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넘어지지 않는 몸을 만드는 스쿼트 발뒤꿈치 쿵 헬스케어 health Care 22
가마타 미노루 지음, 이윤미 옮김 / 싸이프레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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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휴, 가장 최근에 내 인생 최고의 몸무게를 갱신했었다. 갱신했었다,고 과거형으로 말하는 이유는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8월 초에 잰 체중이 7월 초에 잰 체중보다 3kg 이상이 불어있었는데,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고질적인 질병이 다시 심해졌나 싶었던 것이 가장 컸는데, 비단 그것만은 아닐 것 같았다. 그렇게 되면서 어느 순간부터 마시고 나서의 니글거림이 신경 쓰였던 믹스커피를 마시지 않기로 했고, 사무실에 늘 구비되어 있던 여러 가지의 과자를 먹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한 달이 다 되어가도록 나는 원래 그 체중이었던 사람처럼 유지 아닌 유지를 했다. 처음에는 “아닐 거야- 오늘 내가 너무 많이 먹었나 봐.”라고 생각하고 다음날 체중계에 올라갔을 때 나를 비웃던 그 숫자들이란... 점차 늘어가는 숫자들을 보며 약간의 우울감과 더불어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먹는 건 똑같이 먹었다...



하지만 내 목표는 어디까지나 체중이 아니라 근력이다. 신체의 근력을 기르는 것. (이라고 말은 하지만 체중에 얼마나 일희일비되는 사람인지 이번에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더 이상 늘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체중의 숫자가 바뀌었을 때 나는 얼마나 당혹스러웠던가... 오늘 내가 너무 많이 먹었겠지. 하면서 아침마다 체중이 그대로일 때 느끼던 그 막막함들은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래서 말을 번복한다. 나는 체중도 줄여야겠고, 근력은 늘려야겠다.



체중만큼 근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내가 누군가에게 쫓길 때 도망을 가야 하는데 다리에 근육이 갑자기 다 풀려서 자리에 주저앉게 되는 꿈을 여러 번 꾼다. 일 년에 못해도 열 번은 넘는 것 같다. 그 꿈을 꾸고 나면 며칠 동안 자각을 하면서 걷기 운동에 스쿼트를 병행하곤 했었는데 그건 근육처럼 스르르 풀려 그때뿐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이번에야말로 운동에 대한 의지 향상을 좀 높여보기 위해 평소에 잘 읽지 않는 운동에 관한 서적을 읽어보기로 했다는 게 이 책을 읽은 이유라면 이유가 된다. 평소에 나는 운동 서적을 전혀 읽지 않는 편인데, 그 시간에 “운동을 하면 되지, 왜 책을 읽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가 이 책을 읽는 게 좀 우습게 느껴지기도 했다.




저자는 70대의 남성으로, 현재 의료계에 종사하고 있다. 67세에 80kg에 달하며 건강관리를 시작했다는 그는, 현재는 9kg를 감량하면서 허리둘레는 9cm가 줄었다고 한다. 연령으로 보아 기초대사량이 현저히 낮을 텐데도 그런 결과를 이끌어낸 것에 대해 신기함을 넘어 존경심을 표하게 된다. 그러면서 저자는 자신이 한 운동들을 소개하는데 운동은 총 3가지에 플러스알파 정도가 되겠다.




1. 스쿼트

8년 전 나는, 자신감을 갖고 싶다는 이유로 헬스장을 다녔는데 그곳에서 운영하는 그룹운동에 매번 참여했었다. 그룹운동은 매번 강사님도 다르고 운동 방식도 달랐지만, 스쿼트는 매일매일 있었다. 처음에 스쿼트를 하면 허벅지가 두꺼워진다던데 등등의 말들이 많이 있었지만, 나는 스쿼트에 심취하여 스쿼트를 한 사람도 아니었고 그저 하나둘셋 구령에 맞춰 그것을 해내는 것이 목표의 전부인 사람이었고, 지금보다 허벅지가 더 두꺼워질 것 같지도 않아서 (휴) 열심히 따라 했었다. 드라마틱하지는 않았지만 분명한 변화들이 있었다. (그래... 사진 찾아보니 변화들이 있긴 있었네...)



