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토지 제1부 1 (보급판)
박경리 원작, 오세영 그림 / 마로니에북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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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청소년 토지』를 처음 만났다. 나는 그것을 꽤 빠른 시간에 읽어내렸던 기억이 난다. 스무 살이 넘은 이후에도 생각이 나서 그곳을 다시 찾아 1권부터 주르륵 읽어내려가기 시작했었다. 그래서 나는 이십 대 후반인 작년에 토지를 본격적으로 읽어나가겠다며 토지 1부 1권을 홀딱 사버렸다. 마침 경상남도 하동에 있는 최참판댁으로 여행을 가기로 했던 시기였다. 한꺼번에 모든 책을 사지 않은 것은 대출할 시에 권수에 제한이 있던 『청소년 토지』를 읽을 때처럼 그때그때 한 권씩 읽어가는 재미를 느끼고자 함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1부 2권에서 멈추어버렸다. 등장인물도, 그들의 성격도 다 알고 있으며, 어떤 상황인지도 다 알겠는데, 도무지 읽히지 않는 특유의 사투리가 나를 힘들게 했던 탓이었다. 토지』를 읽고자 했던 마음은 그렇게 사그라드는 듯했다.

만화 토지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읽지 않은 것은 처음에 만화로 읽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등장인물이 매우 많은데 그 묘사를 한 번에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그런데 토지를 제대로 읽어나가지 못하는 나를 보며 괜한 자책감과 함께 만화 토지로 다시 한 번 시작을 해볼까? 하는 무모한 도전이 생겨버렸다. 만화가 시작되기 이전에 지금은 별세한 故 오세영 화백의 서문이 있었는데, 그 글을 읽자 선 하나하나에 애정과 깊이가 담겨있어서 호락호락하지는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화를 읽어나가다 보니, 역시나였다. 등장인물이 많으니 혼란스러울 것 같다는 내 생각은 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가. 17권 중 고작 1권만 보았을 뿐인데, 등장인물들은 똑같은 사람이 없었고, 각기 다른 매력을 풍기고 있어서 이 사람이 누구지? 이 사람이 그 사람이었나? 하는 혼선이 생길 틈조차 없었다.

사실 나는 만화 토지를 아이들이 보아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것은 섣부른 판단이었다. 만화로 된 것이라고 할지라도 사투리도 원작의 표현을 최대한 따랐으며, 속담이나 관용구 표현은 * 표기로 본문 하단에 뜻풀이를 해두었다. 마로니에북스의 대하소설 토지를 읽을 당시에, 각주가 가장 뒷부분에 별첨 되어 있어 책 뒤를 수시로 들락거렸었던 부분이 불편했다면, 여기서는 그럴 것이 없어 좀 더 편했다는 말을 하고 싶다. 하지만 만화의 특성상 만화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고, (어쩌면 오세영 화백이 살아계시다면 그렇지 않다고 펄쩍 뛸 일일지도 모르겠다.) 나머지 여백에 글을 써넣는 작업이기 때문에 들쑥날쑥한 자간의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이었다.

만화 토지 1권에서는 거시적인 관점에서의 이야기는 별당아씨와 구천, 조준구의 등장이라고 볼 수 있으나, 미시적인 관점에서의 이야기는 바우할아범의 죽음, 용이와 월선, 강청댁의 질투, ​강포수 그리고 귀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귀녀는 2권에서 주요하게 치고 나오겠지만, 1권에서는 말 그대로 암시일 뿐, 이렇다 저렇다 할 만한 것이 없으니. ㅡ 나는 만화 토지를 읽고 나서 다시금 흥미가 돋아 이번 기회에 토지에 다시 불을 지펴볼까. 하고 있는 참이다. 헌데, 만화 토지부터 읽어야 하는지 대하소설 토지부터 읽어야 하는지 즐거운 고민에 빠져있다.

