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클럽 - 그들은 늘 마지막에 온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노블마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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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 그의 책을 집어든 손에서 전율이 지지직,하고 울려퍼지며 알 수 없는 묘한 긴장감이 나를 거세게 압박하고 있었던 것이 그의 이름을 보는 순간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2009년에 열 몇 편의 책을 내며 다작을 했던 그였지만, 올해 2010년들어서는 개정판까지 하여 꼴랑 5권을 냈다고 하니 그에게 독자라는 이름을 가진 나는 알 수 없는 섭섭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 그의 책을 올해 초에 「비밀」,「사명과 영혼의 경계」이후 세번째 접하는 주제에 섭섭함이랄 것도 없지만, 실은 아직도 그가 책을 냈다고 하면 괜스레 눈길 한 번, 손가락 한 번이 더 가는 것이 그에 대한 애정이라고 박박 우기고도 싶다. 하지만 몇 권씩 후딱 해치우던 작년과 현저히 줄어든 그의 작품에 대한 설레임이 나조차도 낯설어 무작정 기피하고 있었던 것일런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기도 한다. 그의 책은 읽으면 읽을 수록 깊은 수렁에 빠지긴 하지만, 애석하게도 질린다,는 표현을 쓰는 것에 거부감이 들지 않는 것을 보니 어쩌면 막대사탕과 같을지도 모른다,라며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조금 남은 막대사탕을 쪽쪽 빨아먹을 수도 있겠지만, 그 단맛이 신물로 변했을 때에 혹은 입 안에 까슬까슬한 것이 느껴지기 시작했을 때에 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나는 어리석게도 이 곳에 적용하는 꼴이다.

 

 

 

실은 나는 그의 책에 대한 서평이랄 것 없는 그것을 제대로 써본 적이 없고 읽는 순간 서평을 쓰겠다는 생각을 애초에 접어버리게 된다. 써봤자 그의 트릭에 속았다,라는 뻔할 뻔자의 똑같은 서평만 써내는 식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용의자 X의 헌신」과 「백야행」의 같은 경우는 읽고서도 쓰지 않은 대표적인 예인데 남들 다 좋다고 하던 전자의 작품은 작가의 성품이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가 만들어내는 무조건적이고 일방적이며 지극히 헌신적인 사랑에 질릴대로 질려버린 나는 그 흔한 감동의 물결을 느끼기는커녕 그가 보기좋게 풀어내는 추리에 집중을 하기에 여념이 없었고, 내가 그의 책에서 최고라고 손꼽고 있는  후자의 작품은 서평을 써내지 않은 것이 아니라 못한 것인데 내가 느낀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당황했기 때문이리라. 그 때에 세 권이라는 압박감을 뚫고 순식간에 읽어버린 책의 스토리는 머릿 속에서 살아 숨쉬고 있었음에도 두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철필대를 잡은 손은 도무지 움직일 기미도 보이지 않고 그것으로 인해 오는 갑갑증은 결국 에레이,하며 서평쓰기는 글렀다고 읽은 것으로 족하자고 마무리를 지어버렸던 생각이 난다. 그러고서 올해에 들어 읽은 책의 느낌을 간략하게나마 쓰자는 나 혼자만의 약속이 그의 책에 대한 짤막한 평을 허락했다.

 

 

 

전같았으면 휴, 또 단편이야?라는 생각 먼저 했을텐데 이번엔 그런 생각은 할 틈도 없이 무척이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까닭이 오랜만에 잡은 그의 책에 대한 설레임이 한층 증폭된 것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예지몽」을 읽고나서 「기묘한 신혼여행」과 「범인없는 살인의밤」을 읽을 기회가 있었음에도 단호하게 안녕!하고 돌아섰던 나에게는 매우 놀라운 발전(?)이라고 생각될 만큼 오랜만에 그를 만나는 것을 소풍가는 아이인양 즐거워했다. 그래서 나의 곁을 묵묵히 지키고 섰는 그도 어제 밤엔 오랜만에 내 목소리가 즐거워보인다,고 하였는데 아마 그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탐정클럽」 에 나오는 다섯 편의 단편 ‘위장의 밤’,‘덫의 내부’,‘의뢰인의 딸’,‘탐정 활용법’,‘장미와 나이프’는 - 조금은 억지로 만들어낸 듯 보이는 - 밀실이라는 틀 안에서 그 안의 내부사정을 꿰뚫어보는 식이다. 어떤 이야기인들 독자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하지 않겠냐만은 그 중 ‘탐정 활용법’은 특히나 등짝을 후려치는 반전이 아직도 얼얼하게 남아 도무지 떨어지질 않은 채로 덮은 탐정클럽의 첫 표지에 가 붙어있다. 아, 히가시노 게이고. 당신은 진정 날 다시 당신 편에 세울 작정이신가.