2. 발뒤꿈치 쿵

발뒤꿈치 쿵은 발가락 끝으로 선 상태에서 발뒤꿈치를 쿵-하고 떨어뜨리는 운동인데, 이는 골다공증, 골절, 고혈압, 당뇨, 동맥경화, 뇌경색, 대사증후군, 치매 등을 예방해 주므로 강력 추천하고 있다. 스쿼트보다는 좀 더 쉬운 운동이지만, 이 역시 짬을 내서 실천하지 않으면 정말 하지 않게 될 운동 중 하나인데, 고작 발가락을 이용하여 발뒤꿈치에 압력을 가해 이 모든 것들을 예방하는 하나의 방법 중 하나라고 한다. 사실 이런 것들을 잘 믿는 편은 아니지만, 저자가 의료계에 종사하니 속는 셈 치고 믿어보는 것도 방법이겠다. 게다가 어렵지 않으므로 잠깐의 시간과 의지만 있으면 되기 때문에 중장년의 어르신분들도 쉽게 따라 하실 수 있어 부담스럽지 않을 것 같다.



3. 걷기

9월 중반으로 넘어가는 지금, 나는 7월 초의 몸무게를 되찾게(?) 된 지 3일 정도 되었다. (휴.. 아직도 한참 멀었다. 지금의 몸무게는 8년 전 내 최고의 몸무게다;;;) 굳이 이유를 꼽자면, 그동안 덥다는 이유만으로 걷기를 게을리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 있다. 하루 8,000보의 걸음이 얼마나 큰 원동력이 되었는지 이번에 새삼 깨달았다. 8월에는 덥기도 하고 갑자기 땀이 너무 많이 나서 찝찝하다며 하루 3,000보도 못 걸었던 날이 대부분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 역시 유동성이 있음을 깨달아야 하고, 꾸준히 노력해야만 한다.

저자는 빠르게 3분, 느리게 3분 걷기를 추천하고 있다. 평소에 일정한 걸음으로 걷는 편인데, 빠르게와 느리게를 병행하며 걸을 생각은 못했기 때문에 출근길에 일부러 차를 좀 멀리에 대 놓고서라도 해봐야지!




요즈음은 주간 목표를 이런 식으로 세우고 있는데, 몇 주간 내 목표는 ‘건강한 돼지 되기’이다. 스쿼트는 J와 함께 하고 있는데 10번 3세트를 하루 해놓고... 허벅지 안쪽이 너무 아파서 엄두를 못 내다가 오늘은 해봐야지 오늘은 해봐야지 하고 있는 중이다. 서평을 쓰는 오늘은 꼭 다시 할 거다. 그러면 내일 또 허벅지 안쪽에서 불이 나겠지. 흐으... 건강한 돼지가 되는 길은 참 어렵고 힘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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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멈춘 방 - 유품정리인이 미니어처로 전하는 삶의 마지막 이야기들
고지마 미유 지음, 정문주 옮김, 가토 하지메 사진 / 더숲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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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직업으로 삼을 수 없는 것들이 아주아주 많지만 개중에서도 생명과 죽음과 관련된 것은 더욱 그렇다. 최근에 읽었던, <머지않아 이별입니다>라는 소설에서 등장했던 장례 디렉터라는 직업을 접하게 되면서 그런 직업이 존재한다는 것이 생경했다. 세상에 없는 직업이라는 생각보다는 입에 올려본 적 없는 직업군이라 그랬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번에 읽은 책인 <시간이 멈춘 방>은 유품정리인이었다. 며칠 전에 이 직업이 티비프로그램에서도 나왔던 것 같은데 나는 보진 못하고 돌아다니는 캡처본만 봤었지만, 그 캡처본만으로도 어떤 고충을 느끼는지 알 것 같아서 마음이 많이 어두워졌었다.



