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주 - 진주를 품은 여자
권비영 지음 / 청조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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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녀가 사라졌다. 그녀가 사라졌다 한다. 그 여자는 그 년이 사라졌다.”라고 말했다.

 

결코 보아서는 안 될, 아버지가 휘두르는 폭력의 한계를 본 그녀는 가출을 결심한다. 제주도,였다. 안심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악착같이 그녀를 찾아내어, 그녀의 머리채를 우악스레 잡아채는 어머니, 뒤에서 그런 그녀를 비웃는 아버지. 더 이상은 안 되었다. 그녀가 사랑하는 에민, 그가 살고 있는 나라 터키로 다시금 몸을 싣는다. 그곳에서 만난 파샤. 가족,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고, 가족에 대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은주, 내게 김이설 작가의 환영에서의 서윤영을 연상케 했다. 아닌 줄 알면서도 그 지독한 현실을 위태로이 살아내었던 그 여자처럼, 소위 등신짓을 하면 어쩌지. 내가 이 책을 어떻게 끝까지 읽어내야 하지,에 대한 끊임없는 걱정은 그녀가 두 번째 가출을 감행하는 순간, 비로소 안절부절하던 마음이 조금은 놓이게 된다. 잘했다, 잘했다. 연신 토닥이며. 하지만.

 

 

 

 

사람과 사람, 문명과 문명의 융합은 좀 더 오랜 시간과 좀 더 깊은 교류가 있어야 해결되는 문제였다. p303

 

책은, 폭력으로 얼룩진 가정을 견딜 수 없어 짐을 꾸릴 수밖에 없었던 은주의 문제 외에도, 그녀가 떠나기 전에 다문화센터에서 한국어 강사로 일하며 가르쳤던 국제결혼 이주 여성들의 고충을 조명한다. “아저씨? 아니 이년이 미쳤나? 너한테 들어간 돈이 얼만데 그따위 소리를 해.” 사람을 돈으로 사온다,는 것. 일종의 인신매매. 그들이 새로운 가정을 생성해나가는 과정 자체가 불순하기 때문에, 그들은 새 가정에 마음을 온전히 놓질 못한다. 이를테면, 메싸의 얼른 돈 벌어서 우리 가족한테 좋은 집을 지어 주고 싶어요,에서 우리 가족은 고국에 있는 가족이며, 그것이 그녀에겐 진정한 가족이다.

 

 

 

 

“(……) 사실 자식이 부모를 용서한다는 말은 있을 수 없는 말이란다. 자식은 언제나 용서를 받아야 할 존재야.” p253

 

결국, 끝내, 가족이다. 그녀가 家族이라고 믿고 지내왔던 사람들,의 비밀이 벌거벗은 몸뚱아리처럼 밝혀졌을 때에도 매몰차게 뒤돌아서지 못한 것은 그동안 남몰래 쌓아둔 이 있어서가 아니었을 거다. 그저 가족이었던 혹은 가족이라고 믿고 왔던 사람들이, 가족이 아니라고 한 시점부터 가족이 아닐 수 없게 되는 건 아니니까. 그래서, 그녀가 돌아왔다. 그녀는 곪아터진 상처를 고스란히 감싸 진주를 품어내었다. 그 진주가 세상에 온 빛을 내게 될 터다. 당신의 진주는 안전한가?

 

 

 

 

 

누구에게도 이야기 할 수 없었다. 성희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었다. 친하다는 것은 서로의 균형이 맞았을 때 솔직해질 수 있는 관계였다. p118

 

 

누구에게나 타인의 인생에 대해서는 너그럽다. 그것은 어쩜 자신의 인생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 것이다. p121

 

 

인간은 누구나 똑같이 소중한 존재야. 하나의 뜨거운 심장으로 숨을 쉬고, 두 개의 눈으로 세상을 읽고, 두 귀로 세상을 듣고, 두 팔과 두 다리로 세상의 고난을 이겨 내는 거지. 피부 색이나 언어나 혹은 가난하다는 것으로 차별해서는 안 되지. 삶의 질은 노력하기에 따라 변하는 거니까.” p146

 

