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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라쉬 브런치 - 번역하는 여자 윤미나의 동유럽 독서여행기
윤미나 지음 / 북노마드 / 2010년 3월
평점 :
먹는 것에 대한 집착은 곧 삶에 대한 애착이 아닐까?
생각해보면 산다는 게 허기를 채우는 것과 다를 게 뭐냐 싶다.
여행을 하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관계를 맺는 것도
결국은 서로 다른 종류의 허기를 채우는 일이 아니겠는가. (p60)
'번역하는 여자 윤미나의 동유럽 독서여행기'
사실 이 책은 뜻하지 않게 들어온 책이었다. 아마 그 경로가 아니었다면 난 이 책을 만나볼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절대 구입하지 않았을 여행 에세이였으니까. 나에겐 아직은 너무나도 생소한 분야이다. 그래서 항상 이 분야의 책을 만나게 되면 읽을 때마다 부담감이 증폭되고, 불평·불만도 잦은 것도 사실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불평·불만은 내가 모르는 것을 안다는 듯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써내려갈 때 그 때 생기는 것이지싶다. 게다가 나는 여행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타입이 아니라 더욱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제 앞으로는 여행에세이를 좀 증폭시켜야겠다는 아니, 강압적인 그런 생각보다는 그냥 내가 그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평생 한번 가볼까 말까한 곳을 아니, 어쩌면 가보지 못할 확률이 더 높은 그 곳들을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본다는게 아직도 꺼려지는건 마찬가지겠지만, 뭐랄까 왠지 매력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요즘은 떠나고 싶은 마음이 많아서일까. 여행 에세이가 자꾸 눈에 보이는 것도 같다.
윤미나는 동유럽의 체코,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의 명소들을 거치고 그 때 그 때 느낀 것들을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달해주고 있다. 그녀는 전혀 친절하거나 부드럽지 않다. 통통 튀는 그녀는 여행객으로서 보기 힘든 특유의 당당함과 솔직함으로 꽁꽁 무장되있었고, 그녀의 그런 지나친 솔직함들이 밉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는 번역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문체가 잘 정돈되어 있었다. 여행 에세이를 읽고 있는데도 그것보다는 사람 윤미나를 알아가는 듯한 느낌을 풍기게 했다. 그래서 읽기가 한결 수월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자신의 상황을 좋게 돌려말하지 않고 특유의 젊은 이들의 입버릇처럼 '엿같다'라는 말도 사용하기도 했는데, 그 말투조차 거슬리지가 않았다면, 내가 너무 관대한걸까? 결코 그렇진 않을 것이다. 여행에 대해 좋게만 포장하려는 것과는 달리 윤미나는 그 곳에서 미국관광객들을 과감하게(매우!) 품평하기도 하고, 투숙객으로서 당연히 감내해야 할 일들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닌건 아니라고 생각하며 그 집주인의 형을 매우 미워하는 등의 이제까지 봐온 여행객의 모습과는 사뭇 달라보였다.(그래봤자 여행서는 얼마 읽지도 못했지만.) 얼떨결에 눈싸움 대국이 벌어진 트램 안에서, 사뭇 오기가 발동한다. 하지만 너무 긴장한 탓일까. 앗, 내가 먼저 깜박이고 말았다! 독한 사람들. 인간의 안구가 아니다.(p48)
굴라쉬란 체코의 얼큰한 쇠고기 스프인데, 얼큰하고 걸쭉한 국물이 우리의 육개장과 비슷해서 한 끼 식사로도 좋고 한국인의 입맛에도 딱이라고 한다. 낯설 수 밖에 없는 타지를 우리에게 전혀 낯설지 않은 육개장과 비슷한 굴라쉬로 우리의 마음을 동요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어떻게 하면 우연의 결실이자 순간의 마법인 경험을 가장 온전하게 전달할 수 있는 것인지, 정말이지 하나도 모르겠다. 조심스레 지퍼락에 밀봉했던 경험들이, 꺼내놓고보니 하나같이 꾀죄죄하다.(p256) 각기 마음 속에 그간 쌓아온 경험들이 있기 마련인데, 그 순간은 정말 소중한 경험이라 생각이 들만큼 아끼고 아껴서 조심스레 꼭꼭 담아두었는데, 나중에 꺼내놓고 보니 꾀죄죄하다는 말. 심히 공감이 가는 말이 아닐 수 없다. 크고 작은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서 먼 훗날의 나를 만드는 것은 알고는 있지만, 남들과 비교하는 프레임에 갇혀 살고 있기 때문일까. 항상 누군가와 비교를 하게 되고, 그러면 소중하다 생각했던 내 경험들은 하나같이 보잘 것 없는 것들뿐이니.
실비아 플라스의 말에 한 마디 토를 달자면, 뜨거운 목욕으로 치유할 수 없는 것들이 분명히 있긴 하겠지만, 그 나머지 것들은 목욕 후 진한 커피 한 잔으로 어느 정도 재활 치료가 가능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사람은 죽을 만큼 힘들다고 해도 때때로 아주 작은 것에서 삶을 지속시킬 핑계를 찾는 동물인 듯 하다. 어쨌든 죽는 것보다는 변명을 하는 게 더 쉬우니까.(p43) 오늘 어떠한 외부요소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아서 죽을만큼 힘들었다 할지라도 내일은 하하호호 웃을 수 있는 이유는 그만큼 살고 싶은 의지가 강한 것일까. 전에는 더 힘든 일들도 있었잖아. 혹은 앞으로도 이것보다 힘든 일은 얼마든지 있을거야. 앞으로는 좋은 일들이 생기겠지. 라는 변명들이 나를 살게 만들고 그럴수록 내 깊은 마음 속의 응어리들도 점차 가라 앉는 것을 느끼게 된다.
여행에서는 치사한 합리화도 허용된다. 그래서 가장 초라한 여행조차 눈부시게 찬란할 수 있다.(p86) 사실 나는 해외에는 나가본 적조차 없고, 국내에서도 여행을 그리 즐겨하지 않는다. 여행을 다녀와서는 녹초가 된다 할지라도 여행을 가기 전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설레임운 무엇과도 견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누구는 여기서 어떤 것을 느꼈다는데, 왜 나는 느끼지 못하는거야? 라는 것들은 나중에 생각해도 되는 일이고, 혹은 전혀 필요없는 생각일 수도 있다. 그저 그 곳에서 느낄 수 있는 최대한을 느끼고 후회없는 여행을 하고 오는 것. 이 책을 읽으며 여행서는 그 곳을 좀 더 즐길 수 있게 참고인 또는 참고서가 될 뿐이지, 그 순간을 가장 잘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자기만의 색깔로 여행하는 것이라는 게 윤미나가 나에게 가르쳐준 모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