유품정리인인 고지마 미유는 고독사로 생을 마감할 뻔했던 아버지의 돌연사 이후 죽음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2014년 스물두 살의 나이에 유품정리인의 삶을 시작했다고 하니 올해로 7년 차인 셈이다. 유품정리인이라고 하면 단순히 유품정리만을 해주는 줄 알았는데, 읽어보니 유품정리 외에도 쓰레기 집 청소, 특수 청소까지 하고 있다. 그러면서 고독사가 내 일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사람들이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고민을 많이 했다고 했다. 실제 고독사가 발생한 현장의 사진을 쓰다 보면 보는 이에게 충격을 줄 수밖에 없고 또 그것이 고인을 구경거리로 만드는 행위가 아닌지, 유족의 슬픈 기억을 들쑤시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럴 수는 없었다고. 그래서 저자는 고독사 현장에서 목격하는 방의 특징을 응축해 미니어처로 재현해냈다.

 

 

 

 

 

 

고독사를 방지할 수 있는 방책을 제안하려고 쓴 것이 아니라, 고독사의 현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로 받아들이게 하고 싶었다는 것이 이 책의 취지다. 그러면서 이 책을 읽는 동안 마음에 떠오른 사람이 있다면, 말을 걸고 얼굴을 보러 가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도 책의 말미에 써두었다. 책의 서문을 읽을 때도, 책의 본문을 읽을 때도, 서평을 쓰는 지금도, 저자는 참 인간적인 사람이구나라는 것을 느낀다.

 

 

 

 

 

 

쓰레기 집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어떠한 사정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채로 쓰레기 집에 사는 사람의 기질적인 특성이 게으름에 비롯되었을 것이라고만 생각해서 그렇다. 여전히 접객업이나 격무에 시달리는 사람들, 수집벽이 있는 사람, 정리 방법을 모른 채 혼자 살기 시작한 사람들이 쓰레기가 가득한 집에 산다는 사실은 이해할 수 없지만, 치매나 발달장애로 인해 정리 정돈이나 분류가 어려운 사람이나 스토커로 인해 쓰레기를 버리러 밖에 나가지도 못하는 고통을 겪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고서는 처음으로, ‘아, 그런 사정이 있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이사를 가도 같은 건물로 이사를 와서 밖에 빨래를 널 수 없었고, 봉투를 뒤질까 봐 쓰레기를 내놓지도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쓰레기들을 상자에 포장하여 이삿짐으로 위장해 빼내기로 했는데, 스토커가 모습을 드러내고 어디로 가는 거냐며 끈덕지게 물고 늘어졌다고 해서 곤란을 겪었다는 글이 쓰여있었다. 그렇다면 의뢰인은 얼마만큼의 고통을 겪고 지냈던 걸까.

쓰레기가 가득한 집에 사는 사람들 중에는 소중한 사람의 갑작스러운 죽음이나 이별로 인한 상실감으로 우울증에 걸려서 무기력하게 되어버린 사람들도 이야기하고 있다. 누군가가 옆에서 버팀목이 되어주지 않으면 금세 쓰레기 집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고. 그러면서 “난 저렇게는 안 될 거야.”라고 단언하는 사람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유품 정리를 하다 보면, 자칭 고인의 친구라는 사람들이 줄줄이 나타나 집 안을 염탐하며 이른바 돈이 될 만한 것들이나 자신이 쓰고 싶은 물건들을 점찍어둔다. 그러면서 “죽기 전에 나한테 준다고 한 거야!”라고 무척이나 당당하게 말을 한다며. 하지만 그 친구들만 그럴까, 가족도 그럴 텐데. 저자는 이 일을 하면서 가장 괴로운 점이, 인간의 이면이 드러나는 순간을 마주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한다. 티비나 책에서 겪는 것들도 마음이 힘들어지는데, 직접 그런 꼴을 보면 회의감이 얼마나 들까 싶다. 인간이 인간일 때에야 가장 인간다운 법인데.

 

 

 

 

 

 

생을 살 때에도 외로웠을 그들이, 생을 마감한 후에도 외로웠을 거라 마음이 착잡해진다. 짧은 페이지가 마음을 헤집어놓았고, 그 마음들이 정리가 되지 않는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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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따는 해녀
박형철 지음, 김세현 그림 / 학교앞거북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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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에 하늘에서 바다로 별이 떨어지는 꿈을 꾼 적이 있다. 바닷속에 있던 나는 바다로 떨어지는 별을 피하면서도 별을 만져보고 싶어서 가까이 다가갔던 그런 꿈이었다. 꿈에서조차 가까이서 본 별은 참 노랗다고 생각했다. 그 꿈이 인상 깊어 한동안 그 꿈을 길몽이라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별을 딴다고, 별을 따는 해녀. 입안에서 공글려본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쩐지 꿈에서 나는 해녀가 아니었을까 하고 잠시 생각해보곤 실없이 웃었다.

