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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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단편이라는 이유로 내가 기피해왔던 책들이 한 두권 일까, 하지만 단편임에도 그 이야기 속에 생명력이 살아 숨쉬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작년 즈음 김영하 님의 단편집을 「오빠가 돌아왔다」 이후로 매우 오랜만에 접했는데, 항상 마음에 드는 책을 읽을 때에 느끼는 감흥은 좀처럼 올라오지 않고 그대로 멈춰서 꼼짝도 안했었다. 그러고보면 그 때에도 역시 단편이라는 프레임에 갇혀서 이야기를 제대로 들여다 보지 못했구나, 라는 아쉬움이 물밀 듯이 밀려든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혹여나, 이 책도? 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어서 주변 지인들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받고 있고, 그 중 한 지인에게 선물받은 책임에도 좀처럼 손에 잡고 읽을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그 까닭임을 의심할 여지조차 없다.

 

 

 

내 눈이 그가 써놓은 문장을 빠르게 훑고 지나가는 것을 느끼며 책을 읽어내렸다. 그렇게 그의 작품을 게걸스럽게 집어삼키고 나서 숨을 고른다. 그러나 사실은 포스트잇 플래그를 붙인 곳이 단 한 장도 없을 만큼 문장은 간결하고 마음에 와닿는 구절 또한 찾아보기가 힘이 든다. 다른 이가 발췌해놓은 문장을 보아도 마음은 좀처럼 일렁이지 못하고 이게 왜? 라고만 반문하고 있는 꼴이다. 그는 호흡을 절대 길게 가져가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은 독자가 호흡을 할 시간을 벌어 주는 작가의 세심함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그것에 갑갑증을 느끼는 이들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 사실 내가 그랬다 - 조금은 길게 끌어도 될 것 같은데, 하는 사이 이미 끊어져있다. 그가 내놓은 이야기가 이미 끝났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단편의 치명적인 점은 결말을 명료하게 지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아니다. 결말이 완전한 이야기는 그것은 정말 말 그대로 한낱 이야기에 불과할테고, 그것은 이미 죽어있는 이야기를 쓰는 것이지, 더 이상 살아있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뜻이 된다. 그렇기에 그것은 그것의 단점이 아닌 장점으로 충분히 순화시킬 수 있지만, 미안하게도 단편이라는 자체를 내 안에서 품을 수가 없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끌어안는다는 것엔 - 적어도 - 나에겐 무리가 뒤따른다. 책을 덮고 나서 13개의 단편 중 생각나는 것은 서너개밖에 없을 뿐더러, 그 후의 것은 책을 들춰봐야 그제서야 아, 맞다! 라며 바보처럼 실실 쪼개는 것이 다반사가 되어버렸다.

 

 

또한 무척이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단편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에게 이름을 달아준다는 것은 부질없다고 생각하기에 읽는 내내 내가 이들을 다 기억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었다. 물론 지금 제대로 된 이름을 대보라고 한다면, 현주, 마코토 뿐이다. 그러나 정작 1인칭이었던 그녀가 생각나지 않는 바람에 책을 다시 한번 들춰 그녀에게 지영이라는 고유명사가 붙어있었구나,라며 새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장편을 읽어도 시간이 지나면 이름을 잊기 마련인데, 하물며 이처럼 짧은 이야기 속에 있는 각기 다른 사람들을 한번에 기억하기엔 나의 뇌 용량이 수용하지 못하는 까닭에 쉽사리 그들을 머릿 속에서 게워내고 마는 것이다. 그의 책 중 「오빠가 돌아왔다」를 처음으로 읽었었다 위에 고백했는데, 그 책에서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그 단편에서 생각나는 것을 꼽자면 「오빠가 돌아왔다」로 시작해서 「오빠가 돌아왔다」로 끝낼 수 있다. 그것이 단편이라는 이름으로 되어있는 책의 치명적인 단점이고, 나는 아직도 그것에 대한 대책을 생각해낼 수 없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라는 이 책에서는 「로봇」「여행」「악어」「밀회」「명예살인」「마코토」「아이스크림」「조」「바다이야기1」「바다이야기2」「퀴즈쇼」「오늘의 커피」「약속」이렇게 열 세 가지 단편이 수록되어있다. 만약 나에게 가장 기억하고 싶은 단편이 무어냐고 얘기한다면, 사실 아직 잘 모르겠다,는 것이 솔직한 내 대답이다.