사람 사는 게 어디서나 비슷한 거 같아요. 사는 곳도 그렇고 사람의 신념이나 사는 방식도 대동소이하다고 봐요. 행복한 삶이 최종의 목표 아니겠어요? 행복의 척도가 다르기는 하지만 말이예요. (……) 불행은 스스로 자초하는 것, 사람에 대한, 타인에 대한 이해는 내 마음의 깊이만큼 인 것 같아요.” p214

 

 

 

 

세상은 원망이나 분노를 안고 살기엔 너무 짧다네. 나로 인한 것이든 타인으로 인한 것이든, 이해할 수 있는 아픔이든 이해할 수 없는 아픔이든, 모든 원망은 스스로 이겨 내야 하는 거라네.” p256

 

 

 

소망은 한가지였다. 악몽을 꾸지 않기를! p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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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같은 시절
안드레아스 알트만 지음, 박여명 옮김 / 박하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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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이들이란 우둔한 존재다. 희망하는 일을 멈추지 못하기 때문이다. 설사 이제껏 현실에서 쌓아온 모든 것이 무너져버린다 해도 말이다. p125

 

 

 

음경을 가진 그가 태어난 직후, 베개로 그의 얼굴을 짓눌렀던 어머니. 카톨릭 신자였던 어머니는 아들을 죽이려 했던 죄책감으로 그를 사랑하는 아들로 부르지만, 누이가 태어난 이후에 어머니에게 그는 더 이상 사랑하는 아들이 아닌 의무의 대상일 뿐임을 직감한 그가 어머니의 사랑을 갈구하기 위해 발악하는 모습들 - 가령, 손톱을 물어뜯어 의 손톱이 없어진다던가, 코를 후빈다던가, 머리카락을 뜯는다던가, 배변행위를 거부하는 것들의 행위 - 엄마, 보세요. 나 피가 나요.” 그 말은, “엄마, 보세요. 나는 엄마의 사랑을 원해요.”의 것과 다름없었지만, 파멸의 끝에서 돌아오면 또 다시 외면하는 어머니. 고위험 속에서만 어머니에 대한 권리를 느낄 수 있었던, 애처롭고 처량하며 가엾은 한 어린 짐승. 안드레아스 알트만.

 

 

그리고, 어느 순간,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프란츠 사버 알트만. 그렇게.

 

2차 대전의 나치친위대 대원이었던 아버지가 돌아온 알트만 하우스에는 암묵적으로 전쟁이 선포되었다. 첫 번째 희생양은 나약한 어머니. 하지만 어머니가 쫓겨나면서 안드레아스, 그의 유예기간도 끝난 것과 다름없게 되고, 그때부터 프란츠 사버 알트만의 로 길러지게 된다. 아버지가 막내아들에게 주는 달콤한 취침 전 선물이라는 것은 네 번의 따귀 세례,가 전부였던 그의 유년시절,은 전쟁으로 인한 폐허에서 살아난 아버지에 의해 다시 한 번 선포된 알트만 하우스의 전쟁에서 으스러지고 짓밟힌 채로 나동그라져 파괴된 개의 새까만 심장이었음을. 그리고 열아홉의 나이가 되는 해, 그는 광분한 목소리로 아버지 아니, 개자식에게 소리치며 알트만 하우스에서의 독립을 선언하고는 그 길로 그곳을 빠져나간다. “만프레드, 놔둬! 그래 봤자 저 개새끼는 영원히 이해 못 해!”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 늙은이는 여전히 개자식이었고, 나는 여전히 패배자였다. p235

 

 

