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메시스의 사자 와타세 경부 시리즈 2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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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나카야마 시치리가 쓴 소설을 나카야마 월드라고 하는가 보다. 얼마전에 그런 말이 쓰인 글을 보았다. 그렇다 해도 난 아직 몇권밖에 만나지 못했다.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는 책이 아닌 드라마로 보았다. 이것보다 먼저 나온 《테미스의 검》도 드라마를 먼저 보고 책을 만났다. 또 드라마로 만든 거 있을까. 올해 아니 앞으로 나카야마 시치리 책 더 볼 수 있겠지. 몇해 지나면 많이 봤다고 하겠구나.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다. 이번 책 제목에도 그리스 신 이름이 들어갔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신 잘 모르지만. 신 이름은 책을 여러 번 봐야 기억에 남을지도. 네메시스란 이름은 처음 듣지 않았다. 노르웨이 작가 요 네스뵈도 《네메시스》란 소설을 썼다. 네메시스는 복수의 신으로 잘못 알기도 한단다. 네메시스는 자신과 상관없는 잘못에 화를 내는 의분을 모습으로 나타냈다고 한다. 그렇다고 어떤 일이 부조리하다고 누군가를 죽이는 게 괜찮은 일일까. 죽이지 않고 다르게 화를 낸다면 좀 나을지도.

 

 와타세는 《테미스의 검》에서 원죄를 만들어 낸 형사로 앞으로는 잘못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형사를 했다. 와타세 밑에 있는 형사는 고테가와다. 이 이름 어디선가 본 것 같다 했는데 《연쇄살인마 개구리 남자》에서 심하게 다치는 젊은 형사였다(다른 소설에도 나올 것 같다). 거기에 와타세 나왔던가, 나왔구나. 와타세보다 고테가와가 더 많이 나왔던 것 같기도 하다. 여기에 나오는 검사도 다른 소설에 나온단다. 나카야마 시치리는 자신이 만든 사람을 자유롭게 주연으로도 조연으로도 쓰는 게 아닌가 싶다. 이름 외워두면 다른 데서 본 사람이구나 할 텐데. 나카야마 시치리가 쓰는 소설은 저마다 따로따로면서 이어졌다. 이어졌다 해도 차례대로 보지 않아도 괜찮다. 자꾸 보다보면 그게 이어지겠지. 내가 그런 걸 잘 하는 건 아니지만. 책과 책은 다르면서 이어졌다. 책과 책을 잘 이어서 생각하면 훨씬 좋을 텐데. 난 언제쯤 그럴 수 있을지.

 

 와타세와 고테가와가 맡은 지역에서 도노하라 기미코가 누군가한테 죽임 당했다. 기미코가 죽임 당한 곳에는 피로 쓴 ‘네메시스’라는 말이 있었다. 조금 알아보니 기미코는 여성 둘을 죽인 가루베 요이치 어머니였다. 가루베 요이치는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런 일을 저질렀다. 좋은 일로 인정받기보다 나쁜 짓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리려 하다니. 가루베 요이치가 두 사람이나 죽였는데 재판에서 사형이 아닌 무기징역형을 받았다. 얼마 뒤 다른 지역에서 스토킹하던 여자와 할머니를 죽인 니노미야 게이고 아버지 니노미야 데루히코가 죽임 당했다. 거기에도 네메시스란 말이 있었다.

 

 피해자 식구는 가해자가 사형당하면 괜찮을까. 일본은 80% 사람이 사형제도를 찬성한다고 한다. 사형제도가 범죄를 덜 일으키게 할지 그건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사람을 죽인 사람이 형을 산다고 해서 자기 죄를 뉘우칠지 그것도 알 수 없다. 그렇게 만들려면 형무소 자체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형무소는 나쁜 짓을 배울 수 있는 곳이라고도 한다. 죄 지은 사람을 잡아서 가둬두기만 한다고 해서 사람이 바뀔 리 없다. 사형을 찬성하는 사람은 잔인한 짓을 저지른 사람을 세금으로 먹여 살린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형무소에 오래 갇힌 사람은 그곳 생활을 더 편하게 여긴다. 세상에 적응하기 힘드니 말이다. 형을 치르고 나온 사람이 다시 죄를 짓고 형무소에 들어가는 일도 많다. 어떻게 하면 마음을 고쳐먹을지. 그런 사람이 아주 없지는 않을 거다. 그런 사람이 많아져야 할 텐데.