 

 

오탈자

인물 계보에서 이용과 강청댁은 혈연관계(-)가 아닌 부부관계​(=)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P.112  *돈이 지랄 긴가 (본문 하단) ▶​ 돈이 자랄 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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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즈 안의 여자
윤정옥 지음 / 문이당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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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어나가는 도중에 야트막한 한숨이 자주 새어져 나왔고, 신경질적으로 집어던지기도 몇 차례였다. 다 읽고 난 뒤에는 참았던 숨을 크게 몰아쉬며 책을 구석으로 몰아넣었다. 혼란스러웠고 정리가 되질 않아서 시간이 조금 지난 지금 읽은 책을 정리해보겠다고 책을 곁에 두고 한 번 더 훑었다.

잘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내고 무직이 된지 일 년이 된 남편 민규, 시장의 한 코너에서 토스트와 커피를 팔며 집안의 가장노릇을 하고 있는 아내 여강. 그리고 그들의 딸, 효림ㅡ.
여강은 평소에 친하게 지내는 은향(윤도엄마)이 내미는 ‘만 38세까지.’라고 적힌 광고지에 있는 구인광고를 보고 함께 면접을 보러 가게 된다. 면접관과 면접을 볼 당시, 어쩐지 좋은 예감이 들었는데, 불합격이라는 통지를 받았고 반면에 함께 면접을 보았던 은향은 합격이 되었다는 말을 듣게 된다. 이후 여고 동창생들과 나이트클럽에 갔다가 면접관이었던 세진과 조우하게 되고, 자신이 불합격이 된 이유를 듣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에 이끌려 이른바 ‘불륜’을 저지른다.

“연인 사이에, 혹은 부부 사이에 누군가 바람을 핀다면, 그건 바람을 피게 한 사람이 잘못한 거야.” 라는 어쩌면 얼토당토않은 생각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모든 선택과 행동에는 책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한 상태에서, 그 책임을 아우를 수 있을 때에야 그 선택과 행동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한 가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순간의 기분은 평생을 책임지지 못한다는 것. 이다.
까지 쓰다가, 이 내용들을 다 지워야 할까? 하고 잠시 생각했다. 이 책은, 육체적인 사랑보다 정신적인 사랑이 상위에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내가 쓴 위의 말은 구겨진 채로 쓰레기통에 들어가는 것이 옳을 정도로 쓸모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굳이 두는 까닭은, 그 이유가 여강이 민규에게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세진에게서 사랑을 느꼈다고 한다면 어쩌면 내가 한 말과 부합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다.

하지만, 그 이야기(육체적인 사랑보다 정신적인 사랑이 상위에 있다는 것)만 담기에 그 외의 필요 없는 (혹은, 결론이 명확하지 않은) 나뭇가지들이 너무나도 많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를테면, 수원 댁이 키우는 고양이(=영매)가 없어졌다 라든지, 키스방에 가고 싶은 장애인의 성욕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든지, 여강의 불우했던 유년시절이라든지, 점집도사의 집적거림이라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그 어떤 것도 제대로 노출되어있지 않았다. 이리 찔끔, 저리 찔끔하면서 툭툭 건드리기만 하는 것들.
유독 가장 깊고 넓게 다루었던 이야기는 세진의 ‘성’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성 불구에서 비롯된 ‘성도착증’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히틀러도 성 도착증을 보였으며 그것은 권력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고 짐작하며 작가 트라우들 융에의 책을 인용했다. 이 부분은 내가 이해를 잘 하지 못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굉장히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돌프 히틀러에 대해 내가 잘 알고 있는 독재자의 모습이 아닌 다른 측면을 보고 있자니, 이 책은 성도착증을 옹호하려는 책인가. 하는 생각이 들며, 거부감이 일었다.

