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오는 봄
양석일 지음, 김응교 옮김 / 산책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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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봄. 2012년의 봄. 그래, 봄이다. 봄인데, 아직 겨울이다. 문장의 간극 사이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봄인데 아직 겨울이라니. 이게 무슨 지랄같은 문장인가 말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 2012년의 날씨가 그렇다. 겨울은 분명 지나갔어야 하는 날씨임에도 봄이 오지를 못하고 자꾸만 주춤거리고 있다. 그리고, 책을 다 읽은 지금에서야 비로소 봄이 오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해도 아주 어이가 없지만, 착각 한 번만 해야겠다. 날씨, 내가 이 책을 다 읽을 때까지 봄을 주지 않은 거니? 라고. 그리고 착각 하나 더. 미안하게도 난 「다시 오는 봄」을 「오지 않는 봄」으로 착각하고 읽었다. 그래서 그에게 이 책을 이야기 할 때에도 오지 않는 봄을 읽으면서 - 오지 않는 봄에서 - ... 라고 이야기를 하곤 했다. 책을 덮는 순간, 미쳤다, 생각했다. 오지 않는 봄이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봄이 오지 않았으면, 내가 이 사실을 알 수 있었을까. - 하아, 참 질긴 책 읽기,였다. 책을 읽으며 이만큼의 분노에 치달을 수 있다는 사실에 나조차도 놀라웠다. 어쩌면 그동안 읽어왔던 그 어떤 책보다, 나를 혼란의 회오리 속으로 집어넣은 게 이 작품이 아닌가.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난 이렇게 쓰고는 있지만 이 책에 대한 리뷰를 도중 그만 두지 않고 끝까지 써내려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위안부. 〔comfort women〕내가 이 단어를 정확하게 인지했던 때는 언제일까. 생각은 나지 않지만 어쨌든, 그 때는 10대,였을거다. 그때의 수많은 나,는 어디서 무얼 했을까. 작품은 그 수 많은 나, 중 열일곱 살의 순화를 이야기한다. ㅡ “돈 모을 수 있는 일이 있는데 해보지 않을래? 집에 송금도 할 수 있고, 예쁜 옷도 살 수 있고, 밥도 실컷 먹으며 저금도 할 수 있지. 이렇게 좋은 일은 없을 거야.” 라는 교묘한 꼬득임에 꼬여 일본인을 따라나서지만, 도착한 곳은 난징. 이곳은 어디고, 왜 내 이름이 ‘김순화’가 아니라 ‘우타마루’이며, 나를 덮치려고 소변줄을 기다리는 것처럼 기다리고 있는 이 군인들은 도대체 다 뭔가. 계속해서 몰려드는 병사들이 숨 쉴 틈도 없이 순화를 덮쳤다. 병사들은 마치 서서 소변이라도 보는 듯했다. 쉰여섯 명의 병사가 나가자 드디어 끝이 났다. (…) “나는 인간이 걸까……? 아니면 뭐지……?”라는 생각과 함께 자살을 하려고 하지만, 옆 방 원청심의 자살소식이 들려왔다. 순화는 그 죽음을 진심으로 부러워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잘 들어! 너희 몸은 너희 것이 아니다. 너희는 천황폐하께 바쳐진 몸이다! 너희 마음대로 죽는 건 용서할 수 없다. 마음대로 죽은 사람은 그 시체를 개나 돼지의 먹이로 줄 것이다!” 그들은 살 수도 그렇다고 죽을 수도 없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들어오는 병사들을 거절했지만, 이를 안 장정생이 ‘징벌방’이라고 불리는 아궁이처럼 뜨거운 다락방에 넣고 나흘 동안을 감금했다. 그 후로 그녀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일본말을 배웠고, 통조림 하나를 얻기 위해 교태를 부렸으며, 때때로 병사에게 농을 먼저 건네기도 했다. 또 다른 선택을 한 것이다. 육체와 정신의 고통을 함께 견디는 삶.