 

 사형제도가 있는 나라에서 사형제도를 반대하면 판사가 될 수 없을까. 마음은 그렇다 해도 그걸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야겠지. 여기에는 그렇게 비치는 판사가 나오는데 그 판사 마음은 사형제도를 반대하는 마음과 조금 달랐다. 네메시스의 사자라고 말한 범인은 피해자 식구를 대신해 복수한다면서 가해자 식구를 죽였다. 와타세가 피해자 식구를 만나니 죽임 당한 사람이 안 됐지만 그렇게라도 돼서 마음이 조금 낫다고 했다. 그건 피해자 식구기 때문에 생각할 수 있을 거다.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피해자 식구를 대신해서 가해자 식구를 죽인다고 해도 그건 그저 사람을 죽인 거다. 가해자 식구도 힘들고 피해자 식구도 힘들겠지. 누가 더 힘들고 덜 힘들다 말할 수 없다. 난 어느 쪽도 아니기에 이렇게 생각하는 걸지도.

 

 나카야마 시치리 소설은 여러 번 뒤집힌다. 다른 게 드러난다고 해야 할까. 여기에서도 그랬다. 그걸 보면서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마음을 다른 데 쓰면 더 좋을 텐데 했다. 복수한다고 죽은 사람이 돌아오지는 않으니 말이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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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꿈까지 합치면 세번인 듯하다. 내가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그렇고 기억하지 못한 꿈에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런 꿈을 정말 기억하지 못할까. 그럴 리 없구나.

 

 어떤 꿈이냐 하면 누가 나를 죽이려는 꿈이다. 누군지 모르는 것처럼 말했는데 아는 사람이고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 꿈을 꾼 건가.

 

 꿈속에서 난 집 밖으로 나가서 큰 소리로 무슨 말을 하고 거기에서 달아나려고 빨리 걸었다. 큰 소리로 말하면 집 안에 있는 사람이 들을 텐데 왜 그랬는지. 조용하게 나갔다면 좋았을 텐데. 내가 빨리 걷는데 뒤에서 사람이 나를 쫓아왔다. 난 뛰지도 못하고 빨리 걸으려 해도 앞으로 잘 가지 못했다. 꿈속에서 뭔가한테 쫓기면 늘 그렇다. 그래도 빨리 걸어서 어떤 할머니 집으로 들어가서 숨었다. 가군지 냉장고인지 모르는 것 뒤에 숨어 있었더니 곧 나를 쫓아오던 사람이 거기에 오고 바로 나를 봤다. 나를 쫓아오던 사람은 내 등에 칼을 대고 앞으로 가라고 했다. 꿈에서도 칼 감촉을 느낀 것 같다. 거기에 다른 사람이 오고 총을 쏘았는데 다음에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재미있지도 않고 잘 생각나지도 않는 꿈 이야기를 쓰다니. 같은 사람이 나를 죽이려는 꿈을 세번이나 꿔설지도. 그건 대체 무엇을 나타내는 걸까. 내가 그 사람을 아주 무섭게 여겨서 그런 건지, 편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할 수 있다면 만나고 싶지 않다. 평소에 이런 생각을 해선지도.

 

 난 좋은 꿈 꾸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런데 좋은 꿈은 어떤 걸까. 안 좋은 꿈은 별로 꾸고 싶지 않다. 이건 바랄 수 없는 건가. 살다보면 좋은 일 안 좋은 일이 다 일어나는 것처럼. 안 좋은 꿈 꿔도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 게 낫겠지. 꿈속에서 일어난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 아주 없지 않지만, 그건 어쩌다 한번이다.

