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처럼 공부하고 천재처럼 꿈꿔라 청소년 롤모델 시리즈 (명진출판사) 1
신웅진 지음 / 명진출판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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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저기 겨울나무를 보세요. 이파리가 하나도 없으니 앙상해 보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내년 봄에 다시 와보세요. 눈부신 이파리들을 엄청나게 달고 있을 것입니다.

이게 자연과 인생의 같은 이치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겨울나무처럼 앙상해 보이는 것을 두려워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앙상해 보이지 않고는  

내년 봄 눈부신 이파리들이 달린 나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나무를 오래 가꾸면서 깨달은 이치입니다." (p219)



 

 

 

 

 

 

 

내가 자기계발서를 싫어하는 이유는 사회적 성공이 곧 물질적 성공으로 이어지고, 그렇기에 자기계발서라는 무대의 주인공은 평범한 사람보다는 유명인이라는 사람을 앞세워 글을 쓰기 때문이다. 게다가 볼 때는 '나도 이제부턴 이렇게 해야지'라고 생각하다가도 책만 덮으면 그것은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되는 이유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내 손에 들어온 '바보처럼 공부하고 천재처럼 꿈꿔라'라는 제목으로 반기문 UN 사무총장의 유년시절부터 지금이 있기까지의 시간들을 써나간 책. 사실 이 책이 시기적으로 반기문이 UN 사무총장이 된 직후 나온 책이라 조금 반신반의할 수 밖에 없고,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게 됐다. 이 책은 청소년을 위한 책이라 조금은 쉽게쉽게 쓰여져 있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펼쳐들었다.

 

 

이 책은 청소년들을 위한 책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꿈을 잃고 점점 현실에 안주해가는 현대인들에게도 필수품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책이 좋다는 말이 아니라 책 속에 녹아든 반기문의 노력이 단연 돋보여서 이제까지 '나'라는 무대에서 자신의 연기력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끔 만들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칫하면 이 책의 저자 신웅진에 반감을 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칭찬에 존경 일색의 글을 줄줄 늘어놓아서 '반기문 이 사람은 사람이 아니야? 뭐 딴데서 온 외계인이라도 되는거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유인 즉슨, 사람이라는 존재는 허물이 있기 마련인데, 저자는 그런 모습까진 보지 못했는지 그런 인간적인 모습들을 표현하는 글들을 나타내주고 있는 글은 쓰여 있지 않아서 조금은 공감을 끌어내려고 책을 썼으면 많은 공감을 끌어내진 못했을거란 생각이 든다.

 

 

