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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잘 모르겠어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499
심보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7월
평점 :

몇해 전에 심보선 첫번째 시집을 보고 두번째는 건너뛰고 세번째 시집을 보았다. 두번째 시집이 나오고 꽤 오랜만에 세번째 시집을 낸 게 아닌가 싶다. 두번째는 아직 못 봐서 잘 모르겠는데 이번 시집은 첫번째 시집에 있던 슬픔을 덜 느꼈다. 두번째에도 슬픔이 담겼을 것 같은데. 그렇다고 슬픔이 아주 없지 않다. 내가 크게 느끼지 못했다. 슬픔에도 이런저런 게 있는데 그 감정을 내가 잘 모르는 걸지도. 처음 말하는 건 아니지만, 난 조금 느끼지 못하는 감정이 있는 듯하다. 내가 경험하지 못해서 그런 걸까. 결혼하고 헤어지는 것도 큰 슬픔일 텐데, 난 잘 모르는 일이다. 아이가 없다는 건 심보선 시인 이야기겠지. 헤어진 아내를 가르친 선생님을 만나는 이야기도 있다. 그것도 어떤 슬픈 마음에서 쓴 걸 거다. 헤어진 사람을 아는 사람을 만나는 건 마음 편하지 않을 것 같다.
난 심보선 시인을 잘 모른다. 심보선 시인만 모르는 게 아니고 시인, 소설가 다 모르는구나. 책을 보고 그걸 조금이라도 알 수 있다면 좋겠지만 책을 봐도 그 사람을 다 알기 어렵다. 그저 조금 짐작할 뿐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은 작가를 잘 아는 듯하다. 어디선가 작가가 자기 이야기를 쓴 글을 본 건지 책을 보고 읽어 낸 건지. 그런 거 몰라도 큰일은 없다. 시인이나 소설가는 그저 시와 소설을 봐달라고 할 거다. 소설은 소설가가 조금 담기지만 시는 더 많이 담기지 않을까 싶다. 예전에는 이것도 잘 몰랐는데. 어제는 몰랐지만 오늘은 알게 된 것인가. 하지만 어제 몰랐던 걸 오늘 알게 되는 건 그리 많지 않다. 오늘 모르면 내일은 알 수 있을까. 이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알려고 해야 알 수 있을 거다. 모르는 건 모르는대로 내버려둬도 괜찮을까. 나도 모르겠다. 시집 제목이 ‘오늘은 잘 모르겠어’여서 이런 말을 했구나.
나는 오늘 내게 영감을 주곤 했던 노을빛이
누군가의 자동차와
누군가의 그림자와
누군가의 지붕에 깃드는 것을
무연히 바라보고 있습니다.
노트에 묻은 마지막 지문은 수년 전의 것.
지금 어딘가 나 아닌 다른 사람은
내가 모르는 노을의 비밀을 알아채고
자신의 손가락을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나는 그 사람이 부럽습니다.
오늘 밤 그 사람은 시인이지만
나는 그렇지 않습니다.
시는 쓰지 않고 다만
시 쓰는 생각에 젖어 있을 뿐.
그 생각도 그리 오래가지는 않습니다.
나는 오늘 내 목소리를 따라가지 않습니다.
어떤 그늘에서도
어떤 침묵의 순간에도
어떤 꿈의 영상 속에서도
나는 오늘 외로운 천사의
흐느낌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나는 내 목소리가 죽은 원천을 바라봅니다.
산산이 부서진 말 씨앗들.
물방울이기도 했고
불꽃이기도 했던 자그마한 장소.
망상에 빼앗긴 소망의 메마른 우물.
나는 기억들을 더듬어봅니다.
사람들과 하는 입맞춤과 악수와 포옹.
주먹 속에 웅크리고 있지만
주먹을 펼치면 사라지는 새.
모든 얼굴들에 숨은
레몬 씹는 아이의 싱그러운 찡그림.
아아, 그 모든 생명력들을 떠올려봅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시인이 아니랍니다.
아주아주 거대한 무언가가 내 곁을 스쳐 지나간다한들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최선을 다해 말한다 해도
“아주아주 거대한 무언가가……” 에서 말문이 닫혀버립니다.
시인의 자리는 어디일까요?
왼쪽에는 모르는 이들이 있고
오른쪽에는 사랑하는 이들이 있는 자리.
집중력이 생기는 자리.
고독이 생기는 자리.
시인의 자아란 무엇일까요?
