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과 영혼의 경계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오근영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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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을 전부터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도 미뤄왔던 이유가 메디컬 스릴러라는 점에서 히가시노 게이고는 어떻게 풀어나갔을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요근래 현직 의사인 '가이도 다케루'의 책을 읽어왔기에 나의 의식 속에서 줄기차게 위로 치솟던 그저 소설가일 뿐인 히가시노 게이고에 대한 평판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있었던 듯 하다.

 


유키는 어린 나이에 심장질환을 앓고 있던 아버지를 잃게 된다. 아버지를 수술한 의사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자신의 엄마와 친하게 지내는 걸 알고는 자신이 음모가 있는건 아닌지 의심을 하게 되고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현재 심장외과 전문의가 되기 위해 병원에서 수련 중이다. 그러던 어느 날 유키는 개의 목줄에서 병원을 상대로 한 협박편지를 보게 된다. 그 협박편지는 과연 병원을 상대로 하는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인가? 

 

 

그가 독자에게 전하는 메세지의 의미는 알겠지만, 너무 작위적으로 얽히고 설킨 우연들이 진정 타당성이 있는 건지도 사뭇 궁금해진다. 또한 좀 어설펐던 의학지식. 당연한거라고 받아들이기엔... 읽다가 보면 네이버 지식인에서 일명 '붙여넣기'식으로 느껴질 때도 있었다. 또한 메디컬 스릴러라고 해서 수술 장면등장을 서너차례 기대했는데, 배경만 병원일 뿐이지 메디컬 스릴러의 냄새를 그나마 맡을 수 있었던건 마지막 수술 장면뿐이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그 장면이 이 소설의 클라이맥스로 올라왔기 때문이었는데,(그 책의 클라이맥스는 다 다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난 이 부분이 클라이맥스라고 생각했다.) 만약 그 장면에서조차 어설펐다면 난 책을 덮었을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추리소설은 크게 두가지 종류라고 한다. 여러가지 트릭으로 진범을 찾는 경우 혹은 등장인물의 심리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 - '사명과 영혼의 경계'는 범인이 숨어있지 않고 그대로 나와있다. 그 등장인물들을 따라다니며 그들의 심리와 행동양식, 그 행동을 하게 되는 원인 등을 파악하며 읽는게 중요하다. 그러나 조지의 복수극에 억지감이 없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읽는 내내 '겨우 그거때문이야? 그게 뭐 어쨌다고?'라는 생각이 안들 수가 없었다.

 

또한, 난 이 책을 읽으며 한가지밖에 생각하지 못했다. 그건 바로 히가시노가 중간중간마다 계속해서 꺼낸 '사명'이라는 것인데, 히가시노는 분명 여기에 사회성도 함께 담아낸 것 같은데, 사실 사회성이라는 것이 광범위한데다가 어떤 점을 말하려는지 흐지부지하게만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에 반해 사명이라는 것에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읽는 내내 등장인물들의 사명만 생각하느라 내게 주어진 사명은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다. 이제 내게 주어진 사명을 천천히 생각해 보아야겠다. 어떤 책이든 읽고 나서 생각할 거리가 주어진다면 그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을 것이다. 이 책은 비록 그럴싸한 반전도 없고 내가 예상했던 결말도 아니었지만, 마음 한켠에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 게 느껴졌다.
 

 

 

아무 생각 없이 살면 못쓴다. 열심히 공부하고 남을 배려하면서 살다 보면 저절로 모든 걸 알게 되지. 인간은 그 사람이 아니고는 해낼 수 없는 사명이라는 것을 갖고 태어나는 법이란다. 누구나 그런 걸 갖고 태어나는 거야. 나는 거렇게 생각한다.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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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할머니와 산다 - 제3회 세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최민경 지음 / 현문미디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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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접했을 땐 제목만 보고 말 그대로 할머니와 사는 아이들의 삶을 그려낸 책이겠거니 생각하며 펼쳐 들었는데 이게 왠걸, 내가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가는 책이었다.

