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세상을 완성해 줘
장하오천 지음, 신혜영 옮김 / 이야기나무 / 2018년 3월
평점 :
절판





한 번씩, 나의 사랑에서 벗어나 타인의 사랑에 대해 관심을 돌릴 때가 있다. 그게 딱 요즘인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평소에는 찾아보지도 않았을 드라마를 본다며 TV 앞에 앉아있는 내 모습이 너무 낯설어서 흠칫 놀라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그와 나의 관계에 무슨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따뜻한 봄이니까, 바람이 살랑살랑 부니까, 꽃이 피니까, 분홍색의 옷을 많이 입으니까 라는 우스운 핑계들로 점철 지어진다. 어쨌든, 어떤 계절인들 그렇지 않겠냐마는, 봄은 사랑을 시작하기 참 좋은 계절임에 틀림이 없다. 드라마나 영화, 책을 보다 보면 처음엔 그와 내가 갓 연인이 되었을 때의 모습도 생각이 나서 실실거리지만, 곧 흥미를 잃어버리고 만다. 이야기에 개연성이 없거나 기상천외한 연애를 한다거나 하는 이유가 될 수도 있지만, 이제 앞으로 어떻게 될지를 너무나도 잘 아니까. 사랑에 빠졌다가 다퉜다가 결국은 둘이 이어지는 스토리는 어쩌면 너무나도 흔한 우리의 모습일 수 있다. 물론 엔딩은 달라질 수 있다는 건 명심하고.

나는 링컨의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라는 말을 무척 좋아한다. 어떤 말을 넣어도 말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좋아한다. (뜬금포 고백) 한 예로, '사랑을 위한, 사랑에 의한, 사랑의'라고 바꿀 수도 있는데, 여기에서 사랑이라는 단어가 개인적으로는 어떤 이론이나 해석이든 전부 가능한, 알파의 의미를 가져서 더욱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나는 타인의 사랑에 관심을 가진다. 내가 가진 사랑의 형태와 대조시키기보다는, 그 사람의 사랑은 어떤 형태인지 궁금해서. 그러한 이유로 집어든 책이 <나의 세상을 완성해줘>였다. 열두 편의 사랑을 담은 이야기. 사랑에 대한 이야기.




어느 순간, 사랑에 관한 한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하는 사랑은 이렇지만, 이 사람이 하는 사랑은 이렇고, 저 사람이 하는 사랑은 저렇다는 것을 우린 너무나도 잘 알지 않나. 사람 생김새가 다르듯, 사랑도 각양각색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가 사랑 이야기에 함께 웃고 슬퍼하며 공감하는 것은 그 사랑과 나의 사랑이 완전하게 닮아서 그렇다기보다는 비슷한 점을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이게 진짜 현실 속에서 있을 수 있는 이야기라고? 라는 생각을 많이 배제시키려 노력했다. 각기 사연 없는 사랑이 어디 있겠는가. 내가 겪지 않은 일이라고 하여 그것은 '현실과 동떨어지는 일'이라고 속단하는 것이 조금은 위험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조금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사랑도 남들이 들으면 신기하다거나 특별하다고 생각할 수 있고, 반대로 나는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사랑을 남들은 시시하게 여길 수도 있는 것이니까.

하지만, 이 책은 내 기준에서는 그렇게 재미있는 책은 아니었다. 조미료가 조금 과했다. 열두 편의 사랑을 엿보았지만, 어떤 사랑에도 마음을 주지 못했다. 마음이 에 닳는다거나 안타깝다거나 웃음이 나온다거나 하는 것보다는 그들의 사랑을 가만히 쳐다볼 뿐이었다. 누군가의 감정 속에 들어가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을 이야기하는데 치중했기에 내가 볼 수 있었던 것은 주인공들의 상황뿐이라 더 그렇게 느꼈던 것일까. 어쨌든 아쉬움이 짙다.