 

 

 

 

 

모든 것은 끝나지 않는 시작이다. 끝난 순간부터 다시 시작한다. 허무한 날들이 지나간다. 두 달쯤 지나자, 몸상태가 안 좋아지고 하루에 몇 번이나 토할 것 같았으며, 몸이 나른해서 뭐든 귀찮고, 빈혈로 어지러워 쓰러지기도 했다. 그러고보니 꼬박꼬박하던 달거리가 멈췄다. 임신. 그것을 순화는 자각하지 못한 채 넉 달이 지냈다. 그런 그녀에게 장정생은 “임신했다더군. 임신하면 다른 병사의 아이는 임신하지 않으니까 안심하고 열심히 일해.”라고 말하며 냉담한 시선을 던진다. 병사들은 임산부와 성교를 하는 특이한 경험을 한다며 순화의 방을 자주 드나들었고, 그녀는 그때마다 아기가 질식하는 건 아닌가 걱정한다. 그러던 어느 날, 성교 도중 갑작스러운 진통이 시작되었다. 난산이었다. 하지만 아기는 (죽었든, 살았든) 세상에 나왔고, 순화는 “제 아기예요. 제가 낳은 아기예요. 제 아기를 안을 수 있게 해주세요.”라며 애원하지만 그마저도 박탈당한다. 그리고 장정생은 말했다. “나흘 뒤 실밥을 풀 거야. 너는 젊으니까 나흘만 지나면, 실밥 풀어도 괜찮아.” 나흘 뒤 실밥을 푼다는 것은 그 다음 날부터 손님을 받는다는 의미였다. 물로 순화는 거부할 수 없었다.

 

 

 

 

 

저녁식사 시간이 되자 식사당번이 주먹밥과 단무지를 담은 쟁반을 복미 머리맡에 뒀다. 복미는 병사에게 몸을 대주며 주먹밥을 먹었다. 비참하다기보다는 우스꽝스러웠다. (…) 꼬리뼈 주위와 허리에 커다란 구멍이 생겨 거기서 피와 고름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게다가 썩고 짓무른 구멍에선 구더기들이 들끓었다. 몰려 있던 구더기는 복미의 내장까지 잠식하고 있었다. (…) “다른 위안부들도 같은 증상이다. 할 수 없지. 바로 처분해라.” (…) “도와주세요. 난 아직 살아있어요.” - 정말, 가장 많이 울었던 대목이다. 이 대목을 출근하기 전에 10분이라는 시간이 남아서 읽었었는데, 버스에서 눈물이 계속 나서 혼났다.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할지를 몰랐고, 그것은 내 마음을 검은 그림자가 삼킨 것처럼 종일을 따라다녔다. 작품은, 굳이 이해하려 하지 않고 글자 그대로를 따라가면 글은 영상이 되어 머릿 속을 지배했다. 중간중간, 작품을 더이상 읽고 싶지 않았음을 느낄 때에는 책을 들고 방 안을 서성거리며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반복했다. 그럼에도 힘겹게 읽어내렸다. 답은 하나였다. 결국은, 모든 고통이 수반된 지옥같은 시간들을 인내하고 (이걸 인내라고 표현해도 괜찮을지 잘 모르겠다.) 고향에 돌아가는 순화들의 웃음을 보고 싶어서,라는 것. 그 뿐이었는데.

 

 

 

 

 

“작가 양석일이 상정한 이 책의 독자는 일본인이다. 즉 이 소설은 ‘위안부를 소재로 해서 일본어로 쓰인 최초의 소설’이다.” 꼬박 팔년이었다. 고향으로 돌아온 순화들은, 웃음을 잃어버렸다. 순화들은, 그렇게 지금까지 살아가고 있다. 작품을 접하고나서야 스물다섯이나 먹고 그때의 역사를 헤집는 있는 내가 있었다. 멍청하게, 이제서야. 매주 수요일, 서울에 있는 일본대사관 앞에서 집회가 열린다는 사실조차 처음 알았다. 이렇게 무지할 수가 있나, 싶다. 사실 나, 부끄럽게도 세상의 순화들을 잊고 있었다. 어쩌면, 그런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송두리째 들어내고 싶었다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들에게 일본인들 못지 않게 잔혹한 일을 한거다. 지금은 사월이고, 봄이 활개를 쳐도 좋은 달이다. 하지만 아직 추운 바람이 완전히 가시질 못했다. 이 책이 일본인들에게도 많이 접해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면 순화들에게도 따뜻한 봄이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그것은, 그들에게 제대로 된 봄,이 찾아 온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까닭이다. 책을 다 덮는 그 순간까지도 눈물로 얼룩진 눈 끝에 또 다른 눈물이 아롱지는 것을 닦아내며 생각했다. 이 책을 만난 것은, 올해에 가장 잘한 일이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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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고백
김려령 지음 / 비룡소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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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려령은, 개인적으로 참 신기한 작가다,라고 생각하곤 한다. 동화와 현실, 그 사이에서 기우뚱거리고 있어 결코 동화가 될 수 없는 이야기를, 동화로 만들어버린다. 신에게 담임선생 똥주를 죽여달라는 완득이(「완득이」)나, 따돌림으로 인해 죽은 천지(「우아한 거짓말」)나, 가정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된 도희와 엄마아빠의 부재로 인해 안쓰러운 태석,태희 남매(「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나, 이번에 읽은 손버릇이 나쁜 해일과 가정의 불화에서 상처받는 지란이(「가시고백」)나, 스스로가 동화 속의 주인공이 되기에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하지만, 참 신기하게도, 작품을 다 읽고 난 후에 밀려드는 따뜻함이, 나는 정말이지, 너무너무 좋다. 그래서 자꾸만 마음이 가는 작가, 그 작가의 작품이 나를 찾아왔다. 봄햇살이 주는 선물처럼.