 

치매에 걸려 물웅덩이에 빠져 돌아가신 할머니의 영혼을 굿을 통해 위로해드리고 보내드리려던 찰나 입양아인 16살 은재의 몸엔 할머니의 영혼이 깃들게 된다.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먹지도 않던 된장을 먹는가 하면 지방을 내려가게 된 아빠에게 가지말라고 하는 둥, 예언하는 능력이 생긴다. 은재에게 빙의된 이유는 오직 하나. 누군가를 찾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나와 다른 조금은 특별할 수 있는 은재의 청소년기. 은재덕에 나의 소중한 청소년기를 떠올려볼 수 있었다. 그때는 그때가 좋은 줄도 모르고 툭하면 힘들다며 승질내고 짜증부리고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 마음껏 사며 나는 은재에 비해 풍요로운 청소년기를 보낼 수 있었던 듯 하다. 은재가 아니었다면 모를 수도 있었던 입양아의 시선에서 보는 세상들. 사실 그래서인지 난 처음에 입양아인 은재와 영재 중 사춘기를 겪을 은재를 할머니라는 존재를 통해 그들에게 자그마한 위로를 전해주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는데, 할머니의 목적은 자신의 핏줄을 찾기 위해서였다니.. 이런 생각하면 안되지만 왠지 이기적인 생각도 들었다. 겨우 그거때문에 은재의 머릿 속을 지배했다는건가. 나 같으면 한바탕 난리를 피웠을 법한데 할머니의 요구에 또 자신의 삶에 긍정적인 은재를 보며 내가 다 기특하고 대견했다.  또한 할머니의 생각 하나에 16살이라는 적지도 그렇다고 많지도 않은 나이에 친구와 둘이 다른 지방을 간다는 것(난 무서워서 상상도 못했던 -)을 보면 무모한 면은 나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결국 은재는 엄청난 고통을 겪을지도 모를 성장통을 할머니의 임무[?]를 대신 완수해주며 무난히 겪어나가고 자신의 상처를 보듬어 안아줄 수 있는 소녀로 성장할 수 있었을거라 생각하며 책을 덮었다.

 

 

 

그때 내가 왜 그렇게 엄마를 괴롭혔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또 다시 거부당할 게 두려웠던 걸까? 나처럼 치명적으로 반복해서 누군가로부터 거절을 당해 본 사람들은 다시는 거절당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기 마련이니까. -p118


인생이란 정말 알 수 없는 것 같다.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내일은 틀릴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하여간 인생을 정의하는 건 나중에 할머니가 되어서 하기로 하고 지금은 그냥 달리는 거다. 저기 저 앞에는 또 다른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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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에는 악마가 밀리언셀러 클럽 14
루스 렌들 지음, 전은지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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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읽은 책 중 이렇게 소심한 살인마는 처음 인 것 같다. '아서 존슨' 그는 스스로를 '예의바른 노신사'라고 칭하는 나름대로의 생활에 만족하며 살고 있는 남들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하게 느껴지지만 그는 강박증 환자이고 변화에 대해 누구보다 민감하다. 이러한 성격은 아마 부모에게 버림받고 그레이시 이모와 생활하며 그녀에게 강요되어 온 생활 그대로여서 아마 그때부터 생긴 경험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런 그가 살인 충동을 또 다시 느끼기 시작한다. 그것은 바로 아래층에 이사 온 젊은 또 다른 존슨 바로 '앤서니 존슨'때문인데, 둘은 'A. 존슨'으로 비슷한 이름으로 '아서'는 실수로 사회복지부에서 '앤서니'에게 보낸 편지를 자신에게 온 편지로 오인하고 잘못 읽어서 신상정보를 파낸 듯한 느낌에 장문의 사과문을 쓰게 된다. 하지만 '앤서니'는 별 뜻없이 쓰레기통에 버려둔 것을 본 '아서'는 전전긍긍해하는데, '앤서니'는 [가이 포크스]에 횃불을 지필만한 것을 찾다가 '아서'의 마네킹을 태우게 되는데 '아서'는 그것을 복수라고 받아들인다.

…욕망과 함게 일그러진 얼굴은 화형에 처해졌다. 그의 하얀 여인, 그레이시 이모, 그의 수호천사가……. -p122
이 부분에서 마네킹이라는 존재가 '아서'에게 무한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의식적으로 비춰보인다. 또한 그에 대한 복수를 위해 '아서'는 '앤서니' 앞으로 오는 '헬렌'의 편지를 빼돌리게 되면서 이야기는 진행된다.

앤서니 존슨은 그의 하얀 여인을 뺏어 갔다. 이제는 그가 앤서니 존슨의 여인을 빼앗아서 앤서니가 그의 마지막 기회를 강탈한 것처럼 그도 강탈할 것이다. -p128

 

중간중간 '앤서니'의 정신병질자 보고서는 '아서'의 행동을 부각시켜주고, 그에 따른 근거자료가 되면서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독자에게 납득시켜준다.

