.
그리고 우리는 함께 조감을 느껴봤겠지.
 
만일 너희들이 남들과 같았다면, 나는 너희에게 유행하는 옷을 선물했을거야.
너희들이 최고로 멋져보이게 하기 위해서 말이야.
 
만일 너희들이 남들과 같았다면, 나는 너희 둘과 약혼녀들을 오픈카에 태우고 무도회로 데려갔을거야.
 
만일 너희들이 남들과 같았다면, 나는 조용히 너희에게 좋은 공연표를 건넸겠지. 그러면 너희는 그것을 약혼녀에게 선사하는거야.
 
만일 너희들이 남들과 같았다면, 우리는 함께 너희의 결혼 피로연을 즐겼겠지.
 
만일 너희들이 남들과 같았다면, 나는 손자들을 봤겠지.
 
만일 너희들이 남들과 같았다면, 나는 아마 미래를 두려워했을거야.
 
하지만 너희들이 남들과 같았다면, 너희는 남들과 다를 바가 없었을거야.
아마 학교를 땡땡이를 쳤을지도 몰라.
잘못된 길로 빠져들어 비행청소년이 되었을지 몰라.
더 큰 소음을 내기 위해 오토바이 배기관을 바꿨을지 몰라.
백수가 되었을지도 몰라.
장-미셀 장르를 좋아했을지도 모르고 말이야.
짜증나는 여편네랑 결혼했을지도 몰라.
그리고 이혼을 할지도 모르지.
장애아를 둘지 또 누가 아니?
다행이야. 이런 일을 모두 피해갈 수 있어서...
 

 

 

 

 

 

 

 

 

 

우리에게는 기쁠 수도 행복할 수도 우울할 수도 짜증날 수도 슬플 수도 화날 수도 있는

이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그들은 머리에 지푸라기밖에 든 것이 없어서 항상 남들과 격리되어 살아야한다는 사실...

솔직히 나 역시 장애인들을 보면 먼저 피하고 그들이 다가오면 멀리하게 되는게 다반사다.

이 책을 통해 내가 그동안 그들에게 무심코 했던 행동들이 표현못하는 그들이라고 해도 왜 모르겠는가

내가 그동안 했던 행동들에 대해 회의를 느끼고 자책을 느끼고 안타까워했다.

세상의 장애아들을 다른 시선으로 보기엔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이제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가야겠다는 내 생각을 바꿔준 장 루이 푸르니에 작가에게 난 정말 많이 감사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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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
미나토 카나에 지음, 김미령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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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 어떤 사람이 지은 죄에 대하여 그 대가를 치르고 속량받는 일

 

 

"공소시효가 끝나기 전에 범인을 찾아내. 아니면 내가 납득할 수 있도록 속죄를 하라고. 그렇지 않으면 난 너희들에게 복수할거야."(p96)

 

이 말은 초등학교 4학년 때 벌어진 사건에 대해 겨우3년 뒤인 중학교 1학년이던 네 명의 아이들에게 주어진 임무였다. 에미리의 죽음으로 인해 그녀의 엄마인 아사코에게 속죄할 의무가 주어졌다는 것부터가 나는 납득할 수 없었다. 게다가 대놓고 "너희는 살인자야"라니.. 이런 억지가 어디있는가 말이다. 그 아이들도 딸과 같은 아이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모진 말을 했었어야만 했는지 그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지 않았고, 생각하기도 싫었다. 자식을 잃은 엄마의 입장에선 하늘이 무너지고 세상이 다 끝날 듯한 아픔이지만 같이 놀던 친구가 죽었는데 그 아이들이라고 마냥 아무렇지 않다고만 생각한걸까. 처음 겪어본 상황에 아이들에게도 분명 충격임에 틀림이 없는데, 어떻게 저런 말을 내뱉을 수 있단 말인가. 죽음에 대한 슬픔의 무게가 엄마인 자신보다 가벼웠던 것이 죄라면 그만한 억지가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면 아사코가 원한 그 속죄라는 건 죄없는 아이들 모두 에미리를 따라 죽어야만 했던 것일까 아니면 불안에 떨며 생활조차 하지 못하는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 결국엔 정신병원신세를 지는 것인가? 아사코의 미칠듯한 슬픔을 잠재워 줄 만한 것은 범인을 찾는 일 외에는 없었을진데, 그 책임을 아이들에게 전가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기에 그들의 15년을 고스란히 빼앗아간 것이 말이나 되는 일인가. 마지막 아사코의 고백을 들으며 15년동안 그 공포와 자책에 힘겹게 싸워야했을 사에, 마키, 아키코, 유카가 너무 가엾어서 인생을 다시 돌려주고 싶음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미나토 가나에의 신간이 나왔다. 전작인 <고백>보다 좋다는 평도 있었고, 그렇지 않다는 평도 있었다. 그래서 기대를 하며 봤던게 화근이었을까? 같은 레파토리에 그저 '원래 이게 이 작가의 스타일인가'하며 빠져드는 흡입력에 훅 읽었다. 아쉬웠던 것은 아사코의 고백을 끝으로 범인이 밝혀졌을 땐 너무나도 억지스러운 결말. 미나토 가나에가 너무 우연전인 반전을 꾀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많은 실망을 했다. <고백>을 읽을 땐 책을 다 읽고서도 후유증이 와서 한동안 그 책을 놓지 못했었는데, 이번 <속죄>는 여느 추리소설과 마찬가지로 '아 이게 뭐야? 역시..' 하는 마음에 가슴 한켠에 차고 쓸쓸한 바람이 불어올 정도였다.

