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실내인간
이석원 지음 / 달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화장대 위 독서대에 놓여있어 곁눈질로 보기만 했을 뿐인데, 책은 금세 라벤더 향이 날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라벤더 차와 함께였던 까닭이다. 라벤더향이 짙은 차를 마시며 책을 읽었고, 바로 다음날, 오랜만에 벨라다방에서 티타임을 가지자는 그에게 “어제 먹어보니 라벤더 차가 참 괜찮더라.”라며 권해주기까지 했었다. 책에 대한 감상을 써야하는데, 기껏 홍차이야기라니, 너무 뜬금포다. 아직 머릿 속이 정리가 되지 않은 까닭이다. 어떠한 물음에 대해. 어쨌든 내게 실내인간은, 라벤더다.
-
이제 서평을 쓰며 책에 대한 감상을 슬슬 정리를 해야지, 싶어 이 밤에 컴퓨터를 켜고 다시 모니터를 응시하지만, 여전히 해답을 찾지 못했다. 이런 상태에서의 감상, 괜찮을까.
-
용우, 용휘, 제롬, 소영. 그들- 아니, 실질적으로는 용휘의, 아주 어쩌면 방세옥의 이야기. 1.집주인은 왜 용우에게 옥상에 올라가지 말라고 했는가. 2.용휘는 왜 자신의 집에 초대하지 않는가. 3.용휘가 방세옥일까. 4.방세옥은 정말 권순원의 글을 표절한걸까.……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물음표가 너무 많다. 그것은 신경 쓸 게 그만큼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읽으면 읽을수록 자꾸자꾸 물음표가 생겨나고, 그 물음표는 또 다른 물음표를 낳았다.
사랑했던 사람의 냄새를 영원히 기억하고 싶었던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인생에는 간직할 수 있는 게 그리 많지 않다는걸. 삶의 이유가 되어주었던 사람이 떠나간 뒤, 용휘는 매일 조금씩 눈에 보이지 않게 사라져가는 것들을 기억하려 애쓰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래서 늦기 전에 이 모든 기억을 글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결사적으로 글을 썼고 고대하던 성공을 거두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옥상을 되찾는 것이었다. 죽어 있던 꽃밭을 살려내야 했기 때문이다. p254-255
결국 사랑, 사랑이었다. 아무 것도 아닌 그가 삶의 목표를 설정하는 데 있어서, 그의 언저리를 지르르- 울리는 것이 사랑,이었다는 거다. 왠지 좀 시시하다. 사랑이었다니. 그깟 사랑타령이라니. 그러면서도 나는, 사랑에 다친 그에게 연고를 발라주며 감싸 안아줄 수밖에 없는 (매우 지독하리만큼) 시시한 여자다.
“자네는 인생이 별로 달콤하지 않은가봐. 빵을 그렇게 많이 먹는 걸 보니.” p41
삼십 분 동안에 타르트 세 개를 먹어치우는 용우에게 용휘가 했던 말이다. 어찌, 당신의 인생은 좀 달콤한가? 혹은, 달콤해졌는가?
-
묻겠다. 당신에게 어느 날 절대로,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은 무언가가 생긴다면 당신은 그것을 어떻게 갖겠는가. p262
내가 아직까지도 해답을 찾지 못한 것, 이것이었다. 내게는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은 무언가,가 없었던 까닭이다. 아니 어쩌면, 용휘의 (무언가였던) 사랑은, 그의 인생을 쥐고 흔들 만큼의 강력한 파워를 가져서 나도 내 인생에서 그만큼의 파워를 가졌던 것을 생각해내려 무던히 애를 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살면서 어떤 것도 그렇게 표현할 만큼, 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할 만큼 간절하지 못했으니까. 어쩌다보니 그것을 내내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러다보니 내 인생에 회의감이 드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 때문에 조금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생각한다. 나의 터닝포인트는 건축이었고, 내 옆에 있는 그이,다. J. 조금 포괄적이지만, 아주 작게, 대답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정말 절대로,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라면, 필사적으로. 하지만 그 필사적,이라는 것이 지금 어떻게 하겠다고 해서 그대로 실행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앞서 라벤더보다야 덜하겠지만 뜬금없이) 도리어 나는 그런 생각에 미친다. 내가 누군가에게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밑줄긋기
“늘 그렇지 뭐. 정말 특별한 일은 일생에 한 번 정도밖엔 일어나지 않는 법이니까.”