 

조사에 의하면 정신병질자의 대다수는 자기 자신의 공격성을 두려워하고 있으며, 정상적인 피실험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행동에 대해 죄의식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고 한다……또 다른 분석 결과에 의하면 정신병질자의 죄의식은 진정한 후회의 감정이라기 보다는 힘들고 불쾌한 상황에 대한 감정이라고 한다. 정신병질자는 이기적인 형태의 행동과 자기를 부인하는 것처럼 보여서 만약 사회적으로 용인될 만한 행동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후자를 선택할 만큼 교활할 수도 있다. 전적으로 자신의 판단에 의해서만 행동해야 할 경우, 그의 선택은 주로 개인적인 필요에 의해 이루어진다……. -p176

 

 

'아서'와 '앤서니' 둘의 시점으로 이끌어나가서 둘의 사이에 일어났던 일들 중 반복되는 이야기도 있다. 그 이야기들을 서로 다른 시선으로 보기 때문에 우리가 이해할 수 없었거나 놓쳤던 부분을 또 다른 존슨을 통해 알 수 있게 된다.

 

적어도 내가 생각한 살인마는 치밀하고 교활하고 간이나 배짱도 부풀어오를 만큼 부풀어 있어서 겁날 것 따위 없는 게다가 새로 생긴 사건들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그런 캐릭터만을 고집해왔지만, 루스 렌들은 그 고정관념을 깨면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작품이 진행되어감에 따라 극에 치닫는 '아서'의 심리묘사는 정말 기가 막혔다. 사람의 심리가 최고조까지 오르면 행동이 어떻게까지 변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아서'를 통해 알게되면서 알면 알수록 그에 대한 혐오감이 점점 더 커졌다. 자신이 감당해내지 못할 일들을 해내는 그에 대해 그저 헛웃음밖에 나오지않았는데 이유인 즉슨, 그 전에 그 무시무시한 일들을 저질렀던 사람이 내가 지켜보고 있는 '아서'라는 사람이 맞나 싶었기 때문이다.

 

사실 읽는 내내 결말을 어떻게 낼지 많이 궁금해하기도 하면서 중간중간 지루했던 이야기들을 꾹꾹 눌러참으며 읽었다. 전반상황이나 중간상황들과 비교해서 너무나도 급하게 내버린 듯한 결말. 다른 누군가 생각하기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허무맹랑한 결말에 난 그저 멍하니 있었을 뿐이었다. 결말을 이렇게 밖에 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고 싶은데, 작품해설을 봐도 난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음에 답답할 노릇이다.

 

게다가 추리소설이라고 불리우는 이 밀리언셀러 클럽에서 아름다운 문장까진 기대하지 않았지만, 번역에 맞지 않는 문장들과 맞춤법이 맞지않는 부분도 허다해서 거슬리는 부분도 많았고, 이건 편집을 한건지 만건지 하는 부분들도 많았다.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이 동네는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있어서 그런지 아는 분들도 많고 길을 지나다니다가도 인사를 하게 되기 마련이다. 또한 좋은 일이 생기거나 나쁜 일이 생기면 함께 해주는 친척들보다 더 가까운 이웃들이다. 하지만 요즈음 이웃에 관심을 가지면 스토커니, 참견도 많다느니라는 말들이 많다고 한다. 당신들은 과연 옆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는 알고 있나 묻고 싶다. '아서'는 피해 주기도 싫어하고 받기도 싫어한다고 책에 쓰여 있지만 피해와 관심은 엄연히 다른 종류의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책을 읽으며 소통이라는 것에 대해 깊은 회의를 느낀다.

 

 

환희와 힘을 느끼며 긴장한 그는 동그랗게 말린 자루 부분을 위로 잡고 아기의 배에 핀을 찔렀다. 아기는 놀라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깼고, 핀을 빼자 진홍색 피가 커다란 거품이 되어 솟았다. 한동안 그는 아기의 비명 소리를 들으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고통으로 크게 벌린 입과 벌게진 얼굴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바라볼 때는 엄청난 기쁨을 느꼈다.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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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엄마 - 개정판
최유경 지음 / 열매출판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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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살에 강간당해서 바보가 되어버린 즉, 미쳐버린 엄마와 그 엄마가 낳은 딸과 그 딸의 딸.. 이렇게 3대를 다룬 이야기이다. 독자인 우리는 일명 '바보엄마' 선영의 딸인 영주의 시점에서 관찰하고 그녀들을 고통을 엿볼 수 있다. 자신을 닮지 않았길 바라며 낳은 딸아이 닻별이는 너무나도 똑똑한 딸이었다. 그러나 딸은 10살의 나이에 자살미수자였고 남편의 외도는 끝이 없었기에 더욱 힘들었던 그녀. 그녀의 아픔을 달래주려고 한발자국 다가섰지만, 그녀가 그녀의 엄마에게 하는 행동을 보면 나 스스로도 화가 치밀어서 그녀의 고통은 나몰라라하고 그녀를 욕하기 바빴다. 셋이 같이 지내면서 느끼는 깨달음과 사랑..

