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그림으로 행복해지다
남인숙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  

감히 눈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들을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있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블록버스터를 가지고 있는 거야.(p167)

 

 

 

 

 

 

 

나에게 남인숙의 책은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실천편)' 이후로 두번째이다.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를 읽었을 땐, 정말 많은 혼란이 와서 책 속에서 답을 얻고 싶어서 펼쳐 들었었는데, 너무 많은 기대를 했던 탓인지 사실 어떤 책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자기계발서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 실망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이번에 책이 나왔다고 했을 때도 조금 망설였지만, 나를 흥미롭게 자극하는 명화 에세이라는 분야를 들고 내 옆구리를 콕콕 찌르며 다시 찾아왔기에 기대를 하며 읽게 되었다.

 

 

나는 그림이 소수의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소수의 엘리트가 자신들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기호로 소통하는 수상쩍은 도구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여행을 다니면서 수많은 명화들을 보다 보니 그림은 이해하는 사람만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새삼스럽지만 명화는 '의외로' 아름다웠다. 나는 그동안 기묘한 그림만이 명화로 대접받는 것이라 생각했고, 그 이유는 평생 걸려도 알 수 없을 것이라는 거리감이 있었다. 그러나 명화는 아름답기 때문에 명화였다.(p9) 나 역시도 그림감상은 왠지 까탈스러운 취미라고 생각했다. 그림을 보는 것 자체도 모르거니와 항상 그림감상이 취미라고 하면 뭔가 대단해보이는 나와 별개라는 생각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눈이 그림들을 보고 그것을 느끼는(어떻게 느끼느냐가 문제겠지만.) 그 순간 아마 이것이 나와 별개라는 생각은 접어둘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된다는 건 비단 나뿐일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불만인건, 화는 아름답기 때문에 명화라는 말이다. 아름답기 때문에 명화가 아니라, 개인적으로는 나같이 그림에 대해 전혀 모르는 문외한이라 할지라도 조금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명화는 정해져 있는 것만이 명화가 아니라, 자신이 직접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림에 '그'자도 모르던 내가 (아, 사실 지금도 그렇지만..) 관심을 갖게 되었던 계기는 '이주은- 당신도 그림처럼'이라는 책을 펼쳐들었을 때였다는 것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책에서 보는 그림들이 어찌나 멋지게 보이던지, 그 그림들에 눈을 뗄 수조차 없었다. 그게 아마 내가 그림이라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었다. 하지만 작가가 그림에 대해 쓴 글들이 전부 사실일 거라는 생각은 하지않는다. 그래서 읽고 싶다는 마음과는 다르게 명화 에세이를 꺼려하기도 한다. 명화 에세이를 읽으며 항상 곱씹게 되는 생각은 그림은 그것을 보고 우리가 직접 이야기를 풀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실상 그 속에 다른 이야기가 숨어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명백히 알기 전까지는 어떠한 그림을 보고 그것이 맞든 틀리든 간에 상상하는 것은 보는 사람의 몫이라고 본다. 아마 이 책에서 저자가 그림에 대해 쓴 글들은 사실인 것도 있고, 자신이 보고 이럴 것같다. 라는 것들을 적어내린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명화 에세이를 볼 때면 그림을 먼저 보고 내 생각을 정리 한 다음에 작가의 글을 보게 된다. 그게 아니라면 나중에 내가 그림을 봤을 때 작가의 생각으로 그림을 보게 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수 많은 것을 예로 들 수 있겠지만, '장 베로- 기다림'(p22)이라는 것을 예로 든다면, 저자는 먼 곳에 있는 점으로 보이는 신사가 기다림의 대상인 듯 걸어가려는 자세라고 표현했지만, 나는 그녀가 기다림의 대상이 정해져 있어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갑갑함이 지겨워서 간만에 외출을 했는데, 황량한 길거리에 실망을 하고 집으로 가려고 발걸음을 옮기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내 생각대로라면, 그러면 저 신사는 나올 필요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사실 제목을 보지않고 생각했기 때문에 제목이 기다림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아마 저 신사가 기다림의 대상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아마 그랬을 것이다.)

 

살다 보면 무언가를 기다리고 싶을 때가 있잖아. 좋은 사람, 좋은 순간, 좋은 기분……. 막상 만날 때보다 기다릴 때가 좋은 경우도 많아. 그래서 종종 그 기다림이 길어지기를 바랄 때도 있어.(p24)

 

 

하나 더 예를 들어보자면 '해밀턴 해밀턴- 사과꽃 흩날리며'라는 제목이 붙어있는 이 그림인데, 정말 화가 이름이 해밀턴 해밀턴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 화가를 찾아봐도 나와있는 건 없기에 그냥 그렇다고 믿을 뿐. 혹여라도 아니라면 다시 제대로 된 이름을 알고 싶은데.. 아무튼 이게 문제가 아니라, 난 이 그림을 하루종일 울고 있던 아이에게 유모가 저 이름모를 나무를 흔들어서 꽃을 흩날림으로써 아이를 기쁘게 해주려는 시도라고 봤다. 남인숙은 너무나도 자연스레 엄마라고 칭해서 '아 정말?' 이라는 호기심을 자아냈다. 이렇듯 그림 한 장을 두고서도 이렇게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정말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철없던 시절에는 몰랐어. 타인을 행복하게 해주는 게 나한테도 행복한 일이라는 걸. 그저 내 한 몸 좋아야만 행복한 건 줄 알았지. 하지만 이젠 알아. 나로 인해 누군가가 기뻐하는 게 얼마나 근사한 일인지 말이야. 더구나 그 대상이 사랑하는 사람일 때에는 말할 것도 없지.(p100)

 

 

 

 

차분한 글을 읽어나가다보면 그동안 나는 내 삶의 장면에 어떤 제목을 붙여왔을까?(p38) 라는 문장을 보게 되는데, 과연 나는 내 삶에 어떤 제목을 붙여놓았을지 궁금증을 자아내기 충분하다. 생각해보면 나는 항상 부정적이었기 때문에 아마 기쁜 상황 속에서도 눈으로는 보이지도 않는 마음 속의 부정적인 면만을 보고 제목을 짓진 않았을까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누군가의 삶은 그 사람이 지금 어디에 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보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니까.(p180) 라는 말처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