 

 

 

부잣집 고객들만 응대한다는 탐정클럽의 두 명의 남녀(검은 양복 차림의 남녀였다. 둘 다 훤칠하다. 남자는 얼굴선이 조각상처럼 뚜렷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음침한 분위기를 풍겼다. 여자도 길게 찢어져 위로 치켜올라간 눈매의 미인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어둡다는 느낌이 들었다. (p201))가 사건을 단시간에 - 책이라서 그리 느껴지는지는 모르겠지만 - 휘어잡고는 그것에 대한 결론은 이 자료를 해석한 결과, 우리가 더는 이 사건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사건의 결말은 당신이 정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래서 이걸 가지고 온 것입니다. 이 자료를 보면 아마 당신도 우리와 같은 결론에 도달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그 결론을 가지고 어떻게 처리하든 그건 당신의 자유입니다. (p81) 라며 마무리한 사건까지 - 물론 사건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 짝짝짝, 박수를 쳐주고 싶을만큼 그의 결말에 매력을 느낀 것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단편들에서는 열린 결말을 보여주고 있기에 마지막은 독자가 생각할 수 있는 여운을 남긴다는 것에 또 한번 책을 읽는 묘미를 느꼈던 듯 하다. 하지만 장편이 아닌 단편,이라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듯 그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독자에게까지 내비춰주지 않고 그들에게서 결말만 전달받는 식이기에 독자입장에서는 사건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다고 해야할까,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식에서도 독자에게 상상력을 만들어줄 시간이 약간은 필요했을텐데, 너무 과감히 잘라버린 것 같아 안타까움이 가장 진하게 남는 부분이었다. 역시 단편이기에 제대로 버무려지지 못한 것과 같은 느낌이 아직도 하나의 응어리로 남아 2%를 훨씬 넘는 20% 부족한 부분이라 생각되지만, 그를 만났다는 것에 의의를 두며 즐겁게 읽은 것으로 족해야겠다, 생각하니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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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티볼리의 고백
앤드루 손 그리어 지음, 윤희기 옮김 / 시공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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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다. 이 책을 손에 집었을 때 가장 첫 문단에 씌어진 이 문장을 몇 번이고 되뇌고 되뇌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읽을 수 있을줄 알았던 이 책은 조금은 가벼울 줄 알았다,는 나의 완전한 오산이 무척이나 오랜 시간동안 이 책을 읽어나가지 못하게 붙들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게다가 이런저런 잡념들로 가득 차있어 75페이지를 읽는 동안에도 이게 무슨 내용인지 장황하게 늘어진 활자들이 질서정연하지 못한 나동그라짐을 경험해야 했기에 다시 첫 장으로 넘어가는 손길은 바스라질 듯이 위태롭기만 했다. 그러나 또 다시 같은 페이지인 75페이지가 채 넘어가기도 전에, '책을 덮어버리고 싶다'라는 마음을 안간힘을 쓰게하면서까지 마음을 다스려 정독하게 했던 까닭은 무엇이었는가. 실은 아직까지도 뒤죽박죽으로 얽히고 설킨 이 책은 나에게 있어 마구잡이로 집어올린 물고기를 눈 앞에 들이밀며 이 물고기의 이름이 무어냐,라며 재촉하는 것과 별반 다를바 없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만큼 머릿 속의 능란함을 서평을 쓰며 다시금 느끼고 있는 중이고, 또한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이 책을 어떻게 이해시켜야 할지에 대해 이미 끊어진 회로를 간신히 이어 머릿 속의 전원을 켜 굴려야하는 작품임에 분명하다. 독자인 내가 보았을 때 집착이라 생각되는 것을 그는 거침없이 사랑이라 부르는 그것,때문에.

