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시스터즈 키퍼 - 쌍둥이별
조디 피콜트 지음, 곽영미 옮김 / 이레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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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하늘에는 다른 별보다 유독 더 밝아 보이는 별들이 있다.  

망원경으로 그 별들을 들여다보면 쌍둥이별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두 별은 서로의 궤도를 도는데, 때로는 한 바퀴를 도는 데 거의 백 년이 걸리기도 한다.

이들은 엄청난 중력을 일으켜 다른 것들이 들어올 여지를 주지 않는다.

예를 들어, 청백색의 별을 보았다면  

나중에야 그 옆에 동반성인 백색왜성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첫 번째 별은 아주 밝게 빛나지만, 두 번째 별을 알아볼 때쯤이면 너무 늦어버린다. (p540)

 

 

 

 

 


이 책이 원작인 영화가 나왔다는 말에 원작에 겨룰만한 영화를 본 적이 없어서일까? 볼까말까 엄청난 고민을 했더랬다. 그러다가 결국 그 영화가 막을 내릴 때까지 보지 못했고, 책으로도 올해가 되서야 접하게 되었다. 책을 먼저 보고 그 감흥을 잃지 않기 위해 다운을 받아서 바로 봤는데, 책으로 먼저 보기를 백번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와 책은 역시나 듣던대로 결말이 전혀 달랐지만, 가슴 속에 차있는 눈물이 내려가지 못하게 누군가 막고 있는 듯한 먹먹함은 영화와 책 둘 중 어느 것이 더 깊었다고 감히 말할 수 없을만큼 각자의 프레임을 유지하고 있었다.

 

 

 

브라이언과 사라의 사이에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식인 '제시, 케이트, 안나'가 있다. 평범한 가정이라고 보기에는 이들 가정은 손가락으로 톡 건드려도 와르르 무너질 것만 같은 위태로움과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살고 있다. 이들 부부의 시선이 향하는 곳엔 언제나 병명부터도 오싹오싹한 전골수백혈병이라는 병을 안고있는 케이트가 있다. 그런 케이트를 살려내기 위해 체외수정으로 머리부터 발 끝까지 케이트에게 이식하기 최상의 상태를 갖춘 맞춤형 아기인 안나가 태어나게 된다. 첫 장 이 책을 보면 안나는 여느 아이들처럼 '아기는 어디에서 오고, 어떻게 태어나느냐'를 궁금해하는 것이 아닌, '아기가 왜 태어나느냐'를 궁금해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당연한 것이 태어난지 한달 후부터 언니를 위해 희생해야했기 때문이리라. 이제 13살이 된 안나는 신체의 자유를 되찾기 위해 부모님을 상대로 고소를 하려고 신을 상대로 한 재판에서 승을 차지했던 캠벨변호사를 찾아간다. 처음에 고소하려는 이유를 듣고, 안나가 고소하는게 당연하다 여겼고, 그렇기에 그 재판도 당연히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는 자신의 몇 승 따위의 명성만을 위해 안나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옛애인이었던 줄리아가 사라로부터 안나를 지키기 위한 후견인으로 발탁된다. 사라의 대변인은 전직 변호사였던 그녀가 되고, 인간에게 있어 당연한 자유 중의 하나인 신체의 자유를 되찾기 위한 안나와 언니이기에 골수가 맞는 안나가 이식을 해주는 것이 당연하다는 사라의 입장차는 좁혀지고 화해를 요청할 수 있을 것인가, 혹은 양극화가 심해진다면 재판관은 과연 누구의 편을 들어주고 우리는 그 판결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가. 우리는 그들이 말해주는 이야기들을 들어줄 필요가 있고, 그들이 생각하는 것들이 과연 옳고 그른 것인지에 대해 조금은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 책을 드는 독자들은 결코 냉정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은 순전히 내 생각이다.