 

 

 

 

해녀들은 밤마다 별이 떨어진 바다로 가서 별을 따다가 등대에 넣어주니, 별의 기운을 받은 등대는 주변을 환하게 비춰주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바닷가 주변에 공장과 건물들이 들어서고 해녀들은 떠났으며 바닷물이 시커멓게 되었다. 밤바다를 밝혀줄 별은 보이지 않고 불가사리만 가득 남았다. 선희는 손녀 연주에게 밤마다 별을 땄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야기를 들은 연주는 별들을 따서 등대에 별을 넣어주었고, 30년 만에 등대에는 불이 들어왔다.

 

 

 

 

올해부터 시작된 전염병 시대를, 우리는 현재 아직까지도 경험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몇 날 며칠 내리던 비에 많은 피해가 속출하기도 했었다. 이는 우리가 이제까지 아무렇게나 살아왔던 방증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처음 가져봤다. ‘제로 웨이스트’라는 단어를, 나는 재작년에 처음 들어서 대출 알고는 있었고 실천을 하는 분들을 보면서 대단하다고 생각하고는 있었는데, 내가 해봐야겠다는 생각은 해보질 못했다. 편리함을 버릴 수가 없어서라는 것이 그 이유였는데, 상황이 이렇다 보니 조금씩 나도 그 움직임에 동참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현재 할 수 있는 것은, 마트에 장바구니를 가져가는 것과 종이컵 사용 대신에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것이 있다. 이건 다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현재 회사에서 텀블러를 매일 세척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어서 그날그날 쓴 텀블러를 출퇴근 시에 달랑달랑 들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종이컵 사용 대신에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것은 내게는 무척이나 귀찮은 일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텀블러를 열심히 들고 다니고 있다. 완벽하게 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조금씩 움직여봐야지 생각하면서.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읽어야 하는 동화책에, 이제는 환경에 대한 문제까지 등장을 하게 된 현재의 상황에 슬프기도 하다. 이러다가는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바다에 살던 인어공주는 너무나도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지금의 어른들이 아이들을 위해서 조금 더 노력해 주면 더 좋겠지만 나 먼저 잘 해봐야지. 나의 경우에는, (지금은 없지만) 언젠가는 태어날 내 조카를 생각하기도 하고, 내 친구의 아이들을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면 좀 더 의욕이 생기기도 하니까.

 

 

보고 있니 미래의 조카야? 고모가 너를 이렇게 생각한단다. :)

ps. 오늘 종이컵 하나 쓴 거 반성해. 근데 텀블러가 머신에 안 들어가서 어쩔 수 없었어.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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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각오로 살아 보라는 너에게
이다안 지음 / 파람북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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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여러 감정이 들었는데, 그런 감정 따위들을 다 서술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어쩌면, 분명 이 글을 볼 수도 있을 것만 같아서. 내 서평이 그에게는 또 다른 죽음의 이유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처음 이 책을 읽고 싶어 했던 이유는, 세상에 각기 다른 힘듦과 괴로움들이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다 잘 견뎠다. 하며 위로하고 응원해 주고 싶었다. 특히나 저자의 나이가 나와도 같았기에 그런 마음이 더했던 것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친절하거나 다정한 사람이 아님을 인지해야만 했다. 그런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무척이나 피로했고, 책을 다 읽고 나서는 깊은숨을 한참이나 내쉬었다.

 

 

 

 

 

부모에게 도망치듯 벗어나 들어간 셰어하우스에서 오손도손 잘 지내던 와중에 회사에서는 긴장을 하면 생기는 고질병인 복통이 점점 심각해져 퇴사를 하면서 이야기의 컨디션은 좀처럼 위로 올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셰어하우스에서 저녁을 먹고 죽음이 화두로 올라왔고 그것에 대해 저자는 묻는다.

 

 

"너희들은 왜 살아?"