그는 거랏(쇠 목조르개)을 이용해 아버지를 처형하는 꿈을 꾸는 때를 제외하고는, 두 발로 걸어다니는 개,였고 말하는 개,였으며 아침에 눈을 뜨고 저녁에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도 개,였다. 그렇게, 그는, , 개 같은 시절,을 살아내었다. 안드레아스, 그의 실제 이야기라는 개 같은 시절의 이 책은, 분노로 이글거리는 문장이 아닌, 객관적인, 흡사 제 3자의 입장에서 쓴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담담하다. 그래서 더욱 애끓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살갗에 남은 상처들을 어루어 만져주기에는 부족함을 고백한다. 실체로 존재되는 이야기인 까닭에 어떻게든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특히나 한 가정이 가장에 의해 파괴되는 것이기에.) 안드레아스 알트만은 아버지를 세계적으로 개자식으로 만들어놓았다. 물론 그에게 주어진, 또 그가 길러진 환경에서 어쩔 수 없다, 생각은 되지만 그는 책의 끄트머리, 그러니까 마흔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죽은 아버지를 인간적으로 그것도 마음 깊이 이해하게 된다. J에게 분노 섞인 목소리로 이 책을 왜 냈는지 모르겠어!”라고 말했다. 나는 이 책을, 썼을까,보다는 왜 출간했을까,에 의구심을 갖게 되는 거다. 글을 씀으로써 자기의 상처를 치유받기 위해서? 그렇다면 왜 쓰다,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내다,로 끝내야했을까. 이미 아버지를 이해했다면서. 그게 글을 쓰면서든, 이미 다 쓰고 나서든. 참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 더 솔직하게 말해볼까. 개자식에게 파괴된 유년시절을 치료받기 위해, 그 치료비를 이 책으로 보상받기 위한 글쓰기,로밖에 보이지 않다고 말한다면, 너무 모진 말일까. 또한 나는, 아버지 목소리만 들어도 오줌을 지리고, 배변까지 본다는 어머니가 살아있다는 전제하에, 그 어머니가 이 책을 읽는다면- 그 후의 파장도 생각해봄직 하다. 그러기엔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이지만. 그는 이 책을 냄으로써, 비참했던 자신의 유년시절을 내보임과 동시에, 부모가 나란히 그들 자식의 유년시절을 파괴한 라는 것을 발표했다. 이 책, 정말이지 (여러 의미로)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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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장 속의 치요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신유희 옮김, 박상희 그림 / 예담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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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가 된 남자, 이상하리만치 저렴한 월세방을 얻었다. 그런데 벽장 속에서 밤마다 나타나는 여자아이. 벽장 속의 치요, 한 여자를 좋아한 두 남자, 그리고 그들의 우정 call, 쌍둥이 딸 어머니의 러시아 수프, 애인을 죽인 남자, 시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방문한 청소업자 예기치 못한 방문자, 음식으로 서로를 죽이려는 부부 살인 레시피, 빨리 죽기를 바라는 시아버지를 간병하는 며느리에게 시아버지가 선물하는 반격 냉혹한 간병인, 숙부가 남긴 집과 고양이 늙은 고양이, 숨바꼭질을 하다가 사라진 여동생을 찾기 위해 나선 언니 어두운 나무 그늘, 어린시절 물에 빠져 죽은 친구를 그리워하는 신이치의 자전거

 

 

 

 

결론부터 말하자면, 무서우면서도 유쾌하다. 무서우면서도 유쾌한 이야기라니. 이런 조합이 성립이 되는 걸까? 호러라고 따지면, 이 책의 제목인 벽장 속의 치요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신이치의 자전거다음으로 무난했던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렇다, 이 책은 단편. 단편임을 알고 나서 ? 이거 뭐야! 설마 단편이야?”라는 내 말에 벨라씨 지금 단편이라 실망하고 있다.”라고 말하던 J 옆에서 단편이라고 툴툴대던 나. 하지만 단편은 참 반갑게도, 짬을 내서 읽기엔 참 적격이라는 매력을 가지고 있어서, 잠깐잠깐 틈이 날 때마다 읽었는데, J의 근무가 야간일 때 읽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난 참 무서웠다. 특히나 냉혹한 간병인은 읽다가 소름이 쫙 돋아서 불이 꺼진 거실에 나가기도 무서웠을 정도였으니까. 책을 다 읽고 마지막 책 뒤편을 보게 되었는데, call에서 당신은 이 소설을 반드시 두 번 읽게 될 것이다.”라고 써있었다. 순간 웃음이 푸핫. 역시나. 나도 해당되었던 것. 단편은 장편의 한 조각일 뿐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어서 어느 순간 잊혀진다는 사실 때문에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이 책은 오랫동안 기억이 날 것만 같다. 그만큼 흥미진진했지만, 남는 게 많지는 않은, 그저 재미로만 읽었던 책,으로 남을 것 같다. 다음엔 작가의 다른 책도 읽어봐야지,싶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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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인간
이석원 지음 / 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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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대 위 독서대에 놓여있어 곁눈질로 보기만 했을 뿐인데, 책은 금세 라벤더 향이 날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라벤더 차와 함께였던 까닭이다. 라벤더향이 짙은 차를 마시며 책을 읽었고, 바로 다음날, 오랜만에 벨라다방에서 티타임을 가지자는 그에게 어제 먹어보니 라벤더 차가 참 괜찮더라.”라며 권해주기까지 했었다. 책에 대한 감상을 써야하는데, 기껏 홍차이야기라니, 너무 뜬금포다. 아직 머릿 속이 정리가 되지 않은 까닭이다. 어떠한 물음에 대해. 어쨌든 내게 실내인간은, 라벤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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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서평을 쓰며 책에 대한 감상을 슬슬 정리를 해야지, 싶어 이 밤에 컴퓨터를 켜고 다시 모니터를 응시하지만, 여전히 해답을 찾지 못했다. 이런 상태에서의 감상,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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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우, 용휘, 제롬, 소영. 그들- 아니, 실질적으로는 용휘의, 아주 어쩌면 방세옥의 이야기. 1.집주인은 왜 용우에게 옥상에 올라가지 말라고 했는가. 2.용휘는 왜 자신의 집에 초대하지 않는가. 3.용휘가 방세옥일까. 4.방세옥은 정말 권순원의 글을 표절한걸까.……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물음표가 너무 많다. 그것은 신경 쓸 게 그만큼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읽으면 읽을수록 자꾸자꾸 물음표가 생겨나고, 그 물음표는 또 다른 물음표를 낳았다.