 

 

 

골수 채취에 대비하여 안나에게는 성장인자 주사를 주어야 한다. 최초의 제대혈 이식 후 내가 케이트에게 준 주사처럼. 이것의 목적은 안나의 골수를 꽉꽉 채우기 위한 것이다. 그래야 세포를 뽑아낼 때 케이트에게 돌아갈 몫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p306) , 캠프에서 안나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두려워서가 아니라, 동생이 없는 동안 케이트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두려워서다. 케이트가 이 재발에서 살아남는다 한들, 또 언제 위기가 닥칠지 누가 알겠는가? 그렇게 되면 우리는 안나가 필요할 것이다. 안나의 피가, 줄기세포가, 조직이. 그것도 당장. (p359) 하키에 재능을 지닌 안나가 여름캠프에 초대장을 받게 되었을 때 마냥 좋아하며 들떠있는 안나에게 사라는 "안나, 넌 갈 수 없어." 라고 단호히 말한다. 정말 이 책에서 사라는 정말 엄마가 맞나 싶을 정도로 안나에게 케이트에 의한, 케이트의, 케이트를 위한 삶만을 고집한다. 처음엔 무척이나 이기적이어서 뒤통수를 한대 갈겨도 시원찮을 정도로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던 마음과 달리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같은 자식이지만, 한 자식의 골수를 이식해서 다른 한 자식까지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전제가 있고 설령 그게 털끝만큼 빈약한 퍼센테이지를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그 유혹을 나도 역시 결코 뿌리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상황은 다르다. 안나는 케이트를 위한 맞춤형 아기이기에 정확히 케이트와 동일한 골수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라를 욕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나는 내 마음이 편해지려고 언니를 보러 온 것이 아니다. 나는 언니가 없으면 내가 누군인지를 기억하기 힘들기 때문에 왔다. (p190) 그러나 어린 안나의 생각과 행동엔 사라를 이해하기는커녕, 더욱 더 미워할 수 밖에 없을 만큼 우리 마음을 찌르르하게 울리기에 충분하다.

 

 

조금 독특했던 것은 하나의 시점을 가지고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닌 안나, 캠벨, 사라, 브라이언, 제시, 줄리아의 시점으로 각기 돌아가며 진행되기 때문에 인물들이 처한 상황과 서로 생각하는 양상들을 더욱 더 깊게 파고 들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책이었다. 만약 사라나 안나의 시점으로만 돌아갔다면 우리는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하나의 사건만을 바라보고 그 사건에만 집중했을 터였다. 하지만 작가가 의도한 우리가 집중할 것은 그 사건은 과연 누가 이길 것인가가 아닐 것이다. 한 가정의 위태로움 속에서 그들이 어떻게 서로를 다독이며 살아가는지, 가족愛라는 이름으로 어느 허용치까지의 희생을 치룰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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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라이터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3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4
로버트 해리스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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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베스트셀러 목록을 눈여겨봐라.

그중 얼마나 많은 것이 유령들의 작품인지 알면 아마 놀라 자빠질 것이다.

논픽션에서 소설까지 모두.

 우리는 디즈니 월드의 숨은 일꾼처럼 출판계를 지탱하는 그림자 군단이다. (p19)

 

 

 

 


솔직히 고백컨대, 처음에 제목을 보고 단어 그대로 '유령 작가'라고 인식한 뒤 'death note'를 떠올렸다. 그 열광하던 로버트 해리슨이 '이런 공포물을 써놓고 그렇게 열광을 받고 있다는거야?' 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고스트 라이터'라는 것은 다른 사람의 자서전이나 회고록 등을 대신 써주는 작가 즉, '대필 작가'를 의미한다는 것을 책을 쓰윽 읽으며 알게 되었다. 말 그대로 '유령 작가'의 주체인 '나'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전임자 마이클 맥아라가 전 영국 수상인 아담 랭의 자서전을 쓰던 중에 시체로 발견되고 경찰은 정확한 수사도 없이 단순히 자살로 치부해버린다. 그 바람에  '나'는 후임자 자리를 출판사로부터 제의를 받게 되고, 다른 회고록에 비해 몇 배의 대필금액과 대필대상의 명성을 완전히 간과할 수 없던 그는 한달이라는 기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제의를 수락하고 만다. 그러고서 계약을 맺고 집에 돌아오는 중 알 수 없는 공격을 받게 된다. 이 사람들 뭔가 이상하다, 이상하다 라고 생각하며 읽어나가던 중, 스토리가 슬슬 눈에 보이기 시작했고, 맥아라가 꽁꽁 감춰두었던 수수께끼를 화자와 함께 발맞추어 뛰어 찾아내는 둥 이야기의 전개를 짜맞추어 나가며 인 때려맞추기를 시도했다. 범인은 주변에 도사리고 있다는 점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를 읽어나감으로써 충분히 숙지했던 터라 쏙쏙 뽑아낼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반전의 반전은 약간의 현기증을 동반했지만, 이게 끝이야? 라고 생각하며 또 다른 뭔가가 있겠지. 이건 아니야. 책장을 다시 되감기, 되감기.