또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던 부분은 세진의 성불구를 여강이 지레짐작하며 자신이 그것을 치료해줄 목적으로 직접 정신과를 찾아 상담을 받았다는 부분이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성불구에 대해 작가가 쓴 이야기들은 흡사, 성불구에 대한 논문이라도 읽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어 집중을 하지 못했고, 이후 세진의 죽음으로 인해 유치장에 갇힌 여강이 민규에게 미안하다는 일언반구도 없이 “나가면, 이혼해 드릴게요.”라는 말을 보자마자 나는 신경질적으로 책을 집어던지고야 말았다. 하지만 민규는 그런 여강을 용서한다. 하지만 세진의 49제를 지내주고 싶어서 없는 살림에 은향에게 100만원을 꾸어서 49제를 지내주었다는 말은 또 뭐란 말인가. 정신과를 가서 상담을 받은 것도, 49제를 지내주는 것도, 물질적인 결핍을 가진 여성이 쉽게 무작정 할 수 있는 행동들이던가.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책이 굉장히 절망적이었다. 나와 맞는 부분이 단 하나도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불우했던 (혹은 사랑받지 못 했던) 유년시절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여강이 혼자의 몸이 아니라 본인의 딸아이가 있었는데, 그녀는 딸아이에게 사랑을 주면서 키웠단 말인가? 그런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개인적으로 나는 나의 유년시절이 불우했다고만 표현하지는 않는다. 다만, 부모님의 맞벌이로 약간의 트라우마가 생긴 것은 있다. 나는 그 기억으로 인해, 나에게 아이가 생긴다면 내가 유년시절 가졌던 그러한 생각들을 내 아이가 가지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삶을 세밀하게 계획을 했다면, 여강은 ‘본인의 삶’만을 본 것이다. 이것이 과연 아이를 가진 엄마로서 가능한 일인가? 하고 되묻게 된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무엇에 초점을 두고 읽었어야 하는지 모르겠고, 책의 저자가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작가의 말을 보고도 찾아내지를 못 했다. 나는 여전히 이 책이 무척이나 혼란스럽다. 이렇게 서평을 써야 하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오탈자 p.82 17째줄 은향은 속이 부글부글 끌어대는걸 참고 삭혔다. ▶ 끓어대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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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살자, 고민하지 말고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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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살자, 고민하지 말고’ 2번가 이누야마 집안의 가훈. 그곳의 세 자매. 아사코, 하루코, 이쿠코ㅡ 가장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은 단연 아사코였다. 이 책에 대해 가장 먼저 쓰고 싶은 말은, 난 이 책이 무척이나 갑갑했다는 것이다. 물론, 일본여성들의 삶을 내가 알 수는 없지만, 요즘처럼 지위고하가 없는 시대도 드물진대, 이따금 마주치는 ‘남편=주인님‘의 개념을 보고 있노라면, 여전히 남성과 여성은 상·하위 개념으로 생각하고 실천하는 일본 사회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점을 아사코와 유키에를 통해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데, 어쩐지 아사코 쪽이 더 멍청하다고 생각이 든다.


에쿠니 가오리의 전반적인 작품들에 나와 있는 특성, ‘옆에 있을 때보다 떨어져 있을 때 행복한 감정을 느낀다는 점’은 이 작품에서도 나타난다. 허나 그것은 기존의 작품들과는 조금 다르다. 그동안의 남편들(내가 매해 빼놓지 않고 읽는 『빨간 장화』에서도 역시.)이 ‘무관심’이 주를 이루었다면, 이번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 어떤 것도 정당화될 수 없는 ‘폭력’이 스며들었다. 나는 그동안 에쿠니 가오리의 책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적게 읽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이런 직접적인 폭력이 나온 것은 처음이어서 조금 당황하기도 했다. 남편 구니카즈의 폭력은 결혼 2년 무렵부터 시작이 되었다고 했다. 우리가 기함할 것은, 그녀는 현재 결혼 7년차다.




어쩌면 일반화된 오류일지는 모르지만, 주워듣기로는 일본남성은 지배하는 것을 좋아하고, 일본여성은 스스로 지배당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책의 부분에서 상당히 우스웠던 것은, 구니카즈는 본인이 잘못한 것일까? 하며 생각하면서도 아사코의 미안하다.는 말에 반응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흡사, 내가 며칠 전 행동주의이론 중 자극-반응과 같다.고 생각해본다.) 그리고 아사코의 신체에 아무렇지 않게 손을 대고야 만다. 이것은 분명 더러운 합리화다. 당신이 미안하다고 했으니, 나는 이럴 권리가 있어. 하는.



