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미스터리 - 한국전쟁, 풀리지 않는 5대 의혹
이희진 지음 / 가람기획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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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2010년의 6월은 월드컵을 계기로 '다시 한번 대한민국'이라는 구호로 국민들이 오랜만에 하나로 똘똘 뭉치는 것을 다시 한번 경험했다. 하지만 6월의 흔적들은 여전히 한국의 곳곳을 지배하고 있다. 개중에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큰 상흔을 남긴 한국전쟁은 올해로 60주년을 맞는다. 민족상잔의 비극은 분단이라는 아픔으로 다가왔고, 지금 한국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한국이라는 하나의 나라로 인정받기에도 꺼림칙한 남한과 북한으로 여전히 자리잡고 있는 것이 세계에서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것이 한국전쟁이건만 우리는 그것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인지, 혹시 왜곡된 사실을 업데이트하지 않은 채로 머릿 속에 묵혀두고 있진 않는지 다시 한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런 우리에게 이희진 작가가 한국전쟁의 풀리지 않는 5대 의혹인 '분단 배경의 미스터리, 의문의 38선, 전쟁 개시와 의혹, 역전과 재역전의 미스터리, 비극적 유산의 이면' 으로 다가오고 있다.

 

 

 

5대 의혹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1장, 3장 뿐이었는데 기억나는 것만을 요약해보자면, 1장인 분단 배경의 미스터리에서는 분단의 근원적인 원인이라 할 수 있는 소련군의 태평양전쟁 참전 문제와 그 소련군을 끌여들여 비극적인 결과를 낳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우선 전황에 영향을 주지도 못했고, 군사력또한 빈약했던 소련의 참전 필요여부를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한국전쟁의 배경이 되었었던 1945년 일본의 패망도 함께 거론한다. 미국은 1944년 6월에 마리아나 군도를 점령하고, 같은 해 10월엔 필리핀 전투에서마저 승리를 거두었다. 필리핀의 상실로 남방으로부터 석유 등 전략자원 수송이 불가능해지면서 일본 해군 존재가 무의미해진다는 것을 느낀 일본은 전투에 연합함대 전체를 투입해버렸다. 그러나 그 함대가 필리핀 전투에서 괴멸하며 이후로는 전투 함대로서의 해군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면서 일본의 패망은 사실상 확정된다. 또 다른 의혹 중 3장에 나와있는 전쟁 개시와 의혹에는 전쟁당시 쓰였던 전차, 포, 총도 함께 엿볼 수 있었다. 그에 따른 설명들도 곁들여볼 수 있었는데, 우리는 북한에 비해 가진 무기가 얼마 없었고, 그 성능 또한 현저히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우리에게 제대로 된 무기를 제공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가설 중 하나는 국군이 잘 버텨 나가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균형을 잘 이루고 있는 내전에 미국이 개입하는 꼴이 되기때문에 미국이 개입하지 않으면 회복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야 미국의 신속한 개입도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또한 몇가지의 의문점을 제시하고 있는데, 첫번째 의혹이 비상경계령해제였다. 6월22일~23일에 '인민군 군관으로 보이는 일단의 무리가 아군 측의 지형 정찰을 하는 것 같다'라는 보고가 들어왔고, 정보 실무자들이 내일 결론은 '북괴의 전면공격이 임박한 것으로 보이며, D-Day는 이날(6월24일)이나 다음날이 될지도 모른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유일한 대책이라는 것이 '첩보대를 주요 지점에 파견해서 상황을 살피고 다음날 08:00까지 보고하라'에서 그쳤다. 하지만 전쟁은 AM 04:00. 두번째 의혹은 8사단의 행방이다. '제8사단은 충주로 이동하라'는 육군본부 명의의 전문을 수신했다고 한다. 중앙의 축선을 적의 공격에 그대로 방치해두고 40km나 서쪽으로 이동해 가라는 뜻인데, 당시 상황으로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후에 사단장에 대전 육군본부에 직접 확인해본 결과 들려온 대답은 '그런 명령을 하달한 적이 없다'뿐이었다고 한다.