“한 번도 안 일어날 수도 있고. 후후.” p47
“(…) 사람이 누굴 좋아하고 헤어지는 데 이유라는 게 그렇게 부질없는 거더라고. 그러니 누굴 어떻게 만나든 아, 우린 그냥 만날 수밖에 없어서 만났구나, 그러다 헤어져도 아, 헤어질 수밖에 없어서 헤어졌구나 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거야. 이유 같은 거 백날 고민해봤자 헤어졌다는 건 달라지지 않으니까.” p57
“고통을 견디는 법은 한 가지밖에 없어. 그저 견디는 거야. 단, 지금 아무리 괴로워죽을 것 같아도 언젠가 이 모든 게 지나가고 다시 내 마음이 편안해지는 순간이 오리라는 믿음. 그거만 저버리지 않으면 돼. 어쩌면 그게 사랑보다 더 중요할지도 몰라.”
“내가 그런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아저씨.”
“믿어. 믿으면 아무도 널 어쩌지 못해.” p64
시간이 지나면 늘 그렇듯 잊힐 일이었다. 세상 모든 화나는 일에 일일이 개입했다간 내 생활이 남아나지 않을 테니까. p70
‘그래서, 사람의 일생이란 어린 시절의 상처를 평생 동안 치유해가는 과정이라고 하는지도 모르죠.’ p137
그때, 화면이 바뀌느라 암흑이 되어버린 사각의 브라운관 안에 소파에 누워 웃고 있는 용휘의 모습이 무슨 액자 속 흑백사진처럼 담겨졌다. 순간 난, 왠지 그를 거기서 꺼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친구를. 그 정체 모를 사각의 틀 안에서. p143
“용우야”
“네”
“넌 진심이 뭐라고 생각하니?”
“글쎄요. 뭐 거짓 없는 솔직한 마음?”
“그래. 그러면 그 진심은 어떻게 알 수 있지?”
“글쎄요. 어떻게 알지? 허허…… 그냥 믿으면 되나.”
“맞아. 믿지 않으면 진심도 진실도 없어. 결국 진심이란 건 증명해 보이는 게 아니라 믿어주는 거라고.” p208
“내가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다는 건 나도 아는데, 그런 너는 뭘 가졌냐고 묻는 거야. 비꼬는 게 아니라 정말 알고 싶어서 그래. 방세옥이 내 걸 뺏어가서 내 인생이 요 모양 요 꼴이 됐어요. 그딴 거 말고 너라는 사람이 원래부터 갖고 있던 거, 널 지탱하게 하는 거, 너한테서 아무도 훔쳐갈 수 없는 거. 그게 뭐냐고. 그게 알고 싶다고.” p218
나는 그애의 자유가 죽음보다도 더 두려웠었다. 그래서 떠나기로 했다. 그날, 마지막으로 그애를 꼭 끌어안고 나서 집으로 돌아와 입고 있던 티를 벗어 얼굴에 묻고는 한참을 울었다. 좋은 냄새가 났다. p254
묻겠다. 당신에게 어느 날 절대로,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은 무언가가 생긴다면 당신은 그것을 어떻게 갖겠는가. p262
“그때 나는 알았지. 내 평생의 꿈은 언제나 내 목을 조르기만 했다는걸.” p265
“자, 찍겠습니다. 약간씩만 더 붙으세요.” p277
“저는 이제 또 혼자네요.”
“용우야.”
“네.”
“인생을 비관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어떻게 되는데요?”
“더욱 엿같은 일이 너를 기다려.”
“……”
“그러니까 절대로 비관하지 마. 알았어?”
“네…….” p278
“정말 사랑했던 사람하고는 영원히 못 헤어져, 용우씨. 누굴 만나든 그저 무덤 위에 또 무덤을 쌓는 것뿐이지.” p2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