 

 

 

 

 

사랑했던 사람의 냄새를 영원히 기억하고 싶었던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인생에는 간직할 수 있는 게 그리 많지 않다는걸. 삶의 이유가 되어주었던 사람이 떠나간 뒤, 용휘는 매일 조금씩 눈에 보이지 않게 사라져가는 것들을 기억하려 애쓰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래서 늦기 전에 이 모든 기억을 글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결사적으로 글을 썼고 고대하던 성공을 거두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옥상을 되찾는 것이었다. 죽어 있던 꽃밭을 살려내야 했기 때문이다. p254-255

 

 

결국 사랑, 사랑이었다. 아무 것도 아닌 그가 삶의 목표를 설정하는 데 있어서, 그의 언저리를 지르르- 울리는 것이 사랑,이었다는 거다. 왠지 좀 시시하다. 사랑이었다니. 그깟 사랑타령이라니. 그러면서도 나는, 사랑에 다친 그에게 연고를 발라주며 감싸 안아줄 수밖에 없는 (매우 지독하리만큼) 시시한 여자다.

 

 

 

 

자네는 인생이 별로 달콤하지 않은가봐. 빵을 그렇게 많이 먹는 걸 보니.” p41

 

삼십 분 동안에 타르트 세 개를 먹어치우는 용우에게 용휘가 했던 말이다. 어찌, 당신의 인생은 좀 달콤한가? 혹은, 달콤해졌는가?

 

 

 

-

 

 

 

묻겠다. 당신에게 어느 날 절대로,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은 무언가가 생긴다면 당신은 그것을 어떻게 갖겠는가. p262

 

 

내가 아직까지도 해답을 찾지 못한 것, 이것이었다. 내게는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은 무언가,가 없었던 까닭이다. 아니 어쩌면, 용휘의 (무언가였던) 사랑은, 그의 인생을 쥐고 흔들 만큼의 강력한 파워를 가져서 나도 내 인생에서 그만큼의 파워를 가졌던 것을 생각해내려 무던히 애를 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살면서 어떤 것도 그렇게 표현할 만큼, 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할 만큼 간절하지 못했으니까. 어쩌다보니 그것을 내내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러다보니 내 인생에 회의감이 드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 때문에 조금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생각한다. 나의 터닝포인트는 건축이었고, 내 옆에 있는 그이,. J. 조금 포괄적이지만, 아주 작게, 대답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정말 절대로,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라면, 필사적으로. 하지만 그 필사적,이라는 것이 지금 어떻게 하겠다고 해서 그대로 실행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앞서 라벤더보다야 덜하겠지만 뜬금없이) 도리어 나는 그런 생각에 미친다. 내가 누군가에게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밑줄긋기

 

 

 

늘 그렇지 뭐. 정말 특별한 일은 일생에 한 번 정도밖엔 일어나지 않는 법이니까.”

