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즈 안의 여자
윤정옥 지음 / 문이당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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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어나가는 도중에 야트막한 한숨이 자주 새어져 나왔고, 신경질적으로 집어던지기도 몇 차례였다. 다 읽고 난 뒤에는 참았던 숨을 크게 몰아쉬며 책을 구석으로 몰아넣었다. 혼란스러웠고 정리가 되질 않아서 시간이 조금 지난 지금 읽은 책을 정리해보겠다고 책을 곁에 두고 한 번 더 훑었다.

잘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내고 무직이 된지 일 년이 된 남편 민규, 시장의 한 코너에서 토스트와 커피를 팔며 집안의 가장노릇을 하고 있는 아내 여강. 그리고 그들의 딸, 효림ㅡ.
여강은 평소에 친하게 지내는 은향(윤도엄마)이 내미는 ‘만 38세까지.’라고 적힌 광고지에 있는 구인광고를 보고 함께 면접을 보러 가게 된다. 면접관과 면접을 볼 당시, 어쩐지 좋은 예감이 들었는데, 불합격이라는 통지를 받았고 반면에 함께 면접을 보았던 은향은 합격이 되었다는 말을 듣게 된다. 이후 여고 동창생들과 나이트클럽에 갔다가 면접관이었던 세진과 조우하게 되고, 자신이 불합격이 된 이유를 듣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에 이끌려 이른바 ‘불륜’을 저지른다.

“연인 사이에, 혹은 부부 사이에 누군가 바람을 핀다면, 그건 바람을 피게 한 사람이 잘못한 거야.” 라는 어쩌면 얼토당토않은 생각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모든 선택과 행동에는 책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한 상태에서, 그 책임을 아우를 수 있을 때에야 그 선택과 행동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한 가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순간의 기분은 평생을 책임지지 못한다는 것. 이다.
까지 쓰다가, 이 내용들을 다 지워야 할까? 하고 잠시 생각했다. 이 책은, 육체적인 사랑보다 정신적인 사랑이 상위에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내가 쓴 위의 말은 구겨진 채로 쓰레기통에 들어가는 것이 옳을 정도로 쓸모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굳이 두는 까닭은, 그 이유가 여강이 민규에게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세진에게서 사랑을 느꼈다고 한다면 어쩌면 내가 한 말과 부합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다.

하지만, 그 이야기(육체적인 사랑보다 정신적인 사랑이 상위에 있다는 것)만 담기에 그 외의 필요 없는 (혹은, 결론이 명확하지 않은) 나뭇가지들이 너무나도 많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를테면, 수원 댁이 키우는 고양이(=영매)가 없어졌다 라든지, 키스방에 가고 싶은 장애인의 성욕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든지, 여강의 불우했던 유년시절이라든지, 점집도사의 집적거림이라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그 어떤 것도 제대로 노출되어있지 않았다. 이리 찔끔, 저리 찔끔하면서 툭툭 건드리기만 하는 것들.
유독 가장 깊고 넓게 다루었던 이야기는 세진의 ‘성’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성 불구에서 비롯된 ‘성도착증’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히틀러도 성 도착증을 보였으며 그것은 권력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고 짐작하며 작가 트라우들 융에의 책을 인용했다. 이 부분은 내가 이해를 잘 하지 못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굉장히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돌프 히틀러에 대해 내가 잘 알고 있는 독재자의 모습이 아닌 다른 측면을 보고 있자니, 이 책은 성도착증을 옹호하려는 책인가. 하는 생각이 들며, 거부감이 일었다.

또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던 부분은 세진의 성불구를 여강이 지레짐작하며 자신이 그것을 치료해줄 목적으로 직접 정신과를 찾아 상담을 받았다는 부분이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성불구에 대해 작가가 쓴 이야기들은 흡사, 성불구에 대한 논문이라도 읽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어 집중을 하지 못했고, 이후 세진의 죽음으로 인해 유치장에 갇힌 여강이 민규에게 미안하다는 일언반구도 없이 “나가면, 이혼해 드릴게요.”라는 말을 보자마자 나는 신경질적으로 책을 집어던지고야 말았다. 하지만 민규는 그런 여강을 용서한다. 하지만 세진의 49제를 지내주고 싶어서 없는 살림에 은향에게 100만원을 꾸어서 49제를 지내주었다는 말은 또 뭐란 말인가. 정신과를 가서 상담을 받은 것도, 49제를 지내주는 것도, 물질적인 결핍을 가진 여성이 쉽게 무작정 할 수 있는 행동들이던가.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책이 굉장히 절망적이었다. 나와 맞는 부분이 단 하나도 없었다. 개인적으로는 불우했던 (혹은 사랑받지 못 했던) 유년시절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여강이 혼자의 몸이 아니라 본인의 딸아이가 있었는데, 그녀는 딸아이에게 사랑을 주면서 키웠단 말인가? 그런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개인적으로 나는 나의 유년시절이 불우했다고만 표현하지는 않는다. 다만, 부모님의 맞벌이로 약간의 트라우마가 생긴 것은 있다. 나는 그 기억으로 인해, 나에게 아이가 생긴다면 내가 유년시절 가졌던 그러한 생각들을 내 아이가 가지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삶을 세밀하게 계획을 했다면, 여강은 ‘본인의 삶’만을 본 것이다. 이것이 과연 아이를 가진 엄마로서 가능한 일인가? 하고 되묻게 된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무엇에 초점을 두고 읽었어야 하는지 모르겠고, 책의 저자가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작가의 말을 보고도 찾아내지를 못 했다. 나는 여전히 이 책이 무척이나 혼란스럽다. 이렇게 서평을 써야 하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오탈자 p.82 17째줄 은향은 속이 부글부글 끌어대는걸 참고 삭혔다. ▶ 끓어대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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