 

 

그러나 그 중 가장 만만한 「로봇」에 대해 이야기를 깨작깨작 거리자면, 수경은 자신이 로봇이라는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그는 아마 작가와 같은 언변가일테지. 얼굴도 모르는 자신이 로봇이라는 그 남자를 상상하며 연신 낄낄,거리며 이야기를 읽어 내린다. 요즘 로봇의 에너지원은 다양합니다. 저는 탄수화물과 단백질, 지방을 주 에너지원으로 하도록 만들어진 로봇입니다. 가장 효율이 높은 것은 옥수수고요. 적당한 알코올도 도움이 됩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기 앞에 놓인 잔을 들어 화이트 와인을 한 모금 삼켰다. (p28) 가관이다 정말, 아무리 세상이 발달한다 하더라도 이성과 잠자리까지 할 수 있는 로봇이 어디 있겠느냐 말이다. 아까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고 외치는 순간, 내 머릿속의 프로그램이 이제 당신을 떠나야 할 때라고 경고했습니다. 이런 열정적 사랑은 인간인 당신을 해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내게 떠나지 말라고 명령하기 전에 내가 먼저 가야합니다. (p30) 낄낄거리며 읽는 사이 벌써 막바지로 치달았다. 읽고 나니 현실에 깔린 거짓들을 이야기에 몸서리가 쳐지며 씁쓸함이 전해져오더라, 이거다. 그것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도 모른 채….

 

 

 

단편이라는 이유로 이 책을 편파적으로 적어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단편집을 꺼려하는 나에게도 그 중 단연 최고라 꼽을 수 있는 단편이 있는데 그것은 김경욱의 「위험한 독서」(…) 그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단편임에도 책이 아닌 작가를 읽고 있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 책을 읽을 때도 이 작가인 김영하 작가를 읽을 수 있을까, 하며 내심 기대를 했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그것은 내 손에 채 들어오지 못하고 그대로 녹아내리고 그를 대변하는 책만이 남았다. 아마 처음부터 '이것도 그것처럼'이라는 무서운 생각이 새로운 책을 읽는 데 방해가 된다는 생각을 미처 떨궈내지 못했던 것이 실수였다는 점을 자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또 그만의 매력이 있는 것이니 더 이상 무어라 왈가왈부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하지만 내가 이 책에 주는 별 네 개 중 책의 내용은 세 개뿐이고, 나머지 한 개는 김영하 작가에게 거는 기대감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할 정도로 그는 타고난 언변꾼임에 틀림이 없다. 다만 그 빛이 단편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볼 수 없다는 것이 원통할 뿐. 하지만 그 속에서도 혹자는 그의 언변 수준을 척척 잘도 찾아내더라, 그 말이다. 그렇다면 이유는 두 가지, 그의 책이 나에게 맞지 않다거나 혹은 내가 너무 갇힌 채로 그의 이야기를 읽고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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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불의 집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시작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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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주룩주룩 오는 날, 미스터리물을 읽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혔고 종전에 읽은 미스터리라고는 기분좋게 읽은 '새의 살인'이 나를 굽어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읽을 책과 확연히 다른 점은 '밀실사건'이라는 흥미로운 주제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밀실이라하면 내용이라던가 구성에서 조금 아쉽게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방과 후'를 생각해내지 않을 수 없었고, 그 아쉬움을 이 책에서 찾고자 한 것이 화근이었다. 서평을 쓰는 지금, 햇빛이 가을이 오는 것을 원치 않는지 맹렬하게 압박하여 다시 여름이 억지로 찾아온 것만 같은 기분마저 감도는 오늘은 9월의 어느 날이다. 오늘같은 날 읽었더라면 조금 다른 느낌이었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보지만 금세 마음을 바꿔먹고는 하긴, 날씨에 책의 느낌이 달라진다니 그보다 억지는 없을 것이다,라며 이 책을 읽은 그 때를 떠올린다. 실은 나에게 '기시 유스케'라는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한 것이나 다름없는데 그럼에도 낯설지 않음이 원래 다니던 길을 지나가는 것과 같이 익숙하다. 그의 대표작이라고 알고 있는 '검은 집'을 원작이 아닌 영화로 먼저 접했던 나에게 그 작품은 '광란' 이라는 단어로 자리매김하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원작이 더욱 괜찮다는 말을 들었음에도 영화의 거대한 무게에 짓눌려 원작을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검은 집을 쓴 작가는 머릿 속에 각인되기도 전에 그렇게 잊혀져갔다. 한참 후에야 그의 작품인 이 책을 들었을 때에 검은 집을 떠올리며 좋은 영화는 좋은 원작이기에 나올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때문에 기대감을 한껏 안고 시작했다. 오 마이 갓, 책을 펼친지 두장만에 소녀가 죽었다. 장소는 밀실이다.