 



일전에 대필이라는 소재로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츠지 히토나리의 <편지>가 그랬고, 바로 앞전에 읽었던 리디 쌀베르의 <끝내주는 회장님의 애완작가>가 그랬다. 대필이라는 명목으로 쓴 글들은 왠지 슬퍼보였고, <고스트 라이터>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미안해요. 기분을 건드려서. 물론 유령이라도 감정은 있겠죠? 나도 그러니까." (p257) 라던가 책은 결코 유령이 자신의 견해를 발표하는 장이 될 수 없다. <유령작가> (p270) 이런 문장들을 볼 때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이 본디 보여주려고 했었던 미스테리나 스릴러에 집중하기 보다는 본연 자신만의 글을 쓰는 오롯한 작가로서 인정받을 수 조차 없는 '대필 작가'의 한계성을 띠고 있는 주인공의 심리가 더 자극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우리가 유심하게 살펴봐야 할 것은 테러와의 전쟁, 런던 지하철의 연쇄 폭발, 이라크 관련 자료 조작 등을 책의 곳곳에 뿌려놓음으로써 애덤 랭의 모습이 토니 블레어와 오버랩 된다. 역자 후기에서 보고 난 뒤에 나만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었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토니 블레어는 부시의 개(개인적으론 감히 애완견이라고도조차 말할 수 없는)라고 불리워진다.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된 사실인) 노동당과 토니 블레어의 지지자였던 그가 정말 토니 블레어를 모델로 삼아 애덤 랭을 만들었는지에 대해 검색해보았지만, 부인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나는 그 숨겨진 이면들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지만, 만약 애덤 랭이 특정한 인물을 본따서 만들어진 인물이라면 그에게 실망감을 감출 수 없을 것만 같다. 책이라는 매체의 뒤에 숨어서 혹은 자신이 만들어낸 화자인 '나'의 뒤에 서서목소리를 내는 것 저자 본인이 고스트 라이터가 아니면 무어란 말인가. 저자는 여태껏 나에게 고스트 라이터의 치욕과 불안정한 감정들을 다 내비춘게 아니냔 말이다. 그런 저자는 읽는 독자로 하여금 고스트 라이터 역할을 톡톡히 수행해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에 상당히 불쾌해졌다.

 



이 책을 손에 들고 읽기 전부터 이 책에 대한 많은 찬사를 들었기에 나에게 이 작가를 꿈꾸게 하기에 더 없이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너무 많은 기대를 했던 탓일까. 나와 다른 세계에 살고 있어 조금 생소하게 다가오는 정치적 권력의 모습들이 내게는 불편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 책은 정치 스릴러라는 분야로 우리에게 찾아들지만 스릴러보다는 저자의 정치에 대한 입장이 너무나도 커서 스릴러의 참맛을 느끼기가 힘들었다는 점이 가장 아쉬웠다. 그래서 다른 나라 정치상에 큰 관심이 없는 한 150p를 넘기기 전까진 재미를 보기가 힘들 것 같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책을 읽어야 할 판이다. 다른 사람은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나같은 경우에는 중간중간을 제외하고는 170p를 넘어가서 저자의 정치입장이 조금 누그러진 상태에서야 조금 아, 이제 좀 숨통이 트이네. 라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권력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등에 짊어지고 자신의 것인양 남용해도 된다는 오만한 생각은 언제쯤 사라지게 될까. 아니면 영원히 이 세계가 멸망하지 않는 한 되물림될 수 밖에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오늘 먹은 것들이 더부룩하게 느껴지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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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백과사전 - 광수의 뿔난 생각
박광수 글.그림 / 홍익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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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수생각'으로 매우 잘 알려진 저자의 만화는 인터넷에 많이 떠돌기에 많이 보기도 보았고, 특히 가장 인상깊었던 만화로 하나를 뽑자면 한창 한미 FTA협정 체결을 하고 광우병으로 말이 많았을 때 그에 관한 카툰이 나온 적이 있었다. 현실을 꼬집는 그의 만화를 보고 있노라니, 가슴 속에서 울컥하는 무언가가 올라왔더랬다. 그뿐만 아니라, 그가 그려내는 사랑을 보며 고개를 주억거리며 공감도 했었고,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고개 숙여 반성도 했으며,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예절, 배려 등을 읽으며 나는 다른 이들에게 어떤 사람이었을까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이번에 나온 강렬하면서도 유혹하는 색의 결정체인 빨간색의 표지에 담겨 출간된 <악마의 백과사전>에 더욱 기심이 동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요즘 많은 생각으로 책이 읽히지 않는 나는 책을 읽기 전 들고서는 한번에 책을 넘겼다. 그리고 든 생각은 죄다 글 뿐이고, 만화는 중간중간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책을 펴자 나를 당혹케한건 자음으로 구성된 ㄱ,ㄴ,ㄷ의 따위의 구성이었다. 단어 / 한문 / 영어를 보고 있자니, 읽기가 싫어져서 책을 확 덮어버리려다가 언뜻 의미를 보고 나서야 아, 재해석이구나. 라고 생각하며 그럼 그렇지, 라고 생각하며 책을 들고 있는 두 손을 다부지게 다잡았다. 실실 쪼개며 저자의 멋대로 뜻풀이와 경험담과 만화까지 읽는 기쁨을 누리며 책을  읽는 도중 '거짓말쟁이 / gura / people / 입이 돌아가는 대로 랜덤으로 말하는 구라계의 저널리스트. 거짓은 또 다른 거짓을 낳기에 기억력이 비상하지 않는 한 결국 자신이 뱉은 말로 자기 손발을 묶는 불행한 사람' 이라고 정의해놓았는데, 거짓말쟁이를 의미하는 liar가 아닌 people을 쓴 저자는 모든 사람은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건가 하는 의문이 품어지기도 했다. 거짓말쟁이인 나는 거짓말쟁이인 사람들과 거짓으로 만든 세상 속에서 여전히 거짓을 외치며 오늘도 거짓말처럼 살고 있다.