"나는 누군가가 나를 고통 없이 죽여준다고 하면,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지금 당장 죽여 달라고 할 거야. 너희는?"

 

 

다른 친구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도 두 번째 문장에서 뜨악했다. 친한 친구가 아니면, 그리고 같은 마음인 친구가 아니라면 (앞뒤 상황 설명도 없이) 공감을 얻기 쉬운 이야기는 아니어서.

 

 

 

 

 

그냥 문득 누군가에게 목구멍까지 차오른 이 우울함을 토로하고 싶었다는(P92), 내가 여전히 병들어있는 나약한 환자라는 것을 누구든 제발 알아줬으면 한다는(P148) 부분들을 읽으며 마음 한편이 답답해졌다.

 

 

 

나한테도 그런 친구가 있었다. 본인이 힘든 것은 누군가에게 말을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런 성격의 친구였다. 어느 순간 내가 감정 쓰레기통도 아닌데 그런 얘기를 왜 듣고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어쩌다가의 고민, 어쩌다가의 짜증이 아니라 매번 그 소재로 이야기가 귀결되어버리는데 더 이상의 공감이나 응원이 힘들다고 판단이 되었기 때문에 너와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나도 덩달아 무기력해지기 때문에 니가 나아질 의지가 없다면 더 이상 너와 대화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미안했지만, 당시에는 그것이 내가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때 내가 그 애에게서 들었던 말은, 실망이라는 말이었는데, 그동안 내가 그 애의 말을 들어주었던 시간들을 후회하게 만드는 말이었다. 그 애가 1년 후 연락을 해왔지만, 나는 답장하지 않았다. 최소한의 고마움을 몰랐던 그 애가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그 애가 잘 지내고 있기를 바란다.

 

 

내 경우에는 매일매일이 행복인 사람은 괴상했고, 매일매일이 고통인 사람은 부담스러웠다. 사람은 똑같지는 않아도 삶에는 굴곡이라는 게 있어서 기쁠 때도 있고 힘들 때도 있다는 말을 나는 신뢰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 입장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어서 S나 유선이, L의 행동들을 어렴풋 이해가 됐다.

 

 

 

 

 

 

저자의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내게도 저자의 엄마 같은 사람이 가족으로 있기 때문에. "네까짓 게 뭐가 잘났다고. 니가 잘 하는 건 글씨 잘 쓰는 거, 그거밖에 없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게 서로를 할퀴어야 살아야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내가 힘든 것이 싫어 독립을 하며 절연을 택했다. 그래도 가족인데, 라는 말은 내게 무용하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는 진리를 몇 번의 시도 끝에 분명하게 알아차렸고, 더 이상은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으며 그와 연결된 다른 가족과도 연락을 끊을 준비가 되어있다.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있다면, 그 대상이 분명하다면, 나는 언제까지고 그것을 끊어낼 생각이 있다. 나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까. 나를 무방비 상태로 가만두지 않는다.

 

 

 

아픔을 치유하는 것은 아픔이라는 말에 반은 공감하고 반은 공감할 수 없다. 나의 경우에는 아픔을 치유하는 것이 아픔이 아니라, 같은 아픔을 겪었지만 결국은 그 아픔을 딛고 일어나는 과정을 보고 나도 나아질 수 있겠다고 희망을 품게 되는 것이었기 때문일는지도 모르겠다. 비슷한 경험이라 할지라도 언제까지고 고통에 몸부림치며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저 버티는 것이 전부인 사람들을 보면서는 오히려 의욕이 꺾였고, 힘들지만 잘 지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보며 위안이 됐다. 한없는 그 아픔 속에 나를 내버려 두고 싶지 않다. 천천히 의지가 될 때마다 나를 조금씩 들어 올려주어 제대로 된 숨을 쉬고 싶다.

 

 

 

저자는 몇 번이고 살기 싫다고 하고 죽고 싶다고 하지만, 방에서 엄마가 한 음식 냄새를 맡으며 자살 결심을 내려놓는 것은 선택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게 어쩔 수 없음에서 기인했을지라도, 그것 역시 선택이었다. 그러니까 더 이상은 누구 때문에, 라는 말은 자신의 삶에서 완전히 배제시켜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다. 누구 때문에,라는 말처럼 자신을 연민이 가득한 피해자로 만들어 세상을 보는 눈을 가리는 것도 없었으므로.