 

 내가 이렇게 꿈을 쓴 건, 그 꿈이 별거 아니다 여기고 싶어서였나 보다. 정말 그래야 할 텐데. 시간이 흐르면 잊었을지도 모를 꿈인데 글로 써서 잊지 않을지도.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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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 마음이 같은 온도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한쪽은 뜨겁고

한쪽은 차가우면

쉽게 가까워지지 못하겠지

 

마음 온도는

때와도 같고

어떤 사이나 마찬가지다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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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說ワンダフルライフ (ハヤカワ文庫JA) (文庫)
是枝 裕和 / 早川書房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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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풀 라이프

고레에다 히로카즈

 

 

 

 

 

 

 사람은 얼마나 살면 이 정도면 됐다 생각할까요. 아니 이 생각은 잘못됐습니다. 얼마나 사는가보다 어떻게 사는가가 더 중요하겠지요. 어떻게 살지 늘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많은 사람이 살아서 살아가겠지요. 전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살면서 어느 날은 웃고 어느 날은 울고 어느 날은 화내고 어느 날은 슬퍼할 겁니다. 무엇이든 느끼는 것도 좋지만 어느 때든 평정심을 지키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그렇게 되는 건 쉽지 않겠지요. 사람은 혼자가 아니고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삽니다. 부모가 없는 사람이라 해도 혼자가 아니지요. 제가 이렇게 말하면서도 ‘난 혼자구나’ 생각할 때 많습니다. 이 생각은 언제쯤 하지 않을지. 이 소설에 나온 것처럼 죽은 다음에 제 삶을 돌아보고 깨달을지도. 돌아봐도 별거 없는 삶이지만. 이 소설처럼 죽은 다음에 저세상에 가기 전에 들르는 곳이 있을지 그건 모르는군요. 있다면 좋을지 안 좋을지 이것도 모르겠습니다.

 

 아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 책은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만든 영화 <원더풀 라이프>를 소설로 쓴 거예요. 영화는 못 봤습니다. 꽤 예전에 만들었더군요. 소설은 1999년에 나왔습니다. 1999년은 세기말이네요. 갑자기 그때 세상이 끝난다고 떠돌았던 말이 생각나는군요. 그런 말이 있었지만 1999년이 가고 아무 일 없이 2000년이 왔지요. 올해가 스무해쨉니다. 그렇군요, 스무해. 그때 전 일본말 몰랐습니다. 지금이라고 잘 아는 건 아니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도 몰랐습니다. 지금도 잘 모르는군요.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는 이름과 찍은 영화만 압니다. 책은 이번이 두권째예요. 지난해(2018)인지 지지난해(2017)인지 잘 생각나지 않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영화로 만들고 쓴 소설이 한국에서 많이 나왔습니다. 전 2016년에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쓴 소설 뭔가 하나 볼까 하다가 이걸 골랐습니다. 제가 이 책을 고른 건 다른 소설은 절판돼서였어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가 그랬던가. 지금은 있더군요. 그때 여러 권 절판되고 책이 없었던 것 같아요.

 

 책 제목은 ‘멋진 삶’인데 여기에는 죽은 사람이 나와요. 앞에서 조금 말했군요. 죽은 사람이 아주 저세상에 가기 전에 들르는 곳이 있다고. 죽은 사람이어서 먹지 않아도 괜찮지만 잠자고 추위를 느껴요. 소설 속은 십이월입니다. 십이월이라니. 그곳을 시설이라고 하는데 다른 말로 뭐라 하면 좋을지. 중간계. 그곳에 머무는 건 엿새군요. 처음에는 이레라 생각하고 죽은 사람이 이 세상에 남아있다는 49일을 생각했는데, 아니군요. 소설에는 월요일부터 다음주 월요일이 올 때까지 이야기가 담겼어요. 죽은 사람을 맞이하고 이야기를 듣는 사람은 세사람이고 한사람은 일을 배워요. 어딘가 일터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일하는 사람 성격도 저마다 달라요. 죽은 사람이 그곳에 머물고 사흘째까지 자신의 가장 좋은 기억을 하나 고르면 거기에서 일하는 사람이 영화로 찍고 토요일에 그걸 보고 떠납니다. 죽은 사람은 자신이 고른 기억 하나만 가지고 영원의 세계로 간다고 해요. 그곳은 대체 어디일지. 기억을 겨우 하나만 골라야 한다니. 하나여서 고르기 어렵고 고르지 못하는 사람도 있겠습니다. 저도 못 고를 것 같아요. 죽은 사람은 거의 기억 하나를 고르지만 가끔 그러지 못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 사람은 그곳에 남아 죽은 사람을 만나고 기억을 고르는 일을 돕고 보내는 일을 합니다. 스물두살에 죽은 모치즈키는 쉰해나 그곳에 남아 죽은 사람을 만나고 보냈더군요. 한곳이 아닌 여러 곳에서.