오탈자402. 샤펑 농담에서 통쩐은 꿈쩍하지 않았다 ▶ 쉬찬

오탈자402. 통쩐과 쉬펑쉬찬

오탈자403. 착안 여자애라면 곱게 키울만하지. ▶ 착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머니와 나
김성우 지음 / 쇤하이트 / 2018년 4월
평점 :
품절


 

 

 

 

나의 엄마는 여느 엄마가 그러했듯, 나의 10대를 책임져주었고, 나는 그런 점이 여전히 감사하다. 어린시절의 나는, 훗날의 나의 자식에게 나의 엄마 같은 엄마가 되고 싶었던 것을 기억했기 때문이다. 아들이든 딸이든 중학생과 고등학생을 지내는 6년 동안 손수 교복을 다림질해주는 그런 엄마. (물론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님에도) 맞벌이한다고 제대로 챙겨주지는 못하지만, 내 자식 집에서 이만큼의 보살핌을 받고 지낸다는 표시의 하나였다. 나는 주름치마를 입던 중학생 때, 누구보다 빳빳하고 반질반질한, 열 맞춰 정돈되어 있는 그런 교복 치마를 뽐냈었다. 엄마의 바람처럼 어디 가서 기죽지 않았고 오히려 동기생들의 부러움을 산 채로 학교를 다녔다. 또한 지금까지도 여전한 나의 아침밥을 먹어야 하는 습관은, 바쁜 와중에도 아침을 꼭 차려주었던 엄마의 부지런한 손끝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현재의 나는 엄마와 애틋하다거나 애잔하다거나 애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 않다. 2015년까지는 엄마와의 관계가 다정다감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 삼 년이라는 시간 동안, ‘엄마라는 단어만 들어도 눈물이 흐르고 가슴이 꽉 막힐 때가 분명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건조된 감말랭이도 엄마와 나의 관계만큼 건조하고 메마르진 못할 것이다. 나는 생각보다 자주 엄마와의 관계 개선을 꿈꾸지만, 그런 날이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포기해야만 했다. 지금 엄마와 나의 가치관은 너무나도 다르고 그것이 충돌되어 산산조각이 나버린 것이며, 그것은 슬프게도, 길고 긴 3년의 결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주 엄마를 찾는다. 엄마의 삶을 가엾게 여기기도 하고, 애처롭게 여기기도 한다. 일정 부분에 있어서는 감사한 마음을 지니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엄마의 전체적인 생을 부정할 수는 없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자주 타인의 엄마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 다른 이의 낯선 엄마의 모습에서 나의 엄마를 추억하고 그리워하고 미워하기도 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엄마들이 있지만, 김성우 님의 엄마를 만났다.

21. 밥하는 노동의 가치에 대해 말을 할 때에, 나는 새삼 부끄러워졌다. 결혼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밥하는 노동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집에 들어서면 훈훈한 온기가 돌고, 밥이 있었고, 그에 걸맞은 반찬들이 있었으며, 매일 보드라운 수건이 걸려있었고, 화장실 휴지는 새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모든 것이 당연한 줄 알고 살았다. 그런데 결혼을 한 순간, 나는 그게 아님을 여실히 깨달았다. 모든 것이 누군가의 손을 거쳐 내가 그런 편안함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그 누군가는 나의 엄마였다. 세상에 이유가 없는 편안함은 없었다.

 

 

97. 성우야, 그거 아니? 사람은 자기가 본 것 이상으로는 절대 살지를 못해. 특출나게 태어난 사람들이 있을 수 있지만, 자라면서 보고 배운 것 이상으로 커질 수가 없어. 내가 살아 보니 그렇더라.”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김성우 어머니의 말씀. 내가 언젠가부터 마음 깊이 되새기는 말 중 하나인,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와 비슷한 말인 것 같아서 계속 반복해서 보았던 부분. 어머니께서 이런 말씀을 하는 이유는, 다시 태어나면 삼 형제를 더 잘 키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태어나도 사람, 꼭 여자로 태어나고 싶으시다나.