 

한 번도 안 일어날 수도 있고. 후후.” p47

 

 

 

“() 사람이 누굴 좋아하고 헤어지는 데 이유라는 게 그렇게 부질없는 거더라고. 그러니 누굴 어떻게 만나든 아, 우린 그냥 만날 수밖에 없어서 만났구나, 그러다 헤어져도 아, 헤어질 수밖에 없어서 헤어졌구나 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거야. 이유 같은 거 백날 고민해봤자 헤어졌다는 건 달라지지 않으니까.” p57

 

 

 

고통을 견디는 법은 한 가지밖에 없어. 그저 견디는 거야. , 지금 아무리 괴로워죽을 것 같아도 언젠가 이 모든 게 지나가고 다시 내 마음이 편안해지는 순간이 오리라는 믿음. 그거만 저버리지 않으면 돼. 어쩌면 그게 사랑보다 더 중요할지도 몰라.”

 

내가 그런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아저씨.”

 

믿어. 믿으면 아무도 널 어쩌지 못해.” p64

 

 

 

시간이 지나면 늘 그렇듯 잊힐 일이었다. 세상 모든 화나는 일에 일일이 개입했다간 내 생활이 남아나지 않을 테니까. p70

 

 

 

그래서, 사람의 일생이란 어린 시절의 상처를 평생 동안 치유해가는 과정이라고 하는지도 모르죠.’ p137

 

 

 

그때, 화면이 바뀌느라 암흑이 되어버린 사각의 브라운관 안에 소파에 누워 웃고 있는 용휘의 모습이 무슨 액자 속 흑백사진처럼 담겨졌다. 순간 난, 왠지 그를 거기서 꺼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친구를. 그 정체 모를 사각의 틀 안에서. p143

 

 

 

용우야

 

 

넌 진심이 뭐라고 생각하니?”

 

글쎄요. 뭐 거짓 없는 솔직한 마음?”

 

그래. 그러면 그 진심은 어떻게 알 수 있지?”

 

글쎄요. 어떻게 알지? 허허…… 그냥 믿으면 되나.”

 

맞아. 믿지 않으면 진심도 진실도 없어. 결국 진심이란 건 증명해 보이는 게 아니라 믿어주는 거라고.” p208

 

 

 

 

내가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다는 건 나도 아는데, 그런 너는 뭘 가졌냐고 묻는 거야. 비꼬는 게 아니라 정말 알고 싶어서 그래. 방세옥이 내 걸 뺏어가서 내 인생이 요 모양 요 꼴이 됐어요. 그딴 거 말고 너라는 사람이 원래부터 갖고 있던 거, 널 지탱하게 하는 거, 너한테서 아무도 훔쳐갈 수 없는 거. 그게 뭐냐고. 그게 알고 싶다고.” p218

 

 

 

나는 그애의 자유가 죽음보다도 더 두려웠었다. 그래서 떠나기로 했다. 그날, 마지막으로 그애를 꼭 끌어안고 나서 집으로 돌아와 입고 있던 티를 벗어 얼굴에 묻고는 한참을 울었다. 좋은 냄새가 났다. p254

 

 

 

묻겠다. 당신에게 어느 날 절대로,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은 무언가가 생긴다면 당신은 그것을 어떻게 갖겠는가. p262

 

 

 

그때 나는 알았지. 내 평생의 꿈은 언제나 내 목을 조르기만 했다는걸.” p265

 

 

 

, 찍겠습니다. 약간씩만 더 붙으세요.” p277

 

 

 

저는 이제 또 혼자네요.”

 

용우야.”

 

.”

 

인생을 비관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어떻게 되는데요?”

 

더욱 엿같은 일이 너를 기다려.”

 

……

 

그러니까 절대로 비관하지 마. 알았어?”