요즘 청소년들은 노력을 했는데도 안된다고 칭얼거린다. 하지만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노력하면 안되는게 있을까? 그게 아니면, 목숨과 맞바꿀 수 있을 만큼 원하지 않거나. 뭐 별거 아닌 일에 목숨까지 거냐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현재 우리는 경쟁에 투쟁에 때로는 비수꽂는 칼들이 제 멋대로 난동을 부리며 돌아다니는 그런 사회 속에서 잔뜩 움츠리며 살고 있다. 그런 속에서 목숨과 맞바꾸지 못할 것은 또 뭐가 있는가? 저자 신웅진은 공부를 모토로 삼아 이야기하고 있지만, 비단 그뿐만은 아닐 것이다. 표면의 이야기만을 보려고 하지 말고 저자가 그 속에 교묘하게 감춰놓은 주옥같은 참 뜻을 알아차리고 우리가 노력이라 불러왔던 것들이 우리에게 가져온 것을 받아들었을 때의 절망 혹은 희열을 기억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삶보다는 우리의 꿈을 다시 돌아보고 그 꿈을 더욱 발전시켜 나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저자가 말했던 것처럼 꿈도 물을 줘야 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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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왕국
김경욱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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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스러운 정신을 부여잡고자 선택했던 '천년의 왕국'. 하지만 벨테브레(박연)라는 사람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상태로 보았던걸까? 며칠 전 읽었던 '소현'에서도 책의 중반부가 갈 때까지 집중이 안되고 정신산만이라는 상태에서 책이 진행되는 것을 느꼈었는데, 이 책에서도 그런 느낌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이 책은 역사가 박연이라는 인물을 돌보았다는 정확한 단서도 없고 '~했을것이다'라는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에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김경욱의 상상력이 가미되어 탄생한 작품이다. 이 책은 일본으로 가는 길에 중국 해적선과 폭풍을 만나 배가 표착되어 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워 하며 낯선 땅 조선에서 이방인으로 살다간 네덜란드인들의 이야기를 김경욱이 거침없는 문체로 잘 세심하게 하나하나 표현해주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데니슨에게 이 왕국에서의 삶은 빨리 깨어나기만을 바라는 악몽인지도 몰랐다. 데니슨은 자신에게 닥친 삶의 불운을 납득할 수 없는 것이다. 납득할 수 없었으므로 눈 앞의 모든 것을 부정했다.(p132) 이와 같이 이방인인 그들은 고향을 그리워하고 데니슨은 탈출을 시도한다. 그러던 중 결국 데니슨은 고향이 아닌 조선의 땅에서 굶어 죽는 벌에 처하게 되지만, 나는 그의 선택이 그릇되었다고 말할 수가 없다. 데니슨이 죽고 벨테브레(박연)가 시도하는 탈출에 대해 에보켄이 충고한다. "선장, 우리는 국왕의 말대로 여기서 생을 마쳐야 할지도 모르오. 바다 건너에서의 삶을 빨리 잊는 것이 새 삶을 시작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소? 우리가 평생토록 살 수 있는 것은 오직 오늘뿐이오. 어제를 그리워하고 내일을 두려워하는 사이 오늘이 손가락사이로 모래알처럼 빠져나가고 있소."(p252) 우리가 살고 지금은 오늘이고 오늘보다 소중한 것은 없기에 에보켄의 말에는 깊은 공감을 표한다. 하지만 편안한 현재에 안주하려는 에보켄보다 자신의 목적달성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벨테브레 쪽에 난 손을 들어주고 싶다.

 

 

이방인의 눈으로 본 조선. 이었지만 작가가 한국작가라 그런지 사실 많이 와닿지는 못했던 듯 하다. 그러나 그 소재만으로도 참신하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력적임엔 분명하다. 비록 정신이 왔다리 갔다리한 상태에서 읽은 책이라 많은 감명을 받진 못했지만. 다음에 한번 더 읽게 된다면 그 땐 처음 읽었을 때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을 느끼게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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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라쉬 브런치 - 번역하는 여자 윤미나의 동유럽 독서여행기
윤미나 지음 / 북노마드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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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것에 대한 집착은 곧 삶에 대한 애착이 아닐까?

생각해보면 산다는 게 허기를 채우는 것과 다를 게 뭐냐 싶다.

여행을 하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관계를 맺는 것도

결국은 서로 다른 종류의 허기를 채우는 일이 아니겠는가. (p60)  

 

 

 

 

 

 

 

 

'번역하는 여자 윤미나의 동유럽 독서여행기'

 

 

사실 이 책은 뜻하지 않게 들어온 책이었다. 아마 그 경로가 아니었다면 난 이 책을 만나볼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절대 구입하지 않았을 여행 에세이였으니까. 나에겐 아직은 너무나도 생소한 분야이다. 그래서 항상 이 분야의 책을 만나게 되면 읽을 때마다 부담감이 증폭되고, 불평·불만도 잦은 것도 사실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불평·불만은 내가 모르는 것을 안다는 듯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써내려갈 때 그 때 생기는 것이지싶다. 게다가 나는 여행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타입이 아니라 더욱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제 앞으로는 여행에세이를 좀 증폭시켜야겠다는 아니, 강압적인 그런 생각보다는 그냥 내가 그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평생 한번 가볼까 말까한 곳을 아니, 어쩌면 가보지 못할 확률이 더 높은 그 곳들을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본다는게 아직도 꺼려지는건 마찬가지겠지만, 뭐랄까 왠지 매력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요즘은 떠나고 싶은 마음이 많아서일까. 여행 에세이가 자꾸 눈에 보이는 것도 같다.