 

 

 

책의 표지에 나와있는 이 책을 쓴 이처럼 보이는 저 소년은 누구인가. 그는 인간인가, 괴물인가, 혹은 외계인인가. 그렇다면 그의 이름은 막스 티볼리인가, 아스가르 반 달러인가, 리틀 휴이인가. 나는 이미 없어졌을 그,의 고백을 경청하며 머릿 속 한 귀퉁이에서 그가 살아온 삶의 부분들의 퍼즐 조각을 하나하나 맞춰나가기 시작했을 때 그는 내게 있어 막스 티볼리였고, 또 그것은 내가 이 책을 기억하는 한 잊을 수 없는 한 사람으로 기억 속에 자리잡고는 가부좌를 튼 채 꼼짝도 하지 않음에 그가 막스 티볼리라는 명백한 사실은 의심할 여지도 없음을 깨닫기에 이른다. 감히 '그는 몇살의 누구다' 라고 딱 부러지게 말할 수 없는 그,는 태어나자마자 쭈글쭈글한 노인의 나이인 일흔의 나이로 태어났지만 거꾸로 나이를 먹어가는 그는 어떠한 의학적인 방법을 찾아낼 수 없고, 그에 따른 해결 방법은 오로지 어머니에게 들은 "사람들이 네 나이가 얼마쯤이라고 생각하면 그에 맞춰 행동 해야 한다." (p38) 뿐인 그가 할 수 있는 선택 역시, 단지 그것뿐이었을 것임에 급작스레 마음 속에 불어 닥쳐온 서늘함이 비단 가을 바람때문만은 아님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그제야 명치 끝이 저려옴을 느낀다.

 

 

 

