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왕이며 광대였지
오현종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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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을 아는 소설가지만 지금까지 책은 한권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이번 소설집이 벌써 아홉번째 책이더군요. 꾸준히 책을 썼군요. 이것보다 먼저 다른 걸 만날 수도 있었지만 기회를 놓쳤습니다. 얼마전에는 단편소설에는 왜 그렇게 힘들게 사는 사람 이야기를 쓸까 했는데, 여기 실린 소설 속 사람은 또 다릅니다. 소설 쓴 사람이 다르니 다를 수밖에 없겠네요. 그렇다 해도 같은 게 하나 있습니다. 그건 어떤 소설이든 개인을 그린다는 겁니다. 세상에는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뿐 아니라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잖아요. 가까이에서 들여다 보면 누구 삶에든 힘든 점뿐 아니라 좋은 점도 있겠지요. 소설은 그런 걸 보게 해줍니다. 자기 삶과 다르다 해도 소설을 보고 자신을 생각하기도 하지요. 겉에서 보면 평범한 사람도 잘 보면 평범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여기 실린 소설에 나오는 사람 가운데 저와 비슷한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일이 처음은 아니군요. 그냥 그렇다는 겁니다.

 

 단편 여덟편에서 책 제목과 같은 단편 <나는 왕이며 광대였지>는 나머지와 좀 다르게 보입니다. 얼마 뒤에 결혼할 두 사람이 어딘가에 갇혀있다 풀려나는 건데 어쩐지 무섭더군요. 그런 소설이 더 있을지 모르겠는데, 제가 아는 건 미야베 미유키 소설 《레벨 7》입니다. 그 소설에서 갇히는 두 사람은 잘 모르는 사이였던 것 같은데. 아니 기억이 없어서 모르는 사이로 생각한 것일지도. 거기에서는 누가 그런 짓을 했는지 알게 되지만, 여기에서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단편이어서겠지요. 이 소설 제목에 어울리는 건 <연금 생활자와 그의 아들> 같기도 해요. 여기 나오는 아들 ‘나’는 연극하는 사람으로 ‘햄릿’ 연극을 해요. 자신은 광대가 아니고 햄릿 왕자를 맡았다고 말합니다. 햄릿은 왕이 아니고 왕자군요. 이 소설은 소설에서 본 이야기 같기도 하고 뉴스에서 들은 이야기 같기도 합니다.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가 죽었다는 식으로 말하지만 마지막에 반전이 기다립니다. 그건 말하지 않는 게 낫겠지요. 오현종이 이런 이야기 처음 쓴 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설가는 자신이 쓰는 소설에 자신의 분신을 쓰기도 합니다. 소설에서 소설가라고 해서 그게 소설가 자신이라 말할 수 없을지 몰라도 그 소설을 읽는 사람은 소설가 이야긴가 보다 하겠지요. 그런 소설이 여기에는 세편 나옵니다. <부산에서> <K의 어머니와 면회를 갔다> <호적을 읽다>예요. 한편 더 <약의 역사>도 어쩐지 비슷한 느낌입니다. 여기 나오는 ‘나’는 영문학과지만. 영문학과라 해도 소설은 쓸 수 있겠습니다. 아직도 소설가는 직업이 아니군요. 그래도 큰 상을 받고 이름이 잘 알려진 사람은 좀 다르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은 시간 강사 같은 일은 하지 않고 소설만 써도 괜찮겠습니다. <부산에서>는 소설가면서 시간 강사로 지내는 사람 이야기기도 한데, 그게 그렇게 안 좋게 보이지 않아요. 실제 그렇게 사는 사람은 여러가지 걱정을 할지도 모르겠지만. 저보다는 낫다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이나 하다니. <K의 어머니와 면회를 갔다>는 신문에서 신춘문예 당선자는 아니고, 예심에 붙은 사람 이름을 보고 ‘나’는 예전에 사귄 남자친구 이름을 보게 됩니다. 남자친구는 소설가가 되겠다고 했거든요. 그래서 ‘나’가 좋아했는데 ‘나’가 소설가가 됐습니다. 이 소설은 지금보다 오래전 일을 떠올립니다. 예전 남자친구와 왜 헤어졌는지 다시 생각하는 건지도. <호적을 읽다>는 호적과 반대인 소설이 생각나게 했어요. 호적에는 그 사람 이야기는 없고, 그 사람이 언제 태어나고 언제 결혼하고 자식은 얼마나 있고 언제 죽었나 하는 게 몇줄로만 적혀 있지요. 소설가인 ‘나’는 미국 비자를 신청하려고 호적등본을 떼고 거기에 쓰인 것을 봅니다. ‘나’는 증조할머니, 할머니 그리고 고모를 생각해요. 이렇게 쓰고 보니 여성의 삶이군요.

 

 앞에서 이 책 제목과 같은 단편이 다른 소설과 다르다고 했는데 <모든 것이 붕괴되기 이전에>도 좀 다릅니다. SF 같아요. 여기 나오는 사람은 자신을 괴물로 만든 아버지를 죽이려고 아직 자신이 태어나지 않은 때로 돌아갑니다. 이런 이야기 떠오르는 거 있지요, <터미네이터>. 다행이라 할까 아버지를 죽이지 않고도 다른 세상이 생겼어요. 그건 평행우주예요. 현실은 바꾸지 못하는데. 아니 여기서도 바뀌는 건 아니고 다른 세상이 나타나는 거군요. 평행우주는 어떤 결정을 하면 하나 생겨나는 거기도 하죠. 소설에는 나아지는 세상이 나타나도 우리 삶은 한번이고 지금 여기가 다예요. 안 좋은 쪽으로 흐르지 않게 해야겠지요. 그런 생각해도 잘 안 되기도 할 테지만. 아버지와 아들은 조금이라도 말을 나누면 서로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겁니다. 이건 어느 사이든 그렇겠군요. <난장이 죽음에, 나는 잘못이 없다>는 조세희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생각나게 했는데 그 소설이 조금 나옵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 ‘나’는 경비원 김씨가 죽은 일에 아주 잘못이 없을까요. ‘나’가 한 말이 다 나온 건 아니지만 무슨 일이 있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이런 생각하면 안 될까요.

 

 이 책에 담긴 소설에 나오는 사람은 조금 평범하다 생각하기도 했는데 아주 평범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합니다. 아니 평범한 사람 이야기도 소설로 쓰면 다르게 보일지도. <약의 역사>에서 ‘나’와 섭은 깊은 관계는 아닙니다. ‘나’가 아플 때면 섭이 약을 만들어주곤 했어요. 섭이 다른 사람을 만나 결혼하면 ‘나’는 기분이 안 좋겠습니다. 그 일로 아픈 마음은 어떤 약으로도 낫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희선

 

 

 

 

☆―

 

 긴 삶에서 몇만 가지 느낌을 겪어낸다 해도, 끝내 운명을 거스르지 못한다 해도, 훗날 내가 죽은 뒤 남는 기록은 단 몇 줄일 뿐이다고 호적은 알려주었다. 만남과 헤어짐, 두려움과 외로움은 공식 문서로 기록되지 않는다. 문득 증조모의 생애처럼 내 삶도 건조하고 짧은 기록으로 요약된다는 사실이 깊은 위안으로 다가왔다. 할머니 삶도, 아주 멀리 있는 그의 삶도 결국에는 몇 줄로 남은 채 바스러질 시간이란 사실 또한. 할머니가 들려준 그 많은 이야기 속 이름들 역시 언젠가는 제적이란 두 글자와 함께 모두 검은 잉크 속으로 스며들어버릴 것이었다.  (<호적을 읽다>에서, 2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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