 

 

윤미나는 동유럽의 체코,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의 명소들을 거치고 그 때 그 때 느낀 것들을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달해주고 있다. 그녀는 전혀 친절하거나 부드럽지 않다. 통통 튀는 그녀는 여행객으로서 보기 힘든 특유의 당당함과 솔직함으로 꽁꽁 무장되있었고, 그녀의 그런 지나친 솔직함들이 밉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번역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문체가 잘 정돈되어 있었다. 여행 에세이를 읽고 있는데도 그것보다는 사람 윤미나를 알아가는 듯한 느낌을 풍기게 했다. 그래서 읽기가 한결 수월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자신의 상황을 좋게 돌려말하지 않고 특유의 젊은 이들의 입버릇처럼 '엿같다'라는 말도 사용하기도 했는데, 그 말투조차 거슬리지가 않았다면, 내가 너무 관대한걸까? 결코 그렇진 않을 것이다. 여행에 대해 좋게만 포장하려는 것과는 달리 윤미나는 그 곳에서 미국관광객들을 과감하게(매우!) 품평하기도 하고, 투숙객으로서 당연히 감내해야 할 일들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닌건 아니라고 생각하며 그 집주인의 형을 매우 미워하는 등의 이제까지 봐온 여행객의 모습과는 사뭇 달라보였다.(그래봤자 여행서는 얼마 읽지도 못했지만.) 얼떨결에 눈싸움 대국이 벌어진 트램 안에서, 사뭇 오기가 발동한다. 하지만 너무 긴장한 탓일까. 앗, 내가 먼저 깜박이고 말았다! 독한 사람들. 인간의 안구가 아니다.(p48)

 

 

굴라쉬란 체코의 얼큰한 쇠고기 스프인데, 얼큰하고 걸쭉한 국물이 우리의 육개장과 비슷해서 한 끼 식사로도 좋고 한국인의 입맛에도 딱이라고 한다. 낯설 수 밖에 없는 타지를 우리에게 전혀 낯설지 않은 육개장과 비슷한 굴라쉬로 우리의 마음을 동요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어떻게 하면 우연의 결실이자 순간의 마법인 경험을 가장 온전하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인지, 정말이지 하나도 모르겠다. 조심스레 지퍼락에 밀봉했던 경험들이, 꺼내놓고보니 하나같이 꾀죄죄하다.(p256) 각기 마음 속에 그간 쌓아온 경험들이 있기 마련인데, 그 순간은 정말 소중한 경험이라 생각이 들만큼 아끼고 아껴서 조심스레 꼭꼭 담아두었는데, 나중에 꺼내놓고 보니 꾀죄죄하다는 말. 심히 공감이 가는 말이 아닐 수 없다. 크고 작은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서 먼 훗날의 나를 만드는 것은 알고는 있지만, 남들과 비교하는 프레임에 갇혀 살고 있기 때문일까. 항상 누군가와 비교를 하게 되고, 그러면 소중하다 생각했던 내 경험들은 하나같이 보잘 것 없는 것들뿐이니.

 

 

실비아 플라스의 말에 한 마디 토를 달자면, 뜨거운 목욕으로 치유할 수 없는 것들이 분명히 있긴 하겠지만, 그 나머지 것들은 목욕 후 진한 커피 한 잔으로 어느 정도 재활 치료가 가능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사람은 죽을 만큼 힘들다고 해도 때때로 아주 작은 것에서 삶을 지속시킬 핑계를 찾는 동물인 듯 하다. 어쨌든 죽는 것보다는 변명을 하는 게 더 쉬우니까.(p43) 오늘 어떠한 외부요소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아서 죽을만큼 힘들었다 할지라도 내일은 하하호호 웃을 수 있는 이유는 그만큼 살고 싶은 의지가 강한 것일까. 전에는 더 힘든 일들도 있었잖아. 혹은 앞으로도 이것보다 힘든 일은 얼마든지 있을거야. 앞으로는 좋은 일들이 생기겠지. 라는 변명들이 나를 살게 만들고 그럴수록 내 깊은 마음 속의 응어리들도 점차 가라 앉는 것을 느끼게 된다.