 

…….” p278

 

 

 

정말 사랑했던 사람하고는 영원히 못 헤어져, 용우씨. 누굴 만나든 그저 무덤 위에 또 무덤을 쌓는 것뿐이지.” p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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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리 부는 사나이 - 제15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기홍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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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계에 발 들여놓을 수 있는 건 아직 그곳을 가보지 않은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야. 중요한 건 그 순간을 음미하는 거야. 막 책장을 넘기기 직전의 설렘과 기대, 한 발짝씩 내디뎌 갈 때의 즐거움 같은 걸 말이지. 정복의 쾌감만을 생각하는 건 수집가들이나 하는 짓이야. 그리고 시간의 힘을 이기고 살아남은 진짜 책들은 각 분야에 그리 많지 않아. 그러니까 이미 넘겨버린 페이지들을 아쉬워하면서 천천히 읽으라구.” _ P105-106

 

 

 

 

가지고 있는 책들 중 선물받은 책들과, 소장하고 싶은 책들을 제한 후 몇 권의 책을 팔고, 오랜만에 책구입도 할 겸해서 알라딘 중고서점을 찾았다. 참 오랜만에 가는 서점인데도 불구하고, 마음이 금세 포근해져온다. ‘내가 다른 일에 열중하고 있을 때에도 사람들은 책을 많이 찾는구나. 내가 그동안 너무 책을 등한시했었네.’하는 자괴감을 가진 채로 책들을 훑었다. 그 중 저자의 피리부는 사나이를 마주했고, 책장을 뒤적거리는데 쳐져있는 형광펜. 얼마나 좋으면 형광펜을 다 그었을까,하며 읽었고, 순식간에 그 문장이 가슴께에 콕 박혀버렸다. 어느 순간 나는 책을 읽을 때 형광펜보다 포스트잇 플래그를 더 애용하게 되었다. 금세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하지만 그것은, 그저 책에 낙서를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변명하는 말에 지나지 않음을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읽으며 긋고싶어,라는 때아닌 욕심으로 형광펜이 그어져있지 않은 다른 책을 찾아서 구매했다. 이 책과의 인연은 그러했다.

 

 

 

 


형 전 말이죠, 세상이 쓸데없는 것으로 가득 찬 무의미한 곳이라고 생각했어요. 필요 이상으로 시끄럽고 복잡하고 과장되어 있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수연이를 알게 되면서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애는 제게 의미의 시작이었다구요. 제가 이 세상에서 다른 의미나 가치를 찾을 수 있따면 그건 그애덕분일 거예요. 그건 마치…… 그건 마치 코기토 같은 거예요. 데카르트의 코기토. 데카르트한테는 그게 모든 진리의 기초였잖아요. 모든 것을 의심해도 의심할 수 없는 한 가지. _ P121

 

 

수연,은 ‘나’의 마음을 자극했다. 그런 수연을 위해 ‘나’는 ‘피리부는 사나이’를 찾아나서고, 이야기의 무대가 런던으로 바뀌면서 ‘나’의 발걸음이 전보다 빨라지기 시작했고 동시에 나,도 조급해했다. 런던으로 간 후 ‘피리부는 사나이’를 찾는 일에 헛걸음치는, 반복되는 이야기들에 루즈하다, 느껴질 즈음 ‘나’는 헉씨를 만나고 니콜라스를 만나게 된다.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를 모티브로 한 김기홍의 「피리부는 사나이」가 태동되었다. 작품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인 내 결론부터 말하자면, 참 이렇게까지 쌩뚱맞을 수가 없다. 달짝 지근한 연애가 살짝 담궈져있는 성장소설인줄 알았다가, 추리소설인줄 알았다가. 끝끝내 책의 성질을 꼬집지 못하고 나는 이 책을 ‘김기홍’이라 부르기에 이른다. 우회적이지 않으면서 우회적인 그의 문장들은 내게 우호적으로 다가왔고, 결국 그것은 매력적이다,에 미친다. 작가의 사색이 진득하게 묻어나는 이 책은, 내가 이렇게까지 아껴가며 읽은 책이 언제 있었던가,싶을 정도로 여유를 부렸지만, 그러면서도 조급해했다. 그저 작가의 템포에 맞춰 같이 걸어가면 될텐데 나는 여유로운 척,을 해댔으니 말이다. 이야기일줄 알았던 남은 페이지가 심사평이었음을 깨닫는 순간이, 이야기가 다 끝났다고 깨닫는 순간이었으며, 이야기 결말에서의 아쉬움이 아닌, 이야기가 끝이 났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워 남은 페이지가 심사평이라는 사실에 배신감까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결말을 두어 번 더 읽은 후에 이야기가 어디까지 더 전개되길 바랐던 것인지. 남은 페이지가 고작 심사평이었다는 것을 알았다면 좀 더 야금야금 읽을 수 있었을까,하는 아쉬움일 게다. 또한 심사평의 몇 줄을 읽으며, 책을 덮고 표지의 ‘제15회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을 발견했고, 놀라서 옆에 있던 J에게 “이게 이 작가 당선작이래!”라며 쫑알쫑알거렸다. 이후에 기대감으로 다른 작품이 있었는가 찾아보았지만 이 작품이 그의 최신작이라는 사실은 아쉽게만 느껴진다.