 

실질적인 피해자라는 이유만으로 역시 같은 사건으로 인해 상처받았을 또 다른 피해자들에 대해 자신의 분노의 외침들을 고스란히 전달해서 그들의 삶의 주인노릇을 해도 정당한건지 생각해보게 된다.

 

 

- 이것으로 약속을 지킨게 되나요? … 그때야말로 진정한 해방감을 만끽하며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 전 조금도 괴롭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 제 마음은 굉장히 편안합니다. 당신들이 오기 전, 깨끗한 공기를 당연하게 마시던 나 자신으로 가까스로 돌아온 기분이 드네요. -p60

 

 

소중한 외동딸을 잃은 건 정말 가슴 아픈 일입니다. 범인이 잡히기를 누구보다 간절히 바라는 사람은,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아주머니시겠지요. 하지만 딸을 잃은 슬픔과 범인이 잡히지 않는 데서 오는 분함, 그럼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초조한 심정을 같이 놀던 아이들에게 전가한 것은 잘못된 게 아니었을까요?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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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해피 데이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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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다 히데오. 나는 그의 책을 <공중그네>를 처음으로 접하기 시작했는데, 단편을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매우 유쾌하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공중그네>의 2편이라고 불리우는 <인더풀>도 재미있게 읽었지만 <공중그네>에 비해 약간 부실한[?] 스토리에 약간 실망을 했고, 가장 최근에 읽은 그의 작품 중<내 인생, 니가 알아?>라는 작품과 <오수다>에 차례차례 실망을 해서 그의 작품에 뻗치는 손을 잠시 내려놓고 있었다. 그래서 신작이라고 나온 <오 해피데이>도 멈칫했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익살스럽게 생긴 여자아이와 인사하고 책장을 넘기면서 역시 오쿠다 히데오의 책은 이런 맛이지. 라는 생각을 안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그의 작품은 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책에 관해 지독히도 부정적인 나의 생각을 깨주기엔 제격이었다.

 

이번 작품은 공중그네와 같이 여러 단편집에 한 주인공이 나오는 것과는 달리 각기 다른 부부들 중 남편 또는 아내가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sunny day :) 따분하고 무료한 일상 속에서 전업주부로 살아가던 노리코는 옥션에 물건을 사고 팔 수 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집 안에 필요없던 물건을 하나하나 팔기 시작하면서 결국 머릿 속엔 '다음엔 뭘 팔지..' 란 생각을 갖게 된다. 그러다 남편의 물건에까지 손을 뻗치게 되는데……

 