 

 

 

어머니와 했던 말이 글감이 되고 그것을 엮어낸 책이다. 책은 쉽게 읽힌다. 쉽게 읽히는 책이지만, 한편으로는 부러운 마음을 지니며 읽는다. 나는 딸이면서도 같은 여자인 엄마와 속 깊은 이야기를 많이 나눠본 적이 거의 없다. 나의 어려움을 엄마에게 토로한 적도 많지 않다. 내가 엄마에게 나의 어려움을 토로했을 때는 2015년 겨울에서 2016년 봄 그 사이였다.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삐거덕댔던 것들이 그때에 부서진 것이리라. 그래서 이런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밀한 관계, 특히 엄마와의 관계가 부럽게 느껴진다. 나의 마음이 이런 것처럼 나의 엄마도 그럴 테지. 하지만 거기까지 일 뿐, 나는 더 이상 용기를 내지 못한다. 나는 언제나 나의 엄마의 안녕을 바라는데, 특히나 오늘은 엄마의 평온을 바란다.

 

   


 

 

오탈자 97. 성우야, 그거 아니? 사람은 자기가 본 것 이상으로는 절대 살지를 못해. 특출나게 태어난 사람들이 있을 수 있지만, 자라면서 보고 배운 것 이상으로 커질 수가 없어. 내가 살아 보니 그렇더라.” 특출하게

 

오탈자 241. 늘상 게으름이라고 부르는 것을 해부하니 노상 혹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도 내 맘 좀 알아주면 좋겠어 - 서툰 표현 뒤에 감춰진 부부의 속마음
다카쿠사기 하루미 지음, 유윤한 옮김 / 더난출판사 / 2018년 3월
평점 :
절판




 

 

몇 년을 함께 했든 완전한 타인과 타인의 결합에는 그에 상응하는 노력이 부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싫으면 안 보면 그만! 이라는 타인들과 달리, 가깝게는 가족이 그렇고 가족 중에는 남편과 아내 즉, 부부가 그렇다. 서로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만큼 소홀할 수 있는 게 남편과 아내의 관계라고 보는 나는, 분기에 한 번 정도는 원만하고 순조로운 부부생활을 위해 부부를 위해 쓰인 책들을 찾아 읽는 편이다. 물론 그 속에 해답이 있을 리 없다. 많은 예시가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그와 같은 상황이 아니고 내가 그와 같은 생각을 지닌 것이 아니라면 공감할 수 없다. 그럼에도 꾸준하게 찾아읽는 까닭은, 여러 상황들을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 가상으로 만나보고 내가 비슷한 일을 겪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을 할 것인지, 이 일에 적합한 대응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을 좀 더 깊이 있게 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러다가 나와 비슷한 상황이나 내가 이전에 가졌던 고민들을 만나면 더없이 유익하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이번에는 책 제목을 좀 더 들여다보게 되었다. <당신도 내 맘 좀 알아주면 좋겠어>라니.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해 서운해하고 섭섭해하고 속상해하는 게 비단 부부관계에 한정된 것이겠냐마는, 누구보다 가까이 있는 '가족'으로 묶인 '남편과 아내' 사이에서는 무엇보다 절실한 말이 아닐까 생각했다.

부부관계에 세 가지 요점이 있었는데 자기 호감, 자기 유능감, 자기 중요감이 그에 속했다.

자기 호감 ; 사랑받고 싶다는 욕구

자기 유능감 ; 능력을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

자기 중요감 ; 중요한 존재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

이것은 부부라는 테두리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인간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욕구에 속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나와 가장 친밀한 이에게 받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요즈음 황혼이혼이 늘고 있다고 했다. 그동안 고생은 고생대로 해놓고 황혼이혼이라니? 차라리 나를 찾을 수 있을 때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게 맞지 않을까? 생각했다. 황혼이혼을 요청하는 사람은 남편보다는 아내들이 많았는데, 그것은 1)도움을 청했을 때 도와주지 않았던 남편에 대한 허무감, 2)일을 우선시하는 남편의 태도가 안겨준 고독감, 3)남편으로부터 사랑받고 있지 않다는 데서 오는 상실감이 그에 속했다. 솔직히 말해, 나는 이중 2번을 2015년에 느꼈었는데, 일을 나보다 우선시한다기보다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본인의 욕망이 있기 때문에 그로부터 오는 외로움이 좀 있었다. 대화를 해도 제자리라는 것을 느껴서 허무할 때도 있었고, 결국은 본인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욕망이 컸던 그는 오로지 본인을 위해서 '친정으로 가있으면 어떻겠냐'라는 말을 한 적도 있었다. 본인의 일에 대해서만큼은 의논이 아니라 통보에 가까웠다.