 

 

'엄마'라는 고유명사 하나만으로도 눈물이 흐를 이유는 충분하다. 난 항상 엄마에겐 못난 딸이었다. 내가 잘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뭔가가 잘못되면 엄마를 탓하기 바빴고, 툴툴대고 짜증내고.. 엄마는 나에게 항상 말씀하신다. '넌 항상 <응, 알겠어, 좋아>라는 말보다 <아니, 몰라, 싫어>라는 말을 더 사용하느냐고' ... 사실 난 다른데서는 <아니, 몰라, 싫어>라는 말보다 <응, 알겠어, 좋아>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한다. 그러고보면 엄마한테만 유독 부정적인 말을 섞어 사용하게 되는데, 그건 언제나 아직도 응석받이인 나를 이해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나이도 먹을만큼 먹었다고 생각하는데, 어째서 하는 행동은 5년전이나 지금이나 변한게 하나 없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내가 다른데서 예의바르다는 소리를 들으면 우리엄만 뭐라고 생각하실까. 엄마한텐 예의바르게 행동해 본 적이 없어서 우리엄만 이해를 못하실지도 모른다. 다른데서 안좋은 일이 있었는데도 집에 와서 엄마한테 풀기 일쑤였고, 엄마는 짜증섞인 내 말투에 그저 달래주기만 했다.

 

몇일 전 툴툴대고 짜증내는 내게 엄마가 화를 내면서 '너는 항상 너만 이해해달라고 하지, 엄마편에서 생각해본 적 한번이라도 있느냐고' 하셨었다. 난 그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핑계댈 말도 변명거리도 없었다.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음에 다시 또 짜증내고.. 휴...

 

또, 내가 엄마한테 아직도 어리광을 부리듯 행동해서 그런지 몰라도 회사를 간다며 집을 나서는 나를 보며 엄마는 그러신다. '나만 보면 마음이 짠하다고, 아직도 애기같다며' 이번 첫 직장을 그만둘 때 내 의지로 그만뒀지만, 그만두고서 누구보다 엄마에게 얼마나 미안했던지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엄마는 나를 금이야,옥이야 키워줬고 가르칠 만큼 다 가르쳤는데 고작 이런 회사에서 이런 일이나 하며 이런 대접을 받고 일했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린건 당연했다.

 

내가 첫사랑이라는 걸 겪었을 때에도 엄마는 원래 다 그런거라며 아빠 몰래 엄마 첫사랑 얘기도 들었고, 나보다 더 지독했던 엄마의 첫사랑을 함께 겪으면서 위안도 많이 받았고, 고등학교 때 잔병치레가 많았던 나를 데리고 일하느랴 병원 데리고 다니느랴 많이 지치고 힘들었을 텐데도 내 앞에서 힘든 내색 한번 하지 않았다. 성적이 떨어지면 '니가 하필 그때 아파서 그런거라'며, 그게 니 삶의 성적은 아니라고 위로해주셨고, 앞으로 더 많은 날들이 있다며 위로해주셨다. 그런 고마운 엄마에게 내가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로, 의미없는 행동 하나로 이제까지 준 상처들은 어떤건지, 깊이 반성할 때가 왔다.

 

무조건적인 사랑. 나를 사랑하는 사람도 내가 사랑하고 있는 사람도 무조건적인 사랑은 아닐터다. 어느 글에서 본 적이 있다. 사랑은 혼자 하는게 아니라 둘이 하는거라고. 하지만 엄마의 사랑은 마냥 맹목적이고 희생적인 무조건적인 일방통행이다.