 

 

 

“이렇게 미묘한 문제를 이념이나 이론의 틀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니 일정한 틀에서 벗어난 사건들은 수수께끼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수수께끼가 많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또 있다. 지금까지 한국전쟁을 다루면서 군사적인 문제를 깊이 파고든 연구는 거의 없었다. 전쟁을 다룬다고 하면서도 막상 전쟁의 필수 요소는 거의 손을 대지 않은 셈이다. …… 이 책에서 주로 군사적인 요소들을 다루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당시 주요 국가들의 실질적인 행동을 살펴보며 그동안 수수께끼로 남았던 사건들의 내막을 파헤져보자는 것이다.” 라며 말했던 저자는 본래 우리가 알고 있는 것에서 시선을 약간만 돌려 또 다른 양상들을 구축해나가는 방식을 취하기도 했는데, 가끔 그 주장들이 강하다 보니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것들에 혼란을 일게 만들기에 충분했고, 그러다가 저자의 주장을 따라가다보면 그에 따른 근거들의 상실로 이것을 믿어야 하는건지, 말아야하는 건지에 대한 괴리감을 느끼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아닌 또 다른 양상들을 보여줄 뿐, 그것들이 확실하다는 근거자가 있었더라면 저자를 좀 더 믿고 따라갈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많이 남았던 책이었다. 하지만 내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보며 내 머릿 속에 들어있는 역사는 구시대 것들이었으며 그것들이 왜곡된 것도 모르고 그것들이 옳다고 배웠구나, 얄팍한 지식은 이 책을 읽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구나, 라는 생각에 자괴감마저 들며 이런 책들을 조금 더 일찍 접해볼껄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분간은 소설보다는 인문쪽에 눈길을 돌려야겠다고 생각하며, 이 책 속에서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한번 더 읽으며 딱딱해진 머리 속에 보충 좀 해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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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수염의 아내 1
이미강 지음 / 가하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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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감정이 매우 매말라가는 것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다. 이럴 때면 로맨스 소설을 꼭 읽어줘야지, 생각하지만, 로맨스 소설을 읽을 때면 누가 묻지 않아도 얼굴이 빨개져서는 이런저런 핑계거리를 대며 '그래서 내가 로맨스 소설을 읽는거야.'라고 정당화시키기에 급급했던 것 같다. 그러니 나는 어떤 로맨스가 좋은 로맨스인지 알 길이 없다. 그러다가 눈에 띈 '푸른 수염의 아내'라는 책제목을 가진 이미강 작가의 신작. 나는 사실 이미강 작가는 처음 들어본다. 작가는 이미 '늑대의 정령'이라는 전작으로 인해 알려진 상태로 보였기 때문에 내가 아마 로맨스를 매우 좋아하는 팬이었다면, 당연히 알 수 있는 그런 작가였던 것 같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푸른 수염의 아내'라는 이 책이 이미강 작가의 첫 작품이기에 너무 기대를 하지 않고, 혹은 기대를 가득 품고, 혹은 무미건조한 상태로 그녀의 책을 집어들었다. 사실 몇달 전, 혹은 몇일 전에 읽었던 '겨울 신부'라는 책을 읽으며 미친듯이 히스테리를 부렸기에, (그래서 그 책은 서평을 쓰지도 않고 이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제발 그런 책만은 아니길 간절히 바라며 읽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기 위해 처음 집어든 것은 친구의 웨딩 촬영에 도와주러 갔을 때였다. 친구의 웨딩 드레스를 초이스해주고 나니, 화장고치고, 머릴 다시 매만지는데 족히 3,40분이 걸렸다. 그래서 가져오길 잘했지. 하며 손바닥을 쫙 펴고 책을 얹어놓으면 한 손에 쏙 들어와 기분을 좋게 하는 이 책을 앉아서 한 장, 두 장 읽기 시작했다.

 

 

 

장순영이라는 여자는 낮에는 청소부, 저녁에는 편의점 알바생으로 살고 있는 여자다. 그런 여자에게 강도우가 우연처럼 들어서게 된다. 그녀의 말투에서 행동에서 고학력임을 느낀 그는 슬슬 떠보지만 그녀는 경계를 정하며 아닌 것은 아니라는 듯 무표정으로 일관한다. 딸의 출산을 도와주고자 그녀에게 청소를 맡겼던 아줌마가 돌아오자 그녀는 낮의 일자리를 잃게 된다. 게다가 편의점 사장에게 혼이 나고 있는 그녀를 구해주겠다는 일념으로 들어서서 그녀의 저녁의 파트타임까지 잃게 만든다. 그런 그가 미안한 마음에 좀 더 나은 자리를 찾아서 그녀에게 내밀자 그녀는 뛸 듯이 좋아하면서 등본이 필요하다는 그의 말에 대번에 거절을 하는 모습을 보며 그는 그녀를 조금씩 의심하기 시작한다. 도망자? 수배자? 도대체 그녀의 정체는? …… 그러다가 그는 그녀를 자신의 가정부로 고용하게 되는데…… 그러다가 그녀는 도우의 아파트에서 신세를 지게 되고, 결국 도우의 진심 앞에서 무력해진 순영은 본래의 이미노로 다시 태어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녀는 도우를 위해 1권의 끝에서 그의 곁을 떠나려고 준비를 한다. 하지만 떠나는 것은 혼자가 아닌 둘. 본래 둘이 왔으니 떠나는 것도 둘이어야 마땅한 것. 언급되지 않은 또 한 명의 정체는?

