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인사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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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는 내내 뭔가 자꾸 생각이 나서 그게 뭘까 싶었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명료해졌다. 구병모 작가의 <한 스푼의 시간>에서의 은결이었다. 문장들로만 봐서는 감정이 있는 로봇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인간은 아니라 은결은 로봇이었지. 로봇인 것을 사람들이 다 알았고.


로봇에 대해 생각을 하다보니 집에 들인 물건 중 로봇청소기를 거론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처음엔 자기 집도 못 찾아가고 자꾸 헛돌아서 굉장히 멍청하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청소를 시키고 집에 돌아와보니 청소를 다 끝내고 충전단자에 앉아 충전을 다한 흰둥이를 보면서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물론 지금도 가끔 제 집을 찾지 못해 충전단자로 옮겨달라고 해서 귀찮아죽겠지만)


최근에 AI가 30시간 만에 책을 썼다는 이야기를 기사를 통해 보게 되었다. 그 책이 무척이나 궁금했지만, 그렇지만, 나는 끝내 보지 못했다. 그것을 보는 것이 내게는 허락되지 않는 자존심의 영역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로봇 따위가 써내는 문장들에 감탄하는 어리석은 짓을 범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 자존심은 언제까지 지켜질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어디까지나 로봇의 역할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도와주는 것에 그쳐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인간은 로봇이 인간을 대체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되기를 기대한다. 특히나 3D 업종인 어렵고 더럽고 위험한 일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로봇이 인간만큼, 혹은 인간보다 더 뛰어난 지능을 가지게 된다면? 그도 아니면 인간인지 로봇인지 알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면?



달마는 세상의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는 것을 이야기했다. 나 역시 한때는, 아니 지금도 세상의 불필요한 고통들을 줄이고 싶다. 특히나 감정적인 부분에서. 하지만 고통을 고통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고통을 감내해내지 못하고 주저앉아버린다면 그것을 인간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인간, 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




결국 나는 .에 대해 머무르게 되었다. 그리고 나아가 에 대해서도.


내 사춘기는 어쩌면 20대 후반부터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도대체 누구지? 뭐 하는 사람이지? 앞으로 뭐가 되고 싶지?” 이 물음을 10개 아닌 20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줄곧 생각하고 있는 나는 여전히 지금도 매 순간 그 물음들을 끌어안고 지내면서 내가 나로서 살아가기 위해 애쓰고 있기 때문이다.


삶은 끊임없는 자아탐구이며 어쩌면 나는 내가 알던 내가 아닐 수 있다는 의심을 늘 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은 나 자신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라기보다 내가 나로 바로 설 수 있어야 하는 것인 까닭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실제로 매 순간을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은 무척이나 고역에 해당하는 일임에 분명하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각자 나름의 험난한 시간들을 거쳐 살아온 나 자신에게 박수라도 보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203. “우리는 모두 탄생으로 시작해서 죽음으로 끝나는 한 편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나는 운명 따위를 믿지는 않지만 죽는다는 것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라고 줄곧 생각해왔었고 독서모임에서도 그렇게 말했는데, 바로 그날,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듣게 되었다. 나는 그 말을 내뱉은 날이 하필이면 그날이어서, j에게 내 입을 꿰매어버리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세상에는 우연 같은 죽음들이 너무나도 많은데, 죽음이야말로 인간의 영역으로 할 수 없는 가장 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죽음에 대해, 영원한 이별에 대해 가지를 뻗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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