 

 

 

 

아, 제기랄. 방심했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넌더리가 났다. 단편이었던 것을 하나의 단편이 끝난 뒤에야 알아차렸다는 점과 또 하나는 기시 유스케라는 작가에 대해 너무 큰 기대를 안았다는 점이다. 기시 유스케의 책이기 때문에, 라는 이유로 이 책을 끌어안기엔 상당히 큰 무리수가 있음에 분명하다. 이 책은 「도깨비불의 집」「검은 이빨」「장기판의 미궁」「개는 알고 있다」라는 총 네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챕터 하나하나가 어째서, 왜? 라는 말만 되풀이되게 만드는 이 책을 도무지 정성어린 손끝으로 애무할 수 없음이 그 까닭이다.

 

 

 

특히나 「장기판의 미궁」에서는 "잠시만요. 증거는 아무 데도 없어요." 라고 말하며 범인의 입을 막으려 들지만 도리어 범인이 "아니에요, 증거는 이미 충분해요." 라고 뇌까리는 밀실의 도대체 어느 부분이 흥미롭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음에 가슴이 꽉 막히며, 이보다 해괴망측한 일도 없을거라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개는 알고 있다」를 다 읽고 난 뒤에는 추리 한번 저질…스럽다,라는 말이 제 멋대로 입술 사이에서 흘러나와 나조차도 화들짝 놀랄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케이 씨가 풀지 못하는 밀실도 있군요. 저도 반성해야겠어요. 케이 씨에게 물으면 뭐든지 답이 나온다고 안이하게 생각했거든요……. 하긴 이번에는 조사를 엉성하게 하더군요. 그러니까 수수께끼도 풀지 못하죠." (…) "그쪽은 쉽게 포기하면 되지만, 전 밀실 수수께끼를 풀었다고 큰소리 뻥뻥 쳤다고요! 저 사람들에게 어떻게 설명하면 되지요?" (p300) 준코의 말을 눈으로 훑으며 '뭐 이딴 여자가 다 있어'라고 생각했다면 내가 망언을 한 셈이 되는가? 어째서 전직 도둑에게 자신의 권리를 모조리 떠넘기고자 안이한 변호사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 나는 확신한다. 준코의 저 말은 어린 아이가 사탕을 달라며 보채는 꼴이지 뭐냔 말이다.

 

 

 

 

