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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조각 - 불완전해서 소중한 것들을 위한 기록
하현 지음 / 빌리버튼 / 201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적인 영역을 아우르는 작가 본연의 에세이를 읽어 내는 것이 퍽 힘이 든다'라고 자주 생각했었다. 그렇게 에세이를 '잘' 읽지 못하고, 읽지 않으려는 나의 주관적인 태도는 정말이지 언제 생각해도 황당무계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맥이 다시 풀렸다. 이런 느낌은 강세형님 이후로 좀 오랜만이었다. 에세이를 읽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를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해보자면, 처음 지녔던 에너지가 점점 뒤로 갈수록 소모되고 닳아없어지는 느낌을 꽤 자주 받기 때문이기도 했다. 어떤 에세이들은, 다른 책의 구절을 발췌함으로써 그 간극을 메우려는 시도를 한 에세이도 있었으니 말 다 했다. 어쨌든, 나는 이번에, 개인적으로는 끌어안고 싶을 정도로 좋은 에세이를 만난 것 같다.
조금 오랜만에 책을 빌리러 간 도서관에서 누군가 읽고 반납한 곳에 이 책이 있었다. 무심하게 페이지를 넘기다가, 기존에 빌리려고 했던 책 한 권을 포기하고 책을 함께 빌렸다. 그날은 공교롭게도 휘영청 밝은 보름달을 보기 하루 전이었다. 달의 조각을 활자로 만나기 이전에, 달의 차오름을 먼저 만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좋았다.
사흘 동안 이 책을 가까이하는 동안에 읽고 있는 페이지가 닳을까 봐 심하게 버둥거렸고, 속도는 더뎠다. 단어를 고민하는 시간들, 그렇기에 쉽게 쓰이지 않은 글들이라고 생각했다. 생각의 근거는 분명했다. 한 페이지에 당신의 마음을 읽고, 한 페이지에 마음을 나누고, 한 페이지에 위안을 받으며, 한 페이지에 당신에게서 배우고, 한 페이지에 당신을 부러워도 하며, 한 페이지에 완전히 방심해져버리고, 한 페이지에 나를 사랑하는 시간과 한 페이지에 나의 배우자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는 동안 그동안 꽉 막혔던 것들이 조금씩은 뚫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평온함이라는 호사를 기꺼이 누렸던 까닭이다.
책을 읽고 난 후에는 꼭 거리를 소요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는데, 부러 그러려고 그런 것이 아니라 조용한 곳에서 마음을 다독이는 시간을 가지고 싶어 도서관 열람실에서 이 책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당신의 글은 섬세하고도 분명하여 글에 깃든 애정조차도 투명했다. 달 속에 물이 차 있는 것인지, 물속에 달이 들어찬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오늘 오후, 열람실에서 이 책을 다 읽었고 나오는 길에 열람실 앞에 놓인 반납함과 마주쳤다. 어쩐지 나의 책을 누군가에게 빼앗기는 기분이 들어 반납하지 않고 열람실을 도망치듯 나왔다. 그리고 그 책은 오늘 외출했던 가방 속에 고이 들어있다.
한결같은 호흡을 꾸준하게 유지하며 나는 당신의 글을 읽었다. '나'는 미완의 '당신의 글'을 읽고 더욱 '미완의 인간'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책을 읽기 전이나 책을 읽은 지금이나 여전히 나는 미완의 시대를 산다. 나는 당신의 문장들의 행간에 자주 서서 당신과 나의 간극을 바라보았다. 당신이 아는 것을 나도 알고 싶었고, 그로 인해 나는 조금 더 위로받고 싶었다. 위로를 받으면서 간극의 틈이 좁혀졌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완전한 착각이었다. 당신과 나의 간극은 좁혀질 수 없었다. 당신과 나의 경험으로 이루어진 세계는 완연하게 달랐으니까.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따금 호쾌한 사람인 척하는 나 자신이 역겨워 견딜 수가 없을 때가 있는데, 그런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방법을, 시간을, 향유할 수 있게 되었음에 감사한다.
당신은 유난히 꼬리가 긴 사랑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면 차라리 도마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당신이 도마뱀이 되지 않았기를, 오지랖을 떨면서라도 바라고 싶다. 당신이 도마뱀이 되었다면 당신의 사랑은 꼬리가 길었을 테니. 무심코 내뱉는 말의 폭력성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를 바랐고, 대신 당신이 쉽게 행복해지는 순간들이 조금 더 자주 있으면 바랐다. 나는 당신의 시선으로 써낸 겨울을 읽으며, 나도 처음으로 '겨울을 좋아해 보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당신의 이야기는 겨울이었다. 당신 자체가 겨울이었을는지 모른다. 당신을 떠올리면 나는 쉽게 겨울을 떠올린다. 나는 봄이 오는 것을 미루고, 이미 차오를 대로 차오른 겨울의 달을 당신과 떠먹는 달큼한 경험을 했다. 나는 당신에게 퍽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