나는 읽고 싶은 책은 많지만 그때 당시 고르는 책마다 나와 맞지 않아 읽다가 놓기 일쑤여서 책을 찾아 삼만리하다가 북카페를 알기 시작하고 나눔게시판이라는 것을 알고 나눔을 시작했다가 '다음엔 무슨 책을 나눔하지'라는 생각으로 꽉 차있었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sunny day'를 읽을 때 노리코의 상황이 그때 당시 나와 같아서 배실배실 웃으면서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또 다른 단편으로는 '우리집에 놀러오렴' , '그레이프프루트 괴물' , '여기가 청산' , '남편과 커튼' , '아내와 현미밥'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단편은 분명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소소하지만 그렇다고 웃을 수 있는 소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오쿠다 히데오 특유의 유쾌함으로 잘 처리하고 있다. 마음이 답답함을 외쳐올 때 가벼운 마음으로 실실 웃으며 읽을 수 있는 책임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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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만나는 스무살 철학 - 혼돈과 불안의 길목을 지나는 20대를 위한 철학 카운슬링
김보일 지음 / 예담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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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이 되면 못할 게 없다고 생각했다. 항상 공부가 되던 안되던 공부만 죽어라 시키던 고등학교를 벗어나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한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너무나도 설렌 일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었던 스무 살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돌아갔고, 내 잘못된 선택들에 따른 후유증은 후회로 나를 덮쳐왔다. 난 그것을 감당해낼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때 나는 무엇에 의지했는지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그저 어떻게 해야할지를 몰라 주저앉아 펑펑 울었던 것 같다. 그런 일들이 몇번씩 반복되자 의지박약이 되면서 내 선택보다 남의 선택이 우선이었고, 남과 나와 선택이 다르다면 난 조금은 망설이다가 남의 선택을 따라가는 형식을 택했다. 그러면 잘못되더라도 내 선택이 아니었으니까 적어도 자책하진 않을 것 같다는 내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그래서 내 경험 중 한 예로 대학교 1학년 중 반년 동안은 조별활동을 해도 난 뒤로 빠져있는 형식을 취하곤 했다. 그러다가 조별활동 중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형편없는 학점을 맞은 경우가 생기면서부터 내가 아닌 그 사람들의 선택이 항상 옳다는 것은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고, 잠자코 보고만 있다가 남을 따라가서 후회할 거라면 차라리 내가 해보고서 후회하는게 낫다고 생각했다.  나와 다른 남의 생각은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들에 대해 좀 더 폭 넓게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언들이라고만 받아들이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사실 지금도 완전하게 실천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 스무 살의 그때를 생각 하며 책을 읽고 있을 때 책의 한 구절을 발견했다. 너의 삶은 너의 것이다. 그러므로 너의 삶은 너의 선택에 달렸다. 그러나 우리의 삶에는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있고 선택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선택할 수 없는 것, 그것은 운명이다. 그러나 우리는 운명 앞에서도 어떤 태도를 가질 수 있는가는 선택할 수 있다. 어떤 상황은 이미 주어진 것일지 몰라도, 그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할 것인가 하는 답은 온전히 우리들 각자의 몫이다.(p85) 이 구절을 갈팡질팡하던 그때 봤다면 조금이나마 위안을 얻고 조금이라도 더 빨리 잘되든 잘못되든 불안해하지 않고 내 선택을 온전히 믿을 수 있었을까? 하지만 그것도 아니었을 것 같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땐 나만 잘난 줄 알고 남의 말은 귓등으로도 안듣던 나였으니 말이다. 그 때의 경험들이 있기에 지금은 눈꼽만큼이라도 성장한 내가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지금의 불안과 혼돈의 중심지대에 서 있는 20대들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 있어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우리네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 인간의 선택이란 늘 불완전할 수 밖에 없다(p73) 그렇기에 그 선택이 잘못된 결과를 가져오더라도 그것을 발판으로 삼아 다음에는 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을거라고. 하지만 누구나 다 알다시피 어떤 선택이든간에 후회는 있기 마련이라 제일 중요한 건 긍정적마인드라는 것. 삶에 리플레이는 없다. 잘못 선택했다고 반품할 수도 없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는 현명한 선택이 요구되지만 현명함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73p)

 

 

어떤 책이건 간에 성공에 관해서라면 마시멜로를 예로 드는 것 같다. 아이들이 15분을 참으면 2개를 얻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못참고 먹는다는 것. 그걸 작가는 15분을 참았던 아이들이 그렇지 못한 아이들보다 학업 성적이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친구들과의 관계도 원만했다. 그들은 스트레스도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있었다. 미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성적을 비교한 결과도 보상을 오래 기다린 아이일수록 좋은 성적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오래 기다린 아이들이 평균적으로 좋은 대학에 진학했으며, 사회적으로도 성공했다. 반면 참지 못하고 일찍 벨을 누른 아이는 문제아가 되는 비율이 높았다. 또 학교다니는 기간 내내 교사들에게서 나쁜 평가를 받았다.(p202) 라고 정리하고 있다. 이 부분을 읽을 때 난 거부감이 들었다. 상대는 어린 아이이다. 비율이 그렇다는 얘기지 꼭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인데 이런 식으로 얘기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그러나 작가는 그것이 나쁘냐면서, 우리는 우리의 몸을 즐겁게 할 권리가 있다(p205)고 말한다. 그 부분만 세번은 넘게 읽은 것 같은데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저 부분을 읽을 때 작가는 오래 기다림이 미덕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뒤로 갈수록 그에 반대되는 얘기를 하니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서평들을 찾아보았는데, 그것에 관한 얘기가 하나도 없어서 내가 잘못 읽었나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철학이라는 말에 걸맞게 우리가 고등학교때 윤리시간에 배웠을 법한 익숙한 철학자들이 대거 나온다. 그래서 그런지 어려움 없이 술술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말이 나올 타이밍이 아닌데 갑자기 왜 나와?'하는 부분도 간혹 있었기에 내가 보기엔 그저 그 목차에 따라 끼워넣은 것 같다는 생각을 안할 수 없었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결말이다. 난 사실 마지막장을 읽을 때 뭔가가 더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렇게 길게 늘어뜨려놓고 결말을 그런 식으로 지어놔서 '이게 뭐야? 그래서 어쩌라는거야' 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 많은 책인 것 같다. 다음에 한번 더 읽을 기회가 있다면 지금보다 좀 더 다른 느낌이길 기대해본다.

 

 

이 책은 스무살을 겨냥한 책으로 <스무살 철학>이라고 제목이 붙었지만, 스무살에 포커싱을 맞췄다기보다 우리 인간들의 삶에 포커싱을 맞췄다고 할 수 있을 법한 책이다. 불
완전해서 청춘이지 완전해서 청춘이 아니다(p252) 지금의 삶이 완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삶이 불완전하다고 생각된다면 우리는 모두 청춘인 셈이다. 청춘인 지금, 완전함을 찾기보다는 불완전한 현재를 즐기며 살아가는 것 또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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