 

 

여행에서는 치사한 합리화도 허용된다. 그래서 가장 초라한 여행조차 눈부시게 찬란할 수 있다.(p86) 사실 나는 해외에는 나가본 적조차 없고, 국내에서도 여행을 그리 즐겨하지 않는다. 여행을 다녀와서는 녹초가 된다 할지라도 여행을 가기 전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설레임운 무엇과도 견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누구는 여기서 어떤 것을 느꼈다는데, 왜 나는 느끼지 못하는거야? 라는 것들은 나중에 생각해도 되는 일이고, 혹은 전혀 필요없는 생각일 수도 있다. 그저 그 곳에서 느낄 수 있는 최대한을 느끼고 후회없는 여행을 하고 오는 것. 이 책을 읽으며 여행서는 그 곳을 좀 더 즐길 수 있게 참고인 또는 참고서가 될 뿐이지, 그 순간을 가장 잘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자기만의 색깔로 여행하는 것이라는 게 윤미나가 나에게 가르쳐준 모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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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그림으로 행복해지다
남인숙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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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  

감히 눈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들을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있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블록버스터를 가지고 있는 거야.(p167)

 

 

 

 

 

 

 

나에게 남인숙의 책은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실천편)' 이후로 두번째이다.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를 읽었을 땐, 정말 많은 혼란이 와서 책 속에서 답을 얻고 싶어서 펼쳐 들었었는데, 너무 많은 기대를 했던 탓인지 사실 어떤 책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자기계발서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 실망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이번에 책이 나왔다고 했을 때도 조금 망설였지만, 나를 흥미롭게 자극하는 명화 에세이라는 분야를 들고 내 옆구리를 콕콕 찌르며 다시 찾아왔기에 기대를 하며 읽게 되었다.

 

 

나는 그림이 소수의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소수의 엘리트가 자신들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기호로 소통하는 수상쩍은 도구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여행을 다니면서 수많은 명화들을 보다 보니 그림은 이해하는 사람만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새삼스럽지만 명화는 '의외로' 아름다웠다. 나는 그동안 기묘한 그림만이 명화로 대접받는 것이라 생각했고, 그 이유는 평생 걸려도 알 수 없을 것이라는 거리감이 있었다. 그러나 명화는 아름답기 때문에 명화였다.(p9) 나 역시도 그림감상은 왠지 까탈스러운 취미라고 생각했다. 그림을 보는 것 자체도 모르거니와 항상 그림감상이 취미라고 하면 뭔가 대단해보이는 나와 별개라는 생각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눈이 그림들을 보고 그것을 느끼는(어떻게 느끼느냐가 문제겠지만.) 그 순간 아마 이것이 나와 별개라는 생각은 접어둘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된다는 건 비단 나뿐일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불만인건, 화는 아름답기 때문에 명화라는 말이다. 아름답기 때문에 명화가 아니라, 개인적으로는 나같이 그림에 대해 전혀 모르는 문외한이라 할지라도 조금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명화는 정해져 있는 것만이 명화가 아니라, 자신이 직접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림에 '그'자도 모르던 내가 (아, 사실 지금도 그렇지만..) 관심을 갖게 되었던 계기는 '이주은- 당신도 그림처럼'이라는 책을 펼쳐들었을 때였다는 것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책에서 보는 그림들이 어찌나 멋지게 보이던지, 그 그림들에 눈을 뗄 수조차 없었다. 그게 아마 내가 그림이라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었다. 하지만 작가가 그림에 대해 쓴 글들이 전부 사실일 거라는 생각은 하지않는다. 그래서 읽고 싶다는 마음과는 다르게 명화 에세이를 꺼려하기도 한다. 명화 에세이를 읽으며 항상 곱씹게 되는 생각은 그림은 그것을 보고 우리가 직접 이야기를 풀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실상 그 속에 다른 이야기가 숨어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명백히 알기 전까지는 어떠한 그림을 보고 그것이 맞든 틀리든 간에 상상하는 것은 보는 사람의 몫이라고 본다. 아마 이 책에서 저자가 그림에 대해 쓴 글들은 사실인 것도 있고, 자신이 보고 이럴 것같다. 라는 것들을 적어내린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명화 에세이를 볼 때면 그림을 먼저 보고 내 생각을 정리 한 다음에 작가의 글을 보게 된다. 그게 아니라면 나중에 내가 그림을 봤을 때 작가의 생각으로 그림을 보게 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수 많은 것을 예로 들 수 있겠지만, '장 베로- 기다림'(p22)이라는 것을 예로 든다면, 저자는 먼 곳에 있는 점으로 보이는 신사가 기다림의 대상인 듯 걸어가려는 자세라고 표현했지만, 나는 그녀가 기다림의 대상이 정해져 있어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갑갑함이 지겨워서 간만에 외출을 했는데, 황량한 길거리에 실망을 하고 집으로 가려고 발걸음을 옮기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내 생각대로라면, 그러면 저 신사는 나올 필요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사실 제목을 보지않고 생각했기 때문에 제목이 기다림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아마 저 신사가 기다림의 대상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아마 그랬을 것이다.)