2010년 3월 2일. 나는 도둑이다. 그러니까 사실은 누구의 마음을 훔친 거였다는 낭만적 도둑도 아니며, 양심에는 걸리나 사정이 워낙 나빠 훔칠 수밖에 없었다는 생계형 도둑도 아닌, 말 그대로 순수한 도둑이다. 강도가 아니니 흉기를 지녀서는 안 되며 사람을 해쳐도 안 된다. 몸에 지닌 지갑이나 가방에 손을 대는 소매치기 날치기도 아니다. 나는 거기에 있는 그것을 가지고 나오는, 그런 도둑이다. 반에서 지란이 인강을 듣기 위해 아빠의 새 전자수첩을 가지고 왔다가 잃어버리고 만다. 그건 실수로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누구의 절도임에 틀림없다. “(…) 어떤 놈이 가져간 거야?” 어떤 놈이긴, 도둑놈이지. 도둑놈, 민해일. 그런 해일이 가족에게 도둑질을 숨기기 위해 둘러댄 말로 유정란 부화를 한다고 한다. ‘까짓것 해 볼 생각이었다. 가족에게만은 늘 책임감 있고 성실한 아들이었으니까. 그러니 무언가를 숨기기 위해 둘러댄 말이 아니어야 했다.’ 그렇게 해서 그것은 정말로 실행이 됐고, 담임과의 상담시간에 유정란 부화가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올라 반에서까지 이야기가 되고, 병아리(아리와 쓰리)를 보려고,라는 명목으로라도 해일의 집에 찾아오는 친구가 생겼다. 지란과 진오, 다영.

해일의 손버릇은 어쩌면 혼자,라는 외로움이 주는 일련의 재미로 시작됐을지도 모르겠다. 가슴이 콩닥콩닥거릴 정도의 일이 외로운 해일의 일상에서는 없었던 것. 함부로 누설해서도 안 되고, 비밀리에 작업을 해야 한다는 일. 그것은 결국 혼자만 알아야 하는 일이 된다. 그러면서 재미있어야 하는 일. 일곱 살, 유치원 선생님의 지갑에 처음 손을 댄 것이 첫번 째였다. 그로 인해 교실은 발칵 뒤집어졌을테고, 어린 해일에겐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만드는 일,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하지만 이제 그에게도 ‘친구’가 생겼다. 그런데 그 친구들에게 자기가 훔친 건전지를 들켜 엉겁결에 나누어주고 만다. ‘같은 버스를 타고, 같이 요리를 만들며, 함께 식사를 했다. 그러면서 문득 이 아이들에게 고백해도 될 것 같은, 고백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훔친 건전지를 나눠주고 말았다. 안 되는데, 이 아이들은 아무 잘못도 없는데, 그냥 집에 놀러온 친구들인데……. 좋은 아이들이 나쁜 아이를 만났다. 제 잘못을 몰래 나눈 도둑이라니. 물건을 훔칠 때보다 더 마음이 무거웠다. (…중략…) 고백 실패. 뽑아내지 못한 고백이 가시가 되어 더 깊이 박히고 말았다. 잘못 고백했다가 친구들을 잃을까 겁이 났던 것이다.