물론 정말 목을 조르는 것일 리가 없다. 아사코는 늘, 그렇게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꿈에서 개어난 것처럼 모든 것이 원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 p.105


폭력은, 고작,의 이유였다. 고작, 음식이 맛있다는 말에 엄마에게 전수를 받은 요리라고 말한 것 (결혼한 지 얼마나 됐는데 아직도 반찬을 장모님께 물어봐야 하냐.는 것이 그 새끼(단어가 억세지만)의 억지였다.)과, 고작, 자신의 컵이 빈 것을 눈치 채지 못하고 물을 따르지 못한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아사코의 반응이 너무나도 당황스럽고 아연한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타인이 보기엔 둘 다 똑같은) 유키에를 동정하여 유키에의 남편에게서 자유를 주고 싶어 한다. 하지만 본인은 유키에의 남편에 비해 ‘구니카즈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야.’ 라고 생각한다. 구니카즈도 구니카즈지만, 아사코 역시 얼마나 멍청하고 아둔한 여자인가. 그런 아사코를 바라보는 동생인 하루코나 이쿠코가 느끼는 답답함을 제3자인 나도 고스란히 느낄 수가 있었다.


사실 내가 가장 선망(이라는 단어가 적합할 정도로)한 타입은 하루코였는데, 아사코에 묻혀서 하루코를 제대로 볼 수가 없었던 것이 아쉽다. 개인적으로 하루코는 정말 대단한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누군가를 사랑할 때, 없으면 못 살 것처럼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사랑하더니, 헤어짐 앞에서는 냉정한 자신을 되찾는 것 (물론, 그것은 실연이라는 힘듦이 따라오지 않을 수 없지만 그것을 겪는 모습까지도.)에 경각심까지 느껴졌다. 나는 그러지 못했기 때문일까. 그것은 무척이나 매력적인 모습.이라는 생각에 부러움이 증폭됐다. 물론, 나는 기혼이라 저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될 테지만은. 하하.



* 아사코 욕을 실컷 하다 보니, 서평 자체가 난잡해졌네. 결코 이런 이야기를 쓰려고 한 게 아니었는데. 암튼 요즘 에쿠니 가오리, 매력 있네. 아니, 한 해가 거듭할수록,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들이 이제와서 반항심을 일으키는 것도 같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반짝반짝 빛나는』은 여전히 가까워지지 않지만.)




차와 집의 공통점. 실수하지 않는 한, 지켜준다.

기억은 냉동된 식품 같은 것이라고 아사코는 생각한다. 오래되기는 했지만, 시간이 흘러도 그냥 거기에 있다. 썩는 일도 성장하는 일도 없다. p.49

상실감은 그저 여기에 ‘있을’ 뿐이지, 그것에 얽매이거나 빠질 필요는 없다. p.270 

 

“구니카즈 씨, 이 세상에서 나를 다시 한 번 찾아줄래?” p.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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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그리고 고발 - 대한민국의 사법현실을 모두 고발하다!
안천식 지음 / 옹두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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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믿었다. 아니 믿었었다. 언제부터, 어디에서, 어떻게 비롯된 믿음인지는 모르겠으나, 대한민국에 쓰레기도 못한 대통령, 정치인, 경찰, 군인, 의사들은 많을지언정, 법관만큼은 올곧을 것이라 생각해왔다. 타인의 자유를, 삶을 말 한 마디로 결정하는 사람인만큼, 그럴 것이라 은연중에 믿어왔던 것이리라. 하지만 그 믿음은 너무 가혹하게 깨졌다. 세상에 믿을 새끼 하나 없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인가 싶었다. 경험해본 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였다. 법의 원칙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세워지지 않았고, 법관이라는 것들은 그것에 대한 경중도 판단하지 못하며, 그것 또한 무엇을 근거로 그러한 판단을 내리는지에 대한 의심이 싹텄다. 오래전 드라마 「내 딸 서영이」에서도 이서영 역을 맡은 이보영 씨가 한 말이 생각난다. 타인의 삶을 결정짓는 것이 힘들어 판사를 그만두고 변호사를 하겠노라,고.