 

 

 

사실 여기까지가 1권 90p까지의 내용이다. 더 이상 말하면 내가 이 책을 읽으려고 준비하는 모든 독자들의 재미도 감동도 떨어뜨릴게 뻔하기 때문에 모든 내용을 쓰기가 망설여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쓴 이 책의 요약본 8줄은 이 책을 읽는데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이기에 이 책의 제대로 된 묘미를 알고 싶다면 책을 한번쯤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하지만 본래 로맨스는 로맨스다워야 한다 라는 고정관념을 가진 사람에게는 이 책을 읽는데에 약간의 무리가 따를지도 모르겠다. 바로 내가 그랬으니까. 로맨스를 읽으며 이렇게 화가 치민 적도 없었거니와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지도 않았다. 그들의 사랑이 예뻐서가 아니라, 무서워서. 아마 그 두근두근거림은 sos 24시를 보는 것과 비슷한 감정일거외다. 난 이렇게 무서운 로맨스는 처음이다. 읽어본 사람은 내 마음에 동요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드라마 한 편을 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질질 끌었던 것에 비해 결말이 흐지부지하게 끝난 것만 같아서 마음이 편치가 않다. 정말 사람의 마음이 한 순간에 그렇게 바뀔 수 있을까? 자신의 아킬레스건의 말 한 마디에? 음, 과연. 좀 더 탄탄한 구성의 결말을 지닌 그녀의 작품이 사뭇 기대가 된다. 그녀의 전작 또한 흥미가 일었으나, 흠뻑은 아니라 하더라도 내 마음을 되돌아보게 한 촉촉해진 감정으로 만족하기에 당분간 로맨스는 안녕,해야겠다.

 

 

 

신경 쓰인다는 말은 잘못 나온 말이었다. 단지 그저 조금 호기심이 일었을 뿐이었다. 항상 침대 머리맡에 두었던 책처럼 다음 장이 궁금해서 미치겠는, 그냥 그런 호기심. (p72) 도우가 느끼는 순영 아니, 미노에 대한 감정이 독자가 그녀에게 가지는 감정과도 동한다. 그녀를 더욱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커져가고, 그녀를 다 안 것 같은 안도감을 내쉴 때 즈음, 뒷통수를 맞았음에도 관자놀이가 아파오고, 까도까도 다 까지 않은 양파와도 같음에 결국 답답함과 짜증이 하늘을 치솟지만, 그럼에도 책을 덮을 수 없게 만들며, 결국은 끝 페이지까지 숨도 쉬지 못하고 내달리게 만드는 이미강 작가에 감탄하며, 그렇게 이 책을 읽었다. 오랜만에 읽은 로맨스 소설을 잘 골랐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로맨스 소설을 읽으면 분명 그들의 사랑을 부러워하고, 눈을 흘길 정도로 시샘하던 나였는데, 이 책의 도우와 미노는 그런 감정보다 가슴아픔과 애달픔이 더 컸다. 다 읽고 나서 그들의 사랑을 부러워하기보다 '다행이다'라는 말만 뇌까렸으니 이미강 작가도 쓰면서 그들의 사랑을 쓰면서도 가슴이 얼마나 짓물렀을지. 그들의 사랑을 완성시키고 가장 기뻐한 것은 이미강 작가가 아닐까 싶다.