내가 이 책에서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부분을 꼽자면 앨리스와 재회를 했을 때부터 였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전의 이야기는 앨리스가 누군지, 그들이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에 대해 나에게 알려주는 목적성마저 결여되었더라면 버리라면 버릴 수도 있고, 잊으라면 잊을 수도 있을 만큼 나에게 있어 이 책의 중요 부분을 차지하지 못했음을 확신한다. 그렇기에 소설에서 추구하는 재미마저 느끼지 못했으리라. 어찌됐든 막스 티볼리에서 아스가르 반 달러라는 무척이나 괴상망측하게 생각되는 이름으로 남몰래 앨리스와 재회를 한 그 순간,에 그의 앞에 펼쳐진 그 생 역시 괴기하다. 실상 그의 고백,이랄 것 없는 이야기가 혹자들에게는 당연히 만점으로 치닫는 이 책이 나에게는 앨리스라는 여성에 대해 사랑을 애걸복걸하는 꼴로 밖에 보이지 않아 구차하다,라는 생각이 가득 메워진 채 이 책의 마지막을 덮을 수밖에 없는 것을 속상해해야만 했던 책이었다. 무척이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집요하리만큼 추악한 그의 사랑에 손발이 떨리며 가슴이 방망이질을 하듯 가슴이 쿵쾅쿵쾅 뛰어 책을 읽고 있던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잠시 걷고 싶다는 생각을 수없이 했었던 것 같다. 실제로 한적한 공원에서 이 책을 읽을 때에는 그렇게 했었고, 꽉 막힌 곳에서는 책갈피를 꽂지 않은 채 과감히 덮어버리기 일쑤였다. 그의 사랑을 지켜보는 것은 썩은 밤을 베어 물고 입 안 가득 퍼지는 썩은 내를 알아차렸을 때. 그 고약한 향기,라고 이야기한다면 막스는 내가 자신의 사랑을 능욕하였다며 길길이 날뛸 것인가. 하지만 아무리 그가 그렇다 한들, 그가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사랑이라는 추악함의 결정체 앞에서 우정이라는 고유명사 앞에 '처연함'이라는 말을 붙이게 만든 그의 사랑을 옹호할 수는 없는 것이 나의 입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끝까지 정독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그녀의 커피 잔 속에 떨어진 달을 보았다. 커피 잔 속에서 나방처럼 꿈틀대는 달. 그때 나는 보았다. 그녀가 몸을 앞으로 기울이면서 말없이 그 달에 키스하는 모습을. 그리고 그녀가 커피를 식히기 위해 그 표면에 입김을 불어 골을 낼 때 달이 폭파되어 산산히 흩어지는 모습을 보았다. (p103)  이와 같이 나같은 이는 생각하지도 못할 범접하기에도 이처럼 부담감이 들면서도 흠뻑 젖게 만들어버리는작가의 서정적인 문체들,이 아니었던가, 싶을 정도로 심장에 펌프를 달아준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벌떡거리게 만드는 문장들이, 눈에 반짝거리는 별들을 수놓아 주어 읽는다는 표현보다는 뭐랄까, 시를 읽는 것과 같이 감상한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까. 태연자약한 마음 속에 불구덩이를 지핀 것과 같이 뜨겁게, 또 시리게 만들어주는 그 문장들의 행렬에 어찌 감탄하지 않을 수 있으랴. 감히 매초롬하다,라고 칭할 수 있는 문장들이 그의 손 끝의 펜대에서 데구르르 - 구르고 있는 모양새로 나를 향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잣대는 사랑이라는 것에서 더 이상 움직일 기미조차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빈약한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를 하려고 해봐도 이해되지 않음에 내가 준 별 세개는 순전히 책에 들어있는 작가의 필력에 대한 몫이지, 책 자체에 대한 점수는 미안하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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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밭
신경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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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게 인생인지도 모른다. 환영 뒤에 남은 그리움을 품고 이렇게 어딘가를 응시하고 앉아 있는 것. ( 그는 언제 오는가, p284 )

 

 

메마른 햇살에 물기를 머금은 자신의 눈을 비추어 본 적이 있는가,라고 물으며 이 책에 대한 서평의 서문을 열게 된 까닭은 이 책을 읽을 당시에 감정이 극도로 상승곡선을 이루었기 때문,이라고 얘기해야겠다. 답답한 마음을 움켜잡았을 때 내 손 안에 아무 것도 없음이 확인되었을 때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눈을 시리게 만들어버린다. 그 때에 올해 칠월에 만났다가 주체할 수 없는 슬픔에 잠시 안녕,했었던 신경숙을 다시금 만났다. 내가 시월에 한일 중 가장 잘한 것이 있다면 신경숙의 「딸기밭」이라는 이 책을 만난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기차는 7시에 떠나네」라는 책은 선물받고 겨우 일년, 이 책은 내가 중등교 때 동사무소에서 일하는 오빠에게서 받아온 책이었으니 10년까지는 되진 않았다하더라도 거진 8,9년은 되었을 것인데, (출판일은 2007.01.15로 되어있으나 초판발행일은 2000.02.28이다.) 어쨌든 그 둘이 나란히 함께 고스란히 뒤집혀있던 책 중 한 권이라는 명백한 사실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자질구레한 변명은 책의 표지를 포장지로 감싸고 싶었을 정도로 볼품없었다,라고 이야기하며, 그래서 읽고 싶은 욕심조차 생기지 않았다,라고 말할 수 있다. 실은 첫 단편 혹은 중편을 4,5번은 읽었다고, 그 느낌이 괜찮았지만 그 후의 것은 읽을 용기가 차마 생기지 않았다고. 그런데 「기차는 7시에 떠나네」를 올해에 읽고서 깊은 감명에 딸기밭을 읽어야겠다,라고 다짐한 이레에 처음 들었다.

