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프다.

 

 내 배 속에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게 되고 시간이 많이 흘렀다. 이대로 가다간 난 여기에서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오래전에는 날마다는 아니더라도 며칠에 한번은 사람이 편지를 내 배 안에 넣었다. 이 마을에 사람이 많이 살던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사람이 있다 해도 거의 나이 든 사람이다. 나이 든 사람은 편지를 잘 쓰지 않는다. 아니 예전에는 다른 사람한테 써달라고 부탁하고 편지를 보내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런 일이 없다.

 

 편지가 하나도 들어오지 않게 되기 전날까지는 며칠에 한번 편지를 보내는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 모습이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 이 마을을 떠난 것 같다. 지금까지 사람이 이곳을 떠나는 모습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는데, 그 아이가 짐을 가득 실은 트럭에 탄 것을 우연히 보았다. 그건 여기를 떠나는 거였겠지.

 

 마을을 떠나면서 내게 인사를 한 사람이 단 한사람 있었다. 그게 언제였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며칠에 한번 편지를 보냈다. 아이 이름은 송희였다. 송희 친구가 이름 부르는 걸 우연히 들었다. 송희는 꽤 오랫동안 이 마을에 살았다. 시간이 흐르고 송희는 자랐다.

 

 어느 날 저녁에 송희가 나를 찾아와 말했다.

 

 “우체통아 나 이제 떠나. 대학에 들어가게 됐어. 부모님이 여기 산다면 가끔 돌아왔을 텐데, 식구가 모두 떠나기로 했어. 네가 여기 있어서 난 친구한테 편지 썼어, 고마워. 앞으로는 다른 우체통에 편지 넣겠구나.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우체통아 잘 있어.”

 

 송희는 내가 자기 말을 듣고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거다. 내가 말을 할 수 있었다면 나도 송희한테 그동안 고마웠다고 말했을 텐데. 송희는 잘 지낼까.

 

 집배원은 내 안에 편지가 들어있지 않아도 날마다 찾아왔다. 편지가 없는 날이 오래 이어지자 집배원한테 미안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다. 내 안은 오랫동안 텅텅 빈 채다. 잠깐 들어왔다 나간다 해도 편지가 들어오면 기쁘고 배도 불렀는데 이제 그런 일은 없다.

 

 여러 사람이 찾아와서 나를 땅에서 뜯어냈다. 마을을 떠난 사람처럼 나도 여길 떠나려나 보다. 앞으로 난 어떻게 되는 걸까. 갑자기 잠이 온다.

 

 잠에서 깨어보니 둘레가 아주 달랐다. 난 땅에 붙어 있지만 어쩐지 좀 달랐다. 길 건너에 다른 우체통이 보였다. 잘 둘러보니 우체통이 더 있었다. 우체통은 빨간색이 아니고 몸에 그림이 있었다. 내 몸도 저렇게 된 것 같다.

 

 내 모습이 바뀌었다는 걸 알았을 때는 조금 우울했는데 이제는 괜찮다. 이제 편지가 내 안에 들어오지 않아도 배고프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나를 봐서 그런 걸까. 어떤 사람은 길을 걷다 우연히 나를 보고 예쁜 그림이 있다면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럴 때면 사람들 마음이 내 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말하는 걸 잊을 뻔했다. 오래전에 내가 본래 있던 마을을 떠나면서 인사한 송희를 다시 만났다. 내 몸에 그림을 그린 건 송희였다. 송희는 나를 못 알아봤겠지. 그래도 괜찮다. 송희가 내게 그림을 그렸다는 것만으로도 기쁘다.

 

 

 

희선

 

 

 

 

 

 

 

*이 우체통은 사라지지 않았고, 나는 늘 여기에 편지를 넣는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7-12-23 08: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24 03:0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