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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아이는 괜찮습니다
사카이 준코 지음, 민경욱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1.
읽을 책을 몇 권 손에 든 채로 도서관을 배회하다가 제목만 보고 집어왔다. 이 책의 제목은 이전에도 본 적이 있지만 그렇게 끌리지는 않았었는데, 그건 내가 구매해서 읽을 책과 빌려서 봐도 되는 책을 엄격하게 구분 지었던 탓이 큰 것 같다. 아이에 대해, 특히 아이를 낳지 않는 것에 대해 쓴 책들 중에 만족감을 느낀 책이 거의 없어서 그런 것도 크지 않나 싶다.
몇 년째 나의 관심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아이’에 대한 문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이를 낳을까 말까’를 더 고민했었다. 아이가 있는 삶과 아이가 없는 삶을 재고 따졌는데, 사실 그건 정말 터무니없는 일이었다. 아이의 유무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결정지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최소한 우리 부부가 더 행복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게 최우선이었다.
이 책은 7월 27일에 시작해서 8월 10일에 완독을 했다. 아니, 7월 27일에 1/2를 읽고, 8월 10일에 1/2를 읽어서 끝을 보았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나는 너무 난처했다. 마흔에 가까운 미혼의 여자가 아이는 괜찮다고 말을 하는 게 받아들이기가 힘들기도 하거니와, 그것과 동시에 아이가 없는 삶에 대해 합리화를 하는 것이 굉장히 불편하게 느껴진 까닭이었다.
ps. 숫자를 매기는 건, 내가 할 말이 굉장히 많다는 건데, 나는 내가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쓰면서는 좀 자제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2.
한국과 일본의 문화 차이를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궁금해해본 적도 없고, 궁금해하고 싶지도 않기 때문에.
아이는 부모의 사후 처리를 하는 대상으로 여겨진다. (아이가 없는 친척의 장례에는 조카가 대부분 사후 처리를 한다)
결혼은 하지 않아도 아이는 낳으라는 말이 아무렇지 않거나 결혼은 하지 않아도 아이를 낳고 싶어 하는 여성이 많다는 점
독신은 자기 집 묘에 들어갈 수 없다는 점 (매우 가부장적이기 때문에) (독신으로 죽은 여성은 집에서 성가신 존재)
그렇기에 우리나라와 다른 문화에 대해서는 그냥 그렇구나- 하면서 읽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가부장적이구나- 라는 걸 느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보다 오지랖이 더 심하겠네, 하는 생각도.
3.
53. 출산은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입니다. 왜 출산을 해야만 하는지 분명하게 대답해줄 수 있는 무언가를 제시하지 않는 한 수치만으로 사람들 마음을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점점 더 결혼도, 아이도 선택할 수 있는 삶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그것을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인 조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고 그들은 그 선택들에 참견을 한다. 참견을 하는 사람은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지 않지만, 참견을 받는 입장에서는 여간 스트레스라는 것을 그들은 모르는 모양이다.
‘너는 왜 아이를 낳지 않니?’ 라는 물음에 훈계하려는 말이 뒤따라온다면, ‘너는 왜 자녀를 하나만 낳았니?’ ‘딸이 둘인 사람에게 너는 왜 아들을 낳지 않니?’ ‘애가 그렇게 좋으면 셋넷 더 낳지, 왜 안 낳니?’ ‘너는 애들이 있는데 왜 SUV를 끌지 않니?’ ‘너는 애들이 그렇게 큰데 좀 더 큰 데로 이사해야 하는 거 아니야?’ 라고 물을 거고 실제로 그러고도 있다. 그런 질문이 상대방에게는 얼마나 무례함을 범하는지 실제로 느끼게 해줄 참인 거다. 물어보는 것까지는 OK, 그 이후 훈계는 NO. 근데 실제로 나는 타인이 보기에는 강단이 있는 사람으로 비치는지, 웃으며 ‘그런 말은 무례하네요. 저희 부부 일은 저희가 알아서 해요.’라고 말하면 대부분은 말을 줄인다.
4.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불편한 마음뿐이었는데, 작가의 열등감이 너무나도 분명하게 보인 까닭이다. 게다가 자꾸만 말이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는 부분도 없잖아 있어서였다.
위의 책 내용만 보더라도, “아이를 낳고서야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이 정말 많습니다.”라고 하는 부분에 대해, 뭐 물론 상대가 어떤 뉘앙스로 말을 했느냐에 따라 다를 수도 있지만, 저렇게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실제로 나는 저 말을 많이 들었는데, 아 그렇구나- 로 생각하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소소하게 밀린 집안 청소를 다 하고 나면 말끔한 기분이 든다. 그런데 세상에 없던 한 생명이 태어났는데 부모로서 느끼는 바가 없다고 한다면 그게 더 이상함을 넘어 무서운 거 아닌가. 굳이 저렇게까지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 것이었다.
4-1.
결혼을 못 한 혹은 하지 않은 이들을 패배자라고 부른다.
너무나도 놀랐던 부분.
아이는 선택이라고 하면서, 결혼에 대해서는 그렇게 말을 하다니?
4-2.
155. 남성이 아이를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여성은 결혼도 하고 싶고 아이도 갖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교제하는 남성이 결혼도 아이도 원치 않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156. 여자 친구가 임신한 것도 아닌데 “당신 아이를 갖고 싶어! 결혼하자” 하는 기특한 남성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수가 적고 그런 선남은 바로 선녀와 이어지죠.
아.. 음... 인정하기 힘들지만 그래, 뭐... 그 나라는 그러려니... 당신 주변은 그런 사람이 많으려니... (절레절레)
4-3.
굉장히 난처하다고 생각했던 부분.
130.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독신으로 사는 게 아닙니다. 여성의 비세대와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페미니즘 사상 영향으로 독신을 선택한 세대는 또 우리와 다릅니다.
200. 겐코 씨는 “처자를 가진 놈은 바보다!”면서 아이 없이 지내는 생활이 얼마나 눈부신지 보여주었습니다. 그 당당하고 깔끔한 정신만은 지금 봐도 부러운 마음이 드네요. 현재 우리가 아이를 갖고 있지 않은 것은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거나 가질 수 없는 상태여서 그런 거니까요.
하... 책을 반 정도 읽었고, 뭐라고 결말을 맺으려나 싶어서 끝까지 읽었는데...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결혼 못 한 혹은 하지 않은 사람과 결혼했지만 아이가 없는 사람은 패배자라고 했다가,
어쩔 수 없이 독신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가, 아이가 없는 것은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결말을 맺는다.
최초로 역자의 후기가 궁금해지는 책이었다. 역자는 이 책을 번역하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요즘 책 읽기가 좀 버겁다.
내가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건 아닌지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이 많은데,
지금 나의 그릇으로는 이렇게밖에 안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