 

 

 

“이 책 괜찮은가요?”라고 묻는 이에게는, 장르가 확실한 작품을 좋아하는 편이라면 “당신의 혹평을 기대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겠다. 책에는 문학, 철학, 미술, 음악이 한데 어우러져 있어서 조금은 현기증을 일으킬 수 있다는 말과 함께. 하지만 내겐 참 괜찮았던, 괜찮은 책,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작가,라고 마무리해본다. 이보다 더 주관적일 수는 없으니까. 나,는 언젠가는 반드시 만나게 될 또다른 세계를 향해 걷기 시작한 ‘나’의 발을, 참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나, 수연, 우진, 정현, 이반. 그리고, 피리부는 사나이. 안녕. 나는 이제 내 안의 ‘피리부는 사나이’를 만나러 가야겠다. 어쩐지, 나의 ‘피리부는 사나이’가 들려주는 연주는 요람에서 빽빽거리며 울고 있는 아기가 금세 잠이 들 정도로 평화로웠으면, 참 좋겠다.

 

 

 

 

 

 

 

 


사람 사이의 관계란 한번 형성되고 나면 그 양상을 바꾸기가 쉽지 않다. 한번 생겨난 물길을 바꾸려면 커다란 고사가 필요하듯 일단 관계에 일정한 흐름이 생겨나면 그 흐름은 특별한 노력 없이는 달라지지 않는다. _ P27

 

 

그러한 대화의 구도, 우리 세 사람이 마주 앉아 이루는 삼각형의 구도가 내겐 더할나위없이 아정적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있는 동안은 마치 생활의 번잡한 일들 따위는 전부 사라져버린 것처럼 한없이 느긋한 기분이 들었다. _ P73

 

 

수연과 나는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소소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도 있었고, 비할 데 없이 중요한 것처럼 느껴지는 이야기도 있었다. 시간의 흐름 속에 거대한 망각의 바다로 흘러가버린 대화가 있는가 하면, 마음 한구석에 오랫동안 섬처럼 남는 대화도 있었다. 시간이 쌓여가며 깨닫게 된 것은 중요한 이야기일수록 기억에 오래 남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 당시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이야기들은 지금은 대부분 잊혀져버렸다. 어쩌면 그중 일부는 기억하고 있되, 그것을 중요하게 느꼈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오히려 가장 일상적인 이야기, 반복되는 말버릇, 사소한 몸짓이나 표정 같은 것들이 시간의 파괴력을 이기고 살아남아 수연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녀의 웃는 방식, 이따금 내게 눈을 맞출 때의 표정, 그녀의 말이 갖는 독특한 리듬, 그런 것들. _ P83

 

 

“버렸다는 말은 좀 이상한 것 같은데. 버린다고 버려지는 것도 아니고. 형은 그저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거야.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 거니까.” _ P113

 

 

“사람들은 대개 공통점보다 차이점에 신경쓰니까. 차이점들이 하나하나 벽으로 변하는 거지” _ P117

 

 

“오해받는 것도 싫지만 오해를 내 입으로 해명하는 일은 더 싫어. 해명이란 건 하면 할수록 오히려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 그리고 내가 하는 말을 사람들이 꼭 믿어주는 것도 아니잖아.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생각한다고.” _ P136

 

 

혼자있을 때 인간은 다른 사람은 알 수 없는 존재가 된다. 친구도, 가족도, 연인도, 다른 누구도. 어쩌면 우리가 외로운 것은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_ P139

 

 

“너는 부재를 이해하는 게 아니라 존재를 이해해야 해. 우진이는 너에게 어떤 존재였지? 이제 우진이는 그를 아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만 존재해. 그걸 이해하는 게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야.” _ P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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