나도, 당신도, 가시가 하나쯤은 박힌 채로 살아가고 있다. 그것을 빼내느냐, 빼내지 않느냐,는 당사자의 결정사항이다. 괜히 뺐다가 상처가 두드러지게 보일까봐, 빼내는 도중에 찾아오는 고통이 두려워서, 아직 빼낼 수 없어서, 빼내기 싫어서 라는 핑계를 가지고 있다면, 까짓것, 그러지 않아도 된다. 어쨌든 그 가시로 인해 아픈 건 타인이 아니라 당사자인 나,가 될테니까 말이다. 그것을 뽑아내기까지의 과정이 고통스러움을 잘 알고 있다. 어쩌면 나처럼 뽑아냈다고 생각했는데, 다 뽑아낸 것이 아니라, 빼내다가 미처 다 빠져나오지 못한 가시가 살짝살짝 건드리고 있음을 느껴 나머지 파편을 더 깊숙히 넣는 이도 적잖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내 어떤 가시 중에서는 빼냈는데도 빼내지 못한 것도 있다. 언제 빼낼 수 있을지, 사실 잘 모르겠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용기를 내보고 싶어지게 만든다. 아, 또다. 이 속은 느낌! 작가는 해일을 통해, 지란을 통해, 너도 한 번 용기를 내어보라고, 그리고 그것으로 인한 해방감을 만끽하라고 종용하고 있는 까닭이다. ‘해일의 걸음은 집이 가까워질수록 눈에 띄게 무거워졌다. 오늘 반드시 뽑아내야 할 가시 때문이다. 고백하지 못하고 숨긴 일들이 예리한 가시가 되어 심장에 박혀 있다. 뽑자. 너무 늦어 곪아터지기 전에. 이제와 헤집고 드러내는 게 아프고 두렵지만, 저 가시고백이 쿡쿡 박힌 심장으로 평생을 살 수는 없었다. 해일은 뽑아낸 가시에 친구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라도, 그저 묵묵히 받아들이고 따를 각오가 되어 있었다. 함께 가시 뺀 자리의 고름을 짜내든 심장을 도려내든. 딩동. - 자, 이제 내 차례다. 이 용기가 언제까지 나를 끌어올릴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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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 제14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은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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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편지하지 않다_ 킁킁, 문장에서 풍기는 냄새가 가히 고약하지만은 않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니까. 편지를, 아니 사소하게 글을 쓰는 것에 대해서도 심심찮게 귀찮아하는 이들이 꽤 많다. 물론, 내 주변에도. 나는 언젠가부터 편지를 쓰는 것을 놓았고, 또 다시 시작했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의무적으로’라는 건데, 미안하게도 나, 가끔 ‘의무적으로 ’ 편지를 쓴 적이 있다, 고백한다. 그것은 어쩌면 너무 많은 욕심을 부린 ‘내’가 문제가 될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 편지를 쓰는 것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그것은 부담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어느 누구 하나, 나에게 편지를 써라,라고 강요한 적이 없는데 말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편지를 쓴다는 나에게 ‘배리라씨, 오늘도 숙제하네.’라고 말을 하기도 했었던 적도 있었을 정도로. 편지를 쓴다,는 것은 꽤 욕심을 부리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가령, ‘이 사람이 나에게 답장을 꼭 해야해.’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그 고정관념이 박혀있던 나는 그 부분에서 당시 꽤 많은 서운함을 느끼기도 했고, 결국은 그래서 관뒀다. 물론 그게 주-욱 평생 이어질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말이다. 하지만 난 여전히, 편지를 쓴다.

 

 

 

 

 