 

 

 

 

온 몸의 신경들이 가시처럼 꼿꼿이 곤두섰다. 누군가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그 가시를 무기 삼아 그 사람을 찔러 죽일 수도 있었다. 그렇게 무언가를 찔러 시커먼 피에 흠뻑 젖어도 수그러들 것 같지 않았다. 꼿꼿하게 치솟은 신경은 만반의 공격 태세를 갖추고 있어 희생자를 찾지 못하면 나라도 찌를 것만 같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 단 한 번의 손길에, 곤두섰던 가시들이 스르르 한 번에 드러누워 버렸다. 그녀의 손이 내 등을 쓸어내렸다. 이상한 일이었다. 억울하고 답답해서 막혀 있던 무언가가 허물어지며 쏟아져 내렸다. -p111


내가 틀렸다. 그녀가 내 곁에 있을 때만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게 아니었다. 나쁜 일만 일어날 때도 내 곁에 끝까지 남아 있어 주는 사람이 그녀였따. 모든 사람들이 내 곁을 떠나도 그녀만이 내 곁을 남아 있었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p112


"그럼 엄마별은 어떻게 되는데?"
"어떻게 되긴. 에너지를 다 잃고 죽어버리는 거지. 차갑게 식어 가면서. 더 이상 빛날 수 없으니 죽은 거라고 볼 수 있겠지. 결국 저 거대한 별조차도 그렇게 죽은 거라고 볼 수 있겠지. 결국 저 거대한 별조차도 그렇게 죽어 간다는 게 참 허무하지 않아? 그것도 자식한테 먹혀서."
"그래도 엄마별은 행복할 거야. 비록 자신은 죽어 가지만 바로 옆에서 밝게 빛날 자식이 있어서 행복할 거야." -p119

 

엄마,거기 어두워? 엄마 어두운 거 무서워하잖아. 잠들었을 때조차 어두운 게 무서워서 불을 켜놓고야 겨우 잠드는데……. 많이 무서워? 조금만 기다려 줄래? 아주 조금이면 돼. 잠깐만 참고 있어. 그러면 내가 갈게. 엄마 혼자 안 내버려 둬. 낵가 곧 갈테니까, 조금만 참고 기다려. -p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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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 가든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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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다고도 할 수 있고, 평범하지 않다고도 할 수 있는 그들의 삶

 

난 에쿠니 가오리가 말하는 소위 '동성애간의 사랑'같은 일본의 문화를 즐기지않아서 '반짝반짝 빛나는'이라는 작품을 읽었을 때 신선한 충격도 있었지만, 사실 왠지 읽어선 안되는 작품을 읽은 것만 같아서 '홀리가든'도 그런 부류의 책이 아닐까 하고 거리를 두었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저 우리의 소박하고 소소한 일상과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들을 보여주고 있다.


5년 전에 끝난 사랑의 상처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가호는 이사를 할 때마다 비스킷 깡통과 머스캣 상자를 가지고 다닌다. 이들은 모두 틈만 나면 가호를 괴롭히는 과거의 파편들이기에 그녀는 그것을 펼쳐놓은 뒤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것이고, 그녀의 또 다른 모습 속엔 그녀가 근무하는 안경점의 안과전문의나 고객들과 잠자리에 빠지는 그녀가 전혀 이해가 되지않았다. 그에 반해 가호가 불륜에 빠졌을 때 불륜에 대해 부정적이던 시즈에는 아내와 19살짜리 딸이 있는 남자와 원거리 연애를 한다.

 

아무리 허물없는 친구 사이라 할지라도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예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 각자의 취향은 개개인마다 너무나도 달라서 그들의 입맛에 골고루 맞춰줄 순 없지만, 적어도 피해는 주지말아야 한다는게 내 생각이다. 이 작품에서 가호와 시즈에는 서로 무척이나 친하다고 여기는 친구사이지만, 서로간 거리를 두어야만 유지되는 관계이다. 자신의 연애에는 무덤덤하면서 상대방의 연애에는 시니컬하게 바라보는 두 친구는 느슨하지만 풀리지않을 우정을 지켜나가고 있다.


이 책을 만약 에쿠니 가오리의 문체가 아닌 다른 사람의 문체로 써내려갔다면 난 아마 이 책을 중간에 덮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이 작품에서는 어느 책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그 흔한 기.승.전.결도 없고, 그저 물 흐르듯 천천히 흐르는 그녀들의 삶이야기지만, 이게 에쿠니 가오리의 매력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하지만 에쿠니 가오리가 작가후기에서 말하는 여분을 이해하기엔 아직은 좀 힘든 감이 있다.

 

 

 

 

 

전화란, 무슨 용건이 있든지, 용건은 없지만 상대방의 목소리가 듣고 싶든지, 아니면 누구든 상관없으니까 아무튼 얘기가 하고 싶을 때 거는 것이리라.

-p16


여자친구란, 아무리 오래전에 약속했어도 툭하면 취소를 하는 종족이다. 그리고 그런 때 불쑥 연락을 해서 대타로 나오라고 하면 절대 응하지 않는 종족이기도 하다. -p37

 

"생각한대로 다 말하는걸 의무라고 생각하니?"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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