나는 2번 하나만으로도 그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이혼을 요청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전혀 모른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러던 중 교육이라는 가면은 씌워 억지로 들어야 했던 강연을 들은 계기로 그는 '일보다는 가정' 바뀌기는 했지만 당시에 나는 결혼에 대한 회의감이 심각하게 들기도 했었다. 그러면서도 야망이 없는 사람이라면 내가 그를 믿고 결혼을 했을까. 하는 모순된 생각을 가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만약 그런 상황이 지금까지도 이어졌다면 우리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상상하면 조금은 움찔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개인적으로는 그때 읽었던 책 전경린 <나비>가 정말 큰 도움이 됐었다.


모든 남자들은 상실한 나라를 가진 고독한 존재들이다.

알렉산더대왕, 칭기즈칸, 진시황제, 나폴레옹, 심지어 히틀러도 바로 그 나라에 가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남자들에겐 세계를 다 정복한다 해도 결코 갈 수 없는 나라가 있다.

 전경린 , 나비」




51. 남자는 자존심에 살고 자존심에 죽는 존재.

누군가 자신을 걱정해주거나 생각해주기보다는 신뢰해주기를 원합니다.

“당신이라면 괜찮아. 난 믿어.


그는 내가 집에 와서 직장에서 있었던 일화들을 이야기하곤 한다. 그런데 그가 내게 직장에서의 일을 전부 내게 털어놓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가 힘든 일이 있으면 그때그때 이야기하지 않고, 이후에 다 해결되면 이야기를 하곤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도 힘든 일이 해결되면 다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혼자 삭힐 때도 많다. 나는 내가 걱정할까 봐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것도 그것이겠지만, 자기 자존심에 금이 가는 일이면 더욱 그랬다. 나 역시 일을 하다가 자존심에 금 가는 일이 얼마나 많았던가. 하지만 그것을 전부 말하지는 않는다. 회포를 풀 수 있는 유대관계가 있는 회사 동료가 있다면 더더욱. 그런 면에서 그와 나는 똑같은 게 아닐까. “무슨 일 있어?”의 대답을 요하는 말보다 그가 유난히 힘들어 보일 때면 술상을 차려 그와 함께 각자가 짊어졌었던 하루의 피곤을 풀 수 있는 그런 아내가 되고 싶다.



194. 여성들은 상대 남서이 자신에게 어떻게 해줄지를 시험하고 관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생일이나 기념일 당일까지 말을 안 하고, 상대가 어떻게 하는지를 지켜봅니다.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만일 상대가 자기 뜻대로 하주지 않았을 경우 남는 것은 분노와 슬픔입니다.


이 부분에서 아차 싶었다. 내가 꼭 그렇기 때문이다. 생일이나 기념일은 그가 알아서 잘 챙기지만, 으레 회식이나 술 약속이 그랬다. 내가 정말 다녀왔으면 하고 인정하는 경우에는 “응, 그래요. 알았어. 다녀와.”라고 말하지만, 그게 아닐 경우에는 “너 알아서 해요.”라고 말한다. 그러면 그는 나의 대답에 따라 약속을 잡거나 잡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너 알아서 해요.”라는 말을 들으면 “마음에도 없는 소리하네.”라면서 내 눈치를 살핀다. 76. 왜 먼저 알아주지 못하냐고 짜증을 내지 말고, 원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말해보세요. 선택권을 줘버리고선 내가 원하는 선택지가 아니면 화가 나는 타입; 나는 내가 그러지 않으면 좋겠는데,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이번에도 글로 부부관계가 원만해지는 법을 배웠고 행동으로 다이렉트로 연결될 고리를 얻지는 못했지만,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당장은 아니지만 이런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자양분이 되어 우리 부부의 밑거름에 보탬이 될 테니까.