 

 

 

 

 

추신.

돈이 없어 아이들 원비를 밀리고 보일러를 낼 돈을 밀려 가스가 끊겼다는 친구에게 일을 하라고 한 적이 있었다.

친구의 남편은 쓰리잡, 포잡까지 뛴다고 했다.

이후로는 돈이 없다고 할 때마다 일을 하는 게 어떻겠냐라고 했고, 친구는 일을 하지 않을 핑계만 말했다.

언젠가부터 그 친구는 내게 돈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친구는 끝까지 모를 것이다.

돈이 없지만 일주일에 대여섯 번 배달을 시키는 친구에게,

돈이 없지만 티비는 60인치를 사는 친구에게,

돈이 없지만 중고차보다는 새차라며 차를 샀던 친구에게,

'그러니까 니가 돈이 없는 거야.' 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내가 도와줄 게 아니라면,

친구의 인연을 끊어버릴 게 아니라면,

입을 닫는 편이 나았으니까.

 

 

 

하지만 나조차도 예상할 수 없다.

친구가 이후에도 돈이 없어서 힘들다고 계속해서 말했다면,

나는 그 말을 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물론 내가 알지 못하는 부분도 분명 있을 수 있겠지.

하지만 그 뒤에까지 닿지 못한다.

나는 그 친구가 될 수는 없으니까.

 

 

 

 

추신2.

내 마음을 온전히 누군가에게 내비쳐 위로를 받는다는 것이 참 번거로운 일이라 느껴진다.

상대방은 정말 위로를 해주었지만 와닿지 않는 말도 참 많았고, 알게 모르게 상처도 받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같은 맥락으로 저자에게 여러 문장을 쓰다가, 어떤 말도 닿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이만 접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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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한한 위로 - 위로는 정말 그런 걸지도 모른다, 엉뚱하고 희한한 곳에서 찾아오는 것
강세형 지음 / 수오서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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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위로를 받기보다 위로를 하는 쪽에 속해있었다.

위로를 하는 게 힘들게만 느껴졌다.

난 분명 그렇게 이야기하려던 것이 아닌데 말이 딴 데로 새어나간 경우도 분명 있었다.

그럴 땐 그냥 입을 다무는 게 낫다는 것을 그땐 몰랐다.

하지만 내가 위로를 받는 상황이 되니 위로를 받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 이전에는 미처 몰랐다.

괜찮아요? 참 흔하더라고요. 나도 그런 적 있어요. 시간이 약이에요. 모든 게 다 잘 될 거예요. 따위의 말을 들을 때마다,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고,

흔하다는 말에 너도 그 일을 겪을 예정이냐고 억지를 부리고 싶었고,

나도, 혹은 내 주변에도 그런 적 있다는 말에 너도 내 상황과 한치도 다르지 않고 꼭 같았냐고 묻고 싶었으며,

(물론 그런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너만 그런 거 아니니 유난 떨지 마라.라고 꼬아듣기도 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에 얼마만큼 지나야 되는 것이냐며 소리 높여 묻고 싶기도 했고,

모든 게 다 잘 될 거예요.라는 말이 이미 다 끝나버린 상황에 폭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렇게 말한 이들이 내가 이렇게 된 것이 고소해서, 재미있어서, 심심해서 말을 하는 게 아니라 그게 정말 위로였다는 것을.

그러나 정작 나는 위로를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에 어떤 식으로라도 대답할 수가 없었다는 것을.

내가 꺼내지 않았는데 불쑥 꺼내며, 자꾸 나를 위로하려고 드는 사람들이 부담스러워서 자꾸만 도망가 버리고 싶었다.

정말 나를 위로해 준 것은,

오늘 밥은 뭘 먹었느냐고 물어봐 주는 것.

아무 말 없이 손잡아 주고 안아주는 것.

내 상태와 감정을 인정받고 이해받는 것.

그게 전부였다.

책을 읽을 수 없는 날들이 점점 길어졌다.

초반에는 책에서 위로를 받았다면, 그때뿐이라는 사실을 느낄 때면 얼마나 공허해졌는지 모르겠다.