 

 

 

내가 ㄱ이라는 단어에서 열렬히 찾았던 (없었으면 백만배는 섭섭했을) 꿈(dream) : 내가 끌려가는게 아니라, 내가 밀고 가는 것.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에게 꿈이 있다고 믿지만, 사실은 아주 오래 전에 다른 사람들이 이미 만들어놓은 것을 자기 것인양 믿고 산다. 초등학생 때 너는 꿈이 뭐야, 라고 물어보면 아마 나는 의사, 변호사, 과학자라는 얼토당토않은 대답들을 했었을 것만 같다. 사실 그런 직업들은 아직 나에겐 로망이고, 멋있어보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정작 내가 이루려는 나의 꿈은 그에 비할 바 없이 너무도 초라해보이고 처량맞기까지해서 고개를 자연스레 숙이게 되는 직업 중 하나이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나는 여전히 꿈이 있다고 믿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이미 만들어놓은 것을 사용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에 대리만족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직 20대의 중반도 채 되지 않은 나는 지금 무언가를 시작하기엔 너무 늦다며 지레 겁부터 먹고 포기해버리기 일쑤이다. 그런데 저자는 친구에게 어느 날 "넌 크면 뭐할 거니?"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것도 서른여섯 살에. 그리고는 그 친구가 올 날을 기다리며 여든두 살이 되어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꿈이 있음에 진정으로 행복할 것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듣기만 해도 발음하는 것 조차도 벅차는 dream, 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항상 느끼는 바지만, 난 참 꿈에 대한 확신이 적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나는 또 한번 다짐을 한다. 내가 꿈을 잊지 않고 그것에 걸맞는 자신이 되기위해 가꾸어 나간다면, 다 가꾸고 난 뒤 찾으러 갈 땐 그럴 필요도 없이 꿈이라는 녀석이 바로 뒤에서 웃으며 날 쫓아오고 있을거라는 믿음.


 

 

 