오탈자 156. 이혼을 하던 관계를 회복하던, '이렇게 하기를 잘했다'라고 후회하지 않는 것이 행복을 향한 첫걸음입니다. ▶ 이혼을 하든 관계를 회복하든

('-하던 '은 과거의 일을 회상하는 것이라면, '-하든'은 선택의 문제이니 '-하든'이 맞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야기꾼의 화첩 - 열두 가지 이야기로 그려보는 한국풍 메르헨 (컬러링북)
곰곰e 지음 / 더도어즈 / 2018년 3월
평점 :
절판


 

 

 


마음의 안정이 필요할 때면 컬러링북을 통해 색칠을 했었다. 색채 감각이 꽝인 나이기에, 엄청난 컬러링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내가 알고 있던 동화들을 한국풍으로 만나볼 수 있다고 하여 색다르다고 생각했다. 외국 고전인 <빨간모자<잠자는 미녀> <피터팬> <눈의 여왕<백설공주>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엄지공주>와 더불어 우리나라 전래동화인 <선녀와 나무꾼> <견우와 직녀> <해와 달이 된 오누이>까지 합하여 총 열두 편이 들어있다.

 

 

 

 

 



이건 슬쩍 넘기다가 보게 된 부분인데, 이 동그라미 안을 채워 넣고 싶었다. 나는 이번에 색칠을 하면서 설핏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하마터면 나는 이 컬러링북을 회색빛으로 전부 그릴 뻔했다는 사실.

 

 

 

 

 




이건 <빨간 모자>에 나오는 부분인데, 소녀를 꼭 칠하고 싶어서 벼르다가 의식의 흐름대로 색칠 샤삭-

동화 제목은 <빨간 모자>이지만 내 멋대로 <분홍 모자>로 변신하기도 했다.

 

 

 

 

 


내가 참 좋아하는 동화 중 하나 <백설공주>는 정말 충격 그 자체, 하회탈을 쓴 난쟁이라니!!!! 헤헤헤 거리면서 색칠을 했는데 나의 어리바리한 색채감각은 여기에서도 드러나는군.


+

뿐만 아니라, <미녀와 야수>에서 야수는 한국풍으로 그렸을 때 무엇인지 아는가! 난 보고 당황스러운 마음에, “어???”해버렸는데, 정말이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면서 깜짝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던 부분들이 분명 많았다. 완성된 그림에 색을 칠하는 것만이 아니라, 내가 알고 있던 것들의 사고를 전환시켜 조금은 신기한 경험을 하게 해주는 컬러링북이었다. 나의 경우는 한 페이지를 전부 칠하기보다는, 조금씩 마음에 드는 인물, 마음에 드는 물건, 마음에 드는 물건 등을 하나씩 색칠하는 재미를 느끼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달의 조각 - 불완전해서 소중한 것들을 위한 기록
하현 지음 / 빌리버튼 / 201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적인 영역을 아우르는 작가 본연의 에세이를 읽어 내는 것이 퍽 힘이 든다'라고 자주 생각했었다. 그렇게 에세이를 '잘' 읽지 못하고, 읽지 않으려는 나의 주관적인 태도는 정말이지 언제 생각해도 황당무계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맥이 다시 풀렸다. 이런 느낌은 강세형님 이후로 좀 오랜만이었다. 에세이를 읽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를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해보자면, 처음 지녔던 에너지가 점점 뒤로 갈수록 소모되고 닳아없어지는 느낌을 꽤 자주 받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떤 에세이들은, 다른 책의 구절을 발췌함으로써 그 간극을 메우려는 시도를 한 에세이도 있었으니 말 다 했다. 어쨌든, 나는 이번에, 개인적으로는 끌어안고 싶을 정도로 좋은 에세이를 만난 것 같다.