 

살다 보면 무언가를 기다리고 싶을 때가 있잖아. 좋은 사람, 좋은 순간, 좋은 기분……. 막상 만날 때보다 기다릴 때가 좋은 경우도 많아. 그래서 종종 그 기다림이 길어지기를 바랄 때도 있어.(p24)

 

 

하나 더 예를 들어보자면 '해밀턴 해밀턴- 사과꽃 흩날리며'라는 제목이 붙어있는 이 그림인데, 정말 화가 이름이 해밀턴 해밀턴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 화가를 찾아봐도 나와있는 건 없기에 그냥 그렇다고 믿을 뿐. 혹여라도 아니라면 다시 제대로 된 이름을 알고 싶은데.. 아무튼 이게 문제가 아니라, 난 이 그림을 하루종일 울고 있던 아이에게 유모가 저 이름모를 나무를 흔들어서 꽃을 흩날림으로써 아이를 기쁘게 해주려는 시도라고 봤다. 남인숙은 너무나도 자연스레 엄마라고 칭해서 '아 정말?' 이라는 호기심을 자아냈다. 이렇듯 그림 한 장을 두고서도 이렇게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정말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철없던 시절에는 몰랐어. 타인을 행복하게 해주는 게 나한테도 행복한 일이라는 걸. 그저 내 한 몸 좋아야만 행복한 건 줄 알았지. 하지만 이젠 알아. 나로 인해 누군가가 기뻐하는 게 얼마나 근사한 일인지 말이야. 더구나 그 대상이 사랑하는 사람일 때에는 말할 것도 없지.(p100)

 

 

 

 

차분한 글을 읽어나가다보면 그동안 나는 내 삶의 장면에 어떤 제목을 붙여왔을까?(p38) 라는 문장을 보게 되는데, 과연 나는 내 삶에 어떤 제목을 붙여놓았을지 궁금증을 자아내기 충분하다. 생각해보면 나는 항상 부정적이었기 때문에 아마 기쁜 상황 속에서도 눈으로는 보이지도 않는 마음 속의 부정적인 면만을 보고 제목을 짓진 않았을까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누군가의 삶은 그 사람이 지금 어디에 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보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니까.(p180) 라는 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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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시모 피아니시모
츠지 히토나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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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에 '내 기억의 피아니시모'라는 책을 읽었었다. 그 책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여자에 대해 쓴 책이었는데, 그래서 사실 츠지 히토나리의 '피아니시모 피아니시모'도 왠지 그런 소재의 작품일 것만 같았다. 그 혹은 그녀가 알츠하이머에 걸리고 그 기억이 희미해지고 옅어지면서도 둘의 사랑을 놓지 않는.. 아마 그런 줄거리를 예상했는지도 모를일이다.