 

 

 

그래, 그의 말대로 지금 이 순간만 생각하자. 과거는 떠올리지도 말고 미래 때문에 두려워 움츠러들지도 말자. 지금의 감정에만 충실하자. 마음이 가는 대로 내버려두자. 그리고 온 마음을 다해 그를 사랑하자. 나중에 헤어져서도 후회 없게 그리고 그가 나와 함께했던 이 순간만큼은 절대 잊지 못하게……. (p197) 또 한번 나와 그의 관계를 이 문장을 읽으며 정리했다. 그래, 지금 이 순간만 생각하자고. 항상 나에게 주문을 외듯 하는 말이지만, 아직도 힘겹다. 나는 내일을 돌아보지 않았는데 벌써 와서 날 기다리고 있을까봐. 도대체 이런 불안의 근원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싶다. 늘 언제나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주문처럼 외는 말이지만, 또 잊고 어느샌가 불안에 떤다. 고맙다, 작가에게. 내 머릿 속 한 귀퉁이에 까마귀 고기를 먹듯 잊고 사는 내게 당연한 말을 다시 한번 몇일 동안은 잊지 못하게 새겨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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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미나토 가나에 지음, 오유리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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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토 가나에의 세번째 작품인 '소녀'를 읽었다. 전작인 '고백'을 매우 재미있게 읽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그 뒤를 이은 '속죄'는 전작보다 깔끔하지 못한 느낌을 받았지만 페이지가 휙휙 넘어갈 정도로 흡입력 강하게 읽었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세번째 작품인 '소녀'가 나왔다. 나는 바로 구매해서 보지 않고, 좀 더 뒤에 지인에게 선물을 받아 읽게 되었는데, 읽기 전 평이 좋은 편이 아니라서 치솟는 기대를 가까스로 바닥에 깔아버리고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보고 싶다―. 인간의 죽은 모습을. 아니, 사오리가 본 것이 시체라면 나는 죽는 그 순간을 지켜보고 싶다. 사오리가 베스트프렌드의 시체를 봤다면 나도 그만큼 가까운 누군가의. - 누가 있지? 아쓰코를 보니 나를 맹하니 바라보고만 있다. (p37) 친구의 죽음을 목격했다고 말하는 사오리를 보며 아쓰코와 유키는 '사람이 죽는 순간을 보고 싶어!' 라는 무서운 생각을 하게 된다. 아니, 사실 그것은 유키만의 생각이고 아쓰코는 그런 유키와 멀어지지 않기 위한 최후의 발악인 셈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여름방학 동안 아쓰코는 노인요양센터에서, 유키는 소아과 병동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한다. 두 소녀는 '죽음'이라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보고 싶지만, 그것은 쉽사리 두 소녀의 시야에 잡히질 않는다.

 

 

 

어떻게 사람이 죽는 순간을 보고 싶다고 생각할 수 있는거지. 게다가 유키는 자신과 가까운 누군가의 죽음을 지켜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정말 저 생각을 하고 있는 유키를 보며 가슴에서 답답함이 차올랐다. 정말 유키가 책 속에 있는 소녀가 아닌, 실제 소녀라면 멱살을 쥐어 마구 흔들어주었을지도 모르겠다. 유키가 책 속에 있는 소녀라는게 원통하고 분해서 짜증이 났다. 그래서 곧바로 책을 덮었고, 책을 읽지 않을 작정이었다. 이런 미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유키가 싫었고,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유키를 만들어낸 미나토 가나에가 싫었다. 겨우 40페이지도 채 못읽은 이 책은 벌써 몇 년전의 일을 상기시켰고, 나는 그날 밤 악몽을 꾸었다. 온 몸이 펄펄 끓는 물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뜨거웠고, 땀이 줄줄 흘렀다. 곧바로 선풍기를 켰고, 책을 폈다. 선풍기로 인해 싸늘하게 식어버린 땀때문에 온 몸에 오한이 서렸다. 선풍기를 끄고 몸을 달달 떨며 책을 읽었다. 두 소녀가 1인칭 시점을 번갈아 차지하며 독백형식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가는데 이를 미나토 가나에가 중심에 서서 둘의 확실한 경계선을 매듭짓고, 심리변화를 정확히 꿰뚫어보아 두 소녀의 감정변화를 신랄하게 그려내야하는데, 그것들의 부재를 느꼈다. 이 책에서 '나'는 세명이다. 그러나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1인칭 시점은 2명의 '나'가 된다. '나'는 시점이 불필요하리만큼 쉽게, 자주 바뀌어서 속이 매스꺼움을 느꼈다. 읽다보면 점점 적응해가며 이제 누가 아쓰코고, 누가 유키인지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긴박감이 넘쳐나거나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켜야만 하는 진정제따위는 필요도 없는 유 - 하게 흘러가지만, 한번 읽은 것처럼 결말을 뻔히 드러내보이는 이 책의 클라이막스는 억지로 끼워맞춘 것 같다는 생각을 안할 수가 없었다. 어디서 감흥을 얻고, 재미를 얻어야 할지를 모르겠던 책 중의 하나였다. 책을 다 읽었음에도 찝찝함이 남았다. 이 찝찝함을 무엇으로 말끔하게 씻어버려야 할지 의문이다. 책을 다 읽고 발작을 하듯 갑작스럽게 애린이가 보고 싶어졌다.