뜨겁고 달콤한 영혼의 입자들이 뭉쳤다 부서지는
창문이 너무 많은 어두운 방.
창문이 하나도 없는 빛나는 방……
내가 시인이었을 때 나는
“이제 고통은 그만! 하지만 행복이여, 내게 다가오지 마라!”
외치면서 시 쓰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내가 시인이었을 때 나는
눈앞의 사물을, 그것이 머나먼 목적지가 될 때까지
오랫동안 바라보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나는 아주 평범한 사람으로 일어나 기지개를 켰습니다.
그때 어떤 깨달음처럼 나는 더 이상
내가 시인이어야 할 까닭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평소처럼 노모에게 인사를 하고 출근을 했습니다.
그날부터 나는 시인이기를 멈췄습니다.
오늘 밤 나는 시인이 아닙니다.
오늘 밤 집으로 돌아가는 많은 사람들도 시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시는 쓰지 않고
시 쓰는 생각도 않고
내일 일은 얼마나 고될까?
언제쯤 행복은 나에게 도달할까?
그저 그런 빤한 염려에 젖어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나는 압니다.
오늘 밤 이 세상에 한 사람은 반드시 시인입니다.
오늘 밤 누군가가 시를 쓰고 있다면
그것은 충분합니다.
그러니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내가 시인이건 아니건
내가 월급쟁이건 아니건
내가 장남이건 아니건
도대체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오늘 밤 이 세상에 단 한 명이라도 잠들지 않고
밤새 시를 쓰고 있기만 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오늘 밤 단 한 명이라도 시인이라면!
그 생각만으로 절로 웃음 지으니까요.
그 생각만으로 단잠에 빠지니까요.
그 생각만으로 내일 아침
영영 깨어나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나는 이제 시인이 아니랍니다>, 99~104쪽
시가 참 길기도 하다. 조금 짧은 시도 있지만 이 시를 옮기고 싶었다. 첫번째나 두번째 시집도 그렇게 얇지 않은데, 오랜만에 낸 시집이어선지 이건 더 두껍다. 짧은 시는 얼마 없고 거의 다 길다. 죽지 않으려고 시를 쓴다거나 자신은 시인이다 말하고 바로 다음에는 이제는 시인이 아니다 말한다. 자신이 아니어도 시인이 있다면 괜찮은 걸까. 그래도 심보선은 시를 썼다. 앞으로도 쓰지 않을까. 지금도 쓰고 있다고 믿고 싶다. 자기 나름대로 세상을 보고 가끔 자기 이야기도 하는 시. 심보선은 사회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심보르스카를 고모라고 한다. 이건 조금 재미있는 생각이기도 하다. 다른 책에서는 이름을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라고 적었던데, 다른 나라 말이니 심보르스카라고 써도 아주 틀린 건 아니겠다. 심보선은 비스와바 심보르스카가 쓴 시 <작은 풍선이 있는 정물>을 2016년 5월 28일에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정비를 하다 죽은 열아홉살 소년을 생각하고 고쳐썼다. 그때 그런 일이 있었구나.
사회학을 공부해설까. 심보선은 일하는 사람 이야기를 쓰기도 했다. 일하다 죽은 사람 이야기라고 할까. 사회를 잘 들여다 보려 한 거겠지. 마지막 5장에는 시가 세편인데 두편은 길다. 5장 두번째 시 <브라운이 브라운에게>는 시보다 소설 같다. 소설도 편지 형식이 있지 않은가. 포춘쿠키에서 안 좋은 말을 본 덴 브라운(그렇다면 밤색)은 포춘쿠키를 만드는 회사에 포춘쿠키에서 행운의 말이 아닌 안 좋은 말이 나온 걸 말한다. 포춘쿠키 안에 쓰는 글은 브라운 지가 썼는데 브라운 지는 브라운한테 “난 날마다날마다 행복을 떠벌리느라 불행해졌소 / 아니 애초에 불행했기에 날마다날마다 행복을 떠벌린 것인지도 (262쪽)” 한다. 난 브라운이 포춘쿠키에서 본 “희망은 그대 영혼의 가장 비극의 부분이다. (232쪽)”고 한 말 아주 안 좋은 말은 아닌 듯하다. 희망은 힘들고 괴로울 때 더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언젠가 시간을 내서 아직 못 본 심보선 두번째 시집을 봐야겠다. 거기에는 어떤 슬픔이 담겼을지. 시집 제목만 보고 이런 생각을 하다니. 그 시집 제목은 《눈앞에 없는 사람》이다.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