이 책에 나는 도무지 후한 점수를 줄 수도 없고, 주고 싶지도 않기에 다른 분의 서평에 있는 달려있는 별 다섯개 또한 좀처럼 이해되지 않는다. 이 책을 읽은 소감이라고 할 것 없이 적어도 이 책을 읽은 뒤 느낌은 '밥을 먹기 위해 반찬을 다 차려놓았는데 정작 밥이 없을 때' 처럼 허망하기 그지없기에 그처럼 표현해도 무방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이 책으로 기시 유스케에게 실망을 했다거나 다시는 그의 책을 들여다보지 않아! 라고 할 망언을 하지 않는 이유는 이 책이 나에겐 그의 첫 작품이고 다른 책을 읽어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으리란 생각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까지 그의 다른 작품에 거는 기대가 꽤 크기에 이 책으로는 덮어버릴 수 없다, 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나는 아직도 그의 작품이 목마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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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처럼
김경욱 지음 / 민음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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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소설이라는 이 책을 손에 집기 전에 그 장르의 작가로 정평난 이미강 작가의 '푸른 수염의 아내'를 접했었는데, 그 속에서 실로 오랜만에 얼굴이 새-빨개지고 가슴이 콩콩뛰는 두근거림을 맛봤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로맨스 소설의 작가는 여자였기에 여성독자들이 원하는 것을 이미 알고 있고, 그것을 빌미로 감수성을 최대화로 끌어올리는 역할들을 너무나도 충실히 잘해주어서,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늘상 이야기가 끝나고 나면 그런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는 듯이 현실이란 놈이 내 위에서 날 내려다보며 비웃음을 날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때 느끼는 허망함이란 무엇과도 견줄 수 없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내가 그 책들을 읽으며 얻을 수 있는 것이 겨우 이런 허망함뿐이냐며, 다시는 틀에 갇힌 비현실적 로맨스 소설은 읽지 않겠다, 남몰래 다짐하기도 수차례였다. 그런데 남성작가가 로맨스 소설을 쓰겠다고? 글쎄, 남성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감성을 실감나고 맛깔스럽게 표현하는 작가는 단연 요시다 슈이치만한 작가를 보지 못했던지라, 한껏 부푼 기대를 조금은 사그라뜨리고 오랜만에 읽는 그의 책에 빠졌다. 그런데 빠져서 헤어나오질 못했다. '동화처럼'이라는 제목이 시사하는 것과 같이 속이 훤히 다 보일 정도로 투명한 물풍선이 방울방울 날아다니는 예쁜 romance를 상상했나보다. 그러나 막상 접한 그가 만들어낸 이야기는 현실감이 밑바탕이 되어있어 이상을 꿈꾸는 사람에게는 괴리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뭐 이런 아이러니한 일이란 말인가. 나는 그동안의 로맨스는 비현실적이라며 손을 휙휙 내저을 정도로 거부감을 드러내왔었는데, 막상 현실적인 로맨스에는 도무지 정이 안가더란 말이다. 특히 연애의 끝을 '결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아직 미혼인 나를 미칠듯한 깊은 심연의 나락으로 빠뜨렸다. 멍한 표정으로 책을 덮으면서 머릿 속까지 새하얘졌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장미와 명제, 흔하디 흔한 로맨스의 시작, 노래패라는 동호회에서 만났지만 서로 좋아하게 되겠지, 라는 내 생각을 벗어나 서로에게 호감을 내비치기는커녕 그들은 시선은 아이러니하게도 정우와 서영이라는 다른 인물에 닿아 있다. 그들이 만나면 서로 할 말이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서로에게 무관심 그 자체였다해도 과언이 아닐 듯한데, 6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에 만나게 된다. 글쎄, 그저 책으로 보이는 약간 짧은 듯 보이던 연애에는 내가 꿈꾸던 것 - 서로를 사랑하는 열정 - 은 이미 휘발된 상태인 듯 보였던 것이 틀림없다. 적어도 나라면 명제와 애당초 결혼을 꿈꾸지 않았을 것이라고 확신했으니까. 어찌됐든 책 속의 그녀는 내가 아니라 장미였고 그녀는 그것을 받아들인다.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결혼이라는 타이틀 아래, 과연 그들이 행복이라는 것을 느낄 틈이라도 있을지 그게 의문이었다. 역시나 - 라고 낮은 신음소리가 날 정도로 신혼 여행에서부터 엇나간 그들의 현실적인 그들의 결혼생활은 보는 나로 하여금 외줄타기를 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읽는 도중에 손을 떼고 싶은 충동까지 일기에 충분했다. 그들의 생활을 활자로라도 읽을 수 없을 만큼 마음이 단단하지 못하였던 것은 나에겐 결혼이라는 것이 가져다주는 로망이 아직까지는 내 속에 몽글몽글 피어나고 있었던 것이 그 까닭이다. 그렇기에 난 당장이라도 그 책을 내동댕이 쳐버리고 내 멋대로 장미와 명제를 잇기만 하면 그뿐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마지막 페이지를 향해 숨가쁘게 달려갔던 것은 로맨스 소설은 항상 해피엔딩이라는 고정관념때문이었다.