 

 

 

나도 처음에 전작에 못 미치는 이 책을 읽고서 전작들과 비교하며 신랄하게 비판하게 될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왜 사람들이 전작인 '고백'과 '속죄'를 들먹여가며 전작보다 별로다, 라는 식의 발언을 하는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겠다. 이 책이 약간의 미스터리 성향을 띠고 있긴 하지만, 범인을 뒤쫓는 숨막히는 추리도 없기에 구태여 그에 따른 복선을 찾아낼 필요도 없는 띠지에 붙어있는 말 그대로 미나토 가나에는 <시크릿 청춘 소설>이라는 다른 양상으로 새로운 변화를 꾀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읽은 독자들은 그녀의 전작들과 비교하며 이번 작품을 깎아내리기에 급급하고, 그녀의 새로운 시도에는 아랑곳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는 미안하게도 그녀의 새로운 시도에 갈채는커녕 미소조차 지어보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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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 끝에 네가 서 있다면 좋을 텐데 - 최갑수 골목 산책
최갑수 글.사진 / 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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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갑수 작가의 에세이는 <당분간은 나를 위해서만> 이라는 작품을 처음으로 만났었다. 그 때 만났던 책은 사실 엄청난 감흥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유난히 우울에 빠져있었던 나를 더욱 더 감성적이 되게 만들었지만, 뭔가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그래서 저자가 이번엔 '골목 산책'이라는 에세이로 찾아왔다는 소문을 듣고서도 나중에 도서관에서나 빌려봐야지, 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지인의 선물로 인해 품에 안고 대출 시간에 쫓기지 않으며 사진 하나, 하나 놓치지 않고 여유있게 볼 수 있음에 고마워하며 책을 펼쳤다. 몇 개의 사진을 먼저 선보여주고 '골목 산책 안내'라고 해서 차례가 있는데, '골목 산책'이라는 어감이 좋아서 계속 입 속에서 혀를 굴리며 되뇌었다. '골목'이라는 말을 듣거나 보면 나는 '뒷,골목'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살아왔고, 아직도 살고 있는 이 동네는 유난히 다른 곳보다 골목이 많은 편이고, 그로 인해 치뤄지는 많은 나쁜 사건들이 동반되기에 최적의 상태인 곳으로 손꼽히고 있고 , 혹여나 한번 발걸음을 할라치면 그 속에선 아직 젖내음이 나는 어린 아이들이 피는 담배냄새가 코를 박박 긁고 싶게 간지럽히며 내 콧털의 신경을 곧추세우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저자에겐 감성적으로 스며든 '골목'이라는 단어가 이 책을 읽기 전 , 내게는 어두운 면만을 제공하는 곳을 의미하기에 충분했다고 생각된다. 저자는 골목을 걸으며 귀가 팔랑팔랑거리는 단어들만을 초이스해서 우리에게 하나의 완성된 문장을 선보이고 있다. 그 아른아른거리는 문장들을 보며 이미 저자가 걸었던 골목들을 그의 발자취를 따라 나도 함께 걷게 된다면, 나 또한 그런 감성적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그 계단'은 친절했고 사려 깊고 다정했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니까 '그 계단'에는 계단을 만든 사람의 마음이 묻어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골목 여행의 매력은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고작 계단 하나에서 마음을 느끼고 감동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 (p51) 계단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자체가 신기함을 넘어서 얼렁뚱땅하다고 생각되었다. 어느 곳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동네의 젊은이들도 한번쯤은 쉬었다 가야 할 계단에서 다른 이처럼 쉬기도 하고, 홍제동 개미마을의 높고 가팔라서 아찔했던 계단도 서슴지않고 조심스레 발을 옮기는 저자를 보며, 그 계단을 오르는 나를 상상하니 있는 짜증에 곁들여 없는 짜증까지 만들어내며 오르는 내가 상상되서 나도 모르게 미간을 있는대로 찌푸리게 됐다. 저자가 사소한 골목을 보며 늘어날대로 늘어난 감성을 글로서 쓸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 저자는 현재 그런 곳에서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 동네 주민들이 그것으로써 느낄 힘겨움은 생각지않고 그것들에 또 다른 감정을 이입시켜 불어넣는 것은 위험하고 이기적인 처사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보게 된다.