 

 

 

일전에 난 김영하 작가의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라는 책을 많은 지인들의 추천으로 읽고 나서, 후에 오는 이유 모를 허무함을 감출 수 없어서 괴리감을 느꼈던 적이 있었다. 단편 중 별 다섯개를 주고도 아깝지 않았던 김경욱 작가의 「위험한 독서」라는 책도 신경숙, 그와 감히 대적조차 할 수 없겠노라고, 그만큼 내가 읽어본 단편 중 감히 최고라 이야기할 수 있다. 「지금 우리 곁에 누가 있는 걸까요」,「딸기밭」,「그가 모르는 장소」,「작별 인사」,「어떤 여자」,「그는 언제 오는가」라는 총 6개의 중,단편을 소개하고 있다. '아이의 죽음, 유의 죽음, 아내와의 이혼, M의 죽음, 순돌이의 실종, 동생의 죽음'이라는 것을 연상케하기에 충분한 것은 상실,이라는 단어 외에 어떤 단어를 결부시킬 수 있을까. 그러고 보면 (매우 주관적인 나의 시선에서)「딸기밭」은 「외딴 방」의, 「작별 인사」는 「엄마를 부탁해」의 표본인 것처럼 무척이나 닮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러고보면 저자는 슬픔이라는 보이지 않는 주체를 아름다움이라는 또 다른 형상으로 승화하여 우리에게 내놓고 있다.

 

 

 

사랑이 다시 오면 이제는 그렇게 휘둘리지 않고 놀라지 않고 아프지 말아야지. 깊은 한숨과 함께하는 일이란 걸 인정해야지. 외로웠지만 사랑이 와서 내 존재의 안쪽을 변화시켰음도. 사랑은 허물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도. ( 작별인사, p148 ) 사랑이라는 밑도 끝도 알 수 없는 내면에 숨어있는 한창 회의감을 느끼고 있는 요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결국은 무슨 일이냐 묻는 엄마의 품에 파묻혀 울기, 내 이런 나약한 존재임을 진즉에 알고 있었는데 어쩌자고, 그렇게까지 될 때까지 방치해두었느냐,며 타박하며 눈물을 닦아주는 친구의 손길에 기대어 흐느끼기. 그러면서 저자의 저 문장에는 나도 좀 그러고 싶다고, 그런데 그게 안된다며, 당신은 그게 되느냐며 따져묻고 싶기도 수차례. 결국 공감할 수 없다고 고개를 돌려 외면하지만, 귓가에 딱지처럼 내려앉아 바둥거리고 있는 모양새로 나동그라져 있다.

 

 

 

처음 「외딴방」을 접했을 땐 차오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꺽꺽, 울었던 기억이 나는데 단편 중 「딸기밭」을 읽을 땐 그러지 않았던 것이 「그가 모르는 장소」, 「작별인사」,「그는 언제 오는가」를 읽으며 뭉클한 감정을 억누를 수 없음에 울음을 토해냈었더랬다. 참 오랜만이지 싶지,했다. 신경숙에게는 그런 힘이 있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물론 지극히 주관적인 입장에서. 이 책은 장편소설이 아닌 중단편이기에 긴 호흡을 가지고 읽어나갈 수는 없다,는 점이 흠이라면 흠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분명 읽어내리기 힘들 정도로 난해한 점도 없잖아 있고, 바로 그 점때문에 중간에 포기할런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도 이 책을 오롯이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기에 가타부타 설명할 수 있는 입장 또한 되지 못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지만, 신경숙, 그의 책을 아끼고 사랑한다면 기꺼이 추천해주고 싶은 그런 책임엔 분명하다. 오랜만에 별 다섯개가 아깝지 않은 기고(奇觚)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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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장화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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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엔 즐기지도 않는 아포가토 생각이 간절하여 오후 2시의 햇살을 등에 업고 가벼운 발걸음을 내딛으며 투게더를 사가지고 들어와 한 숟가락, 두 숟가락 떠놓고 커피를 타서 조금씩 조금씩 한 잔을 다 부어버렸다. 캬 - 그래, 이 맛이야! 라며 싱글벙글대며 냠냠 잘도 먹다가 문득, 마음 한 구석이 뜨뜻,해졌다. 이유 모를 애잔함이 스며들어와 한동안 뭉클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어 입 안에 따뜻한 커피와 입 속의 체온으로 인해 녹는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었다. 아이스크림 먹다가 주책이다 정말. 그러고보니 이 책을 읽을 당시는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줄이 끊어질 듯한 위태로운 그네를 신나게 타는 것같은, 그 정도로 들쑥날쑥 정신없는 감정 기복을 부여잡고 생활을 해왔던 9월의 마지막,이었다. 그 속에서 항상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건조하다고 생각되는, 그래서 늘상 읽은 뒤 에잇,하며 짜증내는,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눈길보다 손길이 먼저 뻗치는, 에쿠니 가오리와 다시 한번 재회했다. 화사한 파스텔톤의 예쁜 표지의 빨간 장화라는 제목으로. 그가 유선상으로 흉내내던 쿡쿡거리는 히와코와 두개의 질문 사이에서 '응'이라는 대답만 하는 쇼조는 이미 증발해 버리고 읽은 뒤엔 나의 책 속에서 꼼틀꼼틀 살아 숨쉬는 히와코와 쇼조가 서 있다.