읽다가 말고 읽다가 말고 하는 날들이 지속되면서 책을 손에서 놓는 날들이 많아졌다.

그러다가 눈에 띈 책이 있었다.

강세형 작가의 <희한한 위로>

강세형 작가의 책을 가지런히 모아둔 책장의 한편을 떠올린다.

에세이를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지만, 처음의 느낌이 좋았기 때문에 나는 그의 책을 늘 사서 책장에 꽂아둔다.

제목에서 풍겨오는 유혹을 떨치기가 힘들었다.

아마 다른 작가의 같은 제목이라면 아주 많이, 꽤 많이 망설였을 텐데, 강세형 작가니까.

예쁜 카페를 찾았다. 그곳에 난 <희한한 위로>를 가져가 그 위로들을 꼭꼭 씹었다.

24. 나의 구내염이 심해지기 시작했을 때, 나를 외롭게 만드는 말이 하나 있었다. “나도 그래.”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다. ‘피곤하면 나도 그런다, 아니 누구나 다 그러는 거 아니냐.’ 그럼 난 별것도 아닌 일로 징징거리는, 꾀병 부리는 애가 된 것 같아 민망하기도 하고, 외롭기도 하고, 어쩐지 좀 억울하기도 했다. 그냥 한두 군데 헐어서 아프다고 하는 게 아닌데, 매번 입안을 보여주며 ‘당신도 정말 이만큼 셀 수도 없이 많이, 심하게 허나요?’ 이럴 수도 없고. 그래서 언젠가부턴 부러 안 아픈 척 애를 쓰기도 했다.

위에 서술한, 내가 느꼈던 감정이었다.

나도 그랬어. 누구도 그랬어. 라는 말에, 너도 나와 상황이 꼭 같았느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

나 역시 그런 말에 대해 입을 닫아버렸다.

같은 일을 겪었다고 하더라도, 상황이라는 게 존재한다.

나 역시 J와 함께 겪은 이 일을, 우리가 받은 상처가 꼭 같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가 덜하고 더하고의 차이가 아니라 서로 처해있는 상황이 달랐다.

우리가 해야 하는 건, 우리 똑같이 힘들지가 아니라,

그때의 너는 얼마나 힘들었니. 하고 그때의 각자를 품어주는 일이다.

저자 강세형은 베체트 병이라는 희귀병 유전인자를 가진 환자였다.

이제까지 본인이 뭘 잘못하고 잘 못해서 자꾸 구내염이 생기는 줄 알았는데, 베체트 병이라는 진단을 받고 조금 웃었다고 했다.

굳이 따지자면 베체트라는 병이 잘못하고 잘 못한 것이었는데,

그동안 혼자 관리를 잘 못해서 덜 노력해서 등등의 이유로 얼마나 자책하고 살았는지에 대하여 짐작해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81. 나는 운이 좋은 삶을 살아왔던 게 아닌가 싶다. 아슬아슬이라 할지라도, 어쨌든 내 깜냥을 혼자 버텨낼 수 있는 삶을 살아왔던 거니까.

82. 내가 아무리 노력하고 애를 써도 극복할 수 없는 문제들이, 그것도 연달아 우르르 몰아치자 나는 한없이 작아졌고 무력해졌다. 혹시 내가 가진 운은 그동안 다 써버렸고, 이제는 견뎌야 할 날들만 남아 있는 건 아닐까. 산다는 것이 한없이 귀찮아지기도 했다. 그즈음 그런 나를 어색해하며 멀어져 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더 내게로 바짝 다가와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도움을 받는 것에도 우울감을 느꼈다.

83. 이래도? 이래도 네가 견딜 수 있어?

올해가 시작되자마자 엄마의 갑상선암 수술이 있었고, 봄에는 우리 부부에게 일이 있었다. 초여름에는 아빠의 뇌경색이 있었다.

책의 저 문구를 보며 병원에 있을 때부터 유일하게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있었던 블로그 이웃님에게, 내 상황에 대해 슬프지? 안 슬퍼? 그럼 이건? 아니면 이건 어때? 라며 굉장히 심술궂은 신이 내게 장난을 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고 썼던 적이 있던 것을 기억해냈다. 그래서 저 생각을 했던 저자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해보며 그때의 저자를 조금 도닥여주고 싶어지기까지 한다.

