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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평점 :
- 우리의 만남이 두려워요.
만나고 나서 당신을 잃게 된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고, 상상하고 싶지도 않아요.
- '잃는다'는 생각 같은 건 하지 말아요.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이미 잃는 거예요. (p363)
초등학교 땐 거저 주어도 아무도 반가워하지 않고, 버려도 아무도 주워가지 않는 고물 컴퓨터가 있었는데 인터넷도 되지 않았던 이유로 그 컴퓨터의 용도는 항상 게임이었다. 그러다가 중학교 때 처음 컴퓨터가 생겼던 나는 고심해서 아이디라는 것을 만들었고, 비밀번호도 만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식상한 아이디였는데, 보물단지처럼 소중히 아끼며 그 아이디로 중학교 시절 친구들과 e-mail이라는 것을 주고 받는데 열중했던 적이 있었다. e-메일은 손편지와는 달리 타자를 몇번만 두들기면 힘들이지 않고도 내가 원하는 만큼의 많은 문장을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고 처음 본 물건에 호기심이 생기듯 자연스레 그동안 써왔던 편지를 버리고 그쪽으로 눈이 돌아갔다. 항상 하교 전까지 봤던 친구들이지만 컴퓨터를 켜면 친구들에게 집에 와서 뭘 했는지, 내가 오늘 어떤 생각을 했는지에 대해 말하지 않으면 입이 간지러워서 두드러기가 날 정도였으니 e-메일이라는 그것이 한 때 내 생활에 얼마나 크게 미쳤는지 알만하다. 갑자기 옛 생각을 하며 그 이야기를 끄집어 낸 이유는 이 책이 e-메일 형식이기 때문이다. 편지 형식으로 된 책을 요근래 몇 작품 접했지만, 이런 형식은 처음이기에 구미가 당길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은 에미가 잡지사의 담당자에게 정기구독을 해지해달라는 e-mail을 보내는 것으로 이야기의 첫 장이 시작된다. 그러나 단순한 철자 하나때문에 메일은 레오에게 도착하는 진부한 스토리로 시작을 하게 되며, '에이 뭐야 이거, 이런 식으로 시작되는거였어?' 라며 첫 부분부터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나름대로의 구색을 갖추고 있는 터라 찬찬히 그들의 비밀을 훔쳐보기 시작했다. 에미는 한 가정에서 아내, 엄마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가정주부로 행복한 가정의 표본이 되고 있고, 레오는 연인이었던 마를레네와 헤어지고 공황 상태였다. 그럼으로 그들이 e-메일을 주고 받는 시간이 그들에게는 '가족타임아웃'이고 '마를레네 극복 요법'이 되는 것이다. 비밀을 하나,둘 털어나가며 그들은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고 그것은 점차 사랑으로 불리게 된다. 그러던 중 '식별놀이'라는 것을 제안하고, 서로는 정확히 누가 누군지 모르는 상태에서 짐작만 할 뿐, 더 이상의 진전은 없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다가 에미의 친구를 레오에게 소개시켜주는데…….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 이 책은 편지가 아닌 두 사람의 e-메일을 옮겨적은 것이기 때문에 문체는 생각보다 많이 딱딱했고, 가령 나긋나긋한 문체로 바뀌어버릴 때면 에미와 레오가 보내는 메일들을 구별하기가 힘들었다. 그럴 때면 내용을 보고 파악하던가, 뒤에 있는 이름을 보고 파악해야만 했는데, 이것은 작가가 그렇게 써놓은 건지 혹은 번역이 그렇게 된건지 알 수가 없어서 그 부분에서는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또한, 굿나잇, 굿나잇, 굿나잇, 굿나잇, 이런 식의 한 문장으로 끝나버리는 메일을 볼 때면 그들이 헤어짐을 아쉬워하는걸 간접적으로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긴 한데, 그것이 마음에 확 와닿는 것도 아니었을 뿐 아니라 '도대체 이게 뭐하는 짓이야.'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가끔 마음을 조금 살랑살랑 흔들리게 하는 문장들도 있긴 했지만, 그것들을 불륜으로 치부해버렸을 땐 아름답다기보다는 '아, 젠장.'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아마 에미가 유부녀가 아니었으면, 난 그들의 사랑을 전폭적으로 응원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본다.
현실을 무시한 가상 속의 안락함은 영원할 수 없다. 등에 짊어진 현실은 점점 더 내 목을 조여올 것이고, 그로 인해 가상 속에서 안락함을 위로의 선물로 받는다. 하지만 가상은 가상일 뿐 어떤 명쾌한 해답도 얻을 수 없다. 하지만 내가 그 사실에 강한 반박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때로는 나 역시도 얼굴도, 목소리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받고, 행복한 기운을 얻으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 뿐만 아니라 우리 세대의 사람들은 제각각 자신만의 공간을 꾸미고, 그 속에서 또 하나의 나로 성장하게 된다. 그 속의 나는 내가 만들어낸 워너비일 수도, 혹은 본연 그대로의 모습일 수도 있는데, 그것은 자신이 창출해내는 것이다. 아무런 제약없는 이 가상공간의 유혹에서 빠져듦으로써 우리는 점점 현실과의 괴리감을 느끼게 될 것이고, 결국은 그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오타쿠라 불리는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들 그 아슬아슬한 경계선을 잘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에미와 레오는 그 경계를 침범했기에, 작가는 결말을 우리에게 던져주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게 하기보다는 감정은 극적으로 올려놓은 상태에서 사람을 사라지게 만들어놓고 '니 마음대로 상상하라.'는 식으로 던져주고는 비웃고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니 새록새록 약이 오르기 시작했다. 난 그들에게 참 미안하게도, 어떻게해서든 이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유인 즉슨, 그들에게는 각자가 책임져야할 (특히 에미에게) 위치가 있고, 한낱 사랑이라는 감정에 자신이 서있는 위치까지 혼동하는 그녀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녀가 그 세계에서 발을 떼고 싶지 않다면, 현재의 남편인 베른하르트와 정리를 한 다음에 만나야하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레 던져보기도 한다. 행복한 가정의 표본과 레오에게서 느끼는 사랑의 감정. 이 모두를 포기하지 못하고 두 손에 꽁꽁 쥐고 있는 그녀를 볼 때면 산 속에 꽁꽁 묶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너무 주저리주저리 늘어놔서 무슨 글을 썼는지조차 모르겠다. 확실한건 그들에게 '사랑'이 어떤 식으로 방문을 했을런지는 모르겠지만, 지극히 주관적인 내 생각으로는 사랑이라는 것은 실체가 있어야 하고, 그렇기에 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으며,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들은 방법 자체가 나와는 좀 달라서 이해하기 힘들었던 부분이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건 happy end도 그렇다고 sad end도 아니었다는 점. 그리고서 에미가 일상으로 다시 돌아갈거라고 생각했는데, 후속편인 <일곱번째 파도>가 이어진다고? 오 마이 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