 

 

그리고 지랄도 염병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게도 내가 그러한 사건을 겪고 나서 줄줄이 진경준 검사장, 현직부장판사 성매매, 사채왕 뇌물수수 받은 前판사, 정운호 구명로비 판사 연루 의혹 등 뉴스에 재미난 사건들이 뜨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눈여겨보지 않을 사건들이었는데, 내가 커다란 구멍을 겪은 탓인지, 무척이나 재미나게 다가왔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한 일련의 거짓말 같은 사건들이.

그래서였다. 안천식이라는 변호사가 쓴 이 책이, 꼭 읽고 싶다고 생각했던 까닭이. 하지만 내가 간과했던 것은, 목차만 보고- 여러 사건을 다룬 것인 줄 알았고, 그에 근거하여 대한민국의 사법을 비판하는 줄로만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라 한 가지 사건에 대해 18차례 싸운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문장 해석에 따라 故기노걸 씨나 기을호 씨에게 실례되는 말일 수도 있지만, 이 사건을 바라보는 대한민국 사법은 무척이나 흥미롭게 여겨진다. (= 절대로 사건이 흥미롭다는 뜻이 아님을 오해 마시기를.)

 

 

 

 

D건설은 주택건설 사업을 위하여, 향산리 주민 24가구의 지주들과 토지에 대해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그중 한 사람인 기노걸 씨는 1997년 19억 6,000만 원에 토지에 대한 부동산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계약금과 중도금으로 9억 8,300만 원을 지급받았다. 하지만 D건설은 1998년 IMF 유동성 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H건설에게 승계하게 된다. 그 사이에 땅값은 천정부지로 올라 40억 원까지 오르기 시작했고, 기노걸 씨는 약속한 잔금지급기일 내에 잔금을 지급하지 않았던 점을 지적하며, 대금을 올려주지 않으면 H건설과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상황에서 2004년 기노걸 씨는 뇌출혈로 사망한다. 그리고 H건설은 곧바로 기노걸 씨의 장남 기을호 씨에게 D건설로부터 승계를 받았으며, 기노걸 씨와 1999년 재계약을 했다고 하며 땅을 내놓아라, 요구한다.

 

 

하지만,

계약서에 기재가 되어있는 필체는 아버지 기노걸 씨의 것이 아니고, 막도장이었으며, 기재되어있는 계좌번호는 1997년에 해지된 예금통장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 D건설의 계약서를 보고 H건설에서 승계계약서를 위조로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는가?

 

 

 

 

 

 

/ 대검찰청 문서감정실의 감정결과는 충격이었다. 사설 문서감정원장들도 대검찰청 감정결과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하면서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결과라고 하였다. 무엇인가 거대한 힘이 이 사건 전체를 지배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p.98

/ ​“에…… 꼭 재정신청 사건이라서 그런 것은 아니고, 항소하더라도 무죄 부분이 번복될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이고, 형량도 매우 적절하다고 판단되어 항소를 하지 않는 것으로 하였으니 그렇게 알고 계시지요.”