 

 이 소설을 보면서 저도 잠깐 생각해봤는데 가지고 가고 싶은 기억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앞에서도 이 말 했군요. 여기에도 그런 사람이 한사람 나와요. 와타베 이치로는 자신이 살았던 증거 같은 것이 있다면 좋겠다고 해요. 그런 와타베 이치로는 자신이 일흔살까지 산 모습이 담긴 비디오테이프를 보게 돼요. 자기 삶이 담긴 비디오테이프라니(지금은 비디오테이프가 아닌 컴퓨터 파일로 보게 할까요). 제가 제 삶이 담긴 영상을 본다면 참 지루할 듯합니다. 거의 비슷해서. 와타베도 그런 생각을 하더군요. 거의 같은 일을 되풀이하고 그저 나이만 먹는 자신을 보고 자기 삶은 뭐였나 합니다. 모치즈키는 와타베한테 많은 사람이 그렇고 자기 처지에서 보면 일흔해 동안 산 게 부럽다고 해요. 모치즈키는 와타베와 같은 세대지만 스물두살에 죽었어요. 그리고 모치즈키는 와타베 아내 애인이었어요. 그런 일도 있다니. 와타베는 끝까지 비디오테이프를 보고 아내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영화를 보고 공원에서 이야기하는 기억을 골라요. 그때 와타베는 아내한테 영화 볼 시간은 많다고 했는데. 많은 사람이 앞으로 무언가를 할 시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없으리라는 걸 모르고 말이지요.

 

 죽음을 말하는 이야기를 보면 죽음보다 삶을 이야기 합니다. 죽음은 삶의 한부분이군요. 이런 걸 알아도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나면 받아들이기 어렵겠습니다. 사람은 혼자만 기억하지 않아요. 혼자 살고 아무도 만나지 않는 사람은 어떨지. 그런 사람한테도 좋은 기억이 아주 없지 않을 거예요. 일찍 죽은 사람일지라도 누군가의 기억에 남아 있을 겁니다.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의 삶에 좋은 기억을 만들어준 적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건 모치즈키가 와타베를 만나고 깨닫게 되는 거군요. 맞는 것 같아요. 아니 맞다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누구나 이 세상에 와서 좋은 거겠지요. 언젠가 모든 걸 두고 떠나야 할 때가 오겠지만. 빈 손으로 왔다 빈 손으로 가는 게 삶이지요. 꼭 무언가를 이루어야 하는 건 아니예요. 제가 그래서 이런 말을 하는 거지만, 맞는 말입니다. 삶을 소중하게 여기되 무언가 뜻을 찾아야 한다면서 어깨에 힘주지 않았으면 합니다. 사는 데 옳은 답은 없어요. 자기만의 답을 찾는다면 그것만큼 좋은 건 없겠습니다.

 

 

 

희선

 

 

 

 

☆―

 

 ‘지금까지 내 기억은 내 안에만 있다고 여겼다.’  (2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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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나무가 반기는 길은 아니지만

옛날에 나무였던 적도 있었지

그때는 알 수 없겠지만

지금도 나쁘지 않아

 

책숲을 걷다보면

때론 헤매기도 하고

때론 즐겁기도 해

 

끝없는 길

쉽게 끝나지 않아

좋아

 

 

 

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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