 

 

 

주민들은 카메라에 상당히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주민들의 이런 태도에 십분 공감이 간다. 자신들의 삶의 공간에 불쑥 들어와 한마디 양해도 구하지 않고 신기한 구경거리를 대하듯 다짜고짜 카메라부터 들이미는 이방인들의 무례가 달가울 리 없다. 자신들의 고단한 삶을 한낱 구경거리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마냥 친절하게 대할 수는 없는 일이다. (p298) 이제 얼마 남지않은 골목들이라서 사진 좀 찍는다 하는 사람들이나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를 벗어나 옛 것인 과거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자주 찾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 곳에서 살고 있는 주민들에겐 그들은 분명 달가운 손님보다는 무례한 침입자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밤골마을이나 태극도마을의 주민들이 특히 그랬다. 그렇다해도 낯선 이방인들에게 시원한 물 한잔, 막걸리 한 잔 대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저 개발이 되지 않는 동네에서 살고 있는 자신들의 처지를 원망하고 있을 뿐이다. "카메라 들고 놀이 삼아 오는 사람들이야 좋지. 하지만 여기서 살아봐. 얼마나 불편한지." (p111) 아직도 현 시대와 동떨어진 곳에서 우리들은 모르는 많은 불편함을 감수하고 살고 있는 그들을 불쌍히 여길 필요도 없고, 엄숙한 분위기를 풍길 필요도 없다지만, 잠시, 적어도 우리가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전에, 가난해서, 과거에 묶여 살아서 문명의 빛을 볼 수 없는 그들의 삶을 존중해주며 예의를 갖추어야하는게 당연지사가 아닐까.

 

 

 

 

만약 당신이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밥이 아니라 사랑받고 혹은 사랑하고 있다는 느낌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싶다면 철길마을로 가보기를 권한다. 한나절 철길마을을 천천히 거닐어보시라. 오전 10시가 넘어서야 겨우 햇빛이 들어오는 이 곳에 아침 일찍부터 고추를 내어놓고 빨래를 널어 말리는 것도, 국화를 심어놓은 화분을 문 앞으로 밀어놓는 것도, 벽 한쪽에 자전거를 비스듬이 기대어놓는 것도, 기차가 지나다니지 않는 철로 위에 자리를 펴고 나물을 말리는 것도, 밤이 되면 가로등 불빛이 켜지는 이유도, 불빛을 받은 철길이 필라멘토처럼 반짝거리는 것도, 창문 너머에서 텔레비전 소리와 아이 울음소리와 냄비 여닫는 소리가 흘러나오는 것도 이 모든 일은 어쩌면 우리가 아직은 사랑받는 존재임을 알려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p84) 우리는 사랑을 받고 있음에도 무엇인가로부터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한다. 하지만 그 사랑은 갈구해서 받아도 받아도 끝이 없는 사막과도 같은 목마름의 근원이다. 그런 우리에게 저자는 주변을 둘러보며 사랑받고 있음을 스스로가 깨닫길 원하고 있다. 우리는 너무 소중한 것들을 잊고 살고 있다. 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사랑받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으나, 물질주의인 우리는 손에 잡히는 것만을 사랑의 징표 혹은 표본이라고 생각할 뿐, 소소한 것들에 대한 행복은 그저 당연한 것이라고만 치부해버리기도 한다. 요근래 내게 힘든 일이 닥쳤을 때 그들의 일이 아닌 나의 일이기에 그 일을 해결할 사람은 나밖에 없다며, 믿었던 타인들도 나를 도와줄 수 없을거라 생각하니 결국 사람 개개인은 혼자라고 생각했던 요즘, 어쩌면 나는 이 문장들에 많은 것을 위로받았는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매미가 울고 있는 것도, 온도가 30℃를 오르락내리락하는 더위에 시원한 얼음물을 마실 수 있다는 것도, 밤에는 시원한 바람이라는 손님이 찾아온다는 것도, 내가 사랑받는 존재임을 알려주는 것일지도 모르니까. 내가 보고 맡고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그 모든 것이 나를 사랑해주는 것들이 된다.