성공(success) : 누구나 그렇게 되기를 꿈꾸지만 결국 극히 제한된 몇 사람의 몫으로만 한정되는 인생에서 가장 불가사의한 일의 하나. 또는 나보다 못한 인간이 몇 발짝 앞서가 마침내 정상에 올랐을 때, 그의 표정에서 발견할 수 있는 만족감의 다른 표현. 고등학생 시절 '난 성공할꺼야'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뇌까렸다. '성공'이라는 단어가 돈, money로 환산했을 때 빌 게이츠 정도 벌어야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라면 다른 사람들은 성공하지 못할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실제로도 그랬다. 그렇다면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기분일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꼭 무언가를 이뤄내서 결과물이 손에 쥐어져야 성공한 인생이라면 수도권도 아닌 지방에서 일정한 출, 퇴근 시간이 있고, 그 정해진 시간 속에서 일하고 있는 나는 아마 성공할 확률이 없다고 봐야하는 걸까? 누군가의 삶은 안면을 익힌 적도 이름도 모르는 타인에 의해 결정되기도 한다. '저 사람은 성공한 인생이야'라며. 하지만 그 자신도 그렇게 생각할지 의문인 것이다. 성공하기로 유명한 수많은 땡땡씨에게 '자신이 성공했다고 생각합니까?' 라고 물어보면 오만방자함 속에 곁들어진 거짓겸손떠는 말일지도 모르지만, 자신은 아직 가야할 길이 한참 남았다고 대답하는 케이스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내가 지금 현재 일하는 사장님을 예로 들자면 뭐든지 '썩세스!' 라고 외친다. 골머리가 터질 듯이 아팠던 계약을 하고 돌아와서도 썩세스! , 맡고 있던 공사가 끝나고 돈이 입금되도 썩세스! , 하물며 바로 며칠 전엔 에어컨 오작동이 콘센트를 꼽지않은거라는 사실을 알고 꼽고 에어컨을 틀고서는 썩세스! 를 외쳤다. 맙소사. 그러고 보면 성공이라는 단어가 거창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불행(unhappiness) : 다른 사람과 비교할 때 느껴지는 열등감에서 파생되는 쓰라린 감정.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이 나에게 가져다주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상은 자기 스스로 만들어낸 경우가 많다. 올해 읽은 책 중 안은영의 <여자공감>이라는 책이 자연스레 머릿 속에 방울방울 생겨났다. 그 책 속 문장 중 '남들처럼'이라는 잣대만큼 무서운 게 없다고 했었다. 그게 바로 열등감인 셈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남과 무수히 비교하며 억압하고 있다. 그것이 자신을 학대하는 일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 세상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을 압력을 가해서라도 남들과 동등한 자리에 서서 가거나, 혹은 남보다 앞서나가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행복(happiness) : 어떤 과학자에 의해서도 (제대로) 그 정체가 제대로 파악된 적이 없는, 세상에서 가장 난해한 수학문제. 역사상 무수한 사람들이 실체를 알기 위해 노력해왔으나 끝내 본색을 드러내지 않아 지구상 몇 안 남은 숙제가 될 확률이 높다. 불행이라는 단어는 무언가로 명확히 구분되는 가운데 그의 반의어인 행복은 무엇이다! 라고 명확하게 구분짓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고 하는게 맞는거겠지만. 행복이라는 녀석은 참 단순해서 웃기만 해도 찾아온다는 말이 있다. 진실인지 거짓인지 모호한 판단 가운데, 웃어보니 기분이 나쁘지 않다. 웃음이 행복을 데리고 온다는 말이 근거없는 말일지라도 일리가 있긴 있나보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고 싶다. 항상 웃을 수 있는, 웃음을 주는 그런, 사람.

 




하루 : 0.000033의 날. 인간 수명을 평균 82.5세로 보았을 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총량은 '365×82.5=30,112일'이다. 결국 오늘 하루는 '1/30,112=0.000033'의 날이다. 0.0033%라는 숫자가 말해주듯 지극히 사소하지만, 어떤 이들은 이 시간을 금가루처럼 소중하게 사용한다. 미세한 금가루 입자들이 모여 거대한 보석디 된다는 사실을 알기에. 하루? 내가 지금 보내고 있는 지금, 오늘, 이순간. 사실 나는 이제까지 8000일이 되는 날들을 살면서 그 하루의 절반이라도 기억할 수 있을까? 요근래 내 하루는 엊그제도 오늘같고, 어제도 오늘같고, 내일도 오늘같을 무의미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에 짜증부터 밀려왔다. 무언가를 계획해도 이뤄놓은 것 하나없이 여전히 오늘 하루도 지나갔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온다. 오늘 하루는 내가 지금 이것을 쓰고 있는 지금으로부터 6시간이나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루가 다 간 것 같다. 아마 오늘도 자기 전 생각하겠지. 오늘도 공쳤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뭔가를 좀 계획해서 색다르진 않지만 내일을 그리고 더 나아가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하루를 만들어야 겠다고 다짐한다. 이 다짐이 제발 말뿐만인 것이 아니기를.