 

 

 

히와코와 쇼조의 결혼이 어느 덧 10년차, 그러나 둘 일상생활 속의 특별함,이라던가 소소한 행복,은 처음부터 그들의 것이 아니었던 것인 듯 무미건조한 일상의 총칭이라 불려도 이상할 것 없는 그런, 단조로운 일상의 반복이다. 당신은 여기 있는데도 마치 없는 것 같아. (p109) 듣고 있는 것인지 혹은 귀가 먹어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상태인 것인지 아무런 미동도 없는 쇼조에게 히와코는 그 날 있었던 일들을 지칠만도 한데 계속해서 재잘재잘 떠든다. 쇼조가 듣고 있지 않다는 걸 그제서야 알아채기라도 한 듯 어느새 그녀의 재잘거림은 그렇게 잦아든다. 그렇게 한번, 두번 쇼조에게 체념해가는 그녀를 보며 이런 것이 바로 결혼 생활이냐며, 당신네들의 연애시절 이야기가 듣고 싶다고 나는 발만 동동 굴러대며 떼를 쓰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연애를 했다는 것만 기억할 뿐, 어떤 식으로 사랑을 속삭였는지 - 실은 그런 일이 있었을런지도 의아스러운 - 히와코는 기억해내지 못한다. 가장 아름답게 각인되어야 할 사랑의 조각들을 잊지않게 퍼즐로라도 끼워 맞추어 주지 그랬느냐며 쇼조를 타박하지만 그는 그대로 텔레비전에 푹 빠져있을 뿐, 자신의 하나뿐인 연인 - 이라고 하기엔 이미 멀어보이지만 - 인 히와코에게도 다정한 눈길조차 주지 않는데, 알지도 못하는 여인네에게 눈길 한번 던질리 만무하다. 그의 그런 태도에 독자인 나조차도 질려버리게 만드는 힘은 쇼조만의 것이다. 아니, 체념한 듯 고개를 떨구지만 후에 언제 그랬냐는 듯 밝은 히와코의 모습이 다시 어두워지는 것을 볼 때, 그러니까 희망과 체념의 연속인 삶을 사는 것 같은 히와코에게도 질려버렸다,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히와코는 빨간 장화 과자가 자신과 쇼조의 결혼생활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서로 어긋나는 상징처럼. (p162) 제목의 빨간 장화,는 의아하게도 과자였다. 쇼조가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사오는 빨간 장화 모양의 용기 안에 든 초콜릿과 떡과자. 히와코는 쇼조에게 4년째인가 5년째에 더 이상은 그것을 사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이야기하지만 쇼조는 고집 센 할아버지처럼 크리스마스 때마다 그것을 손에 들고 오고, 히와코는 이내 쿡쿡 웃는 것으로 체념하고 만다. 그리고는 그것을 옷장 안에 깊숙히 넣어두고는 꺼내지 않다가 처분,하려고 꺼내지만 그것이 버리면 안 되는 것이라도 되는 듯 다시 옷장 깊숙히 넣어둔다. 그것은 아마 히와코의 옷장 속에서 내년도, 내후년에도, 그 후,에도 나오지 못할 것임을 히와코도, 나도 알고 있다. 쇼짱은 나를 '세상'으로부터 지켜주려 하지만, 내가 하는 말은 듣지 않는다. 내 대답은 듣지 않으면서, 그래도 나를 향해 이야기한다. (p195) 깔깔깔, 웃음이 나온다. 히와코를 보며 이야기하는 쇼조라니, 히와코와 쇼조는, 서로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인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이 구절에서 언뜻 들었다. 그래, 이런 것도 사랑이라 불릴 수 있는가, 이런 것도 부부애라 말할 수 있는가. 아직 잘 모르겠다. 그게, 내가 결혼을 하지 않아서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결혼,이라는 것이 싫어질런지도 모르겠다. 결국 히와코와 쇼조의 관계에 대한 어떠한 결정이라는 것은 작가의 시선 선상에 제외된, 그러니까 애초에 결여됐던 것인지 그 무엇 하나 변화된 것 없이 이 책의 마지막을 향해 덧없는 책장을 넘기게 했다. 나는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쇼짱에게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런 사실이 유쾌하게 느껴졌다. 유쾌하고 행복한, 슬프고 홀가분한 일로. (p227) 무심해 마지않는 쇼조에게 오늘도 재잘거리고 있을 히와코가 존재하기를, 그와 그녀가 한 공간에서 무사하기를 - 나의 일이 아니라서 조금은 이기적으로 비춰질 수 있겠지만 - 진심으로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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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불행