 

 

 

이런 순간이 필요해. 마음에 드는 장소를 만나면 걸음의 속도를 늦추고 멈춰서는 일. 그저 바라보고, 감각하고, 즐기는 일. 이런 순간을 일주일에 십여 분 정도 만들어주는 것이 생에 대한 예의를 지키며 사는 것이 아닐까. (p224) 좀 더 편하게 살자며 바뀌는 나날이 발전하는 세상의 빠른 변화에 발맞추고 그것을 따라가며 나의 내면이 메말라가는 것도 모른 채 시속 150km/h로 주위를 쳐다볼 겨를도 없이 달리기만 한 것은 아닐까, 때로는 멈춰 서서 주위를 스-윽 둘러볼 때가 필요한 날이 있을텐데, 내 마음의 안식처를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줄여가고 있었다. 살면서 어느 순간은 몸을 꼿꼿이 피고 얼굴을 들어서 하늘을 바라볼 때도 필요하고, 허리를 접어서 땅을 굽어볼 때도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너무 잊고 살았던 모양이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가 시골처럼 전부 골목길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집은 골목길을 쭉 따라와야만 들어갈 수 있기에 나는 퇴근길에 항상 골목길을 따라 집을 들어간다. 나는 항상 집에 가는 그 길을 걸으며 길이 도로처럼 아스팔트가 아니라서 구두굽이 빨리 닳는다던지, 바닥에 깔려있는 벽돌들이 화가 난 것마냥 삐족빼족 튀어나와 있어서 자주 넘어진다거나 하는 온갖 핑계란 핑계는 다 붙여서 그 길을 싫어했다. '골목'을 '뒷,골목'으로만 생각했던 내 고정관념을 '우리가 살아온 무시할 수 없는 세계'라고 정정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그런 마음을 안겨준 저자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이번 책은 하나의 주제를 엮어 만들었을지라도 읽으면서 이곳도 이곳같고, 그곳도 이곳같은 구성이 아닌 독특하진 않더라도 조금은 색다르고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테마를 원했던 나에겐 좀 지루함을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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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거짓말 창비청소년문학 22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김려령 작가의 책을 처음 만난건 <완득이>였다. 그 책은 처음 읽을 때 사실은 아주 많은 추천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나에겐 별 감흥이 없어서 그것을 끝으로 김려령 작가를 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책이 작년즈음 새로 출간되었다는 <우아한 거짓말> 소식을 듣게 되었지만, 전작의 여파때문인지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나의 그 사람이 이 책을 읽고 있는데 자꾸만 울컥하게 되서 채 읽지를 못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보고 꼭 읽어보라며 자신이 다 읽고 넘겨주겠다고 해서 얼떨결에 읽게 된 책이다. 받자마자 어떠한 내용인지 짐작도 못한 채, 표지가 참 예쁘다... 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읽고 있던 책을 끝낸 직후여서 그 자리에서 바로 읽을 수 있었던 책이었지만 , 마음 속에서 울컥하는 내용이라기에 조금 덮어두었다. 그 전에 읽은 '벽장 속의 아이'의 후유증 때문이었다. 아픈 마음에 또 한번 칼질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마음을 달래줄 책을 두어권 읽고 나서야 이 책을 펼쳐들고 무슨 내용이건 김려령 작가의 글을 좇기보다는 이 책을 쓸 때의 마음을 따라 읽겠노라고 생각하며 첫 문장을 눈으로 따라 읽었다. 그 문장은 안그래도 간신히 달래놓은 내 마음을 지뢰밭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내일을 준비하던 천지가, 오늘 죽었다.

 

 

 

