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테로 Taschen 베이직 아트 (마로니에북스)
마리아나 한슈타인 지음, 한성경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전시회, 전시회 타령을 하는 나는 만약 그림이 눈 앞에 있다 하더라도 눈동자만 굴릴 것이 뻔하다.
그림을 보는 것만 좋아할 뿐, 실은 볼 줄도 모르고 어떻게 봐야 하는지 조차 모르는데,그것은 아마 그 화가에 대해 세세하게 알지 못하기에 그것을 볼 때에 어떤 느낌으로, 어떤 시각으로 보아야하는 것인지 모르는 까닭이다. 화가에 대해 안다면야 그 시대, 배경, 그때 화가의 상황, 그 그림을 그릴 때의 기분 등을 고려하며 볼 수는 있겠지만, 그런 것까지 다 따져가며 봐야한다 그림이란 것은 나와는 너무나도 별개인, 먼 세계의 것이라는 느낌을 주기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들을 모른다고 하더라도 그림을 보는 것을 좋아하고 그 그림을 보며 사색에 잠기는 것 또한 좋아한다. 하지만 그것은 늘 - 어색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어느 순간, 객관적인 그림을 사이에 두고 다른 이의 느낌과 내 느낌을 공유하며 그림을 폭 넓게 보고 싶다는 욕심 또한 그리 과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에, 그림에 대해 설명해 놓은 책, 혹은 에세이_를처음 펼쳐든 것은 작년(09년) 그림치유에세이였던 이주은으로 시작되었고, 그 이후로도 부족하지만 조금씩 읽고 있는 중이다. 페르난도 보테로, 그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다. 작년(09년) 즈음에 르누아르 전시회와 함께 보테로 전시회도 덕수궁에서 열린 것으로 기억한다. 실은 나, 전시회를 찾다가 그의 그림은 처음 인터넷상으로 접했었는데 - 허걱. 하는 소리가 마음 속에서 입 밖으로 나오는 데에는 몇 초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음을 기억한다. 그것은 그의 그림은 내가 여지껏 봐왔던 그림과는 너무나도 달라서 낯설었는데, 그것은 아침에 일어났을 때 퉁퉁 부은 내 얼굴을 보는 것과 같은 낯설음과는 다른 내가 몰랐던 또 다른 통로로 날 찾아오더란 말이다.

 

 

 

그의 그림을 회사, 집, 또 다른 장소에서 페르난도 보테르 - 그를 만나고 그를 알아갔다. 하지만 곧 책을 덮을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아무래도 노출 수위가 조금 컸던 탓,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데, 그만큼 발가벗은 여인이 자주 등장한다. 그래서 주위의 시선도 조금은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보고 있으면 그리 에로틱하게 느껴지지 않는데, 그것은 모든 여인들의 통통 - 혹은 뚱뚱 - 한 몸매 때문일 거라 지레 짐작하게 된다.

 

 

 

그런데 간혹 그의 그림에 의문점이 생긴 것은 ‘아담’과 ‘이브’와  같은 경우, 아담의 생식기는 나뭇가지로 덮어놓는 반면에 이브는 거웃을 까맣게 그려 표현한다. 게다가 ‘연인들’(p30) 에서 남성은 이불을 목까지 덮고 있는 반면 여성은 노출되어 있고, 책의 표지인 ‘다정한 커플’(p37) 역시 옷을 다 갖추어 입은 남성에 반해 여성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로 - 아, 다리에 있는 것이 실오라기라고 부인한다면 할 수 없지만 - 남성의 허리와 골반 사이에 앉아있다. 또한, ‘보나르에 대한 경의’(p46,47) 에서 욕실에서 남성은 뒤를 돌아보고 있는 반면, 여성은 노출된 앞부분을 보여준다. 물론_ 여성들의 나체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라 이야기할 수도 있을 터. 하지만 그것이 올바른 것인지 - 나의 궁금증을 풀어줄 만한 어떤 요소도 책 속에서 해답을 찾지 못했다는 것. 어쩌면 그것은 보테로에게 들을 수 있지 않았을까. 어째서 그것에 대한 한치의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라는 것인가. 어쩌면 나에게 있어 그것에 대한 탐구는 그의 책을 들어서 펼칠 때마다 가질 의구심일게다.

 

 

 

왜 뚱뚱한 사람을 그리냐는 질문에 “아니오, 나는 뚱뚱한 사람들을 그리지 않습니다.”라는 조금은 억지스러운 대답을 내놓는다. 응? 뭐라고? 라고 되물으며 - 내가 잘못 읽은겐가, 다시 눈동자를 굴려 질문에 데려다놓고 읽어보아도 마찬가지의 대답이 눈에 보인다. 아, 이 어찌 황당무계한 대답이 다 있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책에서는 그에 대한 대답을 부가 설명한다.보테로는 살찐 남자나 뚱뚱한 여자같이 특정한 무엇을 그리는 데는 관심이 없다. 외려 그는 리얼리티를 미술로 변환하는 수단의 하나로 변형과 변신을 이용하는 데 큰 관심을 쏟는다. 그의창조적 갈망과 미학적 이상은 형태와 부피감에 집중되어 있으며, 이런 양식은 보테로가 그만의 시각을 제시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중략) 보테로의 변형은 늘 회화의 감각적 질감을 강조하고자 하는 바람에서 비롯된다. (p49~54)

 

 

 

 

그의 그림을 보다보면 사람뿐만이 아닌 과일도, 동물도, 나무도 모두 비대하여 비정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가족 풍경」이라던가 「신도교 가족」 , 「마리두케의 집」에서 등장하는 애완동물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스럽고 귀여운애완동물들이 아니고, 특히 「지붕 위의 고양이」는 지붕보다 더 큰 고양이는 고양이가 아닌 소처럼 보일 정도니, 두 말하면 잔소리일 정도다.  멜론먹는 소년」 - 멜론이 아니라 수박으로 보이지만 - 이나 「과일이 있는 정물」 , 「바이올린이 있는 정물」 , 「돼지 머리가 있는 정물」 , 「오렌지같은 것의 경우엔 과일, 채소가 무척이나 비대해 언발란스해보이기도 한다. 또 「거리의 남자」같은 경우, 나무가 아무리 크다 한들, - 그래,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 푸하하하하하! 터져나오는 웃음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하지만 너무 보테로라는 사람에 대해서만 치중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던 것은, 작품에 대한 어떠한 일언반구의 설명도 부가하지 않는 까닭에 작년(09년)에 덕수궁에서 전시했던 것이 홈페이지에 나와있어 그곳에서 나는 그림에 대한 설명을 http://botero.moca.go.kr에서 보충해야만 했다는 점에 아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홈페이지에 엄청나게 많은 그림들이 나와있는 것도 아닌데 그것에 더 신빙성이 간다면 어이할꼬. 또한, 원래 제목에 그리 연연해하는 편이 아님에도 책에서는 「여자 재봉사들」이라고 적혀있는 것이 홈페이지에는 「바느질 작업장」이라고 제목이 붙어 있어 어쩌면 다른 것들도 그럴 수도 있겠다,며 혹, 이 곳에 나오는 앞서 말했던 「멜론 먹는 소년」같은 경우, 혹 수박이 아닌가 하고 찾아보았지만 그에 대한 그림은 검색을 해도 나오지 않더란 것. 그것 말고도 내가 따로 보충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것은 검색을 해도 나오지 않는구나. 라는 생각에 좀 더 알고 싶은 그림은 눈으로 보기만 하며 그대로 넘겨야만 했던 것이 조금은 씁쓸해지더라, 말이다. 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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