케빈 A. 밀른 지음, 손정숙 옮김 / 황소자리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바깥의 날씨는 쌀쌀,하여 옷을 여미고 다닐 정도의 날씨임에 분명한데 사무실 근처에서 공사하는 드르륵 - 소리를 순간 매미 소리로 착각하여 흠칫 놀란 가슴을 민망스러움과 함께 조심스레 내려 놓는다. 그러고 보니 벌써 시월이구나. 「달콤한 불행」이라는 이 책을 구월 중반에서 끝자락을 넘어가는 사이에 안고 있었던 책이었는데 슬럼프에 빠질 뻔한 나를 붙들어주기는 커녕 더욱 더 구렁텅이에 집어넣고 이리저리 휘어젓는 듯한 정신없는 상태로 참 힘들게 읽었던 기억부터 나기에 서평을 쓰기에도 겁부터 난다. 처음에 달콤한 불행이라는 반어법이 적절히, 혹은 과하게 섞여 무슨 뜻일지 짐작할 수도 없는 가운데 이 책을 집어드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하지만 읽는 도중에 아직도 한참 남은 페이지를 손가락으로 휘리릭, 장난스레 넘기며 '이걸 도대체 언제 다 읽는담 - ' 하며 한숨을 폭폭 내쉬기도 하고 내 취향이 아닌 듯한 이 책의 문장들을 읽는다는 것이 내게는 고역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쉬이 읽히기는 하나 나와 맞지 않는 책이기에 읽기 싫은 책,이라고 하면 - 사실 무엇이 그렇게 맞지 않고, 무엇이 그렇게 읽기 싫게 만들었는지 모를 일이지만 - 어떤 느낌인지 알려나 모르겠다. 그렇기에 다 읽고 나서도 곧바로 서평을 쓰지 못하고 한참을 주위에서 서성거렸고, 그럴 수록 이 책 역시 책장 으로 들어가질 못하고 미처 쓰지 못한 책들과 함께 줄세워 놓았더랬다. 그러다가 이제와서 서평을 쓰려니 이 책 뿐만이 아니라 이 책 그 후의 책들이 얽히고 설켜 어떤 식으로 풀어나가야할지 종잡을 수가 없음에 마음 한 구석이 답답해져옴을 느끼지만, 이내 아직 식지 않은 기억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소피와 가렛이 있음을 깨닫고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자신이 태어난 날에 '생일 축하해!' 라는 말보다 더 어울리는 말이 있을까, 싶은데 아이러니하게 자신의 생일을 싫어하다 못해 최악이라고 여기고 있는 어쩌면 괴짜처럼 보일 수도 있는 소피라는 여자가 있다. 아홉 살 생일에 자신의 실수로 가족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그녀, 늘 과거라는 프레임에 갇혀 자신의 삶이란 있을까 싶은 그런 그녀에게 오지 못할 것만 같은 가렛이라는 남자가 다가오지만 그녀에겐 버겁기만 하다. 하지만 진심이란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힘이 있다던가, 그의 진심을 보게 되면서 닫혔던 마음이 조금씩 얼음이 녹 듯, 살살 녹아 아무에게도 비밀리에 묻었던 자신의 과거를 그에게 털어놓는다. 처음부터 끝까지,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그것을 받아주는 그를 보며 행복한 앞날을 기대해도 될 것 같다는 희망을 품은 채 살아간다. 그러나 가렛은 그런 소피를 처절하게 배신하듯 (독자들에게까지 내비치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내는) 일방적으로 까닭 모를 이별통보를 하고 난 뒤 사라져버린다 (······) 그로부터 1년 후, 그녀의 생일에 그가 다시 돌아와서 자신과 한번만 만나달라고 얘길한다. 그런 그에게 소피는 덧없이 사라지는 것이 아닌 영속하는 행복을 100명에게서 얻겠다는 제안,을 한다.