나의 하루는 편지를 경계로 시작하고 끝난다. ‘지훈’은 ‘와조’와 삼 년 동안 ‘여행’중이다. 그는 여행을 하다가 하루의 마지막 일과를 ‘편지’를 쓰는 것,으로 끝내고, 하루의 첫 일과를 ‘편지’를 보내는(우체통에 넣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른바, ‘편지여행’. 그런 그는 자신을 ‘편지여행자’라고 일컫는다. 그의 편지가 도달하는 곳은 여행중 만난 사람들인데, 그는 그들에게 번호를 부여한다. 그것은 그에게 가장 간단한 방법이고, 기억하기도 쉬울 뿐만 아니라, 번호는 고갈될 염려가 없어서 라는 것. 그가 편지를 쓰는 것은, 자신에게도 하루가 존재했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어서. 일기는 혼자 간직하지만, 편지는 자신과 상대, ‘둘’이 간직하는 것인 까닭이다. 절망하는, 절망했던 청춘은 어딘지 서로 닮은 구석이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인간 앞에 놓인 절망의 종류는 그리 다양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유없는 무덤없다는 말처럼(마음에 들지 않는 표현이지만), 그에게는 여행을 시작한 까닭이 있다. 여행이 종료되는 시기는, 그가 편지를 받는 날. 하지만 오늘 역시 아무도, 편지하지 않았다. - 그러던 중, 꽤나 특이한 여자를 만난다. 자신이 쓴 책을 직접 파는 여자. 알면 알 수록 뭔가 대단히 이상한 여자다. 왠지 모를 꺼림치함 때문에 가까이 하고 싶지 않아 여자와 멀어지려고 무던히 애를 쓰지만 상황은 둘을 기어코 붙여놓는다. 마치, ‘치약’‘과’ ‘비누’처럼. 그는 낮에 여행을 하고 밤에는 편지를 쓰고, 여자는 낮에 책을 팔고 밤에는 글을 쓴다. 괴상한 여자에게 번호를 부여하고 싶진 않았지만, 달리 부를 호칭이 없어 어쩔 수 없이 751이라는 번호를 부여하게 되고, 751에게 그는 0이라는 번호를 부여받게 된다. 그리고 둘은 어쩔 수 없이, 함께 여행을 한다. 그러던 중, 여행이 끝난다. 그에게 아무도 편지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책을 다 읽었지만, 다 읽지 못한 상태로, 그래서 다 덮지 못한 채로, ‘상처’에 대해 생각한다. 전에는 그것을 덮어두려고 하는 것에 급급했다면, 시간이 해결해줄거라 믿으며 유예하고 있는 내 모습과 직면했다. 마음 속을 들여다보니, 크기는 불행하게도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나는 이내 체념한이제 어떻게 해야하지,라는 생각과 함께 울컥해서 서러워하다가 다. 난 아직,이다. ‘어쩔 수 없이’라는 관용어가 들어가야 하지만, 삼 년 동안의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발작증세가 다시 도졌다는 그와 마찬가지로. 작품은, 고독한 기운을 감싼 채로 진행되지만, 그 기운에서는 따뜻한 바람이 일게 한다. 살랑살랑. 그리고 그는 다시 편지를 쓰겠지. 서걱서걱,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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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벰버 레인
이재익 지음 / 가쎄(GASSE)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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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명은 노벰버 레인,인데 나에게는 Feb rain이 되었다. 아이러니하게 내가 작품을 읽고 있었을 때도 비가 내리고 있었던 까닭에, 노벰버 레인에서의 레인이 디테일하게는 어떤 것을 뜻하는지도 모르면서 괜시리 반가운 마음에 방글방글 웃으며 읽었더랬다. 응, 분명 그랬었다. 사랑이라는 말만큼 정의와 폭이 들쭉날쭉한 단어가 없겠지마는, 우리의 관계는 적어도 내가 꿈꾸던 사랑은 아니었다. 사실 나는 단 한 번도 내가 그리던 사랑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본문 내용 중) 3년을 ‘연인’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했던 종우에게 그녀, 프로포즈를 받다. 어디 하나 삐걱대며 어긋나지 않은 정석의 프로포즈를, 아니 안정된 생활을 그녀, 받아들이다. 종우의 프로젝트 때문에 미리 가기로 한 신혼여행도, 다른 프로젝트로 인해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결국 그녀, 떠나다. 싱가포르로, 혼자. 그녀, 그때까지 알지 못한다. 그녀에게 다가올 그 어떤 것,을. 그리고 그녀, 사랑을 만나다. 둥둥둥…

 

 

 