조금 오랜만에 책을 빌리러 도서관에서 누군가 읽고 반납한 곳에 이 책이 있었다. 무심하게  페이지를 넘기다가, 기존에 빌리려고 했던 책 한 권을 포기하고 책을 함께 빌렸다. 그날은 공교롭게도 휘영청 밝은 보름달을 보기 하루 전이었다. 달의 조각을 활자로 만나기 이전에, 달의 차오름을 먼저 만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좋았다.


사흘 동안 이 책을 가까이하는 동안에 읽고 있는 페이지가 닳을까 봐 심하게 버둥거렸고, 속도는 더뎠다. 단어를 고민하는 시간들, 그렇기에 쉽게 쓰이지 않은 글들이라고 생각했다. 생각의 근거는 분명했다. 한 페이지에 당신의 마음을 읽고, 한 페이지에 마음을 나누고, 한 페이지에 위안을 받으며, 한 페이지에 당신에게서 배우고, 한 페이지에 당신을 부러워도 하며, 한 페이지에 완전히 방심해져버리고, 한 페이지에 나를 사랑하는 시간과 한 페이지에 나의 배우자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는 동안 그동안 꽉 막혔던 것들이 조금씩은 뚫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평온함이라는 호사를 기꺼이 누렸던 까닭이다.

책을 읽고 난 후에는 꼭 거리를 소요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는데, 부러 그러려고 그런 것이 아니라 조용한 곳에서 마음을 다독이는 시간을 가지고 싶어 도서관 열람실에서 이 책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당신의 글은 섬세하고도 분명하여 글에 깃든 애정조차도 투명했다. 달 속에 물이 차 있는 것인지, 물속에 달이 들어찬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오늘 오후, 열람실에서 이 책을 다 읽었고 나오는 길에 열람실 앞에 놓인 반납함과 마주쳤다. 어쩐지 나의 책을 누군가에게 빼앗기는 기분이 들어 반납하지 않고 열람실을 도망치듯 나왔다. 그리고 그 책은 오늘 외출했던 가방 속에 고이 들어있다.




한결같은 호흡을 꾸준하게 유지하며 나는 당신의 글을 읽었다. '나'는 미완의 '당신의 글'을 읽고 더욱 '미완의 인간'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책을 읽기 전이나 책을 읽은 지금이나 여전히 나는 미완의 시대를 산다. 나는 당신의 문장들의 행간에 자주 서서 당신과 나의 간극을 바라보았다. 당신이 아는 것을 나도 알고 싶었고, 그로 인해 나는 조금 더 위로받고 싶었다. 위로를 받으면서 간극의 틈이 좁혀졌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완전한 착각이었다. 당신과 나의 간극은 좁혀질 수 없었다. 당신과 나의 경험으로 이루어진 세계는 완연하게 달랐으니까.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따금 호쾌한 사람인 척하는 나 자신이 역겨워 견딜 수가 없을 때가 있는데, 그런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방법을, 시간을, 향유할 수 있게 되었음에 감사한다.


당신은 유난히 꼬리가 긴 사랑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면 차라리 도마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당신이 도마뱀이 되지 않았기를, 오지랖을 떨면서라도 바라고 싶다. 당신이 도마뱀이 되었다면 당신의 사랑은 꼬리가 길었을 테니. 무심코 내뱉는 말의 폭력성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를 바랐고, 대신 당신이 쉽게 행복해지는 순간들이 조금 더 자주 있으면 바랐다. 나는 당신의 시선으로 써낸 겨울을 읽으며, 나도 처음으로 '겨울을 좋아해 보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당신의 이야기는 겨울이었다. 당신 자체가 겨울이었을는지 모른다. 당신을 떠올리면 나는 쉽게 겨울을 떠올린다. 나는 봄이 오는 것을 미루고, 이미 차오를 대로 차오른 겨울의 달을 당신과 떠먹는 달큼한 경험을 했다. 나는 당신에게 퍽 감사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