 

 

 

-우린 아무래도 안 되겠어.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것 같아. (p294) 서로 다른 언어를 쓴다는 것,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과 결부시킨다하여도 조금도 모자람이 없다. 서로의 언어를 조합시키는데에 있어서 서로의 이해와 배려, 양보가 필요하거늘 그들은 그것을 무시해버린 채 자신의 언어만이 옳다고 고집한 꼴이 되어버린 셈인 것이다. 실은 나 또한 지금 그 사람에게 나의 언어를 이해해달라고 온갖 투정과 짜증을 있는 그대로 다 내어버리고 그 사람의 언어는 듣지 못한다는 식의 무관심으로 일관해버리기 일쑤다. 그것때문에 이따금 서로에게 본의 아닌 상처를 입히기도 하고, 솔직히 다 내려놓고 말한다면 외면해버릴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사이를 좁혀갈 수 있었던 것은 서로가 살아온 환경 방식에 대한 존중이었고, 그것에 따른 이해였다. - 나는 여전히 황소처럼 내 고집만 부리고 있지만 - .. 어찌됐건간에 장미와 명제의 두 번의 헤어짐과 세 번의 만남이 나에겐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다가와 여느 드라마의 뻔한 스토리를 보는 것과 같이 진부했고, 그들의 공백기는 결국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그러나 내가 지쳐있는 사이 그들은 성장하고 있었고 그 성장의 결과는 또 다른 시작이었다,라고 생각했다. 헤어짐과 만남이 그들에게 남긴 것은 결코 만신창이가 된 사랑이 아닌 내 속의 또 다른 자아와 자신을 마주보게 만들어준 시간이라고 해석해도 될지 아직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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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애
김별아 지음 / 문학의문학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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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한 송이를 냉장고에서 냉동실로 옮긴지 10분, 후에 꺼내어 딱딱해진 포도를 한 알, 한 알 입에 포도알을 밀어넣어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책의 마지막에 박차를 가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 달던 포도 중 한 알이 미간을 찌푸릴 만큼 시어서 눈물이 고였다. 그 때 마침 책을 다 읽고 덮었을 때였는데, 아이러니하게 눈물이 멈추지 않고 쪼르르, 하고 흐르는 것이 아닌가. 지금은 책을 끝낸지 2시간 남짓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 이 책의 감흥은 식지 않았을 뿐더러 도리어 다홍빛이었던 것이 베어버릴 듯한 붉은 색으로 물들어가고 그 또한 더욱 더 선명해지고 있는 중이다. 사실 나는 이 책을 70페이지를 겨우 읽고 이 책을 이미 접했던 다른 이들의 서평을 들춰보았다. 그것은 전에 없던 극히 드문 일 중 하나였는데, 그것은 그녀의 책을 읽고자 하였지만 ¼이라는 분량을 읽고도 이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모르겠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던 중 혹자의 서평에서 이 책의 결말을 너무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이 체한 것처럼 속이 메스꺼웠다. 그 서평에 한바탕 난리를 칠까 하다가 발을 쿵쿵 구르고 손을 꽝, 내리치며 그것을 읽은 내 잘못이라며 내 탓을 했다. 그러나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는 실존 인물이었고 그것은 작가의 독단적인 결말이 아닌 원래에 정해져있던 불가피한 것이었음을 책을 다 읽은 지금에야 알게 된 것을 애통하게 생각한다. 이로써 내 짧은 지식에 새로운 지식을 대롱대롱 매달아준 셈이었다. 책을 읽던 중엔 읽으려고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결말이 뇌리에 박혀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신경질적으로 책을 덮고는 방치해두었더랬다. 그래도 김별아 작가, 그녀의 책을 읽어야겠다며 읽던 페이지를 찾아 책을 펴고 앉았었던 것이 다행이었다. 그럴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보다 박열과 후미코, 그들의 熱愛가 궁금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후미코, 그녀의 유년기는 끔찍할 정도로 격정적인 외줄타기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하여 어머니와 살게 되지만, 어머니는 후미코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창녀촌에 팔려고 하다가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거절을 당하고서 외갓집에 맡겨버린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부모가 없는 것만도 못한 학대와 설움을 받게 되고, 친절하게 다가왔던 친할머니에게 가게 되지만 그곳에서의 상황 또한 전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7년동안 지내다가 쫓겨난 그곳에서 간 곳은 아버지의 집에서 그녀의 아버지는 외삼촌이 가지고 있는 절의 재산을 노리고 후미코와의 결혼을 성사시키려한다. 결국 후미코는 처절하게 혼자임을 깨닫는다. 맙소사. 부모라는 작자들이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후미코의 유년시절을 읽으며 쉴새없이 방망이질하는 심장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후미코의 아픔을 고스란히 받고있자니 불에 타고 남은 재가 각막을 찢으며 들어와 머릿 속까지 갈기갈기 찢고 있다는 기분마저 들어서 형용할 수 없는 공포감에 질려 몸을 떨었다.