 

 

 

이번 해에 들어서 요즘처럼 집중이 안되서 고생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하하호호 웃자고 들어본 책이었는데 아, 뒤통수가 아려올 정도로 심하게 맞았다. 이 책은 저자의 지극히 주관적인 해석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극히 공감되는 작품이었다. <악마의 백과사전>이 아닌 <대중의 백과사전>이라 일컬어도 부담스럽지 않은 (정치인이 읽으면 자로 미간을 찌푸릴 부분이 있기에) 책이었다. 여태까지 광수생각을 읽으며 만화에 지독히 신경을 써서 그의 글을 볼 기회가 적었던 책들에 반해 이 작품만큼 해학 속에 사회에 일침을 가하는 그의 노련한 글솜씨를 발휘할 수 있었던 작품도 흔하지 않았거니와, (그의 책은 항상 그렇지만) 또 웃으면서도 많은 생각할 거리를 선사해준 책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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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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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만남이 두려워요. 
만나고 나서 당신을 잃게 된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고, 상상하고 싶지도 않아요.

- '잃는다'는 생각 같은 건 하지 말아요.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이미 잃는 거예요. (p363)

 

 

 

 

초등학교 땐 거저 주어도 아무도 반가워하지 않고, 버려도 아무도 주워가지 않는 고물 컴퓨터가 있었는데 인터넷도 되지 않았던 이유로 그 컴퓨터의 용도는 항상 게임이었다. 그러다가 중학교 때 처음 컴퓨터가 생겼던 나는 고심해서 아이디라는 것을 만들었고, 비밀번호도 만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식상한 아이디였는데, 보물단지처럼 소중히 아끼며 그 아이디로 중학교 시절 친구들과 e-mail이라는 것을 주고 받는데 열중했던 적이 있었다. e-메일은 손편지와는 달리 타자를 몇번만 두들기면 힘들이지 않고도 내가 원하는 만큼의 많은 문장을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고 처음 본 물건에 호기심이 생기듯 자연스레 그동안 써왔던 편지를 버리고 그쪽으로 눈이 돌아갔다. 항상 하교 전까지 봤던 친구들이지만 컴퓨터를 켜면 친구들에게 집에 와서 뭘 했는지, 내가 오늘 어떤 생각을 했는지에 대해 말하지 않으면 입이 간지러워서 두드러기가 날 정도였으니 e-메일이라는 그것이 한 때 내 생활에 얼마나 크게 미쳤는지 알만하다. 갑자기 옛 생각을 하며 그 이야기를 끄집어 낸 이유는 이 책이 e-메일 형식이기 때문이다. 편지 형식으로 된 책을 요근래 몇 작품 접했지만, 이런 형식은 처음이기에 구미가 당길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은 에미가 잡지사의 담당자에게 정기구독을 해지해달라는 e-mail을 보내는 것으로 이야기의 첫 장이 시작된다. 그러나 단순한 철자 하나때문에 메일은 레오에게 도착하는 진부한 스토리로 시작을 하게 되며, '에이 뭐야 이거, 이런 식으로 시작되는거였어?' 라며 첫 부분부터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나름대로의 구색을 갖추고 있는 터라 찬찬히 그들의 비밀을 훔쳐보기 시작했다. 에미는 한 가정에서 아내, 엄마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가정주부로 행복한 가정의 표본이 되고 있고, 레오는 연인이었던 마를레네와 헤어지고 공황 상태였다. 그럼으로 그들이 e-메일을 주고 받는 시간이 그들에게는 '가족타임아웃'이고 '마를레네 극복 요법'이 되는 것이다. 비밀을 하나,둘 털어나가며 그들은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고 그것은 점차 사랑으로 불리게 된다. 그러던 중 '식별놀이'라는 것을 제안하고, 서로는 정확히 누가 누군지 모르는 상태에서 짐작만 할 뿐, 더 이상의 진전은 없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다가 에미의 친구를 레오에게 소개시켜주는데…….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 이 책은 편지가 아닌 두 사람의 e-메일을 옮겨적은 것이기 때문에 문체는 생각보다 많이 딱딱했고, 가령 나긋나긋한 문체로 바뀌어버릴 때면 에미와 레오가 보내는 메일들을 구별하기가 힘들었다. 그럴 때면 내용을 보고 파악하던가, 뒤에 있는 이름을 보고 파악해야만 했는데, 이것은 작가가 그렇게 써놓은 건지 혹은 번역이 그렇게 된건지 알 수가 없어서 그 부분에서는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또한, 굿나잇, 굿나잇, 굿나잇, 굿나잇, 이런 식의 한 문장으로 끝나버리는 메일을 볼 때면 그들이 헤어짐을 아쉬워하는걸 간접적으로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긴 한데, 그것이 마음에 확 와닿는 것도 아니었을 뿐 아니라 '도대체 이게 뭐하는 짓이야.'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가끔 마음을 조금 살랑살랑 흔들리게 하는 문장들도 있긴 했지만, 그것들을 불륜으로 치부해버렸을 땐 아름답다기보다는 '아, 젠장.'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아마 에미가 유부녀가 아니었으면, 난 그들의 사랑을 전폭적으로 응원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본다.