 

 

츠지 히토나리는 항상 말랑말랑한 사랑을 작품의 주제로 가지고 놀았던 것 같은데, 이번 작품은 그렇지 않았다. 내가 이 책을 덮고 느낀 점은 성장소설이라는 것인데, 성장소설치고는 너무 무겁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분위기는 (매우) 어두침침하다. 그런 분위기를 싫어하는 나는 그래서 그런지 처음 3장을 채 읽기도 전에 덮으라면 덮어버렸을 지도 모르는 그런 작품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 수록 그 속에 빨려들어가고, 도오루가 생각하는 그 회색의 정체가 무엇인지, 함께 찾아내고 싶었다. 모두가 회색이 되어가고 있어. 자꾸자꾸 회색이 되어가. 그러는 게 편하거든. 무기력하고 무감동하고 무사상에 무능력에 무자비하게 되는 것으로 직접적인 아픔이나 공포, 슬픔이나 미래로부터 도망칠 수 있지. 인간이 이 세계에서 행복해지기 위해 남겨진 길이라고는 더 이상 고민할 것 없이 회색이 되는 것뿐이야. 그저 멍해진 채 현실에서 도피하여 망상이나 허구 속에서 사는 거야.(p201) 이 회색의 해답은 읽는 독자가 생각하는 것이 정답이다. 읽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마 와닿는 건 다 비슷비슷한 모양이다. 나는 사람들의 거짓,  위선, 가식, 이기적, 메마른 감정이라고 생각했는데, 대체로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으니, 왠지 그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는 기분마저 든다. 며칠 전 '나는 당신의 말할 권리를 지지한다'라는 책을 읽었는데, 그 책에서 말하는 회색의 의미와 '피아니시모 피아니시모'에서 말하는 회색의 의미가 충돌해서 내 머릿 속은 회색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조금은 혼란스러워졌다. 하지만 한가지 사물 혹은 추상적인 어떤 것에 대해 하나의 의미만 있다고 가정한다면 세상은 얼마나 loose해질 것인가. 시선을 피하지 말고 세계를 똑똑히 응시해. 회색에 지지 말고.(p251) '피아니시모 피아니시모'에서 우리가 회색을 이겨내는 방법은 사랑. 믿음. 희망일지도 모르겠다. 도오루는 성정체성을 앓고 있는 시라토에게 사랑을 느끼게 된다. 아마 그 사랑은 어떤 모양으로 우리에게 다가올지 궁금하지 않은가? 사랑을 하며 도오루의 변화하는 행동을 보는 것도 재미가 쏠쏠하기까지 하다. 문득 어느 순간, 히카루가 예전에 말했던 대로 시라토가 타인으로 돌아가는 게 아닐지 두려웠다. 도오루는 사랑에는 두려움이 수반된다는 것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깨달았다.(p312)

 

 

요즘엔 세계가 나날이 발전해가고 있는 것에 비례해 정체성을 찾아가기 위해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는 청소년들이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산다. 아이들은 GPS가 장착된 휴대전화를 움켜쥐고 오직 그것만으로 세계와 소통하고 있었다. 모두가 공유하는 정보, 모두가 똑같이 느끼는 감동을 찾아 자신만의 세계로 잠겨들었다. 그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고 책상 밑에서 더듬 더듬 휴대전화를 조작하며 가상의 외계를 향해 자신을 발산하는 것 밖에는 살아있다는 실감을 얻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p36) 정보화 시대로 발전해감으로써 세계는 더욱 성장하고 탄탄해짐을 느끼긴 하지만, 그것만이 좋은 것은 아닐 것이다. 나 역시도 정보화 시대에서 청소년기를 보냈고, 인터넷이라는 가상에서 내 존재가 하나 더 생겨나고, 그것에 대한 책임감은 당연히 하락하게 된다. 그곳에서는 나는 실존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요즘의 그런 상황을 감지하고 츠지 히토나리는 그래서 도오루에게 히카루라는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또 다른 자신이라는 친구를 선물해줌으로써 그 시기를 이겨나가기가 조금 수월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걸 이중인격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인생은 매 순간이 선택의 갈림길이고 어떤 선택을 할 때, 적어도 두 가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마음에서 충돌이 일어난다고 한다면, 도오루는 그것이 자신이 만들어낸 또 다른 분신인 히카루와 충돌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게 이중인격인 것일까? 뭐 사람마다 생각하는 차이는 얼마든지 있겠지만. 인생이란 모두가 말하듯이 멋진 것일까, 아니면 나쁜 꿈일까.(p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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