국민의 기본권은 그렇게 유린되어 가고 있었다. 그래도 대한민국은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 구석구석에서 오열하고 있는 피해자들의 모습은 단지 커튼 뒤에서 사라져가는 그림자에 불과할 뿐이다. p.165

 

읽는 도중, 몇 번이고 나는 너무나 화가 나서 그이에게 “나 이 책 읽기 싫어.”라고 말했다. 증인들의 뻔뻔한 거짓말들을 속아주는 거로 모자라, 증인신문조서엔 삭제된 진술이 있으며, 검사로부터 무시와 박해를 당하며, 상고를 하기 전부터 기각당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 무시한 후 상고를 해도 기각당하기 일쑤이며, 위증죄로 신고했더니 도리어 무고죄로 신고당하며, 뻔한 증거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묵살당하기 일쑤인, 또 당사자가 변론에서 주장하지 않은 사항(구상금 청구를 했을 뿐인데 부당이익금과 이자를 지급하라고 한 것)을 별도로 심리하여 판단하는 변론주의에 반하는 판결. 그런 이야기들을 어떻게 내가 태연히 읽어나갈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읽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힘도 없고 돈도 없고 빽도 없고 능력도 없는 대한민국 국민인 까닭이었다. 어쩌면 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다.

   

 


소위 말해서 힘없고 배경 없는 서민들은 두 눈 멀쩡히 뜬 채로 재산 잃고 억울한 죄까지 뒤집어쓰게 되는 것이 대한민국의 사법 현실인 것이다. p.101

 


10년의 법정 싸움 끝은, 기을호 씨는 땅을 빼앗기고 돈까지 빼앗겼으며, 건강까지도 빼앗겼다. 기을호 씨만 불쌍하게 되었다. 로 끝나고 만다.

그는 계약금과 중도금으로 받은 9억 8,300만 원에서 천정부지로 오른 땅값을 더 쳐서 받기는커녕, 애초에 계약했던 잔금도 다 받지 못 했다. 그 돈에서 기을호 씨는 철거보상비로 50%나 증액된 3억 원을 내야 한다고 법원은 판시한다. 그 철거보상비라는 것은 D건설과 계약 시에 이주 보상비에 대한 2억 원으로 약정했다. 하지만 H건설과의 계약서엔 그런 부분이 명시되어있지 않으며, 3억 원이라는 금액이 어째서 적정한지 어떠한 근거도 없다. 또한 얼마 전에는 H건설로부터 2차 재심과 상고심 소송비용의 지급을 요구받고 있다고 한다.

 

 

나는 고등학교 때 헌법을 달달 외우던 정치 시간이 참 좋았다. 그 헌법을 외우고 있노라면, 공산주의로부터 멀어진 기분이 들었고, 나는 마치 이 나라에 주인이라도 된 듯 의기양양해지기만 했다. 따라서 가장 좋았던 헌법은 제1조 2항이었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하지만 지금, 이 문장이 가당키나 한가? 법 또한 이 나라를 살기 위한 국민을 지키기 위해 나오는 것이거늘, 지금 법은 누구를 향해 칼을 겨누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

 

그리고 이 서평을 쓰며 마지막으로 나도 한 마디 해야겠다. 며칠 전 나는 대전고등법원에 민원을 제기한 바 있었다. 이유인즉슨, 불친절한 응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내가 모르는 일이 처리가 되어있었다. 왜 일처리가 그렇게 된 것인지 적어도 나는 알 권리가 있었다. 하지만 내가 물어보는 것에 그들은 앞뒤 설명 없이, “우리가 어련히 알아서 하지 않았겠나.”하고 말을 했다. 그 대응에 화가 난 나는 직접적인 사과를 원한다고 했었다. 하지만 앵무새처럼 반복되는 죄송하다는 서면에 나는 그보다 위에 있는 직급에 있는 사람과 통화를 요구했고, 통화에 의하면, “저는 그것이 잘못되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본인이 사과를 하고 싶다는데 어떻게 강제적으로 하라고 시킵니까?”라는 답변이었다. 기피 신청에도 소용없이 그쪽 감찰실로 들어갔고, 세 번의 똑같은 요구의 내 민원은 법 조항이랍시고 끼적거리며 강제적으로 민원을 종결시키겠다는 마지막 서면을 받았다. 그게 바로 ‘제 식구 감싸기’라는 것이지. 내가 이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는데, 서평으로나마 이렇게 싸지를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참으로 지체 높으신 분들이라 하잘 것 없는 민원인은 찌그러져 있어야 하지요. 참 잘났다, 니들.