 

 

 

현실을 무시한 가상 속의 안락함은 영원할 수 없다. 등에 짊어진 현실은 점점 더 내 목을 조여올 것이고, 그로 인해 가상 속에서 안락함을 위로의 선물로 받는다. 하지만 가상은 가상일 뿐 어떤 명쾌한 해답도 얻을 수 없다. 하지만 내가 그 사실에 강한 반박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때로는 나 역시도 얼굴도, 목소리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받고, 행복한 기운을 얻으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 뿐만 아니라 우리 세대의 사람들은 제각각 자신만의 공간을 꾸미고, 그 속에서 또 하나의 나로 성장하게 된다. 그 속의 나는 내가 만들어낸 워너비일 수도, 혹은 본연 그대로의 모습일 수도 있는데, 그것은 자신이 창출해내는 것이다. 아무런 제약없는 이 가상공간의 유혹에서 빠져듦으로써 우리는 점점 현실과의 괴리감을 느끼게 될 것이고, 결국은 그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오타쿠라 불리는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들 그 아슬아슬한 경계선을 잘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에미와 레오는 그 경계를 침범했기에, 작가는 결말을 우리에게 던져주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게 하기보다는 감정은 극적으로 올려놓은 상태에서 사람을 사라지게 만들어놓고 '니 마음대로 상상하라.'는 식으로 던져주고는 비웃고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니 새록새록 약이 오르기 시작했다. 난 그들에게 참 미안하게도, 어떻게해서든 이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유인 즉슨, 그들에게는 각자가 책임져야할 (특히 에미에게) 위치가 있고, 한낱 사랑이라는 감정에 자신이 서있는 위치까지 혼동하는 그녀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녀가 그 세계에서 발을 떼고 싶지 않다면, 현재의 남편인 베른하르트와 정리를 한 다음에 만나야하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레 던져보기도 한다. 행복한 가정의 표본과 레오에게서 느끼는 사랑의 감정. 이 모두를 포기하지 못하고 두 손에 꽁꽁 쥐고 있는 그녀를 볼 때면 산 속에 꽁꽁 묶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너무 주저리주저리 늘어놔서 무슨 글을 썼는지조차 모르겠다. 확실한건 그들에게 '사랑'이 어떤 식으로 방문을 했을런지는 모르겠지만, 지극히 주관적인 내 생각으로는 사랑이라는 것은 실체가 있어야 하고, 그렇기에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으며,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들은 방법 자체가 나와는 좀 달라서 이해하기 힘들었던 부분이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건 happy end도 그렇다고 sad end도 아니었다는 점. 그리고서 에미가 일상으로 다시 돌아갈거라고 생각했는데, 후속편인 <일곱번째 파도>가 이어진다고? 오 마이 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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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자친구의 전 여자친구
니나 슈미트 지음, 서유리 옮김 / 레드박스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어린왕자에서 사막 여우가 말했던 것처럼 < 가령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난 세 시부터 행복해질 거야. 네 시가 가까워 올수록 나는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네 시에는 흥분해서 안절부절 못할 거야. 그래서 행복이 얼마나 값진 일인가 알게 되겠지! > 누구나 연인이 아니더라도 보고싶어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가슴 설레는 일임에 분명하다. 하물며 사랑하는 연인 사이는 어떨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하지만 <내 남자친구의 전 여자친구>에 나오는 안토니아와 루카스는 채 2년을 채우지 못한 연애 중 10개월 째 동거로 인해 서로에게 너무나 익숙해져있어서 그런 사소한 설레임조차 느낄 수 없는 '권태기'에 접어든 연인이다. 