그리고 난 며칠 전에 외할아버지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153. 그래서 늘 어렵다. 무언가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일은 너무 어렵다. ‘어떻게든 되겠지’가 잘 안 된다. 내가 이 선택을 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까지 모두 돌려보고, 장단점을 다 뽑아보고, 내가 그 단점들을 감당할 수 있는가,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인가. 생각은 끊임없이 돌아간다. 그 과정을 수없이 돌려봐도 내키지 않는 일에는, 좀처럼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내가 선택을 하는 것을 유보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게 갑작스럽게 나타난 건 아니고 몇 년 됐다. 선택을 함으로써 나타나는 부정적 결과를 받아들이기가 힘들어서 그런 것인데, 이걸 선택 장애라고 표현하기에는 애매하기도 하다. 이게 문제가 되는 까닭은, 큰일들에 대해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소하고 작은 일에서도 내가 선택을 잘 하지 못한다. 음 먹을까 말까 이런 부분에서도 J가 먹으면 되지! 하면 뭔가에 허락받은 애처럼 그래! 하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언젠가 이 부분에 대해 생각해봐야지 해놓고 그냥 늘 넘어갔었는데, 아무래도 좀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인 것 같다.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만 어쩐지 바보가 되는 기분이야.

184. 아무리 그곳으로 돌아가고 또 돌아가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미 지나간 과거의 기억에서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186. “당신이 해야 할 일은 기억하는 겁니다.”

“아니요. 경험하는 게 아니라, 기억해야 합니다.”

기억이 그저 재생되고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과거의 그때로 돌아가

그 상황을 겪고 또 겪으며, 나는 과거 속을 살고 있었던 거니까.

나를 정말 힘들게 했고, 힘들게 하는 것.

모든 상황들이 그 공간의 나를 데려다 놓는 통에 너무나도 힘들었다.

조금씩 발을 빼서 걸어 나오는 방법을 알아야지.

227. 운이 좋아서 나는, 나의 마을을 발견했다. 식물들이 가득하고, 내가 좋아하는 책과 영화가 있는, 그리고 내가 가장 힘든 순간에도 내 곁을 떠나지 않은 사람들이 있는 마을을 발견했다. 그런데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든다. 이 마을은 어쩌면 내가 발견하기 훨씬 전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내가 나를 잘 몰라서, 마음만 너무 바빠서, 그저 힘들어하기만 하는 데 지쳐서, 이 마을을 돌아볼 생각조차 못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 어쩌면 그것이 나의 수많은 시행착오 중에 가장 큰 착오였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으며, 그리고 지금의 내 상황을 돌아보며, 그동안 내가 위로랍시고 마음을 할퀴었던 말들에 대해 깊숙이 생각하며 사죄하는 시간들을 보냈다. 사람은 늘 혼자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 인간인지에 대하여 고찰할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내가 바랐던 위로는 내가 말을 하고 싶어질 때까지 옆에서 가만히 기다려주었다가 말을 하면 고개를 끄덕여주고 안아주는 일이었다. 아무것도 말하기 싫었고, 말할 수 없었던 시간들을 보내며 침묵으로 일관해 주기를 부탁했었다. 제발 아무것도 묻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었다. 말없이 곁에서 있어주는 사람들에게 많이 고마웠다. 싫은 사람들도 고마운 사람들 덕분에 너 까짓것라고 생각할 수도 있게 되었다.

힘들어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햇빛이 좀 더 오래 머물렀으면 한다.

오랫동안 축축해져있던 손을 햇빛에 보송하게 말리고 고개를 들면, 다른 손이 있다.

당신과 내가 기꺼이 손을 잡는 날, 그동안 고생 많았다며 안아주겠다.

언젠가부터 꿈꿔온, 내 가장 큰 고민이자 걱정인 “오늘 저녁 뭐 먹지?”의 소망을 품고 오늘도 난 잘 지낼 예정이다.

오탈자 210. 질리는 법이 잘 없다 (중쇄 찍을 때 이건 수정을 좀 해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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