천지는 열네살이라는 숫자만으로도 예쁜 나이에 자살을 선택했다. 안타깝다는 마음이 들어야 마땅하지만 왜 그랬을까, 라는 생각이 먼저 튀어나온다. 작가의 글을 따라가다보면 그 질문의 답을 찾게 된다. 어느 날 아침 몇 달이나 남은 생일선물로 mp3를 사달라고 하는 천지에게  전세 보증금을 올려줘야 한다며 거절하는 엄마. 그 날 천지는 세상과 작별을 고한다. 고작 mp3라는 이유라고 치부해버리기에는 모르는 뭔가가 있을거라며 언니인 만지는 천지가 남겨놓은 흔적을 따라 천지가 닿았던 자취를 좇게 된다. 원인은 화연때문이었는데, 화연 역시 집에서 생계에 바쁜 부모님 대신에 학원으로 돌려지게 되고, 그로 인해 제대로 된 사랑 한번 못받은 화연은 애정 결핍이 생기게 됨으로서 아이들에게 애정을 받기 위해,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천지를 골탕먹이고 친구라는 위선적인 명목 하에 천지를 거리낌없이 가지고 놀게 된다. "애들이 자꾸 나만 술래 시켜." "안 한다고 해." 그렇게 얘기해봤어요, 엄마. "그래도 자꾸 시켜." "그럼 걔들이랑 놀지 마." 그럼 나는 누구랑 놀아, 언니? 그날부터입니다. 친구에 대해 더 이상 엄마와 언니에게 상의하지 않게 된 때가. (p20) 천지는 분명 가족에게 SOS를 청했지만 엄마와 언니, 그 누구도 대수롭게 생각하는 이가 없었다. 아이의 보호막 , 울타리 역할이 되주어야 할 가족의 무관심의 끝을 보여주는 대목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내가 학교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여전히 한 반에 한명씩 왕따가 존재한다. 내가 중, 고등학교 때는 왕따라는 개념이 확연히 달랐다. 중학교 때는 한 아이를 두고 괴롭혔다고 한다면, 고등학교 땐 아이들이 놀아주지 않는 아이를 왕따라고 칭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무리를 지어다니는 애들을 일컫는 말도 되었다. 우리는 그들을 두고 끼리끼리 논다라고 칭하기도 했고, 그들이 지나가면 수군수군대기 일쑤였다. 읽으며 나는 누구였을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같이 어울려다니는 애들 앞에서는 웃다가도 싫은 사람이 말을 걸면 정색하며 싫은 티 팍팍 내며 무표정하게 대답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고보면 나는 화연이나 주변 아이들보다 더 끔찍했던 것 같다. 누가 누구를 왕따시키든 말든 관심도 없었기에 그것에 동조하지도 않았으며 난 내 할 일만 하면 되었다. 간혹 아이들이 꺼려하는 그들은 나에게 말을 시키곤 했는데, 사실 나는 그게 무척이나 싫었다. 내가 같은 처지가 될까봐 싫었던 것이 아니라, 애들이 싫어하면 그런 이유가 있겠지, 하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이 책을 읽고 화연이와 주변 아이들을 도끼눈을 뜨고 바라보며 어떻게 이럴 수 있냐며 그들을 욕하면서 이야기를 읽어내려갔다. 우리는 누굴 피해자라 부르고, 누굴 가해자라고 하는가. 그런 상황이 다시 온다고 한다면, 나는 천지와 같은 아이들을 감싸안아줄 수 있을까? 아니, 사실 그러진 못할 것 같다.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 조종당하는 것. 천지는 회의감이 얼마나 들었을까, 나같으면 난리났었겠다고 생각하며 천지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착하디 착한 천지는 그러지 못했다. 털 뭉치 속에 엄마, 언니, 미라, 화연, 그리고 자기 자신을 용서하는 편지를 남겨두고 세상과 안녕,하고 돌아섰다.

 

 

 

우아함을 가장하여 가해지는 멸시는 극단적인 '죽음'이라는 선택을 코 앞에 두게 만든다. 그들은 죽기 전 유서를 쓰고, 그 유서에는 짐작컨대 이렇게 적혀져 있을 것이다. '내가 죽음으로서 너희에게 복수할 것이다.' 하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왜 그런 안타까운 상황을 만들 수밖에 없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 얘기하진 않겠다. 하지만 정말 복수하는 길은 그 안에서 살아서 행복하게 사는 길 뿐이다. 사실 나같아도 내가 싫어하는 골칫덩어리가 없어지면 룰루랄라하겠다.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 아이들은 나는 무서워서 생각지도 못할 자살이라는 것을 뻑하면 한다. 그래서 유명연예인이 죽었다고 하면 '또 죽었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들릴 때도 있다. 나는 사실 자살한 그들을 두둔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요, 불쌍하다 여기지도 않는다. 그저 그들 자신이 힘들고 괴로워서 찾은 돌파구일 뿐이다. 그들은 매우 이기적이라서 남은 사람 생각따위는 애초에 하지 않는다. 하지만 썩은 물에 고기를 넣어둔다고 그 고기가 온전히 살지 못하는 것처럼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놓고 살으라고 독촉할 수는 없는 일이고 또 그만큼 괴로운 일도 없을 것이다. 어른이 되어보니, 세상은 생각했던 것처럼 화려하고 근사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미리 세상을 버렸다면 보지 못했을, 느끼지 못했을, 소소한 기쁨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거면 됐습니다. 애초에 나는 큰 것을 바란게 아니니까요. (p227) 작가의 말을 보고 또 한번 느낀다. 아무 대가없이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 , 먼저 내미는 손이 그들에게 절실할 것이라고. 그러면 내가 힘들어 할 그 어느 날에 그들이 내 손을 꼬옥 쥐어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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