/

그리고 책에 대해 한 마디 덧붙이자면, 읽기가 조금 힘들었다.

차라리 「소수의견」처럼 소설화되어 읽을 수 있었다면 좀 더 편했을까? 생각했지만, 그것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읽기가 힘들었다는 것은, 반복되는 이야기에 조금 지치는 느낌이었다.

어쨌든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당한 것에 부당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입 다물고 잠자코 내 권리를 찾아주겠지. 하고 있으면 아무도 내 권리를 되찾아주지 않으니까.

 

 

 

 

 

 

 

 

오탈자 p.155 11째줄

<증인A>가 거짓증언한 사실“이 있더라고, 이 사건 계약서가 위조되었다는 증거로 부족하다고 한다 ▶ 있더라도

오탈자 p.223 5째줄

그 외 2000년 2월경에 위조 작성된 정일석 등 4인 명의의 부동산매매계약서는 <증A>의 필적이 기재되어 있다는 점 ▶ <증인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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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두리 2025-07-03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도서출판 옹두리 입니다.
소중한 리뷰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기분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도서출판 옹두리 올림-
 

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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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떨떨했다. 그 얼떨떨함이 하루 동안 지속되었다. 왜 자꾸 그 생각이 하루에 수백 번, 수천 번씩 뇌 회전을 동안에도 계속 그 자리에 고여있는지 그 까닭을 알 수가 없었다. 오기와 장모, 그 행동과 말 하나하나들이 육중하게 머리를 눌러댔고, 급기야 두통이 일었다. 그 두통을 털어버리는 것이 다름 아닌 서평이라고 생각했는데, 한글 파일을 열어놓고도 얼떨떨했다.는 그 한 문장으로 서평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것 이상으로 부연 설명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따라서 나에게 편혜영 작가의 은 기--, 얼떨떨했다.로 끝날 예정이다.

 

 

 

하필 오기에게만 그런 일이 닥쳤다. 오기의 세상만 무너졌고, 오기의 삶만 갈가리 찢어졌다. p153

아내가 먼저 죽은 것이 오기에게는 다행인 걸까, 아내가 정말 정원 가꾸기를 즐겨 했던가, 무슨 생각으로 정원을 가꾸었을까, 장모가 오기에 대해 아는 것은 어디부터 어디일까, 장모가 판 그 구덩이는 정말 연못을 만들려고 판 것이 맞는 걸까, 장모의 생각은 무엇일까. 이 모든 것에 대한 대답은 그 어떤 것도 명확하지 않다. 그저 작가가 써둔 이야기를 읽어나가며 유추해야만 해야만 했고, 그것에 대한 대답이 맞는지 얼버무릴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설의 묘미는, 장모의 표정, 행동, -이 전부였다는 것에 있었다. 그 홀에 나는 완전하게 빠져버렸고, 미처 다 빠져나오지 못해 허우적거리고 있는 꼴이다.

 

 

 

소설은 구멍으로 시작되어 구멍으로 귀결되었다. 오기의 유년시절의 구멍을 읽으며, 당신도 그 구멍 속에 빨려 들어가지 않기 위해 살아내야만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삶을 지녔구나. 하고 생각했다. 유년시절의 구멍이, 아내를 만나 메워지는 듯하다가 다시금 눈에 뜨일 정도로 커져버렸다. 아마 불만족한 부부생활에 기인하여 온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오기는 학교 후배 제이와의 외도가 있었고, 그 구멍은 점차 커져갔다. 강원도 여행에서 생긴 교통사고는 그 구멍이 얼마나 큰지 확인시키는 일종의 ‘피할 수 없는, 그리고 피해서도 안 되는 하나의 필연적인 사건이었다. 처음부터 오기의 구멍은 메워질 수 없었는데, 그것을 오기가 몰랐던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리고 오기는 그 구멍 속으로 자의/타의에 의해 빨려 들어가고 만다. 그것은 누구의 탓도 아니다. 그저 그럴 때가 되어서였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계획되어있는 삶을 순차적으로 살고 있는데, 삶이라는 놈이 우연을 가장하여 잠시 도와주는 척하다가 곤경에 빠트리곤 종내는 구멍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을 입가에 미소를 걸쳐놓고 보는 것. 어쩌면 나의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얼떨떨함에서 빠져나와 비로소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오기는 인상을 찌푸렸다. 아내가 열중하는 일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응원하고 싶었다. 재능은 있지만 계속해서 헛된 시도를 하고, 어떤 성취감도 얻지 못한 채 비아냥과 조롱만 늘어가는 아내가 애틋했다. 오기가 지난 시간을 제 영역을 확장하는 데 보냈다면 아내는 시간을 보낼수록 홀로 남겨졌다. 확실히 젊은 시절의 아내를 생각하면 지금의 모습은 안타까울 정도였다. p.84