 

 

지독한 외로움에 헐떡이는 그녀는 사랑이 간절했기에, 또 그것을 이용하여 다가오는 이들을 사랑이라 착각하며 자신을 위로하려 하지만 결국 사랑이 아님을 깨닫는 데에는 남들보다 더 오랜 시간과 상처와 아픔이 고스란히 잔재들처럼 깊숙히 남아있다. 아주 잠시, 그렇게 행복했다. 사랑이라고 믿기도 했다. 오랫동안 외로움을 앓던 사람에게 착각과 혼동을 불러일으키는 간사한 마음의 장난질. (p142) 그런 그녀를 보며 난 무슨 생각을 가졌는지 모르겠으며, 그저 울컥하는 마음들을 억지로 달래지 않고 그저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것으로 그녀의 아픔을 감히 이해하고자 하였다. 그러다 그녀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라는 시를 지은 작자 박열에게 구애를 하게 되고, 그가 그녀에게 유년시절의 이야기를 하며 그의 '그리운 나라'가 어느덧 자신의 '그리운 나라'가 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사랑……. 그래. 그건 언제나 낯선 말이야. 하지만 사랑이 낯설 수밖에 없는 건 여전히 삶이 익숙지 않기 때문일 거야. 삶에 익숙해지면 사랑에도 익숙해져. 익숙해진 사랑은 사랑이 아니야. 다만 누추한 관성일 뿐이지. 나는 사랑에도, 삶에도 언제까지나 익숙해지고 싶지 않아……." (p219)

 

 

 

혹자는 말한다. 식민지 시대라는 그늘이 짙어서 정작 책의 제목인 '열애'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았다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 그것은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느끼게 해주려고 작가가 후미코와 열의 시선을 빌미삼아 꾀하고 있다 생각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음 직한데.. 같은 곳을 향한 그의 깊은 두 눈에, 삶의 풋내와 죽음의 악취를 동시에 맡고 있는 그의 우뚝한 콧등에, 그리고 수많은 말을 침묵으로 대신하는 그의 메마른 입술 위에 점점이 입맞춤하였다. 그것이 생에 마지막일지라도, 뜨거운 입맞춤의 순간 속에 그들은 영원처럼 아득하였다. (p265) (…) 어떤 이는 한 권이라는 짧은 책 속에서 '열애, 역사, 신념, 사상' 이라는 많은 모든 것을 한꺼번에 건져내려 무던히 애를 쓰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는 후미코의 상처 가득한 유년시절과 그 이후의 처연하리만큼 애절한 사랑, 후의 결말을 오롯하게 보고 느낀 후에 그녀의 들썩이는 어깨를 잡아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괜찮았던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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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살인
윌리엄 베이어 지음, 김승욱 옮김 / 작가정신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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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유난히도 더웠던 올 여름을 과감하게 안녕,하고 보내자니 뜨뜻미지근한 무언가가 나를 붙잡고는 놓아주질 않아 한참을 애먹었다. 작년 즈음엔 추리소설의 대가라 불리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모든 책을 섭렵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작품만 거진 열 권 안팎의 책을 읽었기에 인물들의 동선에 따라 쫓고 쫓기는 긴박감이 넘치는 남부럽지 않은 추격적을 몇 차례고 했었다. 그러나 올해는 추리소설이라고 해봤자 '이게 추리소설이 맞아?' 라고 되물음을 할 정도로 기가 차지 않는 소설들이 나로 하여금 실소를 터뜨리게 만들기에 충분했기에 그 후로는 추리 소설에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고 손을 뻗지도 않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아마 그 이후로도 추리 소설에 눈길도 주지 않아 '새의 살인'을 접하지 못했더라면 매우 애석한 마음을 감추지 못할 뻔 하였음을 책을 다 읽고 난 뒤에야 안도의 숨을 고르며 토로한다.