 

 

 

책의 후반부를 읽다보면, 소피와 가렛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임을 알 수 있을진대, 그것으로 독자는 작가에게 농락당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은 순전히 소피와 가렛을 위한, 그들의 상처 치유를 위한 목적성 농락이고, 또한 그것은 기분 나쁘지 않은 아니, 도리어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한가지 미간을 찌푸리게 하는 것이 있었다면 독자에게 아무런 힌트따위 없이 휙, 떠넘기듯 부담스러우리만큼 너무 갑작스러운 몇 개의 우연들이, 게다가 그로 인한 너무 뻔한 전개가 눈에 짚일 만큼 주위에 도사리고 있기에 답답한 마음을 한가득 안고 '역시 소설, 그래, 소설이니까' 라는 말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음을 한탄한다. 너무 많은 우연은 독자를 쉬이 질리게 할 터, 조금은 자중했으면 - 하는 아쉬움을 토로한다.

 

 

 

책을 읽는 독자에게 작가는 미스포춘 쿠키를 먹이는 것 뿐만이 아니라 우리에게 미스포춘 쿠키 속에 들어있는 메시지도 함께 보라며 재촉한다. 작가가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의 내용은 이렇다. 행복을 찾습니다. 영속하는 행복만 돼요. 덧없이 사라지는 것은 안 돼요. happiness@kevinamilne.com으로 제안을 보내주세요. (한국의 독자는 les_editeurs@naver.com) 영속하는 행복,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기나 한 것일까.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여름에 무릎을 추켜세우고 빗소리를 들으며 마음에 드는 책을 읽는 일, 햇빛이 내리쬐는 가을 오후 뽀송뽀송 말린 이불을 덮고 햇빛 냄새를 맡으며 낮잠을 자는 일, MR 혹은 오르골을 들으며 한껏 여유를 부리는 일, 계절마다 꽃이 필 적마다 구경하기 위해 잠시 나가는 외출, 술을 사이에 둔 진솔한 대화, 포기하고 있던 것에 굴러들어온 행운 같은 것, 등의 나열한 모든 것들이 내가 행복을 느끼게 만드는 일들,이지만 그것이 영속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다. 나에게는 늘 영원한 행복으로 남아있어주길. 행복이라는 것이, 때로는 너무나도 사소해서 우리 눈엔 보이지 않더라도 우리가 웃고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함,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것은 아닐까. 무신경하게 지금을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행복이라는 지극히 추상적인 개념과 맞닥뜨리게 한다. 고맙다, 내가 가지고 있는 행복을 상기시켜 그간 쌓인 먼지를 닦아내게 해주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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