무미건조하게만 느껴졌던 감정이, 두근거리는 감정과 교차했다. 그렇게 그녀의 사랑,이 시작되었다. 지독하다, 지독해. 이보다 더 지독할 순 없어, 라고 생각했다. 준희도, 희준도, 종우도. 읽는 독자에 따라서는 ‘불륜’으로 치부되어 버릴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를 욕할 수 있을 권리를 지닌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롯한 그녀의 사랑인 까닭에. 마음에서 울리는 둥둥둥… 소리를 들었다는데, 어쩌겠는가 말이다. 형상화 되지 않은 채로 마음 속에서 커가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여전히 나에게 찌르르한 선율과 함께 머뭇거림을 선사해준다. 설령 그것이 실질적으로 어떤 모습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가진 의미는 결코 ‘불륜’으로 입각되어질 수 없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적어도, 그녀가 느꼈다는 그 감정을 존중해주고 싶은 마음뿐. (사실 다음에 다시 읽는다면, 어떤 시선으로 읽힐지 의문이긴 하다. 잡힐 수 없는 사랑이었기에 애틋하다고 느낀 바도 없잖아 있으니.) 어쨌든, 지금은, 삼월이고, 그녀가 탐하고자 했던 사랑을 추억하듯, 비가 내린다. 십일 월의 가을비가 아니라, 삼 월의 봄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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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포차 상담소 - 한숨 한 잔, 위로 한 잔, 용기 한 잔
공병각 지음 / 시드페이퍼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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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나는 프리랜서라는, 조금은 어수룩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 프리랜서라는 생활,은 출근 시간과 퇴근 시간이 매번 정해져있던 내게 새로움을 안겨주어 꽤 매력이 있는 직업이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한 달이라는 시간이 채 흐르기도 전에, 언제까지 이 생활이 계속될지 모르는 상태에 놓여있다는 이유만으로 불안감을 증폭시키기도 하고, 초조함을 안겨주기도 하여, 막막한 상태로 변환시켜버려서, 그것은 부담이 되기도 하고 나아가 짐이 되기도 한다. 언제까지 이러고 살 순 없지, 하는 생각에 개인적으로는 자기계발에 힘쓰려고 하고 있으나 막상 하려고 하니, 그게 쉽지만은 않다는 사실에 좌절감을 맛보고 있는 지금, 또 다른 프리랜서, 공병각을 만났다. 「청춘포차 상담소」 - 처음, 호기를 가지게 되서, 꽤 많이 만나고 싶어했던 책임에 분명했으나, 책 안을 펼쳐보니 생각과 다른 이미지에 이게 내가 읽고 싶어하던 책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어서, 결국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포장마차에 발을 디디게 되었음을 고백한다.

 

 

 

 

 

 

나는 그렇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직종을 바꾸거나 그런 게 아니라, 내 전공에서 15도를 꺾으면 이게 있고, 거기서 15도를 더 꺾으면 저게 있고. 난 만능엔터테인먼트가 되고 싶어하는걸까? 아니다. 그게 아니라, 나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서, 결국은 하나를 하고 싶어하는 것. 설계기사도 되고 싶고, 캐드기사도 되고 싶고, 서류작업에 빠삭한 공무도 되고 싶고, 현장 감리도 되고 싶고, 감독관도 되고 싶고, 그것을 하나로 통합하니, 통틀어 현장소장. 그렇다보니, 정작 꿈은 하나지만, 그 꿈은 만능엔터테인먼트를 원하는 것이다. 하고 싶은 것도, 좋아하는 것도 많다는 건 그만큼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말이잖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범위가 넓다는 거, 이게 얼마나 행복해. 아직 이룬 것보다 하고 싶은 게 더 많다는 건 젊다는 뜻이기도 하고. 젊다는 게 얼마나 좋은 건데. 사실, 내가 말한 것 중 하나만 제대로 할 줄 알면, 먹고 사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것은 결국 그것을 통틀어 하나인 까닭에, 난 그 하나를 하기 위해 이것도 배우고, 저것도 배우지만, 중간 즈음에 가서 제 풀에 지쳐버리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하지만 선배(저자)는 말한다. 네가 명함을 만들 때마다 행복한 고민에 빠질 수 있게… 나도 무수히 많은 명함을 꿈꿨었다. 내 직업은 뭐가 될까. 뭘 망설여? 시간은 짧잖아. 젊음은 더 짧아. 최대한 빨리, 최대한 많은 것들을 해보는 거야. 그래, 까짓거, 한 번 해보는 거지 뭐. 5년 후, 10년 후, 15년 후, 내 명함에 박힐 직업을 위해서. 그리고 또 하나 내가 당부하고 싶은 건, 네가 하고 싶어하는 일을 찾기 위한 시간을 아까워하지 말라는 거야.