여기서 서평을 끝내려고 했는데, 이 이야기는 반드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가 하나 있다. 그것은 알게 모르게 굉장히, 치명적이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었다.

 

 

정원을 가꾸는 건 전문가한테 맡기고 당신은 다른 일을 해보는 건 어때?”

다른 일?”

이런 거 말고 당신이 성장할 만한 일 말이야.”

나는 이미 성장기가 지났어. 식물이야 계속 자라지만 사람은 아니야. 어느 나이가 지나면 더 자라지 않아.”

그런 성장을 말하는 게 아니잖아. 당신이 하고 싶은 걸 찾아서……

계속 성장하는 게 있기는 있어.”

그게 뭔데?”

. 암은 성장기가 다 지난 사람한테서 자라잖아.”

당신이 정말 하고 싶은 걸 해보라는 뜻이잖아.”

내가 지금 정말 하고 싶은 게 이거야.” (p.88-89)

 

 

대부분의 남자들은 어쩐 일인지, ‘자신의 삶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여자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어도, 그것은 원치 않는 일을 억지로 하는 일이라고 자신만의 선에서 치부해버리고 만다. 그리고 말한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할 필요는 없어. 하고 싶은 일을 해.” 그것이 진정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인지 아닌지도 모르면서. 원하지 않는다면 왜 그토록 그것에 매달리고 있는지 모르면서 쉽게 이야기하곤 하는 것이다. 아마 오기의 아내도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구멍을 메울 수는 없었어도 구멍이 더 커지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이 어쩌면 대화, 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어쩌면, 이미 아내는 =구멍에 빠트려진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이미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그 구멍에서 오기가 자신을 꺼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지도. (음, 모르겠다. 내가 너무 오기 씨의 아내에게 심취해버린 걸까.)

 

 

 

마지막으로, 장모가 읊던 다스케테 쿠다사이는 누구에게나 다 통용되는 말이었다. 장모에게도, 오기에게도, 아내에게도. 그리고 무엇보다, 힘든 삶의 진통을 겪고 있는 당신에게도, 말이다. 오기 씨의 구멍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빠지는지 확인하였다면- 이제 나의 삶의 균열은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 확인해봐야 할 차례다. 나는 그 구멍에 안 빠질 거라는 헛소리는 오만이자 착각이다.

 

 

오기 씨.

교통사고 의사 왈, 의학이 아니라 의지

열 살, 엄마의 죽음이 가져다준 구멍

변덕스러운 아내는 곧잘 생각의 가지치기를 한다

이사- 크고 작은 열네 개의 전구

강원도 여행, 운전은 오기 씨

아내의 반지 장모

8개월 만에 집에 돌아오다

장인- 트집 잡기 좋아함

장모- 시종일관 알 수 없는 표정

호루라기 2- 간병인 호출

간병인의 아들이 드나들기 시작

도둑질로 인하여 간병인이 내쫓김

다스케테 쿠다사이

 

오기와 장모는 서로에게 유일한 가족이 되었다.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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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탈자 p64 15째줄. 자연스럽게 그런 애기가 나온 것 같았다.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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