그렇기에 연애초기의 루카스의 '너는 내가 만난 최고의 여자야. 여기서 브라질까지 왕복하는 거리만큼 널 사랑해. 너는 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여자야…….' 라는 가슴 설레게 하는 문자가 '올 때 물 좀 사올 수 있어?' 라는 딱딱한 목적성 문자로 변질되기까지 그리 오래걸리지 않는다. 게다가 루카스의 호의적인 피트니스 팰리스 이용권 선물은 '살 좀 빼'라는 암묵적 지시로 들리기 시작한다. 여기서 이용권의 안내문을 안토니아가 변질시킨 문장(본 이용권을 가져오면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구명 튜브를 끼고 있는 것 같은 당신의 배와 출렁거리는 허벅지 살을 흔들어댈 수 있습니다-p46)을 보면서 한참을 웃었더랬다. 게다가 친한 친구 카타는 책에서 봤다며 사랑에도 유효기간이 있어서 '2년'이 지나면 남자는 현재의 여자친구와의 결혼을 중점에 두고 결정한다고 한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루카스의 전 여자친구인 자비네가 옆동네로 이사하면서 루카스는 그 이사를 도와주기 위해 다녀온다고 한다. 녀는 루카스에게 멋진 여자로 비치게 하기 위해 겉으로는 쿨한 척 하지만 속으로는 엄청난 상상을 하며 혼자 끙끙 앓게 된다. 그러다 루카스는 자비네와 함께 그린피스(환경운동)에 뛰어들어 활동하게 된다. 그 둘은 그러면서 함께 있을 시간이 더욱 더 많아지고 급기야 안토니아는 '남자친구 사수하기' 작전을 펼치게 된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내 남자친구에게도 전 여자친구가 등장한다면?' 이라는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 역시 안토니아처럼 남자친구를 사수하려고 고군분투를 할까, 혹은 전 여자친구에게 보내줄까. 둘 중 하나의 선택의 기로에 설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건 남자친구에 대한 믿음과 그에 따른 그의 행동에 따라 달렸다고 생각하는데, 이 책에서 루카스는 안토니아가 그런 생각들을 할 수 밖에 없는 행동들을 서슴지않고 한다. 그래서 읽으면서 안토니아의 입장에 서서 루카스를 죽어라 욕하며 한편으로는 안토니아가 그에게 바란 것은 어떤 비싸고 화려한 것이 아니라 '사랑해'라는 말 한마디라는 것을 알았을 땐 역시 남자들은 말하지 않으면 알아채지 못하는구나 라는 생각에 씁쓸해졌다. 게다가 나도 누군가와 감정을 주고 받으면서 생각했던 말들 중 하나인 내가 좋아하는 멜로 드라마에서는 모두 껴안고 해피엔드인데, 현실은 그게 아닐까봐 두렵다.(p325) 라는 말이었다. 내가 항상 봐왔던 사랑을 주제로 한 소설, 영화, 드라마는 모두 해피엔딩인데, 나만 그렇지 못하고 엇나갈까봐 항상 불안했었고, 그 불안은 지금도 이어져서 가끔은 못된 상상을 하게 한다. 하지만 그 상상은 항상 남자의 몫이 아닐까? 나 역시 여자이기에 루카스보다는 안토니아 입장에 서서 생각할 수 밖에 없었지만, 남자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그들은 안토니아의 행동들을 어떻게 생각할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2년이 지나면 사람에게서 사랑에 대한 항체가 생긴다는군. 호감이 생길 때는 도파민, 사랑에 빠졌을 때는 페닐에틸아민, 그러다가 그 사람을 껴안고 싶어지고 같이 자고 싶어지면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분비가 되고 마침내 엔돌핀이 분비가 되면서 서로를 너무 소중히 여겨서 몸과 마음이 충만해진다는 거야. 하지만 그 모든게 2년 정도가 지나면 항체가 생겨서 바싹바싹 말라버린다고. 그럼 도파민이든 엔돌핀이든 모조리 끝장이고 아무 것도 없이 싫증난 남자와 여자만이 있을뿐이지." - < 내 이름은 김삼순 中 >카타의 '2년 호르몬 이론'을 읽으며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의 문장이 떠올랐다. 정말 사랑에도 식품처럼 유통기한이 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결론은 서로에게 믿음이 깨어진 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엔 그 대답이 마음이 변했을 때라고 생각했으나, 그 때는 방부제를 충분히 쳐 둘 수 있으니까. 하지만 정말 사랑의 유통기한이 2년뿐이라면 나와 함께 진행중인 사랑도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인데, 그렇게 되면 참 우울할 것 같다. 아마 유통기한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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