 

 

 

혼자 감당해야 하는 막막한 이 바닥이 너무 힘들고 어렵기만 했어. 그때마다 내 눈에 밟힌 건, 술이 떡이 돼서 새벽녘이 다 돼 집에 돌아왔을 때까지도 밤새워 일하고 있는 누나였어.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나를 혼내거나 술 한잔 따라주지 않았어도, 누나도 지치고 힘들 텐데 묵묵히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백 마디 말보다 진한 자극을 받았지. 선배의 멘토는 누나. 굳이 말하지 않아도, 행동으로 보여준 누나가 자신의 멘토라고 이야기한다. - 내게도 멘토가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한 적이 있었다. 주위에서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긴 하지만_ 항상 내 기대에 못미치는 이야기들과 진심이 담기지 못한 이야기들을 들을 때면 고마운 마음보다 답답한 마음이 앞섰다. 그래서 뭔가 조언이 필요한 때면 자기계발서를 싫어하는 나임에도 불구하고, 미친듯이 자기계발서를 찾아 읽기도 했었고, 그때마다 내 멘토는 책의 저자가 되기도 했고, 책의 내용이 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동안 내가 고개를 돌리지 않아 보지 못했던 아빠는, 항상 나의 첫 번째 멘토가 되어 주었는데, 철없는 나는 그걸 조언이 아니라 잔소리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항상 현재 내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고 말해주는 남자친구가 멘토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 그리고 선배를 보며 깨달았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토닥거려주지 않아도, 행동으로 멘토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세상에는 내 멘토가 되어줄 사람은, 무수히 많다,는 것을.

 

 

 

 

 

 

전 회사에서 야근을 하고, 철야를 하며 발주처히 타협하자. 생각을 했었었다. 내가 야근을 하고 철야를 한 것은 분명 회사에 한 푼이라도 더 이윤을 남게 하기 위함이었는데도 말이다. 그 까닭은, 수금을 해야하는데, 깎인 돈에서 더 깎으려는 얄팍한 발주처와 공사금액에서 마찰이 있었고, 그 상태다 보니 당연히 수금이 늦어지고 그에 불만이 있는 사장님이, 야근과 철야는 oo씨가 근무시간에 집중을 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었고, 그 부분에서 ‘아, 그렇게 생각하시면 그쪽에서 해달라는대로 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리고, 몇 천만 원이 원래 공사금액에서 까였다. 뿐만 아니라,  마찬가지로 설계를 해놓고 도면을 죽어라 그려놓으면 발주처에서 마음에 들어하지 않으면 당연히 그쪽에서 ‘어디에서 보니까 이렇게 해놨던데, 이것처럼 했으면 좋겠는데...’라고 말하면 원하는 대로 해줘야 하는 법. 결국은 다 내 새끼인 것처럼 해야 한다는 거야. 내가 낳는 거나 다름없는 일이니까. 내 새끼를 품고 있을 때 애정이 없다면 태교 자체가 잘못된 거 아닐까? 무슨 일을 하든지 내 새끼라고 생각하고 예쁘고 건강한 아이,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그런 아이가 태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일하는 게 나를 위해서도 곧 태어날 작업물을 위해서도 좋다는 말씀! 그래, 그게 맞는건데, 내가 그런 마음을 쏟을 수 있었던 때는, 원도급에서 원하는 작업들 뿐이었다는 것. 그러니까, 아이러니하게도 내 새끼인 것처럼 해도 하도급 업체에서만 있었던 내게는 해당되지 않는 부분이었지만, 적어도 - 응, 맞아요. 그렇게 해야지요. 라며 고개를 주억거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가장 불안해하고 초조해하고 있는 것. 잠시 숨 고르기 정도 어때? 멀리뛰기 위해 잠시 몸을 움츠리는 정도? 몸을 잔뜩 움츠리고 기다렸다가 힘을 팍 줘서 뛰어올라야 하는 시점도 필요하단 거지. 100m 달리기처럼 처음부터 죽어라 달리는 건 결국 100m밖에 못 가고 지쳐버릴 수 있으니까. 나를 위한 투자도 아끼지 말고, 여름을 위해 몸을 만들듯 앞날을 위해 잠시 숨 고르기 하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래. 사실 나, 이 생활이 좋다고 말하기는 했어도, 언제까지나 좋을 수는 없는 법. 이 생활이 한 달도 되지 않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이고, 뭐고, 먹고 살기 위해서는 이제 그만 세상과 타협해야하지 않나, 하는 안일한 생각에 빠져있었음을 고백한다. 물론,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그 안일한 생각이 머릿 속을 완전하게 지배하지 않는 한, 당분간은 좀 더 내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고민하고, 또 고민하여, 구체적인 미래 설계를 해야겠다고 느끼며, 조금은 자신감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다. 선배, 소주_ 고마워요. 잘 마셨어요! 다음에 또 한 잔 해요. 그땐, 제가 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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