 

 

 

여기자 팸은 아이스링크에서 새 한마리가 스케이트를 타던 여자의 목을 물어뜯어 잔인하게 살해하는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그 기사 덕분에 구사일생으로 해고의 위기에서 탈출하게 됨은 물론이고 극적으로 스타로 등극한 팸은 그 자리를 유지해야겠다는 일념때문이었는지 더 큰 특종을 잡기 위해 새를 관찰하던 중 그 새는 송골매라는 것을 알아냈고, 그 매 뒤에는 그것를 조종하는 사냥꾼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 와중에 그녀는 몇 차례 발신인이 송골매인 어떤 사람에게서 우편을 받게 된다. (…)

 

 

 

시점은 여기자 팸과 형사 제이넥과 매사냥꾼인 홀랜더의 시점이 맞물려서 이야기를 꾸려나가기에 일방향이 아닌 쌍방향, 다방향으로 그들이 역할 수행을 충실히 해내고 있는지 제 3의 입장에서 오롯하게 관찰할 수 있다. 혹은 각자가 팸, 제이넥, 홀랜더의 입장이 되어 사건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대부분 추리 소설을 읽을 때면 나는 온전한 제 3자가 되어 전체적인 구도에 관련된 인물들을 관찰하지만 이번만큼은 1인칭인 '패멀라 배럿'이나 '제이넥'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1인칭인 '홀랜더'에 시선을 꽂고는 그의 행동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될 책의 또 다른 주연은 단연 송골매였다. 새를 쳐다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소름끼쳐해서 보기만 하면 고개를 홱 - 돌려버리고 외면하는 내가 어째서 이 책에 시선을 주었는지 모를 일이다. 어찌됐건 그 정도로 새를 싫어하는 나에겐 작가가 친절하게도 송골매를 매우 디테일하게 묘사하는 것이 나에겐 매우 불친절하게 다가왔다. 그 와중에도 새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그저 네트워크상에서 따온 것으로 치부해버리기에는 역량부터가 달랐음에 감탄을 자아내며 그것을 작가의 손길이 스쳐간 활자 그대로를 상상하며 읽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읽고 나서 최고다, 라며 엄지손가락을 추켜들 정도는 아닐지언정 이 정도는 되어야 제대로 된 추리 소설 한 권을 읽었다 얘기할 수 있지, 싶었다. 사실 이 책은 범인을 아니, 반전을 400페이지가 넘는 중에 200페이지도 안되서 노출시켜 버린다. 헌데 그것이 오돌토돌한 것 또한 용납할 수 없다는 듯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매끄러움으로 노출시키기 때문에 그것을 읽어내리는 독자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책의 끄트머리도 아니고 중반을 넘어가지 못하고 반전을 드러내는 책이라니. 그래서 결말까지의 간극을 어떻게 꾸려나갈지에 대해 더 많은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던 것이 사실이고, 한편으로는 그 간극동안 독자가 범인을 알고 있기에 겪어야하는 지루함이라던가, 단조로움이라던가 하는 고초들도 생각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작가는 그런 것 조차도 용납할 수 없다는 듯 끝까지 독자의 긴장 상태를 고스란히 가지고 끌고 이야기를 매끄럽게 풀어나간다. 비록 결말이 무책임할 정도로 아쉬운 듯 보였지만 그 결말이 아니고 다른 결말이었더라면 만족했을까,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도 나름대로의 생각할 거리를 만들었다 생각했다. 오랜만에 좋은 작가를 만났다. 윌리엄 베이어, 그의 이름을 수첩에 적어놓으며 또 다른 작품을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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